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마
- 감독
- 리산드로 알론소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아르겐티노 바르가스, 미사엘 사베드라, 카를로스 란디니
한니발 렉터가 돌아왔다. 조금 젊어진 모습으로. 모든 걸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눈과 냉소어린 표정, 그리고 특유의 예의범절은 그대로다. 매즈 미켈슨이 맡은 한니발 렉터는 고혹적이고 중후한 신사의 품격을 지녔다. 여전히 심중을 알 수 없는 괴물이지만,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면모에 예술을 찬양하는 심미안적 태도는 은밀한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일말의 불안감과 그늘이 감돌기도 한다. 저 요리의 출처는? 저 발언의 의미는? 저 시선의 목적은? 신중하면서도 차가운 말투과 몸짓에서 냉철하면서도 강인한 북구의 늑대를 연상케 한다. 잡으면 놓치지 않을 강한 턱뼈와 송곳니로 전리품을 취하며 맛을 음미하고 상대와의 승부를 기꺼이 즐기려든다. 한니발 렉터의 모든 것을 창조해낸 원류 안소니 홉킨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홉킨스의 렉터 박사는 고양이과 맹수류에 가까웠다. 본능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재미없으면 가차 없이 처리해버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상대를 농락하고 마음껏 사냥했다. 대단히 우아하며 기품 있고, 또 잔인하고 흉포하다. 지적 유희를 즐기며 위트 있고 나름 관대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괴물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악의 결정체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짧은 분량의 연기에서 영속성을 얻었고, 영화를 넘어 모든 장르와 현실에 있어 대표적인 살인마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엔 < 양들의 침묵 >이 있었다. 한니발 렉터 단언컨대 <양들의 침묵>은 가장 완벽한 스릴러다. 85년에 이르는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중요한 5개 부문(작품, 감독, 각본, 남우주연, 여우주연)을 모두 수상한 3편의 영화들 중 하나일뿐더러(나머지 두 영화는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과 밀로스 포먼의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다), 미국영화연구소에서 선정한 100편의 스릴러 중 5위로 뽑혔고, IMDb 평점리스트에서도 매번 30위 안에 드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토머스 해리스의 묵직하고 디테일한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시각화로 평단이나 관객들에게 깊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는 2003년 미국영화연구소(AFI) 100주년을 맞아 뽑은 최고의 악당과 영웅 부분에서도 당당히 나타난다. 한니발 렉터 박사는 무수히 많은 영화 속 슈퍼 악당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으며, 그와 대적하는 견습 수사관 클라리스 스탈링은 영웅 부분 6위에 올라 여자 캐릭터로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무려 시고니 위버의 리플리보다도 높은 순위다. 그러나 정작 그 역할을 맡은 안소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는 1순위 캐스팅 후보가 아니었다는 사실. 애초에 판권을 사서 연출하려던 이도 진 해크만이었고, 아예 디노 디 로렌티스가 제작한 전작 < 맨 헌터 >가 흥행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과 마주쳤을지 모른다. 조나단 드미는 주로 다큐멘터리와 코미디를 연출하던 감독이었기에 이처럼 무겁고 어두운 스릴러를 잘 연출할 수 있을 거라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건 음악을 맡은 하워드 쇼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 반지의 제왕 >과 < 호빗 > 시리즈로 누구나 다 아는 명 작곡가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91년 당시 하워드 쇼어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음악적 영혼의 동반자, 혹은 NBC의 히트프로그램 ? 국내에선 신동엽이 호스트로 자리 잡아 섹드립을 날리는 바로 그 프로 ?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음악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다. 크로넨버그와 함께 한 작품들이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가 강해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반면,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 그는 유쾌하고 신랄한 코미디를 뒷받침하고, 온갖 패러디가 난무하는 음악을 맡아 휴머니즘과 재기발랄함을 뽐냈다. 그 결과 마틴 스콜세지의 가벼운 소품 < 특근 >을 시작으로 소소하고 경쾌한 작품들로 필모를 채워나갔는데, 그야말로 제목처럼 빅히트한 톰 행크스 주연의 < 빅 >을 비롯해, < 나딘 >, <불같은 열정>, <그녀는 악마>, <이사대소동>같은 코미디/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에게 변신의 기회가 찾아온 건 바로 (역시나 그간 코미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조나단 드미와 함께 한 <양들의 침묵>이었다. 