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최운봉 - 배우 - 식민지 남성의 우울
최운봉 (崔雲峯, 1914(?) ~ ?)의 공식적인 영화 이력은 최초의 조선어 발성영화 < 춘향전 >(1935)의 단역으로 출발한다. 원래 그는 기술 분야에 뜻을 두고 영화계에 입문해, 경성촬영소의 < 홍길동전 후편 >(1936)의 촬영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1938년 방한준 감독의 < 한강 >에서 한강 뱃사공 중 한 사람으로 출연하면서부터 배우로 전향해, < 도생록 >(1938), < 국경 >(1938), < 귀착지 >(1939) 등으로 점차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나갔다. 실질적인 데뷔작 < 한강 > 이후 최운봉 이 주연급 연기자로 이름을 알린 영화는 최인규 감독의 < 국경 >이다. 여기서 그는 빚쟁이에 몰려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밀수를 하고,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해 귀향한 날 과실치사(過失致死)로 징역을 살게 되는 ‘세림’ 역을 맡았다. 국경지대의 음울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했던 이 영화는 일본에서도 호평을 얻었는데,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는 ‘영자’ 역을 맡은 김소영 에게 집중되었을 뿐 최운봉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해 방한준 감독이 정비석 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 성황당 >(1938)에서는 산에서 숯을 구우며 살아가는 ‘현보’ 역을 누구보다도 잘 소화하며, 그때까지 출연작 중 가장 좋은 연기였다는 호평을 얻었다. <국경>과 <성황당>에서 그가 맡은 배역의 이미지는 자신이 속한 세계(‘고향’ 혹은 ‘자연’)가 외부의 폭력에 위협당한 선량한 사람이었다. ‘애인’이나 ‘아내’를 빼앗아가는 식민지 근대의 위력, 그리고 그러한 위기에 몰린 남성 주체의 무기력이란 나운규 의 무성영화들로부터 이어지는 조선영화의 일관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최운봉이 연기한 인물들은 나운규의 영화처럼 그 무기력이 살인이나 방화로 이어지는 ‘피의 세계’가 아니라 운명을 받아들이거나 자연의 섭리를 믿는 ‘땅의 세계’에 존재했다. 이러한 그의 남성 이미지는 1940년대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박영희 원작을 안석영 이 연출한 < 지원병 >(1941)에서 최운봉 은 우울과 무기력에 휩싸여 있는 ‘춘호’ 역을 맡았다. 중학을 중퇴하고 부친의 뒤를 이어 마름 일을 하고 있는 ‘춘호’는 김 첨지의 모략으로 마름 자리에서도 밀려나고, 사랑하는 약혼녀 ‘분옥’( 문예봉 )과도 오해가 쌓여 궁지에 몰린다. 영화는 이러한 춘호의 무기력과 우울,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든 갈등 상황을 ‘조선인도 황군(皇軍)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춘호에게 출정(出征)의 기회를 던져줌으로써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지원병이 되어 출정 기차에 올라타는 마지막 순간 좀처럼 웃지 않는 ‘춘호’=최운봉의 얼굴에서 출정의 감흥을 읽기는 어렵다. 이 장면에서 클로즈업되는 최운봉의 표정에서는 연인과 노모(老母), 어린 여동생을 남겨두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식민지 청년의 비애를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최운봉 은 < 그대와 나 >(1941) < 병정님 >(1944) < 감격의 일기 >(1945) < 우리들의 전장 >(1945) 등 여러 편의 선전영화에 출연한다. 그러나 모두가 적극적이고 자발적이며 건강하고 명랑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그 시기에, 우울하고 무기력한 식민지 남성의 이미지는 발붙일 곳이 없었다. 법인 조영에서 남승민과 같은 새로운 배우가 부상하는 가운데, 최운봉은 조연이나 단역으로 밀려났고, 때로는 코믹 릴리프(comic relief)를 담당하는 희극적인 역할을 맡았다. 해방 후 그는 한때 조선영화동맹에 가담하여 서울지부 집행위원으로 영화 대중화 운동에 참여했고, < 똘똘이의 모험 >(1946) < 새로운 맹서 >(1947) < 마음의 고향 >(1949) 등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많은 월북영화인들이 그러했듯이, 남한의 영화 제작 환경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미 그의 ‘좋았던 시절’은 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1950년 5월 정인택 원작을 영화화하는 <하얀 쪽배>에 출연할 예정이라는 기사(「<하얀쪽배> 영화화」, 「경향신문」 1950년 5월 18일 자)를 마지막으로 최운봉 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한국전쟁 중 월북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월북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