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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연재]지구의 무중력, 우주의 중력 <그래비티>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에 짐을 실어야 하듯, 우리에겐 늘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 결핍이 필요하다 - 쇼펜하우어 SF의 변곡점 SF(Science Fiction) 영화가 ‘공상 과학 영화’로 번역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에스에프’라고 불리는 것 같다. 공상(空想)과 과학은 다른가? ‘공상 과학’의 어감은 과학이 첨예한 정치경제학의 산물임을 은폐하는 듯하다. 마치 ‘괴짜의 상상력’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상상력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자의 위치를 이동시킬 때 다르게 보이는 경험이 주는 자원. 이것이 상상력이다. ‘공상 과학’은 사회적 위치성(포지션)을 공상이라는 관념으로 대체한다. 수많은 SF 영화가 있지만 나는 우주(외계인)와 지구를 대립적으로 다루는 영화가 불편하다(솔직히 말해, ‘분개한다’). 대개의 SF에서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미국인은 외계인과 친하든, 그들을 연구하든, 전쟁을 수행하든 다양한 방식으로 지구를 대표한다. 실제로 미국은 지구를 ‘지킨다(지배한다)’. 그들은 세계의 경찰임을 자칭하면서 대외적 군사 개입을 “경찰 활동(police action)”이라며, ‘국내 치안’으로 생각한다. 한국전쟁 참전도 공식적으로 “경찰 활동”(트루먼 대통령)이었다. 전 세계가 미국의 땅이라는 발상이다. 자기만 ‘지구의 1등 시민’, ‘제1의 성’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9․11 이전까지 국방부가 없었다. 미국 국방부(DOD, Department of Defense)는 우리나라처럼 자국 방위를 위한 부처가 아니라 전 지구를 대상으로 업무를 보는 곳이다. 9․11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자기 땅이 침략당한(?) 사건이었다. 이후 미국은 다른 나라의 ‘진짜 국방부’에 해당하는 국토방위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신설했다. 디스트릭트 9(District 9) 외계인과 싸우는 지구의 대표가 ‘파키스탄인’이거나 ‘에콰도르인’인 영화가 있었던가. 닐 블롬캠프 감독의 < 디스트릭트 9(District 9 )>(2009년) 가 걸작인 이유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섹스나 감염 문제를 다룰 때 실험 대상은 백인 남성이 아니라 유색 인종이거나 여성임을 날카롭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나오지 않는, 실종된 미국 우주인을 그린 < 그래비티(Gravity) >는 <디스트릭트 9>과 함께 SF의 역사의 한 챕터에 등장할 만하다. 더불어, <그래비티>는 우주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비록 중국이지만’)아시아 국가가 나온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었다. 우울증과 중력 내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첫 영화는 < 이 투 마마(Y Tu Mama Tambien, And Your Mother Too) >(2001)였다. 황홀했다. 나는 한동안 디에고 루나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 서 헤어 나오지 못했으나 친구들과 신나게 영화 감상을 나누지는 못했다(‘미남’ 배우에 대한 자기 검열이 있었다). 이후 두 배우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알폰소 쿠아론의 필모그래피는 말할 것도 없다. 제작자로 참여한 < 비우티풀(Biutiful) >이나 <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 모두 굉장한 세계였고 <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 < 사랑해, 파리(Paris, Je T'Aime) >, <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에 대한 내 의견은 사족이리라. 알폰소 쿠아론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2014년 제86회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탔다. 나는 아직 <로마>(2018년)를 보지 못했고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지만, <그래비티>(2013년)는 그의 대표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내게는 ‘내 인생의 영화’다. 하지만 두 번 볼 용기는 없다. 치유 과정의 고통을 두 번 겪고 싶지는 않다. 직면하기 어려운 영화다. 이 영화를 ‘호러’로 분류하면, 미친 짓인가? 나는 무서웠다. <그래비티>는 물리학과 실존주의를 융합하고 그 두 세계를 모두 넘어서, 제3의 지식을 만들었다. 우울증에 관한 설명이 그것이다. 모든 질병이 그렇지만, 우울증은 묘사하기 매우 어려운 병이다.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질병이다 보니,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인간이 자연을 마구 파괴하다 보니, 이제 자연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물론 우울증은 고대부터 있었다). 대개의 질병은 ‘원인’은 다양하고, 증상은 비슷하다. 그래서 증상을 통해 병명을 진단할 수 있다. 우울증은 반대다. 원인은 ‘하나’인데, 증상은 다양하거나 극단적으로 반대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의사도, 환자도 진단이 어렵다. 불면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내내 자는 사람도 있다. 폭식증이 있는가 하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병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살아 있을 때 몸은 의지로 움직인다. 죽음이란 몸에서 의식이 빠져나간 이후를 말한다. ‘몸’만 남는 것이다(영어의 ‘body’는 본래 시체라는 뜻이다).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울증은 의지-의식-의욕, 이 세 가지 상실이 혼재된 상태인 듯하다. 한마디로 무기력의 연속이다. 그래서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몇 년간 계속되어 욕창으로 사망하는 이도 있고, 우울한 상태에서 극한의 자신과의 투쟁으로 생활을 이어나가는 이도 있으며, 심지어 우울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이나 공부, 글쓰기에 몰두하여 생산력이 높은 ‘고기능 우울증 환자’도 있다(헤밍웨이나 버지니아 울프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마지막의 경우 오래가지는 못한다. 대개 육십 세를 전후하여 자살한다. 더는 그럴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 때문이다. 이 힘은 모든 곳에 있다. 그래서 만유인력(萬有引力, universal gravitation)이라고 부른다. 그래비티, 중력(重力)은 말 그대로 무거운 힘이다. 물체의 무게는 이 힘을 가리킨다. 만유인력과 지구 자전에 따르는 원심력이 더해져, 우리는 지표면에 의지해 살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호소. “지구가 나를 붙잡지 않아요.” 중력의 법칙에서 배제된 이들이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다. 우울증의 고통에 비하면, ‘우울(憂鬱)’이라는 표현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우울증 환자의 삶은 격렬하다. 격렬한 고통이다. 현실의 중력이 너무 강하면 세상살이가 고달프다. 지표에 끌려다니며, 먹고 사느라 세속을 헤매게 된다. 우울증은 반대로, 몸에 중력이 작용하지 않아 지표면에서 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무중력 상태의 삶을 오래 견딜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우울증은 살기 싫은 병이기 때문에, 몸과 땅이 붙지 않고 서로 싸운다. 누가 이기겠는가. 중력이 버린 몸. 자살은 이 증상으로 인한 질병사일 뿐이다. 마흔에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삶을 지속하고 있는 내 친구는 말한다. “난 그때 죽었는데, 왜 살아 있는 거야? 그때 죽었는데, 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듯한 느낌 알아? 매일 내 장례식에 다녀온 기분 알아?” 우울증 환자가 24시간 아픈 것은 아니지만, 불행한 감정 상태에 ‘몰빵’되어 다른 인생을 상상하기 힘들다. 우울증에 걸린 그 순간 이후의 삶은 잉여, 살아 있으되 죽어 있는 시간, 비참하고 무의미한 고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약으로 고통을 완화할 수는 있다). 인생이라는 배가 돌아다니기(움직임) 위해서는, 일단 정박(碇泊)할 곳이 있어야 한다. 정박할 곳이 없으면 이동하지도 못한다. 정박하지 않은 배는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모든 것으로부터 상처받는다. 배는 서서히 부서지고 부식된다. 살려는 의지와 죽음의 욕망(‘충동’이 아니다, 죽을 만큼 아픈 것이다) 사이에서의 투병 생활은 매 순간 ‘선택’의 압력에 시달리는 상태다. 이때, 선택은 자유 의지로 하는 선택이 아니다. 기분이 날뛰며(업앤 다운이 반복) 기진맥진해지는 기분 장애(mood disorder)의 상황이다. 내가 아는 우울증 환자는 이 병으로 인해 그녀가 평생 노력해서 얻은 ‘좋은 직장’을 잃었다. ‘성취’가 끝나자마자 질병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행복한 기억이 없다. 가장 괴로운 시간은 아침이다.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떠날지, 한국을 떠날지, 지구를 떠날지. 지구를 떠난다면 갈 곳은, 단 한 곳 우주이다. 그녀는 매번 ‘선택’에 대해 조언을 구하지만, “조언해 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한없이 응대할 사람은 없다. 그녀가 요구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중력이 없어서 생존 가능한 공간, 우주 우주는 무중력 상태이므로 지구와 달리 우울증 환자가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우주가 배경인 <그래비티>에서 우울증 환자는 지구에서와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중력이지만, 첨단 장비가 끊어진 중력과 자신을 연결해주니 발버둥 치지 않아도 생존 가능하다. 지구에서 이 연결은 사람과 사랑이지만, 구하기 쉽지 않은 끈이다. 우주의 무중력은 지구의 중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출발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울은 같지 않다. 두 가지로 구별해야 하는데, 나누지 않아서 문제다. 인간은 누구나 슬프고 기쁘고 우울하고 들떠 있다. 다양한 기분 상대를 산다. 그리고 누구나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약간 우울한 사회, 고뇌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反사회적 인간의 조증(躁症)이 판치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글의 서두에 인용한 대로, 안정된 삶은 어느 정도의 ‘마음의 짐’을 진 채 사는 것이다. 우울, 걱정, 슬픔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타인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이다. 이런 우울한 상태는 인간의 조건이다. 하지만 질병으로서 우울증은 이와 크게 다르다. 정신 질환(mental disease)과 신체적 질병(physical disease)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사회는 유독 ‘정신병자’와 ‘암’ 환자를 다르게 생각한다. 둘 다, 고통받는 몸(body in pain)인데도 말이다. 정신 질환은 가볍게 취급되거나(“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반대로 통제 불가능한 공포의 대상(“정신병자가 탈출했다!”)이라는 식의 극단적 인식을 오간다.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은 아이를 잃은 전문직 여성이다.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 누가 우울하지 않겠는가. 비통하지 않겠는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애도의 시간은 지극히 정상이다. 반면, 이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면, 의학의 도움이 필요한 질병으로 진전될 수 있다. (일견 해피엔딩으로 보이지만)이 영화에서 그녀가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지구에서는 땅을 디딜 수 없었던 그녀가 땅을 밟을 필요가 없는 우주를 경험함으로써,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여행(journey)하는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우리가 우울할 때 혹은 우울증을 앓는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두 경우 모두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집에서, 침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일이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동과 운동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다른데, 움직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우주, 가장 먼 이동이다. ‘우울과 중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만한 통찰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시리아나(Syriana) 이 영화에서 어떻게 조지 클루니를 빼놓을 수 있을까. < 시리아나(Syriana) >, < 마이클 클레이튼(Michael Clayton) >, < 인 디 에어(Up in the air) >를 보길 권한다. 특히 <시리아나>를 강력히 추천한다. 이 영화들에서 그는 반미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이며, 인생의 바닥을 수십 번 치고도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매력적인 루저이며, 패배를 반복하고도 변화할 줄 아는 인간을 연기한다.
