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현실
- 감독
- 김범기
- 제작년도
- 2010
<Fly To You>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영화관 좌석에 앉은 우리는 언제나 안전했다. 스크린에 투영된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울고 웃었지만, 결코 그 세계에 직접 발을 디딜 필요는 없었다. 이 거리는 영화가 관객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었다. 충분히 가깝지만 위험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으면서도 끝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미묘한 간격. 그러나 VR(Virtual Reality)은 이 오래된 약속을 파기한다. 더 이상 관찰자로서 멀리 떨어져 세계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은 눈앞의 세계를 보다 근접한 위치에서 마주하고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어두운 극장 좌석에 고정돼 있던 신체는 풀려나고, 그 자유도와 함께 물리적·심리적 거리도 좁혀진다. 관객은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주체적으로 이야기에 참여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영화 문법 자체의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하는 전환이다. 몽타주는 어떻게 가능할까? 클로즈업의 의미는 무엇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그리고 전통적인 영화적 연출 방식은 VR 공간에서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을까? VR은 전통 영화가 구축해온 ‘거리’의 미학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든다. 카메라와 피사체, 관객과 세계 사이의 간극은 단순한 물리적 배치가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장치로 다시 작동한다. 필자가 2020년에 연출한 < Rain Fruits >(2020)는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뚜라(Thura)의 글을 각색한 VR 영화다. 그는 엔지니어의 꿈을 품고 한국에 왔지만,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소외와 좌절을 겪는다. 영화는 그의 작은 방 안에서, 어릴 적 고향 땅의 비과일 [1] 을 떠올리며 한국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 작업의 핵심은 단순한 이야기의 재현이 아니라, 이방인이라는 조건을 관객이 VR 공간에서 몸으로 체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좁은 원룸, 단조로운 작업장,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사물들은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라는 비주얼을 통해 VR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관객은 더 이상 스크린 뒤의 관찰자가 아니라, 인물의 곁에 있지만 결코 중심에 서지 못하는 위치에서 경험을 공유한다. <Rain Fruits> 중 연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은 관객의 첫 위치와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였다. 위치와 간격의 설계는 곧 인물이 느낀 사회적 거리감과 맞닿는다. 전통적 영화라면 클로즈업이나 몽타주로 처리했을 장면들을, VR에서는 공간 자체를 재편하여 체험하게 했다. VR에서는 관객의 시선이 곧 컷이 되고 카메라가 되기 때문에, 촬영 단계부터 그 위치를 찾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원룸 장면에서 인물의 공간을 인위적으로 좁게 분리하거나, 먼지처럼 사라지는 공간과 인물의 트랜지션은 단순한 공간의 재현을 넘어 주인공의 심리적 고립감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어서 파편화된 포인트 클라우드 공간과 흰 선으로 절단된 주인공의 신체는, 그가 한국 사회에서 겪는 소외와 이곳에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관객은 자연스레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뚜라는 결국 원룸에서 어린 시절 고향의 비과일 숲을 꿈꾼다. 이 장면은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가 겹치는 지점에서, 그가 무대 위의 주인공인지 아니면 스쳐 가는 객체인지 스스로 되묻게 하는 장치다. 나아가 이러한 ‘거리’의 연출은 인물을 더욱 고립시키며, 관객 또한 그의 공간에 함께 있으면서도 무기력하게 머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 작업을 통해 VR에서 이야기를 단순화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시각 정보가 압도적으로 다가왔고, 불필요한 청각 정보는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다. VR에서는 거리와 위치, 그리고 정보량의 균형이 새로운 연출의 핵심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Rain Fruits> 중 2024년에 연출한 <Fly To You>는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VR 다큐멘터리로 풀어낸 작업이다. 제목처럼 ‘당신에게 날아가고 싶은’ 열망을 가상 공간 속에서 구현하며, 작품은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VR에서 관객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현존감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그 이상의 접촉을 허락하지 않는 매체의 한계와 마주한다. 