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소년 지미 뉴트론
- 감독
- 키스 엘콘 , 마이클 개서웨이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롭 폴슨, 캔디 마일로, 캐롤린 로렌스, 마크 디칼로, 메이건 캐버너프, 크리스탄 슬레이터, 데비 데리베리, 케빈 마이클 리차드슨, 제임스 벨루시, S. 스콧 불럭, 웬디 말릭, 프랭크 웰커, 빌리 웨스트, 팀 커리, 찰스 애들러, 시라이시 료코, 우메다 키쿠미, 누마타 유스케, 아사노 마스미
K정연과 알고 지낸지 거의 10년이 됐지만 함께 영화를 본 건 손에 꼽는다. 그와 많은 것을 했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 가서 목욕탕에 가고 한 침대에서 자고 파리에서 햄버거를 먹고 전동 킥보드를 타고 전시를 보고 런던의 클럽에서 아마추어 밴드의 저주에 가까운 음악을 듣고… 그러나 영화를 같이 봤냐고 물으면 기억나는 건 단 한번 뿐이다. 임재철 평론가의 클래스에서 본 장 피에르 고랭의 <루틴 플레져 Routine Pleasures>(1986). 지난 글에서 말한 바 있는 이 영화를 서너명의 사람들과 어느 출판사 건물에 딸려 있는 강의실에서 봤다. 밤이었고 출판사에는 사람이 없었고 왜인지 우리가 허락도 받지 않고 몰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아무도 상영하지 않고 보지 않는 영화를 보기 위해 도시를 떠돌며 빈 건물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씨네-프레카리아트. <The Cinema of the Precariat>의 서두에 톰 자니엘로는 이렇게 쓴다. “프레카리아트는 미미한 존재감 때문에 언제든 끝장날 수 있음에도 계속 (영화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에.” 1) <루틴 플레져>는 장 피에르 고랭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두 남자가 작은 역의 벤치에 앉아 기차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한쪽이 자기 인생사를 들려준다. 난 언제나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로저가 이야기를 끝내면 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장면: 살찌고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장 피에르 고랭 미디엄 투샷) <루틴 플레져>의 오프닝 씬을 나와 K정연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쪽이 이야기를 끝내면 다른 쪽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쪽이 살찐 아저씨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건 결국 둘 다 말하고 둘 다 듣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이 과정은 일반적인 대화와는 약간 다르다. 영화와 관객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할까? 영향을 주고받지만 실시간적으로 일어나는 교류나 상호작용은 아니다. 한쪽이 끝날 때까지 다른 한쪽은 기다려야 한다. 영화는 인터랙티브 아트가 아니다. 영화가 마주해야하는 건 즉각적인 응답, 반응, 참여가 아니라 어둠과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불안정한 기다림이고 불현듯 잉태되고 사라지는 잠재성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내용 없는 인간>에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행위를 시간의 지속성이 단절되고 차단된 느낌, 정신의 바깥, 근원적인 차원에 체류하는 사태로 묘사한다. 이러한 유보를 그리스어로 에포케epoche라고 한다. “즉 리듬의 에포케라는 바깥으로 떨어져 나오는 행위를 통해 예술가와 관람자는 그들의 본질적인 동맹 관계와 공동의 지반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2) 이것이 영화라는 매체가 우정을 형성하는 방법이다. 영화는 우정의 한 형식이다. 정성일과 유운성 평론가의 평론집 첫 챕터 제목은 각각 다음과 같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영화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 관한 작은 가이드”. 3 ) “우정의 이미지들”. 4) 유운성은 세르주 다네를 인용한다. “유대 그리고 우정이라는 말은 아주 아름다운 말이다. 나는 한번도 우정이라는 관계 이외에 사람들과 다른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정말이지 영화만큼 우정을 사랑하고 의미화하는 예술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돈씨와 제가 10년 동안 같이 본 영화가 한편이라는 사실이 우리 관계를 증명해주는 같네요. K정연이 말했다. 뭘 증명하는데요? 우리가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 영화와 우정에 대한 K정연의 철학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친구였다면 더 많은 영화를 함께 봤을 거란다. 