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필름메이커 시리즈: 시네마토그래피
- 감독
- 릭 로빈슨, 잭 메싯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릭 로빈슨, 니콜 포스트, 아론 시스네로스, 잭 메싯, 마크 게리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한국 독립영화는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태동하였다. 서울영화집단과 서울영상집단, 민족영화연구소, 노동자뉴스제작단, 장산곶매와 같은 단체들은 소형영화, 작은영화, 민중영화와 같은 분류의 영화들을 내놓았다. ‘독립영화’라는 명칭이 PD(민중민주)와 NL(민족해방) 사이에서 나름대로 중립적인 용어였기 때문에 무난히 수용되었다는 견해 1) 가 있을 정도로, 초기 한국 독립영화는 반독재 투쟁 및 민주화운동과 결부되어 있었다. 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고, 93년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민주화운동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연이어 들어서며 민주화운동은 완전한 결실을 맺은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면의 그늘 또한 존재한다. 반독재투쟁이 한참이던 시기 촬영된 < 상계동 올림픽 >(1988)의 풍경은 < 그들만의 월드컵 >(2002)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었다. 제도적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한국 사회는 경제, 노동, 인권, 소수자 등의 문제에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IMF 외환위기 극복, 경제성장, 한류 등으로 되는, 소위 ‘국뽕 서사’의 이면에는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이 놓여 있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의 일상적인 출근길, 희망과 낙관을 품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여전히 산재하는 문제들을 주목한 이강현의 < 파산의 기술記述 >(2006)과 같은 작품은 그것을 선구적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사진작가 홍진훤의 첫 다큐멘터리 작업이라 할 수 있는 < 멜팅 아이스크림 >(2021)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최신의 작업 중 하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창고에서 ‘수해필림’이라고 적힌 의문의 필름 뭉치가 발견된다. 당시 현장을 기록하던 사진 집단들을 찾아가 이 필름의 흔적을 따라가며 복원을 시도한다.” 홍진훤의 기존 작업을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과거의 사진을 복원하고자 하는 열망에 관한, 작가보다는 아키비스트의 지위를 지닌 이의 작업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영화는 수해를 입어 필름 위의 유광제가 녹아내릴 위기에 처한 사진들을 복원하는 한편, 사진을 찍었던 이들이 기억하는 당시에 관한 인터뷰를 담아낸다. 더 나아가, 홍진훤은 ‘미디어 참세상’ 아카이브에 있던 2000년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및 이주 노동자 투쟁 현장이 담긴 이미지를 포개어 놓는다. 사진에 담긴 ‘민주화운동’, 2000년대의 투쟁현장, 그리고 인터뷰와 사진 복원이 벌어지는 현재, 이 영화에는 세 개의 시간축이 공존하고 있다. 세 개의 시간축을 몽타주하는 <멜팅 아이스크림>은 “수해필름의 복원”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와는 달리 민주화운동의 시간을 기념비적인 것으로 추켜세우지 않는다. 민주화운동 당시 각각 민족사진연구회, 사진통신, 사회사진연구소에서 활동했던 박승화, 서영걸, 이정용의 인터뷰는 민주화운동 시기의 영웅담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A컷’을 얻는 것에 몰두하게 된 자신과 동료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반독재투쟁이라는 추상적인 말”에 매몰된 민주화운동 속에서 계급과 경제의 문제는 뒤편으로 사라졌고, “반독재는 알지라도 경제는 모르는” 이들에 의해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는 가속화되었다. 민주화운동의 영웅들이 대통령을 지내던 시기의 투쟁들은 맹렬하게 짓밟혔다. <멜팅 아이스크림>이 인용하는 2000년대 초중반의 투쟁 현장 푸티지들은 폭력과 욕설과 절규와 눈물로 가득하다. <멜팅 아이스크림>에서 복원되는 사진은 민주화운동 투사들의 영웅적인 모습이 담긴 A컷들이 아니다. 과거의 기록을 들춰보고 복원하려 할수록, 이미지는 필름에서 지워진다. 이미지가 지워진 필름은 그저 투명할 뿐이다. 영화의 인터뷰이들은 386세대의 민주화운동이 그러한 성질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기록을 들춰볼수록 그것은 투명한 공백이 된다. 수해로 훼손된 필름은 녹아내린 물감이나 아이스크림처럼 이미지를 뭉개버린다. 비디오 캠코더와 저화질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2000년대의 투쟁현장 또한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이 그대로 노출되는 ‘깍두기 현상’으로 가득하다. 