결국, 당신에게 다가갈 수는 있지만 결코 만질 수 없는 존재로서, 주체성을 상실한 체험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산가족이라는 소재는 물리적인 이동보다 개인적인 그리움과 연결에 대한 근본적 욕망을 의미한다. VR이라는 매체가 갖는 가장 큰 역설, 가상적 연결을 통해 오히려 현실의 고립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탐구하고자 했다. 실제 이산가족 당사자인 ‘강송절(88세)’의 개인적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금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현실 속에서 박제된 듯 머물러 있는 자신의 현재가 대비된다. 이를 위해 입체감이 없는 360도 비디오로 그녀의 박제된 현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반면 그녀와 멀린 떨어진 고향 땅은 3D 오브젝트로 표현하여 보다 입체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묘사했다. <Fly To You> 중 관객은 두 물리적 공간, 즉 현실의 강송절 할머니가 있는 남한과 과거의 북쪽 고향 땅을 각각 체험하며 심리적인 거리감과 기억의 거리를 경험하게 된다. 관객은 자유로운 비행을 통해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로움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깨닫게 된다. 아무리 빠르게, 아무리 멀리 날아가더라도 결국 도달하는 것은 또 다른 가상공간일 뿐이다. 이번 작업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현실에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남북의 철책선을 관객이 잠시나마 넘어보는 경험이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VR에서는 NeRF 기술을 통해 그 경계를 건너는 체험을 구현할 수 있었다. 철책선은 360도 카메라로 촬영하고,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공간은 ‘NeRF Studio’의 AI 기술을 통해 재구성했다. 그 결과 관객은 실제로는 닿을 수 없는 강송절의 바람이 꽃잎으로 흩날리며 철책선을 넘어오는 순간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 체험은 ‘너에게 간다’라는 말이 단순히 물리적 경계를 넘는 행위가 아니라, 심리적 그리움의 장벽을 건너는 일이며,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올려야 하는 마음의 길임을 깨닫게 한다. 관객이 허공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때, 역설적으로 VR 헤드셋에 갇혀 있는 자신의 몸을 의식하게 된다. 이러한 이중적 체험이야말로 VR 매체가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미학적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철책선을 넘는 순간 관객은 기존의 스크린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고개를 다양한 방향으로 회전하게 된다. 그 순간 타자와의 연결이 더욱 부각되고 관객은 그리움을 체험하며 주인공이 느낀 심리적 소망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이 역시 순간적이며 역설적이게도 먼지처럼 사라지고 말지만, 그 순간의 경험은 또 다른 마음의 거리를 체험하게 하는 장치로 존재한다. <Fly To You> 중 이 두 작업에서 탐구한 것은 VR이라는 매체에 내재한 ‘거리의 간극’이었다. 물리적으로는 몰입했지만 심리적으로는 멀리 떠 있는 상태, 혹은 그 반대의 순간들. 이러한 간극은 VR의 한계가 아니라 새로운 감정의 가능성이다. 의도적으로 관객의 상호작용을 제한해 역설적으로 자유로워진 VR 공간에서 ‘할 수 없음’이라는 무력감을 드러내고자 했다. 관객은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결국 정해진 위치와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제약 속에서 주인공의 소외와 단절을 공감하게 된다. 영화가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세계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다면, VR은 그 거리를 해체한다. 하지만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형태의 경계가 만들어진다. 관객은 자유롭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몸으로, 그리움과 소외의 거리를 체험한다. VR 연출의 모험은 이 새로운 경계들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현실을 모사하는 대신, VR만의 거리와 리듬을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영화는 언제나 기술과 더불어 진화해왔다. VR 역시 그 연속선 위에 있다. 그러나 이번 변화는 단순히 도구가 바뀌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영화적’이라 불러왔던 모든 것의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한다. 앞으로 더 많은 실험을 통해, VR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고유한 언어를 발견해야 한다. 그 언어는 아마도 ‘거리’를 전혀 새롭게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 [1] 비가 온 뒤 과일 위에 내려앉은 빗방울을 그린 시적 표현으로, 과거 한국문화정책연구원 월간지 《월간 너울》에 뚜라가 게재한 글 「북쪽 섬에서 나를 찾는다」에 나타난다. 송영윤(영화감독) l 이해되지 않는 마음을 붙들며 하루를 살아가는 영상 작업자. 장편 다큐멘터리 <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2019) 공동 연출, VR 영화 < Rain Fruits >(2020), VR 다큐멘터리 <Fly To You>(2024) 연출.
