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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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중 (사진: " 소년 ", 전주국제영화제 / © James Benning) 숙련된 장인의 손길이 조립식 미니어처 완구에 민트색 페인트를 칠한다. 노스롭 그러먼(Northrop Grumman),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Raytheon Technologies) 등 완성된 미니어처 외벽의 간판에는 미국의 글로벌 방위 산업체 이름들이 새겨진다. 그 위로 학교에서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년의 읊조림이 얹힌다. “전쟁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배웠어/ 우리가 겪었던 위대한 전쟁들에 대해 배웠어/ 독일과 프랑스에서 싸웠지/ 언젠가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야.” 1964년 발표된 피트 시거(Pete Seeger)의 저항적인 포크 송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나요?(What Did You Learn At School Today)’는 미니어처 모델의 양식화된 조립 과정과 기이한 대조를 이룬다. 정글의 소리와 멸종된 짐승의 포효가 곁들여진 공룡 뼈의 모형으로 열리는 영화 < 소년 >(2025)은 제임스 베닝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문 시도로, 의뭉스러운 도입 직후 작가 특유의 엄격한 패턴을 제시한다. 베닝이 묘사하는 것은 실재적인 세계 이미지가 아니다. 베닝은 풍경을 포기하고, 텅 빈 블랙박스를 배경으로 구조물을 만들고 라디오를 듣는 소년의 관점을 취한다. 시간을 횡단하는 이 가상의 소년은 세상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이 잘못되어가고 있으며, 무언가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구조는 명확하다. 플롯은 8개의 분절로 구성되는데, 각 파트는 미니어쳐 모형을 조립하는 손의 움직임을 따라 흘러가는 시네이드 오코너(Sinéad O'Connor), 샤이렐스(Shirelles),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 냇 킹 콜(Nat King Cole) 등의 노래, 그 뒤를 이어 완성된 모형을 배경으로 하여 1961년부터 2016년까지의 미국 현대사에서 분기점을 형성한 정치적 연설을 병치한다. 이미지는 순수한 유희처럼 보이지만, 사운드는 군산 복합 비즈니스를 위한 폭력과 전쟁의 연대기를 재생한다. 냉전의 종식과 평화를 외치는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인종 분리를 주장했던 백인 정치인 조지 월러스(George Wallace), 흑인들의 힘에 대해 역설하는 인권운동가 스토클리 카마이클(Stokely Carmichael), 이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노동운동가 세사르 차베즈(César Chávez), 이란에 대한 미국의 무기 지원을 인정하는 보수의 상징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기후 위기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환경운동가 세번 컬리스-스즈키(Severn Cullis-Suzuki), 미군의 지속적인 이라크 주둔을 옹호하는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핵무장 종식을 촉구하는 반핵운동가 헬렌 칼디콧(Helen Caldicott)의 연설과 군산복합체의 성채는 아이러니하게 충돌한다. 시대의 아젠다를 초점으로 한 연설의 선집은 인종 분리와 시민권, 이주 노동자 착취, 중동 위기, 복지와 환경 문제, 전후 미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문제들을 연대기 순으로 망라하면서 권력과 자본 또는 둘 다에 대한 욕망의 결과를 보여준다. 노래가 연설에 응답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아니면 모두가 풍자와 야유의 찬양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제임스 베닝의 작품은 역사의 무게와 집단 기억 속에서 예술의 역할을 끊임없이 탐구해 왔지만 이번에는 사뭇 노골적인 어조와 직설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제임스 베닝의 영화를 정의해 온 사색적 무드를 탈피한 생동감이다. 언제나처럼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 유머를 가미한 표현 요소들, 예컨대 붓질을 하는 손동작, 리드미컬한 음악, 그리고 풍부한 질감의 연설 대사 때문에 활력이 넘친다. 이미지, 소리, 단어의 조합은 언뜻 보기에는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호한 통일감을 전달한다. 한편으로 지난 10년간 베닝의 작업들처럼, 구조나 내용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디테일에 대한 궁금증도 피어난다. <소년>의 경우, 설정을 알아차리고, 패턴에 대해 상상한 뒤, 곧바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미니어처 모형에 색칠을 하는 손은 같은 사람의 것일까? 저들은 평소에도 모형을 조립하고 색을 칠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장면을 위해 고용된 배우들인가? 