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공책
- 감독
- 김성호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이주실, 김성은, 김선화, 류경미, 김강민, 정재진, 신미영, 이종혁, 김정수, 김근영, 임태풍, 이준혁, 이영아, 이승철, 권오진, 엄지만, 오지영, 이유하, 김영서, 김수웅, 김혜리, 송훈, 조명연, 하민, 조혜선, 선화, 오일룡, 정미경, 김영희, 김은신, 위제영
< 노트북 >의 제작연도는 매체에 따라 상이하게 기록되어 있다. 1963년이 자주 눈에 띄고 1962년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1940년부터 1962년이라는 기록을 따른다. 이 또한 정확하지는 않다. 아담스 시트니는 <노트북>을 마리 멘켄이 영화 작업을 했던 194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완성된 작품으로, 그 시기를 대략적으로 기술하였다. <노트북>의 제작연도가 특히 불명확하지만, 멘켄의 작품들이 대체로 제작연도를 정확하게 표기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멘켄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일정한 기간 내에 이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주목을 끄는 순간들이나 대상들을 기록해두었다가 여러 조각들을 모아서 한 작품으로 편집하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0년에 멘켄이 사망하기 직전, 그녀의 스튜디오에 홍수가 들어서 그나마 남아있던 기록들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작품에 관한 정보들도 상당히 부실한 편이다. 또한 멘켄은 작품의 최종본을 거의 만들지 않았고 첫 상영 이후에도 작품을 계속 수정했다. 멘켄의 작품들에 스크래치나 먼지가 많은 이유는 포지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이후 네거티브 프린트를 별도로 만들지 않고 영사기에 돌려서, 원본 필름 자체가 많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나열한 단편적인 정보들로 미루어볼 때, 멘켄은 ‘작가’로서 ‘작품’을 만든다는 자의식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멘켄의 작품들이 그녀의 생전에 널리 상영되어 주목을 끌었던 것도 아니고,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멘켄과 관련된 주요 문서들은 그녀가 남긴 인터뷰나 그녀와의 일화를 떠올리는 친구들의 인터뷰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켄을 중요 작가로, < 노트북 >을 미국 실험영화사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으로 꼽는 이유는 그녀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친구들이 1960년대 이후 미국 실험영화의 양대 거목이라 할 수 있는 조나스 메카스와 스탠 브래키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친구들의 목록에는 그녀의 작품 제목에도 등장하는 이사무 노구치, 케네스 앵거, 앤디 워홀 등이 계속 추가될 수 있다. 이를테면 마리 멘켄은 불특정 다수인 관객과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작가라기보다는 우정에 기초한 작가들의 공동체 안에서 정의될 수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멘켄의 <노트북>을 조나스 메카스와 스탠 브래키지 그리고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서술해보고자 한다. 이 각각의 요소들을 다시 나열하면, 일기영화(diary film), 신체적(somatic) 카메라, 그리고 그녀의 남편 윌러드 마스(Willard Maas)와 함께 했던 작가 집단인 그리폰(Gryphon)이다. < 노트북 >은 총 9개의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분들을 만든 시기 순으로 나열한 것으로 보인다. 9개 부분들의 소제목은 ‘빗방울 Raindrops’[사진1], ‘신현 축일 Greek Epiphany’, ‘달 놀이Moonplay’, ‘흉내쟁이 Copycat’, ‘종이 자르기 Paper Cuts’, ‘전등들 Lights’[사진2], ‘밤-쓰기Night-Writing’, ‘알 The Egg’, ‘기타 등등 etcetcetc’이다. 이 중에서 앞의 세 부분은 흑백이고, ‘흉내쟁이’는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이며 나머지는 컬러이다. 부분들의 소제목을 보면 ‘빗방울’, ‘신현 축일’, ‘전등들’처럼 촬영한 대상들로 이름을 붙이거나, ‘달 놀이’, ‘종이 자르기’, ‘밤-쓰기’처럼 촬영한 대상과 자신이 수행한 행위가 결합된 제목들이 눈에 띈다. 