8월부터 12월까지 10회에 거쳐,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씨의 영화 리뷰를 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영화비평과 서평 분야에서도 활발한 글쓰기를 해 온 필자는 기존의 젠더(gender) 개념을 확장, 메타 젠더적 시각에서 새로운 영화 읽기를 시도하고자 합니다. 장르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대상으로 우리 시대 주요 이슈에 대한 필자의 '다른 목소리'를 기대합니다. <소셜네트워크> 너머, < 소셜포비아 > <소셜포비아>는 인터넷 세계를 다룬다. 이 시대에, 인터넷을 ‘진짜’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virtual reality) 혹은 ‘가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가상현실, 즉 ‘그럴듯한, 사실상의, 현실과 다름없는, 실질적으로, 잠재적인 현실’의 의미를 최대한 확장시키고 있다. 이제 가상현실은 ‘假像, 假想, 假相’이라고 해도 모두 말이 된다. 특히, 이 영화처럼 온라인에서 싸웠던 사람들이 실제 오프라인의 상대방을 찾아갔다가 벌어지는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물론, 온라인 베틀과 달리, 여성 한 명 vs 무리의 젊은 남성들의 만남은 온/오프의 평등성을 무너뜨리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이 영화에 대한 몇 가지 ‘선입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현피', '키워', '안구 정화' 등의, 모르는 단어/험악한 표현/줄임말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나 인터넷 유저가 아닌 사람에게는 ‘어려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각본을 쓴 홍석재 감독도 인터넷을 따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체 사용 여부가 곧 매체의 특성을 인식할 수 있는 전제는 아니다. 문제는 찬반 논쟁, 유저인가 아닌가, 인터넷에 우호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도구(매체)는 인간의 조건을 바꾼다.”는 사실,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공유하는 실천이다. 인터넷 환경은 기술적, 담론적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 소셜포비아 > 제작 당시였던 2014년의 용어는 벌써 공용어가 되었고(‘현피’는 국어사전에 등재되었다), '흉자', '태일해', '세월호 어묵'까지 매일 새로운/끔찍한/기발한 용어와 이벤트가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은 접근하기 두려운 고통스러운 언어들이다. 이 영화가 불편한 관객층은 인터넷 용어를 따라잡을 수 없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인터넷 헤비 유저(heavy users)들일 것이다. 아이디(ID)를 몇 개씩 가지고 있으며, 거의 하루 종일 키워드 노동에 전념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모르거나 볼 가능성이 작다. 이 영화가 불편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이들은, 서구를 추격해야 한다는 식민성에 기반한 발전주의자(progressives)이되 어느 정도의 공공성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는 진보 진영(progressives)일지도 모른다(물론, 미션 임파서블이다). 이 영화는 제작하는 인간(호모 파베르),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인간의 특성, 인류의 제작성(자기 몸의 확장성)을 직면하는 작품이다. 때문에 ‘환경 영화’이기도 하다. 체르노빌부터 후쿠시마가 남의 일이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18년 7월 말, 대한민국 서울의 기온은 40도에 육박하고 있다. 무엇인가가 도래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같다. <소셜포비아>는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이 외면하거나 무지한 분야인 매체의 정치경제학과 문화 권력에 관한 뛰어난 작품이다. 아마 바우만이나 프랑코 베라르디, 레오니다스 돈스키스 같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그들이 묘사한 한국 사회를 다시 썼으리라. 그들은 “이 시대의 금융자본주의(신자유주의)의 악마는 이케아와 페이스북”이라고 했는데, 한국 사회 버전은 '다이소, 몰카, SNS' 쯤 되지 않을까. 영화적 완성도도 뛰어나다. 스토리텔링의 짜임새, 화면의 윤리성, 연기, 연출 모두 좋다. 2억 원의 제작비와 102분의 상영 시간으로 신자유주의, 매체 경제학, 변화하는 윤리와 자아, 개인의 개념, 젠더, 대중까지 근대성의 거의 모든 키워드를 연결(arrangement)한다. 그 연결도 매우 흥미롭다. 현피는 ‘현실’의 앞글자인 ‘현’과 ‘Player Kill’의 앞글자인 ‘P’의 합성어로, 웹(web)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 오프라인에서 실제 살인이나 싸움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말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떤 10대 학부모가 내게 한 말인데, 그들은 현피가 정기적으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피 덕분에 학교도 안 가고 친구도 없고 방안에만 처박혀 나오지 않던 아들이, 드디어 집 밖으로 나가 온라인 동료들과 함께 ‘세상으로’ 나갔다는 것이다(이 부모는 “아이가 강원도까지 갔다”며 흥분했다). ‘키워’는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의 줄임말로 컴퓨터 자판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戰士)를 말한다. 이들은 강력한 여론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듣는 사람(오프라인)의 무시’라는 더 큰 ‘권력’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다. 그들의 노동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 '찌라시' 뿐일 수도 있다. 온라인의 물리력이 오프라인에서의 권력으로 계량할 수 있는 인식론이나 방법론은 ‘영원히’ 불가능하므로 온라인의 영향력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1인 매체와 인간의 조건 일본의 젊은 연구자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삼인, 2007)를 썼다. 