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사람이 산다
별 탈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면 문득 불안하다. 무사한 나날이 언제 깨질지 두렵고 찾아올 시련에 지레 겁을 먹어 그런 것 같다. 그럴 땐 매일 밤 습관처럼 그날 있었던 사소한 힘겨움을 복기한다. 자잘한 불행을 곱씹는 건 아직 닥쳐오지 않은 그 날을 위한 일종의 예방주사다. 때로 행복은 불행을 통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평온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상처를 통해 선명해진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함부로 내뱉은 말에 입은 자잘한 상처의 욱신거림을 통해 지금 내가 아직 안전한 곳에 있음을 새삼스레 환기한다. 비슷한 이유에서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최대한 불편한 감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혹여 지금의 내 평온을 확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타인의 절박함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매번 스스로를 돌아보고 경계해왔다. < 사람이 산다 >가 반가웠던 첫 번째 이유는 이런 자질구레하고 쓸데없는 고민들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평범한 다큐멘터리는 딱히 기교나 요령을 부리지 않는다. 송윤혁 감독은 쪽방촌을 철거한다는 소식에 쪽방촌에 들어가 1년 동안 함께 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여기에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저 당연한 작업을 단순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쪽방촌 주민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만 봐도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감독이 얼마나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는 게 대번에 느껴진다. 사실 카메라 저편과 이편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공감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 송윤혁 감독은 그들을 섣불리 동정하거나 위로하는 대신 함께 대책을 고민하고 푸념을 가만히 들었다. 요컨대 대상과 눈높이를 맞췄다. 기본임에도, 아니 그래서 근래엔 쉽게 접하기 드문 미덕이다. 영화는 세 그룹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 이제 막 쪽방 생활을 시작한 남선 씨는 이곳에서부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아 계신 남선 씨는 부양의무제도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을 받지 못한다. 폐지 수집을 해보지만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긴 역부족이다. 둘. 쪽방 생활이 1년이 되어가는 창현 씨는 이제 쪽방을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부정수급으로 행여 기초생활수급비를 잃을까 전전긍긍 눈치 보는 상황에서 몰래 하는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이어갈 따름이다. 셋. 쪽방에서 태어나 자란 27살 청년 일수는 젊은 나이에 고혈압, 당뇨, 결핵을 앓고 있다. 역시 기초생활수급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비슷한 처지의 반려인 승희를 만나 쪽방촌에선 보기 드물게 가정을 꾸린다. 혼인 신고를 하면 수급비가 줄어들지만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었던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는다. 이제 갓 들어온 사람과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 쪽방이 고향인 사람의 삶을 교차시키며 그려낸 1년의 끝에는 빈곤의 굴레를 덧씌우는 부조리한 시스템이 자리한다. 몇 푼 되지 않는 기초생활수급비는 이들의 생명줄이다. 쪽방촌 주민들은 그저 살기 위해서 좁은 방에 몸을 맞추듯 부조리한 상황에 어떻게든 적응해야만 한다.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한지 증명해야 나오는 돈 앞에 존엄이란 허망한 수사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조차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쪽방에서 천천히 죽어간다. 카메라는 시스템의 부조리를 큰 목소리로 고발하거나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삶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당사자의 시점에서 담담히 전달하는 것으로 몫을 다한다. 재밌는 건 영화의 주제에 비해 의외로 어둡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의 호흡은 상당히 빠르고 간결하며, 몇몇 순간엔 생기가 감돌고 심지어 따스하기까지 하다. 일수의 에피소드에서는 흐뭇한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도 많다. 결혼을 앞두고 “형은 좋겠어요, 총각이어서.”라고 농담을 던지는 일수의 능청은 주변 평범한 이들의 모습과 하나 다를 것 없다. 탈출구 없는 그들의 삶을 암담하게만 그리지 않은 건 그들이 끝내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낙오자가 아닌 쪽방촌 주민이자 ‘한 사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을 최대한 덜어낸 건 관찰대상 사이로 녹아들어 간 연출자의 공이라 할만하다. 송윤혁 감독은 금방 휘발되어 버릴 눈물 대신 시스템 전반을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동시에 그들 각자의 표정, 보통 사람으로서의 시간들도 놓치지 않았다. 그게 이 무난한 다큐멘터리가 유난히 미덥고 고마운 이유다. 문득 쪽방촌 주민들이 가까스로 짓고 있는 미소가 내가 매일 되새기는 사소한 상처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작은 고민에 매달리며 일상에 안도하는 나와는 반대로 쪽방촌 주민들은 매일매일 사소한 행복과 별거 없는 농담, 폐지를 모아 산 소주 한 잔에 매달리며 오늘을 버틴다. 일견 다른 삶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전처럼 붙어 있다. 여기에도 거기에도 사람이 산다. 쪽방촌 주민들이 처한 현실에 분노하고 시스템의 부조리를 질타하는 힘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동시대의 문제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도록, 관객을 친절히 안내할 줄 아는 귀한 영화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