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hod
- 감독
- 박준형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이종민, 김대기, 나유미, 전승민, 전다연, 신훈희, 김수용
2001년 | 씨네월드 감독: 박철관 | 원안: 이명석 | 각본: 박규태 | 제작: 이준익 | 기획: 조철현 | 촬영: 박희주 | 미술: 오상만 | 음악: 박진석 신호섭 CAST 재규: 박신양 | 청명: 정진영 | 불곰: 박상면 | 날치: 강성진 | 왕구라: 김수로 | 막내: 홍경인 | 노스님: 김인문 | 현각: 이원종 | 대봉: 이문식 | 명천: 류승수 2000년대 초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장르는 이른바 ‘조폭 코미디’였습니다. < 조폭 마누라 >(조진규, 2001)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 두사부일체 >(윤제균, 2001) < 가문의 영광 >(정흥순, 2002)이 큰 흥행을 기록하면서 급속히 메인 스트림 안에 자리 잡았죠. 평단 일각에선 욕설과 폭력과 자극이 난무하는 이 장르의 관습이 한국영화를 저질화시킨다는 비난이 있었는데요, 일견 타당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닌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달마야 놀자>가 그런 영화죠. 한쪽에서 보면 조폭 영화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불교 영화인, 도저히 융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요소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심오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2001년 8월의 어느 더운 날, <달마야 놀자>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조폭들이 불당 청소를 하는 장면이었죠. 이때 불상을 닦던 왕구라(김수로)와 막내(홍경인) 사이에서 갑자기 논쟁이 붙죠. 부처는 중국 사람일까, 아니면 인도 사람일까. 불상의 밑바닥을 들춰 본 왕구라는 ‘Made in China’를 확인하는데요, 실수로 불상을 불당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이 사건은 스님과 조폭 사이에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죠. 적에게 쫓겨 고요한 암자에 뛰어든 재규파의 리더 재규 역을 맡은 박신양입니다. 1990년대 말 멜로 주인공으로 이미지를 굳혔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서 성공을 거두죠. 재규파에 맞서 절을 지키는 청명 스님 역의 정진영입니다. 진짜 스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할이 잘 어울립니다. 넘버 2인 불곰(박상면)과 넘버 3인 날치(강성진)입니다. 불곰은 큰 덩치의 해병대 출신인데요, 알고 보니 대봉 스님(이문식)의 해병대 후임이었죠. 한편 날치는 이후 속세를 떠나 출가하게 됩니다. 현각 스님(이원종)은 큰 덩치와 엄청난 힘의 소유자입니다. “칼에는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살리는 칼이 있습니다. 전 그걸 깨닫는 데 15년이나 걸렸습니다.” 출가 전엔 어떤 일을 했을지, 조금은 짐작 가는 대사입니다. 재규파의 넘버 4인 왕구라(김수로)는 엄청나게 말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막내(홍경인)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았는데요, 동자승(권오민)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죠. 암자의 여섯 스님들입니다. 왼쪽부터 노스님(김인문), 동자승, 청명 스님, 현각 스님, 대봉 스님 그리고 청명 스님(류승수)입니다. 청명 스님은 묵언 수행 중인데요, 이 설정이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촬영 장소는 김해 신어산 기슭에 있는 은하사였습니다. 가야국의 수로왕이 세웠다는 사찰이죠. 사실 절에서 촬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요, 다행히 섭외가 되었죠. 개봉 때는 승단에서 단체 관람을 하기도 했는데요, 상당히 만족하며 영화를 봤다는 후문입니다. 왕구라가 불상을 훼손하는 사고를 저지르는 장면을 대웅전에서 촬영한 후엔, 요사채에서 공양 신 리허설을 했습니다. 사찰에서의 공양, 즉 식사 시간은 엄격한 예절 속에서 조용히 이뤄지는데요, 재규파 다섯 명에겐 낯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노스님의 꾸중을 듣게 됩니다. 스님이 아닙니다. 이 영화로 데뷔한 박철관 감독의 모습입니다. 제작사 씨네월드에서 < 간첩 리철진 >(장진, 1999) < 아나키스트 >(유영식, 2000)의 연출부를 거쳤죠. 이후 두 번째 영화 < 미쓰GO >(2012, 박철관)를 연출했습니다. 현장에서 박신양은 쉬는 시간마다 캠코더로 촬영을 했습니다. 불당 안에서 레슬링을 하는 재규파 부하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동자승과 함께 보고 있네요. 정진영은 촬영 기간 동안 아예 은하사에 기거하면서 스님들과 생활했습니다. 그런 이유인지 영화에서 진짜 스님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기죠. 그 모습이 얼마나 리얼했는지, 은하사에 들른 어느 스님에게 혼이 났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데 인사를 하지 않자 정진영 배우를 혼냈던 거죠. 이 영화의 ‘뜬금포’ 같은 존재인 ‘츄리닝맨’ 김영준의 모습입니다. 영화 내내 수맥 탐지용 안테나를 들고 다니죠. 촬영이 끝난 저녁, 불당 아래 공터에선 재규파와 스님들은 족구 게임을 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할 족구 장면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이었지만, 시나리오와 상관없이 실제로 족구 시합을 했습니다. 축구화와 테이프로 동여맨 고무신 등을 신고 열심히 경기를 했는데요, 결국은 재규파가 이겼습니다. ‘불곰’ 박상면의 활약 덕분이었죠. <여인천하> 같은 TV 사극의 아역으로 낯익은 권오민은 <달마야 놀자>에서 동자승 역을 맡았습니다. 