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링 디 엑스
- 감독
- 조 단테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안톤 옐친, 애슐리 그린, 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 올리버 쿠퍼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K정연과 알고 지낸지 거의 10년이 됐지만 함께 영화를 본 건 손에 꼽는다. 그와 많은 것을 했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 가서 목욕탕에 가고 한 침대에서 자고 파리에서 햄버거를 먹고 전동 킥보드를 타고 전시를 보고 런던의 클럽에서 아마추어 밴드의 저주에 가까운 음악을 듣고… 그러나 영화를 같이 봤냐고 물으면 기억나는 건 단 한번 뿐이다. 임재철 평론가의 클래스에서 본 장 피에르 고랭의 <루틴 플레져 Routine Pleasures>(1986). 지난 글에서 말한 바 있는 이 영화를 서너명의 사람들과 어느 출판사 건물에 딸려 있는 강의실에서 봤다. 밤이었고 출판사에는 사람이 없었고 왜인지 우리가 허락도 받지 않고 몰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아무도 상영하지 않고 보지 않는 영화를 보기 위해 도시를 떠돌며 빈 건물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씨네-프레카리아트. <The Cinema of the Precariat>의 서두에 톰 자니엘로는 이렇게 쓴다. “프레카리아트는 미미한 존재감 때문에 언제든 끝장날 수 있음에도 계속 (영화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에.” 1) <루틴 플레져>는 장 피에르 고랭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두 남자가 작은 역의 벤치에 앉아 기차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한쪽이 자기 인생사를 들려준다. 난 언제나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로저가 이야기를 끝내면 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장면: 살찌고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장 피에르 고랭 미디엄 투샷) <루틴 플레져>의 오프닝 씬을 나와 K정연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쪽이 이야기를 끝내면 다른 쪽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쪽이 살찐 아저씨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건 결국 둘 다 말하고 둘 다 듣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이 과정은 일반적인 대화와는 약간 다르다. 영화와 관객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할까? 영향을 주고받지만 실시간적으로 일어나는 교류나 상호작용은 아니다. 한쪽이 끝날 때까지 다른 한쪽은 기다려야 한다. 영화는 인터랙티브 아트가 아니다. 영화가 마주해야하는 건 즉각적인 응답, 반응, 참여가 아니라 어둠과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불안정한 기다림이고 불현듯 잉태되고 사라지는 잠재성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내용 없는 인간>에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행위를 시간의 지속성이 단절되고 차단된 느낌, 정신의 바깥, 근원적인 차원에 체류하는 사태로 묘사한다. 이러한 유보를 그리스어로 에포케epoche라고 한다. “즉 리듬의 에포케라는 바깥으로 떨어져 나오는 행위를 통해 예술가와 관람자는 그들의 본질적인 동맹 관계와 공동의 지반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2) 이것이 영화라는 매체가 우정을 형성하는 방법이다. 영화는 우정의 한 형식이다. 정성일과 유운성 평론가의 평론집 첫 챕터 제목은 각각 다음과 같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영화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 관한 작은 가이드”. 3 ) “우정의 이미지들”. 4) 유운성은 세르주 다네를 인용한다. “유대 그리고 우정이라는 말은 아주 아름다운 말이다. 나는 한번도 우정이라는 관계 이외에 사람들과 다른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정말이지 영화만큼 우정을 사랑하고 의미화하는 예술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돈씨와 제가 10년 동안 같이 본 영화가 한편이라는 사실이 우리 관계를 증명해주는 같네요. K정연이 말했다. 뭘 증명하는데요? 우리가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 영화와 우정에 대한 K정연의 철학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친구였다면 더 많은 영화를 함께 봤을 거란다. 그 태도가 너무 단호해 나는 섭섭함과 함께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뭔가 반전이 있겠거니 했다. 예를 들면 우정은 친구 이상의 것, 자신 안에서 타자를 발견하는 탈주체화의 지각이자 게니우스genius적인 것과 스페키에스species적인 것과의 관계 맺음이며 극장과 카메라가 사라지거나 감춰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변화한 상호주관적인 행위다, 등등. 그러나 K정연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2살 많잖아요. 