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U.F.O.
몇 학년 때인지는 몰라도 자기가 외계인을 봤다며 미역국물 자국이 여기저기 굳어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문고판을 몰래 보여주던 아이가 있었다. 평소에는 별로 말 한번 섞어보지 않았던, 그래서 이름도 생김도 기억나지 않는, 그런 아이가 있었다. 그냥, 한번 웃고 저 아이랑은 놀지 말아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렇게, UFO니 외계인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게 되어 버렸다. 공귀현 의 영화 의 주인공들은 이제 초등학생도 믿지 않을 UFO를 찾기 위해 의기투합한 고딩 ‘4대천왕(!)’이다. 모범생 반장 순규, 재수생 간지남 진우, 열혈 기독교인 주기쁨(기쁨이는 성과 함께 불러야 제 맛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UFO에 납치되었다고 철석같이 믿는 광남은 어느 날 우연히 학교에서 UFO를 목격한 후, UFO가 출몰한다는 경기도 산골마을로 떠난다. 하지만 다음 날 산 속에서 잠을 깬 순규는 마을 어귀에서 만난 소녀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경찰의 취조를 받는다. 숙취로 머리는 지끈하고 몸에는 악취가 진동하지만 가장 끔찍한 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통 기억할 수 없다는 것. 순규는 형 영규의 도움을 받아 그 날의 기억을 되살리고 UFO의 존재도 확인할 겸 다시 산 속으로 향하고 UFO 보다 더 무서운 그 날의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 과연 아이들은 UFO를 보았을까? UFO는 진짜로 있는 걸까? 주요 매체의 인터뷰 화면으로 문을 여는 영화는 짐짓 네 아이들의 믿음을 그럴 듯한 가능성으로 재빨리 설정한다. 여기에 소녀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SF 미스터리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듯 싶지만, 순규의 시점이 이끄는 플래시 백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영화의 화법은 능수능란하게 관심사를 옮겨간다. 아예 맥거핀이 되어 버리는 듯한 UFO를 둘러싸고, 영화는 각기 다른 네 친구의 만남과 삐걱거림, 의기투합을 따라가다 결국 끔찍한 진실로 나아간다. 장르적 관습과 적절한 개그, 그리고 기묘한 대화들을 섞어내면서, 는 진실에 대한 해답을 들려주는 대신 수많은 궁금함들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들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만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인용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마치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어떤 신비한 호기심에 사로잡힌 듯하다. 진실은 맹목적인 신념을 반복하고 증명하고 설득하려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가공된 진실에 끊임없이 의심과 질문을 던지는 파열의 순간 속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삐딱한 호기심. 그리고 그러한 진실이 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과연 어떤 대꾸를 할 수 있을까를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것. 그래서인지 죄의식과 회피, 대면과 회피 어느 쪽도 아직 선택하지 못한 네 친구의 어정쩡한 모습으로 끝맺는 영화의 마지막은 어딘가 답답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씁쓸한 통찰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