놀이와 쓰기는 카메라를 흔드는 행위를 지시하고, 종이 자르기는 말 그대로 종이를 잘라서 종이조각들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노트북>은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는 습작들이 미완결인 채로 나열된 것처럼 보인다. ‘달 놀이’와 ‘전등들’ 부분은 각각 동일한 제목의 개별 작품들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노트북>은 마치 나는 이때 이러한 것들을 보았고, 그때 볼렉스(Bolex) 카메라를 이렇게 흔들어 보았거나 이런저런 기능을 써서 촬영해보았다는 정도 외에는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사진1] <노트북>의 ‘빗방울’ 부분 스틸 이미지 [사진2] <노트북>의 ‘전등들’ 부분 스틸 이미지 < 노트북 >이 아마추어의 습작과 같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하나의 통일된 의도나 주제, 혹은 구조 없이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대상이나 사건이 우발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우연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에 준하는 문학 장르는 일기 혹은 에세이(앞으로 일기로만 표기)이다. 일기는 시나 소설과 같은 진지한 장르와는 달리 신변잡기적이고 주변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문학이라고 간주되어 오지 않았다. 특히 일기의 작가가 대부분 여성이었기 때문에, 일기는 타인에 대한 깊은 성찰과 거대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한 여성만의 장르라는 비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계급보다는 개인 속에서 정치적인 문제들을 발견하고 삶과 예술의 구분을 폐지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일기는 문학 장르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일기가 한 개인의 유아론적인 진술들이 아니라, 주체가 형성되는 데 개입되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자기를 발견하고 혁신하는 실천적인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1960년대 문화 전반에 걸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소설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들이 증가하고, 자기 고백적인 시 양식으로서 일기와 거의 구별하기 힘든 시들이 발표되었다.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미국의 몰락 The Fall of America」(1965-71)과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의 「노트북 Notebook」(1967-68) 같은 시집들이 이러한 경향을 대표한다. 마리 멘켄은 일기 형식을 영화에 도입한 첫 작가로, < 노트북 >은 일기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작으로 평가 받는다. 물론 일기 형식에 준하는 영화는 그 이전에도 찾을 수 있다. 만 레이는 1923년부터 파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일상의 사건들과 인물들을 기록하여 <홈 무비 Home Movies>(1938)[사진3]를 만든 바 있다. 또한 험프리 제닝스(Humphrey Jennings)는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를 새로 태어난 아이를 위한 일기처럼 기록하고 구성한 다큐멘터리 <티모시를 위한 일기 A Diary for Timothy>(1946)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일기영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마리 멘켄 이후 1960년대부터였다. 멘켄뿐만 아니라 아말리 로스차일드(Amalie Rotschild), 캐롤리 슈니먼(Carolee Schneemann), 클라우디아 웨일(Claudia Weill)과 같은 여성 감독들이 일기영화를 만들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일기영화가 북미 실험영화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로 나타나는데, 앤드류 노렌(Andrew Noren), 로버트 하우트(Robert Hout), 하워드 구텐플랜(Howard Guttenplan) 같은 작가들이 일기영화를 만들게 된다. [사진 3] <홈 무비>의 스틸 이미지 ( https://www.youtube.com/watch?v=Fl4U01zKI0I ) 멘켄 이후 일기영화를 만든 작가들이 다수 등장하였지만, 일기영화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며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작가는 조나스 메카스이다. 메카스는 「빌리지 보이스 Village Voice」의 ‘무비 저널 Movie Journal’ 칼럼에서 멘켄을 자신의 영화적 스승으로 언급하기도 했었다. 메카스는 1962년 1월 4일 자 ‘무비 저널’에서 마리 멘켄의 < 노트북 >을 포함한 네 편의 작품을 보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었다. 