그 태도가 너무 단호해 나는 섭섭함과 함께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뭔가 반전이 있겠거니 했다. 예를 들면 우정은 친구 이상의 것, 자신 안에서 타자를 발견하는 탈주체화의 지각이자 게니우스genius적인 것과 스페키에스species적인 것과의 관계 맺음이며 극장과 카메라가 사라지거나 감춰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변화한 상호주관적인 행위다, 등등. 그러나 K정연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2살 많잖아요. 헉. 앞으로 형이라고 하세요. K정연…!!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보니 오후 여섯시였고 나는 원고를 쓰다 지쳐 컴퓨터 앞에서 깜빡 낮잠이 든 거였다. 메일이 와 있었다. 영자원 담당자에게 온 메일로 마감 시한을 고지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K정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꿈 얘기는 하지 않았고 우리가 써야할 원고에 대해서, 우리가 만들 에세이 필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정연씨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쓸 테니 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21세기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고견을 들려주세요! K정연이 말했다. < 고양이를 부탁해 >(2001)는 계급과 주거,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영화다, K시네마를 주거와 부동산의 역사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주택자의 영화, 다주택자의 영화, 전세사기꾼의 영화, 메타버스 가상부동산 업자의 영화… 홍상수와 김기덕은 홈리스 영화의 대표적인 두 형상이다, 한쪽은 돈이 많아서 집 없이 전국을 떠도는 모텔-호텔 생활자, 다른 한쪽은 돈이 없어서 강바닥과 절을 떠도는 (검열)… 등등. K정연은 이사를 한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했다. 나는 동료 소설가인 오한기도 부쩍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은 집에 관심이 많은 거예요? 지돈씨도 결혼하고 애 낳으면 알 거예요. K정연……. 네? 아니에요. 모든 한국의 연극영화과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에는 이상한 문화가 있었다. 선배를 무조건 형이나 누나, 언니 또는 오빠라고 불러야 했다. 선배를 선배라고 하면 하극상으로 끌려가서 얼차려를 받았다(대체 왜?). 자신보다 어린 선배를 선배라고 하면 기강이 해이해진다는 이유였다. 형, 누나야말로 윗사람을 대하는 진정한 호칭이란다(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상…). 이것 말고도 학교에는 이상한 문화가 많았지만 이 자리에서 다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선배들을 피해다녔다. 형, 누나 호칭이 입에 붙지 않아서였다. 외동으로 자란 탓일까? 사람들은 왜 형이나 누나, 오빠, 언니라는 호칭을 좋아할까. 나는 생각했다. 내가 영화를 찍지 않는다면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유사 가족 문화권에서는 진정한 시네마가 태어날 수 없다고. 가족은 우정이 아니라 혈연이고 K시네마의 혈연은 가부장제와 연결되며 가부장제는 남성연대와 여성혐오로 이어지고 결국 신자유주의적 가치 체계를 내면화한 청년 남성으로 과대표화된 담론과 정치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지금, 바로, 이 순간에 고양이를 부탁해를 다시 보자고 한 거예요. K정연이 말했다. 영화야말로 젠더를 생산하고 그 성격을 결정짓는 “젠더 테크놀로지”입니다. 5)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지 않았다. 영화 개봉 당시 생물학적 여성인 친구들이 너무 좋다고 말하며 등장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흉내내고 논평했던 게 기억나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그건 단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컴퓨터 스크린으로 혼자 영화를 보는 것만을 유일한 낙으로 생각한 웹친화형 K-시네필이었기 때문일까. <고양이를 부탁해>를 검색했다가 잊고 있었던 단어를 발견했다. “와라나고”. 와라나고는 수작이지만 블록버스터에 밀려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 못한 영화를 네티즌이 발굴해낸 영화 다시 보기 캠페인이었다. <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 < 라이방 >(2001), < 나비 >(2003), <고양이를 부탁해>. 