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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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영화감독의 투신자살 시퀀스로 담긴 충격적인 영화가 있다. 심지어 연기한 사람은 해당 영화의 감독( 이장호 ) 본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들이 웃통을 벗어 던지고 국회의사당에서 기괴한 춤을 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바로 1984년 개봉작, 영화 < 바보선언 >의 도입부와 결말이다. 개봉 연도를 보면 금세 눈치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제5공화국 전두환 독재 정권의 악행이 가장 극에 치달을 때 제작되고 개봉된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한 비평을 검색해 보면, 이 영화는 서슬 퍼런 정부의 검열을 피하여 어떻게든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자포자기한 상태(김동원, 2008)’에서 만들어진 괴작이자 걸작이라는 평이 대다수이다. 검열을 피하고자 극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행으로 채워놓고, 촬영조차도 기행 그 자체였던 사실 덕분에 역설적으로 1980년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초현대적인 함의와 시사점을 주는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신군부 검열 당국이 풍자와 해학에 조예가 깊었거나, 혹은 영화를 보는 눈(교양)을 더욱 갖췄더라면 이 영화 또한 가위질을 당했을 수 있었겠으나 천만다행으로 그러지 못했던 듯 하다. 덕분에 우리는 1980년대 초반 서울을 중심으로, 비인간적인 현대사회(혹은 정치 환경)에서 소외당한 이들이 거니는 한국의 도시공간을 ‘괴상한 시각’으로 2024년 지금 이 시점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어떤 공간이 어떤 시각으로 담겨져 있는지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하월곡동 빈민가 영화의 인트로는 주인공인 동칠( 김명곤 )이 하월곡동 빈민촌 주거지를 걸어 내려오는 시퀀스로부터 시작된다. 수 초 동안 마을 주민들이 마치 축제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노는 모습을 카메라는 잠시 비추는데, 이 영화에서 ‘인간적인 도시공동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사실상 마지막 장면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다리가 불편한 동칠이지만, 수많은 자동차가 오고가는 큰길에는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에 육교를 지나가야만 한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 지역들에서는 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영화 속에 담긴 야트막한 서민 주거지의 모습은 머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지도 모른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하월곡동 빈민가.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하월곡동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한데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일지도 모른다. 명동과 을지로입구 아마 동칠은 영화 속에서도 잠시 비춰진 8번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일까, 다음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명동과 을지로입구 일대를 비춘다. 깔끔하게 정리된 길가, 산뜻한 중형차(현대 그라나다), 고동빛깔의 미도파 백화점과 갓 개업한 롯데백화점 본점과 누가 봐도 썩 세련되지 못한 모습의 동칠은 내내 부조화를 이룬다. 카메라가 미도파와 롯데백화점을 올려다보는 씬은 영화 < 오발탄 >(유현목, 1961)에서 주인공 철호( 김진규 )가 이 부근을 걷는 씬을 연상케한다. 촬영 각도와 흑백·컬러 여부가 다르긴 하지만, 소외되었거나 불쌍한 시민과 화려한 서울 속 백화점 간의 대비만한 극적인 표현 수단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끊임없는 자동차의 행렬과 미도파 백화점(좌측), 롯데백화점 명동본점(우측)이 추레한 차림의 동칠 뒤편을 장식한다. 당대 최고급 승용차였던 현대 그라나다와, 명동 거리를 정처없이 누비는 동칠의 조우. 이대 앞과 신촌 이윽고 동칠은 청계5가 부근의 어느 빌딩에서 투신한 의문의 영화감독의 옷가지와 장신구 등을 탈취한다. 카메라는 빌딩의 옥상에서 청계고가도로와 그 인근 평화시장을 훑다가, 이화여대 정문 앞 번화가를 타임랩스로 추적한다. 장장 1분 동안 이어지는 이 시퀀스는 4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감탄을 절로 자아낼 정도로 지극히 현대적이다. 일부러 간판과 옷차림과 자동차만을 옛날 것을 가져다가 요즘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1983년의 이대 앞은 40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건너뛰어 2024년 시청자의 눈동자에 내리꽂힌다. 나아가 이대 앞의 상권은 육교에서 동칠이 한눈에 반한 ‘가짜 여대생’ 혜영( 이보희 )이 도시적인 소비를 마음껏 누리는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부족함 없이 해낸다. 실은 매춘부이지만 그림 같은 대학생의 생활을 동경하는 혜영과, 그 뒤를 쫓는 동칠, 그리고 이 둘을 포착하는 카메라를 통해 우리는 1983년의 대학가 상권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된다. 번화하기 그지 없는 이화여대 정문 앞의 풍경. 지금도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대 앞 골목을 누비는 여대생들과 차량의 행렬. 4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로 이 씬을 재현하면 어떨까. 이런 혜영을 어떻게든 납치하고자 하는 동칠은 우연히 마주친 자동차 정비공인 육덕( 이희성 )의 택시에 올라타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포니 택시가 이대 앞과 신촌 기차역 앞을 위험천만하게 종횡무진하며 사실상 카 체이스와 비슷한 활약을 펼치는 점도 볼 만한 부분이다. 16분 언저리에 누가봐도 교통 통제라곤 없이 이대 정문으로 포니 택시가 돌진하는 씬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거 무슨 짓인가?” 싶을 정도로 제법 긴박한 느낌을 준다. 이대 정문으로 돌진하는 육덕의 택시. 깜짝 놀란 학생들과 달려나온 경비원의 모습이 뚜렷하게 담겼다. 청량리역 앞 광장 40분부터 45분까지 장장 5분 동안, 이번에는 청량리역 앞 광장에서의 시퀀스가 이어진다. 이대 앞 시퀀스가 그랬듯이, 제법 멀리서 망원렌즈로 인파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주인공들을 담아내는 데에 여념이 없다. 어떻게든 ‘장사’를 하려고 남자에게 접근하는 혜영,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고군분투하는 동칠과 육덕의 씬이 교차되는 와중에,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인파의 모습은 한 편의 역전 광장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화 속 모습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지금은 화려하기 그지 없는 롯데백화점과 코앞에 들어선 200미터급 초고층 주상복합, 현대적인 버스 승강장으로 인해 이 시절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당시에 갓 등장했던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롯데리아의 광고, 청량리역 맞은편의 미주아파트와 그 상가건물의 모습만이 40년 전과 지금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망원으로 담아낸 청량리역 앞 광장 씬. '장사' 대상을 물색하는 화면 정가운데의 혜영 너머로 지하철 출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당시의 고급 유행 식품이었던 롯데리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육덕과 동칠의 뒷모습. 태안군 연포해수욕장 동칠과 육덕, 그리고 혜영은 매춘부의 거주지에서 도망쳐 나와 충남 태안군의 연포해수욕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아마도 이 셋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사이 좋게 버스를 타고 태안으로 향했을 것이다. 54분경, 즐겁게 뛰노는 세 사람의 머리 위로 큼지막하게 비춰지는 ‘연포해변무대’라는 여섯 글자는 이 곳을 찾지 않았던 이라 할지라도 단박에 촬영장소를 캐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지금도 야외 무대는 리뉴얼을 거쳐서 그대로 존속하고 있으며, 부근에는 이 영화의 촬영 기념비까지 세워져 있다고 하니, <바보선언>의 ‘성지순례’ 코스로서 안성맞춤아라 할 수 있겠다. 연포해수욕장의 야외무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세 사람.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혜영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후, 동칠과 육덕은 대관령의 목장에서 그들의 방법으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장례’ 의식을 치러준다. 그리고 이 둘은 비가 쏟아지는 국회의사당 앞, 여의도 광장에서 또다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막판에 이르러서는 웃통까지 벗어 던진다. 이대 앞과 청량리역 앞 광장에서 그랬듯이, 이 장면도 사전에 촬영 허가 없이 기습적으로 찍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런 장면을 찍겠다고 사전에 촬영 허가를 낸다고 해서, 수리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할 것이다. 이 시퀀스는 사전 지식 없이 보더라도, 동칠과 육덕이 작중에서 겪어 온 부조리함과 그에 기인한 울분을 국회의사당으로 대표되는 ‘국가’를 향해서 남김없이 토해내는 의미로 단박에 이해될 수 있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의 제11대 국회에는 야당다운 야당이라곤 일절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두환이 속한 여당 민주정의당과, 국가가 개입한 ‘관제 야당’만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만큼 이 시퀀스는 더더욱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군사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하던 제11대 '괴뢰 국회' 앞에서 반라의 광기를 보여주는 동칠과 육덕의 뒷모습. 이상으로 꼭 40년 전에 개봉한 영화, <바보선언>의 주요 공간을 짧게나마 돌아보았다. <바보선언>은 감독 스스로가 평했듯이 제대로 ‘각을 잡고’ 찍은 것이 아니라 군부독재와 검열이라는 사회적 한계를 어떻게든 비집고 들면서 제작된 덕분에, 당대의 공간적 배경이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꾸밈없이 담겨진 영화가 되었다. 40년 전과 비교하여 물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도시 곳곳이 말끔하게 새단장을 거친 지금이지만, 영자원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 에 올라온 이 영화의 덧글란에 ‘걸작’이라는 상찬이 계속해서 달리는 것은 분명 이 영화가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는 뜻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동원, “ 사전검열이 만들어낸 명작 <바보선언>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2008. 9. 2. 김성욱, “ [한국영화걸작선]바보선언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홈페이지, 2012. 11. 28.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저항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우리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엄청난 수의 영화들을 소비하며 살고 있었다. 그 정점은 2019년이었다. 2019년 한국 영화 및 해외영화 제작/수입 편수는 총 2,207편, 이 중 1,740편이 개봉했고, 다시 이 중에서 647편이 실제 극장에 걸렸다. 대략 하루에 5편의 영화가 어떤 식으로든 새롭게 공개되고 매일 1.8편의 영화가 실제로 극장에서 개봉한 셈이다. 여기에 프리미어 상영 원칙을 가지고 있는 국고 지원 7대 국제영화제에서 2019년 한 해 동안 상영한 영화는 장편, 단편 합쳐 총 1,432편. 이외의 상당수의 작은 영화제들과 다양한 상영회들도 프리미어 영화나 국내 미개봉작들을 상영하곤 하니 이런 식으로 공개된 새로운 영화까지 다 합하면 이미 셀 수 없을 지경이다. 더구나 넷플릭스, 와챠 등의 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오리지널 영화들과 독점 공개작까지 더하면 우리는 이미 평생을 봐도 다 볼 수 없는 영화 더미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올해 2월부터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는 영화산업과 극장, 극장과 관객이 만나는 길목을 틀어막고 누구도 쉽게 오갈 수 없게 만들었다. 관객은 극장에 가는 걸 꺼리고, 관객이 없으니 개봉하지 못하는 영화들이 점점 많아지고, 개봉 영화가 없어서 관객이 극장을 찾질 않은 악순환은 수개월째 반복되고 있다. 영화제 역시 대부분 축소 또는 온라인으로 운영되면서 상영작 수도, 참여 관객 수도 확연히 줄었다. 산업 구석구석에 이익을 분배하며 순환하던 영화산업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고, 겨울과 함께 3번째 대유행이 시작되자 산업은 거의 멈출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고통 섞인 신음소리는 더 커졌다. 그러나 IT 기술과 자본을 기반으로 전통의 극장산업과 경쟁하던 OTT 플랫폼만은 이 와중에도 홀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순환이 멈추고 산업과 극장이 위험에 처하자 사람들은 갑자기 그동안 별로 상상해본 적 없었던 극장의 죽음에 대해, 극장과 영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그리고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가 영화산업과 영화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지금은 명백히 극장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산업의 위기다. 그러나 지금이 영화의 위기인가? 지난 10년간 영화산업은 일정한 틀에 맞춘 비슷비슷한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었고, 극장은 모든 영화를 똑같이 대한 적이 없었다. 독립예술영화는 스스로 순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영화계 전반에 걸친 불평등의 문제는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최근 몇 년간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2월 이후 코로나19로 초토화되어버린 극장을 지킨 태반의 영화는 산업과 자본이 만든 상업 영화들이 아니라 극장이 평소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립예술영화들이었다. 코로나19가 촉발시킨 산업의 위기는 손해 보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산업이 자초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다시 떠오른 질문. 지금이 영화의 위기인가? 다큐멘터리 전문 계간 웹진 <DOCKING>의 2020년 겨울호에는 지난 11월 6일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의 영화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를 기억하는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씨의 글이 실렸다. (http://www.dockingmagazine.com/contents/21/177/) 이 글의 일부를 공유한다. 1970년 글라우버 로샤, 장 마리 스트라우브, 미클로스 얀초, 사이먼 하르톡이 로마에서 만나 정치 영화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하르톡은 로셀리니가 '영화는 죽었다'는 말에 동의하는지를 물었고, 장 마리 스트라우브는 이렇게 대답한다. “산업이 사라지면 영화가 시작됩니다.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2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겁니다.” 이어지는 글라우버 로샤의 대답: “내 생각에 위험한 것은 바로 산업의 원리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생산과 소비의 시스템에 의존하는 유일한 예술 활동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들기 때문에, 시나 소설을 인쇄하기 위해 편집자가 필요하더라도, 반면에, 각본은 출판될 수 없기 때문에, 회전하지 않으면 시장 가치가 없습니다. 오늘날 영화제작자가 겪는 어려움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1970년 혈기 넘치던 최고의 청년 감독들이 통찰한 영화와 영화산업 사이의 모순은 20년 하고도 30년을 더 기다렸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코로나19는 지금 영화산업이 처한 위기의 결정적 요인이 분명하지만, 근본적인 요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누군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 상업 영화 만이 살아남지 않겠냐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1895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후 지난 125년간 끊임없이 위기를 겪어왔다. 그 위기는 대부분 신기술과 자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지만 창작자들은 매번 실패를 반복하며 그 위기를 극복했다. 지금의 이 위기 역시 누군가에겐 절망의 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시간일 것이다. 산업의 지형도가 달라질 순 있겠지만 영악한 지금의 산업이 쉽게 폐허가 될 리 없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영화든 예외 없이 산업일 뿐 아니라 창작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떤 영화는 폐허 속에 묻히겠지만, 어떤 영화는 살아남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위기라고 생각하는 지금, 우리는 산업이 아니라 창작자들을 지켜내는 데에 더 집중해야 한다. 올해의 사사로운 리스트에는 일 년 내내 머리 속에 가득했던 이런 생각들과 함께 골라낸 영화들을 담았다. < 공포분자 >(1986),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020), < 라이트 하우스 >(2019), < 바쿠라우 >(2019), < 분화구의 두 사람 >(2019), < 애틀란틱스 >(2019), < 언컷 젬스 >(2019), < 트랜짓 >(2018), < 퍼스트 카우 >(2019), < 휴가 >(2020).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영화들의 리스트이며, 산업의 징후 같은 영화이거나 산업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이거나 산업 같은 거 없어도 얼마든지 생명력을 이어갈 영화의 이름들이다. 리스트를 만들다가 다른 분들이 소개하지 않을 것 같아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어진 영화가 두 편 있었다. 첫 영화는 아라이 하루히코의 <분화구의 두 사람>. 이상한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인간의 육체와 사랑을 말랑말랑하고 끈적이게 담아내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묘하게 자유로웠고, 기묘하게 공허했으며, 기묘하게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언젠가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할 기회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또 하나의 영화는 클레버 멘도사 필루와 줄리아노 도르넬레스가 공동으로 연출한 브라질 영화 <바쿠라우 Bacurau>다. 이 기묘한 영화에 처음 관심이 갔던 건 클레버 감독이 연출한 두 편의 전작 < 네이버링 사운즈 >(2012)와 < 아쿠아리우스 >(2016) 때문이었다. 