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티
-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 제작년도
- 1982
- 출연
- 헨리 토마스, 로버트 맥노튼, 드류 배리모어, 디 월라스, 피터 코요테, K.C. 마르텔, 신 프리에, C. 토마스 하우웰 , 데이빗 버크슨, 데이빗 칼베르그, 에리카 엘레니악, 윌 파울러 주니어, 바바라 하트넷, 밀트 코건, 알렉산더 람포네, 로버트 머피, 로버트 페사벤토, 탐 쉐리, 메리 스타인, 데이빗 M. 오델, 리차드 스윙글러, 미첼 서스킨
최초의 칸느영화제 초청작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 기생충 >( 봉준호 , 2019)이 800만 명의 관객을 모으고 있는 2019년 6월 중순 현재, 한국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칸느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던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 이두용 , 1983)를 되돌아보는 건 분명 흥미롭다. 1983년 11월 제작이 완성되자마자 제2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한 이 영화는 다음해인 1984년, 빔 벤더스의 <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빔 벤더스, 1984)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제 37회 칸느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11편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두용 감독은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한국 여인상의 존엄성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는데, 봉건적 가부장제 하 여성의 ‘피맺힌 한’은 이렇게 국제 무대에서 ‘한국적인 것’을 대표하기 시작한다.(한국 관객들도 이것을 공공연히 받아들이게 되는 건 약 10년 후 신드롬을 일으키는 < 서편제 >( 임권택 , 1993) 즈음일 것이다.) ‘한국적 한’의 영화적 탄생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의 애초 아이디어는 세 토막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전설따라 삼천리’류의 이야기였다고 한다. 제목만 봐도 1969년의 옴니버스작 < 이조여인잔혹사 >( 신상옥 )>를 떠올리게 하는데(당시 최일남도 소재가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1) ), 그래서인지 이두용 감독은 이 세 토막을 길례라는 한 여인의 이야기로 연결시키기로 했다. 몰락한 양반가문의 딸인 길례가 김진사의 죽은 아들과 영혼결혼을 하는 방식으로 팔려나가 수절하며 살다가 예기치 않게 시동생에게 성폭행을 당해 쫓겨나는 첫 부분, 머슴 윤보를 만나 하층민으로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길례를 탐내는 채진사를 결국 윤보가 살해함으로써 야반도주를 하게 되는 중간 부분, 그리고 갑자기 윤보가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린 세도가의 자제였음이 드러나 길례가 윤부사집 며느리가 되었다가 씨내리를 당하고 자결하게 되는 마지막 부분. 그 연결의 억지스러움은 길례가 물레 돌리는 장면들의 미학적 실루엣으로 무마하고자 했으나, 김종원이 지적했듯 “울림의 공감을 주는 메타포로서 살아나지 못했다.“ 2) 저 기구한 삶의 결절마다 그 육체가 하릴없이 성적 대상으로 전락하는 길례가 물레를 돌릴 때, 그녀는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주인공이기보다는 침입자들 앞에 무방비 상태에 놓인 취약한 존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한(恨)’의 취약한 이미지는 오히려 이제 막 국제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한국영화의 위치에 대한 메타포에 가깝다.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198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이두용 감독의 < 피막 >이 특별상을 수상하고 베를린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 만다라 >가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한국적인 것’(혹은 ‘아시아적인 것’)은 근대성과 길항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것과 융합하기도 하는 어떤 미적인 것으로 (재)발견되기 시작했고, 이 (재)발견을 공들여 전유한 결과물이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였다고 할 수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평자가 “30년전 일본 미조구치 겐지”를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듯, 오랫동안 미지의 대상이었던 한국영화는 이 국제무대의 관객들을 위해 일본영화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어떤 ‘한국적인 것’을 전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길례의 육체가 그다지도 자주 폭력에 노출되었던 것은 이 전시를 위한 