마리 멘켄의 작품은 산문(드라마, 에피소드, 스토리) 영화의 반대편에 있다. 시(poetry)를 내포하는 픽션 작품들은 있지만, 산문을 내포하는 좋은 시, 특히 좋은 서정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리 멘켄은 서정 시인이다. 멘켄의 영화적 문장들, 그녀의 움직임들, 그녀의 리듬들의 구조는 시이다. 그녀는 현실을 시로 바꾼다. 시를 통해서 멘켄은 우리에게 현실의 미묘한 측면들을, 세계의 신비들을, 그녀의 영혼의 수수께끼를 드러내 준다. 멘켄과 메카스는 리투아니아계 미국인으로서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멘켄이 사망한 직후(멘켄이 죽고 4일 뒤에 그녀의 남편 윌러드 마스도 사망했다), 메카스는 1971년 1월 14일 자 ‘무비 저널’에 멘켄과 마스를 추모하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메카스는 멘켄과 함께 했던 어느 시점을 다음과 같이 추억했다. 우리는 그녀(멘켄)가 엄마로부터 들어서 기억하고 있던 오래된 리투아니아 노래를 같이 부르곤 했다. 그 노래들은 매우 서정적이었다...우리가 같이 부르곤 했던 노래들의 일부는 꽃 정원(flower garden)과 그 정원을 가꾸는 어린 소녀에 관한 것이었다. 메카스는 1949년에 뉴욕에 도착했는데, 이때부터 1963년까지 촬영했던 푸티지들로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 Lost, Lost, Lost>(1976)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고향을 상실한 비탄, 외로움, 향수와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다루다가, 시와 영화 공동체를 발견하게 되면서 느꼈던 희열 등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의 초반부에서 비 내리는 장면[사진 4]은 멘켄의 < 노트북 > 중에서 ‘빗방울’ 부분의 인용으로 평가를 받는다. 또한 메카스가 만든 <월든 Walden>(1969)의 막간(interlude) 중의 하나는 그 제목이 ‘마리 멘켄을 위한 꽃들’이라고 붙여졌다. 이 제목은 메카스가 멘켄을 추모하며 언급했던 노래를 떠올리는 것이기도 하고, 멘켄이 만들었던 <정원을 언뜻 봄 Glimpse of the Garden>(1957)을 연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메카스의 작품에서 즐거운 순간들이나 친구들과의 우정과 자연을 예찬하는 장면들이 무작위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특성은 멘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메카스의 <월든>는 필자의 연재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룬다). [사진 4]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 초반부의 스틸 이미지 ‘신체적 카메라’는 아담스 시트니가 멘켄의 작품들을 압축하여 표현했던 용어이자, 멘켄이 브래키지에게 미쳤던 영향을 핵심적으로 지시하는 용어이다. 신체적 카메라는 서정영화(lyrical film)와도 통하는 개념이다. 시트니는 서정영화를 영화의 1인칭 시점 주인공으로서 카메라 뒤의 영화작가를 상정하는 영화로 정의했다. 다시 말하면, 영화에 작가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찍음으로서 관객이 작가의 현존을 의식하게 되는 영화가 서정영화이다. 관객이 서정영화를 볼 때에는 작가가 보았던 시각적 대상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가 그가 보았던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까지 함께 보게 된다. 서정영화에는 주인공이 없지만, 작가의 몸짓이 화면 자체의 움직임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작가의 몸짓을 행위(action)라고 표현하면, 행위를 강조하는 경향은 미술에서 추상표현주의와 같고, 몸짓을 즉흥이라고 표현하면 음악에서 재즈와 같다. 멘켄의 < 노트북 >의 9개 부분은 모두 촬영 대상과 작가의 몸짓이 결합된 형태로 제시된다. ‘흉내쟁이’와 ‘종이 자르기’는 애니메이션으로서 그리는 행위와 종이를 자르는 행위가 전제되고, 나머지 부분들에서는 들고 찍기나 스톱 모션과 같이 카메라를 조작하는 행위가 화면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시트니가 멘켄의 작품을 ‘신체적 카메라’로 함축해서 표현하는 이유이다. 브래키지는 「필름와이즈 Filmwise」에 실은 ‘제라드 말랑가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 to Gerard Malanga’라는 글에서 자신이 멘켄에게 받은 영향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마리 멘켄이 내게 ‘열려라 참깨’와 같았던 것은 < 노구치에 관한 시각적 변주들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이 카메라를 손으로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활용했던, 내가 본 첫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장 콕토가 젊은 영화작가들에게 핸드-헬드 카메라의 자유를 기회로 삼으라고 했던 조언을 그 당시에 가장 순수하게 따랐던 제자이다...