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를 좋아하세요?
- 감독
- 한지혜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이현우, 김디에나
임권택 감독 연출로 1984년 <비구니>는 태흥영화사의 창립 작품이 될 뻔했던 영화, 걸작이 될뻔 했던 영화, 불교계의 반대로 제작중단이 된 군부정권 시절 비운의 영화다. 그런데 당시 송길한 작가의 각본 170여 장면 중 약 1/5 분량 촬영이 끝난 상태로 유실됐던 필름은 2014년 태흥영화사 창고에서 발견됐고, 그 후 한국영상자료원과 전주국제영화제 (이하 JIFF)의 협업으로 39분 길이의 본편으로 복원, 편집됐다. JIFF는 송길한 작가 특별전의 일환으로 관계자 인터뷰 위주의 24분 길이 다큐멘터리도 제작했고, 지난해 본편과 함께 제18회 JIFF 관객과 만날 수 있게 했다. 발굴, 복원된 필름은 편집이 전혀 안 된 16mm 러시 필름이었고, 사운드는 아예 없었다. 박홍렬 촬영감독이 생필름 촬영본을 편집했고, <비구니> 촬영을 맡았던 정일성 촬영감독이 색보정을, <취화선> 등의 작품에서 정일성 촬영팀의 일원이었던 박정훈 촬영감독이 편집과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았고, 김영진 JIFF 수석프로그래머가 인터뷰들을 진행했다. 올해 봤던 <비구니>가 인상에 남은 것은 제작 중단으로 실현하지 못했던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이나 표현의 자유 보장의 필요성에 대해 시사하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발굴돼서 복원, 편집된 작품 자체가 사운드 없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원숙한 김지미 배우의 연기는 무성영화 시절 표정, 자태, 몸짓만으로도 거의 모든 것을 전달하던 배우들처럼 공명한다. 대사는 안 들리지만 그녀의 눈빛만 봐도 극적인 갈등과 욕망, 염원이 충분 느껴진다. 또한 작가, 감독, 촬영감독이 함께 로케이션 헌팅부터 해서 영감을 얻은 후 시나리오 작업을 한 만큼, 장면 하나하나의 압축된 구성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비구니>는 임권택 감독과 송길한 작가가 1981년 작 <만다라>로 개인 수련을 중심으로 한 소승적 불교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에 이어, 새로운 영화로 ‘중생과 더불어 밝음을 지향하는 대승적 수행’을 그려내고자 한데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주인공이 세속적인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 마침내 큰 스님이 돼가고 ‘스스로 자기를 완성하는 과정’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고 송길한 작가는 전한다. 마침 그 당시 연기의 전환점을 찾던 김지미 배우도 이 영화 공동기획으로 참여했고, 삭발, 노출, 그리고 영하 12도의 추위에도 물속으로 뛰어드는 등 전심전력을 다 했다. 애초에 제작 의사도 표시했지만, 임권택 감독은 대규모 예산에 안정적인 프로덕션을 꾸려줄 회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극장 흥행사에서 영화제작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려던 이태원 사장은 국제영화제에서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비구니>를 태흥영화사 창립 작품으로 하기로 했다. 이렇게 야심 차게 꾸려진 <비구니>는 1984년 3월 13일 문공부와 영화진흥공사에 제작신고를 했으나, 3개월 후 결국 제작 포기를 하게 됐다. 시나리오 작업할 당시 불교계에서는 자문과 고증을 도왔음에도 막상 대본을 전달받은 조계종에서는 불교를 모독할 우려가 있음을 표명하며 문공부에 제작중지 요청 공문을 보냈다. 태흥영화사와 임권택 감독, 송길한 작가는 조계종 사회부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대본을 수정하는 등 “수준 높은 불교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했으나 종단에서는 불교의 성역을 영화화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했다. 주인공이 비구니로 입산 후 속세에서의 사랑과 번민을 회상하는 장면이나 전쟁 통에 고아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트럭 운전사에게 몸을 준 것 등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결국 제작중지 궐기대회에, 법원에 제작중단 가처분 신청까지 이어 나갔다. 그런데 이때 조계종 전국 비구니 대표자 회의가 내놓은 요구 사항은 한번 살펴볼 만하다. 다음과 같다. 1. 불교재산관리법을 철폐하라. 2. 10.27 불교법란을 정부는 공개 사과하라. 3. 불교 탄압을 중지하라. 4. 국영방송과 기독교인은 공개 사과하라. 5. 극영화 <비구니> 제작을 중지하라. 사실상 <비구니> 관련된 것은 다섯 가지 요청 사항 중의 하나밖에 안 되는데, 심지어 순위도 맨 마지막이다. 여기서 ‘불교법란’은 전두환 정권 초기 1980년 10월 27일 전국의 사찰 및 암자를 수색하고 스님들과 불교 관련자들을 대거 연행하고 고문한 사건을 일컫는다. 