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우주의 크리스마스
우주와 크리스마스에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면 이 영화를 감상하기가 어려워진다. 논리적 연관성으로 출발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 8월의 크리스마스 >를 떠올린다면 조금 가까이 온 셈이다. 수수께끼 같은 제목의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영화이다. 그 과정에서 이름이 같은 세 명의 ‘우주’가 등장하고 같은 시공간에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그렇다고 판타지 영화라고 부르기도 모호하다. 되려 < 건축학 개론 >이나 < 번지점프를 하다 >가 연상되는 이 영화는 자신의 정체성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 우정, 꿈과 미래 등을 이야기한다. < 동갑내기 과외하기 >를 연출했던 김경형 감독은 남편과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사는 38살의 성우주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한다. 성우주는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동해의 골동품 가게를 인수하게 되는데, 어릴 적부터 미술에 대한 동경을 품어왔던 그녀는 그곳을 카페로 만들기 위해 직접 인테리어 하기 시작한다. 인테리어 작업 초반, 골동품 가게 주인의 손자 승현을 만나고, 그 후 그의 친구인 19살의 또 다른 성우주를 만난다. 그리고 골동품 가게에 자신이 팔았던 인형을 찾으러 온 26살의 두 번째 성우주와도 조우한다. 벌써 이름이 같은 성우주가 세 명이나 등장하고 있으니 당연히 현실적인 영화는 아니다. 또한 38살 성우주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과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자살한 날, 골동품 가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도 모두 같은 날이다. 이쯤 되면 너무 비현실적이라 무엇을 말하려는 영화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우연적 아니 필연적 사건보다는, 이 세 ‘우주’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현실 감각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38살의 성우주는 마치 자신의 과거를 복제한 것 같이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두 명의 우주를 보며 혼란에 빠지게 되고, 다른 두 명의 성우주는 38살의 성우주가 겪었던 바로 그 일로 현재 혼돈에 빠져 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미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19살과 26살의 성우주는 “당신이 나의 미래를 알 것 같으니 내가 어떤 길로 가면 좋을까요”라는 세속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토로하고 고뇌할 뿐이다. 어찌 보면 아주 인간적인 셈인데 이에 38살의 성우주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당신들이 미래가 아니야. 당신들은 당신들의 힘으로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야 해” 라고. 극히 상식적이지만 현명한 대답이다. 이 영화의 중심 주제도 바로 그러한 것 같다.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 삶만이 오직 진실이고 행복이라는 것. 38살의 성우주가 만든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19살의 성우주나 26살의 성우주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동해안의 시원한 경치와 고흐의 그림, 김지수 의 깊은 눈빛과 그윽한 목소리가 판타지적 요소를 더하는 < 우주의 크리스마스 >는 분명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영화다. 마치 여행을 와서 경치를 보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인생을 생각하는 여행자의 마음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심은진 에게서 아이돌이 아닌 그녀의 다른 인생이 보이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일 듯싶다. 아쉬운 것은 현재의 영화시장이 이런 잔잔하고 사색할만한 영화에 문을 잘 열어주지 않을 만큼 냉혹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목을 ‘우주의 광복절’이라고 할 수도 없을 텐데 말이다. 남은 것은 관객의 힘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