정치 연설과 ‘손’의 소재(所在), 정체성은 관련이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엔딩 크레디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소년>은 의식의 흐름에 따른 게임을 통해 하나의 모델-패턴을 제시하고 노래와 연설이라는 발화 형식의 의도적인 병치를 창조하여 ‘청취’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한다. 엄격한 구성, 역사와 기억을 유희하는 개념적 구조로 관객의 인식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권력과 파시즘의 은유이자 현재에 재건되고 있는 과거의 망령들을 형상화함으로써 예술과 정치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것이다. <소년> 중 (사진: " 소년 ", 전주국제영화제 / © James Benning) 베닝은 <소년>을 “수십 년 동안의 일기를 읽으며 만든, 친밀하고 개인적인 작품”이라고 해설했다. 하지만 영화는 사적인 노스탤지어를 넘어서며, 꼰대의 한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감정도 초월한다. 베닝이 제시하는 8개의 스토리는 군국주의의 포괄적인 역사를 회고적으로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엿보기와 수사적 장식을 제공하는데, 이와 같은 병치의 전략은 계보학의 차원을 서사에 부여한다. 베닝은 과거의 렌즈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무엇이 우리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6천5백만 년 전 공룡을 사라지게 하는 대절멸의 도래, 뼈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다음에 소멸할 종(種)은 인류가 될 것, 이라고 경고한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인간과 그들의 위협받는 미래에 대한 근심을 담은 이 영화는 말과 행위의 불일치가 초래할 것들에 대한 전망도 보여준다. 투쟁과 몰락, 재건에 익숙해진 것처럼 계속해서 모형을 칠하고 조립하는 손들의 움직임은 어딘지 모르게 파괴적이다. 마지막에 베닝은 군산 복합 비즈니스의 최종 장을 화면 중앙에 배치한다. 1945년 8월 히로시마를 초토화한 원자 폭탄 ‘리틀 보이’의 모형은 소문자 영어 제목(<little boy>)에 담긴 ‘소년’의 순수성을 폭파한다.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을 새기는 소년의 사색은 얼마나 헛된 것인가. 진보와 그 대가, 역사의 폐쇄적 순환 궤도에 대해 성찰하는 <소년>은 인류의 서사가 주요 사건뿐 아니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결정들을 통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시청각 요소들의 조합은 일관된 패턴을 따르고 베닝의 전작들에 비해 해석의 어려움이 덜 하지만, 이 영화의 시청각 은유는 개별 요소들의 총합을 능가한다. 상징적인 연설과 정적인 이미지를 병치함으로써, 베닝은 시적인 환기와 정치적 명제 사이를 왕래한다. 스토클리 카마이클의 시민권 연설이나 헬렌 칼디콧의 핵에 대한 경고처럼, 언어의 힘이 이미지를 이기는 순간들은 깊은 영감을 준다. (상) <엘.코헨>(2018), <알렌스워스>(2022) (사진: " L. COHEN ", " ALLENSWORTH ", VIENNALE) (하) <미국>(2022), <브레스리스>(2023) (사진: "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 " BREATHLESS ", RÉEL Archives) 제임스 베닝이 지속적으로 헌신해 왔던 ‘풍경’에 관한 에세이로 영화를 읽을 수도 있다. <소년>에는 두 가지 경관 양식이 작동한다. 먼저 파랑, 노랑, 갈색 등의 채색으로 지속하여 변동하는 경관이다. 두 번째는 완성된 미니어처 모형을 길게 비추는 타블로 쇼트가 자아내는 인상으로 여기서 연설은 일종의 음성 해설처럼 기능한다. 환경음과 음악의 지배를 받는 베닝의 영화들(< 엘.코헨 >, <알렌스워스>, <미국>, < 브레스리스 >)처럼 <소년>은 역사적 풍경에 대한 인내심 있는 응시가 된다. <미국>(2022)은 <소년>과 매우 유사한 도식을 구현한 영화이다. 같은 길이의 정지 이미지 50장이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 이미지 앞에는 검은 무지의 배경에 미국의 50주를 나타내는 캡션이 붙는다. <미국>은 베닝의 다큐멘터리 실천이 세상을 향한 창, 즉 화면 속 현실을 재구성하려 하지 않고 관객에게 경험을 창조하고 전달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주는 분명한 예이다. <소년>은 <미국>의 전략을 확장한다. 정지 카메라로 촬영한 롱 쇼트, 역동적인 요소들이 섞인 정적인 피사체를 포착하는 베닝의 스타일 서명은 <소년>에서 개별 쇼트의 구성과 프레임 안에서 단조로운 요소들의 기하학적 배치로 대체된다. 대중음악과 정치 연설이 어우러진 미국의 작은 풍경들을 기록하는 단조로운 타블로를 통해 베닝은 미국 역사의 토대를 재구성하기 위한 풍경화를 제시한 것이다. 역사를 미니어처로 관람하는 <소년>의 시청 경험은 시간의 지속과 인내를 요구한다. 베닝은 언제나처럼 우리들이 개념적 퍼즐을 조립하도록 내버려두고, 조립을 위한 부품들만을 제공한다. 그가 모델을 구축했듯이 관객은 부품들을 조립해야 한다. 