사실 <바쿠라우>는 클레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이자, 줄리아노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영화적 동료로서의 두 감독의 관계(줄리아노는 클레버 감독의 전작들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은 전담했다)와 클레버 감독의 전작들과 연결되는 영화의 세계관을 고려하면 <바쿠라우>는 실질적으론 클레버 감독의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영화는 내 예상과 달랐지만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진 건, 피칠갑을 한 이 영화가 지난 몇 년간 봤던 몇몇 중요한 장르 영화에서 발견한 징후와도 같은 특징-가장 파괴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장르 영화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쿠라우>는 <기생충>이 작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레 미제라블>과 함께 공동으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브라질의 정치적 이슈 때문에 칸영화제 기간 꽤 화제가 되었고,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결국 큰 상을 받았기 때문에 <기생충>과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작년과 올해 훨씬 더 화제를 되었을 영화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올해의 베스트 영화 리스트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요즘, <바쿠라우>는 각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회자되고 있다. <바쿠라우>를 연출한 클레버 멘돈사 필루는 최근 10년간 등장한 남미 출신의 가장 주목할만한 감독 리스트를 만들 때 가장 위쪽에 놓을 수 있는 몇 개의 이름 중 하나다. 남미 출신 감독으로는 2016년 이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두 번이나. 1968년생. 올해로 53세다. 20대 중반부터 단편 작업을 하며 영화평론가와 영화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의 모든 장편영화의 오프닝에서 볼 수 있는 CinemaScopio는 자신의 제작사 이름이지만 평론가 시절 만든 자신의 홈페이지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45세가 되던 2012년, 첫 장편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를 연출했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 영화는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후에 완성한 두 번째 장편영화 <아쿠아리우스>는 2016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직행했다.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였지만 수상의 기쁨을 누리진 못했다. 그러나 2016년 전 세계 거의 모든 베스트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정식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지 4년 만에 전 세계 영화계와 평단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다시 3년 후 세 번째 장편영화 <바쿠라우>를 완성했고, 다시 한번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받았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바쿠라우’는 브라질의 오지에 있는 가상의 지명이자 마을의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다양한 인종, 연령, 성향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이 공동체를 이끌던 고령의 흑인 여성 리더 카르멜리타가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은 함께 장례식을 치른다. 식이 끝나자 마을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지역 정치인의 무능으로 진작에 수도가 끊긴 바쿠라우에 물을 나르던 물탱크 트럭이 총격을 받고, 통신 장애가 발생하고, 인터넷 지도에서 바쿠라우가 사라지더니, 느닷없이 낯선 외지인들과 함께 원반 형태의 드론이 목격된다. 이 모든 일은 지역 정치인의 사주를 받고 중무장한 미스터리한 백인 일당이 저지른 일이다. 이들은 마치 사파리에 가서 돈을 주고 사냥을 즐기는 관광객처럼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이 사냥의 대상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선발대를 보내 마을을 살펴본 이들은 별 죄책감 없이 게임을 즐기듯 바쿠라우를 습격하여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려 한다. 위기를 감지한 바쿠라우 주민들은 도망자인 트랜스젠더 룽가를 중심으로 함께 힘을 모아 외부에서 온 잔인한 이방인들을 처단하고 결국 삶의 터전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사실 ‘바쿠라우’는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17세기 브라질, 농장에서 도주한 노예(시마론 Cimarron)들이 건설한 공동체 마을 ‘낄롱부 Quilombo’를 연상시킨다. 낄롱부를 건설한 시마론들은 생존을 위해 외부와 단절하고, 내부를 결속시켰다. 때때로 노예들의 도주를 돕거나 농장을 습격하기도 했다. 현재 브라질에는 2천 개가 넘는 낄롱부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영화 속의 ‘바쿠라우’는 ‘리믹스된 낄롱부 remixed quilombo’라고 할 수 있다. ‘바쿠라우’가 낄롱부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된 공간이라는 건 주민들이 밤에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며 브라질의 전통 무예인 카포에이라를 추는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백인, 원주민, 흑인, 트랜스젠더 등으로 이루어진 주민들은 이 의식을 통해 저항의 역사를 공유하고 새로운 싸움을 준비한다. 그렇게 ‘바쿠라우’는 가난하지만 존엄한 공동체, 저항의 역사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클레버 감독은 이 장면에서 <더 워드>(2010) 이후 음악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존 카펜터의 인더스트리얼 뮤직 ‘Night’를 그대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 음악의 뮤직비디오에서 백인 일당의 시각적 이미지를 차용한다. 공포 영화의 거장에 대한 이같은 오마주는 이 영화가 어떤 장르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바쿠라우>는 마치 민족지 영화처럼 가상의 역사적 공동체가 놓인 지리적 환경과 주민들의 일상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의 1/3지점부터 장르 영화의 조짐을 보이더니 중반에 접어들면서 SF, 스릴러, 호러, 웨스턴 등 온갖 장르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스파게티 웨스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적 배경(선인장, 말, 총, 인종차별적 악당) 속에서 마지막까지 긴장과 힘을 유지하며 정부의 무능과 부패, 식민주의의 모순 같은 정치적 주제까지 그 세계를 점차 확장해 나간다. 점점 피범벅으로 변해가는 이 영화에서, 잔혹한 폭력은 약자의 생존과 권리가 위협받을 때 권력과 힘에 저항하여 공동체를 지켜내는 필수 도구로 묘사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장르 영화는 기본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고, 평론가 출신의 클레버 감독은 이런 장르의 관습과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종종 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디스토피아적 웨스턴’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유사한 장르 영화나 타란티노의 몇몇 영화들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그러나 <바쿠라우>는 물론 장르적 쾌감으로 가득한 장르 영화지만 오히려 장르의 전통과 관습을 최대한 활용하여 완성한 강력한 정치 영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영화는 부조리한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2019년 브라질의 남동부 리우데자네이루의 주지사는 범죄자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무장 요원과 스나이퍼들을 시내 빈민가에 은밀하게 배치하여 비판을 받았다. 2018년 10월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된,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자이루 보우소나루는 경찰이 더 많은 범죄자를 사살해야 한다면서 범죄자들을 재판 회부보다는 약식 처형(총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시민들의 숫자는 2019년 한해에만 하루 평균 5명, 총 1,810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쿠라우>가 담으려고 하는 건 동시대 브라질의 이러한 현실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면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시점을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로 설정하여 ‘영화 속 현실이 곧 다가올 실제 현실과 별다를 게 없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아내는가 하면, 무능하고 부패한 지역 정치인 토니 주니어와 그의 사주를 받은 잔인한 백인 그룹을 통해 브라질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잔혹한 복수극으로 영화를 끝낸 다음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검은 화면 위로 3줄로 된 자막이 뜨는데,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이 영화는 800개 이상의 일자리와 함께 국가와 문화, 산업의 정체성을 직간접적으로 창출했습니다.” 과거 국책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 낯선 문구는 건조하고 단정하게 씌여있지만 칸영화제가 개최되기 약 4개월 전에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한 연설에 대한 감독의 답변이자 풍자이며 냉소의 표현이다. 그렇다고 <바쿠라우>가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프로파간다식의 정치영화는 아니다. 클레버와 줄리아노의 방식은 훨씬 정교하고 유희적이며 영화적이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축된 영화적 서사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장치를 통해 정치적 의미를 창조해낸다. 특히 클레버 감독은 과거의 시간이 축적되고 압축된 공간을 영화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데 능하다. 장편 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는 감독의 고향인 헤시피의 한 중산층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동네 건물의 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 프란치스코와 그의 조카 주앙을 중심에 두고 동네의 안전을 위해 사설 경비 업체가 들어오면서 생기는 마을의 미세한 변화를 담는다. 이 영화에서 쇠창살과 철제 대문, 감시 카메라와 사설 경비원 같은 현대적 안전장치들로 대표되는 기술적 모더니티는 이웃의 접근을 차단하고 중산층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 동네는 피로 물든 식민주의 역사의 산물이다. 폐허가 되어버린 과거의 공간, 피로 물든 폭포 속에 선 지주의 후예인 주앙의 모습, 그리고 역사적 피해자의 후손과 지주와의 직접 대면하는 장면은 감독이 담아내고 싶었던 정치적 의미를 극적으로 창조해낸다. <아쿠아리우스>의 핵심 공간인 주인공의 오래된 빌라도 마찬가지다. 음악 평론가 클라라는 지속적인 철거의 위협 속에서도 과거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집을 자본가에게 내주지 않기 위해 싸운다. 문화와 역사의 아이콘인 클라라의 고집과 싸움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역사를 지키려는 저항과 투쟁의 몸짓인 셈이다. 영화는 유려하게 과거와 현재, 클라라의 집과 외부를 오가며 이 모든 걸 담아낸다. 클레버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영화의 핵심이 되는 공간의 실제 과거 사진을 활용하여 자신의 영화적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네이버링 사운즈>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헤시피의 옛 지명 페르남부쿠에 살았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을 연달아 보여주는 시퀀스로 시작하고, <아쿠아리우스>는 오버헤드숏으로 찍힌 해변 도시 헤시피의 과거의 모습 - 보아비아젱 해변의 모습과 오래된 차들로 가득한 길게 뻗은 거리, 거대한 고층 건물이 슬럼가를 대체하는 부감 쇼트의 흑백사진들을 연달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바쿠라우>에서는 마을의 작은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과거 사진들과 리더 카르멜리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준다. 특히 <바쿠라우>는 공간의 지리적인 면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우주의 인공위성에서 남미, 브라질, 바쿠라우로 하강하며 좁혀들어오는 오프닝숏은 로컬리티가 고스란히 담긴 공동체를 세계의 중심, 서사의 중심에 놓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네이버링 사운즈>에서 시작되어 <아쿠아리우스>를 경유한 다음 <바쿠라우>로 수렴된 클레버 멘돈사 필루와 줄리아노 도르넬레스의 세계는 시간이 축적된 영화적 공간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과 함께 역사를 소환한 다음, 강력한 저항을 촉구한다. 이 세계는 영화적 전통과 관습, 현실의 로컬리티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정교하게 뒤섞여 있으며,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기존 부조리한 질서에 대한 저항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 세계는 1970년 브라질의 선배 감독 글라우버 로샤가 가졌던 영화산업의 모순과 산업 논리가 가진 위험성, 이를 극복해야 하는 영화제작자의 숙명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으며, 코로나 시대가 영화산업과 영화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그 맥이 닿아있다. 저항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으면 세상은 어떤 답변도 알아서 내놓지 않는다. 따라서 장르 영화의 전통 속에서 저항과 투쟁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을 담아낸 <바쿠라우>는 다시 한번, ‘저항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선언과도 같은 이 문장이 명제가 아니라 믿음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삶은 그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만희 감독의 < 마의 계단 >에서 ‘계단’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제목 때문은 아니다. 이만희 영화의 전작을 살펴보고 싶은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영화와 관련한 몇 편의 글을 읽으면서 이상한 일이지만 계단이 중요하게 논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단에 대해 말하는 것을 피한다는 인상도 들었다. 어떤 이는 동시대 김기영 의 < 하녀 >에 비해 계단이 이야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일단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계단이 이야기에 결정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에 결정적이지 않아도 계단은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풍경과 장소가 그러하듯, 건축(물) 또한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중요하게 작동한다. <하녀>에서처럼 계단을 상징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하녀>의 계단이 상징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반대로 나는 김기영의 영화에서 계단이 지극히 물질적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마의 계단>에서 건물 안팎의 계단이 상승과 추락이라는 주제로 활용된다는 의견에 반대 입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계단이 주인공 현광호( 김진규 )의 계층 상승의 욕망을 대변하며, 결국 계단에서의 추락이 신분상승에의 열망이 실현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이런 주장이 계단을 이야기와 관련해서만 부각시킨다는 점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계단이 이야기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있다거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적 체험에 대한 이야기로 끌어오자면, 영화를 보는 나의 경험이 그렇다. 이야기와 무관해 보이는 대상에의 끌림이야말로 영화체험의 기이한 매력이다. 따라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계단의 중요성이다. < 마의 계단 >에는 확실히 계단이 있다. 카메라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계단을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 아직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은 크레딧 시퀀스에서 우리는 영화의 주요공간인 병원 내부와 외부의 계단을 보게 된다. 영화의 결정적 사건, 즉 세 번의 추락이라는 돌발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계단에서다. 계단은 영화에서 자명하게 존재한다. 이런 즉물성이야말로 <마의 계단>에서 계단이 지닌 일차적 힘이다. 계단이 거기에 있고 영화는 그것을 담아낸다. 물론, 이 영화가 철저하게 세트에서 촬영됐다는 점을 미리 말해야만 하겠다. 서정민 촬영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의 주요 건축물들, 즉 병원과 저수지 등은 모두 한남동, 유엔 빌리지 근처의 공터에 만들어진 세트라고 한다. 원래 있던 로케이션이 아닌 경우라면(물론 로케이션을 흥미로운 이야기의 장소로 전환하는 것도 영화감독의 진정한 능력이다), 세트의 설계는 일차적으로는 이야기의 장소로서 만들어진다. 가령, 니콜라스 레이의 < 실물보다 큰 >에서라면 계단은 이야기의 결정적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이자 영화의 근본적 이야기, 즉 삶보다 더 큰 환상 혹은 망상이 (물리적으로) 깨어지는 것을 표현한다. 1950년대 아메리칸 드림이 악몽이 되어가는 약물과 쇼크의 시대에 니콜라스 레이와 사무엘 풀러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 스며든 악몽, 잠복했던 불안감의 분출을 표현했는데, 거기서 발견되는 것은 계단과 (충격의)복도이다. 나는 <마의 계단>의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계단이 니콜라스 레이(나 사무엘 풀러)의 영화와 다소 유사하게 영화의 불안정성에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이만희 영화의 60년대성에 대한 한국적 상황은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을 생각이다). 계층 상승의 욕구와 좌절이라는 주제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차라리 이 영화의 물리적 측면, 즉 건축물이 원래 갖고 있어야 할 견고함, 안정성, 정주성, 영구성 등과 비교할 때 <마의 계단>의 건축물과 계단은 불안정성, 잠정성, 허구성의 특성을 갖고 있다. 나는 이러한 계단의 불안정성이 그 자체 이만희 영화의 특징이라고도 생각한다. 병원의 계단,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단 중간의 난간이 원래부터 부실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어찌된 일인지 계단의 난간은 처음부터 부실해서, 세 번이나 인물들이 추락하는 돌발사건을 불러온다. 주의를 요하는 법도 없이, 계단은 원래부터 망가져 있었다. 가령,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간호사 남진숙( 문정숙 )이 현광호와 헤어져 늦은 밤 병원에 홀로 돌아와 복도를 걸어 다닐 때(그녀는 처음에는 계단을 오르려 했었다), 화면의 배경으로 보이는 계단에는 외관상 별 이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병원장의 딸 광자( 방성자 )가 병원을 찾았을 때 계단 난간은 이미 파손되어 수리공이 수리를 하고 있다. 카메라는 그녀가 계단을 오른 후에도 부감 쇼트로 파손된 난간을 수리하는 장면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다시 말하자면 계단은 처음부터 이유 없이 부실하다. 