[초이스]기프실
< 기프실 >은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오랜 주제였으며 근래에는 다양한 미학적 접근을 통해 문제시되고 있는, 장소 박탈과 기억 투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댐 건설이 결정되고 감독의 할머니가 살아온 마을 ‘기프실’은 수몰 지구에 포함되었다. 공사가 시작되고 감독은 더 이상 생명을 일구지 말라고 경작금지안내판이 붙은 기프실에서의 삶을 쫓는다. 상실이 예정된 이 마을에는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삶의 역사를 담은 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으로서 생의 리듬을 관할하고 관계를 축적한다. 영화는 터전이 되어주는 공간의 의미를 잘 기억하고, 이를 통해 장소 잃은 삶을 질문하기 위한 기록이다. 마을에서는 이런저런 의례가 열린다. 영주댐 착공식이나 자전거 대회같이 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는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며 지역의 일을 유용하는 국회의원의 연설이 울려 퍼진다. 반면 곧 폐교되는 평은 초등학교 총동창회 운동회에서는 대선배 졸업생 할아버지가 오랜 추억을 돌이키며 연설을 하고 마지막 초등학생들이 단상에 선다. 운동회는 이제 사라질 마을이 한동네 사람들 공통의 기억을 만드는 곳임을 상기시키는 의식이기도 하다. 한편 할머니의 장례식은 가족의 기억을 갱신하는 동시에 감독이 간직하고 있는 오랜 기억을 불러들인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내밀한 마음을 고백하고, 할머니를 쫓는 그 마음은 마을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도 닿는다. 그 불안은 내가 어떤 존재를 붙잡지 못하고 영원히 상실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첫 번째 의례에서 우리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용되는 경박하거나 낯선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두 의례인 운동회와 장례식에서는 마을 공동의 기억과 한 개인의 기억이 교차하는 터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에 기록되는 마지막 의례는 오랜 홈비디오에 담겨 있는 신년 잔치다. 이 홈비디오에서 집의 앞마당에는 웃음을 나누는 가족과 건강한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와 마당을 잃은 가족이 할머니의 장례식 이후로 또다시 모여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기프실의 기록은 가족사에서 출발하지만, 국가권력에 의해 파괴되는 현장을 보고하고 그곳과 직접 관계를 맺어나간다. 또 감독의 내레이션은 개인에게 고유한 경험과 감정의 영역에서 마을을 상실하는 문제에 접근한다. 사적 다큐나 에세이, 또는 퍼포먼스 등 사회적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여러 층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근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시도들을 오가면서 <기프실>의 기억은 점점 단단해진다. 영화에서 기억되는 장소란 우선 모이고 쌓이는 곳이다. 터전을 잃는다는 것은 가족의 장소를 잃는 일이며 사람 사이 관계와 역사 지속의 중심을 잃는 일이다. 터전을 잃는다는 것은 삶을 경작하고 수확할 집을 잃는 일이다. 할머니가 무당새로 집에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따라 감독의 의식은 돌아올 검푸른 무당새의 날갯짓과 기프실을 떠올린다. 생전에 자주 서던 거울 앞에 한동안 머무는 무당새를 보면서 감독의 어머니는 연신 새가 곱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고운 무당새는 철거된 집과 이윽고 잠기게 될 마을 앞에서 머물 곳을 잃고 헤맬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감독과 노미 할머니의 관계가 관통하고 있다. 노미 할머니와 감독이 누워서 함께 TV를 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언뜻 의아하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구체적인 정보를 전하거나 이야기의 전개를 이끌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우리가 쉽게 의미화하기 힘든 집에서의 시간을 담고 있다. 한 공간을 나누는 삶이란 왕왕 별일 없이 흐르는 시간을 공유한다. 이 장면에 앞서 면서기 집 할머니와의 인터뷰 중에도 의아한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할머니만을 담던 화면 중간에 들어오는 그것은 인터뷰 중인 감독을 비롯하여 카메라가 세팅된 전체 모습을 한 화면에 담고 있는 풀숏이다. 꼭 필요한지 묻게 되는 이러한 장면들에는 공통적으로 감독이 스크린에 있고, 그것은 할머니와의 거리를 드러낸다. 오프닝과 엔딩 장면에서도 감독은 기프실의 기록에 등장한다. 감독은 계속 <기프실>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감독은 멀리 바라본 기프실의 풍경에서 시작해 마주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인터뷰를 거쳐 시간을 나누는 관계에 이르렀다. 마을에 쌓인 삶이란 이렇게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품고 있다. 감독은 베이고 절단되어 모래가 흘러내리는 산의 모습처럼 사라져가는 마을 및 개발의 풍경과 대립하여 삶의 장소를 다시 자신의 관계 속에서 복원하고 기록한다.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감독은 장소를 박탈당한 후의 할머니들을 따라간다. 그리고 영화는 경작이 계속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기억은 단절되거나 멈추지 않았다. 땅은 댐에 갇혀버렸지만, 기억을 간직한 손길과 발걸음은 안 좋은 토질에서도 험한 비탈길에서도 다시금 경작을 시작하고 있다. 땅에 쐐기 박혔던 경작금지안내판은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뿌리 뽑히고, 영화는 상실감 대신 기억의 투쟁을 껴안는다. 이 경작을 응원하는 감독의 퍼포먼스는 기프실과 감독의 거리를 더욱 밀착시킨다. 함께 살아가는 땅을 일구고자 하는 영화의 의지가 앞으로 경작해가야 할 우리의 미래에 기억의 싹을 심고 있다.
[오늘의뉴우스]캐나다에서 만든 ‘한글’ 애니메이션
572돌 한글날이 며칠 지나긴 했지만 이번 호에서는 한글 관련 영상을 소개하려 한다. 한국인 감독 김인태 (1931~)가 1967년 캐나다 국립영화제작소(National Film Board of Canada, NFB)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Korean Alphabet(한글) >이다. 파스텔 보드를 이용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아름다운 동화처럼 표현한 이 작품은 NFB를 대표하는 작가 노먼 맥라렌(Norman McLaren, 1914~1987)이 음향을 맡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인공 사운드(synthetic sound)를 삽입해 완성도를 높였다. 노먼 맥라렌은 1952년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을 수상한 < Neighbours >를 비롯해 다수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통해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실험영화 감독으로 알려진 인물로, NFB가 애니메이션과 실험영화의 뛰어난 작품과 작가들을 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계적인 작가 노먼 맥라렌의 참여로 더욱 주목을 받은 <한글>은 1968년 제3회 테헤란 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금상을 받았다. <한글>의 오프닝 크레디트 <한글>은 오랜 시간 알려지지 않다가 2002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주관한 ‘캐나다 애니메이션 특별전’에서 상영되며 발굴된 작품이다. 김인태 감독은 NFB 최초의 한국인 소속작가로 활약한 것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고, 이듬해인 2004년 제8회 서울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인태 감독은 어떤 배경으로 NFB에서 <한글>을 만들게 된 것일까? 이 글에서는 <한글>이 탄생하기까지 여정을 대한(對韓) 원조 사업과 연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한글>의 장면들 <한글> 제작 당시 김인태는 한국 국립영화제작소(National Film Production Center) 소속 감독으로 캐나다 외무성의 지원을 받아 NFB 연수 중에 있었다. 김인태 감독이 소속되어 있던 국립영화제작소는 1961년 법령에 의해 독립되기 전까지 통칭 ‘영화제작소’라 불렸는데, 이는 1958년 UN과 미국에 대한 원조로 설치된 공보실 영화과의 뉴스와 문화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제작 스튜디오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1950~60년대 한국의 공보 선전은 미국에 대한 원조 정책과 긴밀한 연계를 맺으며 진행되었는데 이 영화제작소 역시 카메라, 인화기, 애니메이션 촬영기인 옥스베리(Oxberry) 등의 기계 설비를 구축하는 것부터 인력의 양성까지 다방면에 걸쳐 원조를 받았다. 그리고 NFB를 역할모델로 하여 한국의 교육영화 제작 시스템을 완성하고자 했다. 이 원조 사업에 따라 미국의 전문 인력들이 ‘시러큐스 계약(Syracuse Contract)’이라는 ‘팀’을 이뤄 영화제작소에서 연출, 촬영, 녹음, 미술 등 분야별로 3~5년에 걸쳐 영화 인력을 양성했다. 김인태 감독은 바로 이 교육 인력 양성 사업을 위해 1958년 선발된 영화제작소의 제1기 공채 인력이었다. <Welcome to Motion Picture>(1959)에 등장하는 영화제작소의 전경과 스튜디오 촬영 모습 (좌) 시러큐스 계약 인력과 영화제작소 행정관들의 회의 모습 (우) 국립영화제작소의 인력들 (이성철 소장자료) 영화제작소는 1958년, 최신식 기재 설치와 시러큐스 계약 인력이 파견되는 것에 맞춰 연출, 촬영, 편집, 미술 등 각 분야의 공채 직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중 미술부의 인력들은 실사영화에 필요한 제목, 자막 등의 기본적인 미술 작업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작법을 교육받았고, 이에 따라 1958년부터 문화영화에 부분적으로 애니메이션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큰 줄기 중 하나는 이러한 대한 원조로 진행된 교육영화 제작 인력 양성 사업에 맞춰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이루어졌다. 1950년대 애니메이션 광고를 제외한 소위 ‘최초의 순수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되고 있는 작품이 바로 국립영화제작소가 1962년에 제작한 흑백 단편 애니메이션 < 개미와 베짱이 >( 박영일 연출, 정도빈 작화) 이다. <개미와 베짱이> 이후에도 국립영화제작소는 미술부의 박영일과 정도빈 그리고 한성학 등을 중심으로 여러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개미와 베짱이> 홍익대학교 미대 출신의 김인태 감독은 아쉽게도 국립영화제작소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교육영화 전문 인력 수련 후 <전화가설>(1959), <전화도수제>(1961), <자동전화는 이렇게>(1962), <전화를 쓸 때는>(1962) 등의 체신 교육영화와 <치아와 건강>(1961), <기생충을 없애자>(1963) 등의 보건위생 교육영화를 비롯해 다수의 문화영화를 감독했다. 