국방비 지출, 인종 정치, 노동운동, 핵전쟁, 기후 위기에 대한 사전 지식과 선입견, 그리고 음악적 취향에 따라 <소년>은 베닝의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자, 그의 필모그래피를 풍성하게 만들어줄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l 영화주간지 《필름 2.0》 편집장,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영화글을 쓰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순교자>는 유현목 영화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기독교반공문예영화다. ‘기독교·반공·문예’는 당시 정권과 순치되고 나아가 권장되었던 요소들이어서 일견 검열에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상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보부의 공식적인 검열 단계는 비교적 수월히 통과했지만 국방부, 중앙정보부, 내무부, 문교부의 개입이 이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국책과 순치되는 영화였기 때문에 관계기관들이 더 간섭하려는 면도 있었다. 또한 이 영화는 <7인의 여포로> 이후 국가가 영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통제하려던 분위기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엘리트들의 의견 역시 중요한 벡터로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순교자>를 둘러싼 논란과 검열 과정은 검열 관계기관들의 역학을 비롯해 <7인의 여포로> 이후 검열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이 당대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계층을 통해 봉합되는 국면을 드러낸다. <순교자>의 검열과정: 상영허가증 발급 이후 국방부, 정보부, 문교부, 내무부가 개입하다 1965년 3월5일 제작사(극동흥업)는 공보부에 <순교자> 영화 제작을 신고한다. 3월 20일에 “정부시책과의 관계-저촉 사항 없음”이라는 전제 하에 시정사항 4개가 지적되며 제작신고가 수리된다. 이후 영화가 완성되어 중도에 제작권한을 양도받은 합동영화주식회사 명의로 6월 10일 ‘영화상영허가신청서’가 제출된다. 6월 15일에 “보안상 유해로운 점 없음”이라는 검열의견서가 작성되고, 대사 1개처를 삭제하는 조건으로 6월 16일에 ‘영화상영허가증’이 발부된다. 그런데 상영이 허가된 6월 16일에 국방부에서 화면 1개처를 삭제하고 대사 1개처를 수정하라는 전언통신문을 보내온다. 공보부에서는 이미 영화상영허가증을 발부한 상태에서 내부적으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월 18일 공보부 영화과 계장이 기안한 내부 결재 서류에 의하면 화면 1개처 삭제를 추가 제한사항으로 승인하지만, 이미 녹음이 끝난 뒤라 대사 수정은 불가능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방화 <순교자> 심사 의견 처리”라는 제목의 부전지에는 <순교자>는 “군사극영화가 아니고 종교극영화”로 “국방부 후원은 군장비 후원”이었고 공보부에서 “국방부에 심사 요청한 바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결국 6월 18일 공보부는 국방부에 직접 “수정사항을 업자 측에 통보하시고 수정토록 조치”하라는 전언통신문을 보낸다. 공보부와 국방부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그림 1) 전언통신문: 국산극영화 “순교자” 심사의견 처리 검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순교자>가 아카데미극장에서 상영중이던 6월 22일에 중앙정보부는 “보안상 유해로운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하였으므로 “삭제 후 상영토록” 하라고 공보부에 통보한다. 그 내용은 화면 3개처와 대사 3개처를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중앙정보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공보부가 보다 긴장하는 기색이 서류에서도 감지된다. 6월23일 ‘방화 <순교자> 제한조치의견 처리’라는 제목의 서류에서 중앙정보부를 CIA라고 칭하며 “토의가 요하다고 사료되옵기 공람하고 회신은 추후 기안”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그러면서 ‘참고사항’으로 “검열 당시 CIA 파견 검열관”이 “보안상 유해로운 점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을 부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6월 15일 합동검열에 중앙정보부가 참여하여 “보안상 유해로운 점 없다”는데 동의해 놓고 뒤늦게 다른 소리를 하는 것에 대한 난감함이 묻어난다. 1964년 중앙정보부의 입장 번복으로 감독이 구속되었던 <7인의 여포로> 사건을 겪은 후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냥 반공영화가 아니라 ‘기독교반공문예영화’였다. 6월 26일에 공보부는 이 영화가 “세계 각국에서 다량 발매된 재미교포” 작가의 소설에 충실하였다는 점과 “당초 귀부와의 합동검열 당시 합의된 바” 있으며, “귀부 추가제한요구를 집행하는 경우에 예견되는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현행대로 상영토록” 하겠다는 의견을 중앙정보부에 통보한다. (그림 2) 방화 “순교자” 제한조치 요청에 대한 회신 이로써 국방부와 중앙정보부의 사후 검열은 일단락된 듯한데, 아직 등급을 정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6월 17일에 합동영화주식회사가 ‘학생관람허가신청서’를 공보부에 접수한 뒤 6월 26일에 문교부 측에서 제한사항 없이 ‘고등학생 이상’에 관람을 허용해도 된다는 의견을 공보부에 통보한다. 그런데 7월 2일에 문교부가 입장을 바꾸어 군인의 방에 걸린 태극기가 표준형이 아니므로 표준형 태극기로 화면을 수정해야 고등학교 이상 관람을 허용한다는 의견을 보낸다. 