허송세월
- 감독
- 김미수
- 제작년도
- 2022
- 출연
- 김미수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명단이 궁금합니다. 이건 영화감독을 만났을 때 꺼내 들기 가장 어려운 질문 중의 하나이다. 이 질문 속에는 취향의 지평을 지나쳐가는 질문 안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보, 지식, 체험, 감흥, (미적인, 혹은 정치적인, 때로 은밀하게 사적인) 판단, 무엇보다도 수용의 태도. 영화비평가들은 이런 질문을 받아들면 대부분 약간 젠체하면서 새침하고 교활하게 균형을 맞춰가면서 개인적인 척하는 공식적인 대답을 한다. 그런데 감독들은 이 질문 앞에서 이제까지의 자신의 작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들의 영화를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종종 모순을 일으키거나 혹은 일시적인 행동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때로 심술궂어 보이는 것만 같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명단을 꺼내 들면서 개인적인 대답을 한다. 잉그마르 베르이만은 <007 포 유어 아이즈 온리>가 흥미롭다고 대답했다. 홍상수 는 <젊은 날의 링컨>, <이른 여름>, <저항>, <라딸랑뜨>, (등등과 함께) 열 편중의 하나로 뤼미에르 형제의 <항구를 떠나는 배>를 “떠올리는 순간이 좋다”고 대답했다. 봉준호 는 어떤 경우에도 <큐어>과 <조디악>을 빼놓는 법이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31년 판 오리지널 <프랑켄슈타인>을 포함시켰다. 가이 매딘은 (고레-에다의) <애프터 라이프>를 포함시켰다. 몬테 헬만은 열 편 중의 하나로 장 이모우의 <연인>을 뽑아 들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코스타-가브라스의 <Z>를 넣었다. 이런 명단은 끝이 없다. 물론 여기서 명단의 우열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임권택 감독님에게 망설이던 끝에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법이 없어요. 내 영화도 만들고 나면 다시 보지 않아요. 그런데 단 한 편, 펠리니의 <길>은 두 번을 보았어요. 그게 그렇게 쓸쓸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에 남는 거요” 그러면 어떤 영화감독들을 좋아하십니까? “그때는 영화를 볼 데가 극장밖에 없었으니까,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는 내가 영화 찍으러 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였으니까, 존 포드,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그렇게 세 명이지, 제일 싫어했던 이름은 힛치콕이지, 그 칼부림 하는 영화를 한 번 보고는 다시는 볼 생각을 안 했으니까” 임권택 감독님은 <사이코>를 말하면서 (비유법이 아니라 정말로) 몸서리를 쳤다. 우선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권택 세대는 <카비리아의 밤>이 마지막 펠리니 영화였다. 임권택은 <달콤한 생활>부터 펠리니 영화를 보지 못했다. 만일 1963년에 임권택이 <8 1/2>을 보았다면 그 ‘이후’의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볼 수 있었을까, 라고 상상해보고 싶어진다. (임권택 감독님은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 상상은 단순하게 귀결되지 않을 것이다. 영향이라는 불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응답이다.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투쟁의 긍정과 긍정의 투쟁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영화사가 개인적인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사이에는 그 무대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거부와 저항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충무로의 첫 번째 세대들, 유현목 , 김기영 , 신상옥 , 김수용 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 완전히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 자전거 도둑 >이나 < 무방비도시 >에 거의 영향 받지 않았다. 내가 이 영화 제목들을 꺼내 들었을 때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대답은 무미건조하게 “좋은 영화들이지요”라고 말한 게 전부이다. 임권택을 리얼리즘 영화의 카테고리에 넣고 싶어 하는 비평들은 이 취향의 명단 앞에서 머뭇거릴 것이다. . <아일랜드의 연풍>(존 포드, 1952) 이 명단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기 바란다. 임권택의 영화를 차례로 보다가 세 편의 영화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될 것이다. 하나는 < 남자는 안팔려 >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같은 사나이>이고, 마지막 하나는 < 30년만의 대결 >이다. 아쉽지만 <남자는 안팔려>는 프린트가 유실되어 우리가 볼 수 없다. 나는 이미 < 바람 같은 사나이 >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각색한) 존 스타제스의 <황야의 7형제>를 각색한 영화라는 것을 이미 설명했다. 임권택은 수없이 많은 원작소설을 각색했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각색했고, 라디오 드라마를 각색했다. 그리고 세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각색했다. <남자는 안팔려>는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변주한 리메이크 영화이다. 그리고 <30년만의 대결>은 존 포드의 < 아일랜드의 연풍 >(지금은 <말 없는 사나이>라는 원제(The Quite Man)로 잘 알려졌지만 여기서는 국내 개봉제목으로 쓰겠다)의 리메이크이다. 먼저 첫인상을 고백해야겠다. <30년만의 대결>을 처음 보기 전까지 누구도 내게 이 영화가 <아일랜드의 연풍>의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는 무방비 상태였다. 어느 장면부터 처음 보는 이 영화를 어디선가 이미 보았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무룡과 박노식이 김지미를 사이에 두고 동네에서 주먹싸움을 시작할 때 누구라도 <아일랜드의 연풍>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임권택 감독님에게 혹시 이 영화가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을 다시 한 번, 이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그거를 리메이크 한 거요, 라고 바로 말을 이어받으면서 그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거든, 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제17 포로수용소>와 그 영화 두 편이 제일 재미있게 본 영화요” 1955년 11월 15일에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 영화를 임권택은 (아마도) 연출부를 하면서 보았(을 것이)다. 그런 다음 <30년만의 대결>을 제작할 때 누구도 <아일랜드의 연풍>을 다시 꺼내 들어 참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비디오가 발명되지 않았으며, 한국에는 시네마테크가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서 작업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자막에 각본 송장배, 각색 박남주라고 되어있다. 누군가 기억을 더듬으며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현장용 각본을 썼겠지만, 각색은 이 과정에서 무슨 역할을 한 것일까. 왜 어디에도 원작을 밝히지 않은 것일까. 그때 한국은 국제 저작권협회에 가입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면 비틀즈의 곡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하였으며, 충무로 녹음실에서는 음반 라이브러리에 보관된 음반을 자유롭게 꺼내 들어 자신의 영화에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저작권 여부의 진실은 이 글의 목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흥미로운 방점. 17년 전에 본 영화의 기억, 그리고 감흥. 무엇이 남고 무엇이 지워졌을까. 그런 다음 기억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던 <아일랜드의 연풍>은 어떤 영화였을까. 나는 여기서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에 대해서 쓰지는 않을 생각이다. (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허문영이 ‘존 포드 이야기’ 연재에서 좋은 글을 썼다 .) 대신 임권택은 존 포드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라는 오랜 질문에 질문해볼 생각이다. 나는 대답의 자리에 질문을 잘못 쓴 것이 아니라 두 번 질문이라고 썼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이 임권택의 ‘자리에서’ 해보는 것이라면 두 번째 질문은 임권택의 ‘자리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우선 1971년이라는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그 해에 임권택은 일곱 편의 영화를 찍었다. < 요검 >,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 < 둘째어머니 >, < 명동 삼국지 >, < 원한의 두 꼽추 >, 그리고 <30년만의 대결>. 이 영화들을 다른 방식으로 소개할 수도 있다. 무국적 무협영화 두 편, ‘다찌마와리’ 액션영화 네 편, 멜로드라마 한 편,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한 편. 그저 뒤죽박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명단. 여기서는 어떤 일관성도 발견할 수 없다. 그 말은 한 감독으로서 말 그대로 주문을 받아서 찍어내듯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임권택의 고통스러운 시간. 그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다음 영화를 준비할 틈도 없이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보았다고 기억하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존경하는 존 포드의 영화를 만들었던 시간, 1971년이라는 참혹했던 그 해에 <30년만의 대결>을 만들었던 자리는 임권택의 잠시나마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가정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기의 이상할 정도로 비참하고, 우울하고, 참담하고, 어둡고,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버린 영화들 속에서 드물게도 명랑하고 쾌활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사실을 환기시키겠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따금 유머를 간직한 장면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시종일관 로맨틱하고, 밝고, 명랑한 영화를 찾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대규와 판수 옥희 먼저 <아일랜드의 연풍>과 <30년만의 대결>의 서사에서 인물들의 배치에 관한 차이를 설명하겠다. <아일랜드의 연풍>은 션 쏘튼이 기차를 타고 미국을 떠나 고향인 아일랜드의 (가상의 마을) 이니스프리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중에 밝혀지기는 하지만 션 쏘튼은 권투시합에서 그만 상대방이 죽는 결과에 다시는 주먹을 사용하지 않기로 맹세한다. 운명처럼 션 쏘튼 이웃에 사는 메리(모린 오하라)에게 반하고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메리의 오빠 레드 윌(빅터 맥라글렌)은 지참금을 내놓지 않는다. 션 쏘튼은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아일랜드 여자인 메리에게는 모든 것이 달린 자존심의 문제이다. 션 쏘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오빠 레드 윌에게 대결을 신청하고 온 마을로 이어지는 주먹 싸움의 장관이 펼쳐진다, 라고 썼지만 사실 5분 동안 이어지는 이 클라이맥스에서 정작 션 쏘튼과 오빠 레드 윌의 싸움 쇼트는 얼마 되지 않는다. 존 포드는 이 시퀀스를 구경꾼들과 이웃 사람들, 동네 주민들이 집단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동선으로 연결하면서 역동적으로 만든다. 물론 디테일의 아름다움은 다른 데 있고, 존 포드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션 쏘튼과 메리 사이의 보기 드물게 성숙한 사랑의 감정선이다. 게다가 거의 천국처럼 색채 설계된 이니스프리의 테크니컬러는 <아일랜드의 연풍>을 존 포드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중의 하나로 끌어올린다. <30년만의 대결>은 대규(최무룡)과 판수(박노식)이 박포장기를 두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표현을 빌리면) “죽마고우”지만 30년 전에 한 여자(김지미)를 동시에 사랑했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고향을 떠나갔다. 그런 옥희가 남편을 여의고 딸 지향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다. 대규는 상처를 하고 아들 웅(김희라)와 함께 목장을 하고 지내고, 판 수는 아내와 아들 민(윤양하)과 함께 양계장을 하며 지낸다. 이 마을의 두 명의 부자. 옥희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다시 대결을 시작한다. 문제는 고향에서 농지 제방이 무너지면서 시작한다. 비만 오면 매번 물난리를 겪는 고향에 옥희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저수지를 만들 결심을 하지만 그건 큰돈이 드는 개간사업이다. 여차저차 한 우여곡절 끝에 옥희는 한 달 후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판수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어음을 쓰고 돈을 빌린다. 하지만 판수는 속임수를 쓰고 옥희는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자 마음에 끌리는 대규와 도망칠 생각을 한다. 떠나는 그들 앞에 판수의 아들이 나타나 그래도 이건 아버지에게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냐고 가로막는다. 대규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기다리는 판수 앞에 나타나 옥희를 앞에 두고 주먹 대결을 벌인다. 밤이 올 때까지 다투던 두 사람은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앞에 두고 마지막 주먹을 주고받는다. 그런 다음 판수는 대규를 업고 옥희의 별장에 가서 내려놓은 다음 “나란 놈은 말야, 이제 마누라의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라고 껄껄 웃으며 그들 곁을 떠난다. “나란 놈은 말야, 이제 마누라의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 <아일랜드의 연풍>은 션 쏘튼을 주인공으로 하여 메리와의 로맨스를 통해서 고향이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배워나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서 공동체는 다소 복잡한 이데올로기적 봉쇄 속에 1952년 매카시 냉전 체제하의 미국에 대한 ‘어떤’ 진실을 불편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존 웨인이라는 스타 기호는 하나의 부조리기 되어간다. (잘 알려진 대로 보수주의자이지만 극우파를 혐오했던) 존 포드는 그걸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며, 또한 그걸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1955년 정창화의 연출부를 하던 임권택이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할리우드의 복잡한 네트워크와 그 안에 놓여진 해석들 사이의 상호경쟁적인 모순들을 들여다보면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라고 <아일랜드의 연풍>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그때는 한국전쟁이 휴전한 지 채 삼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셉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금지된 정치적 용어였다. 임권택이 <아일랜드의 연풍>의 이야기에 이끌린 행복은 특권화된 장소로서의 고향일 것이다. 아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향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그때 그의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세계 바깥에 놓여있었다. 갈 수 없는 집. 그 집이 놓여있는 고향이라는 장소. 그때 임권택이 가정하는 그 고향은 아직 한국전쟁이 도착하지 않은 곳이다. 거기서 임권택이 유지하려는 역사적 거리는 아직 미학적으로 형식화되지 않았고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으로 긴장을 잃지 않은 상태로 불안하게 머물러 있었다. 션 쏘튼은 자기가 돌아가고 싶을 때 고향에 돌아왔고 그런 다음 거기서 사랑이라는 시련을 견디면서 받아들여진다. 임권택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존 포드는 션 쏘튼과 함께 미국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가지만 임권택은 옥희라는 여자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시작한다. 우리는 옥희가 왜 대규와 판수 두 남자를 외면하고 다른 남자를 선택한 다음 고향을 떠나갔는지 끝까지 알지 못한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어디에서도 옥희가 자신과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볼 수 없다. 심지어 옥희의 딸조차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옥희는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단 한 순간도 더듬지 않는다. 차라리 잠시 고향에 여행 온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니, 그렇다 할지라도 옥희는 고향의 목가적 풍경을 조금도 즐기지 않는다. 옥희를 동네 사람들은 설씨네 과수원집 딸이라고 부른다. 옥희는 단 한 번도 과수원을 방문하지 않는다. 정말 고향에 과수원이 있기는 한 것일까. <30년만의 대결>을 보면서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대규와 달아나기로 결심한 장면을 제외하면) 옥희가 외부에 전혀 외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선의를 가장하여 다시 떠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저수지라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공사. 저수지는 혹시 매거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이상할정도로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서 약간 용기를 내서 인용하고 싶다. “이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첫 걸음을 내디디면 꿈 전체가 아니라 꿈 내용의 일부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자에게 꿈과 관련하여 무슨 생각이 떠오르느냐고 물어보면 대개 정신적으로 아무 것도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꿈을 여러 부분으로 분할시켜 제시하면 환자는 각 꿈-부분의 배후 사고라고 부를 수 있는 일련의 생각들을 떠올린다. (중략) 내 방법은 전체적 해석이 아니라 부분적 해석이다.” (프로이트, <꿈의 해석>, 김인순 옮김) 물론 임권택을 환자라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태를 추상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판수의 마지막 대사에서 어떤 입구를 찾은 것만 같았다. “...(중략)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 자장가. 잠들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 요점은 <30년만의 대결>을 일종의 백일몽처럼 가정한 다음 그 안으로 들어갈 때 전체와 만나는 대신 부분적으로 분할시켜 이 이상할 정도로 즐거운 영화 내부에서 난처하게 모순을 불러일으키는 대목들만을 향해서 질문한다면 우리는 질문 안의 질문과 대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무대를 먼저 돌아보자. 이 마을에는 두 명의 부자가 있다. 한 명은 판수이고, 다른 한 명은 대규이다. 한 명은 양계장을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목장을 하고 있다. 