이미지, 즉 물레를 돌리는 한맺힌 여성의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시대의 관객들 어쨌거나 영화를 통해 ‘한국적인 것’을 (재)발견하려던 이 작업은 해외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한국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게임 개최를 앞두고 그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여인잔혹사:물레야 물레야>는 만하임 영화제, 런던 영화제, 페사로 영화제 등에 초청되고 일본의 ‘스튜디오 200’에서 ‘현대한국영화주간’을 개최할 때 상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 거주 한국인들이 주관한 각종 행사에도 소개되었다. 일본 쓰까사에는 15만 달러에 수출되었는데, 1983년 한국영화의 총수출 편수(21편)의 총액이 25만7천 달러였던 걸 염두에 두면 놀라운 가격이다. 하지만 한국의 관객들, 즉 이미 < 적도의 꽃 >( 배창호 , 1983)>, < 바보선언 >( 이장호 , 1983)>, < 고래사냥 >(배창호, 1984)에 호응하고 할리우드의 <이티(E.T.,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1982; 한국에서 1984년 개봉하여 역대 최고 흥행성적 3위를 기록했다)>의 자장 안에 있던 관객들에게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그저 “우수영화 및 대종상 겨냥영화” 3) 의 하나였던 듯하다. 28일간 상영되었던 명보극장에는 3만5천여 명의 관객만이 방문했다. 1) 최일남, “최일남 산책: 생활문화론,” <동아일보> 1984.3.14. 2) 김종원, “1983년도 한국 (극)영화,” 영화진흥공사 편, <1984년도판 한국영화연감>, 1984. 3) 김종원, 앞의 글.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VOD 보러가기 <<
아마도 <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8)이 스티븐 스필버그를 대표할만한 걸작으로 기록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죠스JAWS >(1975)처럼 기념비적인 흥행을 기록한 것도 아니고 <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처럼 지속적으로 영감을 미칠 만한 명장면을 남기지도 못했다. < 쥬라기공원Jurassic park >(1993)처럼 CG를 활용한 리얼리티의 혁신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 에이.아이. A.I. >(2001)처럼 장중한 호흡과 묵직한 걸음으로 현실과 영화 사이 어두운 그림자를 응시하기 시작한 영화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레디 플레이어 원>이야말로 자연인 스필버그와 대중문화의 아이콘 스필버그를 잇는 가교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오타쿠 소년이 세 개의 시련을 통과해 온라인 세계를 구원한 후 오프라인 세계를 잇는 가교가 되어 균형을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영화는 스필버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 정리한 자서전이라고 생각했다. 스필버그는 인터뷰를 통해 “내 모든 영화들이 개인적인 것들이 녹아들긴 했지만, 나의 실제 삶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영화는 아직 만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만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소년 웨이드 와츠와 노인 제임스 할리데이는 분열된 자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스필버그의 과거와 현재를 대변한다. 전제(혹은 도망갈 길)를 하나 미리 깔아두겠다. 현재진행형인 감독의 행보를 결정된 감독론으로 정리하는 건 의미 없는, 아니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인지라 단지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한 보조기구 정도로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행적을 한 줄 서사로 정리하는 건 꽤 재미있는 작업이고, 한편으론 그렇게 해서라도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할리우드 산업의 총아로 선택되었고 적극적인 탐험가를 거쳐 원숙미까지 더해가는 거장의 길이라면 더욱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2000년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민한 제작자와 할리우드 클래식 최후의 수호자라는 위상을 동시에 수행 중인 것처럼 보인다. 두 영역은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평행 우주나 마찬가지로 여겨졌는데 오직 스티븐 스필버그만이 홀로 인과의 법칙에서 자유로운 양 양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요컨대 할리우드에는 두 명의 스필버그가 존재한다. 그렇게 믿어져 왔다. 진짜 그럴까. 정말 두 명의 서로 다른 스필버그가 있는 것일까. 스필버그는 한쪽에선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사람으로서 대중영화의 최전선에서 스펙터클이라는 마법을 휘두르고, 다른 한쪽은 할리우드 시네마 최후의 보루로서 원숙미 넘치는 성찰을 낮은 목소리로 설파하고 있는 중일까. 