그리고 7월 6일에 내무부 치안국 보안과에서 ‘학생관람불가’ 의견을 공보부에 보낸다. 7월8일 공보부에서는 문교부와 내무부의 의견을 종합하여, 등급은 ‘미성년자관람불가’로, 문제가 된 태극기 화면은 표준형 태극기로 수정하여 필름과 대본까지 다시 제출하라고 제작사에 통보한다. <7인의 여포로> 사건, 유현목, 그리고 <순교자> 당시 정부의 정책 방향에 거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영화가 이렇게 수난을 겪게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 한 편을 두고 문화 담당 기관은 물론 국가안보, 치안, 교육을 담당하는 복수의 행정기관들이 검열에 참여하였다는 데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국책에 부응하는 영화라고 해서 검열을 덜 받은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간섭하려는 기관이 많았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한 <7인의 여포로> 사태 이후 중앙정보부가 영화 통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5.16쿠데타 직후에 설립된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정권 내내 전방위적으로 권력을 강화해간다. <7인의 여포로> 사태는 영화계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된 사건이었고 <순교자>는 그 여파 속에서 검열을 받은 것이었다. 여기에 당시 기독교계의 반응은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였다. 유현목 감독은 자서전에서 <순교자> 개봉 당시 상영을 앞두고 기독교계가 반발했다고 회고한다. 목사들이 문공부장관을 찾아가 영화에서 신목사(김진규)가 ‘신은 없다’고 말하는 대목을 문제 삼으며 상영금지를 호소했다는 것이다. 개봉한 이후에도 기독교계의 반대는 계속되어서 지방 상영극장 앞에서는 신자들이 입장을 막기도 했다고 말한다. 1) 당시 신문을 보면 기독교계가 일방적으로 반대만 한 것은 아니고 찬반이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된 것은 영화만이 아니라 원작소설부터였다. 1964년 영문으로 출간된 『순교자』(The Martyred) 2) 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남한에도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 속 목사들의 죽음이 거룩한 순교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국내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김은국 작가를 “20세기의 가롯 유다”라고까지 비난했다. 유현목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화하자 큰 화제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에 대한 비난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목사들이 공산당 앞에서 신을 부정했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증언하는 인물이 북한군 소좌라는 것이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분단 이후 남한 개신교와 반공 이념의 강력한 결속이 ‘배교와 이단’의 판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도 “현대 기독교의 문제를 제시하고 기독교적인 고민을 심화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목사들―문익환(한국신학교), 변선환(이화여고 교목), 김광우 목사 등―이 있었다. 3) 또한 언론에서도 “성직자의 고독을 묘파” 4) 한 “중량감 넘치는 역작” 5) 이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그러던 7월 13일에 유현목 감독은 돌연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다. 1965년 3월 23일에 ‘은막의 자유’ 6) 라는 주제로 열린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 세미나에서 발제한 내용이 뒤늦게 말썽이 된 것이었다. 7) 공안 검찰은 <순교자>뿐만 아니라 <오발탄>(1961)과 <잉여인간>(1964)도 용공적이라고 판단하여 유현목 감독을 소환했다고 전한다. 8) <7인의 여포로>의 이만희 감독에 이어 또 다시 영화감독이 반공법으로 입건되는 데 대해 영화계는 물론 보수언론에서도 우려스러워했다. 9) 이와 같은 논란 속에서 <순교자>는 더욱이 문제작이 되었고, 영화에 대한 평가는 높아졌다. 1965년에 베니스영화제에 처음으로 5편을 출품했는데, 그 맨 앞에 <순교자>가 놓였다. 10) 1965년 『실버스크린』 6월호에서는 “세계명작을 영화화한 영화예술의 극치”로 <순교자>를 소개한다. 11) 그리고 9월호에서는 종전에 영화학도들을 위해 연재해오던 학술적인 코너 3개를 합쳐 “내일의 영화인을 위한 쎄미너”라는 지면을 만들고 개봉된 영화 중에서 문제작 한 편을 골라 집중적으로 분석 검토하는데, 그 첫 번째 텍스트로 <순교자>를 선정한다. 1965년 말에 가면 <순교자>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평가는 “종교논쟁까지 불러일으켰던 작품”으로 “테마는 휴머니즘”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유현목 감독은 공보부에서 주관하는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유현목 감독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계속되어 1966년 1월 서울지검은 반공법 위반에 음화제조 혐의(<춘몽>)를 더해 유현목 감독을 불구속 기소한다. 1967년 3월 반공법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고, 음화제조에 대해서는 벌금 3만원 형이 확정되기까지 법적 논란은 계속된다. 