그는 국립영화제작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NFB에서 <한글>의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이미 작품을 통해 깊은 인상을 받은 노먼 맥라렌과의 만남은 이 작품의 완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인태 감독의 국립영화제작소 시절 영화들 그렇다면 김인태 감독의 노먼 맥라렌 작품 관람과 NFB 연수는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그 배경에는 1961년 12월 NFB와 국립영화제작소 간에 맺어진 문화영화 교환협정이 있었다. 양측은 이 협정에 따라 서로의 영화를 교류했는데 일례로 국립영화제작소는 NFB에 <새로운 고향>(양종해, 1961)을 배급하고, NFB의 <협동조합>과 <의자공과 소년들>을 들여와 우리말로 내레이션을 녹음해 상영하는 식이었다. 이와 같은 문화교류 배경에는 원조 사업 초기 영화제작소가 모델로 상정한 NFB의 제작 시스템이 큰 영향을 끼쳤다. NFB는 분야별 소재에 따른 분업화와 1인 제작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역할모델이 되었다. 이에 따라 국립영화제작소의 문화영화 감독들은 NFB의 영화들을 시사하고 제작에 참조했으며, 최봉암, 김인태 등의 감독들이 1960년대 중후반 캐나다 외무성의 지원을 받아 NFB에서 연수를 받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자공과 소년들>의 오프닝 크레디트: 문화영화 교환협정을 사전 공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식 영화제작 시설로서 시청각에 의한 매스컴의 총아로써 영화가 지닌 사명을 다하는”(<Welcome to Motion Picture>) 목적하에 설립된 영화제작소는 교육영화 분야에서 애니메이션 인력을 비롯한 다재다능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박정희 정권하에서 국립영화제작소로 확대 개편되며 원조사업 진행 당시 집중되었던 교육영화 제작 인력 양성이라는 목표를 넘어 정부 선전을 위한 영화제작에 치중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 이 글은 공영민,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선전 애니메이션과 1950~60년대 한국 국립영화제작소 애니메이션의 관계」,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지워진 한국영화사 – 문화영화의 안과 밖』, 한국영상자료원, 2014와 공영민, 「<의자공과 소년들> 해제」, 허은 엮음, 『영상, 역사를 비추다: 한국현대사 영상자료해제집 7-국립영화제작소 문화영화해제집 1』, 선인, 2017에서 일부 발췌하여 엮었음을 밝힌다. 출처 <Korean Alphabet> - NFB 누리집 https://www.nfb.ca/film/korean_alphabet / ; 한국영상자료원 소장자료 < 개미와 베짱이 > < 전화를 쓸 때는 > < 치아와 건강 > < 의자공과 소년들 > -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 Welcome to Motion Picture >(1959) - 한국영상자료원 테드 코넌트(Theodore Richards Conant) 콜렉션 소장자료 이순진, 「김인태 편」, 한국영상자료원 편, 『2012년 한국영화사 구출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문화영화 1: 김인태‧이지완‧이정섭』, 한국영상자료원, 2012.
[한국영화걸작선]<성공시대> 돈을 독재로 삼은 김판촉 씨의 말로를 보라! : 10월의 영화 Ⅱ
제 이름은 ‘허평론’입니다. 평론보다는 리뷰 작업이나 피처 기사 쓰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이 시장에서는 저를 평론가라고 부릅니다. 평론가라고 부를 때 저에 대한 시장 가치가 발생하는 까닭이죠. 그에 대한 불만요? 없습니다. 그 때문에 돈도 벌고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모든 것은 팔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라는 말이 있죠. 누가 했느냐고요? < 성공시대 >(1988)의 김판촉( 안성기 ) 씨가 한 얘기입니다. <성공시대>는 장선우 감독의 ‘실질적인’ 장편 데뷔작입니다. 장선우 감독은 <성공시대>에 2년 앞서 < 서울예수 >(1986)를 선우완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했죠. 하지만 기독교계의 반발로 제목이 < 서울황제 >로 강제적으로 바뀌고 검열로 극장 상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등 비운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인 폭압이 ‘아무렇게’ 자행됐던 ‘암울했던’ 시대였죠. 암울했던 시대를 아무렇게 다룬 태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선우 감독이 다시 한번 사회 풍자를 시도한 작품이 <성공시대>입니다. 이 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는 건 김판촉 씨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입니다.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절대권력은 ‘돈’입니다. 돈이 독재자로 군림하는 시대, 김판촉 씨는 만 원 지폐의 세종대왕 자리에 자신의 얼굴을 대신 ‘뽀샵’ 처리하고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손을 들어 돈을 향한 절대 충성을 맹세합니다. 콧수염만 기르지 않았지 1:9 가르마를 고수하고 슈트를 제복처럼 두른 김판촉 씨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히틀러입니다. 대중을 현혹하는 언사도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취업 면접날 아무거나 팔아보라는 면접위원들의 요구에 주먹을 쥐어 술이 있다고 속이고 돈을 받은 후 빈손을 펴며 ‘당신은 제게 ‘상술’을 사셨습니다’ 아재 개그 눙치는 솜씨가 과연 돈의 히틀러다운 면모입니다. 여전히 돈의 장기 독재 시대, 빅 브러더 개념이 돈으로 발현한 현재에도 <성공시대>의 예리한 풍자는 유효합니다. 그럴진대 정확히 30년 전인 당시 장선우의 ‘꼴통’ 기질 다분한 비판 정신에 매료된 시인 김지하는 김판촉 씨의 상징성에 주목해 ‘판촉’으로 이 영화의 제목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소설가 황석영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소비 욕구를 극단적으로 부추기는 극 중 극단적인 물질사회의 병폐를 비판하면서 ‘판촉’을 앞세운 제목이 이 영화를 알리는 극단적인 마케팅 용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장선우 감독을 대신해 이 영화의 제목을 ‘성공시대’로 지었습니다. 확실히 영화 제목으로 ‘판촉’보다는 ‘성공시대’가 더 냉소적이면서 좀 더 반어적이라 더욱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극 중 ‘성공시대’는 성소비( 이혜영 ) 씨가 운영하는 술집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성공시대는 김판촉 씨가 근무하는 회사의 라이벌 기업 중역들이 자주 드나드는 바(bar)입니다. 김판촉 씨는 성소비 씨에게 접근, 애인으로 삼고 라이벌 기업의 내부 정보를 캐내 자사 신상품 개발에 이용합니다. “사랑도 팔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거야” 자본주의적 사랑론을 설파하는 김판촉 씨에게는 그래서 성소비 씨의 존재가 일회적입니다. 결국, 김판촉 씨의 회사가 라이벌 기업을 누르는 순간, 성소비 씨의 이용 가치는 사라지는 거죠. 김판촉 씨가 돈의 DNA로 움직이는 돈의 황제라면, 성소비 씨는 성호르몬을 풍겨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성의 여왕벌입니다. 버림받은 성소비 씨는 김판촉 씨와 대척점에 있는 기업의 젊은 중역에게 접근, 김판촉 씨가 몰락하는 데 미끄럼틀 역할을 하죠. 물질적 가치가 우선인 자본주의 시대에서 ‘상술’의 가치를 잃은 김판촉 씨는 서울 본사에서 저 먼 강원도의 보잘것없는 보급소 영업소장으로 미끄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공시대>는 물질 자본주의 시대의 가치를 간파하여 초스피드로 성공한 김판촉 씨가 부메랑처럼 돌아온 소비사회의 욕망 파편을 맞아 몰락을 예고하는 작품인 셈이죠. 1980년대 중후반 당시의 살풍경한 한국 사회를 풍자로 꿰뚫어 단면 조감하는 <성공시대>는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와 더불어 한국영화의 뉴웨이브를 선도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성공시대>의 메시지가 지금에도 가치를 유지하는 건 돈을 절대권력으로 삼은 자본주의 소비사회가 신자유주의로 변태하여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발광하는 까닭입니다. 장선우 감독 본인 또한, 100억 원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2)의 흥행 실패 이후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는 연출 활동을 접고 제주도에서 두문불출하는 중입니다. 그런 배경일랑 상관없이 저 ‘허평론’은 지금 이 지면에서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를 주제로 한 글을 써 원고료를 벌며 “모든 것은 팔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다”는 김판촉 씨의 철학을 맞춤한 자본주의적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일회성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사용 가치가 그리 오래 남지 않은 또 한 명의 김판촉 씨일 터. 오랜만에 <성공시대>를 보며 제 처지를 뒤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반성, 돈에만 함몰하여 영혼을 팔아서 어찌할 거냐는 자각.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 <성공시대>는 2018년인 지금에도 전달하는 메시지가 뚜렷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성공시대>는 장선우 감독의 또 하나의 문제작이자 걸작입니다. <성공시대>(장선우, 1988) 영화보러가기 →
[테마연재]기차 밖의 타자들, 그들은 희망인가? - <설국열차>와 <부산행>, <스테이션 에이전트>까지
‘기차 영화’ < 오리엔트 특급살인 >처럼 기차를 무대로 한 영화들은 하나의 장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공간 자체가 내용을 장악한다. 출발과 도착, 한 방향으로 계속 달리는 기계, 체인으로 연결된 차량들, 사건이 벌어지고야 마는 화장실, 마지막 칸, 물러설 수 없음, 절대로 왔던 길(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 기차 영화는 대개 불온하다. 스릴, 총싸움, 살인, 범인 잡기……. 기차 밖도 마찬가지다. 나가봤자 허허벌판이다. 좁은 공간에서 무기는 효율성이 다르다. 어떤 무기가 유리할까. 분명한 것은 기차 칸에서는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다. 전통 국제정치학에서는 “전쟁은 결국 무기전”이라고 하지만, 기차 안에서는 첨단 무기가 승부를 결정짓지 않는다. 코앞의 단도나 야구 방망이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소지품이 무기가 된다. 인간의 역사에서 기차의 가장 큰 의미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변화시켰다는 데 있다. 철도와 기차는 근대 자본주의의 기본 인프라이자 근대성을 상징한다. 기차는 물자 수송과 인간의 이동,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기차 시간은 정확해야 한다. 승객은 제시간에 기차에 승차해야 한다. 10초도 늦어서는 안 된다. 숨이 차도록 기차와 함께 달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우리 자신도 경험했다. 비행기의 지연 출발, 착륙은 흔한 일이지만 기차는 그렇지 않다. 기차를 놓쳐본 이들은 알 것이다. 인간이 아직 하늘을 정복하지 못했지만, 지상은 장악 가능했음을 의미한다. 기차 시간의 정확성은 한 사회의 발전과 기술, 질서를 의미한다. 