이를 이야기의 결함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반대로 이런 부실함이 이야기를 파열시키는 구멍이라 생각한다. 계단의 불안정성에 대해서는 그러므로 다른 지점에서 살펴봐야만 한다. 이야기와는 별개로 표상적 측면에서 보자면, 수직적 구조를 갖는 건축물과 계단은 일단 가로로 긴 시네마스코프 화면과 충돌해, 불안정한 구도를 보인다. 수평과 수직의 충돌. 사실 이 영화의 건축적 구도와 관련해서는 히치콕의 < 사이코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이코>의 건축물은 수평으로 긴 베이츠 모텔과 고딕풍의 수직적 구도의 어머니 저택으로 구조화되었는데, < 마의 계단 >에서 주요한 두 공간 또한 수직과 수평의 구도로 표현되어 있다. 수평의 긴 시체보관소와 수직의 병원, 혹은 계단이 그러하다. 여기서 더 자세한 논의를 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의 주요한 세 가지 공간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하고 싶다. 가령, 병원의 계단, 시체보관소, 그리고 물웅덩이가 그러하다. 이 세 공간은 영화에서 한 번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면서도 가장 중요하게 사건과 관련된 장소이다. 여인은 계단을 오르다 추락하고, 물웅덩이에 처박혀 죽었다가, 시체와 뒤바뀌어 다시 살아난다. 이 설명되기 힘든 이상한 일은 세 공간을 오가면서 벌어지는데, 영화는 이에 대해 어떠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장소들이 모두 이야기의 블랙홀처럼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다. 우리는 시체를 운반하는 의료인들의 행렬을 보게 된다. 누구의 시체인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행렬의 움직임에 따라서 카메라가 건물과 장소의 세부들을 부각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카메라는 복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건너편의 병원 시체보관소를 이어서 보여준다. 여기서 시체보관소는 한 번도 내부가 보이는 법은 없지만, 결국은 가장 미스터리한 장소로 남는다. 시선을 그 쪽으로 옮기는 인물의 운동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령, 남진숙이 늦은 밤 병원으로 왔을 때 그녀는 계단을 오르려다 잠깐 멈추어 현광호의 사무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이때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병원 문이 열린 쪽으로 걸어간다. 그녀는 바깥으로 나와 병원의 외부 계단을 쳐다보고, 이어 건너편의 시체보관소를 눈길을 돌린다. 나중에 우리는 현광호가 그 비슷한 운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바람이 불어와 병원문이 열리는 순간, 곧바로 이 바람은 시체보관소로 인물과 우리의 시선을 향하게 한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시체보관소에 보관되었던 시체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마의 계단 >에는 그러므로 이야기의 서스펜스보다 먼저 건축물의 서스펜스가 있다고 봐야 한다. 계단, 혹은 시체보관소의 비밀이 있다. 그렇다고 이 비밀이 이야기에 적절하게 기능한다고는 볼 수 없다. 도리어 이야기로 해명되지 않고, 이야기를 미끄러지게 하고, 작동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잔여가 있다. 그리하여, <마의 계단>에서 계단(혹은 시체보관소)는 이 영화의 이야기를 위한 세트 안에 있는 또 다른 세트, 다른 식으로 작동하는 무언가를 일깨운다. 영화 바깥이 작동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실제로 이 영화에서 계단 수리공은 도무지 영화내적 존재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혹은 이야기의 시간성을 미끄러지게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다른 시간성을 작동시킨다. 계단에서의 추락이 반복될수록 사태는 점점 현실에서 비현실로 확장되고, 심화되어 간다. 이는 또한 현재의 시간에 파묻혔던 과거의 시간을 분출하도록 한다. 계단은 그러므로 인물을 추락시키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탈구시키고 시간을 함몰시키는, 특별한 장소이다. 이는 영화의 결함이 아니라, 도리어 이야기와 의미에서 벗어나는 방식이다. <마의 계단>에서 계단이 갖는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계단에서의 추락은 그러므로 상징도 은유도 아닌, 영화의 이야기 자체를 중단시키는 돌발사건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미조구치의 영화에서, 나루세의 영화에서, 김기영의 영화에서, 그리고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서 그들 각자의 돌발사건을 보여주는 장소로서, 계단이 거기에 있다. 계단은 모든 것을 미끄러지게 만드는 장소이다. 인물들은 단지 이곳에서 추락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어 있는 어떤 지대로 향한다. 그러므로 나는 <마의 계단>에서 이만희 가 이뤄낸 성취가 서스펜스 장르의 모방이나 시도라는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말하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지극히 사적인 영화들의 목록이다. 만들고 싶은 영화, 꿈꾸는 영화들, 마음으로 두고 싶은 영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열 편의 작품은 굳이 말하자면 각별히 올해 내 마음에 다가왔던 영화들이다. 그러니 작품을 평가하거나 가치를 나열할 생각 대신에 마음이 동했던 몇 가지 이유들을 적으려 한다. 먼저, 최근에 세상을 떠난 두 작가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 >(1993), 그리고 샹탈 아커만의 < 노 홈 무비 >(2015). 이 두 편의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획한 추모전의 일환으로 상영했다(사실 이들을 추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삶과 죽음을 간결하면서도 대담하게 다룬 작품들인데, 두 편 모두 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올리베이라는 영화가 예술이 아니며, 인생도 아니고, 그 둘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라 말했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영화는 늘 그 사이에 있고, 우리 또한 영화들 사이에 있다.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관객을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공간에 초대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에게 초대받을 만한 친밀한 이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들의 방문이 작별을 통고받는 자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실은 우리가 함께할 시간을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이라 생각한다. 후카다 코지의 < 사요나라 >(2015)와 필립 그랑드리외의 < 밤임에도 불구하고 >(2016)는 바라보는 것의 불안을 오래간만에 느낀 작품들이다. 후카다 코지의 영화에 대해서만 짧게 언급하자면,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대전아트시네마에서 개최한 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했다. 히라타 오리자의 안드로이드 연극을 원작으로, 이른바 ‘포스트 3.11 영화’의 계열에 자리 잡을만한 작품이다. 미래의 어느 때, 원전사고가 일어난 일본에서 해외 이주정책이 발표되고, 폴란드 난민 출신의 여인은 이제는 더 이상 떠날 곳을 찾지 못해 예정된 죽음을 기다린다. 하루하루의 소멸될 시간에서 유일한 말벗은 시를 읽어주는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창가의 소파에 누워 마지막 시간을 보내던 여인은 마침내 숨이 꺼지고, 시간이 흘러 그녀의 피부는 썩어들어 가고 한 줌의 뼈로 남게 된다. 그 모든 시간을 그녀 앞에서 꼼짝 않고 바라보던 이는 그녀의 로봇이다.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게 될 세계에서 우리의 죽음을 지켜볼 시선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파멸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매혹적인가.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특별히 나이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게 했던 영화들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민하고 자숙한다. 자기 자신으로 남는 피로감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야 할 욕구 사이에서 주저하고 용기를 내기도 한다. 주아옹 니콜라우의 < 존 프롬 >(2015)은 십 대들의 욕구와 환각 모험을 그리는데, 여전히 이런 경쾌한 움직임이 영화에서 가능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몹시 반가웠던 영화다. 이제 서른인 대만의 여성감독 위에이산의 < 어린 부모 >(2015)는 내가 꼽는 올해의 데뷔작 중의 한 편이다. 이 영화의 라스트는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안이한 결말로 쉽게 끝나지 않으면서, 얇지만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서늘한 느낌이 오래 남았던 영화다. 비극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는 한 번 더 기회가 여전히 주어진다는, 그럴 기회가 있음을 믿게 하는 영화다. 사실 이 두 편의 영화는 이 작품을 본 소수의 관객들과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나만의 리스트’로 남게 될 것이다. 미아 한센 러브의 < 다가오는 것들 >(2016)은 유일한 개봉작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만든 성숙한 영화라는 점에서 공감했다. 생 말로의 고요한 섬, ‘파도와 바람 소리만을 듣고자 했다’는 샤토브리앙의 무덤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이 영화가 끝난 뒤 다시 생각난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거쳐,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 여인의 고립과 분리를 마치 섬의 고립처럼, 조수간만의 물결처럼 밀려오고 떠나가게 한다. 한때 급진적인 생각을 지녔던 주인공 여인은 학생들의 파업에 반발하고, 변모하는 철학 서적 마케팅 시장의 논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급진적인 사상의 제자에게서 사고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난까지 듣는다. 나도 이제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자각! 그녀는 “난 변했다”고 말한다. 제자는 그녀에게 “그런데 세상은 그대로인 걸요. 더 나쁘기만 해요”라 반문한다. 변한 게 없는 변화의 삶이라니. 삶의 변화란 어떤 마음의 결심을 하는 것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대신 다른 곳에 가고, 다른 것들을 보고, 다른 것을 듣고,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것으로나 가능할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와 켄 로치의 두 작품은 영화라는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 은판 위의 여인 >(2016)에서 한 컷을 촬영하는데 몇 시간 내지 하루가 걸리는, 노출 시간이 긴 촬영을 고집하는 은판사진작가의 강박적인 작업은 이미지에 대한 어떤 기대가 없다면 그저 시대에 뒤떨어진, 위험하고 지루한 노동일 것이다. 영화작업이란 여전히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노동이다. 켄 로치의 영화는 이제는 작가적 접근보다는 어떤 하나의 사상이 작동하는 영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외에 다른 불만을 내세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미 사상이 되어버린 예술가의 견해라고 할까.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본디 그에게 속한 존엄을 되돌려 받기 위해 주장한다. 행복에의 기대, 그 이미지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켄 로치에게 영화라는 노동은 시민에게 존엄을, 시민권을 되돌려주는 예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도 나 홀로 이야기하게 될 한 작품이 남았다. 케이타 무카이의 <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 >(2016)가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이들은 내가 아는 한 서너 명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제주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한 바 있으니, 제주 시민들 백여 명 정도가 더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나라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작은 미술관 강당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보느라 서다 앉기를 반복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했다. 나라에는 사슴은 많지만 국제영화제가 개최될만한 영화관은 없다고 한다. 나라시의 지원도 끊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어 개막식 레드 카펫 행사에 나섰다. 영화제의 중심에는 알다시피 가와세 나오미가 있다.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내게 영화제 방문은 그녀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을 깨는데 충분한 기회였다. 그녀의 수고와 노력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였다. 아무튼, 이 작품은 실은 큰 기대 없이 보았던 영화다. 그때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였을 뿐이다. 영화 경험이 전무한 스물네 살의 청년이 만든 자전적인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카탈로그에 실린 짧은 소개 글을 읽으며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될까, 염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몸을 뒤척거리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는데, 첫 내레이션부터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석양에?물든 호류지(나라현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의 절이라고 한다)가 보이면서 배경에는 희미한 종소리가 울린다. “호류지의 종은 두 시간마다 울린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금속의 울림은 온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울려 퍼지다가 사라져 간다. 내 어린 시절, 하루의 끝에서 울리던 그 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호류지의 종소리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도록 재촉하는 불안한 소리였다. 양호시설의 통금시간은 여섯 시. 밤 아홉시에는 소등이 된다. 화면에는 마치 수용소를 보여주는 것 같은 몇 장의 사진들이 슬라이드 화면처럼 지나가고, 날마다 똑같은 고아원에서의 반복적인 일과들이 설명된다. 그나마 특별한 날이라면 달이 바뀔 때마다의 생일잔치였다고 한다. 파티 장식도 없고, 음악도 없었고, 늘 똑같은 축축한 버터크림의 초콜릿 케이크가 전부였던 생일잔치이다. 그런데 이 달콤한 초콜릿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도 같아 그에게 어두운 과거를 단박에 떠올리게 한다. 감독 케이타 무카이는 이 작품으로 양호시설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18세가 되면 아이들은 양호시설을 떠나 자립해 살아가야만 한다. 그는 이제 성인이 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고, 양호시설에 자신을 맡긴 아버지와 힘겨운 대화를 시작한다.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 관심을 두어 양호시설 자원봉사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영화작업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열등감, 부모에 대한 분노, 가난과 학대받은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말하게 하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함께 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예전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들에게 기억은 그러므로 일종의 이중구속으로,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들은 양호시설에서의 삶을 비판하되 부정하지 않는다. 비록 수용시설의 경험이라 하더라도, 그 기억과 시간은 이제 간신히 긍정할 수 있게 된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를 한편으로는 달콤하고 씁쓸한 기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든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표현한다.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의 종소리는 이 둘의 특별한 결합이다. 기술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케이타 무카이의 촬영이 가장 탁월한 표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는 중반 이후의 장면부터는 내내 서서 보아야 할 정도로 몹시 감동을 받기도 했다. 나라국제영화제에서의 첫 상영 후 잠깐 감독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작품이 상영되기를 기원한다고 말을 건넸다. 그 자리에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그의 친구들도 함께했다. 때마침 올해 제주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상영할 수 있었고, 상영 후 그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에서의 첫 상영에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공개될 만한 작품이 아니라며 부끄러워했고, 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가 국내에서도 더 상영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그를 한 명의 작가로서 기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삶이 영화라는 것을 통해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떻든 나는 그의 다음을 기대하고 있다.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 미즈키는 거실 뒤편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인기척을 느껴 되돌아본다. 한 남자가 서 있다. 남편 유스케다. “몇 년 만이지?” “3년이네요.” 둘의 대화는 이상할정도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이들 사이의 3년이란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속내를 알기 어려운 꽤나 느긋한 부부의 대화다. 그가 3년 만에 되돌아온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이런 상냥한 환대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실제로 3년 전에 사라졌고, 시체는 발견되지 못했지만 죽은 것은 사실이다. 유스케는 자신의 몸이 바다에 있고, 고기들이 몸을 이미 씹어 먹어 버렸기에 시체를 보더라도 자신을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끔찍한 말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내에게 말한다.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그녀는 성을 내지도, 눈물을 보이지도, 와락 달려드는 일도 없이 상냥하게 유령을 환대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 해안가로의 여행 >은 부부의 재회를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과묵한 대화는 몹시 인상적이다. 그 리듬을 잊기 어렵다.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리듬과는 무연하다. 누구나 자기만이 느끼는 아픔의 리듬이 있고, 이 순간의 리듬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다. 