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몽키즈
- 감독
- 테리 길리암
- 제작년도
- 1995
- 출연
- 브루스 윌리스, 브래드 피트, 크리스토퍼 프라머, 매들린 스토우, 데이비드 모스코우, 존 세다
영화사들이 보내는 수많은 보도자료 속에서 ‘서바이벌리스트’란 제목의 영화를 발견했다. 극장 개봉 없이 IPTV로 직행했다는 선입견에 ‘서바이벌리스트’란 제목이 더해지면서 과거 비디오가게 주인아저씨들이 독신 남성 고객들에게 추천해주었을 법한 액션영화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주인공은 전직 군인. 초야에 묻혀 살지만, 어느 날 그의 액션본능을 일깨우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는 다시 살인 병기가 될 것이다. 할리우드 어디에선가 제작됐을 그 영화들도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 없이 동네 비디오 가게로 직행했다. 그럼에도 ‘서바이벌리스트’가 달리 보였던 건, 풀숲을 배경으로 찍은 한 장의 스틸 때문이었다. 주인공 남자의 얼굴이 너무 말랐던 것이다. 이렇게 삐쩍 마른 남자는 살인 병기일 수가 없다. 영화를 보고나니, 과거의 비디오가게 독신 고객들이 봤으면 잠시 현실을 잊기는커녕, 더 큰 외로움에 사무쳤을 이야기였다. < 서바이벌리스트 >는 ‘인류멸망’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영화다. 이 소재는 재미를 보장한다. 멸망이 다가오는 시점을 포착한 영화들, 이를테면 < 딥 임팩트 >나 < 월드워Z > < 눈먼자들의 도시 >와 같은 작품은 거대한 스케일로 관객을 만족시킨다. 멸망 이후의 영화들은 세상을 리부트한 후, 새로운 상상력을 채워 넣는 재미가 있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나 < 12 몽키즈 > <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 같은 영화가 그렇다. 인류는 어떤 과정으로 새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이며 또 어떤 시스템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 임모탄 같은 무시무시한 독재자의 지배하에 살 수도 있고, 진화한 유인원들과 싸워갈 수도 있고, < 나는 전설이다 >의 로버트 네빌 처럼 다른 사람을 애타게 찾으며 살 수도 있다. ‘인류 멸망’이란 소재가 영화를 만드는 이들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이유다. 영화의 사이즈를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불합리성을 지적할 수도 있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류 멸망’의 소재를 다루면서 거대한 스케일도 없고, 새로운 시스템의 사회를 그리지도 않는 데다, 배경은 숲 속의 오두막뿐이고, 등장인물은 3명뿐인 영화라면 어떨까? 이야기의 배경은 어느 숲이다. 주인공 남자(이 남자의 이름은 없다)는 시체를 옮기는 중이다. 시체의 발목에는 큰 상처가 있다. 이 남자는 < 나는 전설이다 >의 로버트 네빌 처럼 자신이 사는 오두막 주변에 덫을 설치해놓았다. 그가 경계하는 건, 좀비도 아니고 정체 모를 바이러스도 아닌 그냥 사람이다. 그에게 ‘타인’이란 그저 자신을 죽이고 식량을 약탈해가려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외부인을 경계하는 동시에 자신이 먹을 작물을 키우며 하루를 보낸다. 씨앗을 심고 자신의 소변으로 거름을 주는 일을 반복하는 그의 일상은 < 마션 >의 마크 와트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에게 외로움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시체의 품에서 찾아낸 여러 사진들을 보다가 누군지 모르는 여성의 사진을 간직하며 잠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영화는 숲을 돌아다니며 먹을 걸 찾고, 작물을 키우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고, 밤이 되면 모든 불을 끄고 잠드는 그의 일상을 약 19분에 걸쳐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남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혼자 있기 때문에 말이 없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모녀가 그의 오두막을 찾아온다. 그들은 작물을 나눠달라고 간청하지만, 남자는 거절한다. “좀 나눠줄 수 있잖아요? 충분해 보이는데…” 영화가 시작한 지, 약 19분 만에 남자의 첫 대사가 나온다. “그런 생각이 세상을 망쳤지.” 엄마는 딸의 몸을 주는 대가로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한다. 남자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딸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는 “딸이 당신을 마음에 들어한다”며 데리고 살 생각이 없는지 묻는다.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친 남자는 잠시 멈칫한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들을 내보내려는 순간, 딸은 남자의 수염을 면도해주겠다고 다가온다. 그렇게 하룻밤뿐일 거라고 생각했던 인연이 계속 이어진다. 남자는 여전히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지만, 세 사람은 함께 작물을 키우고, 함께 먹고, 한 집에서 함께 자며 지낸다. 하지만 이 모녀는 남자를 죽일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 서바이벌리스트 >에서 인류 멸망의 계기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된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에서는 흔히 전쟁을 비추는 뉴스릴을 연이어 보여주며 설명하지만, <서바이벌리스트>가 사용하는 건 단 두 개의 선이다. 빨간 선과 파란 선. 