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히치: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
- 감독
- 앤디 터넌트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윌 스미스, 에바 멘데스, 케빈 제임스, 엠버 바레타
사진: " Oldboy ", IMDb 올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 로 만나보세요. 김규현 교수 는 근•현대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일본 대중문화(특히 만화)와 한국영화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한국영화 리뷰 사이트 “Koreanfilm.org”에 20여 년이 넘게 한국영화에 대한 리뷰를 기고할 만큼, 그는 열렬한 영화 팬이자 장르영화 ‘덕후’라고 할 수 있다. 저서로는 The Age of Visions and Arguments: Parliamentarianism and the National Public Sphere in Early Meiji Japan(2008)이 있고, “The politics of national language and wartime mobilisation of everyday life in late colonial Korea, 1937-1945”(2016), “Pak Chan-wook’s Thirst: Body, Guilt and Exsanguination”(2013) 등의 논문을 집필했다. 현재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대한 연구서 출판을 기획 중이며, UC 데이비스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일본-한국 전공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로벌 코리안 시네마의 숨은 주역, 대중문화의 소매상과 중개인 ‘한국영화’에서 ‘글로벌 코리안 시네마’로의 변화라는 중심 주제를 상기하면서 강연을 시작하고 싶다.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 한국영화는 계속 발표되어왔고, 이때부터 한국인들은 단 한 번도 한국영화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 영화사 관련 문헌 자료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다만 이제는 한국영화를 인식하는 지역의 범위가 전 세계로 확대되었고, 이에 걸맞게 세계 영화 팬들은 ‘글로벌 코리안 시네마’라는 새로운 영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에게도 익숙지 않은 이 영역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작품의 텍스트를 직접 분석하거나, 작품을 문화산업의 측면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고찰하고 문화•사회사 이론을 적용해 해석하는 등 각기 다른 방법으로 구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엄밀히 말하면 영화를 꾸준히 사랑해온 한 명의 ‘영화 팬’에 더욱 가깝기에, 이번 시간에는 이러한 학술적인 관점을 가지고 답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일본만화 덕후이자 컬트영화 팬이었던 내가 대학 입학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고, 지금까지 동아시아 역사 연구자로 살아오면서 한국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한국영화의 재발견을 거듭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타인의 부추김이 동반되곤 하는 ‘공부’와 다르게, 소위 말하는 ‘덕질’은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스스로 열중하게 만든다. 그 에너지는 실로 강력해서 덕질을 이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소재를 ‘공부’하게 된다. 공부의 의의나 성취를 타인이 인정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1960~70년대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만화 덕후로 지냈다. TV에서 <마징가 Z>를 본 후 명동으로 가서 원작 만화를 찾아 읽으며 나가이 고라는 작가를 알게 되고, 『바벨 2세』(1970)를 보고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6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삼국지』 시리즈를 그리기도 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등의 흥미진진한 추억이 가득하다. 그렇게 일본문화에 익숙해지고 흥미를 붙인 끝에 일본 역사를 전공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는 데 이르렀다. 또한 역사 연구자인 내가 수많은 영화에 대한 학술 논문을 내놓고, 바야흐로 박찬욱 감독 작품의 연구서를 집필하려는 의지를 다지게 된 데 역시, 타인의 인정을 애써 요구하지 않는 애호의 마음이 작용했다. 한국영화가 글로벌 코리안 시네마로 불리기까지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학술적 논의를 통해서는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요인이 있다. 바로 ‘덕후’로서 그 애호의 마음을 발휘해온 ‘대중문화의 소매상들과 중개인들(retailers and brokers of popular culture)’이다. 이는 정식 학술 용어는 아니며, 일명 ‘컬트영화 팬’을 지칭하기 위해 내가 사용하기 시작한 단어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여기에 속한다. 특정 장르의 만화나 영화에 열광해 자발적으로 펼쳐온 활동이, 한국영화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대중문화 중개인으로서의 역할에 부합하고 있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와 그레이 마켓, 그리고 광학 매체 2023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가 개봉 2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 재개봉되었다. 나도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의 한 극장에서 관람했다. 놀랍게도 흥행 성적이 훌륭했다. 재개봉 첫날 전미 박스오피스 9위를 기록했고, 2005년 북미 극장 개봉 당시에는 약 70만 7천 달러였던 수익이 이때는 약 170만 달러로 2배가 되었다. 개봉 직후에는 대중이 충분히 호응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몇몇 작품은 세월이 지나며 결국 그 가치를 인정받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런 한국영화들이 탄생하는 배경이 된, 즉 1990년대부터 한국영화의 발전이 본격화되는 데 기여한 몇몇 조건들이 있다. 먼저,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고 검열이 완화되며 영화가 다룰 수 있는 정치적 이슈나 성적 묘사 등을 포함한 소재와 그에 대한 표현 방식이 다양해졌다. 그리고 영화를 공부한 ‘영화학도’들이 현장에 참여하면서, 각자의 관점에서 모범으로 삼는 영화를 참고해 작품세계를 구상하는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한편, 인터넷 등이 발달해 정보의 송수신이 용이해져 전문가의 비평 언어가 널리 공유되었고, 특수 메이크업 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 등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도 (특히 호러나 필름 누아르와 같은 장르에서) 발전했다. 2000년대 초 제작된 <장화, 홍련>(호러), <지구를 지켜라!>(SF) 개인적으로는 한국 근•현대사의 성격이 1987년을 기점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민주화와 경제 발전, 세계화, 정보통신기술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이 복합적으로 발현된 1987년 이후의 한국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영화에 관한 담론이 보다 넓은 계층에게까지 공유될 수 있었고, 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영화’를 제작해 해외에 선보이고 싶다는 국내 영화계의 오랜 과제가 수행되는 데 추진력을 더했다. 여기에 불법 비디오의 유통으로 ‘영화 덕후’들의 감상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한편, 1990년대 시네필 문화를 바탕으로 영화평론은 학구적 색채를 띠기 시작해, 두 가지 경향 사이에서 진동하는 영화 글쓰기가 가능해지는 특별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다.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떴음’이 분명해진 것은 언제부터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정답은 없고, 나 역시 주관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아마 <올드보이>, <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 장화, 홍련 >(김지운, 2003), <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2003) 등이 개봉한 2003년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2003년에 한국영화에 열광한 이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관객이, 그 이후부터 등장한다. 준-불법 비디오 시장인 이른바 ‘ 그레이 마켓 ’이 융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는 비디오 유통 체인점이 잘 다루지 않는 블록버스터 등을 접할 수 있었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화제와 어느 정도는 연계된 유통망을 구축해놓기도 했다. 또한 DVD 라는 매체가 출시되며 영화문화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 VHS는 매체 특성상 좋은 화질과 음질로 감상되기 어려웠지만, DVD는 ‘복원된’ 영상과 음성 소스를 수록할 수 있기에 같은 작품이더라도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상 경험을 제공했다. 게다가 (당시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영화 DVD에는 대부분 영어자막이 탑재되어있어 해외 시장에서 유통되기도 쉬웠다. 이러한 시류에 힘입어, ‘고상하지 않지만 매우 재미있고 폭력적인’ 일본 시대극들처럼 그간 그레이 마켓에서 주로 관심 받던 작품들의 대열에 한국영화가 합류하면서, 한국영화가 각지의 로컬 컬트영화 팬들로부터 각광 받는 길이 열린다. 이때 한국영화의 세계적 유통에 컬트영화 팬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체감하게 해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했던 비디오점 “Le Video”에 가니, 당시 내가 온라인에 게시했던 <올드보이> 리뷰가 가게의 전시창에 붙어있었다. 할리우드나 기타 영화 전문업계에서 생산한 평론보다, 실제 ‘덕후’가 남긴 리뷰를 통해 또 다른 ‘덕후’들의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비디오 유통을 촉진하는 것이 이 가게의 전략이었던 것 아닐까? DVD 시장에서 출발한 작품의 흥행이 ‘대중문화의 소매상들과 중개인’의 활동에 상당 부분 의지했음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악령의 밤 2 >(마리오 바바, 1977), < 서스페리아 1977 >(다리오 아르젠토, 1977) 블루레이 (사진: Amazon) 사실, 역사적으로도 DVD와 블루레이 시장 자체가 대개 장르영화들에 의해 개척되었다. 북미 지역에서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값비싼 복원판 디스크 제작의 트렌드가 마리오 바바나 다리오 아르젠토와 같은 감독들의 컬트 이탈리아 호러 영화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북미 영화 팬들은 그간 극장의 개봉작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해외 장르영화들에 대한 접근성이 광학매체의 유통과 함께 눈에 띄게 높아진 데 열광했다. 그리고 영상 복원 기술은 고전 호러, SF, 필름 누아르 등의 장르영화 디스크의 소스가, 제작자들이 의도한 느낌에 가까운 영상으로 팬들에게 전해지는 데 기여했다. DVD, 블루레이라는 매체에 의해 새로운 영화문화가 조성되는 첫 단계가 바로 장르영화를 바탕으로 진척된 것이다. 이들 특유의 감성과 스펙터클은 북미 주류 사회의 ‘정치적 공정함’과 ‘고상한 취향’에 도전한다고 여겨져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팬들의 관심은 홍콩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 이어 한국영화로도 향했다. *주1 그러다가 2010년대 후반, 넷플릭스 등의 OTT 스트리밍 서비스가 VOD 시장을 지배하면서 위의 그레이 마켓을 무대로 번영한 비디오 가게들, 즉 ‘대중문화 소매상’들의 활동은 쇠퇴했다. *주2 하지만 2017~2018년부터 벌써 넷플릭스에 등록된 한국어 콘텐츠의 양이 상당했다는 데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장르영화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아 여전히 여러 OTT 플랫폼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서구 장르영화를 닮은 글로벌 코리안 시네마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박찬욱과 봉준호의 작품들은 왜 북미 영화계 종사자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것일까? 박찬욱 감독에 집중해 설명하자면, 그의 작품이 전 세계 장르영화의 계보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올드보이>는 < 현기증 >(알프레드 히치콕, 1959), < 차이나타운 >(로만 폴란스키, 1974), < 강박관념 >(브라이언 드 팔마, 1976) 등 서구 장르영화 걸작의 기조를 이은 것으로 보인다. 금기시된 사랑, 공허한 허구에 대한 집착 등의 소재도 반복되지만, 무엇보다 ‘ 서스펜스 ’라는 요소의 활용이 돋보인다. 서스펜스(Suspense)는 ‘매달리다’라는 의미의 “Suspend”에서 비롯된 용어인 만큼, 영화에 쓰일 때는 떨어지기 직전의 존재가 무언가에 매달린, 즉 아직 불씨가 당겨지지 않은 감정이 터지기 일보 직전으로 응어리져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히치콕은 그 요소를 작품에 기막히게 배치하는 거장으로 불리고, 비슷한 경향이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도 엿보인다. 이렇게 추락하기 직전에 매달려있는 인물을 볼 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정체는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보다 복잡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박찬욱은 서스펜스를 통한 감정의 이 복합성을 이전 세대 장르영화 감독들로부터 멋지게 계승했다. 인물의 선과 악이 뚜렷한 평면적인 스릴러에 나타난 윤리적 지형을 벗어나, 관객이 왠지 모를 불편함을 감지하면서도 여기서만 경험할 수 있는 복합적 감정 을 느끼러 영화를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파업주동자>와 <올드보이> 속 추락 직전의 인물 (사진: (좌) " 1000 Frames of Saboteur (1942) - frame 974 ", The Alfred Hitchcock Wiki / (우) " Oldboy ", IMDb) 일례로 히치콕의 < 파업주동자 >(알프레드 히치콕, 1942)에서 악당 프라이가 추락사하는 장면을 살펴보자. 추락 과정의 부감숏과 일그러진 얼굴의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은 악당의 파멸을 지켜보고자 하는 가학적 욕망과 동시에 추락하고 있는 그와 동일시함으로써 발생하는 공포라는 두 가지 감정을 모두 체험한다. <올드보이>에서 수아( 윤진서 )의 추락사도 유사하다. 악당 이우진( 유지태 )의 시점에서 수아는 추락 직전의 상태로 비춰지고, 관객은 이우진이 악당임을 알면서도 누나의 추락 과정을 지켜보는 그의 죄책감을 공유하게 된다. 이는 인물이 뒤늦게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후에 벌어지는 아이러니를 다룬다는 필름 누아르 장르의 특성과도 연결되는데, 박찬욱은 그만의 현대적 언어로 이를 훌륭하게 재현해낸다. 극중 진실의 탐구자(Investigator of the truth)로 상정된 오대수( 최민식 )가 자신의 믿음은 거짓이고 진실은 따로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의 윤리적 세계와 작품의 서사적 자기 완결성은 모두 괴멸해버린다. 예기치 못한 이 괴멸을 지켜본 관객은 복합적인 감정의 늪에 빠지지만, 그로써 영화에 더욱 젖어든다. < 박쥐 >(2009)에서 송강호가 창문으로 향해 비상하는 장면에서 역시, 카메라의 시점에 따라 인물의 움직임이 추락으로도, 비상으로도 보이도록 연출해, 관습적 인식의 작동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적 순간을 어김없이 직조해냈다고 볼 수 있다. <올드보이>를 대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장도리 액션씬’도 마찬가지이다. 이 장면을 보고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을지 궁금하다. (관객) “아프겠다” “웃기다” “너무 리얼하다” “처절하다” “주인공이 아무리 맞고 찔려도 쓰러지지 않자 악당들이 공포스러워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맞다. 주인공의 멋진 모습이 부각되는 보통의 액션영화에서의 장면과는 확실히 다르다. *주3 데이비드 보드웰은 저서에서, 홍콩 무술영화의 매력은 ‘발레’처럼 ‘합이 맞는’ 액션이 설계된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씬’은 액션을 정교하게 설계하기를 거부하고,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함께 발생하지 못하리라고 판단되는 감정들이 육감적이고 정서적으로 동시에 발생하도록 놓아둔다. 맞고 때리는 사람의 피곤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육체적’ 액션이자, 누구도 승리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싸움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인물들이 실존적 질문을 던졌을 법하다는 추측도 하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이 현실성을 부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미적 성취를 거둔 ‘멋있는’ 장면으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대수를 연기한 최민식과 다른 배우들의 육체에서 발산되는 피로감에 관객이 공감하는 과정이 그 성취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의 육체가 작동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객이 관찰했기에 이런 공감이 가능해진다. 보통 예술영화에서는 장면이 시각적으로 정교해지는 데 기여하는 장치들을 일부러 노출해 영화의 작위성을 드러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소격 효과를 체험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도리 액션씬’에서는 정반대이다. 액션의 기술과 구성 모두 허술하지만, 관객은 그들의 싸움에 집중하며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깊이 연루된다. ‘내가 이 장면을 보고 왜 이렇게 반응했는지’를 신기하게 느낄 만큼. 최소한의 장치로 특정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효율성의 시네마’를 지양하고, 감각적•감정적으로 다양한 반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촬영된 장면이라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또 다른 작가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 가보자. 봉준호 감독의 < 기생충 >(2019)은 어떻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고 북미 영화계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그의 소감에서 연유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길 수 있게 해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미국에서 ‘봉준호’라는 작가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낮을 때였음에도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에 매번 그의 작품을 꼽아준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특히 본인이 “학교에서 마티(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를 보며 공부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며, 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를 5등분해 나눠 가지고 싶을 만큼 함께 후보에 오른 영미권 출신 감독들(마틴 스코세이지, 샘 멘데스, 쿠엔틴 타란티노, 토드 필립스)도 존경한다고 밝혔다. 자신을 장르적 개성에 완성도를 더한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계승자 중 하나로 인식하고, 이 계보를 함께 이어나가고 있는 동료와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읽힌다. 