불교계는 이런 치욕과 탄압에 분노하다가 영화 <비구니>가 나타나면서 마침 기폭제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때쯤 당국에서도 제작자 이태원을 만나 제작을 포기하라며 설득과 회유를 시도했다고 한다. 법원에 가처분 신청 변론과 심문이 진행되는 가운데 데모하던 비구니들이 전경에 맞서다가 다치기까지 했다. 이에 제작자는 사회적 물의가 너무 크다고 판단하여 제작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전에 대본 수정과 함께 제목이 <수연 비구니>로 바뀌어 있었던 영화에 대한 제작신고를 ‘자진 취하’하는 문서를 6월 13일 문공부에 접수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제작비 2억여 원을 날린 태흥영화사도 그랬지만, 임권택 감독, 송길한 작가, 김지미 배우 등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해 임하고 있었던 작품이 중단되자 충격을 못 이기고 일정 기간 창작 의지를 상실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작품 활동들을 하게 됐지만, 당시 타격이 컸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관계자들은 ‘그때는 우리 영화인들이 힘이 없어 접었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영화 안팎에서 표현하고 있다. 어쨌든 30년이 흐른 후, 창고에서 16mm 러시 필름이 나왔다. 시나리오의 1/5 분량밖에 촬영하지 못한 것이라 아무래도 원래 대본에서 빠진 것이 많고, 사운드가 없어서 가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서로 다른데 중첩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영화적인 효과를 놓치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또 배우들의 소리 없는 모습에서 전달되는 것도 많다. 시작 장면에 수경이 민간인 복장으로 산사로 걸어 들어갈 때 애인쯤 돼 보이는 남자가 얼굴과 발걸음만으로도 ‘정말 이래야만 하겠어?’ 하는 안타까움과 답답함 표현하며 동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경은 절에 들어가 추운 날 나무도 해 가고 냇물에서 빨래도 하는 등 행자 생활을 하다가 이윽고 장엄한 삭발식을 치른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용 앰뷸런스에 타고 가는데 아까 본 남자가 도와주다가 뭔가 엄청난 소식을 전달하면서 떠나고, 비구니는 눈물과 번민에 주저앉기도 한다. 스크린 위의 영상이 펼쳐지는 동안 정적을 깨는 듯한 것들이 가끔 있다. 분명 사운드는 없다. 그렇지만 김지미 배우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집을 찾아가 원삼을 받아 입고 돌아가신 줄도 몰랐던 어머니 무덤에 삼배한 후, 시집갈 때 입으라고 지어주신 그 옷과 함께 집착을 불태워버리려 할 때 불꽃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대규모 전쟁 장면에서 폭파의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전쟁 피난길 장면들인데, 최근에 나온 스펙타클한 CG 전쟁영화들과는 좀 달리, <비구니>는 폭격의 불길과 먼지와 연기 속을 고되게 뚫고 나가야만 하는 인간상들이 인상적이다. 임권택 감독은 1936년생으로 한국전쟁이 터졌을 당시 이미 십 대였고, 정일성 촬영감독은 1929년생으로 심지어 군 복무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화면에 묻어 나오는 인간성이 다른 듯하다. 피난민의 절박하거나 훈훈한 얘기들 외에도 난리 통에 기회주의적으로 실속을 챙기려고 하는 나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암시 아닌 암시가 처음부터 떠오르기도 했다. 수경은 가족 잃은 꼬맹이 여섯 명을 챙기며 피난을 가다가 화물 트럭 운전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책임감을 느끼고 끈질기게 호소하는 비구니를 순간, 운전사는 음흉한 눈빛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 협상이 이뤄진다. 아이들을 구하려면 원하는 대로 해달라. 사운드는 없지만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비구니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그리고 추위에 떠는 꼬맹이들을 보며 어떻게 결심을 하게 되는지 너무도 뚜렷하게 보인다. 그녀는 폐허에 이끌려가 일을 치르고 와서는 아이들을 트럭에 실어 떠나 보내고 횡 하니 서있는다. 이윽고 눈 덮인 냇가에 가서 아랫도리를 씻는데 얼굴 클로즈업이 되면서 마치 감정에 북받쳐 나온 것처럼 영화에서 기대치 않은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아주 미니멀한 우리 소리가 눈발을 맞으며 땅을 치면서 우는 수경의 모습 위로 흐른다. 정적 속에 마치 귀가 막혔다가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 흡사 개도나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 같은 느낌 같기도 하다. 