영화는 판수의 집과 대규의 집, 양계장과 목장을 오간다. 이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우기가 다가오고 장마가 지면 제방이 무너져 농사를 망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단 한 장면도 논밭을 보여준 적이 없다. 더 이상한 것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마을 사람들 중에서 양계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볼 수 없다. 양계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과 한 눈에 구별되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분주하게 양계장과 목장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은 마치 서로 다른 고장에 사는 것처럼 겹치지 않는다. 양계장과 목장, 그리고 농사. 물론 그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존의 양식을 우리는 끝내 보지 못한다. <아일랜드의 연풍>에서의 이니스프리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매일 매일의 일상의 축제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천국이라면 <30년만의 대결>의 고향은 (끝내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둘로 분리된 생산양식이 공존하는 가운데 현재의 토대가 보이지 않는 (니코 풀란챠스의 표현을 빌려) 비-장소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일종의 신기루. 임권택의 고향에는 무언가 어긋난 질서가 있다. 옥희는 왜 돌아왔는가. 혹시 이 어긋난 질서를 교정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얼핏 보기에는 매거핀처럼 보이는 저수지가 사실은 가장 강력한 교정수단인 것은 아닐까. 이때 이 고향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양쪽으로 찢어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판수와 대규, 양계장과 목장을 단순히 두 개의 힘이 대립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가 과거에로 되돌아가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판수는 영화 내내 한복을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서울에서 온) 옥희를 만난다. 그의 집은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를 갖추었고 방안에는 오래된 자개장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아내도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갈 때까지 내내 한복을 입고 있으며, 아들 민은 가까스로 농촌을 벗어난 것 같은 면바지와 셔츠를 입고 다닌다. (지금의 우리들이 볼 때에는 다소 기괴하게도 민의 의상은 그때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새마을 지도자처럼 보인다) 반면 대규는 마치 도시생활을 하다 돌아온 것처럼 청바지를 입고 때로는 선글라스도 쓰고 다닌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아무도 청바지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없다. 청바지와 선글라스는 부의 상징이 아니다. 대규는 양옥의 양식으로 지어진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아들 웅은 가죽 바지와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오토바이는 이상할 정도로 이 농촌의 풍경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시끄러운 오토바이 모터 소리는 등장할 때마다 목가적인 풍경의 고요함을 깨트리곤 한다. 대규가 옥희와 함께 고향에서 달아나기 위해 머플러를 하고 댄디한 감각의 재킷을 입고 나타난 모습은 판수에게서 상상하기 힘든 의상이다. 그 둘은 어느 쪽도 고향에 긍정적인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 판수는 과도할 정도로 고리타분하고 회고적인 과거로 돌아서고 대규는 무언가 어색하고 종종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는 미래가 지나치게 서둘러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그 둘 사이에는 이상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구두쇠라는 사실이다. 그건 단순히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 과도하리만큼 집착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둘은 ‘충분히’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여전히’ 빈곤하다고 여긴다. 충분히 부자인데도 여전히 빈곤한 것은 자신의 재산에 채워야 할 공백을 셈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공백은 재산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구두쇠는 그 불가능성을 재산의 물신성으로 환원하기 시작한다. 억압과 부인 사이의 도착적 관계. 신경증적 불안과 현실적 불안이 페티시즘을 매개로 결합한다. 이때 옥희는 그 간극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 물신성을 무효로 만든다. 여기까지는 단순하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이걸 도식적으로 읽으면 안 된다. 물론 이 설정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장면의 재료들이 반대로 우리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어렵지 않게 대립의 상황에로 데려갈 때 이 백일몽이 의도하는 바를 명백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옛 것과 새 것. 지나가고 있는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 그 간극을 연결 짓기 위해 옥희가 나타났다. 만일 옥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고향의 간극은 그냥 찢어져나갔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 두 개의 힘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임권택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대규와 판수가 장기를 두고 있고 마을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몰려들었다. 판수는 자기가 이겼다고 장 받아라, 라고 외치지만 대규는 멍이야, 라고 하면서 비기는 장기를 만든다. 비김수를 쓰면 한 쪽이 판을 엎거나 포기를 하(거나 양보를 하)기 전에는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는 법이다. 장기판을 덮고 판수는 대규에게 그러면 팔씨름으로 승부를 내자고 한다. 이것도 요지부동 박빙의 승부로 이어진다. 이 균형을 깨는 건 누군가 달려와 서울 간 설씨 과수원네 딸이 돌아왔어요, 라는 외침이다. <30년만의 대결>은 정확하게 거기서 시작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힘의 긴장관계. 그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어온 옥희. 나는 이걸 다소 아이러니하게 정식화시키고 싶다. 옥희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에 있었는데 바깥에서 나타난 것이다. 임권택은 여기에 완전히 매혹되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서 옥희는 아무 것도 상징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가가면 <30년만의 대결>이 담고 있는 즐거운 기분을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눈 감은 척 지나간 가장 이상한 설정을 건드릴 것이다. 질문 안의 질문. 대규와 판수를 비교하면서 한 쪽은 전통, 다른 한 쪽은 근대, 라는 식으로 도식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의 가설을 전복시키기라도 하듯 서울에서 내려 온 옥희는 막 도착하자마자 방문한 대규와 판수를 한복을 입고 맞이한다. 마치 옥희가 고향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다음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에게서 서울의 어떤 흔적도 볼 수 없다. 옥희는 줄곧 한복을 입고 생활한다. 심지어 자신의 생일잔치를 하는 자리에서도 촛불을 켠 케이크를 가져다놓고 서양의 생일 축하곡을 부르면서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어색한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 의상의 일관성이 계산된 연출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옥희는 저수지 공사를 위해서 과수원을 내놓고, 그런데 그걸 사려던 부동산 사업가가 내놓은 약속어음이 부도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갑자기 도회적인 복장을 하고 문 앞에 나타난다. 그런 다음 옥희는 다시 한복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예외로 하고...) 옥희가 한복을 벗어던지는 건 대규와 함께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 전부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이 영화가 1971년의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싶다. 나는 여기서 에드아루트 푹스를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풍속으로서의 역사. 사생활로서의 유물론. 일상생활의 사소한 디테일들 사이의 변증법. 옥희는 서울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때 서울에서 가시적인 풍경 앞에 형상화된 여성성은 두 종류의 여자로 나뉘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 가정생활을 하는 여자들. 물론 실제의 한국 사회는 그때 청계천과 구로공단에서 ‘공순이’들을 착취하기 시작했고, 유한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이었던 ‘여대생’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었고, 정반대의 자리에서 밤의 길거리에서 타락한 요부의 에로틱한 이미지를 도시화로 옮겨놓은 성매매 산업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풍경 저 너머에 매우 제한적이거나 그림자 아래 숨겨져 있었다. 나는 지금 1971년의 풍경을 말하는 중이다. 이때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은 (경험해보지도 않은) 1950년대 미국 산업사회의 ‘오피스 레이디’의 복장을 마치 자신들의 교복처럼 입었다. 근대의 레디메이드. 혹은 근대화 식민지로서의 지체된 데자뷔.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한국 사회에서는 OL(Office Lady)이라고 불렀다. 반대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여성들은 자신이 직장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신 설명하기라도 하듯 하나의 표시로서 전통적인 한복을 입었다. 나는 근대의 물결, 산업의 세계, 자본의 현장에 있지 않답니다, 라는 걸 의미하는 사회적인 모드의 양식. 복식의 수사학은 (바르뜨가 잘 설명한 것처럼) 은유가 빈곤한 개인적인 시학이자 (부르디외가 설명한 것처럼) 구별의 사회학이기도 하다. 1971년의 여성들은 아직 미혼이었을 때는 한복을 명절에만 입다가 결혼을 하면 마치 그것이 하나의 의무적인 의상인 것처럼 일상에서 입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여성이 한복을 입은 것은 이중적인 기호가 되었다. 하나는 나는 직장을 다니지 않습니다, 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남편이 있습니다, 라는 이중의 기호. 그때 한복에는 유교적인 가치의 맥락 속에서 전통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나는 집에서 가정을 지키는 정숙한 아내입니다, 라는 하나의 모델에 자기를 기입하기. 옥희가 고향에 돌아와 대규와 판수 앞에서 전시하는 복장은 정확하게 그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에 하나의 의미를 더하고 싶다. 옥희의 한복에서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물론 남편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옥희가 고향에 돌아와 전시하는 복장은 나는 정숙한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도 읽힐 수 있다. 누구에게? 대규와 판수에게. 돌아온 옥희에게 대규와 판수는 단 한 마디도 옥희의 전 남편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옥희는 단 한 마디도 전 남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금지의 단어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에는 어떤 애도도 없다. 서울을 괄호 친 채 추억과 향수만이 이들을 감싼다. 잃어버린 시간, 되찾은 시간. 대규와 웅 부자 판수와 민 부자 옥희와 지향 모녀 세 번째 이상한 설정. 대규와 판수, 그리고 옥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자 한 명의 자식이 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물려받았다기보다는 마치 삶 자체를 ‘카피’한 것처럼 보인다. 아들은 아버지와 대결할 의사가 조금도 없다. 그건 대규의 아들 웅이나 판수의 아들 민 두 사람 모두 동일하다. (아버지가 바람이 나자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난 다음 민이 잠시 판수에게 저항하지만 그건 잠깐 동안 불평을 늘어놓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들은 마치 얌전하게 지내기만 하면 아버지가 재산을 물려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순종적일 뿐만 아니라 종종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설명적으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무엇보다 서사의 전반부에서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를 연출하는 것은 민과 웅이 옥희 딸 지향을 보자마자 경쟁적으로 구애를 할 때이다. 그들은 아버지 세대의 실패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것처럼 다시 한번 반복한다. 이때 민과 웅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겪지 못한 똑같은 딜레마에 동시에 빠진다. 그들은 한 눈에 자신의 아버지 대규와 판수가 옥희와 재혼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그렇게 되면 새 어머니 옥희를 모시는 순간 지향을 상대방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을 못 견디게 만든다. 아버지의 이득은 자신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아버지의 상실을 기대하면서 상대방의 아버지의 이득을 기대하게 된다. 말하자면 두 명의 아들은 두 명의 아버지의 이해관계와 동일한 상호 모순의 계산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아일랜드의 연풍>에는 없는 구도이다. 물론 이 문제는 심각하게 진행된다기보다 서사 전체에서 가벼운 기분전환에 가깝다. 갈등은 간단하게 해결된다. 지향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뉴욕에 있는 애인이 갈등의 과정에서 적당한 순간에 나타나 민과 웅의 구애를 무효로 만든다. 지향은 약간의 미련도 없이 그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 그런 다음 지향은 애인과 함께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데 잠시만 멈춰보자. 지향은 분명히 자신의 어머니가 저수지 공사를 위해 과수원을 내놓았고 그 과정에서 부도가 난 (거짓) 약속어음 때문에 곤궁에 처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머니 곁을 미련 없이 떠난다. 단순한 갈등 속에 포함된 이해하기 힘든 서사 내부의 인과관계 사이의 불연속성들. 하지만 갈등이 단순하다고 해서 그것이 포함하는 의미마저 단순한 것은 아니다. 나는 먼저 갈등을 건드리고 난 다음 지향의 이상한 선택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등장할 때 갈등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이때 갈등은 양쪽 방향으로 향한다. 하나는 아들의 자리에 무언가를 물려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하나의 시간이 끝나고 하나의 사건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30년만의 대결>에서는 기이하게도 어떤 아들도 아버지와 대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아버지도 아들을 위한 자리를 남겨놓지 않는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30년만의 대결>에는 시간이 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시간의 진공상태에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임권택에게 가장 즐거운 것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거기서 어떤 시간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백일몽적인 환상. 시간 없는 장소. 과거에 머물러 있는 판수와 그를 둘러싼 미장센들. 아직 고향에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대규. 대규와 판수의 공존. 그 둘 사이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균형의 긴장상태. 임권택이 여기서 즐기는 것은 고향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30년만의 대결> 속에서의 고향은 고색창연하면서도 (마을사람들의 초가지붕으로 둘러싸인 동네) 이상하게 모던하고 (젖소들이 유유히 노니는 유럽풍의 목장), 종종 퇴행적이면서도 (단 한 대의 버스도 다니지 않는 외진 동네) 때로 급진적이다. (웅은 1960년대 도쿄의 시부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모터사이클족(族)들과 어울린다) 이때 지향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이미 웅과 민이 그들의 아버지 대규와 판수의 카피라는 것을 설명했다. 웅과 민은 왜 동시에 지향에게 매혹된 것일까. 고향의 수상한 점. 지향(과 옥희 집에서 일하는 젊은 가정부)를 제외하고 이곳에서는 단 한 명도 젊은 여자를 볼 수 없다. 좀 우스꽝스러운 추론. 그러니 웅과 민이 어떤 여자와도 데이트를 하지 못하면서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웅과 민은 어느 쪽도 자신의 고향 애인을 외면하고 지향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면하는 것은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 애쓰는 판수이다. (물론 대규는 이미 상처(喪妻)했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수고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는 매혹의 요점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향은 여기서 조금도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웅과 민을 사로잡은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건 지향 자신도 자기가 그걸 갖고 있다고 알지 못하는 그 어떤 힘, 그런데 웅과 민에게만 의미가 있는 그 어떤 것이라고 가정해볼 수 없을까. 혹시 웅과 민이 지향에게 끌리는 것은 그녀가 서울에서 왔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한 번 더 환기하는 1971년의 상황, 서울과 ‘시골’의 격차는 단지 지리적인 것 이상으로 근대의 지체된 시간적 간극의 물화이기도 했다. 나는 구태여 시골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곳은 지방 도시가 아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버스 한 대 볼 수 없는 마을. 대규는 옥희와 이 마을에서 도망치려할 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이용하는 대신 언덕을 걸어서 읍내까지 갈 생각이었다. 360도로 카메라가 둘러보아도(round_panning) 그저 산과 논밭과 언덕과 가로수가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길만이 보이는 동네. 여기에 갑자기 ‘출현한’ 지향은 웅과 민에게 단지 서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기호 그 자체일 것이다. 그저 풍문으로 전하는 서울. 그때 웅과 민은 지향에게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다가간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지향은 세 개의 가능성을 품고있는 매혹의 근거였던 것은 아닐까. 