첫 영화였지만, 특유의 천진함과 귀여움으로 자칫하면 퍽퍽해질 수 있었던 영화의 정서에 숨통을 틔워 주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영화에서 사라진 위대한 전통 중 하나는 변사(辯士)일 것이다. 물론 인간문화재처럼 기예를 갖추고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건 아주 특별한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기회가 되어가고 있다. 토키영화는 그들을 무대에서 쫓아냈고 그들을 위한 새로운 영화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나는 그걸 늘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건 슬프게도 일제강점하 식민지의 유산이기도 하다. 영화와 함께 일본에서 건너온 변사는 일본영화의 발명 중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변사라는 말 대신 가쓰벤(活辯)이라고 불렀다. 일본에서 가쓰벤이 언제 나타났는지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가쓰벤은 그 전통이 17세기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때 그림과 이야기를 하나의 화폭에 담는 에도키(繪解)의 전통이 나타났고(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일본 불교화의 전통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런 다음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에도키를 읽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읽기만 했지만 점점 더 거기에 감정을 담고 심지어 자기가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에도키가 곧장 영화로 넘어온 것은 아니다. 분라쿠 인형극이 진행될 때 그 곁에 사미센 연주자들과 함께 해설자들이 앉았다. 그들은 단지 인형의 대사만을 낭송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여러 명의 해설자가 앉기도 했지만 진정한 대가는 혼자서 여러 인형의 목소리를 번갈아가면서 낭송했다. 이 전통의 섬세한 구분이 좀 더 필요하지만 내가 다시 만나고 싶은 영화사의 순간은 가쓰벤의 고고학이 아니다. 어쩌면 활동사진을 구경하러 온 20세기 초의 일본 관객들에게 가쓰벤의 존재는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될 때부터 가쓰벤은 무대에 함께 올라왔다. 심지어 일부 극장에서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입담 좋은 가쓰벤들이 일종의 여흥으로 재담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게다가 가쓰벤의 존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한 영화의 자막을 구태여 번역할 필요 없게 만들면서 경제적인 기능도 수행했다. 영화가 점점 대중의 관심을 모으자 점점 더 많은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점점 더 많은 가쓰벤이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부 열렬한 관객들은 같은 영화를 다른 가쓰벤의 공연으로 보기 위해 구태여 찾아가기도 했다. 일본 영화사는 위대한 가쓰벤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공연(!)은 1912년 요코다상회(橫田商會)에서 제작한 <곤자키야샤(金色夜叉)>를 혼자서 낭송한 가쓰벤 쓰치야 쇼토(土屋松濤)의 무대라는 데 일본영화사 연구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곤자키야사>는 말 그대로 ‘돈 귀신’이라는 뜻인데, 오자키 고요가 요미우리신문에 1897년 1월 1일부터 1902년 5월 11일까지 연재한 대중소설이 원작이다. 이 소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당시 식민지 조선에도 조중환이 번안해 「장한몽」으로 소개했다. 좀 더 간단한 설명이 있다. 우리에게는 ‘이수일과 심순애’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수일이 사랑하는 여인 심순애가 돈 많은 김중배에게 시집을 가자 “김중배의 다이야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라고 한 다음 고리대금업자로 변신해 복수하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신파. <곤자키야샤>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가쓰벤 쓰치야 쇼토는 “칠색음(七色音)이라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인물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그 감미로운 음성으로 관객의 넋을 빼놓다가 하지마 간이치(말하자면 이수일)가 비통하게 죽어가는 연인 시가사와 미야(말하자면 심순애)에게 후회를 고백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객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라는 절찬을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쓰치야 쇼토의 공연을 담은 기록 필름은 남아 있지 않다. 토키영화의 등장으로 가쓰벤은 설 자리를 잃었지만 아직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여성 가쓰벤 아소코야타(麻生子八咫, 사진2)와 그의 아버지 야소야타 (麻生八咫, 사진1) 의 공연 모습 일본에서 가쓰벤은 점점 더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첫 번째 토키영화 < 재즈싱어 The Jazz Singer >(앨런 크로슬랜드)가 미국에 등장한 1927년에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가쓰벤이 6,818명이었며, 그중 180명이 여성 가쓰벤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발명하면서 한편으로 그 자신의 역사를 살해했다. 영화사의 순간들은 언제나 그렇게 섬광처럼 지나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