헉. 앞으로 형이라고 하세요. K정연…!!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보니 오후 여섯시였고 나는 원고를 쓰다 지쳐 컴퓨터 앞에서 깜빡 낮잠이 든 거였다. 메일이 와 있었다. 영자원 담당자에게 온 메일로 마감 시한을 고지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K정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꿈 얘기는 하지 않았고 우리가 써야할 원고에 대해서, 우리가 만들 에세이 필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정연씨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쓸 테니 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21세기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고견을 들려주세요! K정연이 말했다. < 고양이를 부탁해 >(2001)는 계급과 주거,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영화다, K시네마를 주거와 부동산의 역사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주택자의 영화, 다주택자의 영화, 전세사기꾼의 영화, 메타버스 가상부동산 업자의 영화… 홍상수와 김기덕은 홈리스 영화의 대표적인 두 형상이다, 한쪽은 돈이 많아서 집 없이 전국을 떠도는 모텔-호텔 생활자, 다른 한쪽은 돈이 없어서 강바닥과 절을 떠도는 (검열)… 등등. K정연은 이사를 한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했다. 나는 동료 소설가인 오한기도 부쩍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은 집에 관심이 많은 거예요? 지돈씨도 결혼하고 애 낳으면 알 거예요. K정연……. 네? 아니에요. 모든 한국의 연극영화과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에는 이상한 문화가 있었다. 선배를 무조건 형이나 누나, 언니 또는 오빠라고 불러야 했다. 선배를 선배라고 하면 하극상으로 끌려가서 얼차려를 받았다(대체 왜?). 자신보다 어린 선배를 선배라고 하면 기강이 해이해진다는 이유였다. 형, 누나야말로 윗사람을 대하는 진정한 호칭이란다(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상…). 이것 말고도 학교에는 이상한 문화가 많았지만 이 자리에서 다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선배들을 피해다녔다. 형, 누나 호칭이 입에 붙지 않아서였다. 외동으로 자란 탓일까? 사람들은 왜 형이나 누나, 오빠, 언니라는 호칭을 좋아할까. 나는 생각했다. 내가 영화를 찍지 않는다면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유사 가족 문화권에서는 진정한 시네마가 태어날 수 없다고. 가족은 우정이 아니라 혈연이고 K시네마의 혈연은 가부장제와 연결되며 가부장제는 남성연대와 여성혐오로 이어지고 결국 신자유주의적 가치 체계를 내면화한 청년 남성으로 과대표화된 담론과 정치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지금, 바로, 이 순간에 고양이를 부탁해를 다시 보자고 한 거예요. K정연이 말했다. 영화야말로 젠더를 생산하고 그 성격을 결정짓는 “젠더 테크놀로지”입니다. 5)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지 않았다. 영화 개봉 당시 생물학적 여성인 친구들이 너무 좋다고 말하며 등장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흉내내고 논평했던 게 기억나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그건 단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컴퓨터 스크린으로 혼자 영화를 보는 것만을 유일한 낙으로 생각한 웹친화형 K-시네필이었기 때문일까. <고양이를 부탁해>를 검색했다가 잊고 있었던 단어를 발견했다. “와라나고”. 와라나고는 수작이지만 블록버스터에 밀려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 못한 영화를 네티즌이 발굴해낸 영화 다시 보기 캠페인이었다. <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 < 라이방 >(2001), < 나비 >(2003), <고양이를 부탁해>. 문득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영화들이 생각났지만, 다시 한번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와라나고 캠페인에 속한 어떤 영화도 보지 않았다. 이런 내가 21세기 한국영화에 대한 에세이필름을 만들 자격이 있을까. 이렇게 영화를 안 보는데? 학교 선배들이 왕가위와 이와이 슌지, 미야자키 하야오를 보지 않는다고 훈계를 했던 해묵은 일도 기억났다. 어떻게 <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를 안 볼 수가 있어? < 화양연화 >도 안 봤다고? 제정신이니? 넌 영화과라고 할 수가 없구나. 과거가 떠올라서일까, 아니면 단지 원고를 쓰고 에세이필름을 만드는 일의 어려움과 지속불가능성, 때때로 급습하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회의와 공포 때문일까. 나는 K정연에게 다음 문장으로 끝나는 긴 메일을 보냈다. “…… 건강하고 밝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그건 무리겠죠? 격일로라도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 다음날, K정연에게 전화가 왔다. 지돈씨. 그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왜 K정연인지 알았어요. 