어떤 세 개의 가능성? 아버지를 떠날 수 있는 가능성. 집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 고향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 <30년만의 대결>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이 모든 설정의 이면에는 고향을 떠날 수 있는 계기로 가득 넘쳐난다. <젊은 날의 링컨>(존 포드, 1939) 당황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30년만의 대결>은 (미학적인 성취는 일단 제쳐둔 상태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에 가까이 가져다놓으면 놓을수록 마치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사의 결들이 점점 더 완강해진다. 그래서 그 둘 사이에서 유사점이라곤 클라이맥스의 순간에 두 사내가 주먹으로 싸우면서 서로의 우정을 나누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라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나는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임권택은 존 포드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임권택은 <아일랜드의 연풍>에서 무엇을 즐긴 것일까. 존 포드에 대한 많은 글들은 풍경에 대해서 언급한다.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존 포드는 풍경이 아니라 장소의 영화를 찍고 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성립시키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한다. 하나의 장소라는 문제. 그때 그 장소는 종종 무심하고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것처럼 거기 있지만 하여튼 거기서 등장인물들은 살아야하고, 견뎌야하고. 배워야하고, 기쁨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 그들은 매번 결단을 내려야한다. 이 장소에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거기서 영화가 시작하고 거기서 영화가 끝난다. 존 포드는 영화에서 드라마가 행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심리적인 장면을 연출한 적이 없다. 존 포드는 행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표현하긴 했지만 여기서 애쓰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 자체가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종종 기적처럼 보인다. 하나의 과정. 존 포드의 방법론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론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날의 링컨>은 성장의 장소를 찍고 있는 중이다. 정확하게 똑같은 의미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은 휴식의 장소로서의 이니스프리를 성립시키기 위해 애쓰는 영화이다. 여기서 임권택이 즐긴 것은 휴식이고, 그가 배운 것은 그것을 성립시켜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1971년의 임권택은 지친 몸을 이끌고 이 휴식의 장소에 와서 허송세월을 보내버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막 영화에 도착했던 자신의 젊은 날의 순간에 잠시 머문다. <아일랜드의 연풍>을 보면서 잠시나마 누렸던 꿈결 같은 귀향의 시간. 아마도 그때 전라남도 장성은 아일랜드의 이니스프리만큼이나 먼 곳이었을 것이다. 갈 수 없는 곳.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장성과 한국전쟁 이후의 장성은 얼마나 다른 곳이었을까. 소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들 토벌의 무대에 되었던 곳 중의 하나.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 물론 비평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30년만의 대결>을 말하면서 이 영화의 씬들 사이에 묻어나는 정감을 완전히 치워버리면 우리는 해야 할 말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개념적인 영화가 아니다. 임권택은 열렬한 시네필이 아니다. 아직은 <30년만의 대결>이 성숙하지 않은 임권택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기서 옥희가 돌아온 고향이 임권택이 그 자신의 고향에 이끌리기 시작하는 증후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들)에서 은밀한 고향의 선을 탐색해왔다. 그는 아주 느리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0년만의 대결>은 < 바람 같은 사나이 >와 < 아내들의 행진 > 사이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을 이어주는 영화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순하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다른 한 편으로 물 쓰듯이 낭비해버렸지만 마음 한 구석에 존 포드라는 위대한 이름을 가슴에 품었던 젊은 날의 청춘에 대한 호소를 담은 그 자신만의 내밀한 예술의 세계가 있다. 영화라는 특수한 세계.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삶. 먹고 산다는 근거. 이 세계는 돈 밖에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여튼 여기는 예술의 세계이다. 현실적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품어야하는 이 세계의 진정성에 대한 의지. 정창화의 연출부를 하면서 품어보았을 어떤 꿈. 틀림없이 수백 번도, 수천 번도 더 가져보았을 꿈. 임권택은 몇 차례이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영화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을 해보았죠, 그리고 그걸 버리면서 내 영화를 찾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비로소 한 거지요” 아마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선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선이 더 있을 것이다. 그건 자기 삶의 궁핍함에 대항하는 백일몽과도 같은 환상의 세계였을 것이다.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 몰래 숨어서라도 기쁨을 하여튼 유지하려는 안간힘. 프로이트의 가설. 그런데 마치 임권택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적 조건을 더 나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것만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만들었다. 1971년의 영화들의 목록. 임권택은 고통과 비애로 가득 찬 세계를 그 자리에로 되돌아오듯이 반복해서 다루었다. 그의 주인공들은 비참했고(< 황야의 독수리 >), 더럽혀졌고(<둘째 어머니>), 종종 신체절단의 시련을 이겨내야 했으며(< 애꾸눈 박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원한의 두 꼽추>), 그런 다음 쫓겨나듯이 자기의 세계에서 퇴장해야만 했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오랫동안 그의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실존적인 현실때문이 아니라 타락한 로맨스가 요구하는 규칙에 따라 그렇게 행동했다. <30년만의 대결>은 마치 거기에 반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승하는 로맨틱한 감정에 모든 힘을 집중시킨다. 세 개의 선. 고향의 선. 예술의 선. 로맨스의 선. <30년만의 대결>이 내게 흥미로운 것은 이 세 개의 선이 완전히 서로 뒤엉켜버렸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연풍>의 이니스프리 처음의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존 포드의 이니스프리와 임권택의 고향 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이니스프리는 에덴동산이지만 임권택의 고향은 애당초 가져본 적이 없는 에덴이라는 것이다. <30년만의 대결>에서 옥희는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교회를 찾아가 목사를 자신의 멘토처럼 여기면서 모든 것을 의논하지만 정작 목사는 여기서 가장 무능하고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팔려가듯이 옥희가 판수와 결혼을 해야 할 때조차 속수무책으로 주례를 진행해야하는 입장에 놓이는데도 그걸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때 이 영화는 세상에 어떤 믿음도, 기대도, 신념도, 희망도 없음을 부지불식간에 내비친다. 다소 괴이하게도 임권택의 고향은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자본주의적인 거래의 양식 아래 규칙이 집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협상도 없다. 계약을 맺으면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고향의 법칙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그 안에서 로맨스가 버틴다. <아일랜드의 연풍>에서 지참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는 약혼녀 메리의 오빠 레드 윌과 주먹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30년만의 대결>은 아주 멀리 떨어져있다. 결혼식을 피해 도망치던 옥희와 대규 앞에 판수의 아들 민이 나타나서 가로 막았을 때 대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교회로 되돌아간다. 그런 다음 판수에게 목장 문서를 내민다. 그러자 판수는 그 문서를 불태워버린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판수는 여기서 자신에게 돈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제스처는 정반대이다. 판수는 그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물론 ‘구두쇠’ 판수는 그 돈이 탐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돈을 받으면 판수는 대규와 싸움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될 것이다. 정확하게 그 돈은 거래이다. 그 돈을 거절함으로써 판수는 대규와 싸울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다. 이 로맨스는 거래로 시작해서 거래로 끝난다. 그러므로 대규는 이 권리를 산 판수에게 승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우리는 이미 판수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보았다. 집에서 ‘결혼 행진곡’을 틀어놓고 웨딩 마치 연습을 하는 판수를 보고 민이 녹음기를 집어던지면서 아버지는 집을 나간 어머니는 생각도 하지 않느냐, 라고 소리치고 나갈 때 혼자 남은 판수는 중얼거린다. “질 수가 없어, 질 수가 없어” 판수는 30년 동안 사랑한 옥희를 잊을 수가 없어, 포기할 수가 없어, 놓칠 수가 없어, 라고 말하지 않았다. 판수의 목표는 옥희와 결혼하는 것아 아니라 대규가 옥희와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규가 제공해야 할 대가는 옥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판수와의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대규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규는 하루 종일 주먹 싸움 끝에 늦은 저녁 대폿집에서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판수의 주먹에 결국 나가떨어진다. 정말 대규는 쓰러진 것일까. 판수가 대규를 등에 업고 옥희에게 데려다 준 다음 호기롭게 떠나자 이게 그저 ‘한바탕 쇼’라는 듯이 슬쩍 눈을 뜨고 조용히 지켜보자는 신호를 장난스럽게 보낸다.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것은 낮의 풍경이 아니라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밤의 정경이다. 로맨스는 여기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존 포드를 존경하던 그 예술의 세계도 거의 희미해져서 잘 분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제 판수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대규와 옥희가 고향을 떠나가는 일만 남았다. 이 마지막 장면은 둘 중 양자선택 속에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 거의 알기 힘들다. <30년만의 대결>은 결국 판수를 아내에게 되돌려 보내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제 발로 돌아온 옥희가 어쩔 수없이 제 발로 다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야기인가. 이 명랑한 영화의 이면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계획과 목적을 향해서 부산하게 계산한 다음 비밀스러이 상대방을 이용하고 전유하려는 싸움이 펼쳐진다. 그걸 로맨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임권택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에서 로맨스는 항상 근대에 밀려나가면서 애처롭게 뒤돌아보는 것이다. 임권택은 그걸 어디선가 보기는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경험해볼 수 없는 것처럼 다룬다. 그러므로 나는 약간 대담하게 <30년만의 대결>을 정의 내려 보고 싶다. 이 영화는 조건의 영화이다. 어떤 조건?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도약의 자리에로 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영화. 그는 계속해서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만 같은 이 과정을 어디서 끊을 수 있는 지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 잡초 >를 자기가 제작하고 연출하기 전의 일이다. 여기서는 그걸 영화 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미세한 변화들. 하지만 되풀이되는 실패들. 그러면서 어딘가에 기대서라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 장면들. 효과들은 잘 발휘되지 않고 있으며 무언가 의심만이 둘러싸고 어수선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변화를 감지하였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자기 영화로부터 낯설어지기 시작하는 임권택.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풍경의 쇼트들, 그 낯섦. 그보다 더 분명한 변화의 조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계속)
나의 애도의 방식. 먼저 작별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여기 없는 이름. 서정민 촬영감독은 한국영화사에서 빛나는 이름 중의 한 분이다. 그건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촬영이라는 자리. 연출의 곁. 임권택 에게 정일성 이 따라오는 것처럼 서정민을 이야기할 때는 이만희가 따라왔다. 하지만 종종 현장에서 그보다 더 중심에 있는 자리. 일화에서 시작하겠다. 나는 고인을 현장에서 단 한 번 뵈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 여고괴담 > 현장을 견학하게 되었다. 먼저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998년은 어떤 단절이 이어지던 시간이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지만 갑자기 새로운 영화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미학적 연대도 하지 않았으며(이를테면 네오 리얼리즘), 그렇다고 같은 영화사에서 자본의 일시적인 변덕의 힘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며(이를테면 쇼오치쿠 누벨바그), 어떤 정치적 입장도 공유하지 않았으며(이를테면 체코 누벨바그), 같은 시대의 공기를 공감하고 있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파리의 누벨바그) 그냥 난데없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오던 충무로에 갑자기 새로운 영화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전통을 따랐고, 누군가는 희미하게 연결 지었고, 누군가는 완전히 외면했다. 1996년 5월에 홍상수 의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 개봉하여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그해 11월에 김기덕 의 < 악어 >가 소리소문 없이 개봉한 다음 사라졌다. 1997년 이창동 이 < 초록물고기 >를 찍었다. 그리고 송능한 이 < 넘버 3 >를 찍었다. 정반대의 두 영화. 그 이듬 해 1998년, 허진호 의 < 8월의 크리스마스 >와 이광모 의 < 아름다운 시절 >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같은 해 봄에 김지운 이 < 조용한 가족 >을, 가을에는 임상수 가 < 처녀들의 저녁식사 >를 찍었다. 이 시기를 소개하면서 서방세계에서는 포스트 뉴 ‘코리언’ 웨이브라고 부른다. (첫 번째 물결은 1989년 장선우 , 이명세 , 박광수 가 나타났을 때이다. 그런 다음 이 영화들을 앞선 영화들에서 분리해냈다) 박기형 은 충무로 도제제도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서울단편영화제에서 (거의 중편에 가까운) < 과대망상 >으로 주목을 모은 다음 곧장 첫 번째 장편영화 <여고괴담>을 만들었다. 지금은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그때는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그는 다른 ‘신인’ 감독들과 달리 장르영화로 곧장 달려갔다. 나는 새로운 작가는 새로운 영화를 발명하면서 발견되지만 영화산업 전체가 새로워질 때는 새로운 장르영화가 나타날 때라는 로빈 우드의 문장에 밑줄을 그은 세대이다. <여고괴담>은 박기형의 야심과 상관없이 앞으로 십 년의 한국영화 산업을 결판 지을 거라는 생각을 그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박기형은 이 새로운 물결에 합류하였다. 현장을 보러 간 날은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을 위해 밤샘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 영화의 촬영이 서정민이었다. 그때 서정민은 이미 148편의 영화를 찍었고 현장에서 모두가 어려워하는 ‘촬영감독님’이었다. 149번째 영화라는 표현을 한번 상상해주기 바란다. 1961년에 첫 영화를 찍은 촬영감독과 어떤 도제제도의 수업 없이 1998년에 첫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 모두들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배우들은 이미연을 제외하고 그때 모두 신인이었고 박기형은 첫 번째 장편영화를 찍는 상황에서 곤혹스러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현장에 스태프들이 너무 많았고 콘티는 정확하지 않았고 (아마도 중간에 무언가 문제가 생겨서 변화가 생겼음이 틀림없고) 게다가 영화촬영을 하면 아침이 일찍 찾아오는 법이다. 온 사방이 교실 창문이었고 필름으로 촬영하던 그때는 지금처럼 색 보정 작업이 많은 부분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박기형은 완전히 지친 상태였고 새벽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감독을 불러 몇 장면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그때 카메라 옆에 조용히 있던 서정민 촬영감독이 다가와서 화가 난 목소리로 박기형을 꾸짖었다. “박기형, 당신 으악새 감독이야? 이거 데뷔작이잖아. 첫 번째 영화 찍는 감독이 이러면 안 돼. 이 바닥에서 한번 호구 잡히면 그냥 끌려다니다가 인생 종 치는 거야. 창문에 암바(暗部處理) 쳐 줄 테니까 당신이 원래 하고 싶었던 거 그냥 해. 그래도 돼, 데뷔감독은 그래도 돼” 시간이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나는 이 사람이 멋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서정민 촬영감독 물론 서정민 의 대표작들은 1960년대에 이만희 와의 작업이다. 그 중에는 < 만추 >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다음 1980년대에는 ‘돌아온’ 이장호 와 < 바람 불어 좋은 날 >을 시작으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영화들을 찍었다. 서정민의 마지막 파트너는 김기덕 이었다. < 야생동물보호구역 > < 파란 대문 >과 < 수취인불명 >을 작업했고, 김기덕은 가끔 내게 서정민 ‘촬영감독님’과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석임에도 최대한의 존경을 표하는 태도를 취한 다음 기꺼이 그와 함께 작업한 현장에서 “영화를 배웠다”는 표현을 썼다. 