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텃밭
한참 커가고 있는 아이들 뛰는 문제-층간 소음문제로- 요즘 아랫집과 잦은 마찰이 있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나한테 있을까 했다. 애들에게 제발 뛰지 말라 하는 게 일상 대부분의 대사가 되면서, 그 말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걸어 다녀본 적 없는 시골에서의 내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는 정신없이 뛰놀았어도 괜찮았는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 도시화 문제, 요즘 우리들의 하루하루 스트레스와 그 예민함 등을 이해한다 하면서도, 뭔지 모를 삭막함에 안쓰럽다. 이웃들의 얼굴도 모른 채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한 나와 윗집 소음에 짜증내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현진 감독의 2014년 작 < 텃밭 >을 보면서 잊고 살았던 내 어릴 적 동네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는 서울 강남구 포이동 마을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심의 빈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만든 마을, 그리고 그 땅이 서울의 부촌이 되면서 또 다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나야 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기 전 강제 이주와 관련, 마을 안에 뭔가 큰 사건을 기대했다. 그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나에게 큰 감동이 되기를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는 텃밭을 함께 가꾸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 가난하지만 서로의 밥상을 걱정해주는 마음들로 가득하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어릴 적 공동 화장실을 쓰고, 학교 친구들에게 사는 동네가 챙피했다는 감독의 경험과 고백이 포이동 주민들의 이야기에 진심을 부여해준다. 생각해 보니, < 텃밭 >은 왕십리 뉴타운 재개발 문제를 다루었던 감독의 2011년 작, < 우리 사는 동네 >와 대안학교 학생들을 다루었던 2012년 작 < 학교, 밖으로 >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감독의 전작들에 자주 등장시키는 아이들과 아이들이 그렸을법한 그림들의 삽입은, 어쩌면 순수한 시선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천박한 자본의 논리로 와해되는 공동체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그리고 이를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텃밭>의 ‘공동 화장실을 썼음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는 감독의 고백과 ‘나를 자식처럼 여겨주신 마을 주민들에 대한 감사’의 내레이션은 대단히 감동적이다. 영화 속 현장의 커다란 사건을 기대했던 나에게, 비슷하게는 아랫집에 서운해 하고 윗집의 시끄러움에 짜증만 냈던 나에게,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동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또 이런 이야기?, 아직도 이런 이야기?’ 라 생각했던 나의 현재에 따뜻하고 큰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나와 내 이웃의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영화, 더불어 역사가 호명하지 않았던 사람들, 혹은 그 공동체의 의미,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현재로 불러오는 유의미한 영화다. 그래서인지 이 건강한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호명될 오현진 감독의 다음 이야기가 많이 기다려진다. 쑥스럽지만 그리고 당분간일 수 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 볼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