헤어짐을 견디거나 고통을 멀리 떼어내는데 그들 각자의 고유한 시간이 걸린다. 헤어짐의 아픔,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시간은 이곳 생에 걸친 사람들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이 장면은 저쪽 편, 죽음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도 그 아픔의 리듬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3년 만에 되돌아왔다. 유령의 도래에 담긴 비밀은 부활에 있을게 아니라 3년이란 시간의 간격에 있다. 죽은 자가 비록 당돌하게 되돌아오지만(그렇게 보일 뿐, 유령들 각자 재림의 고유한 리듬이 사연만큼 있다), 그러므로 공포나 놀람보다는 재림이 불러오는 것은 맑은 눈물이다. 브레송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여인의 눈에 촉촉이 젖은, 눈가의 물이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순간 말이다. 죽은 자 가운데 되돌아온 남편이 아내를 이끌어 당도하게 될 해안은 말 그대로 물이 가장 많고 빛나는 곳이다(더불어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에서 과다한 물의 이미지가 불러온 정서를 또한 떠올려보게 된다.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에 대한 짧은 글에서 밝힌바 있지만, 3.11 혹은 4.16 이후 당분간 우리는 물의 이미지들에서 어떤 죽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안으로의 여행이란 그러므로 물에 도달하는 것이자(그 곳에서 남편은 죽었다고 한다), 밝게 빛나는 물들(눈물)과 만나는 여정이다. 그가 몹시도 아름다운 곳이라 말했던 이곳은 사실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디에나 있을 바닷가일 뿐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 도달하는 순간 관객인 우리는 이 여행을 납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말 아름다운 곳에 도착한다. 모든 것이 빛나는 곳이다. < 도쿄 소나타 >에 이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몹시도 감동적인 영화를 이 세상에 가져왔다는 것에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도 <도쿄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와 바다가 등장한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 반복에 대해 먼저 말해야만 한다. <도쿄 소나타>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 < 해안가로의 여행 >은 피아노를 치는 한 소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느린 템포의 피아노곡이 연주되고 있다. 아이가 있는 거실의 넓은 공간은 몇 개의 가구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는 편인데, 이상한 것이 저 뒤편의 바깥으로 향한 창문에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기에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왜 여기서 창문이 열려 있어야만 할까? 문이 열려 있는 것도,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그 자체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이가 있는 거실의 창문이 바람에 흔들릴 정도로 열려 있다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자면 낯설다Unheimlich. 배치의 의도를 작가에게 묻지 않고는 가볍게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이다. 이 부조리한 장면에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구로사와 기요시의 과거 작을 거론하며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는 무례한 이들이 아닌, 여전히 최근작들을 몹시도 좋아하는 드문 팬들일 것이다. < 도쿄 소나타 >의 몇 장면들이 이 순간 그들에게도 떠올랐을 것이다. 거론하는 <도쿄 소나타>의 첫 장면은 이러하다. 카메라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측면 운동을 하며 움직여 거실을 보여준다. 거실의 바닥 위로 신문지 한 장이 바람에 날린다. 전경의 탁자 위에 놓인 잡지의 몇 페이지가 마찬가지로 바람에 날려 펄럭거린다. 집의 내부로 폭풍우가 밀려오고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더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저 뒤편,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을게 눈에 들어온다. 가정주부인 메구미가 급히 뛰어나와 창문을 황급히 닫고 마루를 걸레질한다. 물끄러미 창문을 쳐다보던 그녀는 다시 문을 열고는 비가 몰아치는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장면에서 열린 창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장면. 학교에서 꾸지람을 들은 소년은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는 우연히 카네코 피아노 교실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가정집 앞을 지나다 열린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된다. 아이가 고개를 돌려 집을 들여다보면 피아노 선생이 한 소녀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아이는 천천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얼마 후, 꼬마는 그 선생에게서 피아노 강습을 받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 피아노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아이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강당의 뒤 편 창문에서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이 어쩌면 <해안가로의 여행>의 첫 장면과 가장 유사하다 말할 수도 있겠다. 열린 창문으로 바깥의 바람이 실내로 들어온다. 반대로 내부의 무언가가 바깥으로 향하게 되기도 한다(<도쿄 소나타>에서 열린 문으로 들어온 정체불명의 도둑에 이끌려 메구미는 해안가로 납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설정을 <해안가로의 여행>의 기이한 여행과 연결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 해안가로의 여행 >의 첫 시작은 비슷한 구도에서 시작한다. 한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뒤편의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이 펄럭거린다. 잠시 후, 피아노 선생인 미즈키가 등장해 아이에게 천천히 연주할 것을 주문한다. 나중에 소녀의 어머니는 그런 미즈키의 주문을 못마땅해 한다. 조금 밝게, 빠르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는 없느냐고. 이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쯤에 다시 반복되어 나온다. 유스케와 해안가로의 여행 중에 음식점에서 함께 일하게 된 미즈키는 우연히 식당에 있는 피아노 위에 놓인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악보에 손이 끌린다. 무심결에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연주한다. 갑자기 가게 주인 여인이 달려와 그녀의 연주를 제지한다. 허락도 받지 않고 연주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 말한다. 격렬한 제지에 미즈키는 적잖게 놀라는데, 그녀는 슬픈 사연을 털어 놓는다. 그녀의 여동생이 연주하던 곡이다. 동생은 어릴 때 연주를 많이 했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곡을 완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린 나이에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부모는 피아노를 버리자 했지만, 악기가 동생의 몸의 한 부분이라 여긴 그녀는 동생을 기억하며 여태껏 버리지 못하고 있던 터다. 사연을 들은 미즈키는 자기가 그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싶다 말한다. 그러자 응답처럼 갑자기 어린 아이의 유령이 나타난다. 언니는 망연자실 바닥에 쓰러진다. 미즈키는 아이가 곡을 연주하도록 피아노로 이끈다. 아이는 건반 위에 손을 얹고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아마도 예전처럼 실력에 부친 듯 쉽지 않아한다. 연주를 지켜보던 미즈키는 나지막이 소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피아노가 놓인 식당 저 뒤쪽의 열린 창문으로 커튼이 마찬가지로 펄럭거린다. 실내는 잠시 어둠 속에 잠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이 이 세 명의 여인들을 어둠 속에서 감싸고 있다. 유미코는 소녀의 연주를 응시하고, 저 뒤편에서 언니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동생의 피아노 연주를 조용히 듣고 있다. 세 여성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구도가 인상적이다. 상냥한 기쁨, 혹은 부드러운 슬픔의 순간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지금 어쩌면 나루세의 세계에 근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미코의 눈에 촉촉이 눈물이 고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눈물을 반짝거리고 있다. 아이는 연주를 마치고 컷이 되면 장면이 바뀌어 이내 소녀는 사라지고 없다. 어둡던 식당이 천천히 밝아진다.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미즈키가 아이에게 주문했던 느린 템포의 연주는 기실은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리듬이었을 것이다(물론 그 템포는 남편과 사별한 미즈키의 삶의 리듬이기도 했다). 유령 이런 식의 연출은 전형적인 호러영화와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유령이 어떻게 출현하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 반대가 중요하다. < 절규 >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2007년에도 그는 사다코의 유령처럼 어떻게 기발한 방법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흥미를 느끼는 것은 어떻게 유령이 사라지는가이다. 하늘로 날아갈 것인지, 문을 열고 나갈 것인지, 계단을 타고 내려갈 것인지 등등. 이런 생각은 호러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일찌감치 무효로 하는 설정이지만 더 흥미로운 질문이다. 유령은 이 세계에 갑자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빈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어떻게 유령을 보게 될 것인가. 혹은 유령임을 어떻게 판명할 것인가.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유령과 결별할 것인가. 횡으로 넓은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이런 빈 공간의 여백을 담아내는데 적절했을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달라진다. 유스케는 왜 돌아왔을까. 그것도 3년의 시간이 걸려서. 비록 유스케가 생전 좋아했을 음식을 요리하는 때에 매번 돌아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그의 첫 출현이 그랬다. 마찬가지로 그가 다시 사라진 이후-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즈키 그를 두고 떠났던 일이지만- 다시 그를 불러내기 위해 음식을 요리한다), 이는 개연성이 없는 하나의 설정,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유령은 언제나 빈 공간에 거주한다. 그의 출현은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다만 그를 소환하거나 사라지는 것에 영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프레임이라는 틀(구조물)과 컷 이라는 분리장치다. 영화의 프레임은 가시성의 틀이다. 틀 안에는 물론 보이지 않는 공백들도 담겨진다. 또 다른 하나. 하나의 컷에서 다른 컷 사이의 공백, 어둠에서 유령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가령, 한 컷에서는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다음 컷에서는 소녀는 없고 피아노만 놓여있다. 멜리에스의 영화처럼 트릭필름이라 불렀던 초기영화부터 있던 아주 단순하면서도 오래된 방식이다. 프레임이든 컷의 변경이든, 여기서 유령의 출현과 사라짐은 불가해한 바깥에의 감각을 강렬하게 한다. 프레임 안으로 바깥의 세계를 유입하는 것, 혹은 컷의 바깥으로 유령을 사라지게 하는 것.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유령이란 존재(와 그의 출현과 사라짐)가 인물의 심리와 무연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유령적 존재를 라울 루이즈의 용어를 빌려 ‘정오의 유령’이라 부르고 싶다. 루이즈가 들려주는 기이한 일화. “어느 날 한 사람이 칠레의 거리를 걷다 40년 전의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진부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다거나, 우유 값이 올랐다거나, 근처 다리에 구멍이 있다던가 하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얼마 후 그가 깨닫는다. 그 친구는 몇 년 전에 죽었던 것이다.” 루이즈는 이러한 존재를 ‘정오의 유령’이라 불렀다. 이는 나쁜 이들에게 복수하는 그림자나 고딕 유령이나, 억압된 것의 귀한이나 악의 있는 힘으로 살아 있는 자에 출몰하는 그런 유령이 아니다. 그가 돌아왔다. 처음에 미즈키는 유스케가 돌아온 것이 꿈인가 싶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깨어난 그녀는 그러나 “나랑 같이 가겠어. 아름다운 곳이야.”라 말한다. 이렇게 되돌아온 자가 같이 가자고 하는 곳은 그러나 피안의 세계가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현실의 세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실의 세계의 다른 곳이다. 그를 돌보아주었던 사람들이 있던 곳이다. 부부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기차를 타고 여행한다. 때론 버스를 타기도 한다. 현실의 수고는 유령이라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유령 유스케는 심지어 길을 몰라 기차역의 승무원에게 행선지를 묻기도 한다. 그들은 때론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여전히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어느 날밤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왜 돌아왔어요? 그는 대답대신 묵묵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다시 묻지만 왜 유스케는 3년 만에 되돌아온 것일까. 그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수백 장의 기도문을 썼던 응답이 되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마치 제사상의 음식처럼 어느 날 우연히 마련했기 때문인가. 사실 그 이유는 미즈키에게 연유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의문은 미즈키가 아닌 유스케에게 전적으로 속한 것이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아내에게 되돌아오기에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둘의 여행은 아내가 따라나선 그의 사후 3년의 행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녀에게 다가오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던 이유를 가늠하는 일은 드라마의 논리에 따라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설명은 그러나 흥미롭지 않다. 영화는 대신 다른 길, 꽤 물리학적 경로를 따라간다. 영화 후반부에 유스케는 시골 작은 마을에서 과학 선생처럼 주민들에게 우주의 기원에 대해 말한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언어로 우주의 기원과 존재에 대해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무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 설명은 드라마의 개연성과는 무연한 영화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자와 함께하는 여행은 단지 둘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유령이면서도 3년을 살았던 그의 행적을, 사후생의 흔적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아내는 그런 다른 생을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곳이 있어, 함께 가지 않겠어. 유스케가 미즈키를 여행으로 안내하는 주문이다. 아름다운 곳. 사실 그들이 찾은 곳은 절경도 실로 아름다운 곳이라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작은 마을들이다. 유스케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그러므로 아직 볼 수 없었던 바깥의 세계다. 평범하지만, 전적으로 유령의 눈에 비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의 세계란 아직 미즈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아직 들리지 않았던, 그러므로 아직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관련된다. 영화의 후반부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나는 궁금해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이 둘은 함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즈키는 지금 유스케와 같은 것을 보고 있던 것일까? 미즈키는 지금 영화에 고유한 특별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영화란 나 이외의 사람에게도(실은 죽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고유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한다. 존재하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최대한으로 줄여가는 것.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보는 사람이 공유하는, 영화적 체험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 해안가로의 여행 >은 이를 가장 감동적으로 느끼게 하는 영화다. 사족을 달자면, < 해안가로의 여행 >은 올해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체험하고 싶다. 아직 정식 개봉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그 때에 남은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 더 기쁜 일은 이미 구로사와 기요시가 또 다른 신작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 크리피 >라는 작품으로, 일가족 실종사건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다. 올 6월에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늘 있었지만) 돌아온걸 환영해요.