임권택 과는 많은 작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50편의 습작을 찍고 난 다음 그 자신의 ‘첫 번째’ 연출이라고 부른 < 잡초 >를 서정민 이 찍었다. 아마도 임권택을 임권택답게 만든 그 순간. 거의 필사적인 도약의 결정. 차라리 절망으로 인한 결심이라고 불러야 그 자리. 그때 임권택은 이름을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촬영감독들과 영화를 찍었다.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임권택은 <잡초>를 위해서 서정민을 선택했다. 이 영화는 임권택이 제작한 처음이자 유일한 영화이다. 임권택과 서정민이 함께 작업한 영화는 모두 14편이다. 그러므로 160편에 달하는 촬영목록을 생각하면 아마도 그저 잠시 머문 것 같다. 처음 작업한 영화는 1970년 < 애꾸눈 박 >이었고, 순서대로 이야기하면 1971년에는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 < 둘째 어머니 > < 명동 삼국지 >, 그리고 1972년에는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 < 명동잔혹사 >, 1973년에는 <잡초> < 대추격 > < 증언 >을 찍었다. 그런 다음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1975) < 맨발의 눈길 > < 낙동강은 흐르는가 >(1976)를 찍었다. 그 사이에 < 왕십리 >와 < 상록수 > < 족보 >를 이석기 와 찍었다. 그저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만희 는 서정민과 헤어진 다음 이석기와 작업을 했다. 연출과 촬영 사이의 각자의 모색. 끊임없는 실현. 이미지 사이에서의 미세한 차이들. 이 시기에 임권택은 정일성 을 만나 < 신궁 >(1979)을 찍었고, 1980년에 < 복부인 >을 서정민과 찍었다. 그런 다음 1984년에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를 찍은 게 마지막이다. 서정민은 다른 감독들과 그 이후에도 계속 작업했고 그 명단에는 김기영도 포함되어 있다. 임권택도 물론 이석기, 구중모 , 그리고 정일성과 다음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 영화가 무언가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그것이 안타깝다. 왜냐하면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의 한 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의 새로운 예술적인 우정이 막 시작하려는 순간 멈춘 것만 같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우정을 나누려는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다. <맨발의 눈길>의 혜선(左), <잡초>의 분례(右) 두 사람의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 맨발의 눈길 >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임권택 감독께서 단 한 번도 긍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 잡초 >를 한 번 더 찍은 것이라고 거의 단정 내리고 싶어진다. 다만 이렇게는 약간 망설인 끝에 덧붙였다. “그 영화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잡초>를 쓴 나한봉 씨 밑에서 오랫동안 수업을 쌓은 박찬성 씨에요, 아마 그런 영향이 있겠지요” 그런데 그 원작을 찍은 사람이 그걸 몰라볼 수가 있을까. 예술에서 한 번 더 한다는 것. 임권택의 다시 한 번. <잡초>는 분례가 차례로 네 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그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맨발의 눈길>은 고아원에서 나온 혜선이 세 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그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두 영화의 이야기는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미 어디선가 두 점의 <양산을 든 여인>을 예로 들면서 임권택이 모네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임권택은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실패를 응시하는 것. 하지만 그 실패가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이때 놓쳐서 안 되는 것은 임권택이 반복할 때 그 과정에서 무엇을 훔쳐내고 싶어 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잡초>를 볼 수 없다. 사라진 자리. 그리고 임권택은 그 자리에 다시 왔다. 도대체 다시 온 것은 무엇일까. 임권택은 거기서 무엇을 다시 한 번 ‘재연’하고 싶었던 것일까. 거기에 어떤 보물이 있었던 것일까. 이때 임권택은 <맨발의 눈길>을 찍으면서 <잡초>를 찍은 서정민 을 다시 불렀다. 그 해에 임권택은 서정민과 이석기 두 촬영감독과 번갈아 작업했다. 그저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서로의 일정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서정민의 쪽에서 바라보면 좀 더 기괴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서정민은 이 해에 6편의 영화를 찍었고 두 편을 임권택과 작업했다. 이때 두 편은 <맨발의 눈길>과 < 낙동강은 흐르는가 >이다. 다시 설명하겠지만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마치 < 증언 >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단편 중의 하나를 다시 한 번 확장시켜놓은 것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증언>은 (특수촬영을 장석준이 하고) 서정민이 찍었다. 1976년에 임권택은 이미 해본 것을 다시 한 번 해보는 것만 같은 반복 안에서 그 무언가를 확장시켜놓은 다음 마치 이미 해본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정민과 다시 한 번 그걸 해보고 있다. 그 안에서 무엇이 활동하는 것일까. 거기서 무엇을 수정하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 차라리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껴보려는 것일까. 이 우연의 일치는 무언가 자꾸만 이 과정을 능동적인 선택이라고 해석하고 싶게 유혹한다. 두 번째 이유는 다소 내속적인 성질에 관한 설명이다. 반복은 여기서 기이하게도 재귀의 순환운동 안으로 들어서자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 맨발의 눈길 >을 처음 보면 무언가 영화의 기호들이 대부분 부서졌다는 인상을 준다. 단지 실패했다고 설명하면 쉽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어떤 순간들이 이 영화에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그것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어떤 자리에서 영화가 멈춰 서 있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기괴하리만큼 불만족스러운 히스테리에 가득 차 보인다. 임권택 은 단 한 번도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그건 그의 세대들이 모두 그러하다. 다만 옴니버스의 형태로 다른 감독들과 함께 만들기는 했다. 그래서 이미 <맨발의 눈길> 이전에 < 명동잔혹사 >를 변장호 , 최인현 과 함께 찍었다. 하지만 홍상수 의 < 첩첩산중 >(< 디지털 삼인삼색 >의 한 편), 박찬욱 의 < 심판 > <찬드라의 경우>(< 여섯 개의 시선 > 중의 한편), <컷 Cut!>(< 쓰리 몬스터 >의 한 편) < 파란만장 > < 청출어람 >, 봉준호 의 < 인플루엔자 >(< 디지털 삼인삼색 >의 한 편)처럼 적극적으로 작업하지 않았다. 하지만 <맨발의 눈길>은 혜선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세 명의 남자와의 우여곡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세 개의 이야기, 세 편의 영화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이다. 임권택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그는 한 편의 영화 안의 고유한 리듬, 그 안의 균형감각, 그 세계의 일관성,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감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적어도 그런 의미에서) 고전적인 연출자이다. 심지어 실패할 때조차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거기서 무너지면 그건 더 이상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예외의 기준을 세워둔 것처럼 그냥 밀고 나아간다. 심지어 어떤 곤궁처럼 여겨지는 데도 상관없다는 것만 같은 어떤 태도가 있다. 틀림없이 이 영화의 어느 순간에는 재앙의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차라리 어떤 균형을 갖추고 그 위험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참을 수 없다는 최악의 방식에 이끌리고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는 매번의 영화가 하나의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임권택의 불평을 쫓아내는 임권택이 있는 것만 같다. 세 조각이 나버린 영화,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만 같은 이야기. 서로 완전히 다른 리듬. 혜선을 연기하는 주연 이인옥 만이 가까스로 하나로 연결되는 세 개의 단편. 여기서는 마치 이 영화를 자신의 영화 목록 안에서 예외의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는 대립 같은 것이 있다. 임권택의 영화를 부주의하게 다루는 대부분의 비평의 공통점은 이 대립을 간과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투적인 공식. 임권택은 상투적인 상업영화에서 시작했으며, 새마을 영화와 반공영화를 만든 어두운 시기를 거친 다음 < 만다라 >를 전환점으로 하여 자기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고, 운운, 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도식화. 물론 이 설명이 거짓은 아니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 나는 반대로 임권택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대립의 과정을 발견한다. 무언가 가까이 다가간 다음 혹시 그것이 오류가 아니었을까, 라는 질문만큼 뒤로 물러난다. 여기에는 예술에서 오래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유로운 선택 안에는 이미 강제된 선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 이때 서정민 은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다시 그 자리에 왔는데 이미 한 것을 스스로 부수고 있는 것을 바라볼 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초대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임권택은 이 사이에 < 왕십리 >와 < 족보 >를 만들었다. 두 영화의 조건이 특별하게 좋은 것도 아니었으며, 임권택이 하려고만 했다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었다. <맨발의 눈길>은 그것을 하지 않은 영화이다. 나는 임권택을 위하여 일부러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맨발의 눈길>이 걸작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실패작이다. 하지만 이 실패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완전히 내부적인 폭발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맨발의 눈길>은 새마을영화도 아니고 반공영화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예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우수영화의 요건과 아무 상관 없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해 우수영화에 선정되었다) ‘고무신 부대를 불러오는’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와도 거리가 멀고, ‘노골적인 노출’을 염두에 둔 장면도 없다. (< 별들의 고향 >에서 시작해서 < 바보들의 행진 >에서 정점에 오른) 대학생 관객들을 향한 ‘영상시대’ 영화들과 합류할 생각도 없다. 말하자면 임권택에게 <맨발의 눈길>은 무언가 필사적인 이행의 과정이라는 자리에 있는 매개자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어쩌면 불가피한 교차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궁극적으로 실패를 목표로 한 영화라고 부르고 싶은 기획. 다소 위험을 무릎 쓰고 말하고 싶다. 세 번의 가정. 어쩌면 임권택은 더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 < 잡초 >를 부숴버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미 부숴버릴 수 없는 <잡초>를 부정하기 위하여 <맨발의 눈길>이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이 출현의 재귀성이 가리키는 것은 임권택 자신이 스스로 그때의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시켜 보인 다음 그걸 실패로 간주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은 아닐까. 고아원을 나서는 혜선 나는 이 괴이한 영화를 한 번 본 다음 망설이지 않고 즉시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임권택 은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찍었고 나는 같은 영화를 (그 자리에서) 두 번 보았다. 첫 쇼트는 ‘日新院’이라는 팻말을 보여준다. 한 소녀가 고아원을 나서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그녀와 함께 여기서 자란 것 같은 아이들과 원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배웅을 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너무나 기쁜 듯, 마치 이곳을 탈출하기라도 하듯, 어쩌면 감옥을 떠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밝은 미소로 가방 하나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다. 아마도 내내 거기서 자랐을 텐데 그렇게 한 치의 미련도 없을 수 있을까. 마치 뒤를 돌아보기라도 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오직 앞만 보고 간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기라도 하듯 뒤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과 원장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녀는 마침 기다렸다는 듯 도착한 버스를 타고 떠난다. 그런 다음에야 안심을 하듯이 맨 뒷자리에 잠시 뒤를 돌아보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다. 그렇게 떠나가는 그녀는 아마도 어제, 혹은 며칠 전, 아니면 방금 전 들었을 원장님의 목소리를(voice_over_narration) 듣는다. 이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슬그머니 지나가고 있지만 수상쩍은 것은 명백히 원장님의 목소리이며, 그 목소리는 떠나가는 혜선의 마음속에서 다시 불러낸 것인데, 그녀를 떠나보내는 사람들 틈에 서 있는 원장님에게 혜선도, 영화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이한 효과가 일어나는데 마치 원장님의 목소리는 고아원 그 자체의 목소리가 되어 그녀의 운명을 예언하는 신탁의 소리처럼 들린다. 좀 더 간단한 설명.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 .... “너의 실제 나이는 스물도 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마는 그야 어쨌든 우리 고아원에서 올린 호적상의 나이로는 만 십 팔세가 되었다. 규정에 따라 우리 고아원에서 제적되었고 혜선이 너는 이제 사회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란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하지가 않아요.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낸 너희들은 막연히 정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매사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아요. 그건 항상 실수의 원인이 되기도 하거니와 매우 위험한 일이야. 그 점 명심하고 열심히 살아라. 너의 앞길에 행운이 있길 빌겠다” 우리는 이 조언이 사실은 예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동시에 이 말은 반어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혜선은 앞으로 ‘정 때문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대부분의 일을 그르칠 것이며, 그 실수로 점점 위험해질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정에 충실해지면 질수록 점점 더 행운은 그녀 곁을 떠나가고 불행해질 것이다. < 맨발의 눈길 >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대사는 없다. 혜선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으며 다시 한 번을 반복할 때마다 원래의 자리보다 더 나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때 점점 더 사태를 나쁘게 만드는 정(情)을 준다, 는 행위에 대해서 임권택 은 마치 악을 대하는 것처럼 약간 몸서리치면서 바라본다는 사실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녀 앞에 누군가 나타나고 그러면 그녀는 그에게 반응한다. 이때 이 반응의 동사(動詞)를 정을 준다, 라고 정의내릴 때, 그렇게 나쁜 사태를 일원화시킬 때, 매번 다른 장면들을 그렇게 나쁜 하나로 해석할 때, 사회가 자신과 처음 접촉하는 텅 빈 형식의 출현을 파괴하는 하나의 원리로 귀납 시킬 때, 거기에는 임권택이 세상과 맺는 계약으로서의 정(情)에 대한 실망이 담겨있다. 나는 지금 이 사태를 단순하게 통속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구, 이별 이때 우리가 놓쳐서 안 되는 것은 혜선이 그 남자들을 만났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들이 혜선을 기다렸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혜선에게는 정(情)의 순환 속에서 단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순환에서 과잉하는 순간 발생하는 그 잉여의 처리에서 실패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나는 약간 반어적으로 사태를 뒤집어보고 싶다. 혜선은 왜 이 세 명의 남자를 반대의 순서로 만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안타깝지만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추락의 과정은 혜선이 고아원 원장님의 마지막 한 마디인 행운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수를 해야만 마지막에 행운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고아원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만나는 남자들의 요구를 잘 알고 자신이 그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한 능동적인 전술을 전개했다면 혜선은 그저 첫 번째 남자에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임권택 의 두 번 만들기에 호응하듯이 반복해서 두 번 보기. 맨 마지막 장면을 본 다음 다시 앞으로 돌아오면 첫 번째 남자인 명구와 행복(하지만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자리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 ‘이후’를 물어보고 싶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 안에서 명구는 자기 앞에 나타난 돈 많은 집의 딸이 청혼을 하자 (그 과정을 영화는 설명하지 않지만 하여튼...) 그는 혜선을 만나지 못한 한 달 사이에 마음을 바꾼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가능성을 추론해볼 수 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면, 그러니까 혜선의 뜻대로 명구와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그 결혼은 명구 앞에 다른 기회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매우 연약하게 맺어진 일시적인 정지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 첫 번째 실패가 단지 서둘러 온 것이라고 설명해볼 수는 없을까. 