재치있게 언급된 < 텍사스 전기톱 학살 >(토비 후퍼, 1974)이라는 작품 역시, 뉴욕현대미술관에 역사상 가장 훌륭한 미국영화 중 한 작품으로 영구보존되어있고, 영화 매거진 Sight and Sound 선정 2012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영화 250편 중 183위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일부 마니아층만 찾는 고전호러영화이자 장르영화라고 생각할 법한 작품도, 할리우드의 영화적 계보 상에서 영화사적 가치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흐름을 따라 현재까지 활동을 지속하는 영미권 영화감독들과 동료 관계를 형성했고, 그 역시 그러한 계보의 연장선에서 ‘뉴 코리안 시네마’의 적자로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서구를 포함한 전 세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영화가 ‘글로벌 코리안 시네마’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비주류의 영역에서 탄생했을지라도 그만의 매력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특히 북미 관객이 열광하는) ‘덕후들의 장르’의 경향에 수렴해서, 즉 ‘좋아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어서’가 아닐까? 과거의 한국사회가 천대한 문화가 지금은 당당히 한류의 주축이 된 것처럼, 걸작도 한때는 쓸모없고 천박한 영화로 치부되곤 했다. 소수에게만 환영 받는다고 해서 가능성을 함부로 판단해 작품의 존재를 숨기지 말자. 이전에도 그랬듯이, 누군가(가령 대중문화의 소매상과 중개인)는 계속 찾고 있을 그 작품을 영화 팬으로서 계속 지지하고 싶다. * 질문과 답변 * (질문1) 불법 비디오 중심의 그레이 마켓이 크게 위축된 오늘날의 OTT 시대 에는 말씀하신 ‘대중문화의 소매상과 중개인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답변) 넷플릭스를 보면, 전 세계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적 문법을 사용했는데도 여전히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작품들(예를 들어 동유럽이나 남미 등지에서 제작된 호러영화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단순 B급 호러영화로 오해될 수 있지만, 사실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거나 높은 장르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OTT 플랫폼이 아니라면, 그리고 장르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그 플랫폼에서 이들을 발견해내는 불특정 다수의 애호가들이 아니라면, 이런 작품들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동시대 영화 제작의 기술적 수준은 빠른 속도로 평준화되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영화 제작과 감상이 (국가나 문화권 단위가 아니라) 특정 취향을 매개로 뭉친 애호가들 (예를 들어, ‘오대수 그룹’과 같이!)에 의해 활성화되는 경향이 크게 두드러지리라고 예상한다. 이처럼 영화를 향한 ‘대중문화의 소매상과 중개인’의 열정은 OTT 시대에도 가려진 걸작들을 발견하는 데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당분간은 OTT 산업이 그들의 활동을 무력화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보다 먼 미래까지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질문2)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이 널리 인정받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저만의 기우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미국 장르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가들이 향후 한국영화계에서 다시 등장할 수 있을지 가 궁금하다. 혹시 교수님께서 이들의 뒤를 이을 감독으로 눈여겨보신 이가 있으신지, 혹은 유사한 인물이 더는 출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보시는지를 여쭤보고 싶다.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 (답변) 나도 그렇고, 많은 분들께서 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은 1980~90년대 한국 현대사를 지나며 민주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영화학의 도입과 시네필 문화의 융성 등의 특수한 상황을 경험한 세대이다. 그래서 이후 세대의 감독들이 보여줄 작품의 형식과 내용도 그들의 작품에서와 같이 복합적일지에 대한 우려가 드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점은 제기하고 싶다. 바로 한국영화 내 ‘작가주의’의 지속성 에 대해서이다. 작품의 예술성을 좌우하는 주체는 감독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한국영화계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고, 연출과 제작 과정의 상당 부분은 감독 개인의 결정에 맡겨진다. 이러한 작가주의적 경향이 지속될 수 있을지가 조금 궁금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에 관한 지식이 편재하게 되면서 작품의 기술적 완성도가 평준화된 오늘날, 오히려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로 구성된 다양한 집단(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영화애호가 집단 등)이 영화 제작과 유통, 감상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영화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작가주의의 점진적 소멸이 그리 부정적인 현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도 본 질문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소용돌이 속 한국사회의 형성을 목도한 세대 이후의 감독들은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 최근 국내 장르영화의 문법이 독창적으로 발전하려는 신호가 보인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과는 다른 종류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은 연상호 감독의 행보,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 오징어 게임 >(황동혁, 2021) 등의 작품은, 한국 영상 콘텐츠의 장르적 언어가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단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전망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 < 지옥 >(연상호, 2021)과 <오징어 게임>(황동혁, 2021) (질문3)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과 달리 할리우드의 계보 바깥에 위치하면서도 ‘한국적’ 특색을 선보임으로써 북미 관객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감독 또는 작품이 존재할까? (답변) 두 사람도 한국 고유의 문화를 보여준다. 이들은 할리우드의 문법을 모사하지 않으면서 한국사회의 일면을 효과적으로 영화화한다. 할리우드마저도 이들의 연출 방식을 모방하는 현상을 보면, 둘의 작품세계가 지닌 독창성이 널리 인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영화 한 편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를 보여주기는 어렵다. 문화에서 ‘고유’의 영역을 분리해낼 수는 없듯이, 한국문화는 곧 한국인들의 총체적인 삶의 모습 이다. 여기에는 미처 분석하기 어려운 갖가지 요소들이 뒤섞여있고, 상호 모순적으로 보였던 요소들이 정체 불명의 통일성을 띤 채 놀랍게도 공존함이 드러나면서 한국문화의 위대한 성취가 엿보인다. 한국인들의 삶에서 녹아있는 이 혼잡한 뒤섞임과 공존을 어떻게 영화 한 편으로 압축해 선보일 수 있겠는가? (질문4) 교수님께서는 영화인이 공유하는 공통 언어로서 ‘장르’를 인식하고 계신 것으로 이해했는데, 교수님께서 영화의 ‘장르’를 정의하시는 방법 을 여쭤보고자 한다. 한편, VHS와 DVD가 영화에 미친 영향의 차이를 설명해주셨던 것처럼, 영화의 텍스트는 매체로부터 영향을 받아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스트리밍’ 매체가 영화에 대해 지닌 영향력 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혹시 가능하시다면, 교수님의 VHS 경험에 대해 더 듣고 싶다. (답변)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답하자면, 나는 사실 주류영화도, 예술영화도 아닌 영화들을 ‘장르영화’로 분류하고 있다. 그래서 딱히 ‘장르’라는 용어의 정의를 전제하고 있지는 않으며, 이에 대한 관점은 애호가 또는 연구자별로 다양하다. 그런데 사실 장르는 예술의 종류와 관계없이 오래 전부터 적용되어온, 많은 이들이 익숙해져있는 개념이다(에드가 앨런 포가 집필한 대부분의 소설이 호러 또는 미스터리로 여겨지는 것처럼). 작품의 종류를 상업적 필요에 따라 분류한다거나 그 개념을 둘러싼 관습이 서서히 누적되는 과정을 추적해 개념의 정의에 접근하는 일은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두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는, 스트리밍 시스템이 영화 텍스트에의 접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고 이야기하고 싶다. 만약 그 반대라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 오펜하이머 >(2023) 의 범세계적인 흥행이 설명될 수 없다. 스트리밍 맞춤형 콘텐츠만 환영 받는 환경이라면, 러닝타임 3시간 동안 인물들이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으로만 대부분 구성된 이 작품이 어떻게 인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극중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모습은 노트북이나 태블릿이 아니라 스크린으로 봐야 한다. 작품의 극장 상영의 가치가 충분하고 극장의 관객이 이 점을 공감했기에 가능한 흥행이었다. 이런 작품들의 인기가 스트리밍 시장에서 흥행하는 콘텐츠에 비해 밀릴 수는 있다. 하지만 절대 사라지지는 않는다. 마지막 질문에 답하자면, 나는 사실 VHS와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매체에 대한 접근성 은 아주 높기에 국외 작품일지라도 더빙판 등이 복사된 자료를 보며 감상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DVD는 접근성에 더해 수록된 영상의 품질까지 담보해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광학 매체의 발전이 4K UHD 블루레이까지 이어진 것을 보면, 여전히 누군가는 고품질 홈비디오를 찾고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나 역시 < 죠스 >(스티븐 스필버그, 1975) 의 4K UHD 판본을 보면서, 1970년대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감상하며 받은 느낌이 그대로 재현됨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이렇게 감상자 개인에게 높은 수준의 화질과 음질 경험 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한 광학 매체 시장 역시 사라지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아직까지도 1930~40년대 필름 누아르 장르의 영화들을 수록한 DVD가 무수히 많이 발매되고 있다 (고전기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여성 영화감독 아이다 루피노의 작품 등). 스트리밍 시장에서 주목받기 어려운 이 같은 작품들은 계속 해서 홈비디오의 형태로 마니아들에게 찾아온다. 따라서 나는, 어릴 적 영화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준 VHS라는 매체에게 감사하지만, 그립지는 않다. 그보다 뛰어난 영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홈비디오의 가능성이 이미 전 세계에 열려있으므로. (질문4-1) 선생님께서 아직 버리시지 못한 VHS가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장 정종화) (답변) 물론 있다. 한국영화이다. 박찬욱 감독의 < 3인조 >(1997). < 달은…해가 꾸는 꿈 >(1992)은 DVD로 발매되어 반갑게 구매했지만, <3인조> DVD는 아직 발매되지 않았다. (질문5) 영자원 역시 한국고전영화를 스트리밍할 수 있는 VOD 채널( 유튜브 , KMDb , 네이버TV )을 운영 중이고, 구독자 대부분은 해외 국가 출신이다. 본 채널에서의 서비스 품질 향상 방법을 고민하다가 기관이 직접 복원한 영상을 4K 해상도 로 게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회수 증가 속도가 이전보다 눈에 띄게 높아져, 광학 매체를 통해 대두된 ‘화질’의 중요성이 스트리밍 분야에서도 유효함을 깨달았다. 관련하여, 위에 말씀드린 영자원의 VOD 채널이 교수님께서 계신 미국 내 영화학자나 한국영화 팬들에게 얼마나 알려져있는지, 그들에게 본 채널이 주는 도움에 대해 체감하신 바가 있으신지 궁금하다. (한국영상자료원장 김홍준)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 중 4K 리마스터작 재생목록 (답변) 지금이라도 한국영화를 찾아보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에게 화질과 음질의 수준은 매우 중요하다. DVD라는 광학 매체가 처음 발매된 지 20여 년이 지났고, 이에 대한 시청각적 경험이 그만큼 많은 미국인들에 의해 학습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전 한국영화는 촬영 기술, 사회적 통념, 미학적 스타일 등의 측면에서 시대적 한계를 지녔더라도 대중에게 매력적인 작품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고전영화는 물론 장르영화에 대해서도 밀도 높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 기회만 있다면 이들도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앞선 질문에 답변한 내용에서처럼, 실체가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한국의 ‘대표성’을 보여주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고전영화는 물론이고 한국영화의 장르적 매력을 소개하려는 노력 이 필요하다. 따라서 고전영화를 고해상도로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영자원의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다. (질문6) 오래 전부터 “ koreanfilm.org ”에 올리신 리뷰를 통해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저 자신도 여기에 글을 남기며 교수님과 인연이 닿았다. 당시 ‘한국영화’에 대해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신 계기가 있나? (영화번역가 달시 파켓) (답변) 단순하다. 영화 팬으로서 멋있고, 아름답고, 가슴을 울리는 한국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쓰기 시작했다. ‘한국’영화라서 좋아하게 된 것은 전혀 아니다. 영화 팬인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한국영화계가 갑자기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제작한 작품이더라도, 독특한 매력으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면 얼마든지 ‘덕질’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동시대 한국영화계가 발표하는 작품들의 완성도에서는 충분히 희망이 보인다. 중소 규모의 제작사에서 만든 한국영화들을 다른 문화권의 작품들과 비교해보아도 손색이 없다. 그러고보니 조금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나는 역사 연구자임에도 영화를 사회적 사상이나 이념의 반영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오히려 영화 연구자분들께서 그와 같은 ‘사상적-이념적’ 관점으로 연구하시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역설이다. (코멘트) 비디오 리터러시 또는 시네마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있듯이, 만약 ‘ 장르 리터러시 ’라는 용어도 성립 가능하다면 영화산업과 아카이브 모두에게 유용한 개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자원도 현재 같은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필름 아카이브로서 장르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가 세계 또는 한국영화사의 어떠한 맥락과 닿아있는지를 관객에게 더욱 열심히 알려 대중의 장르 리터리시 신장에 기여하고 싶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장 정종화) (답변) 맞다. 김기영 감독의 재발견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장르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지역에 관계 없이 김기영 감독의 작품에 접근하고자 할 것이고, 이렇게 조성된 관문을 통해 관객의 시야가 넓어짐과 동시에 한국고전영화의 가치도 더욱 전파되리라 기대한다. *** 주1. 물론 이 과정에서 아시아 장르영화가 과도한 폭력과 성적 묘사를 강조한 “익스트림 시네마(Extreme Cinema)”라는 프레임으로만 인식되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비판도 있다. 주2. 그러나 넷플릭스도 실상 그 기원을 따라가면 광학 매체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은 초반에 ‘연체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DVD 렌탈 서비스’를 표방했고, 방대한 양의 소장자료를 자랑하며 그 어디에서도 감상할 수 없었던 작품들을 비디오 및 디스크 대여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점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주3. 기술 발전에 힘입어 세련되게 촬영된 액션영화들에서도 <올드보이>의 영향을 발견할 수는 있다. 넷플릭스 <데어데블> 시리즈 중 고정된 카메라 앞에서 인물들이 프레임 안팎을 오가며 싸우도록 한 인상적인 복도 액션씬이 대표적이다.