원제 그대로 『不安型ナショナリズムの時代―日韓中のネット世代が憎みあう本當の理由』, 이 책의 주제는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닥친 실업 문제를 인터넷을 통해 어떻게 자체 해결(도피)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불안형 내셔널리즘 시대’라고 명명한다. 인터넷 한․중․일전(戰). 내 기억이 맞는다면, 세 나라 남성들이 ‘3국 여성 미모 콘테스트’를 열어 인터넷 투표도 진행했다(당시 한국 남성들은 배우 김희선 씨를 국가대표 미인으로 선정했다).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한․중․일 청년들이 각국의 본격적인 글로벌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저항 대신, 자신들을 해고 시킨 바로 그 기술(인터넷)을 사랑한다고 지적한다. 이 도구로 내셔널리즘만 한 것은 없을 것이고, 효과는 막강했다. 결국 자기 사회의 경제적 현실을 은폐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키보드 노동에는 시간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럴 만한 시간이 있는 사람들의 문화다. 게임 중독이나 혐오 발화는 “인간성 타락” 아니라 실업 문제다. 많은 이들이 SNS의 장점이자 단점을 속도와 순간적 영향력이라고 말한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극복하자? 하지만 매체, 미디어는 그 자체가 매시지 즉 정치다. 소위 ‘바람직한 방향’ 혹은 자신과 입장이 비슷할 경우에는 장점을 극대화하고(촛불 시위나 페미니즘의 확산...), 반사회적 현상(몰카, 혐오..)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나 ‘새로운 휴머니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대책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누구도 타인의 도구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더구나 완전히 대중화, 개인 소지품이 된 컴퓨터를?) 또한, 그 어떤 도구도 장단점이 있다. 발명전부터 나쁜 동기를 가진 매체는 없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모두 좋은 뜻이었거나 그런 의도였다고 강변한다(황우석 씨 사태가 좋은 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은 사람들의 고된 노동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기였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문제의 핵심은, 핵이든 콘돔이든 다이너마이트든 SNS이든 이 모든 ‘오브제’들이 인간의 삶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나는 인류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발명품을 꼽으라면 인쇄술, 콘돔, 인터넷이라고 생각한다. 콘돔은 인구 조절과 인류의 반 이상인 여성을 평생 동안의 임신과 육아에서 해방시켰으며, 인쇄술과 인터넷은 인간의 언어와 그에 따른 총체적인 구조 변동(국가의 출현 등)을 가능케 했다. SNS는 혁신적인 매체다. 그만큼 중요하다. 은행 건물도 없는 아프리카의 내전 국가에서 스마트 폰을 가진 몇몇 부자들은 인터넷으로 국제 금융 시장에서 주식 투자를 하고 돈을 번다. 포스트스페이스, 포스트휴먼의 시대다. SNS의 평등주의? 몇 년 전 나는 SNS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어느 ‘명망 있는 남성 지식인’이 내 글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혹평을 했고, 그의 페이스북에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른 사건이 있었다. 지인이,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의 명단을 내게 보내주었는데, 내 친구까지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요지는 “당신(나)은 신문 지면을 갖고 있으므로 매체가 있는 기득권자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SNS가 지면이므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이기적”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SNS는 평등과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사람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바로 1인 매체의 등장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업이 SNS에 글을 쓰는 사람의 ‘인생고(capacity)’와 어느 정도 ‘평가받은’ 단행본을 10권 정도를 낸 사람의 삶은 같지 않다. 그러나 SNS 문화는 후자를 기득권자이자 '골고루 평등'을 위해, 더 이상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간주한다. SNS가 필요한 사람들은 또 있다. SNS에서 자기선전 후 오프라인에서 픽업되어야 하기 ‘때문에’ SNS가 필수적인 사람들이다. 이미 신문 등 기존 매체들은 소위 오피리언 리더들의 페이스북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페이스북을 기사화한다. 취재가 필요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페이스북에 쓴 글을 책으로 묶어내는 일도 심심찮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이러한 현상의 바람직 여부가 아니라 자아실현, 자기 PR 도구로서 SNS의 절대적 유용성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몇 년 이상의 노력과 노동, 비용을 기울인 저작에 대해 '최악', '저질', '친일' 등의 댓글 테러로 그 텍스트들이 평가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그런 힘이 있다면, 디스토피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형태의 ‘자아실현’이 만연한 사회라면 공동체는 무너질 것이다. 이전 시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종이 신문이 인터넷으로, TV보다 유튜브가 대세인 시대에 개인(the person)의 노력과 능력 차이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사회 정의로서 평등이 아니라 추상적 개인(individuals)인 인간은 모두 같다는 ‘하나의 덩어리로서 평등(sameness)’, 즉 전체주의다. 평등은 지구상 70억 명 인구가 모두가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평등은 구조적 불평등에 저항하는 것이지 개인들의 개별적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평등. 이것이 역설적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가 허용되는 이유다. 