이후 그에게 스릴러 장르 의뢰가 폭발적으로 들어온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 죽음 전의 키스 >와 < 위험한 독신녀 >, < 의혹의 함정 >, < 슬리버 >, < 의뢰인 >, < 세븐 >, < 증오 >, < 게임 > 등 90년대 다양한 메이저 스릴러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가며 쇼어는 할리우드 주류 작곡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피터 잭슨과 함께 한 <반지의 제왕>으로 드디어 긴 무관을 세월을 벗고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쥐었고. 하워드 쇼어 <양들의 침묵>의 음악은 영화상에서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한니발 렉터의 움직임처럼 은밀하고 우아하며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낮은 스트링과 목관악기를 위주로 편성이 된 이 고전적이고 세련된 스코어는 감상하기에 다소 지겨울지 몰라도 하워드 쇼어의 어둡고 진중한 매력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느리고 암울하기 짝이 없지만 심리적으로 서서히 옥죄어오는 오케스트라의 환영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영화의 공포감과 전적으로 일치하며, 잔기술 효과나 미키 마우징 따위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영화의 흐름에 맞춰 전체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집중한다. 크로넨버그와 함께 했을 때만큼의 기괴하고 실험적인 사운드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코미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접근법이었다. < 플라이 >를 통해 이미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다이나믹한 활용을 익힌 쇼어는 그 노련한 솜씨를 <양들의 침묵>에 접목했으며, 비록 브라스의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파워를 지워버렸지만 마음 속 깊이 자리한 공포심을 대변하는 짙은 저음의 스트링을 통해 현실 속 존재할 것만 같은 심각한 사건의 무게감과 리얼리티를 만들어냈다. 이후의 쇼어가 담당한 <세븐>이나 <게임>, < 패닉룸 >과 <의뢰인> 등에서도 계속 이런 건조한 스타일은 이어진다. 테마나 선율이 명확히 들리지는 않지만 영화의 톤을 잡아가는데 있어 일관된 방향성과 합목적성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무엇보다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스코어 롤을 행하고 있다. 하워드 쇼어는 특별한 모티브나 테마를 사용하진 않지만, 악기의 음색을 통해 언뜻언뜻 캐릭터들을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오프닝 씬에 흐르는 ‘Main Title’에선 암시적으로 벌어질 사건들과 캐릭터들이 설명되는데, 서정적이고 서글픈 클라리넷이 현재 스털링의 모습과 과거 상처로 남은 어린 양의 기억을 상징한다면, 진중하고 어두운 현과 목관부의 하강을 통해 심리적인 중압감과 공포심을 배가시켜 쉽지 않을 임무가 기다리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는 뒤의 ‘Clarice’나 ‘Lambs Screaming’에서도 효과적으로 반복돼 활용되며, 비슷비슷한 큐들 사이에서 가녀리지만 확실한 그녀만의 색채를 부여해 어디에서고 그녀의 존재를 찾을 수 있게 만든다. 또한 한니발 렉터 박사의 위용을 과시하는 ‘Lecter in Memphis’나 ‘Lecter Escapes’에선 그간 자제하던 관악기를 편성해 비로소 그의 공포스러운 진면모를 드러내고 있으며, ‘Finale’에선 그의 자유스러워진 모습을 성장한 스털링과 대비시키며 진한 여운과 잔향을 남기고 있다. 가장 하이라이트인 버팔로 빌과 스털링 대결에 흘러나오는 ‘The Cellar’는 그간 쇼어가 크로넨버그와 작업해왔던 결과물의 연장선상에 있는 큐로 엠비언트와 일렉트릭 사운드를 결합한 -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호러 스코어에 가깝다. 비록 드라마틱하고 서사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파괴적이고 일탈적인 고통과 상처들을 심리적으로 치환해 상승해가는 고조감과 눅눅한 지하실의 공기를 담은 사운드는 기존의 전통적인 스코어링과는 전혀 다른 기묘한 성취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하워드 쇼어는 세 번의 기회를 통해 마애스트로로 거듭났다. 영화음악을 맡을 수 있었던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운명적인 만남, 장르를 확장하고 메이저에 안착하게 된 조나단 드미와 혁신적인 변신, 그리고 비로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거장으로 우뚝 선 피터 잭슨과의 협업. <양들의 침묵>은 그 두 번째 발판으로 비록 강렬한 비평적 성과와 화려한 찬사를 얻진 못했지만,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매력적인 슈퍼 빌런의 등장에 걸맞는 암울하고 장중한 진혼곡으로 하워드 쇼어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Track listing 1. Main Title 2. The Asylum 3. Clarice 4. Return to the Asylum 5. The Abduction 6. Quid Pro Quo 7. Lecter in Memphis 8. Lambs Screaming 9. Lecter Escapes 10. Belvedere, Ohio 11. The Moth 12. The Cellar 13. Finale