그런 다음 (약간의 시간을 건너뛰어) 혜선은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자리로 간다.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다. 고아원에서 처음 나왔을 때 그녀는 양장점에 의탁해서 살면서 그녀를 맡겨야 했다. 이제 그녀는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녀의 운명에 대한 스스로의 일보전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운명이 집행되는 과정에서의 방점의 이동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운명의 신비주의를 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집행되는 방식은 운명의 유물론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운명은 반복되지만 그 주인이 발 딛고 서 있는 토대에 의해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이다. 거기서 혜선은 운명에 맞선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하게 그 과정이 운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임권택 이 그 어느 한 편을 중심으로 영화 전체가 바뀌는 대신 이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 전체의 사이를 통해서 무언가 그의 세상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읽어내고 싶다. 물론 임권택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운명의 인과율에 대해서 항상 체념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운명은 동시에 혜선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지는 과정이라는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운명에게 아니요, 하고 말할 때 욕망에게는 좋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물론 그 둘은 화해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둘 다에게 동시에 충실해지는 방법을 택하는 기술을 익혀나가고 있는 중이다. 운명 안에서 자유롭게 살기. 그때 임권택은 그 자유가 대가를 치르는 대신 반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 내주어야 할 대가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는 단지 주체의 전복만이 아니라 좀 더 까다로운 변화가 담겨있다. 그때 표정을 찡그리게 되는 쪽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명이 자신을 수행하기 위해서 세상을 작동시키고 있는 자신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임권택은 그것이 주체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실수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논점이 남았다. 나는 잘못과 실수를 바꿔 쓴 것이 아니다. 그 둘은 서로 자리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임권택이 여전히 자유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이다. 희석, 첫만남 약간 장황하게 설명하겠다. 혜선은 거기서 “하던 사업을 말아먹고 그냥 마음 편하게 트럭운전이나 하면서 살겠다”는 희석을 손님으로 만난다. 그는 어느 모질게 비바람 치는 날 자신이 머무는 여인숙 앞에서 창문 바깥으로 비바람에 날아갈세라 한밤중에 포장마차의 포장과 혼자서 씨름하는 혜선을 보고 달려나가 도움을 주고 그날 밤 두 사람은 ‘정을 맺는다’ 혜선은 자신이 모은 돈을 털어 희석을 위해 트럭을 사고, 두 사람은 행복해진다. 만일 여기서 멈추었다면 이 이야기는 한 번의 비극과 다른 한 번의 행복을 통해서 실패와 보상이라는 방식으로 짝을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다시 한 번 운명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희석은 예정보다 집에 늦게 돌아오는 날 혜선으로부터 왜 늦었는지를 추궁당한다. 그는 부끄럽긴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오는 길에 한 여자를 태워줬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혜선은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잠든 희석을 깨우고 또 깨워가면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그쳐 묻는다. 여기서 이 시퀀스는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웠지만 어느 쇼트를 지나가면서부터 점점 기괴해지기 시작한다. 핵심은 혜선이 진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만한 진실을 얻는 것이다. 물론 그 지식은 희석이 길에서 태워준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고백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 지식을 고백받기 전까지 혜선의 추궁은 끝나지 않는다. 혹은 만족하지 않는다. 물론 그 고백을 알게 되는 순간 동시에 얻게 되는 것은 더 큰 의심이다. 어떤 의심? 이제 미래에도 그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심. 선수 친 의심. 그 고백의 지식은 즉각적으로 미래 시제가 된다. 희석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반복된 재촉에 지쳐 남은 진실을 모두 말한 다음 잠을 청한다. 하지만 지식의 활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트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희석 옆자리에 (마치 감시라도 하듯) 혜선이 사이좋게 앉아있다. 금실 좋은 부부처럼 사이좋은 대화를 나누던 혜선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길거리에 태운 그 여자 이야기를 다시 들려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희석은 그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 드느냐고 하지만 그녀는 심심하니까 그런다고 대수롭지 않게 덧붙이면서 다시 한 번을 재촉한다. 희석은 내키지 않으면서도 마치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것이 용서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 되기라도 하듯이 한 번 더 한다. 즉각적으로 이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명구로부터의 배신을 본 다음 두 번째 이야기를 보는 중이다. 혜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희석이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때 혜선의 행위는 사실상 희석에게 첫 번째 상황의 반복을 제발 한 번 더 해달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희석은 자신이 해 보지 않은 행위를 반복해야 하는 자리에 불려가는 중이다. 여기서 혜선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운명이 그녀를 이용하고 약탈하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해 (있지도 않은 환상에) 속는 중이다. 혜선이 희석의 이야기(의 지식이 불러일으키는 환상의 서사)를 견디지 못하자 마치 그에 대한 응답이라도 하듯이 한겨울 산속에서 트럭이 고장 난다. 두 사람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희석은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부속품을 사러 읍내로 사고 혜선은 여기에 남겨진다. 희석, 트럭의 고장, 혼자 남겨진 혜선 우선 이 결정이 바보 같다는 지적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한겨울 산속에서 히터도 틀 수 없는 고장 난 트럭과 함께 이미 저녁이 시작되고 있을 때 (영화에서처럼) 아내 혼자 여기에 남겨두고 부속품을 사러 가는 쪽과 차라리 (영화에서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트럭을 여기에 남겨두고 두 사람이 함께 읍내에 간 다음 혜선이 읍내에서 기다리며 희석이 트럭을 고쳐 읍내로 돌아오는 편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누구라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트럭은 고장이 났고 부속품은 산속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트럭을 여기에 놓아둔들 어둠이 다가오는 밤에 누가 가져갈 수 있겠는가. 혹은 트럭을 훔쳐갈 생각이라면 혜선 혼자서 그걸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희석은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다음 혜선을 남겨놓고 혼자 부속품을 구하러 간다. 마치 거기서 보이지 않는 방해의 손길이 나타나기라도 한 듯 부속품 가게의 주인은 어디론가 가게를 비웠고 점점 어둠이 다가온다. 완전히 어둠이 내린 다음에야 비로소 부속품을 구한 희석은 택시를 부를 도리가 없자 그 먼 길을 뛰어서 가야 한다. 이때 임권택 은 희석과 혜선을 번갈아 보여준다. (cross_cutting) 혜선은 어둠 속에서 무서워하기보다는 지금 이 시간에 희석이 자기를 버려두고 읍내에서 술집 여자와 벌거벗고 따뜻한 이불에서 뒹구는 환상에 사로 잡혀 괴로워한다. 세상은 짓궂게도 혜선이 좀 더 그녀 자신의 환상을 발전시킬 시간을 벌게 하기 위하여 어두운 산길을 달려가는 희석 앞에 자전거를 탄 경찰을 등장시킨 다음 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로 끌고 간다. 그때는 종종 산을 타고 간첩들이 남파된다는 이야기가 떠돌던 시절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포함시켜 주기 바란다. 나는 세상의 실수와 주체의 잘못을 대립시켰다. 당신은 내게 간단하게 반문을 제기하고 싶을 것이다.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은 채 지금 부속품을 구하기 위하여 추운 겨울날 온 동네를 돌아다닌 다음 어두운 산길을 달려오고 있는 희석을 의심하는 건 혜선의 잘못이 아닌가요? 물론이다. 하지만 당신은 요점을 놓쳤다. 핵심은 세상의 실수가 주체의 잘못에 항상 선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의 잘못은 여기서 세상의 실수에 대한 효과처럼 나타난다. 자신의 환상에 완전히 사로잡힌 혜선은 먼동이 틀 무렵인 새벽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트럭에 도착한 희석에게 더럽다, 고 몇 번이고 외치면서 개, 돼지, 늑대, 짐승이라고 부른다. 희석은 혜선의 비난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길거리에 희선을 버려두고 트럭을 끌고 혼자 떠난다. 이 행동은 정확하게 희석이 길거리에서 세워달라는 낯선 여자를 태워준 친절에 대한 정반대의 선택이다. 그는 이전에 길거리에서 낯선 여자를 태워주었고 이번에는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여자를 길거리에 버리고 떠난다. 혜선의 불길한 예감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세상의 실수와 주체의 잘못은 자신의 효과를 타자가 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혹은 주체는 서사에서 자기의 위치를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 남겨진 혜선은 희석이 떠나간 다음 약간의 시간을 길에서 보낸다. 그런 다음 임권택 은 다시 한 번 혜선과 희석을 번갈아 보여준다. (cross_cutting) 이때 이 둘 사이를 오가는 환상의 침입은 정반대로 진행된다. 이번에 환상에 시달리는 것은 희석이다. 혜선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여보, 를 외치며 눈길을 달려오지만 트럭은 떠난 다음이다. 그런데 희석은 바로 그 시간에 운전을 하면서 그런 혜선을 떠올리며 산골 비탈 눈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오던 길로 되돌아 가기 위해 운전대를 반대로 돌린다. 사태는 당신의 예감을 벗어나지 않는다. 뒤늦게 출발한 혜선은 마침 도착한 버스를 타고 간다. 사실 그녀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자꾸만 창문 바깥을 두리번거린다. 그리피스 이후 오래된 관습. 서로 다른 두개웰염獒옐瑛黔옘哉엔엽냈颱玖庸?오가기 시작할 때 그 둘 사이의 간격은 점점 좁아지고 또한 점점 빨라질 것이다. 하나의 목표. 하지만 이 방법에는 단지 둘 사이의 교차가 아니라 반드시 그사이를 연결하는 상상적 제3항이 끼어든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만일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그 무언가의 작용이 없다면 이 둘 사이의 연결은 사실상 무효화 되거나 혹은 (종종 코미디에서 허무하게 종결지어지는) 조롱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 제3항을 운명이라든가 혹은 영화 바깥의 관객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지 않는 것이다. 영화이론은 이 3항을 정의내리기 위해 긴 시간 논쟁을 했고 그 결과 어떤 식으로건 그 항을 개념화하는 순간 이데올로기적 시선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부르주아의 시선이고, 그건 가부장적 시선이고, 그건 서방세계의 시선이고, 그건 백인의 시선이고, 그건 등등... 으로 정의내리는 순간 즉각적으로 거기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놓여있음을 깨닫(고 그런 다음 무언가를 놓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물론 이 과정을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정식화시킨 것은 히치콕의 영화이다. 임권택이 따르는 것은 히치콕에서 에릭 로메르로 이어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다르다. 여기서는 이 빠른 속도의 결합이 상징적인 의미 안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 둘 사이의 결합 사이에는 오직 불가사의한 인과관계의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혜선이 산골길 굽은 도로 사이로 접어들었을 때 저 멀리서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저 아래 비탈에는 굴러떨어진 트럭이 불타고 있다. 버스에서 달려간 혜선 앞에 이미 죽은 희석이 차가운 땅바닥 위에 누워있다. 경찰이 목격자를 찾자 누군가 대답한다. “이 미끄러운 길을 좀 과하다 싶은 속도로 달려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꺾데요” “아니, 이 좁은 길목에서요?” “네, 다시 돌아갈 일이 생겼던 모양이에요. 아무튼 신통하게도 잘 돌아섰는가 싶었는데 뒷바퀴가 빙판에 쭈욱 밀리는 거예요, 그리고 처박혔죠. 아마도 다섯 번은 더 굴렀을 겁니다. 아무리 돌아갈 길이 급하기로 이렇게 성질 급한 운전수는 처음 보았습니다” 이때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한편으로 혜선을 꾸짖는 것만 같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끝내 알 수가 없다. (voice_off_frame) 왜냐하면 내내 화면은 희석의 시체 앞에서 무릎 꿇고 울고 있는 혜선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장면이 고아원에서 혜선이 떠날 때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원장님의 말씀의 연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매번 나타나는 목소리. 잘 알고 있는 목소리.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목소리. 이때 혜선의 운명에 대한 지식은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돌아갈 일. 다시 돌아갈 일. 우리는 그 일이 무슨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찡그림에 의해 희석은 혜선에게 도착하지 못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가 도착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 메시지를 도착 시킨다. 맞아요, 당신의 뜻은 이제 실현되었어요. 혜선은 실패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녀의 정을 돌려받는다. 두 번째 남자 희석이 혜선에게 알려준 것은 실수의 원인이 정을 받은 타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을 주는 그 과정의 과잉에 있다는 것이다. 마치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말.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낸 너희들은 막연히 정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매사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아요. 그건 항상 실수의 원인이 되기도 하거니와 매우 위험한 일이야” 세 번째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와의 사이에 놓인 간주곡을 먼저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죽은 희석이 묘 앞에 한복을 차려입은 혜선이 찾아와 임신한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자신은 이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거듭 다짐을 한다. 그런 다음 갑자기 마치 다른 분위기, 다른 리듬. 다른 톤, 다른 영화처럼 장면이 옮겨간다. 좁은 골목에 차들이 줄을 이어 들어서고 다시 장면을 옮기면 혜선은 근수와 결혼식을 올리는 중이다. 근수는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 데다가, 신부의 복장을 한 혜선을 보는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좀 전에 그 임신한 아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녀는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좀 더 정확하게 두 이야기 사이에 끼어든 아이는 이제부터 어떻게 작동할까. 세 번째 이야기는 앞선 두 이야기와 달리 단 하루 동안 일어난다. 그 사이에 세월이 흘렀고 혜선은 아이를 낳은 다음 술집에 나간다. 아이는 자라 소년이 되었다. 하지만 불치의 병에 걸렸고 혜선에게는 수술비용이 없다. 그녀의 계획은 자기의 신분을 속이고 위장결혼을 해서 남자와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돈을 훔친 다음 도망쳐서 그 돈을 들고 아들 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선 그녀의 계획이 지닌 세 가지 불합리한 점. 첫째, 신혼여행을 떠난 다음 남자에게서 돈을 훔쳐 돌아온다고 하지만 그 남자가 큰돈을 갖고 신혼여행을 떠날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을까. 물론 그때는 카드가 없었고 사람들은 현금을 가지고 다녔지만 근수는 마치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지나치게 큰돈을 가방에 넣어 들고 신혼여행을 떠난다. 둘째, 결혼식을 올리는데 고아인 혜선은 어떻게 상대방의 가족 전체를 속일 수 있었을까. 잘 알다시피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긴 과정이 필요하다. 양가의 부모가 인사를 해야 하고 서로의 혼수를 주고받아야 한다. 신랑은 단 한 번도 신부의 집에 인사를 드리지 않고 부모를 만나지도 않은 채 결혼식에 이르는 것이 가능할까. 그보다 먼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는 과정에서 아픈 소년은 돈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병실에서 내내 기다려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처럼 이 세 번째 이야기는 결혼식 하는 날에서 시작한다. 세 번째 이상한 점은 이야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 병원에서는 이제 더 이상 수술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아들을 퇴원시키라고 종용한다. 이미 실패한 수술. 사실상 혜선의 노력은 무의미한 시도이다. 근수, 결혼식 여기서 세 번째 이야기가 이제까지 이야기와 다른 것은 결혼하는 근수에게 혜선은 어떤 정도 줄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녀의 목표는 근수를 속여 돈을 훔친 다음 재빨리 현장에서 떠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앞의 두 이야기가 혜선에게 준 교훈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이미 두 개의 서로 다른 교훈에 대해서 셈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혜선이 정을 주는 행위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병석에 누운 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다만 혜선이 정을 주는 대상이 이야기의 외곽으로 옮겨졌으며 그 중심은 그녀에게 정을 주는 대상을 속이려는 행위에로 변주된다. 