에릭 홉스봄이 적었듯이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시간에 왔다”(나중에 이 말은 ‘사실’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기차로 시작된 근대 근대 전쟁의 또 하나의 특징은 절멸전(絶滅戰), 대량 학살인데, 이는 인간의 의지(will)가 인간성을 어디까지 변형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히틀러가 자살 직전 마지막에 한 말은 “이것이 내 의지다!”이었다. 우리의 개발 독재 시대의 슬로건 역시 “하면 된다.”였다. 지금도 “하면 된다”고 하는 이들이 없진 않지만, 인간의 의지는 질주하는 자본주의 구조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안다. 인생은 해도 안 되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인간의 의지, 불굴의 의지, ‘그놈의 의지’……. 나는 인간의 의지가 개인과 사회를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저, 사는 만큼만 생각하면 된다. 홀로코스트. 하나의 질서만 유일한 진리가 되는 보편성(uni/versal)의 폭력이 실제로 실현된 대량 학살이다. 프리모 레비의 시 「기차는 슬프다」는 이를 정확히 표현한다. 첫째 연이다. “단 하나의 목소리와 단 하나의 노선으로 / 정해진 시간에 떠나야 하는 기차보다 / 더 슬픈 게 있을까? / 그 어떤 것들도 이보다는 더 슬프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짧은 기간이지만, 인간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근대적 사고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 개념과 인간의 능력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다. 인간(백인 남성)은 이 둘을 하나로 연결하여 미래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서구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적 진보(progress)의 개념이다(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와는 다르다). 단수(單數)의 시간. 과거-현재-미래라는 직선적 시간관과 단수의 주체가 시간의 기준을 제시한다. 개별적 인간의 상황마다 ‘10분’의 의미가 다를 수 있는데, 백인 남성 비장애인의 시계를 중심으로 삼아 객관적 시간 개념이 설정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것처럼 행복한 시간과 지루한 시간은 그 길이가 다르다. 고문당하는 10분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같겠는가. 시간은 척도가 아니라 경험이다. 농촌의 시간과 도시의 시간은 다르다. 장애인의 시간과 비장애인의 속도는 다르다. 이런 차이가 무시되고 누군가의 시간이 기계적으로 설정되고(시계), 사람들은 속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발전, 추격, 100미터 달리기, 문명과 야만, 최연소의 성취... 물론 가장 끔찍한 ‘야만’은 역사적 시간의 공간화(the spatialization of historical time). “한국은 미국의 80년대다.”라는 식으로 각 지역의 발전 차이를 문명화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서구를 기준으로 놓고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국제 사회의 위계를 만들어, 이는 인종적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설국열차 근대성의 교과서, < 설국열차 > 봉준호 감독이 타고난 재능과 훈련, 지성을 모두 갖춘 예술가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영화 만들기를 ‘마스터’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의 첫 장편영화 < 플란다스의 개 >를 가장 좋아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무정형의 영화다. 패턴이 없다. 걸작이라는 얘기다. 영화는, 그 영화에서 화제가 되었던 ‘김뢰하처럼’ 생겼다. 이후 < 살인의 추억 >, < 괴물 >, < 마더 >, <설국열차>, 레오 카락스, 미셀 공드리와 함께 한 옴니버스 영화 < 도쿄! >(일본의 히키코모리를 다루었다)까지, 봉준호는 소위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그는 위 영화들에서 근대성의 주제들을 섬세하게 공들여 변주한다. 좌우를 초월한 남성 연대(그런 면에서 <살인의 추억>과 <설국열차>가 가장 비슷하다), 괴물적 모성, 오염 메타포,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구조적 파국. 특히 숙주(宿主)와 기생충. <괴물>의 영어 제목은 ‘The Host’였다. 2019년 <패러사이트(para/site, 영어 어원으로는 같은 장소에 있다는 의미, 우리말은 ‘기생충’)>를 개봉할 예정이라고 하니, 연작의 완성인 셈이다. 숙주와 기생충은 대립하는 생물이 아니라 공존 관계다. 앞서 말한 그의 영화들은 모두 근대성의 공식에 충실하다. 원작 탓일까. <설국열차>가 가장 노골적이다. 나는 그 영화를 어떤 ‘어른’을 모시고 봤는데, 옆자리에서 나는 다음 장면을 중계했다. 한 장면만 빼고, 다 ‘맞추었다’. 그는 내가 “천재”이거나 영화를 두 번 보았다고 주장했다. 나는 단백질 바(bar)의 원료가 바퀴벌레인 것도 알았다. 바퀴벌레는 영양이 풍부하고, 깨끗하며, 물 한 방울만으로도 몇 달 동안 생존이 가능한 강력한 생명체다. 단지,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기 때문에 오염의 매개체여서 사람들이 질색할 뿐이다. 내가 예상치 못한 장면은 공동체와 리더십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는 한국사회의 부정의와 연관이 있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에게 지도자의 역할이 요구되자, 그는 사양한다. 공동체를 위해 투쟁하다 장애인이 된 사람도 있는데, 온몸이 멀쩡한 자신은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반대다. 이곳은 기회주의자들의 나라다. ‘상이용사’든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 그들은 ‘재수 없는 피해자’이거나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를 다짐케 하는 반면교사이거나 ‘민주화 운동 경력을 팔아 국회의원을 노리는 이들’이다. 반민특위서부터 일상화된 한국의 부정의한 일상의 근대사다. 한국은 살아남는 것, 더 잘사는 것이 유일한 가치인 나라다. <설국열차>의 마지막 생존자는 소녀, ‘흑인’ 소년, 동물(곰)이다. 이들은 근대 자본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희망을 상징한다. 지구의 미래는 이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구를 망치는 데 앞장선 이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들이 미래의 희망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은, 현재를 주도하는 주체의 타자라는 얘기다. 한국의 녹색당에서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탈핵을!”이라는 구호에 대해 고등학생 당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어른’ 당원들은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등학생들은 왜 자신들을 현재의 동반자가 아니라 어른의 관점에서 ‘미래’로 정의하느냐며 항의했다.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구호는 “지금, 당장, 우리 모두를 위해 탈핵을!”이다. 자신들을 타자화하지 말라는 얘기다. <설국열차>나 녹색당의 ‘어른’들은, 타자를 정의하고 보호하는 주체는 성인 남성임을 자임한다. 그들은 재현의 주체이지, 재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0대들은 말한다. “우리는 당신의 미래가 아니야, 당신의 관점에서 우리를 정의하지 마” MB 시대의 ‘조현오’가 만들어낸 좀비, < 부산행 > 스티브 연이 출연한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걸어 다니는 시체)>는 내게 난독 증을 일으킨다. 우울증 환자의 증상을 지칭하는 말 중에, ‘리빙 데드(living dead, 살아 있는 시체)’가 있는데, 죽을 만큼 고통스러우나 죽지 못하는, 그래서 자살만이 치료인 이 병의 특성을 표현한 단어다. 우울증과 좀비 상태는 삶과 죽음의 중간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좀비는 그 자체로 악이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의 반영이다. 괴로운 상태지만 죽지는 않는. 이보다 더 고통스럽고 끔찍한 상태는 없다. ]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아름다운 좀비 영화도 많다. 나는 좀비 영화 중에서 조시 하트넷이 나오는 2007년작 <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30 Days of Night)>를 가장 좋아한다. 아메리카 최북단 도시인 알래스카의 배로우는 매년 겨울이면 30일 동안 해가 뜨지 않는다. 화면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어둠과 추위 때문에 더욱 아늑해 보이는 도시, 카페들, 좀비가 나타날 때마다 흰색 눈 위에 뿌려지는 선연한 붉은 피, 눈 내리는 거리의 가로등……. 영화를 보다 보면 30일이 지나서 해가 뜰까 봐 걱정일 정도다. 그런데 대개의 좀비 영화는 신체 변형의 공포를 활용한다. 피와 근육이 질척인다. 좀비를 두 종류로 나뉜다면 무한 증식하는 좀비와 그 숫자가 그대로 유지되는 좀비다. 감염, 오염, 흡혈 따위로 증식하는 좀비 영화에서는 극소수만 남게 된다. 최근 좀비 영화를 신자유주의 체제의 생존 법칙과 연결하여 분석하는 소위 ‘좀비 사회학’이 인기인데, 인간은 모두 좀비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을 보면서 이명박 시대를 이렇게 비판할 수 있는 영화가 또 있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행>에서 좀비가 되는 방식은 오염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 그럴 힘도 없다 - 상대방을 나랑 같은 처지로 만드는 것이다. MB 시대의 정신을 체화한 ‘MB 캐릭터’는, 이 영화의 최고 악역( 김의성 분)이 아니다. 그는 평범한 생존자다. 문제는 그 이상(以上)을 추구하는 존재들이다. MB 시대의 대표적 모델은 전 서울 경찰청장 조현오 씨다. 그가 저지른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등은 MB가 ‘지시’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MB는, 아예 그런 문제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다. 이 사건들은 조현오 개인의 과잉 충성의 결과였다. MB 캐릭터의 특징은 최소한의 근대적 인간관을 갖추지 못한 데다, 실력은 없으면서 셀럽 욕망이나 권력욕에 미친 사람들이다. 진보 진영과 페미니스트도 마찬가지다. 무식과 뻔뻔함은, 이들이 장착한 최고의 만능 아이언맨 슈트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실력이 있으면 굳이 비윤리적이지 않아도 되는 능력주의 사회다. 이들은 실력이 없으므로 한편으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편으로는 극도로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 이들에게 죄의식이나 수치심은 인생의 낭비다. 이 시대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보편적 윤리가 아니라 약자가 사는 방식이 되었다. 한국사회의 최고의 자살률은 수치심을 버린 자들이 휘두른 자상의 결과다. 인사불성(人事不省) 상태에서 부끄러움 없는 사람의 활기(活氣)는, 그 자체로 흉기다. 한 마디로, 지금 이곳은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다. 정의는커녕, 의리마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 평범한 사람도 오염된다. 