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즌 리버
- 감독
- 코트니 헌트
- 제작년도
- 2008
- 출연
- 멜리사 레오, 미스티 업햄, 마이클 오키프
최근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대폭 높아져 남태평양의 섬나라나 심지어는 해변이나 큰 강에 가까운 대도시들, 즉 미국 뉴욕(맨해튼),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까지 물에 잠길 수 있다는 기사가 자주 보이고 있다. 요즘 이런 기사의 제목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표현이 바로 ‘겨울 왕국’이다. ‘사라지는 겨울 왕국’이라는 식의 문구가 나오는 것인데, 마치 유행어처럼 이런 표현이 나오는 이유는 물론 2014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 겨울 왕국 >의 인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프로즌 Frozen>이란 제목으로 2013년 11월 27일에 개봉되었고, 국내에선 < 겨울 왕국 >이란 제목으로 2014년 1월 16일, 일본에선 <안나와 눈의 여왕>이란 제목으로 2014년 3월 14일에 개봉되었다. 안데르센 원작의 동화 「눈의 여왕」을 원안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스토리는 사실상 오리지널에 가깝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역대 53번째 작품이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상 처음으로 2명의 ‘프린세스(공주)’가 등장한다고 한다. 영화 역사상 세계(월드와이드) 흥행기록 역대 5위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작품이기도 하다. (박스오피스모조닷컴 /2014.06.23 확인) 워낙 많은 이들이 본 작품이므로 굳이 본 원고에서 내용을 다시 설명할 생각은 없고, 이번에 < 겨울 왕국 > 이야기를 하고자 생각한 계기가 된 것은 얼마 전 일본에서 평론가 나카모리 아키오가 발표한 한 원고를 읽었기 때문이다. 나카모리 아키오는 ‘오타쿠’란 단어를 현재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다. 지금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은 물론이고 ‘otaku’란 영문 단어로서 세계적으로도 통용되는 단어가 된 ‘오타쿠’란 표현을 사실상 처음 만든 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론가 오오츠카 에이지(오쓰카 에이지)가 편집장을 맡고 있던 일본의 ‘에로만화’ 잡지 「만화 부릿코」에 1983년 나카모리 아키오가 게재했던 칼럼에서, ‘오타쿠’라는 집단이 최근 등장했다며 소개하는 내용을 썼던 것이다. 다만 해당 칼럼은 오타쿠 집단을 뭉뚱그려 비웃는 투로 집필되는 바람에 편집장 오쓰카 에이지의 반박으로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는데, 그 이후 ‘오타쿠’란 단어에 담긴 부정적인 의미는 1989년 ‘도쿄·사이타마 지역 연속 유아 유괴 살인사건’, 일명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의 탓도 있어 완전히 씻어지지 않고 있다. (참고로 「만화 부릿코」는 일단 에로만화 잡지이긴 하나, 당시의 편집장 오쓰카 에이지 주도로 에로틱보다는 독특한 감성의 만화를 다수 기용하여 일본만화계에 소위 ‘뉴웨이브’라고 불리던 신감각의 만화가를 다수 배출했던 잡지였다.) 아무튼 ‘오타쿠’란 단어를 최초로 만들어내었고, 이후에도 대중문화 비평가로서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나카모리 아키오가 일본의 잡지 「중앙공론(추오코론)」의 의뢰로 < 겨울 왕국 >에 관한 칼럼을 집필한 것인데, 원고를 다 써서 편집부에 보냈으나 편집부 측에서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느닷없이 게재 중단 통고를 보내는 바람에 화제가 된 것이다. 「중앙공론」은 1887년 전신에 해당되는 잡지가 창간되었고, 1899년 현재와 같은 「중앙공론」이란 제목으로 명칭을 바꾼 잡지이다. 제목을 바꾼 1899년부터 따져도 115년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갖고 있고, 1923년 창간된 「문예춘추(분게이?주)」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논단지로 유명하다. 나카모리 아키오는 본인의 트위터와 관련된 신문 기고를 통해 마감일이 11일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의뢰를 받아 기고했는데, 이유를 정확히 밝히지도 않은 채 게재를 거부당했다고 밝혀 일본에서 화제가 되었다. 