왜요? 키아누 리브스가 뉴욕타임즈 비평가 선정 21세기 가장 위대한 배우 4위인 거 아시죠? 키아누 리브스 생일이 9월 2일이거든요. 그리고 제 생일도 9월 2일. 지난 원고에 이 이야기를 쓴다는 걸 깜박했네요. 그걸 왜 써요…. 오늘은 오전에 나윤이(K정연과 박지은 사이에 태어난 딸을 뜻함) 문화센터에 데려다주고 작업실로 가는 버스를 탔거든요. 버스에서 상우씨가(이상우 소설가를 뜻함) 추천해준 젠하이저 이어폰을 끼고 넷플릭스로 <키드 디텍티브>를 보며 응암으로 가는데 문득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세줄 뒤에 앉은 덩치 큰 중년 남자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더라구요. 그게 누군지 아세요? 키아누 리브스? 유운성 평론가. 헉. 그래서요? 그래서…. K정연이 말했다. 그래서… (다음 화에 계속) 1) <The Cinema of the Precariat: The Exploited, Underemployed, and Temp Workers of the World >(Thomas Zaniello, Bloomsbury Academic, 2020) *본문에서 괄호 안은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이다. 2) <내용 없는 인간>(조르조 아감벤, 윤병언 옮김, 자음과모음, 2017) 3)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정성일, 바다출판사, 2010) 4) <유령과 파수꾼들>(유운성, 미디어버스, 2018) 5) “섹스리스 K-시네마: 한국영화 속 젠더 배치의 문제”, <21세기 한국 영화>(손희정, 앨피, 2020)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1. 어렸을 때, 영화 속에서 조금이라도 무섭거나 긴장되는 장면이 나오면 엄마는 내 두 눈을 가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가락 사이로 그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이티와 자전거와 소년이 처음 날아오르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자전거가 절벽으로 살짝 떨어지는 듯하다가 존 윌리엄스 스코어의 도움을 받아 다시 공중으로 부양할 때, 사람들은 박수를 쳐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만 그랬던 게 아니다. 아저씨 아줌마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랬다. 그 시절의 극장 풍경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던 것이다. 지금이야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관객으로서의 의무이지만 그땐 소리를 내며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 엄마의 손가락 사이로 그 광경을 목격했다. 인디아나 존스가 굴러오는 돌을 피해 달아나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는데, 소중한 모자가 아직 동굴 안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존스는 손을 뻗어 결국에는 모자를 구해낸다. 바로 그 순간에도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모과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 그렘린 >)과 배낭 속에서 튀어나온 권투 글러브가 악당의 얼굴을 때리는 장면(< 구니스 >)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순간마다 엄마의 손가락과 사람들의 환호성과 열정의 박수가 겹쳐져 있었다. 그때마다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2. < 구니스 The Goonies > 아마도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였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일간지 신문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구니스 대개봉’ 광고가 실리자 외출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스크린이 밝아지고 스태프 롤이 떠오를 때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가 아니었다. 또 한 번 속았다. 80년대의 많은 영화들이 그런 전략을 취했다. 메인 포스터에 커다랗게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쓰여있으면 그건 일종의 재미 보증서 같은 역할을 했다. < 피라미드의 공포 >도 그랬고, < 그렘린 >도 그랬다. 그 사기 행각의 결말은? < 구니스 >는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 영화에는 정말 멋있고 매력적인 소년 소녀들이 잔뜩 나온다. 구니스의 리더, 션 오스틴은 동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아이들의 주장에 맞서 천식 호흡기를 들고 버텼다. “지금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면 그곳은 우리의 하늘이 아니야, 하지만 이곳은 우리의 세상이지. 구니스의 세상.” 뭐 이런 식의 대사를 하고 천식 호흡기를 휙 빨아들이는 그 모습, 카스리스마가 엄청나다. 난 케 후이 콴의 배낭 속이 궁금했다. 어린 아이계의 맥가이버라고 할 만한 발명 소년의 핵심기술이 그 가방 안에 모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미끄러지고, 달리고 물에 빠지고 하는 모험의 세계에서, 케 후이 콴의 손재주가 더 즐거운 길을 인도해 주었던 것이다. 나머지 아이들도 저마다 멋진 선택을 하며 마을을 구해내는 데 일조한다. 