정성일 _ 작년 부산영화제 회고전에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한 이유는 심금을 울렸습니다. 아직도 첫사랑을 생각하다니!! (웃음) 봉준호 _ 첫사랑은 아니고 두 번째 여자죠. 석 달 만나고 헤어진,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 뭘 하려나.(웃음) 정성일 _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떠올리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입니까? < 아제아제 바라아제 > 봉준호 _ 두 개가 있어요. 강수연 선배가 (비구니가 되었다가 환속하면서 머물던 산사를 떠나서 속세로 향하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산을 향해 우는 장면과 한지일 선배와 처음 섹스 할 때 (아직 삭발한 채로 드러나는 머리를 가리기 위해 쓴 모자가 떨어지려고 하자 그) 모자 쓰려고 할 때 카메라가 올라가는 장면. 저걸 어떻게 찍었을까. 강수연 선배님과 술을 한잔 하면서 물어볼 수 있어 영광이었는데 한 테이크 만에 찍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수평에서 시작해서 직부감까지 올라가는. 그 두 개가 생각이 나네요. 정성일 _ 그 장면이 왜 그렇게 자신을 잡아 끈 거 같으세요? 이를테면 두 번째 장면은 여러 가지 기술적 효과나 강수연 씨의 연기도 있기 때문에 많은 비평가들이 주목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첫 번째 예로 든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기술적으로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본 사람들 중에서도 그 장면을 기억해내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봉준호 _ 보면서 되게 울컥 하더라구요. < 러브레터 >를 보면 산을 향해, 오겡끼데스까? 라고 부르는 데, 그거랑 많이 다르죠.(웃음) 정성일 _ 임 감독님을 지지하는 비평가들을 만나면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최고(Best)가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favorite) 영화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떤 장면이 즉각적으로 떠오릅니까.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한 사람은 토니 레인즈였는데 뒤이은 질문에 바로 그 장면을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임 감독님의 모든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씬일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다, 고 말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토니 레인즈는 한국 영화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서방세계 비평가이지 않습니까. < 아제아제 바라아제 > 봉준호 _ 저는 감성적으로 울컥했을 뿐더러 제가 울컥했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어요. 강수연 언니 얼굴이 안 나오고 음악도 안 나오고, 카메라가 다가가지도 않아요. 탁 주저앉고 산이 있는데 그걸 길게 끌지도 않으셨을 거예요. 저는 슬프기도 하면서 찌릿했어요. 그리고 대처로 나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부산에서 다시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걸 89년에 서울에서 봤을 때와 24년 만에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보면서, 그 사이 24년 동안 저한테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두 번째 여자 친구는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영화감독도 되었고 결혼도 했고 애도 낳았는데. 같은 장면인데 다른 감정이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저 장면을 찍었다면 어땠을까. 카메라를 강수연 선배 앞으로 갖고 가고 싶어 하는 유혹을 끝내 못 이겨내지 않았을까. 그게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던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서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선선함, 감정이 침전되는 그런 예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봤을 때는 굉장히 찌릿했었어요. < 길소뜸 >에서 한지일 선생께서 죽은 개를 들고 가는 장면도 강렬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강렬하게 잔상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그리고 저는 뒷모습이 많이 생각이 나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강수연 언니가 걸어가는... 전형적인 라스트 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과 속세에 대해 끌고 왔던 그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가 있는 탓도 있겠지만 사람들 틈으로 가는 강수연 씨의 남다른 뒷모습의 느낌이 있었다는 거 같아요. 뒷모습을 잘 찍는 다는 게 뭘까. 내가 영화에서 봤던 가장 인상작인 뒷모습이 뭘까, 가끔 생각해봐요 정성일 _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의) 에드워드 양도 뒷모습을 잘 찍는 감독입니다. < 태양은 없다 > 봉준호 _ < 태양은 없다 >에서도 정우성 씨의 뒷모습을 굉장히 잘 찍었습니다. 거기서 굉장히 외로워 보였습니다. 정성일 _ 정우성 씨를 카메라 앞에 세우면 다들 앞을 찍고 싶어 하죠. 봉준호 _ 저는 김성수 감독님 영화중에는 < 태양은 없다 >를 제일 좋아해요 정성일 _ 부산에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102편이나 되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중에서 딱 한 장만 티켓을 준다면 어떤 영화를 선택하시겠어요? 만약 저라면 봉준호 감독의 한 편은 < 괴물 >을 선택할 것입니다. < 살인의 추억 >으로 미워졌던 제 마음을 호의로 돌아서게 해준 작품이니까요. (웃음) 봉준호 _ 중간에 한 단계를 거치면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요? < 짝코 >, < 티켓 >, < 아제아제 바라아제 >일 거 같아요. <티켓>은 제게 잔상이 많은 영화였어요. < 길소뜸 >도 물론 아름다웠고, < 개벽 >도 있었고, (잠시 생각) < 축제 >는, ... < 창 >은, ... 아마 그 세 편인 거 같습니다. 간발의 차로 <길소뜸>. (웃음) 정성일 _ 바보 같은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봉준호 감독님께 좋은 영화란 무엇입니까? 봉준호 _ 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정성일 _ 똑같은 질문을 저 자신도 대중강의 때 많이 받았습니다. 수차례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영화에 시네마틱한 모멘트가 있으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고 대답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주제와 아무리 감동적인 얘기를 한다고 해도 좋은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으로 봉준호 감독께 이 순간이 오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그런 게 있습니까? < 설국열차 > 봉준호 _ 좋은 영화가 뭔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런 의견에는 100퍼센트 공감합니다. 저도 그런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 영화를 만들거든요. 영화든 만화든. 소설에는 불가능한. 여지껏 본적이 없는 영화적인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 저도 영화를 하는 거 같아요. 그걸 아편삼아 영화를 하는 거 같아요. < 마더 > 때는 허벅지에 침을 놓고 태양을 (향해서) 일어섰을 때가 그런 거였고, 그것을 아편 삼아 영화를 찍었고, < 설국열차 >에는 기차가 암흑 속에 빠졌을 때 기차 맨 뒤의 꼬마가 성냥불을 켜서 올림픽 성화 봉송처럼 그걸 들고 뛰어갈 때, 착각이고 환상인데 그걸 아편삼아 버텨나가는 거 같아요. 사실 그게 참 힘들잖아요, 이미 영화감독이 되셨는데, 게다가 3시간 대작을 찍으셨는데 정인선 양이 햄버거를 먹는 강렬한 긴 롱 테이크로 시작하는, (그런 선택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화일이 굉장히 힘들잖아요. 일 년에 한 편 씩 찍는 우디 앨런도 그렇게 말할 거예요. 데이빗 린치도 정신적으로 단련한다,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개기고 버티는 게 그런 모멘트 인거 같아요. 사람들이 비난하면 비난 들어야 하고 돈을 투자한 사람한테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되게 이상한 직업이지만 그래도 계속 버티고 하고 싶은 거는 그런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서, 이건 이제까지 아무도 한 적이 없어, 그걸 아편삼아 영화를 하는 거 같아요. 그런 모멘트가 있으니 이건 좋은 영화다, 라고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이유를 들이밀면서 우기지는 못하겠지만 이번 영화는 완전히 망했고 트위터에 사람들이 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면은 죽여, 그렇게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런 자기만족을 얻으면서 버티는 거 같아요. 근데 임 감독님 영화에는 항상 그런 게 있다는 거죠. 정성일 _ 평론가 입장에선 그런 순간이 있으면 영화를 필사적으로 방어해주고 싶어져요. 봉준호 _ 임 감독님 영화에는 그런 게 항상 있었던 거 같아요. 히치콕도 그렇고 이마무라 쇼헤이도 그렇고, 김기영 감독님 영화는 그런 게 되게 많은 거 같아요. 편애!! (웃음)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저는 항상 그 영화를 끄는 힘에 대해 항상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힘으로 난 끌고 갈 거야, 하는 그런 힘. 연출자로써 임권택 감독님영화를 보면서 가장 강렬한 힘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아까 매직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전 그게 있는 영화만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모든 걸 포기해도 좋으니 이것은 놓칠 수 없다 는 느낌. 그래서 이 힘을 모으려고 모든 것을 버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에서의 매직은 저에게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입니다. 저는 그걸 같은 연출자로서 봉준호 감독이 임 감독님의 영화를 바라보면서 보는 특별한 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봉준호 _ 시네마틱하거나 유니크한 대답은 못되겠지만 저는 임권택 감독님이 주인공이건 다른 사람이건 되게 가여워하시는 거 같아요. 오늘 본 < 짝코 >에서도 김희라 씨나 최윤석 씨를 가여워하시는 것 같고. 그렇다고 신파로 관객들을 눈물바다로 만든 적은 거의 없지만 < 티켓 >에서는 김지미 여사를, < 아제아제 바라아제 >에서는 강수연 뿐 아니라 (산사에서 머물면서 반대의 자리에 서서 강수연의 행동에 비판적이었던) 진영미 조차도, (그리고) < 서편제 >에서는 오정해 뿐만 아니라 눈을 멀게 한 김명곤조차도 가여워하시는 것을 우리도 약간씩 느끼는 거 같아요. 안됐다, 불쌍하다, 이런 마음의 기둥이 이렇게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매혹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방금 들었어요. 어떤 시대건 인물이건 특히 주인공을 가여워하신다. 거기 본인의 처지가 투사되실 수도 있겠죠. 어쨌든 가여워하시는 거 같아요. 그 느낌이 계속 유지되니까 영화가 추동되어 나가는 거 같고. 정성일 _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서 영화 편수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만 봉준호 감독도 이제 연출 경력에서 올해로 14년이 되는 프로페셔널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 ,여기서 나와 임권택 감독님이 갈라지는구나, 우리는 서로 다른 연출자구나, 이런 걸 느껴본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이건 존경하는 것과 다른 차원이죠. 충분히 훌륭하지만 당신과 나는 이 지점에서 갈라지는 구나하는 지점이랄까. 봉준호 _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동경의 대상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그런 뜻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비슷하다가, 그래서 같은 줄 알았다가 결국에는 다르구나, 해야 갈라진다고 느낄 텐데, 처음부터 임 감독님은 강 건너편에 계신 분, 강 건너 아주 아름다운 배경으로 계시고, 저는 반대편 둑(embankment)에 있는 거죠. 어느 편이 좋고 나쁘고 가 아니라 강 건너편에 계신 데, 물살을 거슬러 도달할 수 없는, 세월의 두께를 표현한다거나 선선한 느낌 같은 거는 도저히 제가 흉내 낼 수 없는, 항상 제 뚝방의 영화만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건너편이라고 해서 꼭 차갑고 낯선 거리를 느끼는 건 아니잖아요. 정성일 _ 국적을 불문하고 이 사람은 나랑 영화적 피가 똑같다는 사람은 누군가요?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봉준호 _ 똑같다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똑같고 싶다, 똑같다면 좋지 않을까 혈액형이. 그런 감독은 많이 있죠. 기요시. 대착각으로(웃음) 말한다면 히치콕. 넓은 의미에서 히치코키안. 물론 히치콕의 발톱의 때만도 못하지만 넓은 의미의 히치코키안이 되고 싶어요. < 설국열차 > 때 존 허트 할아버지와 술 먹다가 그 분이 마이클 치미노, 리들리 스콧, 데이빗 린치랑도 찍었고, 엄청나잖아요. 술 먹으면서 우리 영화 얘기를 해야 하는데, 가끔 눈치를 보면서 < 천국의 문 > 때 현장에서 어땠어요, 그런 질문을 하고 싶잖아요. 저도 씨네필이니까. (웃음) 그런 얘기를 하다가 존 허트 할아버지가 미스터 봉! 너는 히치코키언 인거 같애. 너의 스토리보드와 찍는 방식을 보면 그런 거 같애, 그러면 되게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오! 녹음할 걸! 조잡한 조잡심이 발동하면서, 그런 대화가 즐겁고 이분이 찍었던 감독들 리스트에 내가 끼었다는 게 기쁘고. (웃음) 하지만 냉정해야지. 영화를 찍어야 하니까. 거대한 히치코키언의 혈통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거기에 샤브롤도 있고 드 팔마도 있는 거잖아요. 드 팔마는 대놓고 내가 외아들이야 서자들 다 꺼져, 너무 그러니까 안쓰럽기도 한데, 샤브롤 님은 저 위에서 웃고 계시고, 나도 그 혈통에 끼면 좋지 않을까. 원래 형제들끼리 많이 싸우잖아요. 조상님만 보는 거죠. 임권택 감독님의 < 족보 >도 있는데, 영화는 시원찮고 체형만 닮아가고 있죠. 안타깝습니다. (웃음) 정성일 _ 뚝방의 이쪽으로 와 보지요. (웃음)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는 제작을 한 < 해무 >까지를 포함해서 연극이나 만화에는 이끌렸지만 문학에 이끌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종종 문학적 대사에 대한 경멸을 느껴봅니다. 봉준호 _ 경멸까지는 아니지만 문어체 대사가 정말 싫습니다. 정성일 _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문학의 무언가가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에 끼어드는 걸 불편하게 여긴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문학을 가능한 한 영화에서 밀쳐내는 것이 영화를 영화답게 만든다고 생각 한달까요, 이 지점이 서로 갈라서는 지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임 감독님은 끊임없이 긴 시간동안 문학을 영화에 끌어오고 아예 나중에는 이청준 작가님을 영화 현장에 모셔 옆에 앉혀놓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대사를 물어보곤 하셨죠. 이번 새 영화 < 화장 >도 김훈 작가의 소설입니다만, 김훈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찍고 싶어하는 마음은 아주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봉준호 _ 문학을 적대적으로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고 문학적인 뭔가가 침투되어 온다고 해서 이건 시네마틱 하지 않아, 라고 경계심과 적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고 그럴 계제도 못됩니다. 제가 문학을 잘 모릅니다. 형도 영문학을 전공하셨고, 외할아버지도 소설가셨는데, (외할아버지는 몽보(夢甫) 박태원 작가이다) 아직 외할아버지 소설도 다 읽지 못했습니다. 책보다는 DVD에 가까운 인간형이다 보니, 문학을 많이 접하지 못한 게 부끄러운데. 소설을 영화화한 적도 없었고, < 살인의 추억 >은 실제 사건과 김광림 선생의 「날 보러 와요」 희곡작품으로 했고, < 설국열차 >는 그래픽 노블이구요, < 괴물 >, < 마더 >, < 플란다스의 개 >는 저의 오리지널 스토리고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는 모르겠는데, 소설 원작을 제안 받아본 적은 많이 있어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도 「모방범」을 일본에서 이미 영화화되기는 했었지만 꼭 영화화 해달라고 제안을 하셔서 오래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테드 창의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라고 작년에 700억 규모의 세트 영화로 제안을 받았어요. (이 소설은 한국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고 번역된 단편집 안에 세 번째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로 번역되어 있다) 스토리가 굉장히 아름답고 좋더라구요. 언어학적이라 골치가 아프긴 한데,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를 이미 각색한 걸로 저에게 제안을 했어요. 근데 테드 창의 원작이 저는 훨씬 좋았어요.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좋은 소설인데 각색은 조디 포스터의 < 콘택트 >처럼 하향평준화 해놨어요. 저는 원작 단편이 훨씬 좋았습니다.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원작 소설을 내가 다시 각색하고 싶다고 했더니, 각색한 분이 또 프로듀서 중의 한 분이고 이미 그것을 기다리는 배우가 있고 그래서 결렬되었어요. 미안하다 디렉터 봉. 네가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다고 믿는데 우리가 스튜디오랑 스케줄이 있다. 저게 첫 번째 문학 텍스트였을 뻔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저걸 < 프리즈너스 >와 < 그을린 사랑 >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하게 되었더라구요. 제가 문학 원작을 의도적으로 배척할 경지는 못되었고 사건이나 인물이 흥미로우면 저는 본능적으로 끌렸습니다. 하지만 대신 문예영화에는 경계가 있었어요. 문예영화라는 딱지를 붙었을 때 대종상을 더 받을 수 있는 영화고 점잖고 아름다운 영화. 소설을 바탕으로 한 문예영화가 아니면 그것을 장르영화로 폄하하는 카운터 관계로서 자리매김하는 건 너무 싫거든요. 장르라는 건 더 아름답고 영화적이다. 저는 장르는 존경받아야 한다. 저나 김지운 감독의 마음속에는. 김지운 감독도 굉장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장르를 선포하시잖아요. 이번에는 만주 웨스턴이요. 호러요. 저는 그런 건 좋은 관점 내지 태도라고 존중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장르를 폄하하지 말라는 뜻에서 문예영화라는 타이틀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던 거지, 문학이나 소설을 제가 딱히 경계할 위치는 못되었고 많이 읽지 못한 것을 개인적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죠. 정성일 _ 비평 커뮤니티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다섯 편을 연출하면서 문학과의 거리를 계속 유지하는 건 외할아버지와의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 자체가 워낙 큰 작가이고 그런 것이 자기 세계에 얽혀 들어가는 것과 긴장을 유지한다고 할까. 봉준호 _ 처음 생각해보는 부분인 거 같습니다. 외할아버지를 포함해서 문학 전체에 대해 경계심을 갖지 못했던 거 같구요. 독서량이나 독서 습관이 잘 형성이 안 되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려서 만화와 TV를 너무 끼고 살아서(웃음) 장편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지구력과 맷집의 부족, 대학 때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영화화하고 싶어서 배우를 대입시켜서 생각해본 적은 있는데, 염상진은 이 사람이야, 하대치는 허벅지가 굵어야해. (웃음) 이미 임권택 감독님이 영화를 만드셨고. 문학에 대한 자의식과 디스턴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송길한 , 송능한 형제님들이 있는데 영화를 찍고 있을 때 < 넘버 3 >의 시나리오를 구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굉장히 쇼킹한 적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사람이 이렇게 잘 쓸 수 있구나. 정말 훌륭하다. 이창동 감독님의 시나리오도 영화화되기 전에 구해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아름답고 잘 쓰시고. 임상수 감독님도 참 대사도 잘 쓰시고 그렇지만 송능한 감독님의 시나리오 <넘버 3>를 봤을 때는 진짜 훌륭했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안 하시지만 그분의 형님이신 송길한 선생님이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 하신 작품들을 보면 < 짝코 >, < 길소뜸 >, < 만다라 >, < 티켓 >, 많네요. 소설 원작이 있었다고 해도 송길한 선생님은 제가 좋아하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많이 하셨고, 송길한 선생님의 시나리오는 문학의 영역같이 느껴져요. 신춘문예 당선작의 희곡과 시나리오를 보는 것처럼. 영화를 안 본 상태에서 송길한 선생님의 시나리오만 읽어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송길한 선생님 같은 경우는 정말 대단한 분이 아니신가. 문학과 영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 분은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정말 위대한 문학가이지 않으신가. 정성일 _ 봉준호 감독님은 콘티를 정말 잘 그리는 걸로 충무로 넘버원이잖아요.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콘티 작업도 직접 하는데 끝난 콘티하고 완성된 영화하고 오차 범위가 얼마나 되세요? 봉준호 _ 상당히 비슷합니다. 정성일 _ 이를테면 박찬욱 감독은 거의 콘티대로 찍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봉준호 _ 저도 콘티대로 찍고 편집에서 약간 응용하거나 변화를 많이 주기도 하지만, 저는 샷 컨스트럭션 하는 게 감독의 가장 큰 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당일 날 아침에는 콘티를 복사해서 나눠주고, 콘티 배열대로 찍습니다. 다만 배우에게 있어서는 방금 물에서 잡은 물고기처럼 라이브하게 가야하니까, 현장에서만 시도해볼 수 있는 거라든가 숨통을 트일 수 있는 뭐가 있는 지 막 얘기하고 하는데 그렇게 찍는 장면도 설계된 카메라였구요, 그게 감독의 일이고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흔히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가 좋았어, 라고 생각하는 것도 시나리오를 인쇄해서 극장에서 나눠주는 게 아니잖아요. 