아마도 게재가 거부된 이유는, 칼럼 내용 중에서 일본의 여성 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쓰면서 그 사례로 외교관 출신이면서 황태자비가 된 후 본인의 경력을 부정당하며 오직 혈통을 이을 아들을 낳으라는 식의 비난을 받았던 마사코 비에 관해 쓴 부분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그는 “황실에 대한 내용이라면 뭐든지 전부 터부인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문장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다시금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으나 명확한 답변이 없었다”고 발언하며 주목을 받았고, 결국 인터넷 매체인 「Real-Japan.org」에 이 칼럼을 게재하면서 필자도 보게 된 것이다. < 겨울 왕국 >은 일본에서도 뒤늦게 개봉되었지만 엄청난 인기를 끌어, 북미에 이은 세계 2위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일본 개봉 직전까지 한국이 2위였는데 일본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한국 흥행 성적은 세계 3위가 되었다.) <겨울 왕국>은 미국에서 4억70만달러의 흥행 기록을 세웠고, 세계 2위인 일본에서 2억3180만달러(6월 22일까지), 3위 한국이 7669만달러(3월 16일까지), 4위 영국 6572만달러, 5위 독일 4827만달러, 6위 중국 4824만달러의성적이었다. 일본에서의 흥행기록은 개봉 16주차인 6월 29일까지 16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그 후 7월 16일부터 블루레이 및 VOD 판매, 디스크 렌탈이 시작되었는데도, 현재(8월 22일)까지 극장 상영이 일본 전국의 많은 스크린에서 이어지고 있는 등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일본 「시네마투데이」 8월 6일 보도에 따르면, 8월 4일 기준으로 흥행수입 253억엔, 관객동원수 1990만명이라고 한다. 또한 블루레이 판매가 8월 3일 기준으로 250만장, 렌탈(대여)회수가 210만회, VOD시청 24만회라고 한다. 253억엔의 흥행수입은 일본의 역대 영화 흥행기록에서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304억엔), < 타이타닉 >(262억엔)에 이어 역대 3위이다. 4위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203억엔), 5위 < 하울의 움직이는 성 >(196억엔), 6위 < 모노노케 히메 >(193억엔), 7위 < 춤추는 대수사선2 레인보 브릿지를 봉쇄하라! >(173.5억엔), 8위 <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173억엔), 9위 < 아바타 >(156억엔), 10위 < 벼랑 위의 포뇨 >(155억엔)이다. 관객 동원수는 거의 2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아직 극장 상영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최종 2천만 명 돌파가 이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관객수 역대 1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의 2350만명에 이어 현재 2위(1990만명)이다. 3위 <타이타닉>(1998년) 1683만명, 4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년) 1620만명, 5위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년) 1500만명, 6위 <모노노케 히메>(1997년)와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2002년) 1420만명의 기록이다. (흥행 및 관객동원수 역대기록은 일본어 위키피디아/2014.08.22 확인) 이런 폭발적인 흥행으로 당연히 일본에서도 < 겨울 왕국 >에 대해 온갖 매체에서 여러 비평과 리뷰가 등장했는데, 나카모리 아키오의 칼럼에서는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적이 있었기에 필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우선 해당 칼럼의 일부분을 번역·인용하겠다. (※일본에서도 개봉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기에 나카모리 아키오는 이 칼럼에서 소위 ‘스포일러’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개봉된 지 이미 한참이 지났고 1029만 명이 보았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굳이 가리지 않겠다. 즉 아래 내용에는 < 겨울 왕국 >의 내용이 밝혀져 있으니 주의 바란다.) (전략) “진실의 사랑”만이 안나를 녹일 수 있다고 한다. 진실한 사랑=한스 왕자와의 키스, 라는 구도가 떠오른다. 백설공주를 필두로 잠자는 숲 속의 미녀까지 고전적 동화의 일반적인 패턴이다. 하지만 한스 왕자는 안나의 사랑을 이용하여 왕국을 빼앗으려는 악당이란 사실이 밝혀진다. 어라? 그럼 산 사나이인 크리스토프의 사랑이 안나를 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마지막에 안나의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는 것은 엘사였다. “진실한 사랑”은 “자매애”였던 것인가!? 