오염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한국 사회를 기차 안에 압축해 두고 모두가 나쁜 사람이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조현오’가 되는 과정이 이보다 현실적일 수 있을까. 다시 쓴다. 이 영화는 보통 사람들이 ‘조현오’가 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과정을 그린, 몸서리쳐지는 영화다. 다른 선택은 없다. 오염의 주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주인공 공유 나 마동석 도 구원받지 못하며, 나쁜 세력의 승리에 제단에 바쳐진다. 이 영화에서도 부정의에 오염되지 않을 두 명만 남겨준다. 역시 여성( 정유미 )과 아이( 김수안 )다. 이 영화를 부성 영화로 보는 것은 넌센스다. 스테이션 에이전트 < 스테이션 에이전트 >의 ‘난쟁이’ 그는 타자인가, 진정한 친구인가 <스테이션 에이전트(The Station Agent>(2003)의 주인공 핀은 내가 꿈꾸는 삶을 산다. 동네에 버려진 기차 한 칸이 그의 집이다. 관리해야 할 물건이 없는 간소한 삶. 우리에게도 익숙한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장애인(난쟁이)’ 배우, 피터 딘클리지(Peter Dinklage)와 폴 벤저민(Paul Benjamin), 퍼트리샤 클라크슨(Patricia Clarkson)이 나온다. 토머스 매카시(Thomas McCarthy) 감독의 <스테이션 에이전트(역장)>는 그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각본상(감독이 직접 썼다)과 관객상을 받았다. 조용한 마을, 평범한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사연을 갖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핀을 좋아한다. 그와 차를 함께 마시고, 그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가족과 싸우고 연인과 헤어지고 갈 곳 없는 이들이 간혹 그의 기차 칸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핀은 마음씨 좋은 신부님, 의지할 수 있는 마을의 상담자다. 나는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았다. 왠지 나는 성별과 ‘외모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과 역할에 강하게 동일시했다. 나는 꼭 그였다. 나도 핀과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과 ‘같지 않다’. 그는 마을의 살짝 외곽, 숲 근처에 살고 있다. 그의 존재는 궤도 밖에 있다. 마을 사람(여성)들은 그를 좋아하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먼저 그를 찾지, 그가 먼저 원하는 경우는 없다. 만일 그가 먼저 사람들을 원한다면, 관계의 법칙은 깨질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무언가 결핍이 있는 존재이고,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고, 또한 그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동경해 본 적이 없다. 주변 지인들은 내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해준다’. 그러나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나는 그들과 동급이 아니다. 나 역시 어떤 부분에서 ‘장애인’이어서, 그들 인생의 경쟁 상대가 아닌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핀(역장)을 편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자신과 같을 수는 없는 사람들, 자기 기준에서 ‘차이(모자람)’가 있는 사람은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논외이며, 편안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들을 타자(他者, the others)라고 부른다. 타자는 억압받기도 하지만, 유사 종교적 존재로 존중받기도 한다. 지배와 피지배, 속(俗)과 성(聖), 중심과 주변의 관계에서 모두 후자이되, 긴장이 덜하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이 만든 타자지만, 사람들은 그를 낭만화하고 신비화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타자의 위치에서 탈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과 주인공의 관계 원리는 ‘나는 너와 다르고, 그것은 내가 결정한다’이다. 장애인으로 규정당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느 정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그들의 규범에 괴로워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과의 차이의 문제를 글로 쓸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나와 다른 것’이니까. 감독들은 왜 다들, 그토록 주체인가 근대성이라는 기차는 처음부터 균불등 발전을 의미했다. 이제는 불균등 발전은 극단의 양극화를 넘어, 지구 자체가 망하게 생겼다. 트럼프 같은 인간도 패닉 룸(반공호)을 잃을 판이다. 기존의 근대성을 고수하면 모두가 망한다는 진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자국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아프리카 땅을 마구 사들이는 중국, 전쟁주식회사는 의뢰인에게 돈 대신 받는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는다. 가만히 앉아서 물과 식량을 잃는 사람들, 매일 매일의 내전, 피 묻은 다이아몬드, 녹아버리는 거대한 빙하, 죽은 고래 몸 앞에 든 80킬로그램의 비닐, 바다 위에서 사라지지 않은 스티로폼 부표, 고용 없는 성장……. 이제 기차는 계속 달릴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은 이제까지 근대의 주체가 아니었던 여자, 아이, 자연, 장애인들을 기차 밖에 살게 하거나 생존자로 만든다. 그렇다면 이 타자들은 진정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여성과 아이, 동물은 오염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내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감독 자신이, 예술가 자신이 스스로 타자가 될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그들은 왜 항상 주체이고, 주체를 구원할 수 있는 대상조차 지정할 수 있는 조물주인가. 여성이고 아이들이라고 해서 ‘착하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새로운 주체는 기차 밖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주체는 스스로 ‘꺼지면’ 안 되는가. 자리에서 내려오라. 주체의 전복과 파괴, 변형이 상상력이다. 작품마다 자신을 부수는 소설가 정찬은 그의 걸작 「슬픔의 노래」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을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요. 배를 타는 것과 스스로 강이 되는 것. 대부분의 작가들은 배를 타더군요. 작고 가볍고 날렵한 상상의 배를.” ※ 외부 필진의 원고는 영화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초이스]야광
< 야광(Glow Job) >(2018)은 임철민 감독의 (공개된) 5번째 작품이다. < 프리즈마 >(2013)에 이은 두 번째 장편영화이고, 1인 제작 작품이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소규모 스태프들과 함께 한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프로젝트 <야광>’은 영화와 공연예술 형태로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 프로젝트는 2017년 12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ACC)의 ‘젊은 공연예술 창작자 인큐베이팅 SHOWCASE’에 선정되어 먼저 공연 형식으로 소개되었고, 영화는 2018년 8월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야광> 프로젝트의 출발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다. 하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던 개인적 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라져 가고 있는 어떤 문화에 대한 궁금증이다. 잠이 들었다 깨어난 순간의 몽롱하고 기이한 느낌은 임철민의 영화 세계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모티브다. < 골든 라이트 >(2011)와 <프리즈마>도 바로 그 순간의 체험에서 비롯된 영화다. 차이가 있다면, 전작들에서의 그것이 잠에서 깨어나 마주한 창밖의 빛 체험이었다면, <야광>에서 그것은 영화관 스크린의 (명멸하는) 빛에 대한 체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작들이 그 순간의 느낌을 영화를 통해 되찾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야광>은 처음부터 ‘영화관’ 또는 ‘영화적 체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단지 개인적 체험의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인 문화적 체험의 차원으로 그 질문을 확장하고 있다. 이것은 개인에서 집단으로의 확장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역사)로의 확장이기도 하다. (이미 사라진) 파고다극장, 극동극장, 성동극장, 그리고 (이제 사라지게 될, 즉 아직은 그 ‘흔적’이 남아있는) 바다극장 등은 6~90년대에 영화관이자 남성 성 소수자들의 ‘크루징 스팟(cruising spot)’으로 향유되었던 장소들이다. 남성 성 소수자들은 영화관이라는 공적 공간을 공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리비도의 장소로 점유/전용했다(일종의 ‘스쾃 운동’). 디지털의 도래와 함께 그 남성 성 소수자 하위문화는 사라졌고, 그 문화의 물리적 토대였던 극장도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다(이제 그 문화 또는 커뮤니티는 인터넷과 미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상공간으로 이동했다). <야광>은 이 사라진 장소와 문화의 흔적을 찾아 탐색하는 영화다. 그 과정은 ‘디지털 시대의 영화/영화관’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의 과정이기도 하다. <야광>의 구체적 내용은 몇 마디 말로 요약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자기중심적 서사 구성의 욕망에 저항하는 영화이고, 쉬운 대답을 제시하기보다 기꺼이 실패 가능성을 무릅쓴 수행적 질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미완의 영화’ 또는 ‘과정으로서의 영화’인 이런 텍스트에 대해서는, 안이한 요약과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거듭 보면서 함께 그 질문을 수행할 파트너로 삼는 것이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그 동참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콘텍스트 또는 정보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앞서 이야기한 이 프로젝트의 (식별 불가능하게 혼합된) 두 가지 계기이고, 둘째는 임철민의 영화 만들기가 보여주는 어떤 특징이다. 임철민은 먼저 계획(시나리오 또는 구성안)을 세우기는 하지만, 정작 영화 만들기를 시작하면 그 틀을 깨고 과정에서 마주친 우연적 요소들을 수용한다. 