마침내 수경은 옷을 다 풀어헤치고 알몸으로 물속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지 않고 후두두 떨면서 기도한다. 목숨을 건 김지미 배우의 과감하고 단호한 선택이었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말 대로 촬영 당시 영하 12도의 날씨면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그 기도 하는 모습이 연기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목숨까지 건 영화 창작이 그렇게 암울한 시절 중단됐다는 것은 잊혀서 안 될 일이다. 영화제 관계자나 영화 학자,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아키비스트, 사회학자, 민속지학자, 박물관 관계자 등이 관심을 갖고 상영 및 포럼을 기획해도 좋을 것 같은 작품이다. 영화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면 무성영화 시절 사용했던 것 같은 인터타이틀 삽입도 고려해볼 만할 것 같다. JIFF는 특별전에 맞춰 『작가 송길한』이란 책에 인터뷰, 기사, 사진 자료 등을 비롯해 영화 <비구니>의 시나리오 전편도 수록했다. 이 글을 쓰는 데에도 참조가 많이 된 것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비구니> (JIFF 2017 편집 본)에 들을 수 없는 대사와 미처 다 찍지 못해 볼 수 없는 일제강점기부터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와 원래의 엔딩 등 더 많은 것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영화가 시작되면, 박영규 의 눈이 익스트림 클로즈 업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흐르는 내레이션. “본시 제비란 봄과 따뜻함을 의미하는바, 외로운 여성에게 춤으로 위안을 주고 그 대가를 받는 직업인데 요즘 본질을 잃은 제비가 있어 가정파괴마저 불사하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익스트림 클로즈 업과 오프닝 타이틀 < 신사동제비 >가 개봉된 1989년 11월은, 1990년에 있을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을 목전에 두던 때였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집창촌 집중 검문을 통해 실종 처리되었던 많은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인신매매에 대한 괴담이 절정에 달하던 때였다. 남자는 봉고차에 끌려가 팔다리가 잘려 앵벌이가 된다는, 여자는 온갖 수모를 당하고 집창촌에 팔려간다는 등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들렸었는데, 결국 수사를 통해 괴담이 완전한 허구가 아니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이러한 인신매매의 주범으로는 조직폭력배들이 주로 지목된 까닭에 그들을 소재로 하는 에로영화와 다찌마리 영화가 상당수 제작되었지만,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는 당시의 톱스타이자 영화광(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안봐도 비데옵니다’의 박세민은, ‘제비’를 소재로 한 인신매매 영화를 제작한다. 그것도 무려, 제비들을 질타하기 위해. 서두에 언급한 내레이션은 제비 도사 박영규 가 한 말이다. 그는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져 금품갈취와 인신매매를 일삼는 사파 제비들에게 진절머리가 나, 모든 것을 접어두고 산속에서 원숭이를 키우며 소일하는 은퇴한 제비왕이다. 아내( 원미경 )가 인신매매를 당해 실종된 상태에서 ‘아내는 제비에게 납치되었으니 제비가 되어야만 찾을 수 있다.’는 점쟁이의 말만 믿고 찾아온 동준( 강남길 )을 받아들여 누구에게도 전수하지 않았던 댄스 중의 댄스, ‘세게하면 고통을 주고 살살하면 쾌락을 주는 급소댄스’를 가르친다. 제비 도사는 제비의 정도를 세우는 사업을 동준에게 맡기며 이를 위해 모아둔 ‘적금 통장’을 전달한다. “제비가 되기 위해선 신사가 되어야 한다. 신사가 곧 제비다. 신사동(同)제비니라. 자. 신사동에 가서 너의 실력을 뽐내 보거라.” 급소 댄스 전수 과정 적금 통장 전달 '실력을 뽐내 보거라' 이 부분은 이 영화의 제목이 왜 ‘ 신사동제비 ’인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1주년 결혼기념일 날 나이트클럽에서 파티를 연 동준과 미영 부부. 우연찮게 같은 클럽에 있던 제비들에게 타깃이 되어 납치된 미영(원미경)과 그녀를 찾기 위해 제비 도사를 찾아 ‘급소 댄스’를 전수받고 아내를 찾아 헤매는 동준( 강남길 )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나가고 있으니, 잠깐 열거를 해보자면 1. 미영을 납치한 제비들은 여자들이 쌓이자 ‘전국인매대회’(‘전국인신매매대회’의 준말이며, 식전 행사로 ‘먼저 간 제비 선배들에 대한 묵념’을 행하고 있다.)를 열고 전국의 포주들을 불러 경매를 한다. 2. 바다에 빠져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미영은 우연하게 잠수부들에게 구조되고, 도사의 외모를 가졌으나 스스로를 ‘이 시대 마지막 내시’라 칭하는 노인에게 ‘약간의 공격술’과 ‘폭발물 제조’를 배우게 된다. 