열화된 이미지들, 열화된 기록들은 필름에서 이미지가 지워지듯 공백으로 돌아간다. 홍진훤 감독은 촬영감독에게 김대중 대통령의 동상을 “최대한 이상하게”, “녹아내리듯 그리고 추락하듯”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말했다. 2) 과거의 영웅들이 담긴 이미지가 흘러내린 공백엔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차별, 우경화 등이 새겨진다. 2000년대의 투쟁현장이 담긴 푸티지들의 일그러진 영상은 영화 후반부로 향할수록 점점 선명한 이미지들로 채워진다. 이것은 민주화운동 영웅들의 이미지 밑에 잠들어 있던 공백이 무엇으로 채워졌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그 공백은 현재까지도 진행되는, 당시와 같으면서 다른 투쟁을 일으킨다. 공백이었던 계급, 경제, 노동, 소수자의 문제는 2022년에도 여전히 산재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 공백 위로 행인들의 모습이 담긴 슬로우모션과 다양한 이유로 투쟁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삽입한다. 이 음성은 2021년 하반기 총파업에서의 음성이다. 팬데믹 시기에 물류를 책임진 화물연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보건의료노조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공백을 채우는 새로운 투쟁으로 새로운 세계가 기록된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공백 없는 운동이 가능할까?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촛불혁명을 거쳐온 지금 무언가 반복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지난 5년간 투쟁현장을 기록하고 < 골목의 이야기 >(2016), < 피와 재 >(2016), < 례 >(2018) 등을 만들어온 다큐멘터리스트 권순현의 단편영화 < 농몽 >(2020)은 그러한 인상을 풀어놓는다. 이는 지난한 투쟁의 결과에 대한 반성과 소회라기보단 그 과정에서 느낀 복잡한 감정을 토로하는 것에 가깝다. 권순현은 "‘현장’은 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며, "현기증 속에서 나는 그 어떤 사건도 그 어떤 사물의 위치도 제대로 그려낼 수 없었"고, "(지난) 세 편의 다큐멘터리는 모두 망향의 기록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3) <농몽>은 이 모든 것을 겪은 이후, 그리고 촛불혁명 이후 감독 스스로가 느낀 공허함에 관한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자기연민과 자기비하로 가득하다. 감독은 A, B, C라 명명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꺼낸다. 함께 투쟁한 사람, 2008년 촛불시위를 제안한 사람,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 감독의 내레이션은 세 사람의 말과 그들과 나눴던 대화를 끌어온다. 촛불은 2008년 당시 20대였던 A의 ‘팔뚝질’을 대체하는 사회운동의 장신구일 수도, 더 큰 민주주의 같은 것을 꿈꾸었으나 자초한 논란으로 인해 실패해버린 B의 바람이 담긴 무언가일 수도 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2016년의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시위 당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이들은 이 시위가 무엇보다 '평화'시위일 것을 주장하며 기존의 운동권으로 불리던 이들이 전개하던 투쟁 방식에 반대한다. 그때의 '평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제도 조선소의 투쟁을 기록하던 감독은 그곳에 위장취업할 것을 제안받지만, 신체검사에서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위장취업에 실패한 것에 안도한다. 얼마 뒤 조선소에서 크레인 붕괴사고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는 다시 한번 안도한다. C는 크레인 붕괴사고를 겪었다. 그의 트라우마 앞에서 감독은 안도할 수 없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력을 동원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그들의 투쟁에 대한 폭력이 전도된 것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촛불을 들고 평화시위를 주장하며 거리에 나서는 행위는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연대임과 동시에 시위현장에서의 폭력을 시야에서 치워버리고자 하는 모순적인 행위다. 투쟁현장을 기록하던 감독이 느끼는 자기모순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농몽>은 투쟁현장과 방식에 대한 불쾌감과 반항, 혐오를 담은 영화가 아니다. 촛불혁명 이후의 회고담 같은 것은 더욱 아니다. 학생운동이 종말을 맞이하고 모든 것이 망해버리거나 끝나버린 것 같은 순간 현장으로 향한, 노동자도 운동가도 아닌 위치에 서있으면서 투쟁현장에 뛰어든 어떤 사람의, 다소 질척이는 자기고백이다. <농몽>이라는 자기고백은, 그 결은 조금 다르지만 <멜팅 아이스크림>이 보여준 공백 이후의 세계와 공명한다. 공백 이후의 세계, 한쪽에서는 승리의 서사를 써내려 가지만 다른 한쪽에선 항구적인 투쟁 속으로 사람들이 내던져지는 세계, 이 세계는 마치 모든 사람의 기력이 소진되길 기다리는 지옥인 것만 같다. 