성별, 인종, 나이에 따른 차별이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차별을 인식하고 사회를 바꾸는 대신 차이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혐’이나 ‘여혐’이나 다 똑같고, 억울하면 너도 혐오 발화를 하라는 식이다.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페미니즘이나 이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이나 모두 같은 페미니즘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페미니즘‘들’이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 온라인에서 ‘차이’ 혹은 위계를 결정하는 요소는 단, 한 가지다. 강한 멘탈. 사회성과 타인, 인간관계를 무시하는 정신 승리, 어떤 공격에도 굴하지 않는 강심장, 거침없는 뻔뻔함, 누가 더 ‘기’가 세고 거짓말을 잘하는가이다. 혐오 발화의 능력도 바로 이 무신경함에 달려 있다.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에 민감한 사람은 ‘루저’가 된다. ‘홍어’나 ‘오뎅’ 같은 슬프리만치 끔찍한 비인간적 발화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찬양하는 극한의 비윤리성에서만 가능하다. < 소셜포비아 >의 채팅 장면과 배우 류준열 의 명연이 돋보이는 카메라의 시선은 이에 대한 감독의 비판 정신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의 시대 SNS가 ‘논쟁’, ‘민주주의’의 장이라고 거짓말하거나 믿거나 착각하는 사람은 마크 주커버그 말고도 많을 것이다. 내 경험(주로, '미투'와 성폭력, 젠더 관련 사안)에서 보면, SNS에서의 대화는 만나서 이야기하면 해결될 문제를 관중을 모셔놓고 마치 검투사처럼 논쟁(?)을 벌임으로써 공연을 하는 듯하다. 대화를 통해 ‘진실’을 밝히기보다 여론전에 주력하는 것이다. 이때 승패는 키보드 속도와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모욕을 줄 수 있는 능력, 꼬투리 잡기, 열 받게 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SNS의 특징은 속도가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1인 미디어라는 데 있다. 이를테면, 한 사람의 ‘인터넷 셀럽’이 때론 국영 방송사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트위터의 경우 어느 유명 지식인의 팔로워가 100만 명에 육박했는데, ‘6대 종합일간지’의 중 모 신문사의 팔로워는 60만 명선이었다. 노조원 만 명이 넘지만 (두 개의 노조가 있어서) 민주노조의 트위터 팔로워는 400명인데, 매스컴 플레이에 익숙한 ‘노조 활동도 하지 않는 스타 노동자’의 팔로워 수는 5만 명이었다. 문제는 이 노동자가 노조의 합의된 공식적 입장을 자신의 SNS 파워를 이용,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거짓 선전을 반복했다는 점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개인의 힘이 극대화된 시대가 존재했던가. 어느 누가 이 무한한 자기 만능 감을 선사하는 이 매체를 포기하겠는가.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 몸이다. 맥루한의 명언, 미디어는 우리 몸의 확장이다(extention of men). 게다가 별다른 규제도 없다. 근거 없는 비난, 혐오 표현, 신상털기 모두 완벽하게 가능하다.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무시해라, 집착 마라”, “탐라(타임 라인)일 뿐이다”, “SNS에 들어가지 말라” 등의 ‘위로’ 혹은 피해자 비난을 들을 뿐이다. SNS의 ‘부작용에 대한 무시’는 해결이 아니다. 홍석재 감독은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을 괴물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말했지만, 이들은 이미 ‘괴물’이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끔찍했던 이가 오프라인에서 지극히 평범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인 사건들을 알고 있다. 문제는 나를 포함, 인간은 모두 그럴 가능성이 있다. 사실 나는 온라인의 피해자도 피해자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용자(가해자)’가 SNS를 통해 자신을 구성하고 사회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 소셜포비아 >는 근대 초기 신분 사회로부터 해방된 자유주의적 개인이 이후 100년이 지나자마자,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의 개인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 통치자로서 개인의 힘은 막강해졌지만, 사회적 자아는 모두 자본에 종속되었다. 각자도생 시대의 개인의 자유는 통치 원리인 ‘힘센(비윤리적인) 개인’의 등장이며, 결국 개인과 공동체 모두를 파괴한다. < 소셜포비아 >의 착목 지점, 글쓰기 1인 매체의 시대. 매체만으로는 완전히 평등하고, 나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고, 어떠한 노력도 필요 없는 시대. 누구나 판관, 감별사, 평론가가 될 수 있는 시대. 그런데, 이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올 때 혹은 두 세계를 병행할 때, < 소셜포비아 >의 여자 주인공 캐릭터가 등장한다. 감독의 영리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대사 그대로,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에고는 강한데, 그에 걸맞은 알맹이는 없는 사람. 타인을 비난하는 데 익숙하지만, 자신은 절대 견딜 수 없는 욕먹음(커멘트)”. 그녀는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 강의를 듣는 학생, 작가 지망생이다. 글쓰기의 정의는 이견이 없다. 글은 ‘자기’ ‘생각’을 ‘표현(재현)’하는 ‘노동’이다. 자신을 아는 일은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법이고, 생각하기는 가장 외로운 작업이다. 글쓰기는 중노동이다. 글쓰기는 두렵고, 어렵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SNS에서의 글쓰기는 자본의 입장에서 너무도 손쉽고 이익이 막대한 돈줄이자 중우(衆愚) 정치다. 키보드 사용자의 노동과 시간은 고스란히 ‘구글’이나 ‘삼성’이 가져가지만,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우리의 영혼을 바친다. 그 대가는? SNS에서의 글쓰기는 매체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자기 홍보, 자기주장, 자기도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기 조작을 넘어 자기 망상으로 진화하는 경우도 숱하다. 