영화 속에 배열된 장면을 보고 거기서 추출 되서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오게 되는 건데, 물론 시나리오도 제가 직접 씁니다만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 시나리오는 증발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장면과 사운드가 남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2시간 동안 연이어 보여지는 커트 수가 1,000개 이하거든요. < 설국열차 >때 처음 1,000개를 넘어갔는데, < 괴물 >도 약 800컷, < 마더 >도 약 600컷. 장면들의 연속이 물질적으로 영화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설계하는 게 감독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성일 _ 현장에서의 우연이라는 건 배우 이외에는 허용하지 않나요? 봉준호 _ 우연을 줄이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콘티 자체가 로케이션 헌팅을 하고 공간을 확정지은 후에 콘티를 수정하거나 만듭니다. 또는 세트의 설계도가 나온 후에 다시 수정하거나 합니다. 쇼트를 컨스트럭션 해야 하니까요. 반대로 쇼트를 설계하면서 공간도 설계하게 되니까, 이런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미술 감독에게 주문하죠. 취조실이 보일러실이고 이 창에서 김상경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이런 계단을 해주시오. 이 계단의 폭은 매우 좁아야합니다. 그 주문에 맞춰 류성희 미술감독이 세트를 만들어 줍니다. 만들어진 세트를 보고 또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다시 공간을 설계하고 그렇게 가면 큰 문제가 없이 그대로 찍게 됩니다. 미친 듯이 준비하고 오차를 없애려고 하고.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불안한 게 많아서 그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겁이 나니까. 엑스트라 50명 왔는데 못 찍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해서 콘티를 그리고 카피해서 나눠줍니다. 몇 달 전에 나오는 콘티도 있고, 그전 날 나눠주는 콘티도 있고 당일 날 나눠주는 콘티도 있지만. 콘티 없이 현장에 스태프가 모이는 일은 없었어요. 이렇게 하면 마음이 놓이니까 그렇게 하죠. 그렇게 콘티를 스태프들이 다 쥐고 있으면 그때부터는 청개구리 심리가 발동하죠. 콘티대로 하면 찍을 수는 있으니까 일단은 기본적인 안심은 됐고, 내가 만든 콘티지만 어떻게 반항할까, 거역할까. 어떤 걸 뭘 더 추가할까. 저 배우가 저 표정이 재밌으니까 옆에서 한번 찍어볼까. 현장에 몰랐는데 알고 보니 누가 버려둔 자전거가 있더라. < 흔들리는 도쿄 >때는 그걸 확 잡아 빼는 장면을 넣기도 했고. 그게 저를 흥분시키거나 현장에 나가고 싶게 만드는 요소죠. 하지만 그건 다 준비한 후구요. 콘티 없이 현장에 나가는 게 싫습니다. 정성일 _ 어떤 점에서는 시나리오가 끝났을 때 이미 영화가 머릿속에서 끝난 거네요. 봉준호 _ 다는 아닌데 시나리오를 쓸 때 이미 사운드랑 이미지로 생각했는데 그걸 그려 주기에는 (시나리오라는 것이) 낯선 단계이기 때문에 그걸 지문이랑 대사로 전환시켜서 인더스트리에서는 시나리오를 필요로 하잖아요. 그걸 가지고 스태프들을 구성하고 하니까. 구청에 갈 때는 민원서류를 들고 가듯이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서류를 통해서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인 것처럼 영화 일을 위해 시나리오를 쓴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많은 감독님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사운드와 이미지가 먼저 있는 거고 그래서 제가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를 받아서 연출하는 걸 잘 못하는 거 같아요. 결국 제가 쓰게 되잖아요. 미국 영화 시스템에서는 에이전시에서 뿌리는 시나리오들. 시나리오와 감독과 배우가 짝짓기 하잖아요. 한국 같은 경우는 연애 결혼하는 거잖아요. 미국은 시스템 자체가 중매결혼 하고. 중매쟁이가 에이젠트들이죠. 미국에서도 타란티노같은 감독들은 연애 결혼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영화 사이의) 텀이 3, 4년 정도 걸리고. 직업적으로 더 많은 영화를 만들려면 때로 중매 결혼해야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은 거 같아요.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렇게 준비를 해서 현장 진행을 할 때 실용적 관점에서 찍으세요, 아니면 영화를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으세요? 봉준호 _ 순서대로 찍은 적은 없고요,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으려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요. 켄 로치가 < 랜드 앤드 프리덤 >을 찍을 때 그렇게 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한 효과가 클라이맥스에서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이크 리는 연극 공연처럼 접근한다고 들었어요. 몇 달간 모여서 연습하고 크랭크 인하는 시점이 대학로 무대 공연 올리는 시점처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그 양반들의 접근법이다, 라고 생각하고 저는 물리적입니다. < 설국열차 >도 첫날 라스트 씬을 찍었구요, 촬영 조건 때문에. 고아성 과 그 흑인 아이가 기차 밖으로 나가서, (그 설경 장면이) 실제 오스트리아의 산악지대에서 찍은 것이거든요. 이 라스트 씬 만큼은 실제 눈이어야 하지 않나. 두 시간 동안 기차 세트 안에서 찍고 창밖은 (스튜디오 안에서) 내내 그린 스크린인데, 이제 마침내 기차를 벗어나 이게 메시지인데, 그래서 마침내 기차 바깥을 나와서 차가운 실제 공기를 마시고 실제 곰이 있는 건데 이것까지 그린 스크린을 해야 되냐. 미국 라인 피디가 엄청 반대하는데 저랑 홍경표 촬영 감독이 우겨서 찍었어요. 영화를 4월, 5월, 6월에 찍은 건데 눈 녹기 전에 그 라스트 씬만 (먼저) 찍고 온 거죠. 3월이 지나면 눈이 녹으니까 스태프들이 모여서 영화 라스트 씬부터 찍은 거죠. 우리는 프로잖아?! 이러면서 찍은 거죠. 고아성 양이 감독님 어떻게 해야 되요? (현장 표정을 지으면서) 많은 일을 겪었잖아, 시나리오 읽었잖아? 이러면서 찍었죠. (웃음) 와 너무 좋아, 좋아, 잘했어!! 불안해하지 마! 이러고 찍었죠. < 살인의 추억 >에서도 라스트 씬에서 송강호 씨가 황금벌판 보는 장면을 촬영 초에 찍었어요. 벼가 누렇게 익어서 출렁출렁할 때 찍어야하니까. <살인의 추억> 크랭크 인이 전남 장성에서 2002년 8월 21일, 8월 말이었는데 황금벌판, 추수 직전에 찍고 싶었어요. 그게 논 주인들과 다 협상하고 얘기를 한 건데 벼 베기 직전에 우리에게 알려 달라, 논마다 벼 베는 시점이 다 달라요. 벼 베는 시점을 제작부장이 미리 다 체크를 하고 벼 베기 직전에 그것을 찍었기 때문에 전체 영화의 25퍼센트 지점에 (찍었어요). 그건 프로로써 당연히... (잠시 생각) 감독이나 배우로써 난감할 수 잇겠지만, 세트 가면 세트로 몰아서 찍는 거구요. 특히 <설국열차>에선 정말 촬영순서가 복잡했는데 왜냐면, 설명을 하자면, ABCD 이렇게 4개의 세트를 짓고 해체하면서 돌아가면서 찍는 거거든요. 식물 칸에서 찍고 있을 때 꼬리 칸을 한 쪽에서 만들고 있고, 완성되면 넘어가고. 이쪽에서는 또 해체하고, 뼈대만 남기고, 뼈대 가격이 정말 비쌌기 때문에, 전체 스케줄을 지배하는 게 미술팀인거에요. 기차 세트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건데 기차도 실제 크기이고. 총 26개 서로 다른 기차 칸을 짓는데 기차 예산을 가장 ‘코스트 이펙티브’ 하게 짓고 해체하는 데에 맞춰서 배우와 스태프 전체가 움직이는 거예요. 미술팀이 스케줄을 지배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했으니 간신히 400억에 만든 거예요. 그렇게 뒤죽박죽해서 찍는 와중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더 계획해야하고 스토리보드 대로 찍어야 하는 거죠. 정성일 _ 이건 비평가라기보다는 씨네필로서의 관심인데, 완전히 반대로 찍는 사람은 홍상수 감독이잖아요. 두 분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항상 재밌게 본다는 이야기를 여러 인터뷰에서 읽었습니다. 완전히 다르게 찍는 이 감독의 영화에서 무엇이 재미있으세요? 봉준호 _ 다 요, 매직.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도 매직이 많지만,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도 매직이 정말 많은 거 같아요. 정성일 _ 그 매직이 가장 많은 영화는 어떤 영화였나요? < 북촌방향 > 봉준호 _ < 북촌방향 >. 최근에 흑백영화였죠. 술 먹고 아침에 길에 나와서 택시 잡는데 모여서, 그 장면이 정말 압권인거 같아요. 홍상수 감독님과 술을 몇 차례 먹어본 적은 있고, 섹시하시고 (웃음) 촬영현장에 가본 거는 딱 한 번뿐이에요. 김형구 감독님이 촬영하셨던 < 극장전 > 현장에 제가 갔었더랬어요. < 살인의 추억 >을 찍은 직후였고 김상경 도 볼 겸. 그 씬은 영화에서 편집 때 결국 잘려나갔는데 김상경이 술자리에서 여자들과 술 마시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세세하게 디렉팅하시더라구요. 여기 소주잔을 이렇게 잡고, 소주잔을 깨물어서 이렇게 하란 말이야! 단역배우에게도 굉장히 엄격하고 세세하게 얘기하더라구요. 존 카사베츠 스타일과 아주 다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전히 가장 매혹적인 영화를 만드시는 거 같아요. < 밤과 낮 >도 미국판 DVD를 얼마 전에 아마존에서 구했기 때문에 빼고는 다 갖고 있는데 모든 DVD를 늘어놓고 보면 몇 개씩 건너뛰어서 연결하면 한 영화 같기도 하고 이번 주 < 자유의 언덕 >도 보지만. 포스터를 보면 문소리가 비굴하게 해맑은 얼굴로 카세 료에게 수작을 걸잖아요. (웃음) 카세 료는 왜 이렇게 말랐을까, 감독님이 주문을 했나. 포스터부터 매혹됩니다. 정성일 _ 원래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2000년부터 < 플란다스의 개 >로 시작을 해서 영화 작업 기간이 14년이나 겹치는데 봉준호 감독과 임 감독님의 배우가 서로 안 겹칩니다. 한국영화는 의외로 매우 좁기 때문에 서로 배우를 피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배우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을 제외하면 감독이 배우와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긴데, 이를테면 많은 감독들이 다른 감독 영화를 볼 때 그 감독이 배우를 어떻게 다룰까 유심히 보는 거 같습니다. 봉준호 _ 드디어 겹쳤습니다. 김호정 씨. 저의 첫 작품과 임 감독님이 최근 작품이! (웃음) 그런데 정말 안 겹치나요? 정성일 _ 양쪽 모두 자기에게 탑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겹치지 않았어요. 그렇게 사랑하는 강수연 씨도 안 쓰셨잖아요? (웃음) 말하자면 배우가 아니라 그 배우가 만들어내는 인물과의 친화성이랄까, 연출이란 결국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멀어지면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게 된다고 느껴집니다. 연기지도라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도 매우 특별한 자기 방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바라보면서 이것이 임권택 연기 디렉션 메소드라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요? < 마더 > 봉준호 _ 많은 명배우들이 나오셨잖아요, 임 감독님 영화에. 그래서 약간 외람되지만, 예를 들어 김갑수 , 강수연 선배님처럼 그런 명배우 말고 우리가 흔히 명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 배우를 보면 임 감독님의 메소드가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한지일 씨. 제가 연출부에서 그분을 잠시 모신 적이 있어요. <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 >에서 슬레이트를 치고 첫 연출부를 했었는데( 박종원 감독의 연출부를 했다) 거기에 한지일 선배님이 나오시죠. 그때도 물어 봤죠 < 아제아제 바라아제 >랑 < 길소뜸 >에서 어떻게 하셨나. 그 분이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보면 소주병을 들고 (같이 자기와 살지 않으면) 자기가 죽으려고 한다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비구니인) 강수연에게 이상한 대사들을 하는데, 그때 영화 아카데미에서 친한 누나인 김명화 선배가 임권택 감독님 연출부를 몇 작품 하셨는데 한지일 선배님이 영화를 찍을 때 상황을 얘기 하시더라구요. 밤 새워 뭔가를 찍는 장면이 있었는데 계속 그 대사를 틀리셔서 결국에는 한지일 선배를 제외한 모든 스태프들이 그 대사를 외웠다는. (웃음) 임 감독님이 그것을 다 인내하시고 참아내시면서 결국 오케이를 하신다. 아까 말한 제 얕은 추측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을, (잠시 생각) 시대를 가여워 하시는 거 같습니다. 배우들에게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춘향뎐 > 예고편을 보면 배우들을 다그치고 윽박지르는 것도 나오지만 그런 건 표면적 메소드가 아닐까 합니다. 배우들을 되게 아끼고 좋아하지 않으실까, 가여워하지 않으실까. 그런 마음이 있을 때 감독이 사실은 기다릴 수 있게 되거든요. 그 분이 이 인터뷰를 읽지 않을 거라는 추측에 이런 말을 하는데요. 김진구 할머니라는 분이 계세요. < 플란다스의 개 >에서 침 뱉는 할머니, 치와와 주인. < 마더 >에서 죽은 여고생 쌀떡 소녀의 할머니, 맨날 막걸리 드시는. 이창동 감독님 영화에도 몇 번 나오시고.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배우신데. 여균동 의 < 죽이는 이야기 >에도 나오시고. 저는 김진구 여사님 되게 좋아하거든요. <마더>에서 김혜자 선생님과 연기 대결하는 순간이 있어요. 김혜자 선생님이 플래시 들고 갔을 때 쌀통 속에서 핸드폰을 좌악 꺼내며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대사를 빅 클로즈업에 하는 장면이 있어요. 나정이 핸드폰 여기 있어요? 그러니까, (김진구 여사가) 벌써 술 바꿔 먹었는데~~ 이러는 이상한 괴연(怪演)을 하는 게 있는데 그걸 제가 35 테이크 까지 갔어요. 그걸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컨셉이 있었는데. 고걸 제가 (그 앞에서 직접) 여러 번 해드렸어요. (그런데) 막상 하면 자꾸 딴 걸 하세요. 그 분이 정신이 약간 오락가락하세요. 나중에는 옆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지치셔서, 아유 이렇게 찍으면 벙어리도 입이 열리겠네, 그러시는 거예요. (웃음) 그래도 제가 그 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었거든요. 홍경표 감독님이 핸드 헬드니 얼마나 어깨가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다 기다려주시고. 임 감독님이 때로는 되게 배우들에게 무섭게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영화처럼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을 가여워하신다고 추측해요. < 취화선 > 때 현장에 되게 오래 계셨잖아요? 정성일 _ < 취화선 > 때 손예진 양이 죽다 살아났죠. 똑같이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 영화도 필름으로 찍었는데 장승업이 손을 다치자 어쩌나, 그 귀한 손을, 하는 장면을 17 테이크를 갔죠. 약간 동선이 복잡해서 오후 내내 찍었어요. (웃음)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에서도 배우들의 앙상블이 종종 모든 걸 거는 장면들과 만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저는 < 살인의 추억 >에서 한꺼번에 룸살롱에 형사들이 몰려가서 얘기하는 장면의 앙상블이 정말 좋아요. 그게 희생자가 발견된 논두렁을 오가는 송강호 를 따라 롱 테이크로 쫓아가는 그 유명한 장면보다 훨씬 좋았어요. 봉준호 _ 거의 안무죠. 정성일 _ 정말 앙상블의 안무죠. 저로서는 < 플란다스의 개 >가 사랑스럽긴 하지만 여기서 이 사람이 연출자로 확 커져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건 그런 장면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좁은 공간으로 밀어 넣었는데 < 설국열차 >에는 왜 그런 순간이 없을까 아쉬웠어요. 좀 밋밋하게 느껴졌달까, 오히려 폐쇄 공간에 모든 배우들을 집어넣고 나면 저는 그런 순간이 계속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봉준호 _ 미세한 연기적 뉘앙스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세밀한 터치를 하기가 < 설국열차 > 때 그게 쉽지가 않았어요.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적으로 2개월 4주 만에 그걸 다 찍는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찍는 분량이 제가 보통 찍는 분량보다 훨씬 많았죠. < 살인의 추억 >이 한 5개월 찍었고, < 괴물 >도 6개월, < 마더 >는 4개월. 제가 찍었던 영화 중 <설국열차>가 테이크 수가 제일 적었어요. 투박하고 거친 느낌으로 계속 밀어붙이지 않으면 제 일정 안에 끝내기 힘들,. 그런 계산이 첫 주 둘째 주부터 들더라구요. 그런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 때 자주 쓰시는 말 중 하나가 상상력입니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님 영화를 보면 상상력의 어떤 순간들이 진행되는 이야기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 괴물 >에 괴물이 나왔다는 차원이 아니라, < 살인의 추억 >의 경우 실제 사건을 쫓아가는 중에 어떤 장면을 연출할 때 사실을 과잉해버린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장식 과잉이 아니라 어떤 순간으로 밀어붙여 버린달까? 구태여 보일러실로 갈 필요가 없었는데 상식적으로 경찰서로 가면 되는데 보일러실로 내려가서 사실 공간으로부터 상상력의 공간으로 끌고 간달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봉준호 터치야, 라고 말하는. 구태여 시체를 전시한 < 마더 >의 장면에서도 그렇고, 봉준호 감독님의 대답을 흉내 내자면 빨래처럼 시체를 걸어놔야만 한다는 어떤 변태적인 증후들. (웃음) 이건 명백히 이야기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순조롭게 가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연출자가 그 상상력의 흔적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순간들이 있달까요. <괴물>의 경우에도 그 출발이 서울 시민 2천만이 다 보는 한강에 괴물을 구태여 끌어내서 실재와의 불가능성을 동거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그 과잉하는 상상력.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백주 대낮의 한강에서 마주쳐야만 하는 괴물. 이 괴물은 처음부터 은밀하게 나타날 생각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상상력의 허구 안에서 필사적으로 리얼리티를 끌어내려고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상상력의 허구 안에서 필사적으로 리얼리티를 부여하려는,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과 리얼리티의 긴장, 공존의 긴장. < 살인의 추억 > 봉준호 _ 말씀하신 대로인거 같아요. 그런 걸 할 때 가장 즐겁습니다. 최대한 뻔뻔스러워지려고 하고.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중요한 흥분이라고 느껴져요. 말이 안 되는 건데 괴물이라는 생명체가 맨날 왔다 갔다 하는 한강 고수 부지 백주대낮에 가는 거잖아요. 그거에 대한 송강호 의 리액션은 또 너무나 사실적이잖아요. 분위기도 리얼하고 SF적인 포장이 전혀 없고. 거기서 오는 생경하면서 어색하기도 한, 표피가 리얼하면 보는 사람은 믿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는데 믿을 수밖에 없도록 표피를 만들고. 그런 상황이 저는 되게 좋아요 재밌고. 실제로 2001년인가 태국 무슨 서커스단이 한국에 와서 코끼리 다섯 마리가 장안동 광진구 쪽 일대를 돌아다니는 뉴스 클립이 유튜브에 있어요. MBC 뉴스데스크에 나오는데, 어떤 식당에 코끼리가 들어가서 가게 주인이 망연자실하게 보는데 코끼리가 김치 통을 까고 있고, (웃음) 실제로 뉴스 클립인데 초현실적이거든요. 그런 느낌을 좋아하니까 < 괴물 >같은 걸 한 거고, <괴물>처럼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어도, < 살인의 추억 >에서도 보일러실 얘기를 하셨지만 최소한의 저 자신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핑계거리만 있다면 밀어붙이려고 하거든요. 실제 화성연쇄 사건 기록을 봐도 미국처럼 근사한 취조실이 없어요. 라이트가 쫙 들어오고 밖에서만 안이 보이고, 80년대는 그런 게 절대 없어요. 취조를 근처 여관방에서 하고 그래요. 여인숙에 데려가서 앞에 순경 세워놓고 안에서 쥐어박으면서. 그런 증언이나 기록이 되게 많아요. <살인의 추억> 전체적으로 보면 야매에 대한 맥락이 있어요. 나이키와 나이스. 전미선 씨가 야매 주사를 놓고 경찰 자체가 FBI와 시골형사로 나눠놓고 증거자료가 오가고. 취조실도 제대로 된 취조실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보일러실 취조, 그래 좋다. 뻔뻔스럽게 스태프들을 먼저 설득을 하고요. (모두 모아놓고) 실제 이랬어요, 그러는 거죠. 김뢰하 씨가 워커 군화를 신고 용의자를 구타할 때 거기에 덧버선을 씌웠습니다. 사실 이건 제 머릿속에서 나왔는데 스태프에게는 항상 테스트 삼아 거짓말을 해봐요. 이건 내가 형사 인터뷰에서 들은 거라고, 그럼 다들 아, 진짜 리얼하네요, (웃음) 그래요. 보여주면, 설득하면 믿는 거 같아요. 