물론 두 영화가 그 지옥에 머물고자 하는 냉소에 파묻힌 작품이라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러한 냉소를 딛고 일어나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멜팅 아이스크림>과 <농몽>은 녹아내린 시대와 소진된 마음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들이며, 이 이야기들이야 말로 그 이후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 1) Young-a Park, Unexpected aliances: Indiependent Filmmakers, the State, and the Film Industry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4, p.50(이도훈, "이름의 부재와 경험의 빈곤", 「독립영화」, 한국독립영화협회, 제49호, 2020에서 재인용). 2) 홍진훤, "서신교환: 장윤미X홍진훤, 「마테리알」, 7호, 마테리알, 2022, p.48. 3) 권순현, 「2021 독립영화 쇼케이스」, 한국독립영화협회, 2022, p.158~159.
1.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연재를 시작한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가 만들 에세이 필름의 제작비는 한푼도 모이지 않았다. 투자자나 제작자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시작할 때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전개에 아연실색한 정연씨는 실망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지돈씨, 어쩌죠. 게다가 연재 조회 수는 매회 마다 정확히 반토막이 났고 이렇게 계속 쪼개진다면 쿼크 입자 수준까지 내려갈 지경이었다. 정연씨, 꼭 돈이 있어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요. 내가 말했다. 로저 코먼이나 로버트 로드리게즈를 떠올려봐요. 나는 로저 코먼이 첫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기시켰다. 로저 코먼은 본인이 제작한 첫 영화 <해저에서 온 괴물>(1954)을 찍기 위해 지인들에게 투자금 개념으로 돈을 받아냈다. 조건은 성공하면 러닝 개런티까지 더해서 돌려주겠다는 거였다. 심지어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에게도 임금을 주기는 커녕 돈을 받았다. 로저 코먼이 와이어트 바니에게 물었다. 바니. 자네 전에 시나리오 팔아서 얼마 받았나? 4천 달러요. 좋아! 그럼 2천 달러만 투자하게. 감독으로 데뷔시켜줄게. 그러니까 영화는 주식 투자와 다를 바 없다. “투기 시대의 피투자자 정치Investee Politics in a Speculative Age”인 거죠. 금정연이 손 따옴표를 그리며 말했다. 지돈씨가 제게 영감을 줬네요. 금정연에 의하면 벨기에의 철학자 미셸 페르Michel Feher는 이렇게 말했다. 금융화된 “에이전시”의 노동자 주체는 신자유주의의 주체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주체가 임금을 받고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라면 동시대의 주체는 자산을 평가받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야한다. 아마존이나 우버 같은 기업을 보라. 지금 당장은 이윤이 낮거나 손해를 봐도 주가는 치솟는다. 핵심은 상품 판매를 통한 이윤이 아니라 낙관적인 미래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의 실행이다. 바로 이게 모든 예술-창작의 원리지요. 특히 영화.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자본주의가 유희 자본주의화 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아……? 이제 우리의 포트폴리오-연재를 관리해야 할 때가 왔네요. 2. 포트폴리오 혹시 잊은 사람들이 있을까봐 말하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은 에세이 필름을 제작하기 위한 시나리오 또는 트리트먼트다. 단지 “에세이”라거나 칼럼, 아니면 영화에 대한 수다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우리는 21세기 한국 영화가 어쩌면 갈수도 있었을 상상의 경로를 민속지적 관점에서 기억하고 복원하는 오디오-비주얼-에세이 필름을 제작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고 이 영화의 감독은 금정연이 될 예정이다. Lost Korean in Korean cinema 감독 금정연 시나리오 금정연 목소리 금정연 제작 금정연 편집 금정연 … .. Thanks to 정지돈… 이게 내가 (미쉘 페르의 용어로 말하면) 추측하고Speculative 투기하는Speculative 미래다. 문제는 금정연이 영화감독을 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 상업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됐을 때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금정연이 영화감독까지 탄탄대로를 밟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우리랑 연락 끊지 마요, 정연씨, VIP 시사회에서 강동원 옆에 앉혀줘요, 정연씨,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금정연은 고개를 저었다. 