문득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영화들이 생각났지만, 다시 한번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와라나고 캠페인에 속한 어떤 영화도 보지 않았다. 이런 내가 21세기 한국영화에 대한 에세이필름을 만들 자격이 있을까. 이렇게 영화를 안 보는데? 학교 선배들이 왕가위와 이와이 슌지, 미야자키 하야오를 보지 않는다고 훈계를 했던 해묵은 일도 기억났다. 어떻게 <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를 안 볼 수가 있어? < 화양연화 >도 안 봤다고? 제정신이니? 넌 영화과라고 할 수가 없구나. 과거가 떠올라서일까, 아니면 단지 원고를 쓰고 에세이필름을 만드는 일의 어려움과 지속불가능성, 때때로 급습하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회의와 공포 때문일까. 나는 K정연에게 다음 문장으로 끝나는 긴 메일을 보냈다. “…… 건강하고 밝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그건 무리겠죠? 격일로라도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 다음날, K정연에게 전화가 왔다. 지돈씨. 그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왜 K정연인지 알았어요. 왜요? 키아누 리브스가 뉴욕타임즈 비평가 선정 21세기 가장 위대한 배우 4위인 거 아시죠? 키아누 리브스 생일이 9월 2일이거든요. 그리고 제 생일도 9월 2일. 지난 원고에 이 이야기를 쓴다는 걸 깜박했네요. 그걸 왜 써요…. 오늘은 오전에 나윤이(K정연과 박지은 사이에 태어난 딸을 뜻함) 문화센터에 데려다주고 작업실로 가는 버스를 탔거든요. 버스에서 상우씨가(이상우 소설가를 뜻함) 추천해준 젠하이저 이어폰을 끼고 넷플릭스로 <키드 디텍티브>를 보며 응암으로 가는데 문득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세줄 뒤에 앉은 덩치 큰 중년 남자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더라구요. 그게 누군지 아세요? 키아누 리브스? 유운성 평론가. 헉. 그래서요? 그래서…. K정연이 말했다. 그래서… (다음 화에 계속) 1) <The Cinema of the Precariat: The Exploited, Underemployed, and Temp Workers of the World >(Thomas Zaniello, Bloomsbury Academic, 2020) *본문에서 괄호 안은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이다. 2) <내용 없는 인간>(조르조 아감벤, 윤병언 옮김, 자음과모음, 2017) 3)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정성일, 바다출판사, 2010) 4) <유령과 파수꾼들>(유운성, 미디어버스, 2018) 5) “섹스리스 K-시네마: 한국영화 속 젠더 배치의 문제”, <21세기 한국 영화>(손희정, 앨피, 2020)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90년대 말. 영화적 테크놀로지가 극대화되자 할리우드엔 다시 재난영화의 바람이 불었다. 70년대 재난물이 화려한 올스타 캐스팅에서 오는 캐릭터들의 재미였다면 90년대 말에 불어 닥친 재난물의 주인공은 단연 비주얼이었다. 가공할만한 시각효과와 압도적인 입체음향으로 그 어떤 아날로그 효과로는 구현할 수 없던 영상과 소리를 얻게 되자 재난영화는 날개를 달았다. 1995년 역사에 기록된 우주적 재난을 다룬 < 아폴로 13 >을 필두로, 96년엔 토네이도의 위력을 실감 나게 묘사한 < 트위스터 >와 람보가 터널로 들어간 < 데이라잇 >이, 97년엔 두 편의 화산 영화 < 볼케이노 >와 < 단테스 피크 >, 그리고 흥행 기록을 다시 쓴 < 타이타닉 >이 개봉됐다. 98년엔 소행성이 두 번이나 지구를 찾아 < 딥 임팩트 >와 < 아마겟돈 >이 쌍끌이 흥행을 기록했으며, 폭우를 다룬 < 하드 레인 >과 산불을 다룬 < 파이어 스톰 >이 제작되며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유행에 불을 지피고 확실한 인장을 찍은 건 1996년 전미/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빛나는, 외계인 침공의 SF 재난영화 < 인디펜던스 데이 >였다. 90년대 각종 재난영화들 영화는 크게 외계인의 침공을 받는 7월 2일, 반격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마는 7월 3일, 해결책을 찾아내고 최종 결전에 나서는 7월 4일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윈 앨런표 고전 재난물처럼 여러 인물들과 상황에 포커스를 맞춰 고난에 맞서 싸우고 극복하는 모습들을 담아낸다. 그러나 팍스아메리카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날짜와 제목에, 외계인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조종사와 닭살 돋는 연설을 늘어놓고 직접 전투기를 몰고 출격하는 미국 대통령, 맥OS와 호환되는 외계인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나 너무나도 흔해빠진 음모론 로스웰사건까지 난입하며 황당무계하고 게으른 설정과 오글거리는 캐릭터들로 재난 영화에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은 희생정신과 감동스토리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채, 멍청하고 한심한 영화, 미 패권주의 영화로 낙인찍히고 놀림 받는다. 