항상 스태프가 첫 번째 관객이라고 생각하는데,그래서 (스태프들에게) 실제 형사를 취재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디테일이에요, (라고 시침 뚝 떼고) 말하는 거죠. 그냥 시나리오 쓰면서 생각한 거거든요. 그런 게 점점 심해지면 <괴물>까지 나오는 거예요. 점점 뻔뻔스러워지죠. < 마더 >도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허벅지 어디다 침을 놓으면 기억을 상실하고, (그런데도) 동의보감에 그런 게 있다는 둥, (웃음) 우리가 보면 말이 안 되지만 동의보감이나 실제 고증해보면 있다. 이런 게.(웃음) 진정한 망각까지는 안 되겠지만 여기다 침을 놓으면 몸이 풀리면서 좋아진다고 해요. 그러면 김혜자 선생님도, 어. 그렇군요, 그러시죠. 누구를 속이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기본이 아닌가요. < 화니와 알렉산더 >에서도 나오지만 남자애가 거짓말을 하잖아요. 그게 사실 창작의 근원처럼 영화가 설명되고 있는데. 신부의 집에서 애가 모진 일들을 겪으면서, 마지막에 할머니가 재우면서 읽어주는 시도 그렇고 창작의 거미줄을 짓는 것. 그런 것을 상상력이라고 표현해주셨는데,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 이거 취재에서 나온 건데? 그렇게 믿게 만드는 거. 그럴수록 재밌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정성일 _ 한국영화의 가장 큰 짐 중 하나는 리얼리즘이라는 말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인과관계로 다가오고, 누군가에게 사실주의로 다가오는 데, 이 사회가 끊임없이 예술가들에게 요구를 하고 있는 것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리얼리즘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마법적 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봉준호 감독에게 리얼리즘이란 무엇입니까? 봉준호 _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저는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이 없고 리스펙트도 없어요, 만화를 좋아하고 그리면서 컸기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정성일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있으면 디테일적인 리얼리즘이랄까요. 보는 쪽에서는 강박적일만큼. < 괴물 > 봉준호 _ 그런 걸 집착하고 즐기는데 모든 게 연출이라는 걸 다 알잖아요. 특히 < 괴물 >에서 간호사 다리만 나오는 뉴스 인터뷰 장면에서 TV 뉴스 따라한 거 저 정말 좋아하거든요. 진짜 최일구 앵커 나오고 자막도 뉴스 자막처럼 들어가고 실제 공중파 앵커들을 데려다가 한강에서 괴물이 나왔다고 찍는 게, 다 큰 어른들이 그러는 게 얼마나 한심하고 웃긴 상황이에요. 찍으면서도 너무 웃기죠. 그걸 뻔뻔스럽게 찍는 건데 말투부터 토씨까지 앵커처럼 바꿔서. 그게 강박적으로 리얼한 거 같지만 이 사건과 영화 전체가 너무나 황당한 거잖아요. 한강에서 포름알데히드를 부었다는 이유로 괴물이 나왔다. 과학자가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초반 13분에 그냥 다 나와 버리니까. 괴물이 나올수록 오히려 저는 더 리얼하고 싶은 거예요. < 설국열차 >는 기차 안에 다 우겨넣으면서 오롯이 더 SF적인 세계인 건데, 이질적인 건데 다 뻔뻔스럽게 한 프레임에 우겨넣어버리거나 도저히 리얼할 수 없는 건데 그걸 기를 쓰고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이 부질없어 하면서도 재밌는 거죠. <괴물> 때 그게 극대화되었던 건데. 그게 영화 전체가 아니라 신이나 쇼트에서, 적은 단위에서도 그런 짓을 하는 걸 좋아하고,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경계가 없어지는 게 즐거워요. < 마더 > 개봉하고 실제 4개월 후에 대구에서 어떤 여고생이 살해되었는데 나무에 여고생을 걸어놨었어요. 그런 사건도 실제 벌어지거든요. 실제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 영화를 압도할 때가 있잖아요. 논픽션이 픽션을 압도하는 경우. 너무 기괴하고 이상해서 기구한. 마치 < 매그놀리아 > 도입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혀 개연성이 없는 일인데 실제로 벌어진. 실제 다큐멘터리라고 하니까 더 믿을 수밖에 없는. 제 영화에서 가장 이상하고 괴상한 것을 반복해 놓은 게 <괴물>이었는데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과 연결시켜서 정리해놓은 게 있더라구요. 실제에서도 오히려 경계가 없지 않나 생각해요. 정성일 _ 디테일의 리얼리즘이 보는 쪽에게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님 영화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잖아요. 근데 그걸 굉장히 냉소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거죠. 정치적 연상도 일으키고 한편에서는 아까 쓴 표현을 빌리자면 서늘한 거죠. 왜냐하면 내가 사는 세상을 향해 웃고 있는 거니까. 냉소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게 한편으로는 봉준호 감독님께서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한 건가요? 봉준호 _ 제 성격이 좀 그런 거 같아요. 임 감독님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특유의 선선함이나 가여워하는 것. 저도 그런 마음이 있거든요. 아무리 영화 속 악인이라도 가엽고, < 살인의 추억 >의 범인도 그렇겠지만. 가여움에 대한 관점이 있는데, 다만 성격적으로 제가 단일한 하나의 감정에 편하게 몰입을 못하는 성격이라. 사람들이랑 즐겁게 술을 먹다가도, 실제 생활에도 그런 면이 있어요. 제가 끼면 아마 사람들이 불편할 거예요. 정성일 _ < 마더 >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금기처럼 방어선을 쳐 놓은 모성이라는 안전한 세계를 광기처럼 만들어놓았습니다. 이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 시 >와 같은 해에 개봉했는데, 감독 자신은 전혀 원치 않겠지만, 마치 <마더>는 우연히도 <시>에 대한 메타 비평처럼 보입니다. 둘 다 결국은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잖습니까. <시>는 모성이 자식의 죄에 대해 가져야 할 도덕적 태도가 무엇인지 물어본 다음 전체의 질서 안으로 다시 편입시킵니다. <마더>는 그 사랑의 선택을 윤리적으로 바라본 다음 광기에로 밀어 넣습니다. 저는 여기서 모성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마더>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의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마치 보호해야할 무언가를 지키려는 듯한 암묵적인 전제에 대해 훨씬 성숙한 질문과 마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건 한국 사회에서 거의 절대적으로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시종일관 산산조각 내버리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이었어요. 봉준호 _ < 시 >가 개봉했을 때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과 정확히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평을 블로그에서 본 적이 있어요. < 마더 >에서는 모든 것을 덮고 종팔이라는 다운증후군 애가 감방에 남고 원빈 을 끌고 나오는 내용인데, <시>에서는 할머니가 아이를 형사에게 보내잖아요. <시>가 더 성숙한 영화고, 봉준호 의 <마더>에 대한 이창동 감독의 응답이다. <시>가 더 윤리적으로 성숙하고 올바른 영화가 아니겠는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잠시 생각) 저는 그렇게 엄중하게 생각을 못했고 그게 영화의 출발이었어요. 왜냐면 김혜자 선생님과 일하고 싶어서 기획한 거니까요. 그 시나리오를 써놓고 배우를 선택한 게 아니었어요. 나는 김혜자 선생님이 정말 싸이코 같아, 미친 여자야, 나쁘게 말하면 미친년이야, 광고에서, 그래 이 맛이야, 하는 걸 볼 때마다 국민 엄마지만 저분은 무슨 광기가 있다, 무슨 토크쇼에서 제가 그것을 봤거든요. 연기표현이 아니라 어, 미친 분인 가봐. 그런 느낌을 받아가지고, 그게 출발이란 말이에요. 위대한 배우지만 동시에 국민엄마 아이콘이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미친 사람이고, 그 분을 영화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야겠는데 엄마가 미친년이다, 그렇게 해서 쓴 스토리였습니다. 김혜자 선생님이 거절하면 그 영화를 엎었을 거예요. 김혜자 선생님이 안 하신다고 하면 나문희 선생님, 고두심 , 윤여정 , 이렇게 (주연을 바꿔가면서 제안을 할 수 있는) 그게 아니었어요. 우리나라는 특히 모성을 숭배하잖아요. 우정의 무대에도 엄마가 커튼 뒤에 서 있으면 엄마, 하고 울고, 사실 엄마와 관계가 안 좋은 아들들도 엄청 많은데, 그런데 그건 다 무시되잖아요. 엄마 하면 무조건 울어야 된다고 우리나라는 강요되는데, 그런 엄마의 아이콘이 김혜자 선생님이었고, 출발이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김혜자 선생님이랑 하는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영화였습니다. 다행히 김혜자 선생님께 시나리오 드렸을 때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아, 좋아요. 나도 이런 거 하고 싶어요. 봉 감독, (아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걸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피 좀 더 뿌려주세요. 머리를 깰까요? 그동안 수십 년간 MBC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 전원일기 >를 하면서) 최불암 님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렇게 분출했을 수도 있어서 저도 좋았죠. (웃음) 사람들은 불편한 면이 있었겠죠. 그런데 마케팅 팀에서는 그것도 극한의 모성이다. 그것조차도 큰 사랑의 범위 내에 우겨넣으려고 한 거고. 저도 그게 이해되기도 하고. (웃음) < 마더 > 정성일 _ 한국영화에서는 쎈 척 하는 영화가 많아도 일단 상업영화라고 부르는 경계 안으로 넘어오면 절대 못 넘는 금기가 몇 개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 마더 >는 그 중 하나를 돌파해버려서, 참 이것을 다시 넘어서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 설국열차 >는 영어권 배우들과 함께 찍으면서 <마더>를 순화시키는 해독제 같은 느낌이 있어요. 만약에 <마더> 다음에 한국영화를 바로 찍었으면 어떤 얘기를 갖다 붙여도 힘이 없어지는 느낌? 봉준호 _ 그 반대도 성립하고요. < 괴물 >과 <설국 열차> 사이에 < 마더 >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정성일 _ < 괴물 >도 선을 넘었죠. 딸을 죽인 거니까. 봉준호 _ 그거 같은 거는 저는 딜레마가 없었어요. 저는 시나리오부터 그렇게 쓴 거니까 아무 고민이 없었어요. 딸은 죽었고 다른 아이가 온다, 가 전제로 출발한 거여서. 일본사람들은 딸이 죽는 거에 대해 되게 당황하더라구요. < 괴물 >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구요. < 마더 >와 < 살인의 추억 >을 좋아하고. 정성일 _ < 괴물 >에서는 두 번 당황했는데, 하나는 괴물 장르의 영화가 갖는 규칙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놓여 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이는 데 한 시간, 그래서 힘을 합해 괴물과 싸우는 데 한 시간의 법칙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다 모여 있던 사람들을 55분이 되었을 때 갑자기 다 찢어놓았습니다.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미친 거 아니야? 이렇게 되면 영화가 도리 없이 이 사람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동분서주해야 하는데, 그런데 정말 그러면서 그냥 계속 가더라구요. (웃음) 그러다가 하여튼 한 자리에 모으더니 괴물과 싸워 물리치긴 하지만 이번에는 딸이 죽더라구요. 다시 한 번 중얼거렸죠. 그럼 이제까지 이 사람들이 뭐한 거야? (웃음) 봉준호 _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제가 그런 개념이 없어요. 아버지가 죽었으니 애들이 다 찢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정성일 _ 우리가 장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여기서 보는 것은 단지 이야기를 찢고 주인공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법칙을 찢고 컨벤션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그 안에서 리얼리티가 갑자기 귀환하면서 그 안에서 냉소적인 이성이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봉준호 _ 제가 존경할만한 리얼리즘의 형태는 아니죠. 표피적인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보이는 순간을 믿도록 관객이 강요당하는 거죠. 사실은 한 발 짝 더 다가가서 그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완전 말이 안 되는 거죠. 애가 그렇게 죽었건, 허벅지에 침을 놓건, 말이 안 되는 건데, 표면적으로 그걸 믿게 만들고 심지어 디테일하다, 리얼하다고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정성일 _ 그건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자신의 영화에서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설명하는 바로 그 불가능성을 성립시키는 게 봉준호 감독 영화의 매직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성립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성립시키는 순간을 보면 그때 영화가 반짝반짝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들이 힘이 되는 거죠. 봉준호 _ 일부러 그런 것을 계산해서 포석을 까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성격상 불안해서 준비를 많이 하지만 포석을 잘 까는 타입은 아닙니다. 큐브릭은 항상 배우들과 현장에서 체스를 두잖아요. 하지만 저는 체스를 잘 못 두고, 바둑은 너무 어려워서 못 배웠어요. 성립되게 하는 것에 있어서도 약간의 뻔뻔함과 약간 곁다리로 빠지면서 오히려 그런 게 더 많은 거 같아요. 예를 들면 그런 거죠. < 괴물 >에서 박해일 이 이통사에서 근무하는 선배 임필성 을 찾아가잖아요. 알고 보면 형사들이 그 옆방에 숨어 있잖아요. 거기서 임필성이 갑자기 쓸데없는 얘기를 하거든요. 이 수배 현상금 세금이 어떻게 됩니까? 그건 비과세 기타 소득이기 때문에 그건 세금을 안 때린다! 그걸 세무사들이 들으면 웃는 장면인데 (웃음) 사실은 리얼리즘은커녕 리얼리티와도 안 맞는 장면인데, 그때 그 상황 자체가 약간 의도적으로 너저분해지면서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현실이 원래 너저분하잖아요. 일목요연하게 진행이 안 돼 있고, 우리가 택시 기사와 싸울 때도 그렇고, 그런 걸 제가 막 깊게 계산해서 놓는 건 아니에요. 임필성은 결국 돈을 노린 거다. 왜냐? 카드빚이 많다 잖아? (웃음) 저는 굉장히 단순한 논리로 쓰는 거거든요. 거기 뭐, 후배를 꼰지르는 존재론적 고뇌를 하고 그런 거 전혀 없잖아요. 사실 우리가 살면서 고뇌를 그렇게 많이 하나요? 아주 작고 너저분한 것에 유혹되어서 많은 결정을 하잖아요. 정성일 _ < 해무 >를 보면, 심성보 감독이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를 했었으니까, 이게 스승으로부터 전염되었구나, 뭐랄까 봉준호의 터치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어요. 한예리 가 배 안에서 숨어서 뭔가 뒤집어쓰고 있는데 박유천 과 이야기를 나누다말고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슬그머니 오른쪽으로 돌아앉으면서 이희준이 그것을 벗길 때였어요. 제가 봉준호의 터치라고 느낀 순간은 영화를 보아온 이제까지의 관습으로는 여기서 커트를 나눠야 하는데 이 쇼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한 쇼트에 해결을 해야만 해, 아니 차라리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은데 한 쇼트에 우겨 넣어야 해, 하는 장면이었어요. 이게 무리하다는 판단이 되는 지점에서조차 밀고 나아가서 성립될 때 그게 유머로 전환되죠. 그때 여기에는 무언가 쇼트를 나누지 말고 하나의 쇼트로 성립을 시켜야한다는 터치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님에게 쇼트는 무엇입니까? 봉준호 _ 정확히 짚어주신 것 같은데.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도 항상 매혹되는 순간은 쇼트를 나누지 않았을 때, 너무나 자연스러운 미장센 속에서도 누군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교차하고 퇴장하고, 연극적인 스테이징은 아니지만, < 짝코 >에서도 카메라가 공간 밖에 있는데 마치 안에서 찍는 것처럼 보여졌을 때도, 이 인물이 나와서 골목으로 꺾어져도 마치 물 흐르는 것처럼 찍은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지만, 제 자신의 영화를 찍을 때도 본능적으로 어떡하면 쇼트를 덜 쪼갤 수 있을까, 전체 영화의 커트 수가 어떻게 하면 더 적어질 수 있을까 본능적으로 그걸 느껴요. 그렇지만 타르코프스키가 촛불 들고 온천 이동하는 그런 데는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분할되지 않고 이어졌을 때 오는 이상한 쾌감. 이어짐으로 오는 어색함으로 오는 웃김. 저는 그런 게 되게 좋죠. 분할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흥분되는 감독님들도 많이 있는 거 같구요. 김성수 감독님도 그렇고. 저는 쪼갤 수 있는데 쪼개지 않거나 쪼개야 마땅한데 그것을 억지로 거스르는 게 재미있는 거 같아요. 정성일 _ 반대로 질문하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임 감독님 영화를 보다가 이건 임권택 터치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이 어떤 것인가요? 봉준호 _ 단역배우나 엑스트라가 되게 뻔뻔스럽게 뭔가를 설명할 때. (웃음) “아니 그래 저 놈이 누구 대감댁 둘째 아들인데 누구 애를 배게 해가지고 곤장을 맞았다지 뭐야?” 전혀 중요한 인물이 아닌데 거침없이 설명을 해버리잖아요. 그건 임 감독님 영화뿐 아니라 옛날 충무로 영화에는 그런 게 많았어요. “어 그런 게 말이야. 그래서 결국은 사또가 뭔가 했는데 결국 그게 둘째 딸이지 아마” (웃음) 저는 그게 굉장히 흥겹거든요. < 서편제 >에서도 김명곤 이 창할 때도 누군가 막 얘기하는데 후시녹음으로 생경한 앰비언스와 전혀 분리된 센 대사로 막 오잖아요. 거창하게 미학적으로 뭘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판소리로 치면 창을 하는 중에 얘기하잖아요. 서양식 연극에서도,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 하듯이, 무대 뒤에서 진행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그걸 그냥 잠깐 나오는 보조 출연자가 등장해서 굉장히 중요한 세팅 같은 걸 거침없이 얘기해버리고 하는 거 보면 반가워요, 흥겹고.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느닷없이 등장하는 수평 트래킹에 페티시즘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웃음) 그런 특별한 카메라 운동에 대해 영화적 흥분이 있으세요? 봉준호 _ < 살인의 추억 >도 그렇고, < 설국열차 >도 기차 자체가 트랙이죠. < 마더 >도 버스 자체가 트래킹이라고 할 수 있죠. 인물을 향해 다가가거나 멀어질 때도 있지만 수평 트래킹을 하면서 줌이 결합된다거나 그런 걸 제가 봐도 매우 좋아하는 거 같아요. 원인은 모르겠지만. 정성일 _ 거기서 진행하던 이야기나 혹은 인물로부터 갑자기 어떤 특별한 거리(distance)를 만들고 싶은 그런 게 있나요? 봉준호 _ (잠시 생각) 글쎄 모르겠어요. 저 스스로 미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모르겠지만 쾌감이 있는 거 같아요. 다른 사람의 영화를 봤을 때, <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의 도입부에 보면 그 여자애가 합창단이고 비 맞고 뛰어갈 때, 수평 트래킹하면서 그 여자의 종아리로 줌 할 때 이상한 흥분을 느꼈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 마더 >에서 그걸 시도해본 장면이 있어요. 찍을 때 의식이 되더라구요. 진구 가 김혜자 선생님께 돈 받고 본드 먹은 고등학생을 발로 까는 장면이 있어요. 돈을 받고 애들을 깔 때까지가 한 테이크인데, 먼저 돈의 두께를 보죠. 그걸 가슴에 넣고 아이들을 까러 가는 장면을 트래킹하면서 발로 줌이 들어가요. 발에 줌이 들어가면서 속도가 확 붙어요. 달리(dolly)는 그대로지만 줌이 들어가서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보이죠. 그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장면이 생각났어요. 그런 장면을 찍을 때 흥분되는 거 같아요. 수평 트래킹뿐 아니라 트래킹 할 때 굉장히 흥분되는 거 같아요. 영화에서만 가능하고. 연극은 객석의 한 의자에 그냥 앉아 있는 거잖아요. 연극, 사진, 만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얘기고. 정성일 _ 영화적인 테크닉에 대해서 좀 더 질문하고 싶습니다. 남들도 다 사용하는 것이 봉준호 영화 안으로 들어오면 참 희한하구나, 라는 순간들을 만들고 내고 계시니까요. (웃음) 슬로 모션에 대해 몹시 특별한 견해가 있는 거 같아요. 