지돈씨, 저는 영화 감독이 될 생각이 없어요. 왜요, 왜요. 정연씨가 아니면 누가 감독해요? 누군가 하지 않을까요… 어느 글에서 쓴 적 있지만 금정연은 야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기다리는 유형의 사람이지 쟁취하거나 애쓰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서평가가 됐고 어쩌다보니 편집위원이 됐으며 어쩌다보니 시나리오 작가도… 그렇지만 영화감독은 어쩌다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감독이 되기 위해선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감독의 인성에 대한 걱정 없이 영화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직업으로서의 영화감독은 도달하기 힘들 뿐 아니라 유지하기도 힘들다. 어떤 감독들은 이 과정에서 종종 맛이 가기도 하고(이에 관한 내용은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시그마북스, 2010)를 참고할 것) 맛이 간 상태로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거대한 똥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게 바로 내가 금정연이라는 장외 주식에 내기를 건 이유다. 미셸 페르는 말했다. 투기자본주의 시대에는 노동조합과 다른 종류의 저항이 필요하다. 그것은 투자를 미래를 저당잡히는 행위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피투자자들의 힘을 거대하게 조직해 그들에게 투자하지 않고서는 체제가 유지될 수 없게 만드는 거라고… 다시 말해 <나랏말싸미>가 잘 되기만 하면…… 그러나 영화 개봉과 거의 동시에 우리는 증권거래소의 통보를 받았다. 상장 폐지. 우리 중에 유일하게 주식을 하는 소설가 오한기는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잡주에 투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잡주? 금정…? 참고로 한기씨는 공격적인 주식 투자로 한푼도 벌지 못했고, 요즘은 일론 머스크가 나오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설치류를 닮은 어느 공무원이 도지코인에 투자했다가 전재산을 잃고… 일론 머스크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그가 탄 스페이스X의 민간 우주선에 숨어들었다가 화성에서 온 외계인을 만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3. Secret Lives of Great Filmmakers 금정연 King jung yeon 1981. 9. 2. ~ 국적 대한민국 별자리 처녀자리 대표작 <커피와 담배와 영화>, <아무튼 택시 드라이버> 그외 다수 말말말…. “Saram salryeo yeogi saram itseoyo.” 영화계의 전설에 따르면 금정연이 처음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한 것은 영화평론가 겸 영화감독 정성일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성일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연재 중이던 금정연의 칼럼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을 눈여겨봤다가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추천했다. “금정연에게 맡겨봐. 마감을 칼같이 지켜.” 4. 얼굴들 감독의 얼굴이 아니야. 금정연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을 찍을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말했다. 왜? 봐봐. 친구가 금정연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다. 그리고 한국 영화감독들의 이름을 검색창에 차례로 입력했다. 박XX, 김XX, 이XX …. 차이를 모르겠어? 무슨 차이? 금정연과 한국 영화 감독들의 관상 차이. ……. 나는 금정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정연씨, 정연씨는 영화감독 관상이 아니래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정연씨는 그 말을 듣고 심각해졌다. 그러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어쩌죠? 제 남은 인생은 어떡하구요. 우리 나윤이의 앞날은…? 나 역시 심각해진 건 마찬가지였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금정연의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관상 문제가 터진 것이다. 관상이라니, 21세기 메타버스 시대에 무슨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와 정연씨는 우리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관상의 문제는 얼굴의 문제이며 얼굴은 언어와 함께 영화의 핵심이자 동시에 제거되어야 할 형상,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스펙타클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옵시스! 정연씨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예요? 미메시스!! 그건 또 왜…? 