이 결말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디즈니는 지금까지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애니메이션화 하면서 왕자님의 사랑이야말로 주인공 여성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고전적 동화의 가치관을 내세웠다. 디즈니랜드의 상징인 신데렐라성의 신데렐라 스토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왕자님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해버렸다. < 겨울 왕국 >의 메시지는 명백하다. 왕자님 따위는 필요 없다. 아니, 왕자님이야말로 악당이다. 진실한 사랑이란 남녀의 연애가 아니라 자매애, 즉 여성끼리의 사랑인 것이다. 언젠가 분명 왕자님이…라는 식의 지금까지 동화에서 기본적이었던 가치관을 완전 부정한 과격한 메시지의 작품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고,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폭발적인 대히트가 되었다! 전 세계의 아이들은 보고야 만 것이다. 이것은 큰일이다, 라고 말한 의미를 이제 이해하셨을 듯하다. <겨울 왕국>은 세계를 변혁한다. 전 세계의 미래 세대의 의식에 그 메시지를 강력하게 심어놓았다. (중략) 극 중에서 가장 달아오르는 부분은 테마곡 ‘렛잇고 Let it go’가 나오는 장면이다. 오리지널 곡은 물론이고 더빙판의 마쓰 다카코나 May J가 부른 일본어 버전도 대히트했다. ‘렛잇고’는 ‘있는 그대로’라고 번역되었다.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대합창을 한다. 본래 영화 테마곡은 클라이맥스에서 흐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렛잇고’는 안나가 구원받는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전반부 엘사가 왕국에서 추방당하여 홀로 산속에서 자신의 마력을 펼쳐 보이는 장면에서 흐르고 있다. 이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내 개인의 독자적 견해를 밝히도록 하겠다. < 겨울 왕국 >은 진실한 사랑이 곧 자매애라고 주장하는 영화가 아니다. 눈의 여왕 엘사와 동생 안나는 겉보기엔 자매이지만 실은 한 명의 여성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인격인 것이다. 모든 여성 속에 엘사와 안나는 공존하고 있다. 그럼 눈의 여왕은 무엇일까? 본인의 능력을 제한없이 발휘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어린 시절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던 여성들은 어느 날, “그런 짓은 여자아이답지 않으니까 하지 말아라”고 금지당한다. 상처입은 그녀들은 자신의 능력(=마력)을 봉인하고, 평범한 소녀 안나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왕자님을 기다리라고만 강요당한다. 그래도 제한없이 능력을 발휘한다면? 즉시 마녀라는 지탄을 받고 공동체에서 추방당하는 비극을 겪게 되는 것이다. (중략: 이 부분에서 나카모리 아키오는 일본 사회의 성차별적인 요소를 직접 몇몇의 인물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연예인, 유명 인사, 그리고 마사코 비의 사례이다.) 여성은 누구나 자신 속에 있는 눈의 여왕을 억압하며, 왕자님을 기다리는 평범한 소녀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다. 엘사와 안나로 찢겨져 나뉘게 된다. 그것을 나는 ‘겨울 왕국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싶다. (하략) ① < 소녀혁명 우테나 > 작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미의 각인’이란 이름의 반지. (촬영:선정우) ② < 소녀혁명 우테나 > 애니메이션 소개서 『장미의 묵시록』(세이린코게이샤/1998년) 속표지의 ‘그림자 소녀’ 일러스트. ③ < 소녀혁명 우테나 > 화보집 『장미의 기억』(토쿠마쇼텐/1998년) 표지. 상당히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이 칼럼을 읽고 필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 소녀혁명 우테나 >를 떠올렸다. <소녀혁명 우테나>는 1997년에 일본에서 방영된 TV애니메이션으로, 1999년에 극장판 <소녀혁명 우테나: 애덜레센스(Adolescence)묵시록>이 개봉된 바 있다. 