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마리가 기여한 것이 너무도 단순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내게 하나의 보는(seeing) 방식 혹은 다수의 방식과 관련해서 영화의 실재 전체를 질문하기 시작하도록 했다. < 노구치의 시각적 변주들 >(1945)은 멘켄이 노구치의 스튜디오에서 그의 조각 작품들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은 장면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브래키지가 멘켄에게 받은 영향은 그의 표현대로 너무 단순해서, 손으로 들고 찍는 것뿐일 수 있다. 그러나 멘켄이 미친 영향의 실제적 의미는 본다는 것이 눈에만 국한된 시각적 봄이 아니라 신체적 행위라는 생각에서부터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들에 있다. 브래키지의 작품 중에서 멘켄의 영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밤의 예감 Anticipation of the Night>(1958)[사진 5]이 일반적으로 뽑힌다. 이 작품에서는 < 노트북 > 중에서 ‘달 놀이’, ‘밤-쓰기’와 같은 부분에서 두드러지는 들고 찍기의 효과가 유사하게 발견된다. [사진 5] <밤의 예감>의 스틸 이미지 이제 마지막으로 검토가 남은 사항은 멘켄이 그녀의 남편 마스와 함께 만들었던 작가 공동체로서 그리폰이다. 이 사항은 미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실천적인 문제일 수 있고 아니면 멘켄의 성품과 관련된 지엽적인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멘켄이 메카스나 브래키지에게 그토록 깊은 인상과 영향을 주었던 것은 미학적인 측면에서보다 그녀의 성품 혹은 작가적 태도에서부터 나오는 측면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멘켄은 1910년 리투아니아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뉴욕 순수와 산업예술 학교(the New York School of Fine and Industrial Arts)와 예술학생연맹(the Art Students’ League)에서 회화를 공부했었다. 졸업 후, 추상회화 뮤지엄(the 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 나중에 구겐하임 뮤지엄으로 재명명되었다)의 첫 번째 큐레이터였던 힐다 르베이(Hilda Rebay)의 비서로 일했다. 멘켄은 1937년에 야도 재단(Yaddo Foundation)에서 장학금을 받아 레지던시를 갔는데, 거기서 마스를 만나 같은 해에 결혼했다. 1942년에 멘켄과 마스는 미육군 통신대(Army Signal Corps)의 애니메이션 부서에 고용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그 당시 노먼 맥라렌의 동성 애인이었던 가이 글로버(Guy Glover)를 만났고, 그의 작업에 영향을 받아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멘켄과 마스는 1942년 습작으로 <코니 섬Coney Island>를 만들었고, 이듬해 그들의 두 번째 작품으로 < 몸의 지형 Geography of the Body >(1943)을 만들었다. 그리폰은 멘켄이 타임-라이프(Time-Life)에서 일할 당시에 받은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1950년대 중반에 등록한 프로덕션 회사의 이름이다. 그러나 마스는 그의 회고록에서 그리폰의 시작은 맥라렌이 뉴욕에 머물렀던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언급했었다. 그리폰이라는 이름이 그 당시에도 쓰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작가 집단으로서 활동하려는 멘켄과 마스의 생각은 맥라렌이 뉴욕에 머물렀던 1940년 즈음에 그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맥라렌은 영국에서 일하다가 1940년에 뉴욕으로 이주했고, 힐다 르베이를 찾아가서 제작 지원을 받았다. 이때 멘켄과 맥라렌은 만나서 친구가 되었고, 마스도 함께 어울렸다. 마스의 회고록을 보면, 그 행간에서 마스와 맥라렌이 한때 동성 연인 관계로 지냈다는 암시를 받을 수 있다. 브래키지가 쓴 ‘마리 멘켄’이라는 글에는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마스와 멘켄의 관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마스는 멘켄과 결혼한 직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후 여러 남성 작가들과 연인 관계를 맺었지만 멘켄은 죽을 때까지 마스와 함께 했다. 멘켄이 사망한 후 4일 뒤에 마스 역시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드라마적이다. 