나중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어려우며,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어느 축구 감독의 말대로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SNS 헤비 유저라면 ‘지식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SNS에서는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요구받지도 않는다. SNS에서의 자아와 현실에서의 자아는 다르다. 일상적 공간에서도 다른데(예를 들어, 혼자 있을 때와 여러 사람이 같이 있을 때), 관음증과 노출증을 전제로 하는 공간에서 ‘진정한’ 자아 찾기는 불가능하다. <소셜포비아>의 여자 주인공이 타인의 커멘트를 극도로 기피하는 것은 조금도, 부분적으로도(타인에 비친) 자신을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욕망은 포기하지 못해서 온라인으로 도피한다. 만일, 그녀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한 곳에서만 글쓰기에만 매달렸다면,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는 대사를 보자. “한국에 간첩이 몇 명인지 알아? 오만이야. 오만. 그렇게 많은데, 왜 안 잡히는 줄 알아? 자기들끼리 서로 상대가 간첩이라며, 간첩을 잡으러 다니거든.” 이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개인들이 각자 누구인 줄 모르고 좌충우돌하면서, 그라운드 제로에서 서로를 외면한 채 똑같은 제복을 입고 뫼비우스 띠의 선상(線上)을 헤매는 장면에 대한 묘사다. 우리는 자신이 ‘간첩’인 줄 모르는 간첩들이다. 모두 개성을 주장하는 개성 있는 다름(distiction)을 주장하는 개인들이되, 개별적으로 자본에 포섭되어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 모두가 모두의 아바타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쇄물(책)을 소환할 때다. 아, 책도 온라인에서 파는군. 지금으로서는 잠시 SNS을 중단하고 오프라인에서 글쓰기가 유일한 저항처럼 보인다. 너 자신을 알라. 생각을 하라. 죽도록 연습하고 표현하라. 그런 점에서 영화의 백미는 글쓰기 수업 파트다. 소셜 네크워크의 본질을 꿰뚫는 감독의 통찰력과 영화를 만드는 뛰어난 ‘작전 구사력’이 돋보인다.
영화의 여명기, 당시 ‘움직이는 사진’(motion picture)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던 에디슨 사(社)는 자신들이 제작한 단편 필름 작품의 저작권 등록을 위해 프레임 전체를 종이에 프린트해 미의회도서관에 납본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초기 무성영화의 이런 저작권 등록 방식은 실물 프린트를 통해 저작권을 등록하고 돌려받는 식으로 정책이 바뀐 1912년까지 지속되었다. 즉 1912년 이전까지 미국에서 영화는 사진의 형태를 취함으로써만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보면 번잡하기 짝이 없는 이런 저작권 등록 방식 덕분에 당대의 영화 상당수가 보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화재에 취약한 질산염 필름(nitrate film)으로 제작되었던 초기 영화의 상영본과 오리지널 네거티브 대부분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동안, 미의회도서관에 보존되었던 이 ‘종이 프린트’(paper print)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품고 있는 형상들의 그림자를 스크린에 다시 투사할 그날을 망각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에디슨 사에서 제작한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용 단편 <재채기>(1894)의 종이 프린트. 총 45프레임. 저작권 등록(1894년 1월 9일)된 최초의 영화. 1942년, 당시 미의회도서관 저작권관리국 직원이었던 하워드 월스(Howard Walls)는 저작권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던 중 그때까지 방치되어 있던, 1894년부터 1912년 사이에 제작된 3,000여 편의 영화의 종이 프린트 더미들을 발견한다. 월스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의 지원을 얻어 종이 프린트들을 다시 셀룰로이드 필름에 옮기는 프로젝트에 착수했지만, 종이에서 필름으로의 매체 전환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이 프로젝트가 결실을 보게 된 것은 켐프 니버(Kemp Niver)를 통해서였다. 1950년대 초부터 니버를 통해 프로젝트가 다시 활성화된 이후 1965년 즈음에는 종이 프린트 대부분이 16mm 필름 프린트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월스와 니버, 그리고 종이 프린트에 얽힌 이 흥미로운 역사는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빌 모리슨의 아름다운 단편 <그녀의 영화 The Film of Her>(1996)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종이 두루마리에서 되찾은 미국 역사>(1953, 19분) 종이 프린트를 16mm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전환하는 공정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당시 복원된 초기 영화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켐프 니버가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미의회도서관 소장 종이 프린트의 복원 소식에 관심을 가진 이들 가운데는 미국 아방가드르 영화감독 켄 제이콥스도 끼어 있었다. 세인트존스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그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몇 편의 복원 프린트를 대여했다. 이 가운데 한 편의 영화가 특별히 그의 관심을 끌게 된다. 1905년에 빌리 비처(Billy Bitzer)가 촬영하고 연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릴짜리 작품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그것이다. 스콧 맥도널드(Scott Macdonald)와의 인터뷰에서 켄 제이콥스와 그의 부인 플로 제이콥스는 이 작품을 소재로 작업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플로 제이콥스 : 하지만 이 영화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필름들이 저희 집에 배송되어 왔고 그래서 그가 그것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보면서 이래저래 만지작거리곤 했는데 요즘에 신경시스템(Nervous System: 켄 제이콥스가 고안한, 잔상효과를 이용한 환각적 영사 방식)을 가지고 하는 식은 아니었고요, 그보다는 “와! 