필자는 90년대 말 < 소녀혁명 우테나 >란 작품의 국내 소개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아직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못했던 관계로 신작 애니메이션을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합법적으로는 물론이고 불법 영상으로도 감상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신작은, 일본에서 LD나 DVD를 구매한 일부 마니아나 전문가들이 먼저 감상하고 그 내용을 PC통신이나 각종 잡지에 기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 대중은 그 작품이 그런 일부의 유명세로 인해 만화책이나 대여용 비디오의 정식 수입, 혹은 케이블TV에서 방영되거나 일본어판도 사용 가능한 가정용 게임기(플레이스테이션, 세가새턴 등)로 출시되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소녀혁명 우테나>는 아쉽게도 국내 TV에서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진 않았지만 <장미의 기사 티나>란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되었고, 만화판도 잡지에 연재된 후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 소녀혁명 우테나 >는 90년대 당시, 마니아 일부에게 국한되긴 했으나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필자는 이 작품이 방영 중이던 1997년에 LD가 출시되자마자 구입하여 국내 PC통신 애니메이션 동호회의 마니아들과 함께 관람하는 기회를 만들었고, 동시에 당시 애니메이션 칼럼을 연재 중이던 몇몇 잡지들에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잡지 서너 곳, PC통신 게시판 등 워낙 여러 곳에서 이 작품을 알렸기 때문에 방영 초기부터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겼고, 그 후에 작품을 직접 보게 된 이들이 그 내용에 매료되면서 2004년에는 몇몇 마니아들이 중심이 되어 「소녀혁명 우테나 연구문집」이란 논문집도 자비 출판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타카라즈카 가극’의 영향을 받은 ‘남장의 여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캐릭터의 배치와 아방가르드한 연출로 성(젠더)에 대한 고찰을 비롯하여 많은 상징성을 가진 스토리를 선보였는데, 주인공 텐조 우테나와 히메미야 안시 두 소녀의 모습에서 특히 전술한 < 겨울 왕국 >에 대한 나카모리 아키오의 해석과 비슷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 우테나는 어린 시절 백마를 탄 ‘왕자님’에게 구출된 적이 있는데, 왕자님을 동경한 나머지 본인이 왕자님이 되겠다며 남장을 하게 된 소녀이다. 안시는 결투의 승자에게 ‘세계를 혁명하는 힘’을 준다는 ‘장미의 신부’(승자에 대한 상품)로서 스토리 초반부에는 주체성없이 종속적인 면모를 보이는 소녀였다. 그러나 우테나와 알게 되면서 변화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그런 안시가 억압된 자아를 해방시키게 되는 것이 이 작품의 내용이다. 작품의 라스트에서는 안시를 해방시키고 세계에서 사라져버린 우테나를 찾기 위해,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진행되는 ‘학교’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작품에 대한 상세한 비평이나 리뷰는 위 논문집을 비롯하여 국내에도 상당히 많이 나와 있으므로 생략하겠지만, 중요한 점은 그런 비평 중에서 주인공 우테나와 안시의 ‘동일인물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검색해보면 구글재팬에서 ‘우테나 안시’만 쳐도 자동완성으로 ‘우테나 안시 동일인물’이 뜬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보면서 두 캐릭터의 동일인물설을 생각했다는 것인데, 대략적으로 살펴보아도 같은 인물의 ‘겉’과 ‘속’, 혹은 분열된 자아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한 독해문에서는 가혹한 현실 세계를 살아가기 힘들어 반씩 분열되어 ‘허구’로서 살아가던 소녀가 마지막에 본래의 한 인간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한 왕자가 구출하는 공주가, 과거 자기자신이 왕자로서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둔 ‘마녀’라는 < 소녀혁명 우테나 >의 내용은 위에서 나카모리 아키오가 제기한 < 겨울 왕국 >의 해석과 너무나도 비슷하지 않은가. 이 작품은 대부분의 제작진이 남성이고, 남성 중심의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졌기에 반드시 여성적인 관점이 중심에 놓여 있는 작품이라고 칭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실제로 제작 과정에서 소녀만화가 사이토 치호는 < 소녀혁명 우테나 >의 내용이 시청자로 상정되는 소녀들이 반드시 바라는 내용은 아닐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하고(일본어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북미판 DVD 오디오 코멘터리), 실제로 만화판 <소녀혁명 우테나>는 엔딩 부분이 애니메이션판과 다르다. < 소녀혁명 우테나 >에는 주인공 우테나와 안시 외에도 많은 등장인물이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다. 