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판타스틱 Mr. 폭스
2D 애니메이션이 정지된 그림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은 욕망을 채워준다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생명을 얻은 무생물을 마주하는 쾌락을 선사한다. 이 쾌락은 ‘실제가 아니라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 기술 없이, 인형이 움직인다던지 사람이 날아다니는 등 존재할 수 없는 광경의 연출이 가능한 스톱모션은 실사와 확연하게 구분된다. 때문에 스톱모션에서 어느 정도의 부자연스러움과 조악함, 그러니까 ‘가짜 티’는 굳이 숨기지 않아도 좋다. 환상과 실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스톱모션 세계의 묘미는 가짜가 용인되는 데 있으니까. 로알드 달의 동화 《멋진 여우씨》를 원작으로 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니메이션 < 판타스틱 Mr. 폭스 >는 그 쾌락의 지점을 영리하게 짚어낸 여우같은 영화다. 《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 《 찰리와 초콜릿 공장 》 등 판타스틱 영화의 단골 원작으로 쓰이는 로알드 달의 동화와 <로얄 테넌바움>, <다즐링 주식회사> 등의 영화에서 결핍된 인간 군상들을 그려온 웨스 앤더슨의 만남은 너무나 사람 같으면서 지극히 야생동물인 Mr. 폭스를 만들어냈다. 닭털이를 업으로 삼아오다가 처자식이 생기면서 신문 칼럼니스트로 전업해 고상하게 살고 있는 중년 여우다. 그는 번듯한 슈트 차림에 뻔뻔하게 이족 보행을 하고 신문을 본다. Mr. 폭스 역을 위해 태어난 듯한 조지 클루니의 목소리는 사람보다 여우가 젠틀하고 섹시할 수 있다는 믿음마저 준다. 반면, 식탁 위에 정숙하게 차려진 식사를 으르렁대며 뜯어먹고 굴착기보다 빠른 속도로 땅을 파는 모습은 영락없는 야생여우다. 의례 인간이 동물 캐릭터를 치장할 때 덧붙이는 귀여움도 그들의 외모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불완전한 의인화가 주는 기괴한 매력과 조악한 움직임은 가짜의 ‘환상’을 보여준다. 반면, 소품들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동물들이 입고 있는 옷, 집 안의 가구, 건물 등의 재질과 디테일은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섬세하다. < 판타스틱 Mr. 폭스 >는 스톱모션이라는 기법 안에서 ‘진짜’와 ‘가짜’ 사이의 간극을 장점으로 끌어안아 동화책과는 다른 매력을 갖게 됐다. 어설픈 교훈을 내세워 착한척하지 않는 쿨한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장기 ‘골탕 먹이기’는 애니메이션에도 잘 살아있다. 그 진가는 Mr. 폭스가 닭털이 여우로서의 본능에 충실한 삶을 택하면서 발산된다. 그는 농장주 3인방 보기스, 번스, 빈의 거대한 농장을 상대로 도둑질을 일삼고, 인간들은 자신의 소유물을 훔친 여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숲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Mr. 폭스와 동물들은 더 치밀하고 과감하게 농장으로 침투하지만 이야기가 조롱하는 대상은 Mr. 폭스가 아닌 사회의 권위가 만들어낸 정의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야생동물의 편에 서서 엄숙한 권위만 남은 인간들이 골탕 먹는 것을 관람하며 낄낄거리게 된다. 물론 우리가 거들고 싶은 부분은 동물들의 권익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반듯함을 거부하고 생긴 대로 사는 삶에 대한 응원이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도발이 불편하지 않다면 스톱모션의 다듬어지지 않은 영상도 매력 있게 느껴질 것이다. 오히려 스톱모션을 선택했기에 < 판타스틱 Mr. 폭스 >는 가장 판타스틱한 방법으로 동화책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