이거 봐, 내가 이 남자를 뒤로 움직여볼게!” 하는 식이었죠. 켄 제이콥스 : 점점 더, 저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듯 이 필름들을 다루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친구들을 불러 그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해 보였죠. 한 번은 퍼포먼스가 끝났는데, 제 친구인 화가 존 쿠스(John Koos)가 다가왔어요. 전 그때 완전히 기진맥진해져서는 벽에 등을 기대고 영사기 옆에 서서 어질어질한 가운데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물건들을 정리하려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가 말하길 “켄, 이거 끝내주는데! 이건 꼭 촬영해둬야 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려고 생각했어.”라고 대답했죠.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고요. 그가 제 어깨를 꽉 붙들면서 말했죠. “꼭 그렇게 해!”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방가르드 영화사(社)의 기념비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톰, 톰, 피리꾼의 아들(Tom, Tom, the Piper's Son)>(1969~1971)이다. 종종 이 작품은 1905년의 무성영화 필름을 소재로 작업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작품으로 기술되곤 하는데 아주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기술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원본 영화의 필름 복제본이나 디지털 영상클립을 가지고 작업하는 통상적인 파운드 푸티지 작품들과는 달리, 제이콥스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반투명 스크린에 1905년 작 원본 영화를 구식 칼라르트-빅터(Kalart-Victor) 16mm 영사기로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뒤로 그리고 다시 앞으로, 때로는 깜빡이게, 때로는 멈추는 식으로 영사한 것을 16mm 카메라로 스크린 반대편에서 재촬영한 기록물을 토대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은, 에이빈 뢰사크(Eivind Røssaak)가 지적한 대로, “아카이브적인 것과 퍼포먼스적인 것 사이의 인터페이스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윌리엄 호가스의 판화 <사우스워크 장터>(위)와 빌리 비처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의 첫 번째 장면(아래) 제이콥스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작품이다. 이를테면 물성(materiality)에 집중하는 아방가르드 영화의 한 경향에 매혹을 느끼는 이라면, 때론 더 이상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필름의 세부를 확대해 입자(grain)를 감촉하게 하면서 미적 경험을 끌어내는 부분에 흥미를 가질 것이다. 혹은 매체를 가로질러 이루어지는 표현의 역사에 관심을 지닌 이라면,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rgath)의 판화 <사우스워크 장터 Southwark Fair>(1733)에 묘사된 광경이 빌리 비처를 통해 운동감을 얻고, (종이 프린트 형태로 미의회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제이콥스의 손을 통해 다시 떠들썩한 영화적 환영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환각적 경험의 힘은 굉장하다. 원본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형상들을 멈추고, 확대하고, 깜빡이게 하는 영화적 안무의 광경을 지켜보는 동안 관람자는 일시적으로나마 다른 우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제이콥스의 영화가 도취의 경험에만 탐닉하면서 원본 영화를 무정형적인 시각적 덩어리로 재가공하고 있느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몇몇 평자들이 지적한 대로 제이콥스의 작품은 일종의 “세미나 같은”(뢰사크) 분석적 구조 — 원본 영화 전체를 보여주고, 이어 제이콥스 자신에 의해 꼼꼼히 탐사되고 변주된 영화를 보여주고, 다시 원본 영화를 보여준 후에 짧은 에필로그로 마치는 방식 — 를 취하고 있다.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의 전체적 구조에 실제로 자신이 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방식이 반영되어 있음은 제이콥스 스스로도 인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니콜 브레네즈(Nicole Brenez)와 같은 평론가는 언어에 기반을 둔 종래의 이론적 연구를 확장시키는 ‘시각적 연구’(visual study)의 탁월한 사례로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을 꼽기도 한다. 브레네즈에 따르면 제이콥스는 “기술적 선도라는 면에 있어서나 텍스트적이고 영화적인 표명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론의 창조자”이다. 하지만 결국 <톰, 톰, 피리꾼의 아들>에 대해 가장 근사한 설명을 내놓은 것은 제이콥스 자신이다. “예술은 타격을 가해 당신을 수백만 조각으로 토막을 내고는 다음 타격을 위해 결합시킨다. 작품에는 질서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질서는 정신없는 경험을 자극하기 위한 방안(recipe)일 뿐이다.” 한편으론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여기서 제이콥스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 필름을 조작하면서 내뱉은 “와!”, 혹은 그의 16mm 퍼포먼스를 본 친구 존 쿠스가 내뱉은 “끝내주는데!” 같은 감탄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시공간의 특이성 자체를 영화화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즉 여기서 제이콥스는 퍼포먼스라고 하는, 일시성과 현장성(actuality)에 속박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사건 자체의 경험을 영화적 장치로 포착하고 재구성한다는 대담한 모험에 뛰어든 것이다. 3D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이 본격적으로 우리의 경험을 재구조화하기 이전에 시도된, 전통적 시네마토그래프 장치를 통한 ‘경험의 복제’라는 실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영화사(史)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희유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서 제이콥스의 야심은 카메라 앞에 놓인 사물, 인물, 혹은 사건과 같은 현실을 복제하고 이를 재구성함으로써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익숙한 영화관(觀)을 이미 훌쩍 넘어서 있다.