브래키지는 이 사실을 마스가 멘켄에게 해준 유일하게 로맨틱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브래키지는 마스를 예술가라는 자의식에 가득 찬 이기적인 사람으로 묘사하는 반면, 멘켄을 사랑과 우정으로 충만했고, 놀라운 직관을 가졌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브룩클린 하이츠에 있던 마스와 멘켄의 아파트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머물기도 했고, 자주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 작가들의 목록에는 브래키지 외에도 케네스 앵거, 그레고리 마코폴로스, 로버트 휘트먼, 스탠 반더빅, 앤디 워홀 등이 포함된다. 마스와 멘켄의 아파트가 우정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 한때 머물렀던 케네스 앵거는 그들의 주말이 얼마나 자주 전쟁처럼 끝났었는지를 언급했던 적이 있다. 마스와 멘켄이 주축이 된 그리폰은 단순히 작가들과 교류하거나, 영화 장비를 공유하고 상영회를 조직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리폰은 일종의 비관습적인 삶을 조직화하려는 확장된 시도로서,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다양한 작가들이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아서 그 에너지를 새로운 영화 만들기로 향하게 하고자 했던 의도적인 공동체였다. 일상과 예술의 구분을 거부하고, 관습에 벗어나는 삶을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도모하려고 했던 분위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뉴욕 아방가르드에서, 특히 비트 세대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그리폰은 영화 작가들의 공동체라는 이상을 향한 과도기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이상이 실험영화 제작과 상영의 현실적 토대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메카스가 주도한 뉴욕작가조합(New York Film-makers’ Coop)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멘켄이 메카스와 브래키지에게 미친 실제적인 영향은 어쩌면 영화와 일상을 구분하지 않고 일상을 혁신하는 실천이 새로운 영화적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발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영화이론을 설명하면서 일찍이 일기와 영화를 비교했던 세자르 자바티니(Cesare Zavattini)는 “일기와 영화는 존재의 윤곽을 확대하는 스크린을 통해서 관찰될 수 있는 존재의 비가시적인 구성요소들을 재현하고, 일기는 현실을 지시하며 즉각적인 분석을 생산하는 카메라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생각과 그 생각을 영화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 사이의 간극을 제거하기 위해서 카메라의 즉각성과 생생함을 옹호하였다. 자바티니는 “나는 일기가 영화의 가장 완벽하고 진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우리는 현실에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노트북 >은 생각과 영화 찍기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무시하고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보는 영화의 즐거움을, 예술가라는 자의식이 부재한 아마추어의 자유로움을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 이 글에서 언급된 영화들과 마리 멘켄에 관한 사실들은 다음의 책과 논문들을 참고하였다. P. Adams Sitney, Visionary Film: the American Avant-Garde, 1943-2000,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P. Adams Sitney, Eyes Upside Down: Visionary Filmmakers and the Heritage of Emers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David E. James(ed.), To Free the Cinema: Jonas Mekas & the New York Underground,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Jonas Mekas and Gregory Smulewicz-zucker(ed.), Movie Journal: the Rise of the New American Cinema, 1959-1971,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6. Stan Brakhage, Film at Wit’s End: Eight Avant-garde Filmmakers, McPherson, 1991. Juan A. Suarez, “Myth, Matter, Queerness: the Cinema of Willard Maas, Marie Menken, and the Gryphon Group, 1943-1969,” Grey Room 36, Summer 2009, pp.58-87.