미영은 묻는다. “할아버지는 취미가 뭐예요?” “오로지 폭발물 제조지. 내시가 된 것도 테스트를 하다가 그만...” 가엾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미영 3. 노인과 헤어진 미영은 람보 비슷한 옷을 입고 원수들의 사진을 아지트에 붙여놓고 하나씩 X표를 쳐가며 살해해 나가는데, 밑에는 붉은 페인트로 ‘여보! 용서해줘요!’라고 쓰여 있다. 4. 동준은 제비 도사가 키우는 원숭이를 약 올리다가 그를 원숭이로 오해한 사냥꾼들의 총에 얼굴을 맞게 된다. 위독한 상황에서 수술을 받게 되는데, 제비 도사의 집에 남아있던 유일한 사진인 나쁜 제비 보스, 박세민의 얼굴이 동준의 얼굴이라 오해 한 의사는 동준을 박세민의 얼굴로 성형해 버린다. 믿기지 않겠지만 동준은 원숭이 가면을 쓴 것이 아니라 그저 고릴라(!) 인형을 들고 원숭이 흉내를 내고 있었을 뿐인데, 사냥꾼들은 그를 원숭이로 오인해 사격해 버린 것이다. 이 정도만 봐도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아찔함이 몰려오지만, 일일이 열거할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인 개드립이 영화에 촘촘히 박혀있다. 당시 어린이 영화, 에로 영화에 대거 등장했던 개그맨들의 영화 진출로 기획되었던 탓인지, 정재환 , 정재윤 , 김상호 등 당시의 인기 개그맨들이 총출동하여 틈 나는 대로 본인의 유행어 캐릭터를 뽐내는 통에 이게 <유머 1번지> 녹화 본인지 영화를 보는 것인지 헷갈리기까지 할 지경이다. 영화가 이 모양인 까닭에, 과거의 자료를 뒤져본 들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억지로 찾아보자면, “퇴폐조장 영화제목 여과장치 필요하다”라는 동아일보 기사에 언급되거나, “개그맨 탈 안방극장 러시”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사라져 가버릴 운명이었던 영화가 몇몇의 변태 영화팬들에게 알려진 것은, 하필 개봉 10주년인 1999년에 발표된 가수 유희열 의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에 실린 한 편의 글 때문이었다. 스스로 비디오 가게의 협객이라 밝히고 있는 유희열은 어느 날 비디오 가게 아저씨에게 “제일 후진 걸로 주세요.” 라는 주문을 했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주인의 손에 들려있던 비디오 테잎이 바로... < 신사동제비 >였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영화로 < 토마토 공격대 >와 바로 이 <신사동제비>를 꼽았다. 과연 감성 변태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유희열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 재미있는 점은 또 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은 ‘ 민성욱 ’이다. 민성욱...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싶어 찾아보니, 현재 전주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며 백제예술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신 바로 그분이시다. 긴가민가할 것도 없다. 본인이 JIFF 블로그에 밝혀 놨으니까. 당시 인기몰이 중이던 ZAZ사단 (< 에어플레인 >, < 총알 탄 사나이 >)류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민성욱 (당시) 작가는 충무로 최고의 고료를 받고 < 신사동제비 >를 썼다고 한다. 제작사에서 내건 조건은 단 두 개. 아내가 인신매매 당해야 하며, 아내를 찾기 위해 남편이 제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본인의 우상(이라고 본인이 밝힌) 박세민 을 찾아가 감독직을 부탁했고... <신사동제비>는 완성된 것이다. (원글을 읽고 싶으신 분은 14회 JIFF 홈페이지를 가보시기 바란다.) http://goo.gl/1NopXM 이렇게 전사를 알아보니, < 신사동제비 >는 당대의 사회상을 베이스로 유행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버무려 최고의 흥행을 했어야 하는 영화였다. 하지만 검열과 제작사의 횡포로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이 최고조에 달했던 80년대 말에 제작된 <신사동제비>는 해도 해도 너무한 몰골로 나타나, 그런 억압과 제한 속에서 비굴하게 타협하는 당대의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괴작이 되고 만 것이다. 박세민 감독은 제비들에게 정도를 걸으라 영화로 일갈하고, 민성욱 (당시) 작가는 오우삼보다 무려 10년이 앞서 ‘페이스오프’라는 소재를 영화에 가져온 것으로 만족하며,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막 나가는 영화에 관객은 즐거우니 결국 제작사만 눈물을 흘린 것인가. 