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라이크 포테이토
- 감독
- 리가르트 반 덴 버그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프랭크 루텐바흐, 지니 닐슨, 해밀튼 데라미니, 숀 카메론 마이클, 캐스퍼 바덴홀스트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암전된 화면에 조용히 깔리는 차 소리. 크레딧이 이어지다 제목이 뜨면 화면 가득히 흰색의 복면이 보인다. 극대화된 클로즈업이라 세세한 천의 격자무늬 질감마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와 함께 심장박동처럼 둥둥둥 울리는 저음의 빠른 타악 리듬, 불안한 심정을 마구 휘젓는 속삭임의 보컬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이국적인 구음의 노래가 펼쳐지면 그제야 비로소 공간과 인물이 소개된다. 달리는 차 안. 무장한 군인. 흙바닥의 경치. 생소한 아라비안 문자. 회반죽의 건물들과 히잡 그리고 카피에까지. 여기는 미국이 아니다. 불타는 화약고, 중동이다. 남자는 지금 복면을 쓴 채 헤즈볼라 무장단체 지도자를 섭외하러 가는 길이다. 이 긴박감 넘치는 오프닝을 통해 마이클 만 감독은 < 인사이더 >라는 영화에 대해 명료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진실에 도달하는 길이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에 대해. 여기에서 흐르는 곡은 호주의 뉴웨이브 듀오 ‘데드 캔 댄스’ 출신의 리사 제라드 2집에 실린 ‘Tempest’란 노래로, (제목 그대로) 잘 살던 두 남자 인생에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의 전조를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번뇌에 찬 목소리와 혼동에 가까운 퍼커션을 통해 그들에게 닥칠 폭풍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짐작게 한다. 로웰 버그만, 제프리 와이건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의 강의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제프리 와이건 박사는 기로에 서 있다. 그는 자고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남자였다. 그 지식이 공익적으로 사용되지 않음을 불편해했고, 미국 굴지의 담배회사 브라운 앤 윌리엄스는 그러한 그의 자의식을 부담스러워 했다. 그래서 원만치 못한 대인 관계를 핑계 삼아 그를 해고해버린다. 비밀서약과 가족의 안정을 빌미로 그의 목을 서서히 옥죄어온다. 안전한 비겁자가 되느냐, 용감한 희생자가 되느냐 그 사이에 낀 그는 신념과 도덕적 가치를 좇아 싸워온 PD 로웰 버그만과 만나 위대한 결단을 내린다. 비록 자신에게는 최악의 결정이 되겠지만. 로웰 버그만 역시 압력과 회유에 시달린다. 보도를 통해 소송에 걸리면 회사 매각과 관련해 주가가 폭락할 것을 염려한 간부들의 방해로 방영금지라는 초유의 결정을 받아든다. 모든 상황이 무(無)로 돌아가 버릴 위기에 빠지자 그는 다른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미디어를 폭로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결국 인터뷰는 무삭제로 방영되지만 제프리 와이건은 고소당하고 이혼하며, 로웰 버그만은 직장을 떠난다. 이 인터뷰가 방영되는 감격스러운 장면에서 다시 리사 제라드 2집에 실린 ‘Sacrifice’가 흐른다. 처연하고 소름 끼치는 마력의 보이스가 그들의 희생을 위로하고 달래준다. 어쩌면 감독은 이 두 곡을 쓰기 위해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에게 음악을 맡겼는지 모른다. 마이클 만은 영화만큼이나 음악에서도 완벽을 추구하는 감독이다. 데뷔작 <비정의 거리> 와 그다음에 찍은 <악마의 성>에선 당시 하이테크한 유행의 정점에 오른 탠저린 드림의 차갑고도 강렬한 전자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인기 TV 시리즈였던 <마이애미 바이스>에선 감각적이고 현란한 얀 해머의 신디 사운드로 스타일을 과시했다. 고전적인 멜로 서사극의 절정을 보여준 < 라스트 모히칸 >에선 트레버 존스와 랜디 에델만이란 정반대적인 성향의 작곡가를 고용해 인상적인 교향시를 조율하기도 했다. <히트>와 <퍼블릭 에너미>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다양한 삽입곡들과 함께 엘리웃 골든탈의 미니멀하면서도 전위적인 스코어로 임팩트를 남겼으며, 도시의 어두운 이면과 우울한 범죄의 초상을 담은 < 콜래트럴 >과 극장판 < 마이애미 바이스 >에서는 제임스 뉴톤 하워드와 존 머피를 통해 HD 질감에 걸맞은 세련된 감성의 잿빛 스코어를 요구했다.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고, 비정한 도시(장소)의 슬픔을 간직한 그의 영상 속에서 설명과 대사는 지엽적이다. 대신 음악이 그 감성을 묘사한다. 모자란 설정을 채워주고 있다. <인사이더>에서도 마찬가지. 대사는 적되, 카메라는 인물에게 초근접해 다가가고, 사건의 무게와 심각성은 그들의 얼굴과 뒷모습에 진 음영을 통해 표현되며, 감정은 음악으로 발현된다. 대기처럼 영화 내 부유하는 스코어는 조용하지만 은은한 울림으로 그들의 심적인 고통과 피로함을 호소한다. 상처뿐인 영광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텁텁한 뒷맛이다. 리사 제라드, 피터 버크 80년대 초반부터 리사 제라드는 브랜든 페리와 함께 ‘데드 캔 댄스’를 통해 아프리칸 폴리리듬과 아일리쉬 민속음악, 그레고리안 성가에 중세 진언까지 포용한 월드뮤직 스타일의 뉴웨이브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갔다. 