이 비우기와 채우기의 과정은 매우 직관적이지만, 최종적인 전체의 구성은 매우 논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프리즈마>와 마찬가지로 <야광> 또한 매우 논리적인 3부 구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직관적으로 선택된 우연적 요소들과 논리적으로 배치된 3부 구성은, 매우 특이한(풍부하고 깊이 있는 질문으로 확장되는) 상징체계를 설립한다. 물론 이런 영화 만들기의 과정은 <야광> 또는 임철민만의 특징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좋은 작품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야광>에서 특별한 것은 그 상징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의미론적으로 충전된 것들이라는 점이다. 가령, <야광>의 첫 쇼트에서 들리는 ‘빗물 소리’는 그냥 채집된 소리가 아니라 만들어진 소리다. 임철민은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과거 필름 시대 영화관 스크린에서 ‘비가 내리는’ 현상(일종의, ‘시각적 노이즈’)을, ‘빗물 소리’라는 청각적 요소로 전환하여 현재로 옮겨 놓는다(이 빗물 소리는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직접 제작한 ‘빗물 장치’를 통해 얻은 소리다. 그 빗물 장치는 앞서 말한 공연에서 매우 중요한 무대 장치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사라진 과거의 흔적을 현재의 물리적 현상으로 되살려낸 이 소리는, 앞서 말한 ‘극장-크루징 스팟’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환경적 요소였을 것이다. 이 현재화된 과거의 소리는 디지털 시대 남성 성 소수자 하위문화를 구성하는 다른 청각적 요소들(미팅 애플리케이션 알림음 소리, 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고 있는 커버-댄스 문화를 제유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엔딩곡 ‘숨바꼭질’)과의 차이를 통해 일정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미 매우 의미론적으로 충전된 요소이다. 영화 <야광>은 이런 맥락에 대한 아무런 소개 없이 영화의 첫 부분에 던져 놓는다. 이 무심 또는 불친절은 <야광>을 또 다른 의미에서 ‘미완의 영화’로 만든다. 다시 말해서 <야광>은 ‘완결된 미학적 대상으로서의 작품’이라는 신화, 또는 ‘폐쇄된 극장에서만 진정으로 수행되는 영화적 체험’이라는 시네필의 신화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진정한 ‘포스트-시네마(영화이자 영화관이라는 이중적 의미에서의 시네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걸작선]꿈 : 10월의 영화 Ⅰ
신상옥 의 < 꿈 >(1955)을 동시대 세계영화의 자장 안에서 본다면 시간을 거슬러 만들어진 영화처럼 보일 것이다. 빈번하게 깔리는 배경음악과 그리 많지 않은 대화 장면이 없다면 거의 무성영화로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신상옥 자신이 리메이크한 1967년 판 색채 영화 < 꿈 >과 비교해 봐도 서사는 단출한 상태를 넘어 앙상하고 사건을 추동하는 인물의 내적 동력은 거의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그런데도 상대적으로 각본이 훨씬 정교하고 인물의 관계도도 풍부한 색채판 <꿈>에 비해 이 무성영화 비슷한 흑백영화 오리지널이 더 재미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광수의 소설에 기초한 소재지만 이 영화는 서사의 기본 얼개를 여러 이유로 자세하게 축조하는 걸 포기한 인상을 준다. 한국전쟁 직후 폐허에서 시작했을 영화산업의 물적 토대가 그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최인규 감독 밑에서 도제식 조감독을 했다고 하나 데뷔작 < 악야 > 이후 세 번째로 장편영화를 연출한 신상옥의 얕은 연출 경험도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일종의 자서전 비슷한 책 「난, 영화였다」에서 신상옥은 “영화는 근원적으로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꿈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미술을 공부하면서부터 내 의식의 내부에는 탐미적인 요소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 쓰면서 이 영화가 문학의 영화화를 통해 나름의 영상미를 탐구한 성과라고 자평한다. ‘탐미적인 영상미’의 수준에 오리지널 판 <꿈>이 이르렀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지만, 기술적 열악함이 화면에 그대로 드러나는 낭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기묘한 정기가 서려 있어 홀린 듯이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 그렇다. 초기 신상옥 영화의 파트너였던 배우 황남 ( 배창호 감독이 연출한 < 꿈 >에서 주연을 맡았던 안성기 와 외모가 비슷한)이 연기하는 승려 조신이 지체 높은 태수의 딸 달례( 최은희 )를 보고 한눈에 반해 파계하는 초반 설정에서 영화는 훌쩍 서사적으로 비약해 그 두 사람이 절에서 멀리 도피해 달아나는 장면으로 치닫는다. 쫓는 쪽은 화면에 나오지 않는데 쫓기는 그 두 사람은 다급하고 절박하다. 화면은 이들의 반쪽짜리 추격전을 10여 분 가량 담아내는데 쫓는 자들과의 대비가 화면에 구현되지 않는데도 장중하고 긴박한 음악이 깔리며 그들은 스스로 위기감을 재촉하면서 열심히 달아난다. 조신(안성기와 외모가 비슷한...황남) 여기서 시간에 대한 공간의 절대적 우세가 형식적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조신과 달례의 욕망의 장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자연이라는 조형공간이 그 자체로 서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안티 서사에 가까운 틀을 세우는 결과가 만들어짐으로써 영화를 현대적 기운으로 채우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이는 앞서 말한 무성 영화적 외양의 활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 서사를 미니멀하게 축조하는 대신 극적 사건의 계기로 작동하지 않는 자연 그 자체를 지속적으로 전경화함으로써 주인공들의 탈주 욕망을 품는 숭고한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조신의 경쟁자인 평목 스님이 등장해 조신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급작스럽게 처리하는 중반부의 성급한 극적 리듬이나 달례의 정혼자인 모레아손 화랑 일행이 후반부에 등장해 본격적인 추격전을 벌일 때에도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인위적으로 극적 구성을 꾸미는 걸 감추지 못하는 허술한 완성도를 보완할 만큼, 이 영화만의 특이한 기운이다. 모든 욕망의 대상 달례(최은희) 숭고한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짝을 이루는 것은 달례를 연기한 배우 최은희의 존재감이다. 이 영화에서 최은희는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조신을 연모하는 자신의 욕망을 고백하고 기꺼이 그를 따라 신분을 버린 사랑의 도주를 감행하며 조신의 곁에서 평범한 아내로 그를 보필하면서 아름다운 존재 그 상태로 남아 있다. 조신과의 도주 중간에 조신이 너구리굴에 불을 내어 너구리들을 쫓아내고 그 굴에서 쉬려 할 때 달례는 굴에서 도망쳐 나온 새끼 너구리들을 보며 “아유, 가엾어라.”라고 탄식한다. 달례에게 흑심을 품은 평목을 조신이 죽인 것을 알았을 때도 달례는 그런 조신을 책망한다. 결정적으로 본래의 성정을 잃고 조신이 느닷없이 난폭하게 굴 때조차도 그런 조신을 품어준다. 요컨대 달례는 범접할 수 없고 웅장하며 심술궂은 자연이 아니라 언제나 어머니처럼 생육 번성이 가능한 자연과 비슷한 존재로 누구에게나 욕망을 받는 대상이다. 달례는 모레아손의 부서진 욕망의 대상이며 평목의 욕망을 받았고 심지어 연못가에서 목욕을 하다 (역시 느닷없이 나타난) 불한당의 습격을 받는다. 조신은 그들 가운데 유일하게 달례로부터 욕망의 화답을 받은 인물이지만 그 때문에 결국 자신을 쫓아온 모레아손에게 죽임을 당한다. 모레아손의 칼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조신은 꿈에서 깨어나고 죽음과 삶이 인접한 경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조신의 욕망과 좌절은 당시 신상옥이 처해 있던 상황을 간접적으로 유추하게 한다. 신상옥은 선배 영화인 김학성 촬영감독의 부인인 최은희와 사랑에 빠졌고 그들의 사랑은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신상옥이 최은희를 주연시켜 만든 두 번째 영화 < 코리아 >는 충무로 영화인들이 후반 작업을 거부해 곤란을 겪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꿈>에는 욕망에 따른 과보를 치른다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이 투사된 흔적으로서의 달뜬, 동시에 매혹적인 기운이 서투르지만 맹렬한 영화적 활기로 팽배해 있다.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신상옥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서슴없이 영화적 자양분으로 삼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최은희는 신상옥이 연출한 그 화면 속에서 남자들의 그 비루하고 염치없는 욕망을 당당하게 취사 선택해 스스로 자족하며 존재하는 그런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꿈>(신상옥, 1955) 영화보러가기 →
서영춘, ‘위반’의 코미디언
서영춘(1928~1986)은 구봉서, 김희갑 보다 다소 늦게 연예계에 등장했다. 서영춘은 국도극장에서 간판을 그리다가 악극단의 유명 작곡가였던 형 서영은의 도움으로 1952년에 데뷔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쇼 무대의 사회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백금녀를 만나 코미디 콤비를 이루면서 ‘뚱순이와 갈비씨’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후 라디오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적인 지명도를 누리게 되었다. 코믹한 연기력과 뛰어난 순발력, 거침없는 언변으로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서영춘은 당대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이었다. 서영춘은 1961년 <인생갑을병>으로 영화에 데뷔한 뒤, 1965년 <여자가 더 좋아>로 스타덤에 올랐다. 1965년 6월 개봉한 <여자가 더 좋아>는 이례적으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상영되면서 19만의 관객을 동원, 그 해 최고의 인기작이 되었고 이 영화의 인기를 바탕으로 서영춘은 명실공히 원톱 주연이 가능한 최고의 코미디 스타가 되었다. 뒤이어 각종 라디오와 영화에서 서영춘의 겹치기 출연이 이어졌다. 이 시기부터 서영춘은 라디오, 영화, TV와 각종 무대에서 존재감을 발하며 1986년 간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사진1) <여자가 더 좋아>(김기풍, 1965) 포스터. 서영춘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로, 여장을 한 뒤 우여곡절 끝에 성정체성을 발견하게 된 서영춘이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1965년 최고의 인기작이자 서영춘의 대표작이 되었다. 한편, 서영춘은 ‘저질 코미디’ 논란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코미디언이기도 했다. 일례로, 1965년 12월 27일, 중앙라디오방송의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라는 프로그램 중 한 코너인 ‘하꼬바꼬 요리강습’에서 서영춘은 파리로 국을 끓이는 법을 소개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1966년 1월에 열린 방송윤리위원회의 정례위원회는 서영춘의 출연정지 1개월을 의결했다. 