반드시 젠더나 성차별에 관련된 문제가 아닌 내용도 있고, 그런 의미에선 반드시 < 겨울 왕국 >과 비교할 필요는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90년대 애니메이션 붐 당시, 여성 스태프가 기술적인 분야(작화, 디자인, 채색 등)가 아닌 연출 분야에서 극히 드물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시사점이 많은 작품이었고, 그런 시사점이 당시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이 작품이 주목받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참조: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여성 애니메이터 (선정우, 2011.04.26)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필자는 < 겨울 왕국 >에 대해서도 < 소녀혁명 우테나 >에 대해서도 이 글에서 어떤 대단한 비평이나 감상을 논할 생각은 없다. 나카모리 아키오의 분석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생각할 뿐 특정한 평가를 내릴 의도도 없다. 다만 2013년과 1997년, 약 16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작품이 등장했고, 2013년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가장 히트한 애니메이션이 되면서 나카모리 아키오의 말대로 이 작품을 보았을 세상의 수많은 아이들에게 어떤 감상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1997년 당시, 작품에 대한 평가로서는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상업적인 흥행은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던 <소녀혁명 우테나>란 작품과도 연결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실은 아마도 그 이전의 작품들에서도 어느 정도 비슷한 테마는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과 젠더에 관한 문제는 일본만화에서만 따져보더라도 70년대의 ‘24년조’라는 일단의 소녀만화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조금씩 형태를 바꿔가며 여러 종류가 등장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몇몇 순정만화 작품들에서 여러 가지 방향성이 모색된 적도 있다. 그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분석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이 글에서는 (필자의 글이 언제나 그렇듯) 여러 가지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소개하는 데에 그치고자 한다.
1990년에 나온 < 캡틴 아메리카 >는 마블이 직접 그리고 제일 처음 손 댄 극영화였다. 사실 그보다 앞서 몇 차례 실사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1979년에 나온 건 TV용 영화였고, 1989년에 모습을 드러낸 돌프 룬드그렌 주연의 < 응징자 >엔 정작 마블 딱지가 붙어있지 않았다. 따라 <사이보그>로 이름을 알린 알버트 파이언이 감독하고, 스탠 리가 처음 제작자 크레딧에 오른 이 작품이 실질적인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극영화 데뷔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조악한 완성도와 낮은 배우 인지도로 인해 극장 개봉은 하지 못한 채 비디오로 직행됐다. < 슈퍼맨 >이나 < 배트맨 >으로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린 DC 코믹스와 달리 마블에게는 영화적인 노하우가 부족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제작한 21세기 픽쳐스에 문제가 있었다. 영화화 판권을 산 매너햄 골란은 < 아메리칸 닌자 > 시리즈나 < 델타포스 >, <대특명>과 같은 척 노리스의 B급 액션 영화로 돈을 모은 이스라엘 출신의 제작자 겸 감독이었는데, 이 영화에 앞서 < 슈퍼맨 4-최강의 적 >을 제작해 슈퍼맨 시리즈에 종말을 고한 기념비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날아다니는 방패에 악당 레드 스컬까지 나름 원작 설정에 충실히 만들어졌지만, 예산 부족이란 약점을 커버하지 못한 채 눈 뜨고는 봐줄 수 없는 희대의 망작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두 번 다시 캡틴 아메리카를 큰 스크린에서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캡틴 아메리카(들) 반등은 마블이 영화 제작에 전면에 뛰어들면서 부터였다. 