이번 <영화천국>이 주목하는 영화는 이해영 감독의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다. 2015년 6월 18일 개봉한 이 작품은 ‘1930년대’ ‘소녀’ ‘미스터리’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베일을 벗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공포영화의 정석을 기대했던 관객의 예상과는 꽤나 달랐다. 낯익은 상징들로부터 출발한 이 기묘한 이야기는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예상을 훌쩍 넘어서버렸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일조했다는 평을 받으며 웰메이드 미스터리의 탄생을 알렸다. 익숙하지만 생경한, 비밀스럽고 강렬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세계에 대해 이해영 감독과 김성욱 평론가가 긴 이야기를 나눴다. 일시: 2015년 6월 29일(수)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기록 및 정리: 민병현 전략기획팀 min@koreafilm.or.kr 사진: 이준구 포토그래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성욱(이하 ‘김’) : 개인적으로 모든 장르의 영화를 잘 보는 편인데, 공포영화는 안보는 편이다. 군 시절 의무대 행정기록병으로 근무했는데, 당시 시신을 많이 봐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고(웃음), 이후 공포영화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더라.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하 ‘경성학교’)은 보통 공포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사실 감독 본인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모험적인 시도이기도 했다. 우선, 두 편의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 > < 페스티발 >)이 모두 동시대적 이야기였다면 이 영화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역사극이다. 그리고 전작들은 ‘장르적 컨벤션’이 익숙한 영화가 아니었지만 <경성학교>는 장르가 명확한 영화다. 먼저 이렇게 <경성학교>의 시대적, 장르적 설정을 한 계기를 묻고 싶다. 이해영 (이하 ‘이’) : 일단 < 경성학교 >는 결과적으로 공포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 사실 시나리오 작가 시절부터 전작 두 편을 연출할 때까지, 장르 컨벤션 자체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거친 적이 없다. 이거야말로 창작자로서 성실하지 못한 거구나, 반성이 들었다. 방법을 달리해야 영화를 더 오래, 더 내공 있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장르라는 것을 직면하자. <경성학교>의 시작은 그랬다. 본격적인 호러영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장르가 조금씩 달라지고 다른 장르들이 더해졌다. 결국 장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장르를 비틀고 뒤트는 복합장르물로 탄생한 셈이다. 그러나 이 장르적이면서도 탈장르적인 결과물이 장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영화 속에 반영되어 있다고 믿는다. 1930년대라는 시대는 기획 단계에서 매우 중요했다. ‘여자기숙학교, 미스터리한 일들’만으로는 기획 자체가 규정되지 않으니까. 심지어 ‘여고괴담’이라는 거대한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찾기조차 어려우니까. 이 모호한 설정은, 1930년대라는 시대 위에 두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영화로서의 틀을 갖출 수 있었다. 지금이야 < 암살 >도 있고 < 아가씨 >도 있지만, 이전까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편수도 적었고, 성공한 적도 없었다.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섦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오히려 기존 영화들과 차별되는, 새로운 색깔을 보여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1930년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했지만 나의 마음을 움직인 직접적인 도화선이기도 했다. 김 : < 경성학교 >와 관련해서, 예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두 편의 추천작을 생각하게 됐다. 그 하나가 < 이블 데드 >(샘 레이미, 1981)이고, 다른 하나가 < 세일러복과 기관총 >(소마이 신지, 1981)이다. <이블 데드>는 호러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잘 만든 솔직한 호러일까, 라는 궁금증에 선택했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호러가 자신에게는 미지의 장르라 말했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은 소녀가 주인공인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면서 선택했다고 했는데(이: 맞다. 그때 <경성학교> 시놉시스를 쓰는 중이었다.), 교복 외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어 보이지만(웃음), 후반부의 복수를 감행하는 그러한 쾌감의 순간이랄까, 이런 정서는 약간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 < 세일러복과 기관총 >은 기관총을 난사하는 소녀가 마침내 느끼게 되는 쾌감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실제로 ‘쾌감’이라는 대사도 결코 잊히지 않는 방식으로 묘사되고. < 경성학교 >는 그와 정반대여야만 했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무게감과, 생체실험이라는 다소 예민한 소재를 다룬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관객에게 통쾌한 복수극을 경험하게 하면 안 되고, 주인공 소녀 ‘주란’ 스스로도 후련하게 해소되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란은 끔찍한 실험의 피해자고, 그녀가 벌이는 일련의 사건은 비극적인 폭주여야 했다. 결국 죽음으로 끝날 이야기였다. 금욕적이랄까. 폭주하는 액션을 연출하면서도 절제에 대한 강박이 많았다. 김 : 공포영화의 공포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어떤 끔찍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 경성학교 > 역시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바로 ‘물’이다. 물속에 잠긴 소녀들, 수족관에 물이 차오르는 장면 등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공포의 이미지는 금기를 넘어서게 할 정도로 강력하고, 이 이미지가 이야기에 아직 소환되지 못하고 급작스러운 직접성과 충격적인 진실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투영되는데, 이 영화에서 물에 잠긴 소녀들의 이미지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4.16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 본격적인 호러영화를 목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대표성을 띠는 공포 장면이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지는 않았다. 물론 관객이 무서워하거나 놀라기를 바라며 자극적인 장면들을 장치해놓기는 했지만, 영화는 결국 ‘소녀적’이라는 인상으로 남기를 바랐다. ‘물’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동원된 대표적 수단이었다. 영화에서 물은 여러 의미를 갖는데, 때로는 몽환적인 정서를 담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미스터리의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주란과 연덕 두 소녀의 내밀한 우정을 묘사할 때는 성적 긴장감을 풍성하게 표현해주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말씀하신 대로 수장된 소녀들의 끔찍한 이미지로 귀결된다. 영화 속 ‘물’의 상징과 정서들을 따르다보면 불가피하게 4.16의 이미지가 연상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4월 16일 당시 나는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프리프러덕션 단계, 그러니까 촬영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충격적인 뉴스였다. 막막했다. 그 위로 영화 속 설정이 자꾸만 오버랩되어 악몽에 시달렸다.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과도한 사회적 상징으로 해석될 여지만큼은 막아야 했다. 일차적으로는 물 설정 자체를 빼는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워낙 대수술이었고 물리적으로 불가능이었다. 대안이 없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4.16에 대한 상징으로 손쉽게 동시대성을 확보하려는 얄팍한 태도를 절대로 갖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에서 4.16을 읽어낸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김 : 그게 공포영화의 강점이면서 약점이다. 이미지가 불분명하기에 쉽게 장르 뒤에 숨어버리게 된다. 예전에 구로사와 기요시가 “공포영화는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다. 어떤 장르와 섞여도 공포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르 자체가 변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던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공포영화에 코미디가 섞이면 코미디 영화가 되고, 사회문제가 얽히면 사회성이 짙은 영화가 된다는 것이다. < 경성학교 >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공포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거기서 얻지 못하는 불만족이 컸던 것 같다. 다른 장르 안에 공포가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경성학교>를 본 관객과 연출한 감독의 이질감이기도 하고, 큰 틀에서 공포영화를 장르적으로 만들어갈 때 부딪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이 : 동의한다. 전작들은 철저히 취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는 많은 사회적 책임이 따르더라. 고심 끝에 장르를 고민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장르로 딱 떨어지는 영화가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기대하고 오는 장르와 보면서 느끼는 장르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만들면서도, 마케팅을 하면서도 ‘공포’라는 장르를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김성욱 선생도 인터뷰 초반부터 공포장르를 언급하셨고, 그 안에서 이 영화를 읽어내고 계시다. 이제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숙명이라고 여기고 있다. 한 평론가는 이 영화의 초반부를 두고 ‘업계 표준’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전학 온 아이, 아이들의 괴롭힘,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 익숙한 방식의 전개다. 앞부분은 의도적으로 과한 절제를 했다. 엄격하게 억압되어 있던 극의 분위기가 중반 이후 점차 사건의 본격화를 맞으며 깨지고, 비밀이 밝혀지고, 억압감이 해소되며 리듬감을 얻고, 빠른 호흡으로 마무리되는 방식으로 전체를 설계했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초반부의 갑갑함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상대적 만족도가 훨씬 높았던 것도 약간 의외의 지점이었고. 결과적으로 감독이 바란 영화와 관객이 경험한 영화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던 셈이다. 굉장히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김 : 극중 시즈코가 과거의 시즈코( 고원희 )와 현재의 시즈코( 박보영 )로 둘이다. 그리하여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반복된다. 정체성의 혼란은 둘의 반복에서, 혹은 소녀에서 몬스터로 변하는 설정에서 계속 제기된다. 불분명한 부분은 과거의 시즈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연덕이 편지를 자신에게 쓰라며 ‘네가 쓰고 보는 것도 너니까, 편지나 일기나 똑같아’라 말한다. 영화에서 일기는 중요한 설정이다. 일기 혹은 편지의 설정은 어디에서 근원했나. 이 : 애초 영화는 총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챕터 구분의 기준은 일기장이었다. 과거 시즈코에 대한 조각난 기억의 기록, 일기에 적힌 글귀 등이 각 챕터를 리드했다. 연덕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여는 프롤로그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주란 중심의 명쾌한 이야기로 정리하자는 취지로 챕터와 프롤로그 모두를 없애면서 영화 속에 남아 있는 일기라는 설정은 끝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모호한 여지를 둔 채로 존재하게 됐다. 원래 의도와 달라지면서 근거나 설명이 축소된 게 제일 큰 차이일 거다. 그럼에도 일기는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두 소녀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으로서도 존재하고, 주란이 연덕의 비밀을 풀어내는 결정적인 열쇠 역할로서도 기여하고 있다. 두 소녀의 존재를 중첩시켜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1930년대 소녀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꼭 담고 싶었던 화두였다. 타고난 태생적 정체성을 지우도록 강요받던 시절의 공기가 조금이라도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달까. 김 : 퀴어 코드보다는 감독의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소녀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들은 버려진 아이들이다. 심지어 교장이 후반부에 내뱉는 말, “인정받고 싶었다”라는 말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느끼게 한다. 이 : 주란은 끝내 연덕에게도 버려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정 혹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더 있었을 거다. 세상에서 버려진, 그 누구에게도 손을 뻗을 수 없는 소녀가 마지막으로 찾은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너만 있으면 돼”라는, 집착에 가까운 우정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주변 인물인 유카( 공예지 )와 과거의 시즈코의 존재 역시 주란이 연덕을 더욱 원하게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만약 내가 욕심을 좀 더 냈다면, 지금보다 훨씬 감정에 치중한 ‘소녀드라마’에 공을 들였을 거다. 실제로 완고가 되기 전의 시나리오는 소녀들의 질투와 우정, 사랑 등에 대한 드라마 비중이 높았었다. 그러나 대중성을 염두한 수정 작업이 거듭되며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현재의 수준이 됐다. 드라마가 단출해졌으므로 인물마다 명확한 키워드를 부여했다. 예컨대 주란은 나약함, 버려짐, 의존적, 그리고 맹목적인 애정에의 갈구…. 연덕은 조각난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그래서 끝내 마음을 열지 못 하는, 비밀을 가진…. 유카는 명확하게, 질투. 교장 캐릭터 같은 경우는, 중반을 넘어서며 그녀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왜?’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입장을 총정리하고 압축한 단 하나의 단어가 필요했다. 1930년대 조선의 신여성, 지식인이었던 그녀의 유일한 욕망. 그녀를 끝까지 질주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이유. 결국 내가 내린 답은 ‘인정욕’이었다. 이걸 말씀대로 ‘사랑에의 갈구’라고 읽는다면 결국 교장부터 주란, 연덕, 그리고 모든 소녀까지 공통된 정서로 동일한 맥락 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식의 해석이라면, 창작자로서 만족스러운 일이다. 김 : 교장 캐릭터가 독특했던 것은 아마도 < 경성학교 >가 처음으로 악인이 등장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주로 선과 악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가지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 전작들이다. 이 영화는 장르적 외피를 갖게 되면서 악인이 등장한다. 극중 박보영 이 ‘도쿄에 가고 싶다’고 말할 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원 씨가 ‘이끼나사이(가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특별한 캐릭터가 부각된다. 이 : 교장의 비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교장이 등장하는 신이 많지 않다. 편집 과정에서 교장의 비중이 높아지니 엄지원 의 존재감이 강해서 전체 균형이 깨지더라. 하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이라 존재감이 너무 없어도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은 배우 엄지원의 역할이 컸다. 엄지원은 사전 준비가 무척 철저한데, 세 줄짜리 대사를 36가지 정도의 버전으로 준비해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현장에서는 본인의 준비 여부와 무관하게 감독과 대화를 하며 협의하는 것을 즐긴다. 캐릭터 자체는 등장할 때마다 인자한 얼굴 너머 뭔가 있을 것만 같은 긴장감을 주는 인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자한 가면 그 자체에도 매번 진심이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란과 눈을 마주치고 신뢰를 주는 미소를 지을 때에도, 치유를 위한 처방을 할 때에도, 혹은 소녀들을 감금하고 숨통을 끊어놓을 때조차. 모든 순간이 진심인 여자였으면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있건 그때마다 진심인 사람, 얼마나 섬뜩한가. 김 : 많은 이가 < 경성학교 >를 브라이언 드 팔마의 < 캐리 >(1976)와 비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노의 악령>(브라이언 드 팔마, 1978)과 가깝다고 느꼈다. 물론 <캐리>의 전반적인 설정, 이를테면 사춘기 소녀의 성장, 초자연적인 능력, 그것으로 인한 파멸의 이야기가 유사하긴 하다. 하지만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분노의 악령>에 나오는 차일드리스(존 카사베츠)가 <경성학교>의 교장과 가깝다. 아이를 괴물로 키우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제하여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려 하는 인물이 바로 차일드리스다. <경성학교>의 교장 역시 소녀들의 초자연적 에너지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사용하려 한다. 두 영화 모두 괴물성을 통제하려는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괴물이 된 소녀들. 하지만 두 영화의 차별점은 <경성학교>의 후반부에서 소녀의 초자연적 에너지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장르적 변화가 도리어 <경성학교>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만큼 여러 레퍼런스가 언급됐다. 그중에서도 <분노의 악령>이 어쩌면 언급된 영화 중에서 유사점을 좀 더 많이 발견할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 경성학교 >는 중후반부에 이르러 펼쳐지는 다른 색깔들로 그 모든 영화와 차별점을 갖는다. 나는 그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까 말했듯 ‘업계 표준’이라고 부를 만큼 익숙한 것들의 조합으로 진행되지만 마침내 끝내 새로운 이야기인. 다만, 중반 이후 장르의 변이가 발생하고 종국에는 복합장르물로 끝맺음된다는 정보가 관객에게 미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걱정이었다. 대부분 ‘업계 표준’처럼 관성대로 진행될 관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 197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에서는 괴물이 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 엑소시스트 >(윌리엄 프리드킨, 1973), < 오멘 >(리처드 도너, 1976)에서 < 캐리 >와 <분노의 악령>까지. 1970년대 전쟁, 살인, 암살을 지켜보았던 아이들의 분노의 에너지가 이런 식의 ‘몬스터가 된 아이들’로 표현된다고 생각하는데, <분노의 악령>은 그런 괴물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시도에 반발하는 이야기다. < 경성학교 >도 이와 유사하게 봤다. <경성학교>는 ‘이상한 방식으로 4.16을 경험한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아이들이 받아들일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했다. 교장이 주란에게 훈련을 시킨다며 헤드폰을 씌우고, 백색의 동그란 스크린을 보게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분노의 악령>에서 아이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트라우마를 통해 계발하는 장면처럼, 이 장면은 백색의 스크린과 이상한 소리들로 표상되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 : 1930년대를 기준으로 생체실험을 할 때 어떤 방식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약물이나 차, 혹은 향 같은 전통적인 것과 차별되는, 이질적인 설정을 하나쯤 넣고 싶었다. 교장이 씌워준 헤드폰에서는 신호음 같은 삐- 소리가 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 안에는 소녀들의 절규가 기괴하게 섞여 있다. 이게 반복적으로 주입되면 어떤 소녀는 이명과 함께 부작용을 일으켜 발작으로 이어진다. 주란도 이명과 몇 가지 부작용을 얻게 되기는 하지만 찰나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개념이었다. 말하자면 뇌파를 자극한다, 같은 거다. 이 신에서의 사운드 디자인은 몇 가지 버전을 반복 시도하며 공을 들였다. 관객들도 어느 순간 넋을 놓고 ‘알 수 없는 먹먹함’에 압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 마지막에 주란과 연덕이 축음기를 고치고 함께 음악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 기본적으로 여자 보컬이길 바랐다. 꼭 1930년대 음악이 아니어도, 다소 현대적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고, 구체적인 레퍼런스도 정해놓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현하려다보니 문제는 ‘언어’였다. 가사가 한국어여도, 일본어여도, 영어, 혹은 제3국 언어여도 정확하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고민 끝에 음악을 들려주기보다 특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래서 두 소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저수지로 함께 달려가며 즐거움이 충만했던 그때 흐르던 음악을 삽입했다. 화면이 암전되는 순간 숲을 달리던 두 소녀의 밝은 웃음이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이 : < 경성학교 >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차기작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고민이 많이 된다.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동시에 이럴수록 더 저질러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정말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놓지 못하고 있던 것들, 이를테면 우아함에 대한 강박, 훌륭한 감독 코스프레(웃음) 같은 껍데기. 이번에도 그런 것들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나를 부수고 싶다. 작정하고 치열해질 거다. 괴물 같은 영화를 만들 거다.