영화란 지진과 같은 것이라고 상상해 보자. 크고 작은 요동을 일으키는 불가시적 힘의 존재는 분명하지만, 그 힘의 근원을 찾아 지각 밑을 답사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필경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할 것이기에, 결국 우리는 이런저런 관측과 경험을 통해 그 힘의 운용 원리를 간접적으로 추론하는 데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보다 정교한 추론을 위해서는 이곳뿐 아니라 다른 곳의 요동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며 그러한 지식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이따금 여행을 떠나거나 다른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언제부터인가 그 불가시적 힘의 효과가 지진계(seismograph)에 기록된 그래픽적 형상과 수치로 환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형상과 수치가 그 힘과 모종의 지표적 관계, 혹은 인과적 관계를 맺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지만, 곧바로 힘 자체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그것에 대한 유일한 기호표현이라 할 수도 없다. (예컨대 우리는 요동을 청각기호로 나타내는 지진계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와 그 변형들이 영화 자체와 동일시되거나 영화적인(cinematic) 것의 특권적 기호표현을 산출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역사 속에서, 지진계가 지진 자체와 동일시되거나 지진적인(seismic) 것의 특권적 기호표현을 산출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식의 전도를 본다. 하지만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시청각적 지진계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것이었고, 그런 까닭에 오늘날까지도 그것과 관련된 구성물들 상당수가 ‘영화적 인터페이스’를 위한 강력한 은유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지진계가 영화라는 지진을 감지하기 위한 유일한 장치는 아니라는 점은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나 슈클라다노프스키 형제의 비오스코프 같은 사례들이 보여주듯)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이 장치의 사용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이들은 바야흐로 인위적인 요동을 가미해 그래프의 형상을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시네마토그래프의 특권에 일찌감치 의문을 품었던 이들 가운데 몇몇은, 돌이켜보면 놀랄 만큼 현명하게도, 섣불리 대안적인 장치에 눈을 돌리거나 지진과 유사한 인공적 요동을 일으키는 방법을 고안하기보다는 지진의 역량을 다시 살피는 일에 전력을 쏟았다. 가령 1930년대의 르느와르는 지진계를 활성화된 지진대로 다시 가져다 놓고 인공적 요동과 본래의 지진이 함께 빚어내는 그래프의 형상을 관찰하는 일에 몰두했다. 시네마토그래프가 영화라는 지진과 맺고 있던 비인격적 자동주의(impersonal automatism)의 관계를 다시 살피려는 시도(앙드레 바쟁)가 나올 무렵, 지진은 이미 지진대를 넘어 확산되어 지각의 곳곳을 강타하고 있었다. 이른바 ‘모던 시네마’란 가공할 대지진의 충격파에 맞서 지진계가 오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 빚어낸 매혹적인 그래프이다. 그런데 만일 대지진의 충격파가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지진계의 임계값을 넘어선 것이라면 이 지진계는 오직 그것의 오작동을 통해서만 지진의 역량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오작동하는 지진계가 그려내는 혼란스러운 그래프 또한 지진의 형상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가설이었다. 이러한 가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과격한 방식으로 지진계의 ‘다른’ 사용법을 한꺼번에 제시한 이들은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프랑스의 레트리스트(Lettrist)들이었다. 이지도르 이주의 < 타액과 영원에 관한 논고 Traité de bave et d’éternité >(1951) 및 기 드보르의 <사드를 위한 울부짖음 Hurlements en faveur de Sade>(1952) 등과 더불어 레트리즘 영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모리스 르메트르의 <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 Le film est déjà commencé? >(1951)를 우리 리스트의 첫머리에 둔 것은 그 때문이다. 