자신의 품을 떠난 < 엑스맨 >과 < 스파이더 맨 >이 놀랄만한 흥행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걸 보자 마블은 단순한 판권 장사나 공동 제공이란 한정된 크레딧에 만족할 수 없었다. 마블 영화에 깊게 개입된 프로듀서 케빈 파이기를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으로 앉히고, 2008년 < 아이언 맨 >을 필두로 < 아이언 맨 2 >, < 인크레더블 헐크 >, < 토르 >를 차례대로 선보이며 성공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화려한 은막 복귀작인 <퍼스트 어벤져> 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퍼스트’라는 제목과 달리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지만 과거와 현재, 인간과 영웅, 신화를 아우르는 <어벤져스> 의 사전 포석으론 비교적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1990년 흑역사 이후 무려 21년만의 성공적인 부활이었다. 재미있게도 감독의 중책을 맡은 이는 조 조스톤으로, 그는 비슷한 시기인 1991년 역시나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만화 원작의 히어로 < 인간 로켓티어 >를 만들어 호평을 받은 바 있었다. 그는 고색창연한 전쟁 영웅을 현대로 데려와 미 패권주의와 내쇼널리즘이란 묵은 때를 벗겨내고, 보다 근본적인 자유와 평화에 몰두하는 진지한 성인군자 코스프레로 제목에 비친 선동적인 시각이나 오해를 피하려 노력했다. 이는 알란 실베스트리가 맡은 고전적이고 영웅적인 스코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DC코믹스와 마블의 영화화 <퍼스트 어벤져>는 바로 전에 개봉한 <토르>처럼 베테랑 작곡가의 힘을 믿었다. 신화적인 묵직함과 고대 비극을 연상케 하는 인물 간의 설정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세익스피어 극에 능통한 (캐네스 브래너 감독과) 패트릭 도일을 등용했듯, 전쟁영화의 외피를 두른 블록버스터 액션물의 진수를 전달하기 위해 밀리터리 사운드와 액션스릴러에 최적화된 작곡가 알란 실베스트리를 선택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B급 영화와 TV시리즈에서 주로 활동을 한 그는 국내에선 ‘기동순찰대’로 알려진 < Chips >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로맨싱 스톤 >에서 템프 트랙 작곡가로 고용되었으나 이 음악이 맘에 든 로버트 저멕키스가 그를 정식 작곡가로 고용하며 메이저 데뷔를 치뤘다. 이후 < 백 투 더 퓨쳐 > 삼부작과 < 포레스트 검프 >, < 콘택트 >와 < 캐스트 어웨이 >, < 폴라 익스프레스 > 등 30년간 저멕키스의 모든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스필버그-윌리엄스나 버튼-엘프만 조합처럼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했다. 또한 코미디나 액션, 스릴러, 공포와 SF, 애니메이션과 서부극 등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활동했으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진취적이고 활력 있는 팝스 오케스트라로 보편화된 미국적인 사운드를 잡아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유행처럼 번진 리모트 컨트롤 류의 사운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작법을 오롯이 영상에 대입, 투영할 수 있는 음악 장인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알란 실버스트리 <퍼스트 어벤져>의 음악은 매혹적이다. 지난 몇 년간 반복해온 자신의 지루한 틀을 깨고 실베스트리는 과거 8-90년대 중반 최전성기 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할 만큼 최상급의 사운드를 완성해냈다. 최근 남발되어온 여느 슈퍼히어로 음악의 전형적이고 피로한 형태에서 벗어나 고전적이고 애국적인 진군가를 갖추며, 캡틴 아메리카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열망과 진지함을 그럴듯하게 꾸며주었다. 자칫 이 영웅적인 찬가가 유치하게 들리거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발현으로 오인 받을 수도 있지만, 선동적이고 노골적인 수식은 최소화한 채 다양한 액션 큐들과 드라마에 적절히 메인 테마를 혼용하며 밸런스를 맞추었다. 