그러나 이전까진 볼 수 없었던 화끈하게 터져나가는 백악관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거기에 하늘을 뒤덮는 장관의 거대 우주선과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공중전, 도시의 아비규환 등을 담은 다양한 볼거리로 단순한 플롯과 바보 같은 설정을 마취시키며, 미국에서만 3억 불, 전 세계적으로 8억 불이 넘는 흥행을 기록해 롤랜드 에머리히의 지구파괴 미학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그는 < 투모로우 >와 < 2012 >에 이르며 더 강렬하고 큰 스케일로 지구를 초토화시키며 이 분야의 독보적인 대가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애국심을 잔뜩 고취시키는 장엄한 음악으로 영화 보는 동안이나마 논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킨 데이비드 아놀드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데이비드 아놀드 1993년 학창시절 친했던 대니 캐논 감독의 요청으로 < 영 아메리칸 >의 음악을 맡아 데뷔한 데이비드 아놀드는 그 사운드트랙에서 같이 작업한 브욕의 ‘Play Dead’로 UK차트 12위까지 오르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의 탁월한 멜로디 솜씨를 주목한 롤랜드 에머리히와 딘 데블린 콤비는 자신들의 첫 번째 협업작 < 스타게이트 >를 위해 데이비드 아놀드를 픽업했고, 마치 <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 < 스타워즈 >를 섞은 듯한 이국적이고 장엄한 에픽 사운드로 찬사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실패한 서부극이지만 역시나 웅장하고 서정적인 스코어로 숨은 걸작 사운드트랙이란 평을 받은 < 라스트 도그맨 >을 거쳐 다시 에머리히/데블린 콤비와 뭉친 <인디펜던스 데이>은 포스트 존 윌리엄스라는 극찬을 안기며 그를 성공적으로 메이저에 안착시켰다. 단 네 작품 만에, 3년이란 단기간에 그가 이룩한 업적이었다. 이어 18번째 007시리즈 < 네버 다이 > 음악에 전격적으로 기용, 존 배리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전통적인 사운드에 신세대적인 감각을 덧입혀 훌륭하게 메꿨으며, 비록 흥행엔 실패하고 말았지만 음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던 < 고질라 >를 담당해 ‘사이즈의 영화음악’의 진수를 펼쳐 보였다. 그러나 너무 일찍 터트린 샴페인이었던 걸까. 그는 그 이후 인상적인 결과물을 낳지 못했다. 5편의 007 시리즈와 존 싱글턴과 마이클 앱티드 감독과의 유대, 에드가 라이트 같은 젊은 피와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사운드 지평을 넓혔지만, 데뷔 초기 그가 보여줬던 놀라운 임팩트에 비하면 현재의 필모가 다소 주춤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다만 최근 BBC 드라마 < 셜록 >의 성공과 30회 런던올림픽의 개·폐막식 음악 감독을 맡으며 역량을 다시금 뽐내고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음악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의 규범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최대한 신디와 일렉트릭 악기를 배제한 채 100인조에 이르는 풀 오케스트라와 46인조의 코러스를 대동해 압도적인 고전 심포닉 사운드의 위용을 펼쳐 보인다. 마치 존 윌리엄스로 대표되는 70년대 재난물과 80년대 블록버스터의 기운을 모두 한데 합쳐놓은 이 엄청난 스코어의 박력은 지구를 박살 내는데 혈안이 된 에머리히의 비주얼적 야심에 못지않다. 그는 특히나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3개의 인상적인 라이트모티프를 가지고 인간과 외계인들 간의 혈전에 집중하는데, 가장 귀에 쉽게 들리는 건 <인디펜던스 데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테마, 애국심을 팍팍 고취시키는 영웅적인 팡파르다. 승전보를 알리는 듯 희망적이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이 곡조는 외계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단초를 발견했을 때, 전쟁의 주도권을 거머쥐었을 때 얇고 높은 피콜로와 마칭 스네어를 곁들어 군악대스러운 편곡으로도 사용되는데, 브라스와 혼, 퍼커션이 한데 어우러지며 진격의 나팔을 힘차게 불던 과거 전쟁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로부터 전쟁영화음악에 있어 말콤 아놀드나 존 에디슨, 론 굿윈과 벤자민 프랑켈 등 걸출한 작곡가가 많았던 영국이기에 그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력도 무시할 순 없을 듯하다. 