저속하고 품위 없는 코미디를 했다는 이유였는데, 중앙라디오방송에서는 그것이 서영춘의 탓이 아니라 각본을 쓴 작가 최휘로의 문제였다고 변명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각본과 코미디 실연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고 판단하여 서영춘의 출연 정지를 재가결했다. 이듬해 9월 서영춘은 또 다시 경고처분을 받았다.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에서 품위 없는 언동의 저속한 코미디를 했다는 것이었다. 1967년에도 역시 같은 방송에서 “우리말을 일본식으로 발음하여 언어순화에 역행”하고 “청소년들에게 저속한 유행어를 전파”시키는 품위 없는 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경고처분을 받았다. 이처럼 서영춘은 활동 기간 내내 라디오와 영화, 방송에 걸쳐 각종 감시와 제재에 시달렸다. 사생활에서도 서영춘은 공권력과 잦은 마찰을 빚곤 했다. 애초에 서영춘은 구봉서처럼 전형적인 ‘가부장’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거나 얌전하고 모범적인 이미지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방송 이외에도 여러 차례 스캔들을 일으켰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1965년 10월 경찰의 날 행사를 둘러싼 소동이었다. 이 날 사회자로 섭외되었던 서영춘은 40여 분을 지각했다. 각급 경찰 간부를 비롯하여 내무부 장관까지 참석하는 행사에 서영춘이 나타나지 않자 30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긴급수배가 내려졌다. 다행히 그로부터 10분 뒤 도착하여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나자 이번에는 화가 난 종로 경찰서장이 그를 사기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서영춘은 형제까지 연루된 폭행사건 및 경찰 치사 사건 등 다양한 사건사고로 가십거리를 제공하곤 했다. 이처럼 서영춘의 통제 되지 않는 성격, 금기를 깨는 막말과 눈치 보지 않는 코미디 스타일 등은 1960년대 후반 <팔도강산>의 아버지의 페르소나 그 자체가 되어버린 김희갑이나 그 자신 ‘건실한 사회인’이자 ‘가부장’으로의 이미지를 일찌감치 획득했던 구봉서의 코미디 스타일과 같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서영춘 코미디에 대한 제재가 지속되던 시기,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코미디의 저속함을 비판하고 나섰다. 먼저 1964년 방송국에서 코미디언 전속제가 시행되면서, 코미디의 수준이 점점 저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코미디는 방송을 건전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별로 보탬이 되지 않고 청취자의 말초신경이나 허파를 자극하는 걸로 만족해온 실정”인데, 코미디언 역시 “영화, 무대, 방송 등을 누비면서 같은 소재를 재탕삼탕 울거먹는다”는 것이었다. 1965년 5월 신아일보의 기사는 코미디언들이 때를 만나 TV, 라디오, 영화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저급한 대사가 아니라 독창성으로” 웃음을 줘야한다면서 작금의 코미디가 수준 이하의 것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1966년 9월 15일 《서울신문》 기사에서는 방송의 저속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코미디라고 단언하면서, 코미디가 청취자의 “가치판단과 생활 윤리까지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또한 “어느 프로보다도 청취자들에게 강렬한 자극과 영향력을 끼치는” 코미디 프로의 정화가 이루어져야 방송 전체의 정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가 요약하는 라디오 코미디프로그램의 특징은 “조잡한 말의 나열과 불순한 상상력의 동원”, “저속하고 무가치한 언어”의 나열, “쓴 웃음을 자아내는 애드립”, “기성(奇聲)의 연속”, “아이디어의 빈곤”, “위트 이하” 등이었다. 기사는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신진 코미디언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응급조치로는 “저속의 낙인이 찍힌” 코미디언을 퇴출해야하며 코미디프로 역시 정지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주장했다. 라디오스타 서영춘의 코미디는 이처럼 초기부터 저속논란에 시달렸다. 그러나 “저속”하고 “무가치”하며 “조잡”하다고 혹평 받는 서영춘의 코미디는 점차 팬덤을 형성했고 서영춘은 이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 라디오와 악극 무대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코미디 배우들이 영화로 진출하면서부터 대부분 비중 있는 조연이나 주연을 맡았던 것과 달리, 영화에서 서영춘은 거의 단역에 가까운 역할부터 시작했다. 그의 데뷔작이었던 <인생 갑을병>부터 서영춘은 <싸우는 사자들>(김묵, 1962), <안개낀 거리>(강범구, 1963), <어머니 울지 마세요>(전홍직, 1964), <눈물의 자장가>(최훈, 1965)에 이르기까지 20여 편에 가까운 극영화에서 엑스트라급 조연을 맡았다. 이 시기에는 코미디영화보다는 여타 장르 영화에서 단역 혹은 조연을 맡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당시 인기 코미디 배우였던 구봉서가 주연을 맡았던 <이거 됩니까 이거 안됩니다>(박종호, 1964)와 로맨틱 코미디 <총각김치>(장일호, 1964) 정도가 서영춘이 출연했던 코미디영화였다. <여자가 더 좋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까지, 영화에서 서영춘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사진2) <여자가 더 좋아>(심우섭, 1983) 스틸. 1965년 <여자가 더 좋아>를 리메이크한 심우섭 감독의 1983년 영화에서 서영춘은 여장남자 식모인 강태기를 짝사랑하는 노인 역으로 출연했다.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그리며 위반의 쾌락을 선사했던 1965년의 영화와 달리 1983년의 영화는 그야말로 ‘건전’하고 ‘상식’적인 교훈극에 가까웠다. 서영춘이 영화 스타로 거듭났던 것은 <여자가 더 좋아>의 흥행을 전후한 시기부터였다. ‘라디오스타’로서 서영춘의 인기가 한층 성장했던 시기도 1965년이었는데, 영화에서도 서영춘은 비중 없는 단역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영화에서 늦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서영춘은 1965년을 기점으로 전성기에 접어들어 한 해에만 35편의 영화에 주, 조연으로 출연했다. 물론, 더 이상 단역이 아닌 ‘비중 있는 조연’ 혹은 당당한 주연으로서였다. 그 중에서 단연 서영춘의 주가를 올렸던 것은 <여자가 더 좋아>였다. 이 영화는 1965년 최고의 화제작이자 그해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하면서 ‘여장남자’ 코미디의 붐을 일으켰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서영춘의 영화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진3) <큰 사위 작은 사위>(이봉래, 1965) 포스터. 1964년까지 주로 조연을 맡았던 서영춘은 포스터에 얼굴이 실린 적이 없었다. 1965년부터 비로소 포스터에 서영춘의 얼굴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의 주연배우들과 함께 큰 비중 없는 조연을 맡았던 서영춘의 얼굴이 포스터 한 켠에 그려져 있다. (사진4)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다>(김화랑, 1965) 포스터. 정면을 바라보는 서영춘 고유의 코믹한 표정, 연민이 느껴지는 표정의 김희갑의 살짝 옆으로 돌려진 얼굴, 김희갑 얼굴 옆 제목의 배치 등으로 인해 조연이었던 서영춘이 주연 김희갑보다 조금 더 중심 인물로 보인다. <여자가 더 좋아>의 성공으로 서영춘은 영화계에서도 원톱 주연이 가능한 스타 배우가 되었다. 스타덤에 오른 코미디 배우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성공담을 가상의 이야기와 함께 엮어 보여주는 영화들이 제작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김희갑의 <김희갑의 청춘고백>(최경옥, 1964), 배삼룡의 <나의 인생고백>(심우섭, 1974), 이후 이주일의 <이주일의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김수형, 1980) 등이 이런 계열의 영화들이었다. 서영춘의 경우에는 1965년에, <출세해서 남주나>(이용호)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대부분 악극단 출신이었던 이 코미디 배우들의 성공담은 시골 출신의 코미디언들이 우연히 악극단에 들어가게 되고 갖은 고생 끝에 스타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코미디 배우들은 자신들의 특기와 코미디 레퍼토리들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었고,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구성을 통해 한층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사진5) <출세해서 남주나>(이용호, 1965) 포스터. 화려한 악극단의 뒷모습, 시골 출신 코미디 배우의 인생 역전, 각 코미디 배우들의 장기를 한층 살린 ‘스펙터클’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등이 이 ‘가상의 전기 영화’들이 가진 특징이었다. 서영춘의 ‘성공담’을 엮은 <출세해서 남주나> 역시 이런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렇게 성공한 코미디 배우의 대명사가 된 서영춘은 1966년부터 1971년까지 6년 동안 8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이 시기에 서영춘은 다양한 하위 장르의 코미디영화들에 출연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외화 <007> 첩보 시리즈를 패러디한 <살사리 몰랐지>(일명 <007 폭소판 살살이 몰랐지>(김화랑, 1966)), <요절복통 007>(김대희, 1966), <기상천외>(김대희, 1967) 등이었다. 서영춘은 이 영화들의 주연을 맡아, 한국 코미디 첩보물을 개척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6) <살사리 몰랐지>(김화랑, 1966) 포스터 (사진7) <살사리 몰랐지>(김화랑, 1966)의 서영춘 (사진8) <살사리 몰랐지>(김화랑, 1966)의 한 장면. 탐정소설 매니아인 보석점 직원 서영춘이 우연한 기회에 007처럼 첩보원이 되어 마약밀매법 일당을 소탕한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에서, 서영춘은 자신의 유행어인 ‘살사리 몰랐지?’를 매 에피소드마다 연발하며, 자신의 코미디 레퍼토리인 여장하기, 권투 시합 등의 장면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냈다. 한편, <살사리 몰랐지>에서처럼, <여자가 더 좋아>의 성공 이후 서영춘이 주연인 코미디영화들에서는 서영춘의 여장이 주된 플롯의 장치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김화랑, 1966)이나 <내 것이 더 좋아>(이형표, 1968)가 대표적인 영화였다.