실베스트리는 유난히 밀리터리 사운드에 특화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앞서 잠깐 언급된 매네햄 골란의 <델타포스>를 필두로 < 프레데터 >, 아카데미 단편상을 수상한 <투 솔져>, 코미디 < 말뚝상사 빌코 >와 , < A-특공대 >등 다양한 작품에서 발현한 군악대 행진곡 스타일을 여기서도 매끄럽게 녹여내며 특유의 활력을 부여했다. 그런 부분들이 2차 대전이라는 배경과 레드 스컬로 대표되는 흑막의 잔재를 암시하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곡조와 상충되며 묘한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슈퍼히어로’와 과거 ‘전쟁’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과 장르가 뒤섞여 발생되는 하이브리드한 쾌감은 그 어떤 블록버스터 음악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질감과 음영을 남긴다. 전자음을 배제한 대규모 심포닉 사운드의 위력은 사운드트랙 전반에 걸쳐 곳곳에서 드러낸다. 존 윌리엄스나 브루스 브루턴, 제임스 호너를 연상케 하는 장엄하고 영웅적인 메인테마가 바로 그 정점으로, 7-80년대 한참 유행하던 블록버스터 테마를 떠오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할리우드 황금기에 활약했던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나 알프레드 뉴먼, 미클로스 로자 등의 선율까지도 환기시키게 만든다. 하지만 실베스트리는 영화상 최대한 이 테마를 숨겨놓았다가 엔딩 크레딧에 이러서야 행진곡 형태로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낡은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차용한 멋진 타이틀 화면과 함께 어우러지며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안타깝게도 ‘Captain America March’는 디지털 음원에만 포함되어 있고 CD에는 삽입되지 않았다.) 그 외 액션 큐들도 환상적이다. 금관악기를 위주로 스트링과 타악기가 보조적으로 받쳐주며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실베스트리만의 스피드하면서 박력 넘치는 액션 스코어는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나 <프레데터>에서 활용되었던 이래 변함없이 장점으로 발휘됐던 스타일로 아드레날린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든다. ‘VitaRays’나 ‘Kruger Chase’, ‘Motorcycle Mayhem’과 ‘Hydra Train’ 등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가 전쟁 선전에 이용되며 코러스와 같이 채권을 팔 때 흐르던 노래 ‘Star Spangled Man’도 잊을 수 없는 트랙. 전시 어빙 벌린이 만든 곡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디즈니 전담 작곡가로 유명했던 알란 멘켄이 데이비드 지펠과 손잡고 만든 노래로, 그 때 그 분위기가 물씬 살아 숨 쉬며 묘한 기시감을 전달한다. 알란 실버스트리의 OST 음악적인 완성도와 호평으로 인해 알란 실베스트리는 바로 다음해 마블 캐릭터들이 모인 <어벤져스>의 음악을 연달아 맡게 된다. 그는 두 개 이상의 마블 작품을 담당한 첫번째 작곡가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 속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선 떠오르는 신예 작곡가 헨리 잭맨에게 바톤을 넘겨줬지만, 그의 팡파르가 여전히 등장하며 살짝 여운을 남겨두었다.(흥미로운 건 알란 실베스트리가 하차한 <지.아이.조>의 속편 음악도 헨리 잭맨이 넘겨받았다는 사실!) 하지만 언젠가 알란 실베스트리가 마블 영화에 다시 컴백할지 모른다. 70년 뒤에 깨어난 스티브 로저스처럼. 21년 뒤에 성공한 캡틴 아메리카처럼 말이다. ‘Captain America March’ Track List 1. Captain America Main Titles 2. Frozen Wasteland 3. Schmidt's Treasure 4. Farewell to Bucky 5. Hydra Lab 6. Training the Supersoldier 7. Schmidt's Story 8. VitaRays 9. Captain America "We Did It" 10. Kruger Chase 11. Hostage on the Pier 12. General's Resign 13. Unauthorized Night Flight 14. Troop Liberation 15. Factory Inferno 16. Triumphant Return 17. Invader's Montage 18. Hydra Train 19. Rain Fire Upon Them 20. Motorcycle Mayhem 21. Invasion 22. Fight on the Flight Deck 23. This is My Choice 24. Passage of Time 25. Captain America 26. Star Spangled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