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동마인
- 감독
- 황정리
이탈리아 서부극을 ‘마카로니 웨스턴’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르는 작명법을 따르자면,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김치 무협’이라 명명할만한 독특한 장르가 있었다. 한국을 중국처럼 꾸미고 복장도 중국식으로 입은 채 버젓이 소림사까지 등장시켜 ‘무림’이 어쩌고 ‘중원’이 어쩌고 했던 일련의 무술영화들이다. 만주 웨스턴의 활황에 이어 이두용 의 태권액션영화들마저 그 명맥이 끊긴 1980년대 초반, 그러니까 이소룡과 성룡의 등장 이후 모두 넋이 나간 채 명절마다 성룡 영화만 기다리며 한국액션영화의 독창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그 시기에 김영일 , 왕룡 , 정진화 같은 몇몇 액션배우들이 대부분 전북 고창에서 촬영한 일련의 ‘짝퉁 무술영화’들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 소림사 주방장 >(1981)같은 영화들은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당한 흥행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의 평가는 가혹했다. 무국적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 소림사 주방장 >의 흥행 이후 ‘저질 무술영화들이 판친다’는 요지의 1982년 무렵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중국 전통의 고증도 무시한 채 마구 치고 박거나 엉뚱한 에피소드로 웃기는 무국적 단세포식 날림”이라며 “가끔 수입되는 중국, 홍콩영화들을 흉내 내거나 마치 그들의 영화인 것처럼 관객을 현혹시키자는 어설픈 속셈도 작용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면서 “이따금 한국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내한하는 홍콩영화인들마저 이들 영화를 보고 ‘무대가 한국이냐 중국이냐’를 물어온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당시 액션영화에 열광하던 젊은 관객들의 기호와 별개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정진화 가 있었다. 1956년생인 정진화 는 < 돌아온 외다리 >(1974) 등 이두용 사단의 영화에서 단역으로 시작해, 김선경 감독의 < 특명 >(1976)을 비롯 역시 김선경 감독이 연출하고 왕호와 황태수(본명 황정리 ) 등 선배 액션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던 < 흑룡강 >(1976), < 밀명객 >(1976) 등에 출연했다. < 복권 >(1980), < 소림사 주방장 >(1981), < 무림걸식도사 >(1982) 등에 늘 함께 출연했던, 그러니까 늘 정진화를 괴롭히는 익숙한 악당으로 출연했던 김영일 이 < 소권괴초 >(1979) 등 홍콩으로 건너가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마지막 세대 배우였다면, 정진화는 이런 짝퉁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유일한 토종 배우였다. 홍콩 무술영화들을 연구하고 모방은 하되 순수 국내파였다고나 할까. < 무림악인전 >(1980)으로 김정용 감독과 만난 뒤 배치기를 필살기로 하는 코믹무술영화 <복권>(1980)의 주인공을 맡으며 일약 당대 한국 무술영화의 스타로 떠오른다. 성룡에게 로웨이가 있었다면 정진화 에게 김정용 이 있었다고 할 만큼, 그는 김정용 감독의 일련의 무술영화들에서 주인공을 도맡았다. 그의 남다른 점은 왕호 , 거룡 , 왕룡 등의 선배들이 이소룡의 아우라를 좇는 사람들이었다면 < 복권 >을 필두로 장발을 한 채 성룡식 코믹 액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사실 그가 구사한 대부분의 코믹한 동작들은 성룡의 < 사형도수 >(1978)와 < 취권 >(1978)에서 유래한다. 위 두 영화에서 코주부 스승으로 출연한 원소전 캐릭터 역시 그대로 가져왔을 정도다. 아무튼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이듬해에는 성룡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장발의 정진화를 모방한 하우성 주연, 김선경 감독의 < 산동 물장수 >(1982)라는 영화도 나왔다. < 소림사 주방장 >은 이후 < 소림사 용팔이 >(1982), < 소림사 주천귀동 >(1982), < 소림사 왕서방 >(1982) 등 무려 10여 편이 넘는 아류작을 낳을 정도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정진화 의 출연작들은 ‘아마존’같은 해외사이트에 마치 홍콩영화인 것처럼 출시돼 있다. ‘Elton Chong’이라는 영어이름으로 등록된 그를 보고 한국인 배우 정진화로 연결 짓는 해외 액션마니아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의 작품들 중 수작에 속하는 < 무림 걸식도사 >(1982)는 < Invincible Obsessed Fighter >, <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 >(1982)은 < Magnificent Natural Fist >, < 홍도경 >(1985)은 < Dragon Against Vampire >라는 제목으로 출시돼 있다. 이후 김정용 감독과의 파트너십은 계속되어 < 람보 >나 < 인디아나 존스 > 시리즈의 아류작이라 할 수 있는 < 아라한 >(1986)은 당대 무국적적인 한국 액션영화의 황혼기라 할 수 있으며, < 팔도 쌍나팔 >(1987)은 현대물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두용 감독의 < 돌아이 >(1985)가 당시 충무로의 양지의 액션영화였다면 그 반대 지점의 영화가 바로 <팔도 쌍나팔>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1990년이 되기 이전 이른바 ‘개인기’를 지닌 액션배우들은 정진화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후 충무로를 떠난 그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TV드라마 <무인시대>(2003)에 출연하기도 했다. / 글: 주성철