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은 일종의 <시집가는 날>의 패러디로, 이 영화에서 서영춘은 부잣집 바보 도령(김희갑)에게 시집가게 된 주인댁 딸을 대신해서 결혼하는 머슴의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김희갑과 서영춘의 결혼생활이 유발하는 웃음의 코드는 <내 것이 더 좋아>에서 더욱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다. <내 것이 더 좋아>는 가수가 되고자 하는 꿈을 안고 시골에서 상경한 성춘(서영춘)이 우연히 만난 봉수(구봉서)의 집에 얹혀 살게 되면서 부부 행세를 하고 각종 소동을 벌이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세 차례에 걸친 시나리오 검열과 실사검열 이후의 (조건부) 상영허가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개봉한 영화로, 서영춘 코미디의 ‘불온함’이 잘 드러난 대표작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사진9)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김화랑, 1966) 포스터 (사진10) <내것이 더 좋아>(이형표, 1968)의 한 장면. 목욕탕에서 쫓겨난 서영춘 (사진11) <내것이 더 좋아>(이형표, 1968)의 한 장면. 미용체조를 하는 서영춘. 이 영화에서 서영춘은 혼자 있을 때도 풀메이크업의 여장을 하고 몸매를 가꾸기 위한 미용체조에 열중하는 등 성적 혼란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60년대 후반에 서영춘은 주로 구봉서 주연의 코미디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영춘은 구봉서와 짝을 이루어 ‘남자 시리즈’나 ‘팔푼이 시리즈’ 등에서 조연으로 등장하여, 취업과 결혼이라는 지상 과제에 서민 대중의 욕망을 투사했다. 구봉서가 항상 성공적으로 취업과 결혼이라는 임무를 완수하고 ‘정상적’인 중산층 가정의 윤리를 구현하는 ‘가부장’으로 거듭나는 인물을 연기할 때, 서영춘은 그의 곁에서 좌절하거나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성실하고 우직한 구봉서에 비해, 한결 약삭빠르고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서영춘은 그럼에도 과히 밉지 않은, 평범하면서도 속물스러운 서민 대중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했다. <단벌신사>(김기풍, 1968)에서 친구 구봉서의 복권을 탐내는 도어맨, <남자미용사>(심우섭, 1968)에서 또 다른 가짜 미용사로 변장해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되돌리려다 결국 결혼식장에서 버림받는 세탁소 직원, <번지수가 틀렸네요>(심우섭, 1968)에서 사장 딸인 줄 알고 접근하여 결혼을 약속하게 되지만 사실은 식모였음을 알게 된 수위(물론, 사장 딸은 구봉서와 결혼하게 된다.), <요절검객 팔도검풍>(김기풍, 1969)에서 생계가 어려워 가짜 장군을 사칭하고 다니다 우여 곡절 끝에 진짜 산적을 잡게 되고 진사 댁의 식모와 맺어지는 검객(물론, 여기서도 진사 딸은 구봉서와 결혼한다.) 등 서영춘의 캐릭터들은 성공의 ‘일보직전’에서 약간의 패배와 함께 약간의 좌절을 맛보는 인물이었다. (사진12) <단벌신사>(김기풍, 1968) 포스터. 구봉서의 단벌양복과 복권을 탐내는 친구 서영춘 (사진13) <남자미용사>(심우섭, 1968)에서 가짜 앙드레로 변장한 구봉서와 서영춘(오른쪽), 그리고 진짜 앙드레 곽규석(가운데) (사진14) <번지수가 틀렸네요>(심우섭, 1968)에서 사장 딸 행세를 하는 식모에게 속아 넘어간 수위 서영춘 (사진15) <요절검객 팔도검풍>(김기풍, 1969) 포스터. 가짜 검객 구봉서와 서영춘의 억울한 민중 구하기가 펼쳐진다. 1960년대 후반 근대화의 뒷길에 놓인 서영춘의 캐릭터는 혹독한 삶의 조건 속에서, 여장이나 변장과 같은 속임수가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도시 변두리의 떠돌이들이었다. 구봉서와는 달리, 처음부터 서영춘은 지켜야 할 가족이나 도와야 할 동생이 있는 ‘가부장’의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좀 더 가벼운 몸놀림으로 제 한 몸을 건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불타는 생존욕구로,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변장을 하는 것은 그에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영춘 캐릭터의 실패는, ‘정상성’이나 ‘사회적 규범’을 포기한 데 따른 일종의 징벌과 같은 것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죄책감 없이 ‘가학’적 쾌감을 만끽하게 했다. 그런 한편, 서영춘의 거침없는 언변,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애드립, 기괴하고 과장된 표정과 슬랩스틱에 적합한 신체는, 점차 경직되어 가던 사회적 분위기와 국가의 규율 안에서 ‘해방감’을 주는 위반의 쾌락을 선사했다. 이런 점에서, 잘 짜여진 스토리와 닫힌 결말, 교훈을 주는 메시지를 선호했던 한국의 코미디영화 안에서 서영춘은 주연보다는 조연에 더 어울리는 배우였다. 코미디영화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당시에도, 서영춘은 항상 좋은 악극 무대를 기획하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악극단 시절부터 쇼와 만담, 사회 등 단편적이고 버라이어티한 구성에서 강점을 보였던 서영춘은 1960년대 말, 코미디언으로는 처음으로 시민회관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기획하여 코미디 쇼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소비되었던 ‘서영춘’이라는 캐릭터 안에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코미디로, 그 자신만이 주연인 쇼를 연출하기 위해서였다.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코미디언들과 마찬가지로 서영춘 역시 텔레비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1971년 8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이 마지막 다작으로, 1972년 이후부터 1979년까지 총 8편, 1980년대에는 총 4편에 출연했다. 이 시기에 서영춘은 <팔도강산>의 아류작이라 할 수 있는 국책영화 <노래 실은 관광여행>(박희준, 1973), <팔도유람>(이명식, 1974)를 비롯하여 여전히 1960년대의 향수를 안고 있는 심우섭 감독의 영화들 <마음 약해서>(심우섭, 1979), <형님먼저 아우먼저>(심우섭, 1980), <82 바보들의 청춘>(심우섭, 1982), <여자가 더 좋아>(심우섭, 1983)에 잇따라 출연했으나, 그 웃음의 질이 예전 같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텔레비전의 시대가 도래하자, 단편적이고 감각적이며 속도감 있는 웃음을 추구했던 텔레비전 코미디에서 서영춘의 코미디는 더욱 빛을 발했다. 코미디영화들은 여전히 제작되었지만, 서영춘의 코미디는 이미 한껏 순화되어 텔레비전으로 넘어가고 난 뒤였다. <참고문헌> 박선영, 『코미디언 전성시대- 한국코미디영화의 역사와 정치미학』, 소명출판, 2018.
[초이스]비오는 날의 산책
영화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산책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안한 상황을 그리고 있고 채 산책이라고 느끼기엔 너무 짧은 소품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다. 영화는 어릴 적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비는 내리고 우산은 살이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고 막상 나가자니 친구들이 놀릴 것 같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주인공 보영이는 하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삐져나온 얄미운 우산살은 결국 부러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는데 같은 상황에서 어릴 적 나의 모습은 어떠했던가를 생각해보면 추억이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늘 만만디였던 나는 비가 오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비는 그칠 것이고 그다음에 가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늘 그렇게 하곤 했는데 사실은 우산을 들고 오는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와는 달리 우리 어머니는 비 오는 날에 학교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시길 살다 보면 여러 어려움에 닥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없으니 비가 오면 비를 피해서 집으로 오거나 비가 그치면 오라고 하셨다. 섭섭할 만도 한데 필자는 묘하게도 비를 맞고 온 적이 거의 없다. 도저히 그치지 않을 비라면 맞고도 오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비가 그치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친구들의 우산을 같이 쓰고 올 정도의 베짱이 없기도 했지만, 이 상황은 결국 내가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동일한 상황에서 주인공 보영이는 어머니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도 아닌 제삼자에 의해 이 상황을 정말 판타지 하게 벗어나게 된다. 바로 정체불명의 개구리가 그 제삼자였는데 이 개구리와 함께 춤을 추다 보니 하늘을 솟아오르게 되고 마치 하늘을 헤엄치듯 날면서 하교하게 된다. 우산살이 부러진 채 우왕좌왕하던 자신을 놀리던 남학생을 신나게 윽박지르며 말이다. 수묵화기법으로 그려진 <비 오는 날의 산책>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익숙한 여름날의 교정을 여중생 보영이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여중생 특유의 발랄한 감수성과 개구리와의 교우라는 판타지한 상황을 여성적 터치로 그려낸 이 작품이 삼십 대 남성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만큼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고 있는 작품이라 중년남성인 필자도 공감이 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자연, 동물 모두가 저마다의 모양새를 뽐내며 서로 영향을 주고 공존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면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를 한국적 서정으로 옮긴 느낌도 든다. 동양적 정서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적 정서와 미학이 더 깊이 묻어 있기에 꽤 오래전 작품임에도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여름날의 수업, 빗방울, 친구, 어머니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되살려 주는 이 작품은 여전히 비 온 뒤 청량한 하늘처럼 짧고 신선하게 내 마음의 위무가 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는 여건이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상황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것에서 아쉬움이 크다. 누구에게는 추억이 되고 누구에게는 꿈이 될 수 있는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다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여전히 힘든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 독립애니메이션계에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다행히도 온라인에서 이 작품을 볼 수가 있어 아래 링크를 첨부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http://youefo.com/film/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