그들이 시도한 다크 웨이브는 고딕적인 성향의 복합적인 엠비언트 사운드와 아트록의 만남으로 비록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진 못했지만 지속적인 반응과 평단의 호응을 얻어냈고, 90년대 초반 그들의 앨범이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되면서 차츰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다. 1995년 < 히트 >에서 그녀의 곡 ‘La Bas’와 ‘Gloradin’, ‘Celon’을 사용하며 눈여겨봤던 마이클 만은 전격적으로 차기작이었던 <인사이더>의 음악을 리사 제라드와 그녀의 음악적 파트너였던 피터 버크에게 맡기는데, 앞서 소개한 삽입곡 외에 다양한 트랙에서 미니멀하면서 에스닉한 분위기의 엠비언트 사운드를 구사하며 숨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형화되고 단조로울 수 있는 느낌을 탈피하는 건 신비스러운 구음을 구사하는 리사 제라드의 목소리 덕분이다. 두성과 가성, 진성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아프리카 토속적인 주술서부터 그레고리안 성가 스타일까지 두루 연결 짓는 그녀의 보이스톤은 영화에 묵직하면서도 숭고한 정신을 부여하고 있다. 내부자(Insider)들이 철저히 아웃사이더(Outsider)가 되어가는 과정을 건조하게 담아낸 영화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는 건 그 한 맺힌 살풀이의 힘이 크다.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의 부족한 부분은 베테랑 영화음악가 그레이엄 레벨이 메꾸고 있다. 전체적인 톤은 비슷하게 맞춰나가면서도 자신의 특징이었던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클래식컬한 감성을 덧붙여 두 캐릭터가 가지는 고독과 시련을 형상화했다. 영화음악가가 되기 전 인더스트리얼 밴드에서 활동한 바 있는 그답게 음울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의 짧은 큐들이다. 이들의 스코어가 영화의 전체적인 공기를 스케치한다면 쟁쟁한 네임 밸류를 자랑하는 삽입곡들은 영화 내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며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되었던 것처럼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재판을 앞두고 법원에서 증언할 결심을 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현란한 기타 연주곡은 두 차례 아카데미 음악상에 빛나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개인 앨범 [Ronroco]에 실린 ‘Iguazu’로, 심란한 제프리 와이건의 용기를 대변한다. 반면 방송국의 전횡을 신문사에 고발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인상적인 색소폰 연주곡은 ECM 레이블의 간판이자 유럽 최정상급의 아티스트 얀 가바렉의 앨범 [Rites]에 실린 동명의 ‘Rites’란 곡으로, 로웰 버그만의 양심을 상징한다. 두 곡은 각각 캐릭터들의 고독과 고난, 행동과 맞물리며 스코어가 지니지 못한 질감을 명징하게 표출한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트립합의 대부 메시브 어택의 ‘Safe from Harm’이다. 방송국을 그만두고 나서는 로웰 버그만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후일담 자막이 이어지는 부분까지 마치 재단된 것처럼 딱 맞춰 흐른다. 엔드 크레딧에선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가 작곡한 멜랑꼴리한 분위기의 ‘Meltdown’이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Massive Attack - Safe From Harm 마이클 만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방식과 달리 이 2시간 40분에 이르는 긴 영상에 영웅주의 스코어와 상업적인 팝으로 도배하지 않았다. 음악은 단지 필요한 부분에 효율적으로 배치됐을 뿐이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 용기와 좌절, 공포와 희망을 표현하는 데 있어 결코 모자람이 없다. 건조하고 차갑기 이를 데 없지만, 때론 침묵하고 관조함에도 이런 모노톤의 투명한 소리들의 총합이 바로 <인사이더> 사운드트랙이 가진 매력이다. 그 속에서 일말의 온기를 찾아내는 것이 진실과 정의에 다가가는 길과 비슷하지 않을까.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는 <인사이더>로 골든 글로브 음악상에 올랐다. 작업에 만족한 마이클 만은 차기작 < 알리 >에서도 이들과 작업을 이어갔고, 이 역시 골든 글로브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노고와 실력을 인정했다. <인사이더> 사운드트랙은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F-320) 에서 직접 귀로 확인할 수 있다. Track List 1. Tempest 2. Dawn of the Truth 3. Sacrifice 4. The Subordinate 5. Exile 6. The Silencer 7. Broken 8. Faith 9. I'm Alone on This (by Graeme Revell) 10. LB in Montana (by Graeme Revell) 11. Palladino Montage (by Graeme Revell) 12. Iguazu - performed by Gustavo Santaolalla 13. Liquid Moon 14. Rites ? performed by Jan Garbarek 15. Safe from Harm ? performed by Massive Attack 16. Meltd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