그는 후자를 바라면서도 상업적인 판단하에 이상을 누르고 대중이라는 모호한 속성과 종종 타협해왔던 것일까. 걸작과 범작, 킬링타임용 영화까지 손을 뻗친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를 납득하기 위해 대신 변명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70년대의 쇼크와 혁신, 80년대의 보편타당한 가족 드라마, 90년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성장기로 변화의 과정을 구획 짓고 연대기로 정돈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식으로든 스필버그가 내놓은 다종다양한 영화들을 한 줄기로 꿰어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의 행보를 둘로 찢어놓아야만 한다. 말하자면 두 명의 스필버그를 필요로 한 건 관객이 아니라 평단의 입이다. 굳이 양립할 수 없는 우주 사이의 교차점을 탐색하는 것보단 그편이 훨씬 선명하고 손쉽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두 명의 스필버그로 분리해 접근해도 미적지근하다. 순수하게 엔터테인먼트를 강조한 프로젝트로 봤을 때 <레디 플레이어 원>의 심도는 미흡하다. 게임에 대한 영화 속 이해는 초보적인 수준이고 가상현실의 묘사 역시 익히 보아왔던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원작인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영화에 맞춰 변형된 몇몇 장면들에 대해 디지털, 게임 서사, 가상현실, 무엇보다 오타쿠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는 묘사라며 불만을 토로한다면 온전히 변호할 수 없을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세계관은 소위 말하는 ‘덕질’이 능력이 되는 은밀한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다. 천재 게임 개발자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일런스)는 가상현실게임 오아시스의 소유권을 걸고 세 가지 시련을 부여한다.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영화의 대사까지 통째로 암기할 줄 아는 덕질이 필요하지만, 스필버그를 이를 ‘현실과 균형을 맞추는 일’로 타협하고 이른바 ‘착하고 상식적인’ 주인공에게 힘을 실어준다. 적당한 타협. 또는 숱한 영화에서 봐왔던 익숙한 결말. 게임을 무대로 하되 비디오 게임의 탄생 시기인 1980년대 대중문화를 원전으로 내세움으로써 이른바 상업 드라마적으로 보편타당한 해답을 내놓는 것이다. 오타쿠의 시선에서 보자면 이 영화가 건드리고 지나가는 이스터에그들은 한없이 가볍고 처음 본 사람도 납득 가능할 만큼 무난하다. 반대로 2000년 이후 스필버그의 묵직한 연출에 찬사를 보내던 이들의 입장에서 봐도 <레디 플레이어 원>의 난감한 영화다. <A.I>, <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2005), < 워 호스War horse >(2011), <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 >(2015)의 진지한 통찰은 간데없고 사물의 어둠을 응시하고 현실과 재현의 거리를 고민하던 얼룩들도 깔끔하게 지워져 있다. 미성숙한 아이의 신기한 장난감처럼 자신이 사랑한 대중문화를 유희와 오락의 관점에서 쌓아 올렸을 따름이다. 이 거창하고 어딘지 낡아 보이기까지 한 놀이기구는 관점에 따라선 거의 퇴행적인 영화처럼 보일 지경이다. 어떻게든 스필버그를 이해하고 싶은 이들은 엔터테인먼트를 목표로 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모은 오마주 정도로 납득할지도 모르겠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스필버그를 한 방향, 한 가지 길로 규정지을 때 양쪽 모두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결과에 도달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레디 플레이어 원>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어정쩡한 면모 때문이다. 어정쩡함이란 단어가 이상하다면 달리 표현하겠다. 이건 분리된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할리데이는 최후의 시련을 통과한 웨이드에게 오아시스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계약서를 준다. 실은 숨겨진 테스트였기에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은 웨이드는 그제야 진짜 에그를 얻는다. 스필버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항상 두 가지 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아왔다. 예술과 상업, 영화와 현실, 리얼과 리얼리티. 스필버그의 개별영화들을 양 갈래 길로 분류하기 시작하면 그의 행보는 분열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며 어쩌면 스필버그는 한 번도 무언가를 구분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새삼스런 생각이 들었다. 스필버그에게 영화란 무엇일까. 반드시 라고 하긴 어렵지만 ‘작가’로 칭송받는 감독들의 작업은 대개 연역적이다. 