일련의 과정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검찰이 중앙정보부와 함께 문화예술까지 재단할 수 있는 상위의 공권력임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언급해 둘 것은 이런 가운데 <순교자>는 미국에 첫 수출되어 상영된 영화 13) 가 되었다는 점이다. 기독교를 매개로 한국전쟁과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 속에서 국내 공권력의 역학 밖에서 움직이는 힘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로 인한 박정희 정권과 기독교계의 충돌은 197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화된다. 1) 유현목, 《영화인생》, 혜화당, 1995, 151-152쪽. 2) Richard E. Kim, The Martyred, George Braziier Inc., N.Y.C., 1964. 3) <기독교계에 순교자 파문>, 《동아일보》, 1965.6.29. 4) <[새영화] 성직자의 고독을 묘파>, 《경향신문》, 1965.6.19. 5) <[영화평] 중량감 넘치는 역작>, 《조선일보》, 1965.6.20. 6) <은막의 자유>, 《경향신문》, 1965.3.24.; <은막의 자유」, 《조선일보》, 1965.3.25. 7) <영화감독 유현목 씨 입건>, 《경향신문》, 1965.7.13. 8) <유현목 감독 입건 논문 말썽>, 《조선일보》, 1965.7.14. 9) <만물상>, 《조선일보》, 1965.7.15. 10) <<순교자> 등 다섯 작품 베니스영화제에 출품>, 《동아일보》, 1965.9.14. 11) <[이달의 문제작] 세계명작을 영화화한 영화예술의 극치>, 《실버스크린》, 1965년 6월호, 114쪽. 12) <[지상콘테스트 200자 시리즈(완)] 청룡상에 출품된 영화들-순교자>, 《조선일보》, 1965.11.28. 13) <영화 <순교자> 미에 첫 수출>, 《동아일보》, 1966.7.21.; <미주 등서 일제상영>, 《조선일보》, 1966.7.21.
올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 로 만나보세요. 정승훈 교수 는 영화의 매체적 특징과 더불어 작품에 영향을 미친 사회 구조나 철학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최근에는 세계화 시대에 발생하는 영화적 경향을 생명정치와 윤리, 철학의 관점에서 연구하며 ‘글로벌 시네마’ 이론을 구체화하고 있다. 저서로는 Cinematic Interfaces: Film Theory after New Media(2013), Biopolitical Ethics in Global Cinema(2023)가 있고, The Global Auteur: The Politics of Authorship in 21st Century Cinema(2016), The Mind-Game Film: Distributed Agency, Time Travel, and Productive Pathology(2021)를 공동 편집했으며, 《Studies in the Humanities》 특집호 내 “Global East Asian Cinema: Abjection and Agency(2019)”를 객원 편집했다. 뉴욕대 아부다비 캠퍼스와 컬럼비아대학교 영화학과에서 강의한 후, 현재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롱비치 캠퍼스 영화과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화가 문화가 된 시기, 평론가로서의 시작 1980~90년대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 역시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 그리고 주한미군방송(AFKN)과 같은 TV 매체에서 방영된 해외 극영화를 통해 영화에 친근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 블레이드 러너 >(리들리 스콧, 1982)의 등장인물 레이첼(숀 영)이 황혼의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에서 ‘이미지’로만 관객을 매료시키는 영화의 힘을 처음 실감했으며, 장 뤽 고다르의 < 네 멋대로 해라 >(1959)에 대한 할리우드식 리메이크작 < 브레드레스 >(짐 맥브라이드, 1983)의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 제시(리차드 기어)가 경찰에게 포위당한 채 춤을 추는 장면 역시, 서사의 개입 없이 인물의 움직임만으로 작품에 집중하는 체험을 하게 해줬다. 이렇게 영화 속 이미지의 고유한 특성을 지각하면서, 스스로 주목한 작품 목록을 짧게나마 작성해보며 영화에 가까워졌다. 1990년대에 진입하면, 새롭고 다양한 영화를 발견하려는 의지에서 발원한 국내 시네필 문화가 본격화된다. 월간지 《로드쇼》의 ‘도시에’란에 김홍준 감독이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실었던 글을 엮은 책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1991)이 고등학교 시절 발표되었다. 영화사에 대한 개괄부터 할리우드·홍콩·유럽 등지의 영화에 대한 지식을 살펴보면서 세계 영화의 면면을 흥미롭게 학습했다. 동시에 이 책에 포함되어있던 ‘영화사상 걸작선(1895년부터 1991년 사이 발표된 고전영화 91선),’ ‘우리세대의 걸작(1980년대 세계영화 100선)’과 같은 목록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영화 감상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특히 ‘우리세대의 걸작’ 100선에 한국영화 몇 편이 포함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이자 한국 영화학도 또는 영화인로서의 필자(김홍준 감독)가 아직은 국제무대에서 발견되지 못한 한국영화의 가치를 대중 독자에게 소개한 대목을 읽으며, 세계에서 한국영화가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좌2) <블레이드 러너>, <브레드레스> 중 (사진: "Sean Young", IMDb / "Breathless", IMDb ) (우1)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때마침 한국영화가 산업적 측면에서도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씨네21》과 《키노》 등의 영화 전문지들이 창간되었고, 1년여가 지난 후에 두 매체 모두 영화평론상 공모로 ‘평론가’를 배출하기 시작한다. 