그런데 < 구니스 >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나온다. 모험이 끝나고, 션 오스틴은 담요를 두르고 상념이 잠겨있다. 그때 그를 리더로 인정해준 형의 여친이 다가와 볼에 뽀뽀를 해주는 것이다. 동굴 속에서는 누군지 모르고 키스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예쁜 누나의 뽀뽀를 받은 션 오스틴은 천식기를 던져 버리고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풍문에 따르면 그렇게 소년들은 성장한다고 한다. < 빅 Big > 어느 날, 동네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비디오 가게에 < 빅 > 이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물건이라고. 처음엔 관심이 없었지만 친구가 비디오를 빌리는 데 성공하자, 어느새 그의 집 소파에 앉아 상기된 표정으로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어느새 비디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이야기였다. 어른이 된 톰 행크스는 어린이의 감각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어른들의 세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아이들의 욕망을 완벽하게 건드리는 스토리 라인, 톰 행크스의 당황하는 연기가 포인트다. 흠뻑 빠져 2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건 톰 행크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였다. 데이트를 마치고 두 사람은 같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웃옷을 벗는다. 그리고 불을 끈다. 그렇게 암전인가, 싶은 그 찰라, 그러나 톰 행크스가 다시 불을 켰다. 우리는 소년들의 취향을 확실히 저격하는 페니 마셜의 연출기법에 혀를 내둘렀다. 나와 친구들은 다시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갔지만, 공차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그 장면이 떠나질 않았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렸다. 그 어둠 속에서 공을 차며 나는, 또 한번 어른이 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 이티 E.T.: The Extra-Terrestrial > 내 기억에 < 이티 >는, 우리나라에서 개봉하기 전부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웬만한 동네 형들 집에는 이티 인형 하나쯤은 다 있었고, 식빵같이 생긴 이티의 머리라는 노래를 다들 부르고 다녔고,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티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아이들도 존재했다. 이티는 뒤뚱거리며 소년에게 다가왔고, 뒤뚱거리며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친구가 된 이티와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온갖 모험을 벌이다가 공중부양을 하며 이 세계를 내려다본다. 꿈 같은 일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 꿈결 같은 공기를 만끽하던 그 첫 번째 관람체험이 아직도 생각난다. 내 생각에 < 이티 >는 영화사상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영화이며, 외계에서 온 생명체의 마음에까지 동화시키는 거의 유일한 영화이다. 난 관객의 감정 컨트롤을 이렇게까지 잘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즐거움과 슬픔, 공포와 불안을 요리조리 오가는 이 영화의 연출에는 경외감 마저 든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엘리엇이라는 소년에 동화되었다. 몇 년 뒤에 봤을 때는 이티에 감정이입이 되었고, 그다음엔 열쇠남(피터 코요테)에 공감했다. 지금은 소년의 엄마에 정이 간다. 이런 식이다. 언제나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보게 만드는 힘으로 < 이티 >는 2016년 여기까지 왔다. 또 한 번 영상자료원 스크린에 도착할 이티를 생각하니, 또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모른다. 3. 돌이켜 보니, 애초에 설렘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엄마의 손가락 사이에서 시작된 영화 관람 모험이,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어린 세대들은 어떨까? 그들만의 레전드가 따로 있을 것이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영화 목록 또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여기, 이 영화 리스트가 정답이다. 이번 기획전이야말로 당신을 다시 설레게 할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세대에게는? 내가 보증한다. 이 리스트는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니다. 영화 각각의 흥분지수가 워낙 높아서 2016년 관객들에게도 먹혀들 것이 확실하다. 그러니 뭘 해야 할까? 꿈과 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지하 1층으로 지금 당장 달려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