대다수 작가들에겐 세계와 영화과 관계 맺는 이상적인 형태가 있다. 무릇 작가라면 그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영화를 두드리며 구도의 길을 걷는다. 반면 스필버그가 영화를 체험하고 구축해나간 방식은 철저히 귀납적이다. 그는 그때그때 자신이 흥미롭게 즐긴 대상을 영화적인 방식으로 소화시켜 표현의 영토를 넓혀 왔다. 스필버그는 탐욕스러운 모험자다. 재미, 호기심, 즐거움을 최우선에 두는 소년은 미지의 분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도전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한때는 도전과 개척의 대상이었을 영화에 터를 잡은 뒤 스필버그는 모든 경험들을 영화라는 무대 위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 슈가랜드 특급The sugarland express >(1974)을 연출했던 스필버그는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들에 매료되어 그 시적 리듬을 자연스레 흡수했고, < 이티E.T. >(1982)에는 각종 특수효과의 상상력과 마술적인 표현을 마음껏 뽐냈다. <쥬라기 공원>(1993)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의 지각적 리얼리티를 영화 안에 끌어들였다. 그 결과 “디지털 시대는 어떤 장면도 더 이상 경이롭지 않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그런 점에서 나 역시 유죄”라고 스스로 고백하면서도 새로운 표현방식과 전통적인(익숙한) 영화를 접목시키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스필버그의 극장에는 때로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이 상영되고 때로는 스펙터클의 도배되었다가 어떨 땐 새로운 기술 시연의 장이 되기도 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선택한 새로운 장난감은 가상현실 게임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어정쩡한 범작에서 스필버그의 코어에 접속하는 중요한 열쇠로 승화시키는 대사가 있다. 할리데이는 최후의 관문을 통과한 웨이드를 어린 시절 자신의 방으로 초대한다. 8비트 게임기에 몰두했던 소년 할리데이는 현실에서의 소통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안타까워하면서도 현실을 긍정한다. 그 끝에서 툭 던지는 한 마디 대사. “리얼리티 이즈 리얼.” 이 순간 현실과 가상현실게임으로 구분되고 가로막혀 있던 세계가 연결된다. 할리데이는 현실보다 게임이 더 편한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로 삼은 건 아니다. 게임 속에서 쌓은 할리데이의 위대한 업적과 긴 시간들을 누가 가상, 가짜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인가. 현실과 가상현실, 양쪽의 시간 모두를 긍정할 때 할리데이는 온전히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스필버그 역시 마찬가지다. 클래식 영화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고지식한 스필버그와 온갖 비영화적인 것(예컨대 CG, 3D, VR 등)들을 즐기고 기꺼이 영화의 세계로 초대하는 오타쿠 스필버그는 실상 분리되지 않는다. 오늘날 영화는 무엇일까. 매체가 섞이고 플랫폼이 분화되고 관객이 체험이 다종다양하게 분리되는 현재, 관객 각자의 영화적 체험이 존재한다. 전통적 영화의 개념, 바쟁이 찾아냈던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이 희미해진 지금 영화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그려진 것과 찍힌 것, 달리 말하자면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컴퓨터 그래픽의 등장으로 찍는 영화와 그리는 영화의 구분이 모호해진 지금, 라이브 액션 시네마와 그래픽 시네마를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모든 의문의 근본에는 ‘필름, 실사, 시네마는 다르다’는 고집, 혹은 달라야 한다는 바람이 반영되어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이 딱딱한 고정관념에 스필버그식으로 화답한다. 어떤 신기한 기술이든 받아들이고 거리낌 없이 흉내를 내되 소통할 수 있도록 현재화하는, 오직 즐거움을 향한 모험담.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세 가지 층위의이미지가 공존한다. 첫째는 웨이드가 속한 라이브 액션. 이는 필름의 질감과 할리우드 서사 영화의 관습을 흉내 낸다. 두 번째는 가상현실게임 오아시스의 플레이 이미지들. 이는 CG 애니메이션임을 일부러 선명히 드러내며 애니메이션이 축적해온 미학적 양식(이를테면 과장된 이미지와 애니메이션적 허용)을 기반으로 한다. 마지막은 최근 스필버그의 페르소나라 해도 좋은 마크 라이언스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재현한 제임스 할리데이다. 오아시스 속 캐릭터가 확연히 CG 애니메이션임을 드러내는 데 반해 할리데이의 비주얼은 필름을 극한까지 묘사한 최근 CG의 연장에 있다. 그려진 것이되 찍힌 것에 한없이 가까워지고자 하는 이미지. 여기서 다시 질문. <레디 플레이어 원>은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인가, 영화를 흉내 낸 게임인가. CG를 활용한 실사 영화인가, 실사를 흉내 낸 애니메이션인가.