이때 혜선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그녀 자신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만나는 상대방이 점점 나이가 많아지면서 자신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요점은 좀 더 분명해진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다소 논쟁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처녀로서 정을 주는 행위에 대한 실패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아내로서 정을 주는 행위의 실패라면, 세 번째 이야기는 어머니로서 정을 주는 행위의 실패에 대한 내기이다. 이때 (세상 안에서의) 반복적인 실패 속에서 변치 않는 것은 혜선이 (주체의 자발적인 선택인 것처럼) 반복적으로 정을 주는 행위이다. 마치 그녀는 이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인 것처럼 지치지 않고 되풀이한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그 행위를 반복하는 데서 오는 바보 같은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조금도 협조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임권택 은 여기서 기묘한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어떤 장면에서도 혜선의 심리적 상태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 대신 오로지 그녀의 동선만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실상 여기서는 혜선의 심리적인 동요를 제외하면 고요한 표면만을 가진 상황이다. 그런데 임권택은 혜선을 통해서 그 표면을 휘저어 놓는다. 혜선의 동선은 이 세 번째 이야기 안에서 다른 인물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 동선의 디테일은 다음과 같다. 혜선은 이날 하루 분주하게 두 세계 사이를 오가야 한다. 하나는 물론 근수와 올리는 결혼식과 이어지는 신혼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수시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죽어가는 아들의 병세를 물어보아야 한다. 그때마다 병원에서 아들을 돌보면서 전화를 받는 (혜선을 언니라 부르는) 여자는 자기가 내내 여기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면서 지금이라도 병실을 떠나야 한다고 통보한다. 혜선은 한편으로 그녀를 설득해야 하고 또 한 편으로 이제는 아들을 데리고 퇴원하라는 의사에게 다시 한 번만 더 수술을 해달라고 간청한다. 더 힘겨운 것은 자신의 그런 처지를 숨겨야하는 상황에서 기회가 올 때마다 막 결혼한 근수 몰래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신혼여행 온 근수는 당연히도 혜선 곁에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며, 혜선은 언제라도 돈이 든 그 가방을 들고 여기를 빨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그 눈길을 피하려고 애를 쓴다. 이때 그녀가 알지 못하는 것은 지금 자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단 하나, 그녀가 돈이 든 가방을 훔쳐야 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그녀는 이미 결혼했고, 게다가 결혼한 상대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혜선이 그렇게 원하는 삶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빨리 도망쳐야만 한다. 임권택 이 하려는 고통스러운 게임은 무엇인가. 그건 혜선을 끝까지 몰고 가 보는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때로 던져진 상황에서 포기하는 법 없이 끝까지 가면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는지를 보려고 할 때가 있다. 대부분 다른 영화에서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며 결국 거기서 어떤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다음 마치 그것이 해결인 것처럼 물러난다. 임권택도 피하지 않고 물론 그 지점까지 간다. 이상해지는 것은 거의 반드시라고 할 만큼 그 지점까지 온 다음 멈추지 않고 거기를 지나쳐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임권택이 문득 거기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할 때 눈물을 흘리다 말고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고통스럽게 바라보거나 기괴하게 쳐다보게 된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혜선이 두 번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운명에 굴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그 상황을 밀고 나아가기 시작하자 갑자기 그녀를 움켜쥐고 있는 (원장님의 예언에 가까운) 말씀의 네트워크를 찢고 스스로 능동적인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녀의 선택은 바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행위 안에서 단지 한계를 보는 대신 그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혜선의 능동적인 자율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혜선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멈춘 다음 죽은 희석의 묘지 앞에서 다짐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단지 그녀를 덮어씌운 말씀의 실현만을 우리는 보았을 것이다. 물론 거기서 끝나면 말씀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갑자기 영화의 톤과 리듬이 변했다는 것을 함께 주목해주기 바란다. 임권택은 여기서 앞선 두 개의 이야기에 마치 영화 자체가 저항하기라도 하듯이 진행하기 시작한다. 아들의 죽음 물론 이번에도 혜선의 노력은 좌절로 끝난다. 그녀는 근수의 돈 가방을 훔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그 돈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용서해준다면) 마침 때맞춰 죽은 아들의 시신이 실려 있는 바퀴 달린 침대의 이동이다. 사라져 가는 아들. 그녀의 하루는 실패로 끝난다. 이제 그 돈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 혜선은 그걸 돌려주기 위해 근수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자백하듯이 고백한다. 당신은 이번에도 결국 희석과 같은 결론을 맺은 것이 아니냐고 내게 반문할지 모른다. 얼핏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임권택 은 몹시 잔인한 방법으로 혜선에게 그녀가 진정 도착해야 할 욕망의 대상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혜선은 그녀의 아들을 잃었다. 하지만 그렇게 박탈하면서 그녀에게 안겨주는 선물이 있다. 그것은 물론 근수이다. 이 이야기의 가느다란 끈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혜선이 고아원에서 나왔을 때 그녀가 정을 주고 빠져드는 사람은 세상에 나와 우연히 만난 남자가 아니라 고아원에서 함께 큰 명구이다. 명구의 무언가가 혜선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같은 고아원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정을 끌어낸다. 그러므로 혜선이 한 행동은 고아원에서 이미 한 행동이 왜 사회에서는 반복할 수 없느냐는 반문과 마주친 것이다. 혜선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 공사장에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인부들이 와서 점심을 먹을 때 그 많은 사내들의 입맛을 잘 알고 척척 알아서 주문을 해준다. 한 사내가 “마누라 행세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라고 농을 걸자 서슴없이 “하루에 두 끼씩 걷어 먹이면 그게 첫째 마누라지”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이때 희석은 그 자리에 없다. 그는 여기 공사장까지 흘러들어온 다음 혼자서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석은 혜선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바라보다가 별안간 손을 잡아보고는 “얼핏 보면 아줌마 같기도 하고 처녀 같기도 하고” 가 전부이다. 그 말이 별말이 아닌 것이 그날 밤 술집에 가서 작부를 옆에 앉혀놓고 오늘 밤을 같이 보내자고 한 다음 초면에 이러면 안 되시죠, 라는 대꾸에 “자네하고 나하고는 전생에 인연이 있는 것 같아”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날 밤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소리에 깬 희석은 포장마차가 바람에 날아갈세라 달려 나온 혜선을 본다. 그런 다음 그 둘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다. 희석이 혜선과 ‘정을 통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대사는 “내가 좋아하면 여자가 도망가고 내가 좋다고 안 도망가면 여자가 도망가고” 라고 한 다음 잠시 그녀를 바라본 다음 “당신과 같은 여자를 만났으면 좋은 가정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소”라는 제안이었다. 이때 포장마차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고 고작해야 성냥으로 켠 촛불 하나가 전부이다. 혜선은 희석에게 끌렸다기보다 차라리 그 한 마디에 이끌린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은 혜선이 명구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목소리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여기에는 같은 내용의 대안적 대상이라는 미끼가 있다. 그렇게 해서 혜선은 다시 원래 자리에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치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혜선이 희석과 ‘정을 통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비바람 치는 밤 포장마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나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반주처럼 흘러나온다. 아마도 예민한 관객들은 알아차릴 것이다. 이 음악은 혜선이 명구와 데이트를 할 때 흘러나오던 선율이었다. 이제 세 번째 이야기가 되었을 때 두 번째 이야기에서 넘어온 것은 물론 희석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들이다. 그녀는 아들을 구하는 것이 자기가 해야 할 임무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반대로 지금 그녀에게는 남겨진 아들만이 그녀의 삶의 장애물처럼 작동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몹시 잔인한 표현이라는 것을 이미 사과했다. 게다가 임권택은 그 아들을 더 이상 살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혜선의 현재의 삶에서 그녀에게 남겨진 아들의 존재만이 마치 잉여처럼 그렇게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 이야기는 이미 시작할 때마다 결론이 나 있다. 아들은 죽을 것이고 그녀의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녀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세 번째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목소리의 교환 이때 오직 이 세 번째 이야기에서만 혜선과 그 상대방은 서로의 목소리를 교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외부의 목소리에서 벗어나서 혜선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혜선은 아들의 죽음을 본 다음 돌아와 근수에게 이 모든 과정에 대해서 자백을 하듯이 이야기한다. 이때 처음으로 혜선은 상대방으로부터 구체적인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물론 근수의 목소리이다. 그는 혜선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마치 대칭을 이루기라도 하듯이 참회에 가까운 고백을 한다. 먼저 자신이 혜선의 이제까지의 위장된 행동을 모두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근수는 자신을 고아라고 속이고 부잣집 양아들로 입양되었지만 사실은 시골에 자신의 어머니가 살고 있으며 그분의 유일한 소망은 며느리를 데려오는 것인데 당신이 괜찮다면 거기에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혜선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제안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청혼인지는 분명치 않다. 눈이 덮인 시골 길이 보이고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라기보다는 중단된다. 만일 여기서 해피엔딩을 보면 당신은 < 맨발의 눈길 >을 처음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임권택 이 하려는 노력은 초자아의 명령으로부터 자신의 윤리적 선택에로 혜선을 되돌려 놓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이 영화는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 때로 그 선택은 위태롭게 보이고 가냘파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내려진 가장 중요한 명령을 거절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자유로운 행위란 결국 무엇인가. 아마 임권택이 서정민 과 함께 만든 < 잡초 >에서 했었던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을 때 그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라는 도약을 시도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임권택의 영화는 이 자유의 밤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창씨개명에 반대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름을 지키고자 자살을 선택하는 수원 설 씨 노인의 이야기(< 족보 >),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평생에 걸쳐 산에서 자신이 놓친 공비를 찾아 허송세월하는 한 사내의 이야기(< 짝코 >), 오로지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 용맹전진하는 승려의 만행 길(< 만다라 >). 임권택은 자기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세상이 자신에게 내린 명령을 거절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 길을 임권택은 서정민과 함께 시작했지만 그와 함께 밀고 나아가지 않았다. 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화 현장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단지 그것을 예술적인 이유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잣이다. 하지만 <맨발의 눈길>에서 보여준 몇몇 순간들, 특히 그중에서도 희석이 굴러떨어진 낭떠러지 가까이 다가가는 버스 안에서 그 절벽을 바라보는 혜선의 시선 앞에 놓인 그 짧지만 신비로울 정도로 정교한 리듬으로 다가오는 풍경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스산한 이미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예술에서 가지 않은 길을 탄식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나는 지금 바보 같은 일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서정민 촬영감독님을 생각하면 그건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가정이다. 부디 편히 잠드시길. (계속)
반복한다는 것.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찍는다는 문제는 한국영화에서 종종 제기되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김기영 . < 하녀 >를 1960년에 찍은 다음 거의 같은 이야기로 1971년에 < 화녀 >를 칼라 버전으로 찍었다. 그런 다음 약간의 변형을 가한 < 충녀 >를 이듬해에 만들었고 십년 뒤에 다시 < 화녀 82 >를 찍었다. 마치 하녀 역을 연기할 새로운 여자 배우가 나타나기만 하면 김기영은 언제든지 다시 찍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김기영은 이 영화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영화사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세기가 바뀐 다음 같으면서 다른 버전으로 임상수 가 2010년에 다시 < 하녀 >를 찍었다. 이만희 가 1966년 < 만추 >를 만든 다음 김기영은 같은 시나리오로 < 육체의 약속 >을 1975년에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로 다시 김수용이 < 만추 >를 1981년에 찍었다. 무대를 미국의 시애틀로 옮긴 다음 김 태용 은 전면적인 개작을 해서 다시 < 만추 >를 2010년에 찍었다. 나는 지금 단순하게 리메이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그 이야기가 먼저 있고 영화가 거기에 다가갔다는 전도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 영화들을 무언가의 중심 안으로 환원시키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들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우리들은 거기서 매번 다시 시작하는 순간을 낚아채야 한다. 그런 다음 사라져 가버린 것들을 놓치면 안 된다. 그것들이야말로 서로 흩어진 이야기들이 그 스스로 차별 지어져 존재하게 만드는 진정한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그 이야기들 사이의 매듭을 찾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운동을 모두 발견했을 때에만 비로소 따분한 반복과 사소한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논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 망부석 >과 < 십년세도 > 오프닝타이틀 임권택 의 < 십년세도 >는 같은 반복 안에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일 년 전에 임권택은 같은 회사인 세기흥업에서 < 망부석 >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이 영화에 대해서 썼다) 그런 다음 이듬해 <십년세도>를 찍었다.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보면 조선시대에 관한 다소 이상한 연표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두 영화는 서로 비스듬히 겹쳐 있으면서 동시에 같은 이야기에 대해서 서로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 어떤 것이 되돌아온다는 문제. 그 안에서 무엇을 망각하고 무엇을 남겨놓아야 할까. 간신히 끝냈다고 생각한 이야기의 어느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 느끼는 망연자실함. 거기에 마치 어떤 진실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되돌아왔음을 발견했을 때 거기서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여기서 임권택은 이미 지나가 버린 자기 영화에 대해서 마치 지금 다르게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한 방법으로 다시 한번 시작하고 있다. 후렴구처럼 반복하고 싶은 말. 다시 한 번 다르게. 임권택은 숙종에서 장희빈을 거쳐(< 요화 장희빈 >) 경종에서 영조로 이어진 다음 사도세자의 뒤주에서의 죽음을 둘러싼 비화(<망부석>)를 거쳐 그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인 22대 왕 정조의 즉위와 그의 정치적 투쟁에 관한 이야기(<십년세도>)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여기서 조선왕조실록의 고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는 일이다. 또한 사‘劇’영화에서 관점에 따라 비평적인 질문과 전술적으로 필요한 대답을 위하여 그 이면과 표면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영화에서는 역사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먼저 환기시키고 싶다. < 망부석 >에서 영조 살아생전 그의 아들 사도세자는 화완옹주와 그 무리들의 음모에 빠지고 그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일시적으로 중단된 다음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인 정조가 아직 즉위를 하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이후로 건너뛴다. 