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퍼포먼스는 그것을 단순히 카메라에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경험의 질감과 양감을 상실한 건조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예컨대 무대극을 현장에서 기록한 영상물들은 어쩐지 생기 없는 인형놀이와 같은 느낌을 준다.)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제이콥스가 1905년 작 원본 영화로 16mm 퍼포먼스를 행하고 있는 광경이나 그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동안 반투명스크린에 비친 영상을 단순히 기록한 것이 아니다. 이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동안 스크린에 비친 영상은 삼각대를 장착한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크기로 촬영되었고 이후 이 촬영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교하게 편집되었다. (반면 오늘날 신경시스템을 이용한 제이콥스의 퍼포먼스는 스크린에 비친 시각적 형상들을 고정된 카메라로 장시간 촬영해 편집 없이 상영용 디지털 버전으로 제공되곤 한다.) 이따금 제이콥스는 어둠 속 한가운데 조그맣게 빛나는 스크린을 보여주거나, 필름이 되감기는 광경을 보여주거나, 영사 중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그림자놀이를 하는 광경을 삽입함으로써, <톰, 톰, 피리꾼의 아들>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원본 영화 자체가 아니라 스크린에 비추어 재촬영한 영화의 표면임을 꽤 직접적으로 환기시키기도 한다. (아래 그림 참조) 1905년 원본 영화의 프레임 일부가 확대되어 보이다가(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빛나는 스크린 전체가 보인다(우) 필름이 되감기는 광경 스크린 왼쪽에 영사 도중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보인다 제이콥스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경험의 복제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그에 걸맞은 상영 환경을 영화적 장치로서 요구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이 영화는 통상적인 영화관 환경보다는 (제이콥스가 1905년 원본 영화를 가지고 그의 16mm 퍼포먼스를 행한 환경과 유사하게) 영사기가 영사실이 아닌 객석 가운데 자리한 상태에서 주기적으로 모터 소리를 공간에 퍼뜨려가며 스크린에 이미지를 투사할 때 비로소 과거의 퍼포먼스라는 사건 자체를 현재적 경험으로 되살려 놓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에서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필름으로 처음 상영된 것은 2016년 10월 16일 문래예술공장에서였는데 —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을 주관하는 무빙이미지 포럼이 마련한 『영화에 관한 3개의 강연과 노트』 행사의 일환으로 —이때 상영환경 또한 바로 그러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상영될 때,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어느 순간 그것의 영사를 감싸고 있는 공간을 기묘하게 유령적인 활력으로 물들인다. 과거의 퍼포먼스라는 사건 자체가 지극히 감각적으로 현전하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곧 부서질 것 같은 환영적인 느낌으로만 그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강의를 들을 때 으레 그러하듯) 때론 졸음을 부르기도 하는 나른한 긴장 속에 임하면서, 유령화된 공간 저편에서 빛나는 스크린으로부터 문득 생생한 유령들이 튀어나와 춤추는 것을 목도할 때, 그 춤이 절대적으로 지금/이곳(now/here)에서 펼쳐지는 어디에도 없는(nowhere) 춤이라는 것을 감히 부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본문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켄 제이콥스의 작업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옥스퍼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선집 『Optic Antics: The Cinema of Ken Jacobs』(2011)를 참고하면 좋다. 본문에서 인용한 에이빈 뢰사크의 글 「Acts of Delay: The Play Between Stillness and Motion in Tom, Tom, The Piper's Son」과 니콜 브레네즈의 글 「Recycling, Visual Study, Expanded Theory: Ken Jacobs, Theorist, or the Long Song of the Sons」 또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서 인용한 인터뷰는 캘리포니아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스콧 맥도널드의 『A Critical Cinema 3: Interviews with Independent Filmmakers』(1998)에 수록되어 있다. 제이콥스의 영화세계 전반과 신경시스템 혹은 신경환등기(Nervous Magic Lantern)의 원리에 대한 개괄적인 안내를 얻고 싶다면 『씨네 21』에 실린 중앙대학교 김지훈 교수의 글 「 무한과 역설의 영화 」를 참고하길 바란다. 신경시스템의 원리를 활용한 제이콥스의 장편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는 <로렐과 하디가 등장하는 시각적 익살광대극: 안녕, 몰리 Optic Antics Starring Laurel and Hardy: Bye, Molly>(2005)인데 이 또한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켄 제이콥스의 아들인 에이저젤 제이콥스(Azazel Jacobs)는 촉망받는 독립영화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그의 <마마스 맨 Momma's Man>(2008)에는 켄과 플로 제이콥스 부부가 주인공의 부모 역으로 출연해 거의 그들 자신을 연기하다시피 한다. 1965년 이후 이들이 거주해 왔던 뉴욕 맨해튼 아파트(꼭대기 층)가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