* 이 글에는 < 암살 >( 최동훈 , 2015)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만희 감독의 < 암살자 >를 기억했던 것은 최동훈 의 < 암살 >을 보면서였다. 유사한 제목에서 연상되기도 했지만, 꽤 이상한 설정이라 여긴 쌍둥이의 등장이 흥미를 끌었던 탓이다. 서스펜스 효과보다는 역사의 반복, 실패의 서사적 논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더블(짝패)의 운동. 안옥윤( 전지현 )은 자신이 암살하는 대상이 아버지이며, 쌍둥이 동생이 자신과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이른바 거울의 형상과 마주한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염석진( 이정재 )이 그런 거울 논리의 왜곡된 현실태라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는 친일파의 암살을 기도했고, 그 반대편의 자리에서 이제는 독립 운동가들을 검거하고, 해방이 되고서는 경찰의 요직을 차지하며, 최종적으로는 해방 전에 내려진 지령에 따라 암살된다. 변혁을 기도했던 자가 그들의 적대자를 닮아간다면 혁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안윤옥은 거울을 깨뜨리지만 염석진은 닮아간다. 거울과 더블의 논리는 배반과 실패의 서사다. 이 서사에는 거대한 인물(우리가 종종 위인이라 부르는 이들)에의 추종과 그만큼의 질시, 적대감이 뒤따른다. 염석진이 보이는 분열증적 행동과 초조와 긴장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다. 경우는 다르지만, 이만희 감독의 < 암살자 >를 떠올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암살자>의 내러티브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은데, 가령 당시의 검열과 누락된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레이션이 들려주는 꽤 교훈적인 말들(영화가 시작할 때 나오는 “죽이고 또 죽인 자를 죽이고, 급기야는 그마저도 죽어가야만 했던. 누구를 위해 죽이고, 죽어야만 했던가. 그 참혹상을 폭로한다”는 말의 진위여부)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는 다른 문제도 있다. 이 영화를 언급하는 글이 많지 않은 것도 그런 판단의 주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대체로 이 작품은 그의 졸작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암살자가 살인 행위보다(암살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전개된다)는 표적을 제거하기 위해 가는 느릿한 운동들, 과거를 떠올리는 플래시백과 양식화된 화면들, 그리고 ‘암살자가 죽는다’는 예정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나타나는 제의의 과정들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고도의 수법과 양식이 돋보이는 영화들로, 조심스럽게 이 영화에 매너리즘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내용보다 형식과 기교가 두드러진, 장르의 고전적 균형보다 파괴와 변형을 거듭하는 양식이다. 60년대 후반의 사회적 위기, 영화에 미친 파국이 이런 표상형식에 표출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주 미세하게 어떤 동시대성의 움직임이 여진처럼 이 작품에서 감지된다고 생각하는데-손쉽게 떠올리자면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장 피에르 멜빌의 < 사무라이 >나 스즈키 세이준의 < 살인의 낙인 >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언급한 장황한 훈고조의 내레이션에 이어 부감 쇼트로 원탁 위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보인다. 이상한 장식무늬 원형 탁자(원형은 이 영화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형상이다. 나중에 암살자들에게 살해되는 소년의 보트가 그리는 원형의 운동이 그러하다. 이는 암살자가 암살하고, 또 암살된다는 나쁜 폭력의 반복을 형상화하고 있다 생각한다), 뿌연 담배 연기, 어두컴컴한 방, 여기서 출몰하는 유령들처럼 사람들이 자리에 모이기 시작한다. 암살을 지시하는 대표는 음성적 존재로, 단지 목소리만 들릴 뿐 화면에서 비가시화 되어있다. 그는 일종의 마부제 박사다. 사람들의 목소리 또한 영상과 일치되어 있지 않아(대체로 이 시기의 더빙영화들이 그러한데, 이 영화는 특별히 영상과 소리의 불일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목소리들이 어두컴컴한 방안을 부유하는 인상을 준다. 어두운 방, 텅 빈 화면, 피어오르는 연기, 부유하는 목소리. 고도로 양식화된 표현이다. 이들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며 당에서 탈당한 남호천 장군을 새벽이 오기 전에 암살할 계획이다. 암살자로 장동휘 가 지목된다(그는 이름 없이 암살자로만 불린다). 그가 탁월한 암살자이자, 9년 전 그가 살해한 피살자의 딸을 양육하는 부담을 떠안고 있는, 이른바 인간적 결함(암살자에게 인간성이 있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라 설명된다)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원탁의 바깥, 창가에 서서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두 인물이 보이는데, 그 한 명은 당원 1호( 남궁원 )이며 다른 한 명은 2호( 오지명 )다. 이들은 거울을 마주하는 것처럼 좌우대칭의 화면으로 분리되어 보인다. 1호가 암살자를 만나는 장면 또한 앞서의 장면처럼 1호와 암살자의 목소리만 떠돌 뿐, 보이는 것은 뒤쪽으로 창문이 있는 어둑한 방 내부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뿐이다. 마찬가지로 이는 어두운 방camera obscura이다. 우리는 역사가 아니라 어떤 시학과 마주한다. 암살자는 내켜 하지 않는데, 이유가 특별하다. “죽음 앞에 비굴하지 않은 자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번 표적이 남호천 장군이라는 말에야 암살자는 비로소 의욕을 내비친다. 그가 죽음 앞에서도 겁먹지 않은 유일한 ‘위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이어 다소 설명적인 플래시백이 전개된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플래시백이 직선적 시간에 반복의 시간을 기입하는데, 그 첫 번째 플래시백이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에 맞춰 그를 암살하러 갔던 실패한 순간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이번 임무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위대한 인간’을 살해하는 그의 마지막 여정이다. 나중에 우리는 두 번째 플래시백으로 그가 남호천 장군 앞에서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설명이 부족한 장면이지만, 암살자는 죽음에 직면한 타인의 표정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정적 순간이 그러므로 특별하다. 일종의 노스페라투처럼 암살자는 죽음을 기꺼이 기다리는 ‘위대한 인간’과 마주한다. 장군은 자신을 ‘위대한 인간’이라 칭하는 추종자들의 환대를 부질없는 것이라 말한다. 암살자와 희생자의 만남은 이상한 거울 관계다. 암살자는 ‘위대한 인간’에 비추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비굴한 모습을 파괴하려 들고, 장군은 자신이 불러온 폭력의 반복(말하자면 신화)을 암살자의 손을 빌려 끝내려 한다. 암살은 (반복의) 죽음을 종결짓는 행위다. 암살자 또한 죽는다. 한 명의 죽음은 역사의 문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암살자의 죽음은 또한 예술적 문제다.
태그 갤러거(Tag Gallagher)는 부산 영화의전당 초청으로 지난 9월 11일에 방한했다. 부산에서 영화의전당에서 12일에 강연회, 13일에 임재철, 김성욱, 허문영과의 좌담을 가졌다. 서울 아트시네마에서도 14일 강연회를 가졌다. 태그 갤러거는 「John Ford: The Man and His Films」(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6), 「The Adventure of Roberto Rossellini: His Life and Films」(DaCapo, 1998)라는 탁월한 두 권의 저서를 썼고, 조셉 폰 스턴버그, 막스 오퓔스, 킹 비더, 장 마리 스트라우브, 페드로 코스타 등에 관한 뛰어난 평론을 써왔다. 이 연재를 읽어온 독자라면 태그 갤러거라는 이름을 여러 번 만났을 것이다. 포드의 열광자인 그의 견해는 특정한 이론에 바탕을 두지 않으며 동시에 시네필적 수사학에만 의존하지도 않는다. 대신 포드의 개별 영화가 지닌 풍성한 영화적 자질을 개인사적 산업적 맥락 안에서 정교하고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의 견해를 참조하지 않고 존 포드의 영화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의 강연은 육성이 아니라 비디오에세이로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아직 익숙지 않은 비디오에세이는 강연을 진행하며 필요할 때마다 영상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선택하고 재배열한 영상들과 그의 코멘트가 마치 대화하듯 진행되는, 새로운 비평 형식이다. 그의 존 포드 비디오에세이는 존 포드의 영화적 리듬과 공기를 재배열된 영상으로 체험케 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는 “왜 다른 비평가들은 이 방식을 모방하지 않는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래의 인터뷰는 부산에서의 좌담, 사적 대화, 그리고 이메일 등에서 주고받은 말들을 추린 것이다. 예상보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만족할만한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한 사람의 시네필이자 뛰어난 평론가로서의 의미 있는 발언들이어서 여기 소개하려 한다.(로베르토 로셀리니에 관한 발언도 다수 포함된 갤러거-임재철의 대담은 『씨네21』972호에 실려있다. 참고하시길.) 1960년대에서 바로 건너온 듯한, 허름한 히피풍 차림의 이 노비평가는 작은 가방 두 개만을 들고 먼 길을 왔고, 두 도시의 시네필들에게 기억할만한 많은 말들을 들려준 뒤 9월 16일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허문영_ 당신의 사적인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개인 소개를 부탁한다. 태그 갤러거_ 나는 1943년에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NYU에서 영화이론으로 석사학위를,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4년간 있었지만 학교와의 인연은 그게 끝이다. 20대에는 베트남 전쟁 징집을 피하기 위해 피아노 교사를 하기도 했고 이탈리아에서 2년 동안 살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한 달 생활비가 300달러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거기서 크리슈나무르티의 이탈리아인 제자를 만났다. 그가 내게 「역경 易經」을 소개해 읽었고 크리슈나무르티 강의에도 데리고 갔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정좌하고 앉아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말할 게 없다”고 하고선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강의가 내가 들은 가장 훌륭한 강의의 하나로 남았다. 8번 정도 강의를 들었는데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다. 베스파(스쿠터)를 사서 이탈리아 일주를 하기도 했다. 1920년대에 조셉 폰 스턴버그도 스쿠터로 이탈리아 일주를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한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12살부터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너무 늦었다. 대신 내 아들이 피아니스트여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를 한다. 아들 이름이 킴벨인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 「킴」(루디어드 키플링)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허문영_ 당신은 학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비평과 저술 작업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같은 길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이며 어떤 좋은 점과 힘든 점이 있었는가. 태그 갤러거_ 내가 아카데미를 거부한 게 아니라 아카데미가 나를 거부한 거다(웃음). 보스턴대학교의 윌리엄 애로우스미스 교수가 나를 고용했다. 그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고 대통령의 친구였다. 그는 영화이론 전공을 도입하려고 나를 고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도중에 죽었다. 학교에서는 언론 전공학자를 그의 후임으로 고용했다. 그는 영화전공 도입을 원치 않아 내 자리가 사라져버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대학교에 있었을 것이다. 미국 대학교 시스템의 이상한 점은 박사 학위 취득하고 1, 2년 안에는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6년 동안 한 사람의 교수 아래서 조교수 노릇을 해야 테뉴어가 되는데, 4년간 나를 돌봐주던 교수가 죽은 것이다. 더구나 나는 이미 존 포드에 관한 책을 써서, 이름이 약간 알려지는 바람에 더욱 고용되기 힘든 어중간한 사람이 되었다. 독립적인 작업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허문영_ 경제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는가. 태그 갤러거_ 그렇지 않았다. 나는 돈이 많다.(웃음) 나는 16mm 필름 거래로 돈을 많이 벌었다. 필름 딜러들은 대부분 영화에 대해선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강점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포드의 < 굽이도는 증기선 >이 얼마나 귀한 필름인지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귀한 필름들을 사서 내 라이브러리도 만들고 장사도 했다. 필름 거래는 마약 거래와 비슷하다. 마약 중독자는 보통 마약 장사를 겸한다. 마약 장사로 번 돈으로 자기도 마약을 하는 것이다. 마진율이 높다는 점도 비슷하다. 보통 100% 정도다. 비싼 건 한편 팔아 200달러 정도 남겼다. 둘다 간단한 사업이다. 전화나 팩스로만 거래한다. 내게 필름 장사는 많은 걸 줬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16mm 프린트로 영화제를 여는 데가 많아서, 예컨대 런던에서 로셀리니 영화제를 한다고 하면 나는 내가 가진 프린트들을 짊어지고 가서 상영하고 끝나면 싸들고 돌아왔다. 필름장사를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 큰 필름 라이브러리도 갖고, 돈도 벌고, 여행도 다녔다. 행운이었던 셈이다. 물론 초산화 때문에 집 안에 식초 냄새가 진동하긴 했지만. 아직 빌려줄 가치가 있어서 로셀리니 영화는 몇 편 가지고 있고 존 포드의 < 순례여행 >도 갖고 있다. 로빈 우드 Robin Wood, 조너선 로젠봄 Jonathan Rosenbaum 허문영_ 영화적 견해를 교류하는 가까운 동료 비평가가 있는가. 태그 갤러거_ 음, 미국에는 거의 없다. 오히려 외국에 조금씩 있다. 로빈 우드는 죽기 1년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 토론토에서 로셀리니 회고전을 할 때였다. 그와 와인 3병을 마셨고 그는 내 발과 사랑에 빠졌다(로빈 우드는 게이이며, 갤러거는 주로 맨발로 다닌다). 나는 논쟁을 즐기는 편이지만 로빈 우드와는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로빈은 포드의 최고작이 < 모호크족의 북소리 >라고 말했는데, 그 영화는 나의 존 포드 톱 30 정도에 겨우 넣을 수 있는 영화다. 보통의 경우라면 반박했을 텐데 그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너무 쇠약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너선 로젠봄과는 굉장히 친했는데, 2000년에 심하게 싸운 뒤로 보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아드리아노 아프라와는 매우 친하다. 그는 나의 로셀리니 책을 꼼꼼히 읽고 코멘트해주었다. 허문영_ 조너선 로젠봄과는 왜 싸웠는가. 태그 갤러거_ 글쎄, 왜 싸웠는지 누가 알겠는가. 싸움이란 알 수 없는 거다... 싸움이 궁금하다면 다른 싸움 하나를 알려주겠다. 로셀리니에 관한 책을 준비하면서 생긴 일이다. 나는 로셀리니의 오랜 친구 프랭크로부터 로셀리니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당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셀리니의 아들 렌조를 만나 그 이야기를 했더니 처음엔 “프랭크 아저씨가 말했으면 사실일 것”이라고 순순히 수긍했다. 무솔리니 시절엔 당원증이 없으면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 로셀리니가 2차대전 중에 군대에 관한 영화를 몇 편 만들었는데 당원증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무솔리니 시절에 당원증을 얻는 건 잡지 구독하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약간의 돈을 내면 1년짜리 당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대신 신청해서 받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가입 날짜 조작까지 가능했다. 로젤리니가 당원이었다는 것은 사실 거의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내가 렌조를 만나고 나서 며칠 뒤에 팩스를 보내 결투 신청을 해왔다. 이유는 내가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죽은 이를 공격하는 겁쟁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렌조가 가족과 이야기하고 나서 가족의 방침이 그렇게 내려졌던 것 같다. 나는 “그 사실을 아는 건 지금 너와 나밖에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사실”이라며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나는 결투 신청을 받아들였는데, 무기 선택까지는 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게 “너를 평생 괴롭히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다. 