그런 다음 정조는 여전히 화완옹주의 독살 음모 속에서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인) 정조를 사모하는 여인 꽃봉이의 목숨을 건 희생으로 위기를 벗어나서 왕위에 즉위한 다음 이야기는 끝난다. 여기서 실록에도 등재된 정조의 충신이었던 홍국영(1748년~1781년)은 그저 꽃봉이가 화완옹주의 요구로 독약을 들고 정조의 처소를 찾았을 때 그 음모를 밝히는 인물로 잠시 등장한 다음 사라진다. 그는 완전히 이야기 외곽에 놓여있으며 주의 깊게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 십년세도 >의 주인공은 홍국영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의 아버지 홍성원이 국경수비 대장이자 당시 영조의 신임을 받던 간신 장지항의 음모에 빠져 참수를 당한 다음 간신의 아들이라 하여 과거도 보지 못한 채 저잣거리를 떠도는 홍국영에게서 시작한다. 허나 그의 어머니로부터 큰 꾸지람을 듣고 더 이상 허송세월을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홍국영은 음모를 꾸며 자격을 취득한 이후 장원급제한다. 이미 사도세자는 세상을 떠난 뒤이며 영조는 아직 살아있고 정조는 지금도 화안옹주의 위협적인 음모와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 망부석 >에서 정조를 연기하는 김운하 < 십년세도 >에서 정조를 연기하는 이수련 < 십년세도 >에서 영수를 연기하는 김운하 우선 역할(들) 사이의 반복과 차이. 두 영화 모두에 반복해서 나오는 정조를 한번은 김운하 가 연기하고(< 망부석 >) 다른 한번은 이수련이 한다. (< 십년세도 >) 하지만 임금을 연기했던 김운하가 이번에는 가장 밑바닥의 상놈을 연기하면서 (<망부석>에서) 자신을 모셨던 홍국영에게 (<십년세도>) 그의 누이를 사랑했다는 죄로 고문을 당하고 제주도로 유배를 당한다. 두 영화 사이의 차이는 고작 일 년이기 때문에 이런 배역 사이의 교환이 기이한 착각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영조는 최남현 에서 김동원 으로 바뀌었고, 또한 화완옹주도 도금봉 에서 이민자 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국영 역을 신영균 으로 바꾸었다. (<망부석>에서 홍국영 역을 한 배우의 이름은 자료에 나와 있지 않다) 나는 볼 때마다 두 영화에서 만일 동일한 배우들이 동일한 배역을 연기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라는 불가능한 상상을 하곤 한다. 두 영화의 차이는 단지 정조로부터 홍국영에로, 임금에서 신하에로, 위에서 아래로 관점을 이동한 데서 멈추지 않는다. <망부석>이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정조가 어른이 된 다음 임금의 자리에 즉위하는 데까지를 다루었다면 <십년세도>는 어른이 된 정조가 영조의 신임을 얻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다음 영조의 가신들(이자 간신들)을 모두 물리치고 진정한 왕위를 수립하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망부석>이 시작된 다음 그 중간에 이르렀을 때 <십년세도>는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나 두 영화 사이의 시간적 간극은 고작해야 일 년에 불과하다. < 십년세도 >의 독살 시도 두 영화 사이의 동일한 에피소드에 대한 다른 장면. < 망부석 >에서 화완옹주는 정조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 다음 그의 처소에 드나들 수 있는 꽃봉이에게 독약을 탄 보약을 들려 보낸다. 하지만 꽃봉이는 그 보약을 사도세자가 죽은 다음 망부석이 세워진 곳에 감춰놓고 그냥 빈손으로 찾아가 정조를 마지막으로 만난다. 물론 그다음 장면은 대신 꽃봉이가 독약을 탄 보약을 마시고 죽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 십년세도 >에서도 화완옹주는 정조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옹주의 가신 중의 한 명이 독약을 품에 넣은 다음 정조의 처소에 몰래 찾아가 그가 늘 즐겨 마시던 술이 담겨있는 호로병에 털어 넣는다. 바로 그 순간 처소에 들른 홍국영은 한눈에 음모를 간파하고 그를 그 자리에서 붙잡은 다음 화완옹주 일파를 척결하기에 이른다. 물론 두 장면을 동일한 에피소드로 보는 대신 동일한 방법을 두 번 사용한 서로 다른 장면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두 개의 장면을 놓고 진위를 가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내 관심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망부석>에서 꽃봉이는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그녀가 아니라면 실존했던 인물인 화완옹주의 음모를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서는 가상으로 실재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이 영화의 후반부는 꽃봉이의 심리적인 정념에로 옮겨간다. 만일 잠시 동안 등장한 사도세자를 (이제 막 청춘‘스타’가 된) 신성일 이 연기하기 때문에 필요했으리라는 상업적인 배려의 짐작이 아니라면 이 영화의 (전반부의) 절반은 다소 어리둥절하게 보인다. 우리는 영화의 대중성에서 스타의 거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신성일이 연기하는 사도세자는 영조에게 뒤주에서 죽임을 당한 이후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플래시백이 없다. 그런 다음 갑자기 시간을 건너뛰어 정조 주변에서 꽃봉이의 덧없는 사랑의 정념이 어떻게 궁궐 안의 권력 다툼에 착취당하고 교활한 전술에 강요당하는지를 애처롭게 지켜본 다음 그 과정에서 그녀 자신이 내려야 하는 행위의 결정이라는 순간과 마주쳤을 때 결국에는 해야 하는 행동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무능하게 쳐다보게 된다. 이 장면은 <망부석>의 이야기 중심에 놓여있으며 사실상 이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이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며 이 장면을 구심력으로 하여 다른 장면들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이 장면에서 꽃봉이의 행동이 자살에로 이끌리기 때문에 시종일관 거의 모든 제스처,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 무심한 정조에게 바치는 대사의 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음악이 비극의 정조에 휩싸여있다. 마치 그러한 기호들은 그녀를 옭아매는 운명의 사슬처럼 보일 정도이다. 임권택 은 이 장면에서 씬들을 할 수 있는 한 길게 늘여놓고 있다. 그런 다음 자살의 장면을 향해서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들은 꽃봉이를 따라가면서 그녀의 삶에 관한 작은 희망의 기호를 찾아내기 위해 예민해진다. 하지만 물론 그 과정은 좌절의 심화에 다름 아니다. <십년세도>에서 동일한 에피소드는 홍국영의 지혜롭고 영민하며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정조의 처소 안에서 벌어진 현장에서 행위에로 즉각 옮겨가면서 화완옹주의 음모를 막아낼 뿐만 아니라 이를 기회로 삼아 그들을 일거에 섬멸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이런 사건이 정말 있었는지, 그래서 이를 기회로 삼아 화완옹주 일파에게 그 죄를 물어 멸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비교적 단순하게 찍혔고, 그런 다음 이 사건은 영화 안에서 두 번 다시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둘 사이의 차이는 자명해 보인다. <십년세도>는 홍국영의 영웅적인 행위를 위한 사건으로 다루어지지만 <망부석>은 꽃봉이의 비극적인 선택으로 인한 자살에로 이끌린다. 둘 다 국면의 전환을 가져오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던 주인공의 운명에는 정반대의 결과로 다가온다. 나는 그 결과에 대해서 좌절한 운명의 실패인지 아니면 반대로 성공적인 기회를 만든 사건인지, 라는 방식으로 그 둘을 나누고 싶지 않다. 두 편의 영화를 일 년 사이에 연달아 찍은 임권택 이 두 개의 장면이 같은 에피소드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마치 임권택은 < 망부석 >을 찍은 적이 없다는 듯이 < 십년세도 >를 찍었다. 하나의 사건. 두 개의 장면. 서로 다른 배치. 이 둘 사이에는 좀 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바보 같은 설명도 가능하다. 세기흥업은 <망부석>의 흥행에 성공했고 그들은 같은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찍고 싶었으며 그래서 주인공을 달리하여 이번에는 스타 신영균을 주연으로 하여 만들자고 임권택에게 제안해서 <십년세도>를 찍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게 사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극은 돈이 많이 들고 성공적인 흥행은 그것을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손쉽게 반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을 했을 것이다. 그 둘은 같은 이야기이고 그러므로 같은 에피소드를 다룬 장면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산업적 설명이다. 좋다. 하지만 우리는 좀 다른 관점에로 옮겨서 질문을 더 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임권택의 난처한 곤경이 숨어있다. 임권택은 에피소드를 반복하고 있지만 의미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때 이것을 인물(들) 사이에 놓인 구성의 차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하기에는 다소 까다로운 반문이 기다리고 있다. 반복이 다른 반복의 깊이를 가져오는 대신 반복 안에서 잠재적인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섰을 때, 그래서 그 반복으로 하여금 동일한 시대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을 때, 그로 인해 세계의 정념이 바뀌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태인 것일까. (적어도 1964년의) 임권택에게 세계는 주어진 것이어서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삶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질서가 아니라 관점에 따라 주관적인 이동을 통해 재구성되는 일종의 원근법적 도착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마치 여기에는 두 개의 조선시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두 개의 정조에 관한 기록이 있다. 내 질문의 시작은 여기에 있다. 임권택은 세계 안에 살고 있다기보다는 나와 세계 사이의 매개의 문제라는 방식으로 이 질문에 접근한다. 물론 <십년세도>가 이 문제에 정교하게 대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망부석>과 <십년세도>가 기괴할 정도로 동일한 구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두 편의 공통점은 단지 정조를 다루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정조를 다룬 영화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준익 이 송강호 를 주연으로 ‘아마도’ 정확하게 같은 시기, 영조에서 정조에로 왕권이 이행되는 과정을 다룬 < 사도 >를 찍고 있다. 방송드라마를 포함하면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다. 내 말은 대중들에게 영조와 정조의 이야기는 조선왕조사에서 매우 친숙하다는 뜻이다) 두 편의 영화가 절반을 진행한 다음 갑자기 중단되고 나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망부석>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은 다음 갑자기 십 년 세월을 건너뛴 다음 마치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영화가 시작한다. 두 번의 시작. 영화의 시작 영화의 절반 대목 그런데 더 이상한 쪽은 < 십년세도 >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 망부석 >이 절반을 나눈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 나는 이미 두 영화가 비스듬히 겹쳐있다고 말했다. 물론 방점이 홍국영에게 놓여있기 때문에 그가 궁궐에 들어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다룬 이야기가 앞에 놓여있지만 이미 사도세자는 죽은 지 한참 전이고 정조는 혜경궁 홍씨와 함께 궁궐 바깥으로 내쳐졌다가 다시 영조의 부름으로 들어온 그 시기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 다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단 한 번 홍국영의 어린 시절로 불현듯 되돌아간 장면(flash_back)에서 어린 홍국영은 아버지 홍성원이 간신으로 몰려 참수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홍국영의 아버지는 홍성원이 아니라 홍낙춘이며 그는 간신으로 몰리지도 않았으며 참수를 당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 장면은 누구라도 어린 정조가 영조의 명에 의해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장면과 어떤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어린 정조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장면이 준 충격이 홍국영에게도 동일한 충격의 외상으로 남아있으며 (실재적 아버지의 죽음?) 그들은 동일한 오이디푸스적 결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친화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의 아버지들은 동일하게 영조의 명에 따라 죽임을 당했으며 동시에 그들은 영조에 의해 그들 각자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임권택 은 재빨리 어른 홍국영에로 돌아온 다음 그가 과거를 보고 장원급제하여 정조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는 장면에로 넘어간다. 그리고 화완옹주의 독살음모를 밝혀내고 그들 일파를 모두 멸한 다음 정조를 안전하게 왕위에 즉위시킨다. <망부석>은 여기서 끝난다. 그런데 <십년세도>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마치 여기서 일부가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시작한 지 48분이 되는 대목에서) 이야기를 중단시킨 다음 다시 시작한다. 그걸 마치 알리기라도 하듯이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온다. 무효가 되어버린 절반. 이 반복은 몹시 불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십년세도>의 시작 장면은 지금 임금인 영조가 치세를 잘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탐관오리들에게 수탈 당하는 모습을 연달아 이어지는 쇼트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봉건체제에서 할 수 있는 가능한 해결은 다음 임금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기대가 <망부석>의 마지막 장면에 담겨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중간에서 동일하게 다시 반복할 때 그것은 단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정조의 치세가 실패했음을 설명하는 것이 된다. 영조를 정조 위에 겹쳐놓기. 여기서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기술적으로만 말하면 순간적으로 마치 앞에 이미 본 쇼트들이 무언가 잘못 편집되어서 다시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반복되는 동일한 장면들. 이때 <망부석>에서 외관상 보이는 해피엔딩은 사실상 그 ‘이후’의 지루하게 되풀이되는 실패에 대한 즐거운 위장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십년세도>는 정확하게 <망부석>의 그 자리를 겨냥한다. 그래서 <십년세도>는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기보다는 마치 이미 한 이야기의 오류를 수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역사의 반복에 대한 우울한 악순환의 반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회귀의 필연성. 한없는 반복. 그러므로 나쁜 시간은 되돌아온다. 임권택은 부지불식간에 역사에서 결정적인 한 번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을 하고 만다. 결정적인 한 번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사회에 대한 단절.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로의 도약.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임권택은 영화에서 단 한 번도 그런 희망에 이끌려본 적이 없다. 봉희와 영수 홍국영 둘째, 내가 말하려는 핵심은 여기서 좀 더 밀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 절반에 이르기까지 두 영화의 차이는 하나가 완전히 비극으로 이끌리는 데 반해서 다른 하나는 영웅적인 승리에로 이끌린다는 것이다. 그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정감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사건 속에서 서로 정반대의 인물에 의해 그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역사의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허구적인 인물과 실존했던 인물. 멜로드라마와 전기. 그런데 이 절반을 나누는 시퀀스를 보여준 다음 홍국영은 이제까지 자신이 어떤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행동했던 것과 반대로 마치 자신의 자리에서 가졌던 이상이 강요된 선택이었던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물론 명분은 탐관오리들의 배후세력이자 사리사욕에 눈이 먼 수비대장 장지항이 선왕의 신임을 받고 유언에 따라 정조가 그의 부정을 우유부단하게 눈 감는 것에 대신하여 그 스스로 엄벌을 내리기 위해 세력을 확장하고 왕권을 배후에 얻을 수 있는 권력을 얻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그 순간 그의 정의는 권력의 네트워크 안에서 정치적 게임이 된다. 여기에는 동일한 주체가 겪어야 하는 분열의 고통이 뒤따라온다. 정의의 주체는 자신이 세계와 거리를 유지할 때에는 투명해 보이지만 일단 세계 안으로 끼어들어 가서 갑자기 결정에 관한 선택을 하는 순간 선택이 정의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이때 정의는 그 개념과 목표 아이에서 그 둘이 서로 자기의 편에 두기 위해 잡아당기면서 찢겨져 나가기 시작한다. 홍국영은 결정적인 시험에 든다. 그는 내빈과 금슬의 정을 나누지 못하는 정조에게 자신의 여동생 홍봉희를 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홍봉희는 오빠의 결정에 격렬하게 저항한다. 왜냐하면 아직 그의 오빠가 과거 급제하기 전 몰락한 가문의 과년한 처녀로 지내던 시절 영수와 정분을 나누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적 서사의 되풀이. 오래된 궁정연애의 장치들. 하지만 임권택 은 여기서 이상한 내기를 시작한다. 몰락했다곤 하지만 홍봉희는 양반 가문의 자식이었고 영수는 상놈 출신이어서 그의 아버지는 엄중한 목소리로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충고한다. 이 장면은 영화 앞부분에 놓여있어서 이미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홍국영이 과거 급제했을 때 영수는 그녀의 집을 찾아와 절망적인 목소리로 오빠의 소식을 알려준다. 홍봉희가 오빠 홍국영을 따라 입궐한 다음 그리움에 지친 영수는 담장을 넘어 홍봉희를 찾아와 그녀에게 사람들이 모르는 곳으로 함께 떠나자고 조른다. 이 말은 예전 홍봉희가 영수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 둘은 급히 짐을 꾸리지만 우연하게 내당을 지나던 집사의 눈에 띄고 만다. 홍국영은 한걸음에 내달려 그 자리에서 영수를 포박한 다음 무자비하게 매질을 하면서 이는 나라의 법에 따른 것이며 죽어도 할 말이 없을 것, 이라고 울며 매달리는 여동생 홍봉희에게 매정하게 대꾸한다. 여기까지는 이미 예정된 이야기의 수순을 따라간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들은 단지 이것을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비애를 한껏 과장하고자 이용하였다. 그러므로 이 수순은 < 십년세도 >가 오히려 다른 사극의 유형을 그대로 베끼듯이 뒤따라가는 것이다. 이제 서로 길이 갈라지는 것은 홍봉희의 선택에 달려있게 된다. 여기서 홍봉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빠의 뜻을 따를 테니 영수를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거래. 님을 위한 희생. 