앞에 이야기한 계기들을 거치며 영화를 좋아하게 되고 ‘비평’ 분야 전반에도 흥미를 느꼈던 나에게 영화평론가라는 진로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때까지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었지만, 학부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며 배운 문학 이론을 영화비평에 적용하기를 즐기며 영화를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을 확립하고 있던 터라, 이를 널리 공유하는 기회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던 중, 운 좋게도 2003년에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공모 당시 이론비평을 통해 내가 다루고자 했던 내용이자, 한국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해준 주제를 소개하고 싶다. 바로 ‘작가’로서의 감독이 등장했음을 알리며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를 주도한 대표적 인물, 이창동 과 홍상수 작품 간 비교이다. 이들이 활동하기 직전인 1980년~90년대 중반, 사회비판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를 견지한 젊은 영화로서 박광수 와 장선우 등이 선보인 ‘코리안 뉴웨이브’가 주목받는다. 하지만 1995~96년 즈음에 관심의 초점은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 감독들의 데뷔로 옮겨간다. 이전 세대의 연장선을 밟는 한편 그보다 한층 더 높은 미학적 차원을 달성한 그들의 데뷔작은 한국영화의 질적 전환을 주도하며 많은 평론가들의 비평 욕구를 자극했다. 그 전환의 과정을 들여다보자면, 이 시기의 감독들은 과거사 중심의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동시대 공간을 탐구하려는 의지 를 작품에 투영했다. 특히 이창동과 홍상수는 당시 서울 변두리의 리얼리티를 작품 속 ‘공간’에 내재된 의미(혹은 무의미)나 각자의 재현의 체계(혹은 비체계)에 따라 제시했다. 나는 그들의 작품을 ‘ 집’ 과 ‘길’ 이라는 공간 개념을 중심으로 의미론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한편, 리얼리티 재현 과정에서 각자가 추구한 미학과 스타일의 차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창동이 유기적으로 지은 ‘집’, 홍상수가 소요하는 ‘길’ 이창동의 작품에서는 현대인이 돌아가야 할 원형적 공간으로 이해되는 ‘집’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모두가 떠나온 이곳은 그들이 다시 회귀하고 싶어 하는 궁극적인 목적지이자 ‘ 탈시간적 유토피아 ’가 되지만, 이제는 도달할 수 없는 상실된 공간이다. < 초록 물고기 >(1997)의 주인공 막동( 한석규 )의 가족은 현대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떠밀려 뿔뿔이 흩어진다. 막동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원형적 욕망을 지니게 되지만 실현하지 못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같은 맥락으로 < 박하사탕 >(1999)의 유명한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에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의 대상이 되는 특정 시간은, 순정에 대한 주인공 영호( 설경구 )의 기억을 담은 채 이제는 잃어버린 집과 같은 시공간적 향수를 자아낸다. < 오아시스 >(2002)에서는 종두(설경구)와 공주( 문소리 )가 꽉 막힌 청계고가도로에서 갑자기 공주의 집으로 이동하는 판타지적 순간이 연출되는데, 제목과 같이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키지만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이자 유토피아와 같은 개념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음이 여기서 나타난다. 이렇게 이창동은 갑자기 찾아온 현대사회가 개인을 폭력과 속도전에 연루시켰고, 이전에 간직했던 꿈과 순수, 사랑은 파괴해버렸음을 부각한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와 상실 속에서, 잃어버린 ‘집’을 되찾고 싶다는 무력한 개인의 욕망이 자라날 뿐이다. (좌) <초록 물고기>, <오아시스>, <박하사탕>의 '집'에 관한 설명 (우) <오아시스> 중 공주의 집에서 일어난 판타지적 순간 반면, 위와 같은 특징을 홍상수의 작품에서는 절대 발견할 수 없다. 