영화에서 대부분의 슬로 모션을 볼 때, 그건 어떤 쾌감의 운동인데, 봉준호 감독이 슬로 모션을 쓰면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게 있어요. 이를 테면 (< 괴물 >에서) 현서가 괴물로부터 빨리 도망가야 되는데, 구태여 속도를 늦게 만들어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거나, < 설국열차 >에서 예카테리나 브리지를 지나 터널로 빠져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밸러 클로버를 뒤집어쓴 용병들의 도끼와 싸울 때 갑작스러운 슬로 모션은 뭔가 싸운다기보다 이들을 허우적거리는 몸짓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이 순간 결정적인 삑사리의 장면이 등장하죠. (웃음) 표준적인 판본으로 만나는 슬로 모션과 다른 감각의 슬로 모션의 감각을 원하는 것 같아요. 봉준호 _ 말씀하신 걸 들어보니 정말 대부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상황을 슬로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게) 삐뚤어진 성격 때문인 거 같아요(웃음) < 설국열차 >에서도 크리스 에반스가 얼마나 이 싸움이 지치고 고독하고 외로울까. 기차가 좁으니까 어디 숨을 데도 없는데. 피하고 싶은 상황들이잖아요. < 살인의 추억 >의 논에서 가장 망신스럽고 ‘카오스’스러운 것도 현장 검증할 때잖아요. 오우삼 감독님 슬로 모션 하는 거랑 너무 다르니까. 슬로 모션을 쓰지 않았던 영화가 < 마더 >였던 거 같아요. 유일하게 비가 안 나왔던 게 < 설국열차 >였고, 슬로 모션 없는 게 <마더>다운 거 같아요. 그래서 더 잔인한 면이 있는 거 같고. 아, < 플란다스의 개 >도 있었구나. 저의 시그너처, 인장(印章)이라 할 만한 영역은 아닌 거 같아요. 샘 폐킨파의 뭐, 웨스 앤더슨의 뭐, 이렇게 부를만한 게 저는 없는 거 같아요. 약간의 습성들은 있습니다만 스타일이다, 시그너처다, 라고 말할 건 일, 이십 년 뒤에야 가능한 거 같습니다. 정성일 _ 그런데 영화에서의 상황은 말씀과 정반대이지요. 시그너처가 없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 괴물 >부터 새로운 봉준호 서사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건 터치와도 또 다른데, 가족이 부서져야 얘기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괴물>에서 딸이 죽었을 때는 무심코 그런가, 했는데 < 마더 >와 < 설국열차 >를 보고 났을 때, <마더>는 완전히 파괴죠. 가족을 부수기 전에는 이야기를 안 끝낸다, 라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마더>가 영화 한편으로 한국영화가 결계처럼 쳐 놓은 금기중의 하나를 벗어난 건데, 이를테면 근친상간을 하고 똑같이 기억을 잃어도 < 올드 보이 >는 필사적으로 복원에 대한 갈망을 얘기하잖아요. 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끝장내면서도 가족을 복원하려는 안간힘이 있어요. 그게 가엽죠. 유일하게 한국에서 단 한 명, 봉준호 감독에게서 가족을 끝장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맹렬한 전투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가족주의라고 부르는, 말 그대로 혈연을 넘어서서 감정적인 공동체에 대한 이 냉소적인 이성이라는 것. 사실상 가족주의가 점점 확대되고 상상적으로 비유의 프레임을 만들어내서 환상의 형식으로 거짓 공동체를 발명해내서 결속시킬 때 그것이 한국 사회의 지나친 파토스의 시작이기도 하잖습니까. 이 파토스 안에서 보면 가족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이성 안에서 보면 정말 이상한 거니까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는 제 설명 바깥에 있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가족이라는 파토스에 대한 어떤 혐오와 마주하게 됩니다. 봉준호 _ 저는 표면상 큰 문제없는 가족에서 자랐고. 저도 95년에 장가를 가서 20년 정도 가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웃음) < 괴물 >, < 마더 >, < 설국열차 >, 지금 보니 그런 식의 파국을 맞은 건 사실인데, 지금 쓰고 있는 여섯 번째 영화에서도 가족이 있긴 있는데 그다지 파괴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직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했으니까 말씀드릴 건 아니지만, 일곱 번째 영화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아주 강력하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곱 번째 영화를 개봉시키려면 사, 오년이 더 있어야겠지만. (잠시 생각) 섣불리 경망스럽게 얘기할 주제는 아직 못되는 거 같고 가족을 박살내야겠다고 의식해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사실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는 누구나 다 있지 않을까요. 월트 디즈니 영화를 봤을 때 치밀어오는 짜증 같은 것. (웃음) 이만희 정성일 _ 산만하게 진행한다고 했으니 다시 원래의 우리 컨셉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웃음) 김기영 감독님과 임권택 감독님 얘기를 나눴습니다만, 봉준호 감독에게서 한 번도 듣지 못한 얘기는 이만희 감독입니다. 이만희 감독님의 영화는 봉준호 감독에게 어떻습니까? 봉준호 _ 일단 작품을 많이 못 봤습니다. EBS에서 <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을 봤고, < 마의 계단 >도 재미있었고, 영상자료원에서 나온 스릴러 비슷한 < 암살자 >도 봤고, (잠시 생각) 사실 그렇게 많이 못 봤습니다. 엄청난 명성은 많이 들었지만. 정성일 _ 이토록 열심인 씨네필이 많이 보지 못했다는 건 끌리지 못했다는 이야기인 것이기도 하네요. (웃음) 봉준호 _ 아니, 보고 싶어요. 쿠엔틴 타란티노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리만희”를 꼭 보고 싶다고 작년 부산에서 지랄을 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제가 한국영상자료원에 부탁해서 DVD를 보내줬어요. 한국의 장르마스터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보고 싶다고. 그 보답으로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 게리슨 유격대 >라고 그게 희귀작인데 보내줬어요. 저는 박스 세트를 보냈는데 정작 그 박스 세트의 영화를 (저는) 다 못 본 거 같아요. 흥미로운 거는 최근에 자주 뵈는 이장호 감독님이 저를 항상 이만희 감독님과 연결시켜서 말씀하세요. 봉, 너는 이만희 감독과 비슷해. 나는 (너를) 이만희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저 스스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장르영화에 대한 관점이 있어서 이장호 감독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꾸 이만희 감독님을 얘기 하시더라구요. 김기영 감독님 얘기는 안 하시고. (웃음) 정성일 _ 혹시 이만희 감독님의 < 검은 머리 >를 보셨어요? 아주 좋아하실 거 같은데, 오히려 세간에 알려진 < 쇠사슬을 끊어라 > 이런 영화는 안 좋아할 거 같지만... 봉준호 _ 현존하는 < 삼포 가는 길 >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만희 감독님 영화라기보다는 한국영화에서 시골에서 눈밭을 (걸어)가는 그런 장면들을 매우 좋아해요. 어렸을 때 MBC 베스트셀러나 KBS TV 문학관에 그런 장면들이 꼭 나와요. 겨울에 한 남자가 적막한 눈밭 속을 가다가 거기 주막이 있고 거기에 또 딸이 있어요. 거기서 겁탈이 일어나기도 하고, 남자가 가면 딸이 보따리를 들고 따라오기도 하고 그러다 바닷가에 가잖아요. 속초에 가기도 하고 대관령도 가고. 그것의 본령. 원조 같은 느낌. 정성일 _ 봉준호 감독 자신은 전혀 원치 않겠지만, 원컨 원치 않건, 봉준호의 영화를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읽으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죠. < 플란다스의 개 >만이 중산층을 다루었고 그런 다음 갑자기 방향전환을 해서 사회적 약자, 밑바닥 계급으로 내려왔습니다. 봉준호 감독처럼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를 찍는 감독도 없죠, 한국영화에서. 그러면서 < 괴물 >의 첫 장면에서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를 읽을 수밖에 없고, < 마더 >도 정치적 함의를 끌어내게 싶게 만들고, <설국 열차>도 계급으로 단순화시키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해석을 단순화시키면 안심이 되니까. < 설국열차 >는 너무 단순해져서 한편으로 여기서는 봉준호 감독이 거는 게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절반은 게임이고 절반은 의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게임과 의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다는 거죠. 정치,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이라는 것, 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봉준호 _ 게임을 걸만큼의 성격이나 지적인 승부를 걸 깜냥은 안 되구요.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제가 그렇게 느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떤 정치적인 맥락이나 정치적인 서브 플롯이건, 서브 텍스트건, 상징이건, 뭐건 간에 보는 이를 교란시키기 위해서 떡밥, 밑밥을 던진 적은 없어요. 보여지는 것만큼 정말 저도 그렇게 느껴서. (주한미군 영안소 부책임자인 민간부 군무원 앨버트 L) 맥팔랜드가 실제 독극물을 방뇨했고, 실제 2000년도에 그랬죠. 미국이 한국에서 어떤 정치적 맥락인지 이 사건만큼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도 없구요. 그게 또 되게 SF 영화의 도입부 같잖아요. 이걸로 해서 보는 사람들이 호도되거나 게임을 걸고, 그렇게 해볼까? 그런 건 아니고 미국이 정말 우리나라에서 그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군대가 있어. 실제 이런 걸 방뇨해. 이걸 한국 공무원에게 시키는 게 더 재밌는 지점이야. 고도의 게임을 걸거나, 클로드 샤브롤은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구요. 자신도 평론을 했었기 때문에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평론가처럼 보고, 이런 식으로 자극하면 재밌지. 저는 그런 건 아니구요. 정말 그렇게 느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 설국열차 >나 < 괴물 >은 특히 직설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저의 정치적인 관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영화구요. < 살인의 추억 >은 실제 80년대, 제가 살았던 시대, 개별 살인 사건보다 더 어두운 시대라는 80년대에 대한 제 관점을 정리한 영화구요. < 마더 >만 약간 달라요. 어찌 보면 정치적 맥락에서 분석되지 않는 데까지 다가가 보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본 사진첩처럼 김혜자 의 눈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어요. <마더>는 하층계급 사람들끼리 서로 할퀴는 그런 이야기잖아요. 상층 계급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괴물>처럼 하층 계급끼리 연대하는 것도 아니고, ‘로어 뎁스(lower depth, 밑바닥보다 더 밑바닥)에서 그쪽에 처박혀 있는 애들끼리 원빈을 빼내고 다운 증후군 아이를 거기에 밀어 넣는 굉장히 끔찍한 얘기죠. 정성일 _ 그런데 < 괴물 >에서 정치적 학습을 한 다음 < 마더 >를 보게 되면 골프장이 그런 효과를 만들어 내는 거죠. 한국에서 골프장이라는 장소의 도상적 이데올로기라고나 할까요. 할 일 없는 부르주아들의 판타지의 공간에서 뭔가 벌어진 다음에 프롤레타리아의 정치학으로 옮겨오지만 가난한 자들의 세계가 상대적으로 건강하기는커녕 더 음습해지고 음산하고 무시무시해질 때 어둠이 더 어두워진다고 할까요. 그때 그 안에서 괴상한 방식으로 냉소적인 이성이 더 빛나게 보이는 거죠. 거기까지 오면 이제 견디는 것은 미치는 거야, 라는 결론에로 이끌릴 때는 보는 쪽도 미치는 지경이 되는 거죠. 봉준호 _ 냉소적 이성이라고 이름 붙여 주시면 저는 감사한데, < 마더 >는 < 괴물 >의 반대말로써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또 밑바닥 사람들이 연대하는 영화고, <마더>는 서로 할퀴는 영화고 아빠에 관한 영화, 또 이거는 순도 100퍼센트 엄마에 대한 영화고, 모든 면에서 반작용이었습니다.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씨네마틱 모멘트로서의 인서트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생각하는 장면은, 그게 아마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두 장면입니다. 하나는 < 괴물 >에서 처음 괴물이 나타났을 때, 한강에 놀러온 사람들을 괴물이 쫓아가고 있는데, 그때 서강대교를 지나가는 버스에서, 그저 책을 읽던 할머니가 무심하고 한가롭게 내려다보는 장면입니다. 마치 영화의 동선과 세계의 동선, 두 개가 이상한 방식으로 공존할 때의 느낌이랄까. 다른 하나는 김혜자 씨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냥 무심하게 나무를 쳐다보는데, 거기 어떤 감정도 없는데, 그 나무의 쇼트가 굉장히 아름답고 시적이 있었어요. 차라리 시선이 아름답다고 할까요. 그때 문득 든 생각은 문득 봉준호 영화에는 가끔 영화를 멈춰 세우고 이미지에 우선권을 준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이미지에 우선권을 준다는 것은 공백의 인서트, 약간 재미없게 말하면 잉여의 이미지를 이야기의 동선 안으로 밀어 넣는 건데, 그게 어떤 시적인 이미지의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를테면 바람이나 햇빛은 우연의 산물일 수 있지만, 편집은 절대 우연이 아니지 않습니까? 봉준호 _ 말씀하신 것에 정확히 부합하는 게 (< 마더 >에서의) 그 나무 인서트였던 거 같습니다. (< 괴물 >에서의) 버스 시퀀스는 좀 다릅니다. 그 씬 자체를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시점으로 의도적으로 분산시키고 싶었어요. (그 장면 전에 한 소녀가) 손톱 밑의 때를 빼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데 괴물이 확 낚아채고, 서강대교에서 57분 교통정보가 깔리면서, < 이어도 >에 출연하신 할머니가 그것을 보고 있는 건데 시퀀스 맥락에 철저히 부합되는 거였습니다. 되게 산만하게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현서도 맥주 캔을 발로 뻥 찼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낚아채고, 그것은 시퀀스 내의 패턴이었던 거 같습니다. 되게 일상적인데 낯선 느낌. <마더>의 나무 같은 게 말씀하신데 철저히 더 부합하는 장면입니다. 그건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디테일인데 운이 좋았어요. 거기가 장흥 교도소 주변인데, <마더>는 특히 로케이션을 되게 열심히 다녔어요. 저랑 홍경표 감독님이랑 스태프들이 미니버스를 대여해서 다 같이 타고 장소 헌팅을 다녔어요. 장흥 교도소를 시찰하고, 다음 장소 이동하는데 점심을 먹고 나서 다들 졸았어요. 운전기사만 운전하고 저만 깼어요. 그때 촬영한 나무를 봤어요. 주변에 숲이나 나무가 없잖아요. 길이 원형 트래킹 하듯이 그렇게 되었어요. 실제 영화의 김혜자 선생님 같은 시점으로 그 나무를 봤는데 굉장히 아름답더라구요. 프리 프로덕션 중에 이걸 봤기 때문에 이걸 꼭 어딘가 넣고 싶다. 그럼 어디에 넣으면 좋을까. 저 나무가 김혜자만큼 참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묘하게 찍을 수 있는 조건도 되고, 영화 중후반에 엄마가 나한테 다섯 살 때 농약 먹였잖아, 약(藥이 든)박카스. 김혜자 선생님이 경기(驚氣) 일으키고 울고, 그리고 나올 때 그 나무를 보게 되거든요. 거기서 나무를 넣으면 엄마의 감정이나 그런 게 논리적으로 설명은 안 되지만, 왠지 거기다! 거기 밖에 없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홍경표 감독님도 그 제안을 좋아하셨고 또 거기에 깔리는 스트링 음악이 있어요. 이병우 감독님도 그 모멘트를 좋아하셔서 특별히 신경 쓰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정성일 _ 콘티와 시나리오를 정확히 짜내서 진행하는 봉준호 감독 영화에 이제 시적인 우연의 장면들이 끼어드는 징조를 뭐라고 봐야 할까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아요. < 살인의 추억 >에도 날아가는 새의 인서트 장면이 나왔지만 < 마더 >의 김혜자 씨 정도의 장면은 아니었어요. 이건 대화를 건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한 가지 더 질문하자면 봉준호 감독이 즐기는 것 중의 하나가 엔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엔딩을 볼 때마다 엔딩 다음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엔딩을 살짝 지나쳐가는 듯한 느낌. 이를테면 그런 다음에 이제까지 내가 봐온 영화가 이제 그 영화를 보는 나를 본다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나 노골적인 <살인의 추억>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는 극장 안과 영화의 화면 자체가 동일해질 때,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버스 안의 미친 엄마를 봤을 때, 혹은 < 설국열차 >의 마지막 장면의 북극곰이 고아성을 본다기보다 우리를 본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시선도 차라리 고아성을 본다기보다는 우리를 보는 위치에 가 있었어요. 엔딩에 대해 이건 매우 특별한 감각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봉준호 _ 편수가 많지 않아서 어떻게 일반화해서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잠시 생각)< 설국열차 >와 < 마더 >는 명확한 끝점이 있었구요. (<설국열차>에서)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와 컨택하는 곰이다, <마더>도 2004년 처음 스토리 구성할 때부터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버스 안 춤추는 엄마들로 끝낼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 괴물 >은 달랐어요. 시나리오 드래프트들 마다 달랐어요. TV를 발로 끄는 것까지는 똑같았는데 매점 벽에 걸린 멧돼지 대가리에서 남자아이의 생일 선물을 꺼내는 장면도 있었고. 몇 가지 버전이 있었어요. 갈팡질팡하다가 얼굴이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이들 세계가 얼마나 작은가. 그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어둠 속에선 뭐가 나올지 모르고, 그건 찍을 때 임박해서 결정했습니다. 멧돼지 대가리에서 생일 선물 꺼내는 장면도 찍었고, 그 장면은 DVD 부록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보면 되게 이상해요 (웃음) 뻘쭘 하고. 찍고 편집하며 결정하고 뺀 장면이에요. < 살인의 추억 >에서도 송강호 가 카메라를 보고 끝났는데 원래 한 장면이 더 있었습니다. 연쇄살인범으로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의 뒤통수가 명동의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뒤통수가 보여지면서 현대의 2003년 서울 거리를 보여주는, 김형구 감독님과 실제 명동에 나가서 찍었어요. 송강호가 카메라 보면서 끝내는 게 적합하다, 하면서도 그걸 찍으러 나가면서, 그래서 찍으면서도 긴가민가, 했어요, 왠지 안 쓰게 될 거 같은데, 저는 그걸 DOA 쇼트라고 부르는데, (웃음) 도착 즉시 사망(Dead on Arrival). 이미 찍고 있는데 안 쓰게 될 걸 아는 장면. 그걸 (이미 촬영현장에 나왔기 때문에) 차마 스태프들에게 말은 못하고, 오히려 실례니까. 그런 걸 개인적으로 DOA 쇼트라고 해요. 하여튼 끝까지 고민되는 부분인 거 같아요. <마더>는 너무나 확고했어요. 오히려 그 앞의 두 시간이 그 마지막 고속버스 춤추는 장면에 가기 위한 과정처럼 생각될 만큼 확고했고, 2004년부터 개봉할 때까지 한 번도 생각이 바뀌어본 적이 없어요. <설국열차>도 기차를 나와서 곰과 마주본다는 설정은 맞는데 제가 생각한 각도와 사이즈는 아니었어요. 실제 곰을 오스트리아에 갖고 가서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곰은 CG가 아니에요. ‘내셔널 지오그래피’ 라이브러리에서 실제 곰 HD 영상을 찾아서 가져와 갖다 붙였어요. 곰의 CG를 만들기에는 예산이 없었고, 조악하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제가 진정 원하는 각도와 사이즈는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 프로모션 때 여러 번 질문을 받고 느낀 건데.. 그게 곰이 아니라 사슴이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자꾸 곰한테 잡아먹힐 거라는 얘기를 들어서. 아, 왜 곰이었지? 사슴이 탁 나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웃음) 정성일 _ 개인 소장 라이브러리가 궁금합니다. 영화사 속에서 존경받는 감독이긴 하지만 이 감독에게는 정말 동의가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존경하는 만큼 동의가 안 되는 감독은 누군가요? 이를테면 훌륭한 감독이라는 것도 알고 충분히 존경도 하지만 이상하게 제가 보지 않게 되는 건 펠리니의 영화들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그렇습니다. 훌륭한데 마음이 동하지 않고 안 보게 되는 명단이랄까. 봉준호 _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면서) 안토니오니. 세계영화사 어느 챕터를 차지한다는 걸 납득은 가는데 그 분의 DVD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요.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네요. 취향이니까. 어렸을 때 EBS에서 세계의 명화에서 연달아 상영도 했고, < 블로우 업 >은 재밌게 봤어요. 그거는 공원에서 촤악, 나뭇잎 흩날리면서 뼛속까지 스산해지는 느낌과, 그런데 그 외는 많이들 존경하겠죠, 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정성일 _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러니 바보 같은 가정, 바보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만약 연못에서 산신령이 나타나셔서 봉준호 감독! 임권택 감독님에게 아무거나 하나 가져가도 되니까 그거 하나 가져가게! 한다면 어떤 재능을 훔쳐가고 싶은 가요? 봉준호 _ (다시 한 번,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메라 여기다 놔. 여기, 여기 놔” 촬영 감독님과 상의를 할 수도 있고 먼저 촬영 감독님이 제안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정성일 _ 아아, 무슨 말씀인지 느낌이 정말 꽂히듯이 오네요. 감사합니다. 여섯 번째 영화를 열심히 기다리겠습니다. (註)_ 인터뷰 중의 대화는 가능하면 오가던 이야기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일부 어휘들이 영어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에도 옮기지 않고 그냥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그 까닭은 의미는 옮길 수 있으나 대화의 문맥에서 그 단어가 가지는 ‘뉘앙스’를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중의 일부가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 충분히 다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마치 점프 컷처럼 진행될 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를 치고 보충설명을 덧붙였다. 일부독자들에게는 필요치 않을 수 있지만 이 점 이해를 바란다. 또한 서로에게 약간의 어색한 표현들도 대화의 ‘라이브’한 무드를 돕기 위해 수정하지 않았다. 2014년 8월 28일, 날씨 하루 전날 큰 비가 온 뒤에 몹시 화창하고 무더웠음. 진행_ 장광헌, 유성관 녹취, 사진_ 이지영 장소_ 카페 루프