이탈리아는 정치적 힘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힘을 미치는 특별한 사회다. 나와 렌조와의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이탈리아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로셀리니와 관련된 어떤 행사에서도 나는 금지된 사람이 되었다. 나의 로셀리니 책이 출간된 뒤로 이탈리아서 로셀리니 관련 책이 6, 7권 출간되었는데 내 이름은 어디에도 인용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학자가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는 식으로만 내 견해가 인용될 뿐이다. 내 책은 불어로는 번역되었지만 정작 로젤리니의 조국인 이탈리아에선 번역될 수 없었다. 허문영_ 존 포드라는 영화감독에게 매혹된 최초의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그 순간의 경험에 대해서 듣고 싶다. 태그 갤러거_ 나는 사실 존 포드를 알기 전에 존 포드를 알게 되었다. 십 대 시절에 나는 텔레비전에서 많은 영화를 보았다. 사실 그때는 크레딧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는 배우 이름조차도 관심 밖이었다. 감독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굉장히 많은 영화를 보았고,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기도 했다. 대학에 갔을 때 영화 연출에 관심이 있는 친구를 만났다. 내가 좋아했던 그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가 그 영화의 감독들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그때서야 내가 좋아했던 대부분의 영화들이 존 포드가 만든 영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존 포드를 알기 전에 존 포드를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젊은 날의 링컨 Young Mr.Lincoln 허문영_ 당신의 저서에서 < 젊은 날의 링컨 >을 언급하면서 50번을 넘게 봤지만 볼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고 했다. 이런 경험은 시네필에게는 즐거운 것이지만, 무언가를 써야 하는 비평가들에게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면도 있다. 끝없이 고쳐 써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저서에서 스스로 불만족스럽다고 여기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태그 갤러거_ 발견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물론 나의 포드 책도 3번째 개정판을 냈다. 포드의 경우, 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노트를 하고 다시 쓰는 일을 지속해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쓴 「존 포드」 초판을 좋아하지 않는다. 형용사가 너무 많다. 5년 전 스페인어로 출간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나는 25% 정도를 다시 썼다. 올해는 프랑스의 한 출판사가 짧은 버전 출판을 제의해왔다. 그걸 위해 다시 내가 쓴 걸 봤을 때, 여전히 형용사가 너무 많다고 느꼈다. 형용사는 부정직해지거나 과장하기 쉽다. 지금으로선 단순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고 싶다. 내 책이 지닌 좋은 점도 있다. 나는 프레임 확대(frame enlargement)에 의한 스틸을 쓴 첫 연구자 중의 하나다. 16mm 프린트로 내가 일일이 작업을 한 것이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영화 책은 영화사가 제공한 프로덕션 스틸을 썼다. 이건 가짜다. 왜냐하면 감독은 그 스틸을 찍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영화연구에서 가장 중대한 부정직함 중의 하나다. 내가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아카데미 쪽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들은 스틸 사진의 화질을 따지고 있었다. 과연 존 포드가 그 장면을 찍은 게 맞는지를 따지지 않고 말이다. 이젠 DVD가 있어서 훨씬 좋은 프레임을 얻을 수 있다. 어쨌거나 긴 버전을 줄이면 내 책이 훨씬 좋아질 것이다. 「John Ford, the Man His Films」 허문영_ 당신이 존 포드 연구에 몰두하고, 첫 저서(「John Ford, the Man His Films」)가 출간된 것은 1986년이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존 포드를 인종주의자, 극우파, 군국주의자로 보는 시선이 강하게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당신의 저서는 존 포드에 대한 그런 선입견, 오인 혹은 잘못된 평가를 불식시키는 데 크게 기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태그 갤러거_ 그랬기를 바란다. 허문영_ 자신의 책이 존 포드에 대한 평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느낌을 실감한 경험이 있나. 태그 갤러거_ 나로선 그 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책을 읽고 나서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70년대, 80년대 당시에 존 포드가 이러한 오해를 받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존 웨인과의 관계 때문이다. 존 웨인은 그 당시에 반공산주의 활동을 굉장히 활발히 하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존 포드를 변론하고,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존 포드를 보호하는 것에서 시작을 했다. 존 포드에 대한 이해는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 책은 그것을 위한 것이었다. 나로선 그 목적에 이 책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허문영_ 존 포드와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대한 당신의 저서는 전기와 감독론이 결합되어 있다. 전기 작성은 매우 많은 자료 조사를 필요로 하는, 비평가들에게는 매우 힘들고 소모적인 작업일 수도 있다. 존 포드와 로셀리니에 관한 책을 쓰면서 전기적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태그 갤러거_ 존 포드의 책을 준비하면서 16mm 필름 반복해 보았다. 한 영화를 숏 별로 기록하면서 앵글과 숏의 크기, 카메라 움직임 등등을 적는다. 한 영화당 대략 4, 5일이 걸린다. 그러고 나서 다른 영화로 넘어간다. 각 영화별 기록을 마치면 영화들 간의 관계를 찾아본다. 이 과정에서 존 포드가 어떤 시기에는 좋은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만들었는데, 어떤 시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 수색자 >(1956) 이후에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1962) 사이의 기간이 후자에 해당한다. 물론 < 투 로드 투게더 >나 < 기병대 > 등의 괜찮은 영화들이 있지만 좋았던 시기에 비하면 확실히 좀 떨어진다. 이 시기에 존 포드는 한쪽 눈의 시력과 그의 집을 잃을 정도로 개인적 어려움을 겪었다. 산업적으로도 스튜디오 붕괴하면서 그의 개인 프로덕션도 문을 닫았다. 이제 개인이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스튜디오와의 계약서가 30년대에는 2쪽이었는데, 50년대에는 전화번호부 두께가 되었다. 이 모든 나쁜 일이 50년대 후반에 일어났다. 영화 외적인 요소가 영화에 영향을 미친다. 전기는 나의 우선 분야가 아니어서 자료가 불충분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 가서 10일 동안 인터뷰를 했다. 존 포드 지인들을 두루 만났는데, 그들 포드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어서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정확히 말해주었다. 조셉 맥브라이드의 포드 전기는 훌륭하다. 나는 그 책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화는 무에서 오지 않는다. 삶의 여러 사실들이 영향을 미친다. 로셀리니도 그런 사례다. 그는 다른 영화인들과 직업적인 관계를 맺은 적 없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친밀한 혹은 적대적 관계 속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제작의 커뮤니티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존 포드, 장 르누아르도 그런 사례다. 만드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기운, 특별한 친밀함이 영화에 반영된다. 무엇보다 포드의 < 조용한 사나이 >가 그렇지 않은가. 나는 로베르 브레송의 전기를 여전히 기다린다. 그에 관해 알려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다르의 동반자였던 안느 비아젬스키가 < 당나귀 발타자르 >에서 같이 작업한 경험에 대해 쓰긴 했지만 사적인 부분은 별로 없다. 대신 그녀가 쓴 고다르에 관한 책은 정말 훌륭하다. 여하튼 궁금하다. 브레송의 삶은 영화 같았을까. 그의 영화 이를테면 <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의 주인공처럼 얀세니스트였을가. 그렇지 않다는 말도 있다. 돈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했다는. 나는 브레송의 전기 작가라는 영웅을 기다린다. 허문영_ 존 포드 영화(특히 < 젊은 날의 링컨 > <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 > < 분노의 포도 >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 등)에서 프로듀서 대릴 F. 자눅의 역할은 비평가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면이 있다. 포드는 종종 자눅에게 편집권을 넘겼고, < 황야의 결투 >의 마지막 장면은 직접 찍기도 했다. 그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한다고 보는가. 태그 갤러거_ 물론 자눅은 포드가 인정한 위대한 편집자다. 하지만 자눅이 제작한 다른 감독들의 영화들을 생각해봐라. 대부분 끔찍하다. 비밀은 포드의 영화 만들기의 방식에 있다. 존 포드는 스토리보드 없이 이미 머릿속에 영화를 만들어 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포드는 촬영하는 과정에서 이미 편집을 해버렸다. 촬영이 끝나면, 더 이상 다르게 편집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다. 자눅이 포드의 영화들을 편집한 건 맞지만,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다. 때로 자눅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 황야의 결투 >를 30분 줄이고 자신이 마지막 장면을 찍은 것 같은 일 말이다. 물론 포드가 자신의 제작사(Argosy)에서 찍은 영화에서는 완전한 통제권을 발휘했다. 역마차 Stagecoach 허문영_ 당신의 베스트 존 포드 리스트가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_ 내가 늘 좋아하는 10편의 존 포드 영화가 있다. 먼저 < 역마차 >가 있고, < 젊은 링컨 >,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 < 미드웨이 전투 >, < 웨건 마스터 >, < 조용한 사나이 >,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 도노반의 산호초 >,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 <7명의 여인>. 재작년에『사이트 앤 사운드 Sight and Sound』라는 잡지가 올타임 베스트 설문조사를 했는데, 존 포드 영화 중에 어떤 걸 고르느냐를 두고 고민했다. <역마차>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사이에서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로 정했다. 하지만 아마 내일이라도 <역마차>로 마음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존 포드가 방금 얘기했던 그 열 편 중에 한 편만 만들었다 할지라도 존 포드는 지금만큼이나 존경받는 감독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문영_ 내일 바뀔 수 있다 해도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를 최고로 꼽았다는 건 약간 놀라운 일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주류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많은 시네필들에게는 오랫동안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로 간주되어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을 그토록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_ 히치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기증>을 최고로 꼽는다. 존 포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각기 다른 자기만의 최고작을 꼽는다.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를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라고 보는 건 주로 영국인들이다. 데이비드 톰슨 같은 사람이다. < 시민 케인 >과 같은 해에 나왔기 때문에 혁신적인 <시민 케인>과 비교해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관습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건 피상적인 생각일 뿐이다. 이 영화가 왜 좋으냐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모든 것이 좋다. 캐릭터, 숏, 촬영, 이야기, 감정 모두 좋다. 소년이라는 한 캐릭터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드문 존 포드 영화이다.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도 같은 방식이다. 단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둘 다 거의 전체가 플래시백인 영화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를 반복해서 보면 제임스 스튜어트가 자기식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플래시백에서 베라 마일스가 존 웨인을 사랑한다는 걸 못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는 기억을 왜곡한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도 기억의 왜곡이 있다. 포드의 영화는 의식과 전통에 관한 것이라는 통념이 있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의식과 전통이 사회를 유지하기도 하면서 파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이걸 결코 깨닫지 못한다. 아이가 가치 있게 생각하고 성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공동체를 파괴시킨다. 이 영화의 센티멘탈리티는 이중적이다. 사람들은 비극적 사건에만 주목하고 그 뒤에 감춰진 잔혹함을 보지 못한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허문영_ 나도 그런 관객이었다. 20년 전에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저 비극적 멜로드라마라고만 생각했다. 몇 년 지나 다시 봤을 때, 이 영화가 매우 기괴하고 뒤틀려 있다고 느꼈다. 거의 무서웠다. 태그 갤러거_ 포드의 마법이 그런 것이다. 울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섭게 한다(horrifying). < 아파치 요새 >도 그러하지 않은가. 백인 장교와 하사관들은 고귀한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병사들을 그리고 인디언들을 몰살시키는 명령에 복종한다. 포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이중성을 못 본다. 포드가 그들의 행동을 찬미하는 것처럼 보는 것이다. < 나의 계곡 푸르렀다 >는 아이가 밸리를 50년이 지나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엄마의 숄로 싸는 책들은 자기가 어릴 때 읽었던 책들뿐이다. 새 책이 없다.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는 가족이 파괴되고 밸리가 망가지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이 든 주인공은 가족들 밸리 사람들이 죽지 않았고, 그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어리다. 그는 과거를 반복, 반복, 반복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는 과거에 갇힌 사람이다. 포드는 이 인물의 슬픈 사연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 인물의 어리석음, 의도하지 않은 파괴성이라는 이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위대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것은 위대한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것과 같다. 하나의 이유는 나를 울게 하니까, 이다. 훌륭한 예술은 우리를 울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적으로 연루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술은 감정에 관한 것이니까. 예술의 또 다른 자질은 창의성(invention)이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한 순간도 경이롭지(marvelous) 않은 때가 없다. 구도는 아름답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발레 같다. 너무나 우아하다. 오손 웰스가 이런 걸 하면 그게 도드라져 보인다. 사람들은 그걸 미학적이라고 알아차리게 된다. 근데 포드가 하면 그 솜씨를 눈치 못 채고 그저 울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모차르트를 좋아한다. 자기 시대의 보통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물론 지적인 사람도. 포드의 영화도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봐도 충분히 즐기고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50번 넘게 봐도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아직 두 번밖에 안 봤나? 계곡 봐라! 좋은 음악 몇 번 듣나? 좋아하는 시는 몇 번 읽나? 처음 읽을 때 얼마나 이해하나? 계속 보면서 심장으로 알 수 있게 된다. 리듬, 단어의 느낌 등등을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영화들도 그러하다. 존 포드 영화가 그런 영화다. 스테핀 페칫 Stepin Fetchit 허문영_ 이번 특별전 동안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관객과 함께 다시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이 영화에서의 흑인 묘사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관객도 있었다. 존 포드 영화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스테핀 페칫(Stepin Fetchit)이 보여주는 바보스러운 언행을 말하는 것 같다. 태그 갤러거_ 스테핀 페칫의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미국에서 인종적 편견은 단순히 피부색의 문제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과 몸 동작의 문제이기도 하다. 50년 전이라면 당신이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흑인이라면 말투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늘에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관용의 증대인가, 아니면 다름에 대한 불관용의 승리인가. 어느 쪽의 주장도 가능하다. < 태양은 밝게 빛난다 >에서 스테핀 페칫처럼 행동하는 흑인이 그 당시에 존재했는가. 그렇게 말하고 걷는 사람이 그때 존재했는가. 그렇다. 프랜시스 포드와 같은 백인 주정뱅이, 혹은 메이듀 같은 백인 정치가가 존재했듯이 말이다. 페칫은 백인의 편견을 증대시키는 특질들의 패러다임인가. 물론 그렇다. 그는 이것이 의도적이라고까지 말했다. 영화가 좋은 롤모델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같은 이유로 존 스탈의 < 슬픔은 그대 가슴에 Imitation of Life >(1934)가 더글라스 서크의 1959년 리메이크작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페칫은 최악의 이미지일 것이고, 그래서 TV에서 금지되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포드는 페칫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관용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복잡한 문제다. 