<조에트로프 디벨로프먼트 Zoetrope Development> 프로젝트 필름과 비디오에 기반을 둔 애니메이션에서 프레임과 프레임은 서로 넘어갈 수 없는, 서로 다른 ‘시간’에 있는 이미지이고, 이 스틸 컷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보여서 움직이는 이미지, 즉 애니메이션이 된다. 그런데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탄생하기 이전, 즉 19세기 ‘프리-시네마(Pre-Cinema)’ 시대의 대표적인 광학장난감, 옵티컬 토이(Optical Toys)인 페나키스티스코프, 조에트로프, 프락시노스코프 등이 21세기에 들어서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바, 이 글에서는 19세기 옵티컬 토이가 21세기에 어떻게 새롭게 변화되어 재탄생하고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서, ‘라이브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상상보고자 한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일러스트레이션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짐 르 페브르(Jim Le Fevre)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조에트로프 디벨로프먼트 - 더 포노트로프(Zoetrope Development - the Phonotrope)’라는 이름으로 LP 턴테이블과 비디오카메라의 셔터 스피드 조절 기능을 활용하여 페나키스티스코프, 조에트로프 등과 같은 19세기 옵티컬 토이를 새롭게 제작, 구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성취한 놀라운 성과는 ‘프레임 바이 프레임’ 촬영이나 스크리닝을 통해 보이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눈앞에서 직접 실시간으로 보이는 ‘라이브 애니메이션’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즉 원판에 그려진 그림이나 오브제를 LP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회전시키고, 이를 비디오카메라 셔터 스피드 ‘조작’에 의한 영상으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데, 이때 프레임 바이 프레임 애니메이션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즉, 이미지가 시간적 개념의 프레임 바이 프레임 사이를 건너뛰는 매우 ‘기묘한’ 애니메이션을 ‘라이브’로 볼 수 있게 된다. <홀리 플라잉 서커스 Holy Flying Circus> 타이틀 시퀀스 (2011) <홀리 플라잉 서커스 Holy Flying Circus> 타이틀 시퀀스 제작과정 짐 르 페브르 감독이 연출하여 만든 BBC4 코미디 드라마 <홀리 플라잉 서커스 Holy Flying Circus>의 애니메이션 타이틀 시퀀스는 그의 ‘조에트로프 디벨로프먼트’ 프로젝트의 정점을 이룬다. 턴테이블 버전과는 달리 사전에 3D 그래픽 모델링으로 입체적인 조에트로프를 만들고, 이를 다시 목공과 각종 수작업 및 미술 작업을 통해 실제 오브제로 제작하여 거대한 규모의 라이브 애니메이션용 조에트로프를 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애니메이션은 ‘프레임 바이 프레임’이 아니라, 프레임 사이를 건너뛰는 라이브 오브제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다. ▶ 동영상 보기: http://youtu.be/pfZQmgiSkfk | http://vimeo.com/30833811 ○ 감독 홈페이지: www.jimlefevre.com <위 갓 타임 We Got Time> 뮤직비디오 (2009) 영국의 블링크잉크 스튜디오(Blinkink Studio) 소속으로 애니메이션과 뮤직비디오 및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빗 윌슨(David Wilson) 감독은 19세기 프리-시네마(pre-cinema) 시대의 대표적인 옵티컬 토이였던 조에트로프와 프락시노스코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활용하여 모레이 맥라렌(Moray McLaren)의 음악 <위 갓 타임 We Got Time>을 뮤직비디오로 만들고, 제작과정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짐 르 페브르 감독의 라이브 애니메이션이 비디오카메라의 셔터 스피드 조절 기능을 활용한 것이었다면, 데이빗 윌슨 감독은 프락시시노스코프 고유의 거울 반사형 애니메이션으로 라이브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 동영상 보기: http://youtu.be/j9e38cuhnaU ▶ 제작과정 보기: http://youtu.be/d4LSg7f4lFs ○ 감독 홈페이지: www.thisisdavidwilson.com <벨로우즈 마치 The Bellows March> (2009) <벨로우즈 마치 The Bellows March>는 애니메이션과 설치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릭 다이어(Eric Dyer) 감독이 만든 실험 애니메이션으로, 3D 모델링과 3D 프린터로 제작된 오브제들로 만들어진 3D 조에트로프를 활용하여 라이브 애니메이션을 구현했다. 그리고 에릭 다이어 감독은 자신의 2006년 작품 <코펜하겐 자전거 Copenhagen Cycles>와 함께 <벨로우즈 마치>를 갤러리와 영화제에서 설치미술로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도 병행한 바 있다. ▶ 동영상 보기: http://vimeo.com/17314292 ▶ 제작과정 보기: http://vimeo.com/21324452 ○ 감독 홈페이지: www.ericdyer.com 소니 브라비아 조에트로프(Sony Bravia Zoetrope) (2008) 소니사는 자사의 TV 브랜드 브라비아(Bravia)를 홍보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베나리아(Venaria) 라는 마을 광장에 ‘브라비아드롬 BRAVIA-drome’이라 명명된 지름 10미터의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조에트로프’를 설치하고, 이탈리아 AC 밀란 소속 축구선수 카카의 대형 사진으로 3D 조에트로프 라이브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 소니 브라비아 조에트로프(Sony Bravia Zoetrope)는 <브라비아 볼 Bravia Balls>(2005), <브라비아 페인트 Bravia Paint>(2006), <브라비아 피라미드 Bravia Pyramid> (2007), <브라비아 도미도 시티 Bravia Domino City>(2008>에 이은 소니사의 혁신적인 광고 프로젝트이다. ▶ 동영상 보기: http://youtu.be/tkiQM7MXp-c ▶ 제작과정 보기: http://youtu.be/rCltdyiLyIc | http://vimeo.com/4129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