이렇게 서문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1986년 11월 둘째 주 화요일에 임권택 감독님을 처음 만났다. 나는 이 날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 날은 화창했지만 바람이 차가웠다. 막 겨울이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임권택 감독님에 관한 인터뷰로만 이루어진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임권택 감독님은 그해 여름 < 티켓 >을 완성하였고, 남산에 자리한 영화진흥공사의 지하 이층에 세워놓은 세트장에서 < 씨받이 >를 촬영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자리도 기억할 수 있다. 영화진흥공사 바로 옆에는 난다랑이라는 커피숍이 있었다. 남산에서 약속을 하면 대부분 거기서 만났다. 아침 열시에 처음 뵈었다. 내가 시간에 늦지는 않았지만 감독님이 먼저 나와 계셨다. 하지만 첫 인상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창가 옆자리에 앉아계셨다. 당신께서는 아직 내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나는 남산 길을 올라가면서 거의 암송하듯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외웠지만 정작 그 분 앞에 앉았을 때 횡설수설하듯이 말해버리고 말았다. 임권택 감독님은 말씀이 적지만 그때는 더 그러했다. 그냥 나를 쳐다보았다. 막 시작된 아침 겨울 햇살이 커피 잔에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이상하게도 그 빛이 언제나 어제 일처럼 기억난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들은 다음, 어쩌면 그저 내가 그렇게 느꼈을 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설명을 하고 난 다음, 임권택 감독님은 내게 그냥 던지듯이 물었다. “내게 무어 들을 이야기가 있소?” 나는 이 말 뜻을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이미 83편의 영화를 찍은 한국 영화감독. 여기서 모든 것이 방점이다. 83편이라는 그 두께. 한국이라는 영화산업 안에서 1962년에 데뷔한 다음 그는 그 영화들을 찍으면서 살아남았다. 그와 함께 시작한 대부분의 감독들이 이미 현장을 떠난 지 한참인 다음에도 그는 영화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그리고 만들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제작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학교로 갔으며, 누군가는 관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현장에서 영화를 연출하였다. 이십여 년에 걸친 한국영화산업의 역사. 황금시대와 1972년 이후의 몰락. 흥행의 시대가 끝나자 시작된 검열의 역사. 텔레비전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대중오락. 그때 임권택 감독님은 어린 나를 바라보면서 당신이 이 영화들을, 이 영화들에 담긴 세월을, 이 세월 속의 삶을, 이 삶으로부터 나온 매 쇼트의 결단을, 정말 귀 기울여 들어볼 수 있겠냐, 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나는 약간 망설인 다음 대답했다. “배우고 싶습니다” 나에게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것만이 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내 마음 속에 염두에 둔 책은 프랑소와 트뤼포가 1962년 6월 2일 첫 편지를 쓴 다음 그 해 8월 13일 월요일부터 6일간 유니버셜 스튜디오 146호 방갈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계속된 알프레드 힛치콕과의 인터뷰를 담은 <알프레드 힛치콕(Le Salon Alfred Hitchcock)>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영화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 배움. 하나는 영화라는 비밀을 알기 위해서 동원된 인터뷰라는 방법이 사실상 최상의 비평이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화를 본다는 문제란 결국 질문을 던진다, 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능력(들) 사이의 (말 그대로의)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설명하는 표현, 함축하는 표현. 그 둘 사이의 활동으로서의 영화. 우리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트뤼포는 힛치콕에게 단지 미학적이거나 기술적인 질문에서 멈추지 않았다. 종종 질문은 대답보다 흥미로웠고, 때로는 질문으로부터 영화를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혹은 질문이 때로 예상치 않은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였다. 많은 질문과 대답들은 차라리 행간을 읽어야만 했다. 그 둘 사이의 질문과 대답은 존경과 사랑으로 진행되었다. 어떤 질문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힛치콕에게 자기가 그의 영화에서 ‘발견’한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읽혔고, 어떤 질문은 마치 수줍은 사랑의 고백처럼 들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감탄하게 만든 것은 마치 영화를 손끝으로 건드리듯이 만져보는 듯, 정확하게 그렇게 설명할 때, 영화를 애무하듯이 느껴볼 때, 그 마음이 질문 속에 담겨서 전달될 때, 그건 내게 마치 마법처럼 보였다. 트뤼포는 힛치콕의 영화를 정면으로만 응시하지 않았다. 가끔은 프레임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린 다음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인공을 쳐다보느라 놓쳤을만한 흔적들을 끌어냈다. 혹은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클로즈업을 문득 끌어내기도 하였다. 명백하게 그는 수십 번을 맹목적으로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거의 불가사의할 정도의 관찰.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보았기 때문에 찾아낼 수 있는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본 화면들. 트뤼포는 정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배움의 기호를 찾고 있었다. 영화라는 고유한 세계 안에서 활동하는 법칙들. 어떻게 저 기호들은 다른 영화에서는 작동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힛치콕의 영화에서만 활동하기 시작한 것일까. 몇 번이고 다시 본 다음 매번 수수께끼 앞에서 난처하게 질문을 던지고 다시 던진 다음 마침내 그 마술을 만들어낸 사람 앞에 도착하여 참지 못하고 제발 그 비밀을 풀어주세요, 라는 간절한 하소연. (그의 스승이었던 바쟁의 표현을 빌리면) 누가 이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어줄 수 있을까. 아마도 사랑에 빠져본 사람만이 느껴볼 수 있는 그 영화적 신호들에 대한 놀랄 만큼 예민한 반응. 트뤼포는 힛치콕의 영화를 안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저 보고 또 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일한 행위의 반복이 아니다. 영화를 두 번 볼 때 우리는 첫 번째 볼 때와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보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건 단지 음미의 차원이 아니다. 트뤼포의 질문이 내게 가장 큰 쇼크를 준 순간은 영화에 단 하나의 시선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일깨움을 주는 질문을 던질 때였다. 한 사람이 이것을 볼 때 다른 사람은 저것을 볼 수 있다. 누군가 여기서 멈출 때 다른 누군가는 존재하지도 않는 다음 쇼트를 그 안에서 찾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트뤼포는 처음에는 내가 그 영화를 본다, 라고 시작한 다음 그 영화가 나를 본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영화가 내가 보는 것을 안다고 느껴볼 때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비평은 거기서 시작하였다. 트뤼포는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더 밀고 나갔다. 트뤼포는 자기를 보는 영화를 다시 바라보았다. 사랑의 시선. 시선의 교환. 트뤼포의 질문은 거기서 시작하였다. 나는 그것을 배우고 싶었다. 이 책을 둘러싼 나의 아주 사적인 배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게다가 이 책의 일본판을 번역한 사람은 아아, ‘일본 제일의 영화광’이라고 불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두 사람, 하스미 시게히코와 야마다 고우이치였다. (이 책은 <힛치콕, 映畵術> 이라는 제목으로 ‘키네마 준보’에 일부 번역된 다음 1981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이 책의 초판본이다) 야마다 고우이치는 번역을 끝낸 다음 후기에서 “이 책은 영화의 백과사전이며, 입법전서이다. 매번의 질문은 영화란 무엇인가, 라고 불러도 좋다. 매번의 대답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라고 썼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영화와 만나는 태도를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임권택 감독님을 처음 뵙고, 그 분에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청했을 때. 대답을 듣고자 했을 때, 그건 나에게 배움의 실천이었다. 나는 이 배움 속에서 내 방식으로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수백 번, 수천 번 던져보고 싶었다. 그리고 수백 번, 수천 번,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 대답. 여기에는 약간의 이야기를 더해야 할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준비할 때에는 임권택 감독님에 관한 영화 평을 거의 볼 수 없었으며, 그에 관한 작가론을 단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세상의 무관심.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들로부터의 일정한 거리. 여전히 그의 대부분의 영화들은 개봉관에서 볼 수 없었다. 혹은 아주 짧은 시간만 영화관에 간판이 걸려있었다.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종종 시내 중심가로부터 외곽에 자리한 한적한 극장을 찾아가야만 했다. 심지어 어떤 영화는 재개봉관에서 개봉을 하기도 하였다. 나는 < 신궁 >을 보기 위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리고 그런 다음 그 ‘이후’ 다시는 가보지 못한) 극장을 찾아 내가 살던 동네로부터 멀리 떨어진 뚝섬까지 가야만 했다. 물론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서울 지리의 감각을 익힌 것은 그때 영화를 찾아 처음 타보는 노선의 버스에 몸을 싣고 낯선 동네, 낯선 골목을 헤매면서 두리번거리던 경험의 결과이다. 어떤 네비게이션도 없었다. 그저 동네를 기웃거리고 낯선 사람들에게 수없이 물어보면서 극장을 찾아가야만 했다. 그때 제작사들은 야비하게도 외화 수입쿼터를 따내기 위해서 한국영화를 만들었으며, 그런 다음 그 영화를 버릴 때 그런 방식을 취했다. 비평의 차가운 외면. 그때 그 영화들을 아무도 방어하지 않았다.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들은 외롭게 만들어졌다. 이미 83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충무로에서는 그를 직업감독으로만 부르고 있었다. 물론 이미 < 만다라 >를 만들었고, 그런 다음 < 길소뜸 >과 < 티켓 >을 만들었지만 비평은 그에게 거의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한국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때 한국영화는 세계영화사의 시간 바깥에 있었다. 다시 한 번 당신을 환기하지만 1986년의 일이다. 나는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프랑스문화원에서 매달 프로그램으로 상영되는 영화들을 단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독일문화원에서 영화를 보았다. 일본문화원에서 영화를 보았다. 물론 나는 아직 많은 영화를 보아야 했다. 여기는 파리가 아니었다. 아직 시네마테크도 없었다. 어쩌면 영화보다도 영화에 관한 책을 더 많이 읽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를 가로 막고 나선 것은 한국영화였다. 내가 영화에 대한 글을 쓴다는 문제에 대해서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에 가서였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나 혼자 읽는 글이었다. 매일 본 영화를 쓰고 또 보고 또 썼다. 그러기위해서 나는 참고문헌을 가져야 했다. 문학 비평을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논쟁이 중심에 있었다.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내게 한국영화란 무엇인가, 로 번역되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한국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김기영 의 < 이어도 >, 유현목 의 < 문 >, 하길종 의 < 한네의 승천 >, 이장호 의 < 어제내린 비 >, 김호선 의 < 영자의 전성시대 >. 나는 두서없이 때로는 막 개봉했을 때, 혹은 재개봉으로 상영되었을 때, 종종 동시상영으로 이 영화들을 대부분 프린트에 (스크래치로 인하여) ‘비가 내리는’ 상태에서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늦봄 이른 아침 학교 앞 극장에서 < 족보 >와 마주쳤다. 누구에게나 어떤 영화를 보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순간과 마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각성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쇼크 상태. 아마도 그 목록은 모든 시네필들에게 각자 개인의 ‘은밀한’ 명단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영화를 언제 어떻게 만났느냐에 따라 완전하게 다르게 당신을 일깨워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런 영화들의 명단이 있다. <족보>는 내게 그런 영화(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林權澤’(그때에는 포스터에도, 영화 자막에도 모두들 한자로 이름을 표기하였다) 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이전 영화들을 이미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쇼브라더즈 무협영화를 보면서 감독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족보>는 줄거리가 특별한 영화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와 비슷한 줄거리의 일제 강점하의 식민지 시대를 다룬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자란 세대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주인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어떤 순간부터 이 영화의 진행은 내가 이제까지 본 영화들과 완전히 다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영화의 씬들은 이제까지 내가 읽은 책의 일부분을 완전히 무효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면들, 그 쇼트들의 리듬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우아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안에 구석구석 자리 잡은 통일성과 이상할 정도로 균형을 잡은 감각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을 나는 설명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영화의 수수께끼. 트뤼포를 경유하여 바쟁의 말에 기댄다면 상형문자. 무엇이 나를 이렇게 민감하게 만들었을까. 대답을 해야 한다. 나는 초조하게 두리번거리면서 다음 영화를 기다렸다. 그때부터 나는 ‘林權澤’이라는 이름을 찾아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임권택 감독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이 영화들을 모두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라고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어떤 영화는 훌륭했고(< 짝코 >), 어떤 영화는 나빴다(< 내일 또 내일 >). 유감스럽게 나는 < 만다라 >를 개봉했을 때 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군대에 있었고. 대신 전쟁영화인 < 아벤고 공수군단 >을 보았다. 이 영화는 지루했다. 제대한 다음 다시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순서대로 쫓아갈 수 있었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 길소뜸 >은 굉장하다, 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영화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만일 내가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안에 담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건 한국영화라는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이 될 것이라는 (앎에 대한) 은밀한 열망이 있었다. 물론 내가 임권택 감독님의 대답에서 기대한 것은 영화의 개념(들)이 아니었다. 그건 이미 책으로 충분히 ‘읽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개념들이 실제로 영화 속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어떻게 이것이 저것과 접속하고, 그 안에서 반대로 개념들에 영화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의문을 제기하며, 그 과정에서 영화라는 개념이 만나는 불안의 조건이 무엇이며, 이 모든 각각의 요소들을 정의내리는 대신 그 용어 바깥에서 명령하는 날씨와, 세트와, 배우라는 몸과, 그 몸속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와, 그 몸의 제스처와, 활동과, 종종 순환을 중단시키는 카메라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결정 사이의 블랙홀, 말하자면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불연속성으로 귀결 지어지는 비평과 현장 사이의 절망적인 중단을 다시 매듭짓고 싶었다. 