허문영_ 존 포드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재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다.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보도 자료에 이런 내용을 써서 돌렸다. ‘존 포드는 서부극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서부극에 한정되지 않는 위대한 예술가이며, 영상시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도기사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서부극의 거장이 찾아온다’, ‘고전 서부극의 맛을 다시 만끽하기를’. 이 기획전의 의도가 서부극의 감독으로 한정된 존 포드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고자 하는 점도 중요했는데, 이런 보도들을 보면 서부극 감독으로서의 존 포드의 이미지는 여전히 강고하다고 다시 느끼게 되었다.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서부극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뛰어난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존 포드의 영화를 보고 말하는 데 있어서 서부극이라는 틀, 혹은 장르 어프로치가 유용성이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하는 것이다. 태그 갤러거_ 난 개인적으로는 존 포드를 서부극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존 포드를 늘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와 같은 영화와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포드는 1926년부터 1936년까지는 단 한 편의 서부 영화도 만든 적이 없다. 그가 해리 캐리와 유니버설 영화사에서 많은 서부영화를 만들었지만, 폭스사로 옮기고 난 이후, 자신의 이름을 잭에서 존으로 바꾸고 난 이후에는 서부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웨스턴이 아닌 일반 극영화들이 보다 존중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 밀고자 >, < 분노의 포도 >, < 롱 보이지 홈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같은 비서부극로 아카데미상을 받았기 때문에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포드를 서부영화 감독으로 특정화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가 영화계로 다시 돌아왔을 때, < 황야의 결투 >를 만들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폭스사와의 계약 때문에 의무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자기 제작사 아르고시(Argosy)에서 < 도망자 >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훌륭한 영화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싫어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일련의 서부 영화들을 다시 만들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 아파치 요새 >다. 굉장히 많은 제작비가 투여된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결국 < 조용한 사나이 >를 만들기 위한 전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40년대 이후에 그의 유일한 목적은 <조용한 사나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조용한 사나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같은 배우들을 데리고 < 리오 그란데 >라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사실상 그 이후의 유일한 서부극은 < 수색자 >이다. 그 뒤로는 영화를 만들기 어렵고 돈을 벌기 위해서 이따금씩 서부영화를 만드는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됐다. < 투 로드 투게더 > 같은 경우는 그가 그다지 만들고 싶지 않았던 영화다. 물론 나는 존 포드가 만든 서부극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를 서부영화 감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난 장르라는 틀 자체를 별로 믿지 않는 편이다. 허문영_ 1894년은 위대한 감독들이 많이 태어난 해다. 포드 뿐 아니라, 조셉 폰 스턴버그, 킹 비더(장 르누아르도 있지만) 등. 스턴버그나 킹 비더는 그들의 전성기에 재능에서는 포드를 능가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포드만이 1950년대를 살아남았고, 70세가 넘어서 만든 마지막 작품(<일곱 여인> 1966)에서도 그의 재능을 입증시켰다. 포드의 예술가로서의 긴 수명을 가능케 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태그 갤러거_ 오해가 있다. 킹 비더도 살아남았다. 1959년에 만든 <솔로몬과 시바>는 훌륭하다. 1956년에 만든 <전쟁과 평화>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다만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았을 뿐이다. 그 점에선 존 포드도 당대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작품 <일곱 여인>은 처참한 대우를 받았다. 재난 수준이었다. 나만 그 영화를 좋아했다. 필라델피아의 빈민지구에서 상영되었을 때, 나는 서너 번 정도 봤다. 다른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포드의 예술가적 수명의 이유? 그것은 그가 그저 훌륭한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가의 수명은 그의 재능과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예술가는 병이나 사적 곤경을 넘어서는 재능을 발휘한다. 존 포드가 그런 사람이었다. 해리 캐리 Harry Carey 허문영_ 포드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에서 당신은 “포드적 영웅은 도착하고, 바로잡고, 떠나간다. 이 모든 것은 해리 캐리를 모델로 삼았다”고 말했다. 질문은 이것이다. 이런 영웅상이 작가들이나 감독들이 아니라 해리 캐리라는 한 배우로부터 유래했다는 뜻인가. 또 이런 영웅상은 포드 영화에만 고유한 것인가. 보통의 영화 교과서는 그런 영웅상이 대부분의 서부극에 공통적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태그 갤러거_ 그 표현에서 해리 캐리는 배우 혹은 스크린 캐릭터를 의미한다. 우리가 아는 바에 따르면(포드 연출-캐리 주연작은 3편만 남아있다), 그는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고, 존 웨인도 같은 방식으로 연기했다. 몇 가지로 나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모델로서이다. 이것은 우선 연기와 스크린 페르소나에 관계한다. 바로 그의 느긋함(Laid-back)이다. 그는 자신을 관객에게 들이밀지 않는다. 존 웨인도 이것을 복제했다. 다른 하나는 캐릭터로서이다. 바로 선한 악인(good badman)이다. 존 웨인도 < 역마차 >< 3인의 대부 > 등에서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마지막은 포드적 영웅으로서이다. 그는 가족을 재결합시키고 마지막엔 떠나간다.(<스트레이트 슈팅>의 원래 결말은 그가 마지막에 떠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바꿨다.) ‘도착하고 / 바로잡고 / 떠나간다’는 물론 모든 포드 영화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많은 변주가 있다. < 프리스트 판사 >에서는 도착하지 않고 떠나가지 않는다. < 황색 리본 >에서도 도착하지 않는다. 떠나가지만 돌아온다. 그런 영웅상이 서부극에 공통적이지 않느냐고? 모르겠다. 나는 아마도 모든 서부극 중의 1% 정도만 보았을 것이다. 아마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서부극을 떠올릴 수 있을까. < 셰인 >? 혹은 세르지오 레오네 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극?(하지만 그들은 존 포드를 모방하지 않았는가). 하워드 혹스의 어떤 서부극이 이런 패턴일까? 혹은 프리츠 랑, 자크 투르뇌르, 새뮤얼 풀러? 어쩌면 < 하이 눈 >? 1970년대 이후 서부극의 공통 요소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의 서부극에도 적용될까? 허문영_ 당신은 오늘의 영화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유를 말해줄 수 있는가. 동시대 영화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라는 것이 비평가들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가. 태그 갤러거_ 오늘의 영화에 대한 내 무관심이 내 잘못인지 영화의 잘못인지는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오늘의 영화를 다루는 비평가나 프로그래머는 아니다. 나는 오늘의 영화에서 구도, 편집, 블로킹의 혁신성과 정교함을 찾지 못한다. 또한 내가 원하는 깊은 휴머니즘을 찾지 못한다.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영화들을 떠올려본다면, 오늘날에도 1년에 만들어지는 500편의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오직 2, 3편 정도만이 흥미로울 것이다. 거기에 얼마간의 외국영화를 보탤 수 있을 것이다.(물론 나는 월드 시네마의 아주 일부만을 봐왔을 뿐이다.). 나는 옛 영화의 99%도 좋아하지 않는 셈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TV 시리즈를 좋아한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 < 다운튼 애비 >(Downton Abbey), <라크 라이즈에서 캔들포드까지>(Lark Rise to Candleford) 등. 물론 이들은 ‘작가’ 영화는 아니다. 프로듀서, 대본작가, 배우들이 ‘작가’들이다. 흥미로운 미장센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와 이야기가 흥미롭다. 반면 오늘의 영화들은 지루하고 흥미로운 점을 찾기 힘들다. 너무 많은 미국 영화들이 진부하고 가식적이다. 너무 많은 외국 영화들이 느리고 무겁다. 50년 전 나는 수천 편의 영화를 즐거워하며 죽치고 앉아 보았다. 오늘에는 10분 혹은 15분이 지나면 멈춘다. 내가 망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내 잘못일까. 영화 잘못일까. 내 철학은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올바른(right)”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술의 보편적 핵심은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도덕(morality) 또한 제공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도덕은 가장 큰 즐거움이다. 허문영_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페드로 코스타에는 깊은 관심을 보여왔고 그들에 관한 글을 썼다. 이런 예외적 관심의 이유가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_ 아벨 페라라도 포함시켜야 한다.(적어도 < 뉴 로즈 호텔 >(1998)까지는 그렇다.) 그들에게는 앞서 말한 내가 좋아하는 자질들이 있다. 다른 자리에서도 말했지만, 비평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한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텅 빈 형용사 같은 것을 쓰지 않고서 말이다. 스타라우브와 코스타에 대해 쓸 때마다 나는 왜 그들을 좋아하는지 말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것을 25단어로 요약할 수는 없다. 당신은 그럴 수 있는가. 나는 스트라우브의 DVD와 자막을 만들어왔다.(비공식적인 작업이어서 그는 모른다. 판매용이 아니라 내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의 작품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다니엘 위예와의 공동연출작보다는 덜 강렬하고 덜 정교하다. 얼굴들은 작고 표정은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이것이 스트라우브-위예의 작품들을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존 포드 영화의 두 쇼트가 내가 막스 오퓔스, 장 르누아르, 로베르토 로셀리니, 킹 비더, 무르나우, 조셉 폰 스턴버그, 칼 드레이어, 미조구치 겐지, 스트라우브 등의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오늘의 영화에서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이고, 옛 영화의 1% 정도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한 쇼트는 < 조용한 사나이 >에서 모린 오하라가 존 웨인에게서 꽃을 건네받는 장면이다. 다른 쇼트는 < 아파치 요새 >에서 워드 본드가 성경을 읽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이 들어오는 장면이다. 서울에서 인터뷰할 때, 한 영화잡지의 표지를 보았다. 한 젊은 한국 스타가 표지에 실렸는데, 그는 마치 자기를 죽이고 싶은 것처럼 쏘아보고 있었다. 내가 말한 두 쇼트에는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눈빛을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턴버그는 “예술은 한정된 공간에 무한한 정신의 힘을 압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존 포드 John Ford
해마다 5월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장선우 의 < 꽃잎 >을 떠올린다.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세 번 보았다. 개봉하던 1996년에, 그리고 십 년만인 2006년에 1996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를 상영하는 특별전에서, 그리고 2010년에 열린 ‘장선우 특별전’에서 다시 보았다. 그 때 이 영화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여전히 이 영화를 말하기가 조심스럽고 어렵다. 영화 마지막의 ‘우리들’에게의 부탁과 마주하면 망연자실해진다. “혹시 찢어지고 때 묻은 치마폭 사이로 맨살이 행여 당신의 눈에 띄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 주십시오. 당신의 옷자락이나 팔꿈치를 잡아 당겨도 부드럽게 떼어 놓아 주십시오. 어느 날 그녀가 쫓아오거든 그녀를 무서워하지도 말고, 위협하는 말도 던지지 마십시오. 그저 관심 있게 보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영화는 우리들에게 소녀를 보아주기를 부탁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소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니 그 소녀를 보는 우리들은 누구일까? 나는 이런 질문과 관련해 지극히 제한적으로 <꽃잎>에서의 ‘우리들’과 ‘보기’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싶다. 광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전히 내겐 어렵기 때문이다. < 꽃잎 >의 서두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조금 전에 광주학살의 다큐멘터리 화면을 보았고(이 화면들은 오랫동안 공식으로는 보여 질 수 없었던 금지된 영상이었다), 극영화의 한 장면으로 한 소녀가 행복한 한 때를 보내던 순간과 마주했다. 이름도 없고 단지 ‘우리들’이라고 표현되는 그들은 그 소녀를 찾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 우리는 그 소녀가 5월 광주 금남로의 학살의 때에 살아남아 떠도는 생존자임을 알게 된다. 네 명의 남녀인 ''우리들''은 기차를 타고 그녀를 찾아 이동 중에 있는데(나는 이 영화에서 기차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데, 가령 영화 후반에 소녀가 기차를 타고 가다 자신의 유령과 마주하는 순간들을 포함해서. 하지만 지금은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심정으로, 뒤로 미루고 싶다) 그들은 각자 지도를 보고, 소주를 마시고, 쪽지를 읽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영화의 화자이다( 설경구 가 그 역할로 등장한다). 오프닝의 마지막은 그런 ‘우리들’중의 한 명이 지도를 보다가 건너편의 자리에서 남녀가 몸을 만지는 것을 몰래 힐긋 훔쳐보는 장면이다. 전경에는 지도를 보며 오징어를 씹고 있는 남자가, 후경에는 애정표현을 하는 두 남녀가 보인다. 영화의 오프닝을 이런 식으로 보여주는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을 다룬 영화의 서두를 이렇게 표현하는 작가란 드물 것이다. 그만큼 서두의 이 장면은 영화 시작부의 학살 이미지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으로 내게 남았다. 생각해보면 장선우 의 영화는 그런 식의 장면을 즐겼던 것처럼 보인다. 가령, < 너에게 나를 보낸다 >의 한 장면에서는 소설가로 나오는 남자가 여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문학에 대해 고상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카메라의 시선은 여자의 벌려진 다리를 향한다. 이는 관객의 보기를 시험하는 도전적인 장면처럼 보인다. 우리는 카메라의 시선이 향해있는 여자의 다리를 봐야 하는지 혹은 둘의 대화를 들어야만 하는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개봉 버전에는 삭제되어있는 < 거짓말 >의 시작 부분에는 주인공 여자가 기차를 타고 남자를 만나러 가며 음란한 이야기를 하는(나쁜 의미의 표현이 아니다) 장면이 있다. 이 때 카메라는 이야기하는 여자와 옆자리의 한 중년의 남자를 함께 보여준다. 픽션의 이야기이지만 형식상으로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카메라의 이런 보여주기 방식은 두 사람이 한 화면에 있으면서도 정작 이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 있거나, 서로 다른 세계가 뒤섞여 있다는 혼란스런 느낌을 준다. 표준적인 우리들 관객은 극영화에서 카메라가 보여주는 세계를 픽션의 세계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러하다. 물론 이는 연극과는 다른 극영화의 일종의 거짓된 약속의 세계이다. 여자의 말이 픽션의 이야기 세계를 구성한다면 그녀를 포함해 카메라가 보여주는 배경적 세계, 즉 기차 안의 사람들의 모습은 그런 이야기 세계의 거짓된 약속의 바깥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카메라가 인물과 픽션의 테두리를 초과해 보여주는 이런 보기의 방식, 즉 편의상 ‘참여적인 카메라’ 혹은 ‘자유간접화법의 카메라’(짐작하듯이 이 표현은 파솔리니의 용어를 빌린 것이다)가 장선우 영화의 특별함이라 생각한다. 장선우는 그런 보기의 방식을 일찌감치 ‘카메라의 인간선언’이라는 글에서 말했던 적이 있다. 그는 카메라가 ‘보여준다’는 표현 대신 카메라가 ‘본다’고 말했었다. 카메라가 보여준다는 것은 대상을 객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기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본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전자에서는 카메라가 기계이지만 후자에서는 하나의 생물로 존재하여 함께 참여한다. 쉽게 말하자면 그가 처음에 몰두했던 마당극의 참여적인 특성을 떠올릴 수 있다. 장선우가 말한 마당극의 무대란 서구식의 연극무대와 달리 인물들이 공간적 구분이 없는 상태 안에 함께 위치하게 되는 특성을 지녔다. 극의 닫힌 이야기 세계는 바깥으로 열려있고, 관객 또한 극의 테두리가 불분명한 열린 세계에서 단지 보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에 참여하는 경험을 맛본다.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그런 이야기 세계의 테두리를 넘어 열려있을 때 우리는 참여적인 보기에 도달한다. 이는 인물의 심리와 이야기 세계와는 무관한 카메라의 무감한 시선 때문에 맛보는 세계의 경험이다. 나는 홍상수 영화에서의 줌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세계에 입회해 우리와 세계의 관계를 얻는다. 그것은 단지 본다는 것만이 아닌 윤리적인 참여의 방식이기도 하다. < 꽃잎 >에서 소녀를 찾는 ‘우리들’의 돌아다님은 느슨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소녀의 떠돌아다님은 긴급함을 느끼게 한다. 이 두 세계는 평행하고 ‘우리들’의 로드무비는 여기서 실패한다. ‘우리들’은 언제나 뒤늦게 도착한다. 찾을 수 없는 소녀. 확인될 수 없는 이야기. 여전히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이 영화를 말하는 것도 글을 쓰는 일도 쉬운 게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럽고, 어렵다. 위험에 처한 이들을 구제할 생각이 없는 정부를 보았던 잔인한 4월이었으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우리는 야수 같은 정부가 존재했던 5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5월의 소녀를 여전히 찾고 있을까? 영화 속 ‘우리들’이 멈춘 그 지점에서 최소한 우리들은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