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결과물은 모든 개념을 포괄하고 경계를 허문 채 지금 여기 존재한다. 리얼리티 이즈 리얼. 사실적인 것(가상현실) 역시 사실(현실)의 일부라는 단순명료한 답. ‘영화적인 것’ 역시 영화의 일부라는 수용적 태도. 생각해보면 스필버그는 항상 그랬다. 스필버그를 대중과 예술이라는 평행선 위에 두고 찢어놓고 싶어 한 건 평자들의 욕망이었을 뿐, 그는 늘 대중문화의 여러 체험을 섞고 영화적인 것들로 소화한 뒤 쌓아 올려 우리의 ‘영화적’ 체험을 확장해왔다.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것은 영화라는 딱딱한 정전이나 개념이 아니라 숱한 대중문화를 통해 축적된 체험의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할리데이와 헤어지기 전 웨이드는 묻는다. “아저씨는 진짜예요?” 할리데이는 답한다. “내 게임을 해줘서 고맙다.” 이 짧은 문답에 스필버그의 지난 영화 작업이 오롯이 담겨 있다. “내 영화를 봐줘서 고맙다”고 쑥스럽게 고백하는 스필버그에게 답하고 싶다. 이제 진짜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고. 앞으로도 당신의 영화와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1. 어렸을 때, 영화 속에서 조금이라도 무섭거나 긴장되는 장면이 나오면 엄마는 내 두 눈을 가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가락 사이로 그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이티와 자전거와 소년이 처음 날아오르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자전거가 절벽으로 살짝 떨어지는 듯하다가 존 윌리엄스 스코어의 도움을 받아 다시 공중으로 부양할 때, 사람들은 박수를 쳐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만 그랬던 게 아니다. 아저씨 아줌마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랬다. 그 시절의 극장 풍경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던 것이다. 지금이야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관객으로서의 의무이지만 그땐 소리를 내며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 엄마의 손가락 사이로 그 광경을 목격했다. 인디아나 존스가 굴러오는 돌을 피해 달아나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는데, 소중한 모자가 아직 동굴 안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존스는 손을 뻗어 결국에는 모자를 구해낸다. 바로 그 순간에도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모과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 그렘린 >)과 배낭 속에서 튀어나온 권투 글러브가 악당의 얼굴을 때리는 장면(< 구니스 >)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순간마다 엄마의 손가락과 사람들의 환호성과 열정의 박수가 겹쳐져 있었다. 그때마다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2. < 구니스 The Goonies > 아마도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였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일간지 신문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구니스 대개봉’ 광고가 실리자 외출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스크린이 밝아지고 스태프 롤이 떠오를 때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가 아니었다. 또 한 번 속았다. 80년대의 많은 영화들이 그런 전략을 취했다. 메인 포스터에 커다랗게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쓰여있으면 그건 일종의 재미 보증서 같은 역할을 했다. < 피라미드의 공포 >도 그랬고, < 그렘린 >도 그랬다. 그 사기 행각의 결말은? < 구니스 >는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 영화에는 정말 멋있고 매력적인 소년 소녀들이 잔뜩 나온다. 구니스의 리더, 션 오스틴은 동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아이들의 주장에 맞서 천식 호흡기를 들고 버텼다. “지금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면 그곳은 우리의 하늘이 아니야, 하지만 이곳은 우리의 세상이지. 구니스의 세상.” 뭐 이런 식의 대사를 하고 천식 호흡기를 휙 빨아들이는 그 모습, 카스리스마가 엄청나다. 난 케 후이 콴의 배낭 속이 궁금했다. 어린 아이계의 맥가이버라고 할 만한 발명 소년의 핵심기술이 그 가방 안에 모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미끄러지고, 달리고 물에 빠지고 하는 모험의 세계에서, 케 후이 콴의 손재주가 더 즐거운 길을 인도해 주었던 것이다. 나머지 아이들도 저마다 멋진 선택을 하며 마을을 구해내는 데 일조한다. 그런데 < 구니스 >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나온다. 모험이 끝나고, 션 오스틴은 담요를 두르고 상념이 잠겨있다. 