동요하는(unquiet) 영화의 형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레트리즘은 누벨바그와 더불어 “실험영화의 두 커다란 라이벌 분파”(니콜 브레네즈)라고까지 여겨질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일찌감치 영화의 전당에 그만의 자리를 잡은 후자와는 달리 오래도록 망각 속에 파묻혀 있다 비교적 최근에야 다시 조명되고 있는 중이다.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지진계는 오직 그것의 오작동을 통해서만 영화라는 지진의 역량을 더듬을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이 제기된 이후, 이를 전적으로 수긍하거나 반신반의하거나 거부한 여러 작가들이 자기만의 길을 따라 흔들리는 대지 위를 방랑했지만, 이들이 영토와 영토를 가로지르는 방랑의 과정에서 산출된 기기묘묘한 그래프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공식적인 영화사(史)의 가장자리나 여백에 묻혀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실험영화’나 ‘아방가르드 영화’라는 다분히 부적절한 명명으로 인해 오해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매 작품이 그 자체로 온전히 하나의 창조여야 할 예술에서 실험이니 아방가르드니 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라는 타르코프스키 식의 비판은, 그저 특정한 종을 명명하는 이름을 그 종의 속성과 동일시해 버리는 오류에 입각해 있다. 즉, 바다표범이란 바다에 서식하는 표범이라고 간주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적절한 명명을 바로잡기보다는 실제 그 이름이 사용되는 맥락에 적절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 이름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영토 없는 영화들을 위한 지도: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 35선’이라는 제목의 본 코너는 한국의 영화애호가들에게 그러한 맥락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2017년 1월부터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의 본 코너를 통해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 35편에 대한 리뷰와 더불어 각각의 영화를 둘러싼 영화사적 정황, 영화집단 그리고 사조와 경향에 대한 가이드를 3주 간격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그러니 여기서 당장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의 역사를 무리하게 요약하려 들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선정 과정과 기준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밝혀두어야 할 듯싶다. 본 리스트는 서울국제실험영화제 프로그래머 이행준,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교수 오준호 그리고 필자를 포함한 3인이 각각 20편씩을 추천한 후에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35편으로 압축해 얻은 것이다. 우리는 초기 아방가르드, 즉 무성영화 시기의 추상영화, 절대영화, 다다와 초현실주의영화를 비롯해 1940년대에 마야 데런과 케네스 앵거 등의 작가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싹튼 미국 아방가르드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루이스 부뉴엘의 < 안달루시아의 개 >(1929)나 데런의 < 오후의 올가미 >(1943) 등은 이제는 예술영화의 정전이 되어 세계영화사 강의에서도 흔히 다루어지곤 한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늘날의 실험영화, 보다 폭넓게는 영화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술과 공연 등 여러 예술영역들을 가로지르며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오디오비주얼 실천들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할 수 있는 역사적 작업들에 주목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과 영국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실험영화의 구조적(structural)이고 물질적(material)인 전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레트리즘 운동을 비롯해 이후의 확장영화(expanded cinema) 실천을 가로지르는 퍼포먼스적 측면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점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35편 가운데 22편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작품들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아시아 및 한국의 선구적인 작가들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했다. 