이두용 감독의 액션영화는 박력이 넘친다. 마치 실전을 방불케 하는 직선의 파괴력이라고나 할까. 카메라를 향해 무섭게 달려드는 주먹과 무질서하게 착지하며 쓰러지는 남자들의 동물적인 움직임, 그렇게 한국액션영화는 간결하고 절제된 움직임의 일본 찬바라 영화나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 듯한 화려한 움직임의 홍콩 무협영화의 그것과 비교해 뭐라 딱 규정할 수는 없지만 짧고 굵은 단발마의 비명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누군가의 얘기처럼 한국액션영화의 원조이자 거장 정창화 감독이 홍콩으로 건너가지 않고, 이두용 감독을 비롯한 여러 명장들이 문예영화나 여타의 다른 장르영화로 눈 돌리지 않고 매진할 수 있었다면 분명 한국영화사는 새로 쓰여 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이두용 감독이 이후 < 해결사 >(1981)를 거쳐 < 돌아이 >(1985) 시리즈와 < 흑설 >(1990)을 통해 마무리 짓기까지 그가 만든 일련의 액션영화들을 거칠게 ‘태권영화’라 칭할 수 있다면, 그가 1970년대 초반 차리 셸(한용철)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만든 당시 액션영화들은 거의 보석과도 같다. 작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라는 기획전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하기까지 < 돌아온 외다리 >(1974)는 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해외 출시 DVD를 통해 감상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기획전을 통해 <돌아온 외다리>를 대형화면으로 감상하는 그 기분은 한국영화를 마치 홍콩영화인 양 역수입하여 봤던 과거의 굴욕을 씻는 쾌감이었다. 이두용 과 차리 셸이 함께 한 이 시기 일제시대 배경 태권 액션영화는 6편 정도인데 믿기 힘들지만 차례대로 < 용호대련 >(3월 개봉), < 죽엄의 다리 >(4월 개봉), <돌아온 외다리>(7월 개봉), < 분노의 왼발 >(9월 개봉), < 속 돌아온 외다리 >(10월 초 개봉), < 배신자 >(10월 말 개봉) 등 모두가 1974년 영화들이었다. 거의 광기에 가까운 속도로 액션영화를 만들던 그 와중에서도 가장 놀라움을 안겨준 작품이 바로 <돌아온 외다리>였다. 30년대 중국 하얼빈, 발차기의 달인 용철( 한용철 )은 사랑하는 여인의 간청으로 암흑의 세계를 떠나려 한다. 보스인 왕해림은 결혼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황금을 싣고 가는 마차를 털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마차의 주인은 바로 향숙의 오빠였다. 이후 그는 향숙의 곁을 떠나 폐인처럼 생활한다. 한편, 야마모토( 배수천 )는 향숙을 차지하고 왕해림까지 제거하기 위해 용철을 노린다. 고수 김승( 권영문 )을 이용해 용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지만, 김승은 사실 야마모토에게 접근하기 위해 정체를 숨긴 독립군이었다. 이두용 감독의 이 시기 6편의 태권영화는 모두 이른바 ‘항일 만주 웨스턴’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데, < 돌아온 외다리 >가 남다른 것은 수수께끼의 고수 김승을 자유롭게 배치한 시나리오 구성상의 반전과 그 액션 연출의 퀄리티 때문이다. 이전 한국액션영화의 이른바 ‘다찌마리’ 액션신과 비교해 전문 무술인력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 강도와 난이도가 다르다. ‘발차기로 상대의 싸다구를 때리는’ 차리 셸의 스피드를 비롯 거의 무술지도까지 도맡은 권영문 , 거의 단역으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황정리와 정진화에 이르기까지, 합에 있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홍콩무술영화의 그것과 비교해도 말 그대로 제대로 된 ‘그림’을 보여준다.(권영문과 황정리 는 이후 홍콩으로 건너 가 남다른 실력을 뽐낸 ‘용병’들이었다) 앞서 두 편의 작품을 함께 하며 호흡을 맞췄던 그들의 ‘합’이 화려하게 만개한 느낌이다. 특히 저벅저벅 울리는 구두 소리에 긴장하는 매복한 적들과의 일전, 철길과 철교를 사이에 두고 한용철 이 야마모토 졸개들을 ‘싹쓸이’하는 액션신은 실내외를 넘나드는 로케이션의 해방감과 더불어 특유의 박력으로 넘친다. 극단적인 다대일 대결을 즐겼던 이두용 감독은 조그만 공간에 빈틈없을 정도로 사람들을 밀어 넣고 발차기의 쾌감을 만끽했다. 아마도 홍콩무술인력들이 봤다면 ‘무수한 흑협들의 경연장’이라고 불렀을 실내 세트의 대결은 거의 표현주의 영화를 보는듯하며 정서적인 사각 앵글의 사용, 다리의 진행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핸드 헬드 카메라 등 그 화려한 기법들이 그야말로 중독성이 있다. 그렇게 유난히 강조된 발차기의 타격음과 나동그라지는 둔탁한 소리는 한국액션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선 굵은 인장과도 같다. 그렇게 한국장르영화 혹은 액션영화의 명맥이 어느 순간 뚝 끊겼다가 < 장군의 아들 >(1990)로 느닷없이 회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딘가 부당하다. 아마도 현재 정두홍 무술감독의 서울액션스쿨이 지배하는 한국형 액션연출의 지독한 에너지의 연원을 찾아가자면, 아마도 이두용 감독의 태권영화들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