나는 반문하고 싶었다. 혹시 이 모든 것들이 오로지 현장에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임의적으로 모인 것은 아닙니까? 어쩌면 나는 자신을 방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라바이를 만들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기꺼이 개념(들)과 영화 사이의 비대칭의 대결 속에서 이념들로 이루어진 개념을 버리고 활동 중인 영화를 선택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영화에 관한 진정한 감각이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안에 놓여진 것이다, 라는 롯셀리니의 말. 그냥 단 한 마디로 이 개념들의 피와 살을 알고 싶었다. 트뤼포는 인터뷰를 위해서 벨기에 시네마테크에서 힛치콕의 영국시절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트뤼포와 같은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그 당시 한국영화들을 보관한 곳은 한국필름보관소였고, (1991년 9월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한 이후) 한국영상자료원이 된 2002년에서야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전적으로 내 기억에 의존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기억 속에 희미하게만 남아있었다. 고백하자면 심지어 이 영화들 중의 일부는 필모그래피를 정리하는 과정 중에 아, 내가 그때 본 그 영화가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였구나, 라고 알게 된 제목들도 있었다. 인터넷은 아직 인류 문명에 도착하지 않았고, 모든 자료는 하나씩 국회도서관에 가서 찾아야 했으며, 일일이 필름으로 보관된 신문기사들을 뒤져야만 했다. 게다가 그때 나는 아직 1960년대에 만들어진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대부분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건 전적으로 내 나이의 한계 때문이다. 내가 무슨 재주로 (아직)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에 만들어진 그 영화들을 찾아볼 수 있었을까. 혹은 보았다 하더라도 그걸 인터뷰로 질문을 해낼 만큼 기억해낼 수 있을까. 질문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발견의 방법론을 경유하는 문제의식이다. 나는 질문이 내 안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다. 질문이 다시 영화 안에 들어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임권택 감독님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인터뷰가 그렇게 전면적인 상황으로 펼쳐지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질문은 저 아래까지, 일제 식민지 강점하를 거쳐서 조선시대 말기 그 어딘가에 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전라남도 장성이라는 지리적 장소가 가져온 한국 근대사 안의 역사적 맥락. 한국전쟁은 그 장소를 찾아온 다음 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는 오로지 자기 육신 안에서 이 모든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런 다음 그 시간이 끝나지 않고 그의 영화 속에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다. 그의 영화 속의 시간은 경험의 시간이자 역사의 시간이었다. 시간의 다발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들은 세상 속을 어슬렁거린다. 그는 종종 인터뷰 중에 탄식을 하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많은 시간을 낭비했어요. 그저 어떤 삶의 목표도 없이 그렇게 세월을 보냈어요. 그러나 영화는 그 시간들을 차례로 쌓아나갔다. 그런 다음 우리를 되찾은 시간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이 시간들 사이의 복잡한 기호들에 관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 자신이 헛되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는 그 시간 안에 있는 진실. 내가 비로소 알게 된 배움의 본질적인 성과. 나는 임권택 감독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어느 순간부터 한국근대사에 대해서 말하거나, 혹은 지난 50년간에 걸친 한국영화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 소스라쳐 놀라곤 한다. 그건 내 의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는 과정은 번번이 잃어버린 시간 안으로 들어와 길을 잃어버린 다음 이러 저리 그 선을 따라 나가면 그 시간을 되찾는 장소에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물론 첫 번째 인터뷰는 < 씨받이 >에서 끝났지만 그 ‘이후’ 임권택 감독님은 계속 영화를 만들었고 나도 계속 그 영화들을 쫓아갔다. 발걸음은 늦어졌지만 그 보폭은 점점 멀어지고 깊어졌다. 이를테면 < 아다다 >를 만들고 난 다음 갑자기 < 개벽 >으로 점핑했을 때의 아득함. 혹은 < 창, 노는계집 >을 찍고 난 다음 갑자기 < 춘향뎐 >으로 넘어왔을 때의 망연자실함. 종종 선이 끊어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조차 있었다. 혹은 내가 붙잡은 선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는지 자문해보게 되었다. 매번 영화 앞에서 이쪽인가, 저쪽인가를 망설여야만 했다. 임권택 감독님은 대답을 하는 대신 다음 영화를 만들었다. 항상 영화가 끝났을 때 새로운 영화가 시작되었다. 한 편의 영화 안에 놓여진 하나의 세계. 가능한 세계. 그 세계 안의 무한한 가능성. 그때 나는 무엇을 따라가야 할 것인가. 2002년에 진행된 두 번째 인터뷰는 거기서 시작하였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진행되었다. 영상자료원은 기꺼이 내가 놓친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많은 영화들이 (불완전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비디오로 출시되었고, 이제 막 DVD로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영화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 영화들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임권택 감독님은 그저 차라리 잘 없어졌다, 는 말로 대답을 대신 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도 세 편의 영화가 더 만들어졌다. < 하류인생 >과 < 천년학 >, 그리고 < 달빛 길어 올리기 >. 나는 이미 이 세 편의 영화에 대한 인터뷰를 모두 마친 상태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계속해서 이 인터뷰의 정리를 미루고 있었다. 핑계는 금방 임권택 감독님이 102번째 영화 촬영을 시작하게 될 예정이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오랜 시간 망설여왔던 결정을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나는 처음에는 내 질문을 잘 알지 못했다. 내 질문을 정식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모리스 블랑쇼로부터의 배움 덕분이다. 나는 이제까지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대답을 얻고 싶어 했다. 블랑쇼는 질문을 바꾸었다. 문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그 말을 영화에로 끌어당겼다. 영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때 영화적 경험의 공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경험의 기억을 남겨둔 채 그것이 하나의 텍스트라는 윤곽만을 망각해버린다면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거기에 온전히 남아있는 영화적인 경험의 순간들. 비평은 시선의 결단을 내려야한다. 어떤? 그것을 간신히 유지시키고 있는 윤곽을 지워버리기. 나는 완성에 대한 근심을 잊어버릴 생각이다. 그 대신 오로지 내가 경험한 영화적 공간 안에서 어떤 매개도 없이 찢겨져 나간 영화와 인터뷰 사이의 두 세계를 점핑할 것이다. 나의 기투(Entwurft)라는 모험. 나는 먼 길을 돌아서 다시 비평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영화가 어떻게 완성되었느냐고 물어보는 대신 어떻게 출현하였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그 영화의 가능한 세계를 체험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만일 이때 의미를 찾는 일에 몰두한다면 우리는 매번 동일한 방식으로만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어떻게 우리들은 매번 새로워질 수 있을까. 나는 이제까지 대답을 찾았다. 지금부터는 다시 질문을 생각할 차례이다. 좋은 질문. 오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실패를 겁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대답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나는 여기서 다시 시작한다. 마치 만난 적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하나씩 다시 볼 것이다. 그런 다음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이것은 전체의 긍정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 모두를 긍정하기. 이때 나는 영화가 영화라는 것을 스스로 질문하는 장소에서 시작할 것이다. 자, 이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모든 영화를 다시 본 다음 다시 쓴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한국영상자료원의 도움 덕분이다. 어쩌면 이 글은 그들과 함께 쓰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나는 기억에 의존하지 않을 생각이다. 매번 마치 그 영화를 어제 본 것처럼 다시 본 다음 다시 쓸 것이다. 이미 이전에 그 영화에 대해서 쓴 글을 (가끔 참고는 하겠지만) 다시 끌어들이지 않을 것이다. 종종 과거의 영화들에 대해서 어떤 비평은 기억에 의존할 때가 있다. 나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이런 경우 영화와 기억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쓴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번 그 영화를 내 앞에 다시 불러 세운 다음 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반대로 미래의 비평을 생각하고 있다. 과거의 영화를 현재의 자리에서 본 다음 그 영화를 생각할 때 그 사유는 미래의 종합이라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영화를 현재의 자리에서 미래에로 개방하기. 이때 세 개의 시간을 나는 하나의 자리에서 모으게 될 것이다. 이미 본 영화. 다시 보는 영화. 이미 경험한 영화, 다시 경험하는 시청각 기호들. 그 안에 담겨있을 매번의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 영화와 비평 사이의 선험적 경험주의. 나는 영화가 창조의 장소이며, 매번 새로운 가능성이 활동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보고 싶다. 나는 되돌아왔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 장소가 매번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에서 같은 장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모든 예술에서 같은 장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쉽게도 나는 101편의 영화를 모두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되어 있는 영화는 모두 76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4편의 영화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영화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전쟁과 노인 >(1962), < 남자는 안 팔려 >(1963년), < 신문고 >(1963년), < 단장록 >, < 욕망의 결산 >, < 십자매 선생 >, < 단골지각생 >, < 영화마마 >, (모두 1964년) < 빗속에 지다 >, < 왕과 상노 > (1965년), < 닐니리 >(1966년), < 청사초롱 >, < 망향천리 >(모두 1967년), < 돌아온 왼손잡이 >(1968년), < 상해탈출 >, < 비 나리는 고모령 >(모두 1969년), < 이슬 맞은 백일홍 >, < 비 나리는 선창가 >, < 밤차로 온 사나이 >, < 비검 > (모두 1970년),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 < 요검 > (모두 1971년), < 대추격 >, < 잡초 > (모두 1972년). 그 중에서도 가장 분한 것은 ( 임권택 감독 스스로 자신의 영화 경력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라고 말한) <잡초>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줄거리를 읽은 다음 이 영화를 처음부터 왠지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기억이 분명치 않다. 두 번째, 나는 이 영화들을 연대기 순으로 써나가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건 전적으로 내 쪽에서의 이유이다. 나는 이 비평을 통해서 전기를 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트뤼포에게서 배운 것은 각 영화들을 그 자체로 존재케 하라, 는 것이었다. 차라리 전략이라고나 할까. 나는 영화들 사이의 관계를 과도하게 과장할 생각이 없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영화들조차 서로 다른 영화사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서로 다른 배우들로 만들어졌을 때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쉽게 연결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종 비평 담론들은 이들 영화 사이를 마치 친족관계처럼 설명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이건 비평의 관습일지도 모른다. 종종 하나의 이름 아래 규칙을 통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69년은 1971년이 아니다. 혹은 1978년은 1980년이 아니다. 이 연도를 잘 생각해주기 바란다. 나는 그런 손쉬운 방법을 피하고 싶었다. 나는 연재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런 방식으로 묶여있는 관계를 차례로 풀어낸 다음 나는 이들을 다시 배치시킬 모델을 찾아낼 생각이다. 서로 상이한 영역. 서로 다른 과정의 형성들. 나는 한 편의 영화가 매번 매우 복잡하고 상이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단조로운 등질관계 아래 놓고 이야기될 수 있는 균형 잡힌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모든 영화는 각자의 창문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 창문으로 각자의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이건 집합이 아니라 분산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내게 어떤 영화가 임권택 영화 중의 최고냐고 물어보지 말길 바란다. 여기서는 어떤 영화가 어떤 영화보다 우월하거나 반대로 열등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각각의 영화들의 존재방식을 물어볼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자신이 예술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일 때 거기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무조건적이자 절대적인 차이일 것이다. 자기 스스로 존재하고 그 존재에 대해 우리가 사유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각자의 힘. 각자의 아름다움. 다만 여기에 두 가지 원칙은 세웠다. 하나는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를 맨 먼저 쓴 다음 두 번째 영화는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 를 쓴다는 것이다. 그건 일종의 고정점 역할을 해줄 것이다. 나는 임권택 감독님의 말을 믿기로 하였다. 자신의 101번째 영화를 가리켜 “나의 두 번째 데뷔작”이라고 불렀다. 나는 맨 먼저 두 편의 데뷔작을 다룰 생각이다. 다만 뒤의 것을 먼저 다룰 생각이다. 그런 다음 임권택이라는 별자리 안에서 어떻게 각각의 영화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지를 생각할 것이다. 나는 아직 순서를 정하지 않았다.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순서를 정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이 연재를 진행하는 도중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면 (아마도) 그 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그러나 이 모든 영화에 대한 비평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약간의 우회를 할 생각이다. 혹은 비평의 변주라고나 할까. (아직 아무 것도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그 영화에 대해서 누군가를 초대하여 토크를 하거나 혹은 라운드 테이블의 형식을 취할 생각이다. 나는 더 많은 친구들이 이 영화들을 환대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므로 나의 배움은 여러 가지 전술들을 동원하여 진행될 것이다. 어떻게 그 영화와 마주칠 것인가. 어떻게 그 영화를 껴안을 것인가. 어떻게 거기서 배움을 끌어낼 것인가.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노력 속에서 내가 끌어내고 싶은 것은 말 그대로 배움의 기쁨이다. 다소 길지만 이 말을 인용하고 싶다. “중국 옛말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날 화북지방에 북산우공(北山愚公)이라 불리는 노인이 살았습니다. 그의 집 대문이 남쪽으로 나 있었는데 태행산과 왕옥산이라는 두 큰 산이 그 출로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그의 아들들을 불러 괭이를 들리고 이 큰 산에 가 산을 파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지수(智?, 지혜로운 늙은이)라 불리는 다른 노인이 있었는데 그들을 보고 크게 웃으면서 당신들은 참으로 멍청하구려, 당신 부자 몇 사람이 큰 산 두 개를 옮기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요, 라고 말했습니다. 우공이 대답하길 내가 죽으면 아들이 있고,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있고, 자자손손은 끝이 없습니다, 이 두 산이 아무리 높다한들 다시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닐진대 조금씩, 조금씩 파헤치면 어찌 평평해지지 않겠습니까, 라고 대답했습니다. 옥황상제가 이에 감동하여 두 신선을 내려 보내 두 산을 지고 가게 했습니다” 나는 하나씩 써나갈 것이다. 내 결심. 하여튼 누군가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차례로 써나갈 것이다. 대장정. 물론 신선을 기다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만 그러면 누군가는 또 다른 평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씩 모이면 모든 한국영화들은 각자 자기 자신에 관한 각자의 영화평을 갖게 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한국영화 편수와 동일한 숫자의 영화평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둘 사이의 우정을 생각한다. 어떤 영화도 외로우면 안 된다. 어떤 영화는 운 좋게 두 편, 혹은 세 편, 어쩌면 열 편, 아니면 훨씬 그 이상의 친구를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 어떤 영화들은 단 한 명의 친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그날처럼 11월 둘째 주 화요일이다. 임권택 감독님을 처음 만난 날. 나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다. 두 번의 시작. 그리고 두 번째 시작!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