빨간 선은 세계 인구를 나타내고, 파란 선은 석유 생산량을 나타낸다. 두 선은 곧게 상승곡선을 그린다. 그러다가 파란 선이 먼저 하향곡선을 그리고, 그래서 상승곡선에 있던 빨간 선은 잠시 후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한다. 자원이 고갈되면서 인류도 함께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간결한 설명이다. 영화 속 주인공 남자의 첫 대사가 뜻하는 맥락이기도 하다. “(충분하다는) 그런 생각이 세상을 망쳤지.” 자원의 양과 세계 인구의 그래프가 평행선을 그린다면 세상은 평화롭겠지만 <서바이벌리스트>가 배경으로 삼은 것은 인구에 비해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시점이다. 약탈과 살인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먹어야 살아남는다. 하지만 사람은 많고 먹을 건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죽인다. < 서바이벌리스트 >는 이 단순한 명제들을 가지고 100여 분의 시간을 풍부한 긴장감으로 채우는 영화다. IMDb 크레딧은 마틴 맥캔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남자만을 ‘서바이벌리스트’로 표기했지만, ‘서바이벌리스트’는 그와 모녀, 그리고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사람들 모두를 뜻한다. 모두 ‘생존주의자’인 것이다. 세 사람에게 잠시 평화가 찾아온 이유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식량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이 남자의 밭을 습격하고 난 후, 이들은 다시 계산을 하기 시작한다. “저 남자를 죽이면 남은 식량으로도 우리 두 사람은 살 수 있어.” 스케일이 거대하지도 않고, 공간은 한정적이고, 인물도 적고, 대사도 거의 없는 영화가 때로는 진정한 영화적인 재미를 알게 해주곤 한다. 더이상 더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영화는 인물과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 서바이벌리스트 > 또한 간결하고 집중력 있는 연출이 오히려 영화적인 재미를 증폭시킨 경우다. 영화를 연출한 스티븐 핑글턴 감독은 2012년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당시 그가 세운 목표는 “CG 없이 만드는 SF영화”였다. 인류 멸망 이후 어느 숲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투쟁이라는 이야기는 그의 목표에 매우 부합하는 콘셉트였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할리우드의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와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드라마인데도 블록버스터가 될 수 없는 시나리오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결국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처음 구상보다 더 작은 규모로 제작됐지만, 그 결과 <서바이벌리스트>는 감독의 비전을 더욱 명확히 구현한 작품이 되었다. 영화는 과감한 생략으로 당연히 이어질 장면들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버린다. 대신 이들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 순간에서는 공간의 감각까지 담아내려 공을 들인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연출의 태도가 극 중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매우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총은 있지만, 총알은 2개 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총알을 아끼면서 살아간다. 끝내 누군가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남아있는 총알을 걱정한다. 스티븐 핑글턴 감독은 ‘스크린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영화는 별다른 음악이 없었기 때문에 사운드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고 말했다. 주어진 것을 가지고 최대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의 밖의 감독은 이 질문을 함께 감당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충돌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 서바이벌리스트 >가 궁극적으로 전하는 감정은 그리 1차원적이지 않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살고자 하는 본능과 인간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배회한다. 연민보다 본능의 힘이 더 강했던 탓에 인류의 멸망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찾아온 이 거대한 질문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영화의 선택은 차가운 동시에 쓸쓸하지만, 결국 희망적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관객 또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바이벌리스트>는 ‘인류 멸망’이란 소재로 영화가 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사이즈’를 키우는 것만 빼고 나머지 모두를 구현한 흔치 않은 사례다. 영화적인 재미와 현실의 조명, 인간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거대한 사이즈의 인류멸망 스토리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