그때 그를 리더로 인정해준 형의 여친이 다가와 볼에 뽀뽀를 해주는 것이다. 동굴 속에서는 누군지 모르고 키스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예쁜 누나의 뽀뽀를 받은 션 오스틴은 천식기를 던져 버리고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풍문에 따르면 그렇게 소년들은 성장한다고 한다. < 빅 Big > 어느 날, 동네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비디오 가게에 < 빅 > 이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물건이라고. 처음엔 관심이 없었지만 친구가 비디오를 빌리는 데 성공하자, 어느새 그의 집 소파에 앉아 상기된 표정으로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어느새 비디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이야기였다. 어른이 된 톰 행크스는 어린이의 감각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어른들의 세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아이들의 욕망을 완벽하게 건드리는 스토리 라인, 톰 행크스의 당황하는 연기가 포인트다. 흠뻑 빠져 2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건 톰 행크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였다. 데이트를 마치고 두 사람은 같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웃옷을 벗는다. 그리고 불을 끈다. 그렇게 암전인가, 싶은 그 찰라, 그러나 톰 행크스가 다시 불을 켰다. 우리는 소년들의 취향을 확실히 저격하는 페니 마셜의 연출기법에 혀를 내둘렀다. 나와 친구들은 다시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갔지만, 공차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그 장면이 떠나질 않았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렸다. 그 어둠 속에서 공을 차며 나는, 또 한번 어른이 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 이티 E.T.: The Extra-Terrestrial > 내 기억에 < 이티 >는, 우리나라에서 개봉하기 전부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웬만한 동네 형들 집에는 이티 인형 하나쯤은 다 있었고, 식빵같이 생긴 이티의 머리라는 노래를 다들 부르고 다녔고,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티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아이들도 존재했다. 이티는 뒤뚱거리며 소년에게 다가왔고, 뒤뚱거리며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친구가 된 이티와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온갖 모험을 벌이다가 공중부양을 하며 이 세계를 내려다본다. 꿈 같은 일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 꿈결 같은 공기를 만끽하던 그 첫 번째 관람체험이 아직도 생각난다. 내 생각에 < 이티 >는 영화사상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영화이며, 외계에서 온 생명체의 마음에까지 동화시키는 거의 유일한 영화이다. 난 관객의 감정 컨트롤을 이렇게까지 잘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즐거움과 슬픔, 공포와 불안을 요리조리 오가는 이 영화의 연출에는 경외감 마저 든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엘리엇이라는 소년에 동화되었다. 몇 년 뒤에 봤을 때는 이티에 감정이입이 되었고, 그다음엔 열쇠남(피터 코요테)에 공감했다. 지금은 소년의 엄마에 정이 간다. 이런 식이다. 언제나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보게 만드는 힘으로 < 이티 >는 2016년 여기까지 왔다. 또 한 번 영상자료원 스크린에 도착할 이티를 생각하니, 또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모른다. 3. 돌이켜 보니, 애초에 설렘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엄마의 손가락 사이에서 시작된 영화 관람 모험이,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어린 세대들은 어떨까? 그들만의 레전드가 따로 있을 것이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영화 목록 또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여기, 이 영화 리스트가 정답이다. 이번 기획전이야말로 당신을 다시 설레게 할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세대에게는? 내가 보증한다. 이 리스트는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니다. 영화 각각의 흥분지수가 워낙 높아서 2016년 관객들에게도 먹혀들 것이 확실하다. 그러니 뭘 해야 할까? 꿈과 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지하 1층으로 지금 당장 달려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