홍상수가 만든 인물들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곳을 찾으려는 욕망이 없고, 그들이 잠시 머물거나 지나치는 모든 공간은 정착의 터전이 될 수 없는 ‘길’의 변주이다. ‘장소(place)’가 관계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으로서 누군가의 정체성이 담지 되게끔 하는 근거지를 의미한다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텔, 술집, 식당, 정류장, 길거리 등은 이러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 비장소 (non-place)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은 이중 어느 한 곳에 머물더라도 곧 다시 떠나 소요하면서 또 다른 비장소로의 여행을 계속한다. 일생의 한 순간을 떼어다 놓은 듯해 시작과 끝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과정’ 자체이다. 인물이 향하거나 머무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획득하지 않는 그의 공간은 한 마디로 ‘ 탈근대적 아토피아 (atopia)’와 같다. (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중 여관 (우) <강원도의 힘> 중 기차역 이어서 두 감독의 작품 전반에서 리얼리티가 재현되는 방식을 미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이창동은 통합·정주의 아폴론적 편집증에 기반한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리얼리즘 을, 홍상수는 생성·유동의 디오니소스적 분열증에서 비롯된 총체성 해체의 리얼리즘 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1 이창동은 인물, 대사, 행동, 배경 등 작품 속 기호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호들을 활용한 미장센을 롱테이크 마스터숏으로 노출시키며 관객이 이를 역사적 또는 의미론적 차원으로 독해하도록 유도한다. 이때 발견된 의미는 화면에서 그와 유사한 특성을 지닌 기호와 결합하고, 이러한 은유가 반복되면서 기호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의미의 집’을 건축하게 된다. 이렇게 작품 곳곳에 녹아든 세부적 의미가 결합해 상위 의미 체계로 통합되는 리얼리즘을 추구한 이창동의 재현 방식은 아폴론적 편집증을 연상하게 한다. 이와 달리 홍상수의 롱숏에서는 특정한 의미가 독해되지 않고, 내면이 표백된 일상적 표층 현실만이 채집되곤 한다. 인물에게서 나타나는 행위와 몸짓, 습관, 말들이 그의 여행 여정에 흩뿌려져 장면 곳곳에서 출몰하는 광경을, 관객은 그저 관찰할 수밖에 없다. 기호들이 ‘의미의 집’을 이탈해 일상의 순간들을 따라 ‘길 가기’만을 지속하며 총체성을 해체하는 것이다. 유의미한 정보를 주지 않는 화면에서 관객은 가시적·비가시적 세계, 그리고 전지적·관찰자적 시점 간 구분이 무용해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홍상수의 리얼리티는 이창동과 달리 생성·유동의 디오니소스적 분열증과 닮아 있다. 일상에서 발견되는 기호들이 의미와의 결합 없이 인물의 여정을 따라 자유롭게 유희하도록 놓아두기 때문이다. 두 감독의 미학이 이러한 이론과 완벽히 일치한다기보다, 극단적 위치에 있는 두 개념을 빌려 둘 간의 차이를 설명한 것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좌) <초록 물고기> 중. 막동의 집, 도로, 아파트는 차례로 전근대, 근대화 및 그 산물을 의미한다. (우) <오!수정> 중. 마스터숏 없이 반복되는 술자리 장면과 일상적으로 오가는 말들. 논의를 전개하다보니, 다른 한국영화 감독들의 작품 세계 역시 위 관점에서 해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 시점에서 그간 한국영화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대부분의 감독은 이창동의 방식을 택했다. 그들 각자가 한국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고, 이에 기초한 염원과 욕망을 작품에 투영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 와중에 홍상수는 당대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경향을 영화 안에서 실험하며 별개의 노선을 택한, 상당히 독특한 작가이다. 오늘날까지도 홍상수의 실험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한해서만 실행되지만, 대다수의 주류 한국영화는 이창동식 의미의 집짓기에 익숙한 모습을 보이며 이 경향을 확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연구한 세계 속의 영화 위 주제로 이론비평을 작성하고 등단한 이후, 1년간 열띤 평론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시의적 게재가 중요한 현장 비평의 특성상, 개봉작을 특정 기한까지 감상하고 글을 써야 할 의무가 매번 주어지면서 비평에 대한 압박감이 갈수록 커졌다. 더군다나 당시 평론 활동과 불문학 박사 과정을 병행하고 있었기에 부담이 더욱 가중되었다. 기민한 현장 비평계가 주는 자극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작업이 반복된다면 투입을 초과하는 산출로 인해 내적 에너지가 소진되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평론가로서의 한계에 도달했을 뿐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고 마음도 영화로 향해 있었기에, 당시 내가 내린 결심은 영화를 ‘공부’ 하는 것이었다. 이때 한국영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한국사회의 ‘거울’로서의 기능에만 치우쳐 있었던 듯하다. 