하지만 영수는 그 희생을 고마워할까. 홍국영의 나라를 위한 가혹한 정의의 집행과정. 그러나 반대로 영수의 자리에서 상실한 정의는 어디서 거래가 되어야 할까. 임권택은 여기서 영수를 괄호 친다. 홍국영은 집사에게 영수를 다시는 뭍에 오르지 못하게 제주도로 보내라고 명한다. 이 장면 이후 우리는 영수를 영화에서 다시는 보지 못한다. 혹은 그의 생사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오빠와의 약속에 따라 홍봉희는 정조의 원자아기 씨를 받기 위한 원빈 홍씨가 된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사극의 이름으로 비애의 장르가 자기의 법칙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임권택이 상황을 만든 다음 거짓말을 이용하여 진실을 설명하는 정의의 오작동 방식은 멈춰 서서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임권택은 진실을 진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온통 거짓말로 가득 차 있는 < 길소뜸 >의 절반 이후를 떠올리고 있다. 혹은 < 서편제 >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빠 동호와 여동생 송화가 만난 다음 나누는 거짓말을 떠올려보라. 이때 거짓말과 진실은 둘 사이의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삼자 관계로 이루어진 긴장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나머지 하나란 무엇인가. 거짓말을 통과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진실 안의 내밀한 진실. 영수를 가운데 앉혀놓고 홍국영과 홍봉희는 서로 거짓말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홍국영은 영수를 포박하여 주리를 틀며 매질을 하는 것이 상놈에게 자신의 누이를 빼앗긴 것에 대한 상실감이 안겨준 모욕 때문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면서 홍봉희에게 양자택일의 길, 그러니까 사랑하는 남자를 희생시킨 다음 자기의 뜻을 거절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를 희생하고 오빠의 뜻을 따르는 대신 저 남자 영수를 살릴 것인지를 놓고 벌이는 내기의 상연을 한다. 홍봉희도 홍국영이 하는 퍼포먼스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홍봉희가 오빠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을 때 홍국영은 마치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라도 한 것처럼 영수에 대한 매질을 멈춘 다음 그를 홍봉희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라는 명을 내린다. 물론 매질은 홍봉희의 대답을 재촉하기 위한 일종의 효과이다. 이때 홍봉희가 홍국영에게 하는 약속은 이중적이다. 그녀가 오빠의 말을 따르겠다는 것은 정조의 내빈이 되기 위해 입궐하겠다는 뜻이지 마음을 바꾸어 영수를 포기하고 정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시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홍봉희의 대답은 절반만 진실이고 나머지 절반은 거짓말이다. 그걸 홍국영도 알고 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핵심은 이 나머지 절반이 정조에게는 전체를 거짓말로 만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홍국영은 정조에게 거짓말의 행위를 수행하려는 것이다. 이때 여기서 사라진 장면이 있다. 홍봉희의 진술을 들은 다음 홍국영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어떤 설득도 하지 않으며, 또한 임권택도 그런 장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혹 설득에 실패할지라도 해야 하는 (그래서 적어도 내 생각에는 있어야 하는) 그런 장면이 없다. 그때 홍국영이 수행하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가장 쉬운 대답은 홍국영이 정의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불가피하다고 따분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대답을 금방 곤경에 빠트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정의는 어디에 있나요? 지금 홍국영의 행위는 정의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중이다. 임권택은 여기서 정의를 위해서 언제든지 진실을 희생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때 거짓말은 진실을 대신해서 정의를 수행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한다. 홍봉희가 오빠의 명령을 따른다면 홍국영은 정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국영도 자신이 희생자라는 관점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제 이 희생의 논리는 일종의 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는 희생의 교환으로 약속한 오빠의 명령에 따라 내빈이 되는 홍봉희의 행위를 사랑이라고 착각한 정조도 그런 의미에서 거짓말의 희생자인 동시에 정의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이때 정의가 진실보다 상위 개념에 놓여있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홍국영의 행위는 무조건 정의라는 매우 주관적이고 허약한 가설을 밑바탕에 깔고 버티는 중이다. 논점을 피하려고 현실에서의 정의의 실행을 위해서 우리는 좀 더 관대하고 유연하게 진실에 관한 예외의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이때 누군가는 즉각적인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 예외가 누군가의 진실에 침해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영수를 셈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가장 간단한 해결방법은 영수가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홍봉희를 사랑한 적이 없어요. 그저 그녀를 겁탈하기 위해서 담을 넘었을 뿐이에요. 홍봉희는 그 대답을 듣고 마음을 돌려 자발적으로 오빠의 명에 따라 입궐하여 정조의 곁으로 갔을 것이며 어쩌면 진심으로 보필했을지도 모른다. 홍국영은 구태여 누이에게 거짓된 행동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또한 그는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얻기까지 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잔인한 해결방법이다. 영수는 모두의 진실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다음 이 게임에서 자신을 삭제하는 일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물론 그렇게 간단하게 거짓말과 진실의 게임이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 선택을 오작동시키는 척하면서 진정으로 이들 사이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은 영수의 고백이 홍봉희를 위한 거짓말인 경우이다. 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그 거짓말을 홍봉희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홍국영도 그것을 알고 영수가 진정으로 자기의 누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임권택은 이런 경우의 수를 선택하지 않고 그 전에 멈추었다. 영수는 여기서 침묵을 지키면서 마치 각자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이 자기의 할 일이라는 듯 그들을 쳐다본다. 이때 희생은 홍봉희에게로 모아진다. 영수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긴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상놈인 그가 한성에 있으나 제주도에 있으나 사실상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영수가 한성에 남아있을지라도 상놈인 그에게는 어떤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담을 뛰어넘은 영수의 행위는 홍국영의 선택에 덧셈이 되었을 뿐이다. 만일 영수가 아니었다면 홍봉희를 그의 명에 이렇게 쉽게 굴복시킬 수 있었을까. 이 장면은 희생의 논리에 대한 검토를 요구한다. 진실과 거짓말 사이를 매개하는 고리가 희생될 때 진실은 이중의 무게를 견뎌야만 한다. 하나는 물론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희생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여기서 정의가 다시 되돌아온다. 나는 논점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런 우여곡절에도 뒤이어 장지항을 바로 책임을 물어 파직시키지 못한다. 여전히 홍국영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결심을 내리지 못한다. 바로 이때 홀연 원빈 홍씨가 오빠의 말에 대한 메아리처럼 나타나 홍국영의 말에 뒤이어 백 년 사직을 위해 용단을 내리셔야 한다고 웅변하듯이 말하면서 정조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다. 이 장면에서 임권택 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자기를 원망하면서 지낼 줄 알았던 여동생이 마치 자신의 충언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나타나 자기편을 들면서 임금을 설득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의혹과 기쁨 사이에서 짓는 표정(insert_shot)의 변화이다. 이때 원빈 홍씨의 말은 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태도에 있다. 임권택은 대사를 할 때 그 사람을 바라보거나(point_of_view_shot) 그 사람을 바라보는 상대방을 바라보기는(point_of_view_reaction_shot)하지만 대사를 하는 상대방의 대사 사이를 파고 들어가면서 바라보는 쇼트는 거의 없다. 만일 이 장면을 (적어도) < 잡초 > 이후에 마주쳤다면 원빈 홍씨가 대사를 하는 동안 그냥 홍국영의 표정을 찍었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설명은 임권택의 영화 언어가 점점 더 단순해지면서 내적으로는 비가시적이 되어가는 진화에 대한 (어쩌면 과도한) 추측이 아니다. 여기서 임권택의 카메라가 멈춘 것은 원빈 홍씨의 태도가 뜻밖이라는 듯한 홍국영의 표정이다. 이때 홍국영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반대의 표정을 지었다면 여기는 홍국영이 자신의 대의를 누이인 원빈 홍씨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서서 오빠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망쳐버린 누이의 사랑과 (더 나아가) 삶에 대해서 조금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의 고문에 가까운 감정적인 투쟁을 정의라는 이름의 베일 저편으로 감춰놓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오해라는 환상의 장막. 거의 물신이 되어버린 정의. 거기서 진실이 거의 질식해서 죽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홍봉희의 자리에서 오빠 홍국영이 괴물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처음 홍국영이 누이에게 정조의 내빈의 자리에 가라고 말했을 때 그녀가 보인 저항을 생각해보라. 왕실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에 대한 단호한 거절. 그런 다음 영수가 담을 넘어 그녀 곁에 오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난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낯선 장소에로 함께 도망칠 결심을 했었다. 홍봉희는 쇠락한 양반 집안에서 영수와 아무런 허물없이 지내면서 상놈들과 거의 같은 수준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 도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자, 홍국영의 대의는 잘 알겠다. 그런데 홍봉희에게 오빠 홍국영의 대의는 지켜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는 홍국영의 표정으로 되돌아오고 싶다. 그가 원빈 홍씨의 도움에 의혹과 기쁨을 느끼며 바라보는 까닭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 행동이 의외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만큼의 고마움의 표현이다. 여기서 홍국영의 세 개의 표정의 쇼트는 정확하게 정의가 구현되고 있는 만큼 거짓말이 실현됨으로써 도덕법칙이 파괴되고 있는 증거이다. 내가 여기서 멈춘 것은 임권택이 자신의 영화 전체에서 내내 마주치게 될 거짓말과 도덕 사이의 대결을 이야기 속에서 끌어내 상황을 만든 다음 하여튼 다시 시네마틱 센스로 각색하려 드는 순간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이 문제가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무엇이 무엇 위로 가야 하는가. 그는 이 문제를 개념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한국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상황, 그 상황 중에서도 조선에서 일제 강점하를 지나 해방 직후와 거기에 마치 꼽추의 혹처럼 달려있는 한국전쟁을 거친 다음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역사 속 일회적인 존재방식을 쳐다본다. 만일 단 한 번이라는 개념이 임권택에게 던져진다면 그것은 삶 그 자체이다.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 안에서의 개념들의 위계질서의 내기. 그런 다음 예기치 않은 장면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다. 정조는 원빈 홍씨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수비대장 장지항을 불러 파직하고 재산 전체를 몰수하자 그 자리에 홍국영이 나타나 자신의 승리를 마음껏 즐긴다. 하지만 뒤이어 원빈 홍씨는 하얀 한복을 입고 (그래서 흑백화면으로는 마치 소복처럼 보이며) 미루어 짐작건대 독약이 들었을 법한 사발을 들고 그녀의 마지막 대사를 한다. “오빠, 이제 소원대로 되었사오이다. 이젠 소녀도 소녀의 길을 가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 저승에 가서야 이루어보겠습니다. 저승에 또한 오빠 같은 분이 계셔서 뜻을 이루지 못하오면 그땐 상놈의 딸로 다시 태어나렵니다. 오빠, 굽이 살펴주시어요” 원빈 홍씨의 자살은 그 행위 때문이 아니라 시점 때문에 기이한 질문이 된다. 무자비한 대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감상적인 연인들의 실패한 사랑의 이야기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운명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므로 원빈 홍씨의 자살이 우리를 놀라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기라도 하듯 자살을 하는 대신 그에 앞서 홍국영이 장지항의 파직을 간청할 때 그 곁에 나타나 오빠를 위해, 자기의 사랑을 망쳐놓고, 자기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매질로 주리를 틀면서 자기에게 굴복을 요구한 다음 그것을 이루자 제주도로 쫓아낸 사람을 위해, 기꺼이 거짓말을 한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던가요. 장지항은 부패한 지방 관료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들을 보호한 파렴치한 간신이 맞지 않던가요. 물론이다. 그 말의 내용은 사실일 것이다. 나는 홍국영의 간청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빈 홍씨는 여기서 오로지 오빠의 정의를 위하여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는 중일뿐이다. 여기서 그 말의 내용을 중심으로 놓는 대신 약간 그림을 비튼 다음 그 측면도법에 따른 왜상효과(anamorphosis)처럼 그 말의 그림자를 원상복구 시켜보자. 이때 원빈 홍씨의 진실은 정확하게 오빠의 대의와 대립하는 것이다. 홍국영은 조선이라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가족, 자신의 누이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이때 우리를 역겹게 만드는 것은 홍국영이 홍봉희를 자신의 대의를 위한 도구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만일 원빈 홍씨가 홍봉희의 자리로 돌아가 자살하는 장면이 없었다면 그 둘 사이의 상호교환이라는 질문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빈 홍씨가 오빠 홍국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모든 진실, 자신이 왜 당신 곁에 있는 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좀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홍국영이 간청할 때 그저 침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우리들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로 홍봉희는 대의를 위해서 (몹시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자신의 복수를 배신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무엇을 얻었는가. 쟁점은 그렇게 함으로써 홍봉희는 자신이 자살할 명분을 얻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는 대의를 위하여 필요한 그녀의 몫을 모두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빈 홍씨가 홍국영의 편을 들어 정조에게 간하는 것과 그녀의 자살은 과정안의 서로 대립덫염甦ㅐ?아니다. 임권택 이 여기서 노리는 것은 무대에 오른 이 모든 개념들의 변덕이다. 그런 다음 그는 영화 속에 역설적인 상황을 반복해서 만들어나가면서 실망하고 또 실망한다. 마치 실망이 자신의 목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놀랍게도 지치지 않고 그것을 매번 다시 시도한다. < 십년세도 >가 걸작은 아니지만 비로소 임권택 이 임권택이 된 첫 번째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영화에는 비로소 임권택에게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마주치게 될 질문의 도래가 있다. 그걸 임권택 자신이 < 망부석 >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듯이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느린 걸음. 그것도 아주 느린 걸음. 그래서 처음 보았을 때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방법의 발견. 이때 임권택은 <망부석>을 수정하면서 마치 <십년세도>에서 양보할 수 없는 전도를 시도하고 있다. 핵심은 전도라는 그 관점의 이동 자체에 숨어있다. 말하자면 임권택의 반복은 한편으로는 오류를 수정하는 척하면서 변덕의 심연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절망적인 행위이다. 매번의 예외. 이때 임권택이 수수께끼처럼 생각하는 것은 변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진실이 지켜지느냐에 있다. 물론 그사이에 운명처럼 끼어든 다음 덧없이 사라지는 매개의 희생이 아니라면 이 진실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진실은 가냘프고 애처로운 것이다. 때로는 완전히 부서지고(< 길소뜸 >) 가끔은 그 파편들이 남아서 가까스로 자기의 존재를 남겨놓기도 하며(< 티켓 >) 거의 불투명 속에 머물면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만다라 >) 너무 때늦게 도착해서 거의 놓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짝코 >, 아마도 < 서편제 > 혹은 < 하류인생 >) 그래도 여전히 남겨져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 축제 >, 그리고 < 천년학 >) 나는 멀리서부터 임권택이 왜 갑작스러이 인본주의(人本主義)라는 말에 이끌렸는지를 생각하는 중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어디에 놓여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실험이라는 말처럼 내게 읽힌다. 그러므로 그사이에는 희생을 무릎 쓰고 횡단해야만 하는 환상이 있다. 물론 그 횡단의 순간에 종종 점핑이 실패로 끝나버려 추락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임권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1964년 93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극동흥업 각색 이진섭 , 임권택 촬영 장석준 조명 박진수 편집 김희수 음악 김용환 신영균 홍국영 김동원 영조 이수련 정조 김신재 혜빈홍씨 김운하 영수 이민자 화완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