이 작품들 가운데는 여전히 DVD와 블루레이, 그리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통해 접하기 쉽지 않은 것들도 꽤 있고 영화관에서의 관람이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추후 한국영상자료원과의 논의를 거쳐 비정기적으로 상영 프로그램을 꾸려 관객들에게 소개할 계획도 있다. ※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 35선 리스트 (리뷰 연재는 본 리스트의 순서를 따라 이루어질 예정임)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 Le film est déjà commencé? 모리스 르메트르 Maurice Lemaitre / 1951년 / 프랑스 요정의 빛 Nymphlight 조셉 코넬 Joseph Cornell / 1957년 / 미국 프리 래디컬스 Free Radicals 렌 라이 Len Lye / 1958~1979 / 미국 아르눌프 라이너 Arnulf Rainer 피터 쿠벨카 Peter Kubelka / 1960년 / 오스트리아 천상과 지상의 마법 Heaven and Earth Magic 해리 스미스 Harry Smith / 1962년 / 미국 노트북 Notebook 마리 멘켄 Marie Menken / 1940~1962년 / 미국 영화를 위한 선 Zen for Film 백남준 Nam June Paik / 1964년 / 미국 순열 Permutations 존 휘트니 John Whitney / 1966년 / 미국 찢어진 오른쪽 눈을 위하여 For the Damaged Right Eye 마츠모토 도시오 Matsumoto Toshio / 1968년 / 일본 생필름 Rohfilm 비르기트 하인 Birgit Hein & 빌헬름 하인 Wilhelm Hein / 1968년 / 독일 손 Hand 유현목 Yoo Hyun Mok / 1967년 / 한국 톰, 톰, 피리꾼의 아들 Tom, Tom, the Piper’s Son 켄 제이콥스 Ken Jacobs / 1969년 / 미국 24분의 1초의 의미 The Meaning of 1/24' 김구림 Kim Ku-lim / 1969년 / 한국 한글 Korean Alphabet 김인태 Kim In Tae / 1967년 / 캐나다 도색영화 Blue Movie 앤디 워홀 Andy Warhol / 1969년 / 미국 월든 Walden 조나스 메카스 Jonas Mekas / 1969년 / 미국 초른의 보조정리 Zorns Lemma 홀리스 프램튼 Hollis Frampton / 1970년 / 미국 자신의 눈으로 보는 행위 The Act of Seeing with One’s Own Eyes 스탠 브래키지 Stan Brakhage / 1971년 / 미국 퀵 빌리 Quick Billy 브루스 베일리 Bruce Baillie / 1971년 / 미국 중심구역 La Region Centrale 마이클 스노우 Michale Snow / 1971년 / 캐나다 원뿔을 그리는 선 Line Describing a Cone 안소니 맥콜 Anthony McCall / 1973년 / 영국 룸 필름 Room Film 피터 기달 Peter Gidal / 1973년 / 영국 거울을 든 사람 Man with Mirror 가이 셔윈 Guy Sherwin / 1976년 / 영국 드림랜드로 향하는 5분 10초 Take the 5:10 to Dreamland 브루스 코너 Bruce Conner / 1976년 / 미국 원 웨이 부기 우기 / 27년 후 One Way Boogie Woogie / 27 Years Later 제임스 베닝 James Benning / 1977년/2005년 / 미국 천사 L’ange 파트릭 보카노프스키 Patrick Bokanowski / 1982년 / 프랑스 ABCD 록스리 Roxlee / 1985년 / 필리핀 화염 속의 도시 City in Flames 슈멜츠다힌 Schmelzdahin (요헨 뮐러 Jochen Muller, 요헨 렘페르트 Jochen Lempert, 위르겐 레블레 Jurgen Reble) / 1984년 / 독일 극지에서 적도까지 From the Pole to the Equator 안젤라 리치 루키 Angela Ricci Lucchi & 예르반트 지아니키안 Yervant Gianikian / 1986년 / 이탈리아 30 X 30 장 페이리 Zhang Peili / 1988년 / 중국 미디어 매지카 Media Magica 베르너 네케스 Werner Nekes / 1986년 / 독일 외부공간 Outer Space 피터 체르카스키 Peter Tscherkassky / 1999년 / 오스트리아 더블 타이드 Double Tide 샤론 록하르트 Sharon Lockhart / 2009년 / 미국 데카지아 Decasia 빌 모리슨 Bill Morrison / 2002년 / 미국 안더스, 몰루시아 Differently, Molousia 니콜라 레 Nicholas Rey / 2012년 /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