두 번째 모티브 세 번째 모티브 두 번째 모티브는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사연을 풀어내던 멜로드라마적인 테마로 스트링이 주가 되어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숨 가쁘게 달려온 영화에 여백과 여운을 불어넣는다. 종종 숭고하고 거룩한 합창대의 목소리를 빌어 더 강력하게 감정선을 자극하지만, 주로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팡파르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극적인 효과를 노리거나 다양하게 파생·변주돼 가족애 및 캐릭터들의 상호 연대감을 복돋아 주는데 주력한다. 마지막 모티브는 외계인 침공을 암시하는 어둡고 무거운 혼돈의 사운드로 울부짖는 혼과 질주하는 브라스를 전면에 배치해 압도적인 힘과 공포감을 느끼도록 설정했다. 마치 존 윌리엄스의 ‘임페리얼 마치’나 홀스트의 행성 중 ‘화성’을 듣는 듯 고전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위압감을 선사하는데, 다양한 퍼커션과 드럼을 활용해 침공에 대한 긴박감과 스케일을 극대화시켰다. 그들의 절대적인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고 마는 나약한 인간들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큐이기도 하다. 편곡자이자 지휘자인 니콜라스 도드의 솜씨가 두드러지는 부분으로 이 3개의 주된 선율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며 얄팍하기 그지없는 영화에 입체적인 깊이와 실감 나는 무게감을 던져주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이 사운드트랙으로 그해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사운드트랙은 96년 영화 개봉에 맞춰 BMG에서 발매되었지만 온전한 음원을 다 담은 건 아니었다. 팬들의 성화가 빗발치자 2010년 라라랜드 레코드에서 5,000매 한정으로 CD 2장, 총 130분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완전판을 발매했다. 데뷔 초기 번뜩이던 데이비드 아놀드의 위력적인 사운드와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차기작으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을 찍겠다고 공언했다. 2015년 7월 3일로 개봉일마저 공개한 상태다. 2000년 <패트리어트> 부터 공동 작업이 불발된 이후 에머리히는 같은 독일 태생의 영화음악가 해롤드 클로저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부디 제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에선 그들이 다시 재회하길 기대해본다. Victory Track List DISC ONE 1.1969: We Came In Peace 2.S.E.T.I.-Radio Signal 3.Mysto Bridge/Satellite Collision/ Destroyers Disengage/Russell Casse-Pilot 4.First Sighting/AWAC·Attack 5.The Darkest Day 6.Moving Day/Countdown 7.Cancelled Leave 8.Commence Lift-off/Parabolic Indenwhat? 9.Evacuation 10.Firestorm 11.Aftermath 12.Base Attack 13.Marilyn Found 14.Area 51/The Big Tamale/Formaldehyde Freak Show 15.El Toro Destroyed 16.Slimey Wakes Up 17.Target Remains/Rescue 18.The Death of Marilyn/Dad’s A?Genius 19.Alien Ship Powers Up 20.International Code 21.Wedding 22.The President’s Speech DISC TWO 1.Just In Case/Attacker Fires Up 2.The Launch Tunnel/Mutha Ship/Virus Uploaded 3.Hide!/Russell’s Packin’ (The Day We Fight Back) 4.He Did It 5.Jolly Roger 6.Victory 7.End Credits BONUS TRACKS 8.1969: We Came In Peace ?Alt. 9. Destroyers Disengage (No Choir) 10. Cancelled Leave -Alt. 11. Commence Lift-off -Alt. 12. Base Attack (Segment-Film Version) 13. Marilyn Found (No Choir) 14. Target Remains/Rescue -Alt. 15. Dad’s A?Genius -Alt. 16. Attacker Fires Up (Original Version-No Choir) 17. Virus Uploaded -Alt. 18. The Day We Fight Back (Original Version) 19.Jolly Roger -Alt. 20. End Credits (Segment, No Ch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