지돈씨,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머의 위버 마리오네트와 로베르 브레송의 모델론을 거쳐 영화의 형상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무슨 말인지?? 인간의 뇌에서 얼굴 인식 매커니즘은 가장 고등한 기능 중 하나예요. 영장류의 뇌 하측두엽에는 얼굴에만 반응하는 영역 여섯 곳이 있습니다. 이를 페이스 패치Face Patch라고 해요. 각 패치들은 부분 기반 관점과 전체론적인 게슈탈트 원리를 결합해서 얼굴을 검출하고 구성하고 식별합니다. 어떤 패치는 얼굴의 방향에 반응하고 어떤 패치는 모양에 반응해요. 더 흥미로운 건 내측두엽에는 사람의 이미지에만 반응하는 신경세포 집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중 한 세포는 유명 인사의 얼굴에만 반응해요!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 중요한 건 영화가 일종의 얼굴 패치라는 사실입니다. 재현이 중심이 된 영화 속의 얼굴은 특정 문화권의 얼굴을 뇌에 업데이트한다는 거죠. 패치를 설치한 것처럼요. 연재 초기에 했던 이야기 기억나세요?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자국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어는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니까, 모든 감독들이 무성 영화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화라는 예술의 핵심처럼 여겨진 얼굴 역시 사실은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예요. 특히 스펙타클로서 재현된 얼굴은 더욱 그렇죠. 제가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그와 브레송을 말한 이유를 이제 알겠죠? 필립 라쿠 라바르트의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연극에서 무대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스펙타클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은 오직 목소리, 낭독만으로 전달할 수 있다. 라쿠 라바르트에게 미메시스란 어떤 장면의 모사 또는 재현이 아니라 현시다.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만드는 것. 이러한 실천을 위해서 형상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현이란 욕망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들로 붐비는 거추장스러운 형상화이다. 즉 그것은 알리바이의 공간이다.” 형상화가 재현이 아닌 즐거움으로서의 욕망이 되기 위해서는 “모방적 구조가 아닌 도표적 구조”로 드러나야 한다. 영화는 그럴 때에 진정 형상적인 것이 된다. 20세기 영국의 배우이자 연극연출가 고든 크레이그는 연극이 사회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창조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천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배우의 움직임은 상징적인 동작만으로 제한되고 2) 얼굴에 가면을 씌우며 3) 종국에는 배우를 인형으로 대체할 것. 로베르 브레송 “모델들. 그들은 겉으로는 기계적이 되었지만, 내적으로는 변한 것 하나 없이 순진무구하다.” 그러므로 비약하면, 정연씨가 말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영원히 지금 여기서 씌어져야 합니다. 기록, 확인, 재현, 묘사의 조작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수행동사라고 부르는 것, 정확히 말해 발화하는 행위 외에 어떤 언표도 가지지 아니하는 그런 진귀한 언술적인 형태. 삶은 영화를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영화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뿐입니다. 이른바 포스트-얼굴Post-Ulgul! 응? 지돈씨 대략 이런 내용으로 이번 연재는 마무리 해주세요. 음… 더 자세히 설명해야 되지 않을까요? 모르겠어요? 알듯말듯… 그럼 제가 다음 연재 때 보충할게요. 정말요? 어쩌면…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김경식 옮김, 2000, 열린책들)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로버트 쉬네이큰버그, 정미우 옮김, 시그마북스, 2010) 『텍스트의 즐거움』(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동문선, 1997) 『무대』(필립 라쿠-라바르트, 장 뤽 낭시, 조만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통찰의 시대』(에릭 캔델, 이한음 옮김, 알에치코리아, 2014) <고든 크레이그의 연극예술론>(정하니, 2018)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로베르 브레송, 오일환, 김경온 옮김, 동문선, 2003) “Movements of Counter-Speculation: A Conversation with Michel Feher”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movements-of-counter-speculation-a-conversation-with-michel-feher/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