감독 박세민은 < 신사동제비 > 이후 에로영화 팬들 사이에 나름 회자되고 있는 조루증 환자의 고군분투기 <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를 2탄까지 찍고, 2000년 < 타가킹 >을 어려움 끝에 제작, 연출하지만 제작사에 뒤통수 맞고, 홍보사에 등짝스매싱 당한 뒤, 홀연히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개그맨 박세민은 최근 ‘냉장고를 녹이는 남자’라는 미묘한 수식어를 달고 재기의 청신호를 밝히고 있는 중이라 한다. 통장을 건내주는 제비왕의 자상한 눈빛 P.S : 올해 1월 박영규 는 영화 < 남자사용설명서> 출연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며 뜬금없이 “돈에 눈이 멀어 < 신사동제비 >에 출연했다. 후회한다.” 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가 알았으면 좋겠다. 강남길 에게 급소 댄스를 전수하던 당신의 강렬하면서도 온화한 그 눈빛과 제비들이 정도를 걷게 하는 사업에 쓰기 위해 초가집에 살며 어렵게 모은 적금 통장을 강남길에게 던져주던 그 알뜰한 자상함을 기억하는 팬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 글: 허경(정발산 영화거구) 강남길 원미경 박세민 박영규 감독 박세민 각본 민성욱 촬영 신옥현 개봉극장 서울극장, 롯데(서울) 개봉일 1989-11-04 관람인원 17,748(서울)명
현대 한국사회에 얽혀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고민하다 보면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뿌리를 찾고 싶은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때 우리는 한국현대사를 돌아보게 되는데, 미국과의 관계를 떼어내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8.15 해방에서부터 미군정, 한국전쟁, 베트남전과 경제원조, 박정희 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지금의 FTA까지 현대사의 굵직한 사안들에 미국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미국의 바람과 불 >은 미군 선전영화, 독재정권의 공보처 기록물, 계몽영화 등의 뉴스릴 필름과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재편집해, 재료로 사용했던 원래 영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낸다.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클립들은 서로 충돌하며 관객들에게 미묘하고도 아이러니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검열의 시대에 신문을 제대로 보려면 ‘행간`을 읽어야 했듯이, 건조한 기록필름들의 쇼트와 쇼트들을 보다보면 이 시공간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함을 눈치챌 수 있다.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반복적인 미국행, 미국의 무기개발을 찬양하는 대한뉴스와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비난하는 기도회, 아이들의 영어마을과 대학의 영어공용화 수업, 한국전쟁 60주년 기도회를 찾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화면들을 보다보면 어디선가 한번쯤 봤을 법한 낯익은 장면 속에서 잊고 있었던 혹은 알지 못했던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감독의 말을 빌자면, ‘어떤 쇼트도 개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관계가 마치 세계 자체가 그러하듯 중층적이고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는 미로와 같은’ 영화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레이션 한마디 없는 이 영화의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객관적 사실`을 재료로 삼아 완벽히 감독만의 ‘주관적 이야기’인 다큐멘터리를 완성해 낸다는 것이다. 김경만 감독은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으로 활동하며 < 하지 말아야 될 것들 >, < 골리앗의 구조 >, <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 등 여러 작품들을 제작하는 동안, 시종일관 오래된 기록영화, 뉴스릴, 선전영화 등을 이용해 재편집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 미국의 바람과 불 >은 그의 첫 장편으로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JIFF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극장 개봉을 준비중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양식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뒤집고 있는 이 작품을 관객들은 어떻게 공명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