한국영화가 한국의 역사와 사회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수단으로만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계가 지속되다보니 존재론, 매체론, 현상학적 의미 등 영화의 본질에 관해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학술 개념이 국내에 적용되는 시점이 늦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불문학 도서를 번역하며 현대 문학 및 사상의 흐름을 인지함과 동시에 해외 학자들의 현대 영화 이론이 국내로 유입되는 과정을 목격한 나로서는, 유학을 떠나 한국영화에 보편적 영화 이론을 적용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외 유학 중 작성한 박사 논문 Cinematic Interfaces 를 통해 영화 속 모호하고 잠재적인 세계로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페이스’가 서사와 이론 측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지도교수 중 한 명이었던 영화학자 토마스 앨세서(Thomas Elsaesser, 1943~2019)가 2019년에 갑작스럽게 작고한 후, 그가 집필 중이던 저서 The Mind-Game Film 에서 미처 완성되지 못한 부분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보충해 공동 편집하기도 했다. 본 도서는 당시 화제가 된 “퍼즐 영화” *주2 가 사회적 패러다임과 맞물려 있는 측면을 정치, 경제, 사회, 정신분석, 철학 등에서의 이론을 활용해 조명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롱비치 캠퍼스로 오기 전 뉴욕대 아부다비 캠퍼스에서 강의했을 때는, 활발한 세계화의 중심지로서 그 명암을 모두 반영하고 있는 아부다비라는 공간을 체험했다. 또한 앞의 편서의 주제에서도 나타나듯이 당시 영화 연구에 대한 관심사도 미학 이론 너머로 확장되고 있었기에, 이들을 계기로 ‘글로벌 시네마’라는 주제를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게 되었다. 글로벌 시네마라는 용어가 차츰 언급되기 시작했지만 용어의 정의는 쉽사리 내려지지 않았던 때이다. 먼저 공동편서 The Global Auteur (2016)에서는 당시 막연히 떠올린 글로벌 프레임에 맞게 세계 각지 영화의 작가들이 내세운 영화의 정치성 *주3 을 매핑했다. 이를 발판 삼아, 2019년에는 잡지 《Studies in the Humanities》 특집호의 객원 편집자로서 ‘동아시아’ 영화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네마를 설명하는 글들을 모아 “ Global East Asian Cinema: Abjection and Agency ”라는 제목으로 공개했다. 이러한 편집 작업에 반영되었던 관점을 발전시킨 연구가 Biopolitical Ethics in Global Cinem a 에 담겨있다. (좌1) 번역서 『문학의 행위』 (자크 데리다, 2013), 저서 Cinematic Interfaces , 공동편서 The Mind-Game Film . (우2) 공동편서 The Global Auteur , 저서 Biopolitical Ethics in Global Cinema 위 저서에 설명된 글로벌 시네마의 개념을 살펴보기 전에, 한국영화의 세계적 위상이 강화된 계기 에 대해 생각한 바를 먼저 공유하려고 한다. 이창동, 홍상수, 봉준호, 박찬욱 등의 작가가 등장하고 작품의 장르 자체가 다양화되며, 작품의 ‘만듦새’ 역시 개선되어 산업이 진화 했다는 것이 하나의 계기이다. 한류의 인기 에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OTT 등을 통해 전 세계의 접근성이 향상되었다는 점도 있다. 그리고 한국영화 관련 학술 행사와 출판물이 기획되는 경우가 많아짐을 고려할 때 한국영화에 대한 학계의 관심 도 크게 증가했다고 본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한국영상자료원처럼, 앞으로는 영화를 다루는 국내 연구 조직이나 문화 거점을 해외와 연결하는 매개자가 더욱 늘어나리라고 기대해도 좋을 만큼, 한국영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갈래의 연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글로벌 시네마로서의 한국영화에게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은 ‘ 탈오리엔탈리즘 ’이다. 세계 진출을 위해 전통문화의 효과적 재현을 중시한 1990년대와 달리, 최근의 한국콘텐츠는 우리 역사를 우리의 관점에서 해석하되 서구적 모티프나 장르의 보편성을 녹여냄으로써 해외에 비춰진 ‘한국적’ 이미지에 더는 구애받지 않고 있다. 국지적 문화에서 비롯되었지만 글로벌리티를 동반하는, 말하자면 탈오리엔탈리즘적 글로컬리티를 지닌 것인데, 이는 뒤에서 이야기할 ‘글로벌’ 프레임으로 본 세계화 시대의 한국영화가 갖는 고유성이 되기도 한다. ‘글로벌’ 체제의 생명 정치, 그리고 이중 윤리 먼저 오늘날의 글로벌 시네마 개념에 도착하기까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영화가 거론된 방식을 돌이켜보자. ‘세계영화’라는 용어의 의미는 실제로는 존재할지 몰라도 담론적으로는 오로지 그 용어를 바라보는 ‘관점,’ 즉 프레임만이 존재한다. 이 프레임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뉘는데, 내셔널, 트랜스내셔널, 그리고 내가 연구하고 있는 글로벌 프레임이 있다. 먼저 내셔널 프레임에서는 민족국가(nation-state)의 역사와 사회현실, 문화 등을 반영하는 영화들을 배치하며 ‘세계영화’의 지도를 그린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트랜스내셔널 프레임을 통해 이는 상당 부분 해체되었다. ‘ 영토화 ’에 기반한 내셔널 프레임이 민족국가 기반의 영화에게 동질성, 환원성, 폭력성을 요구하는 측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트랜스내셔널 프레임은, ‘ 탈영토화 ’ 개념에 근거해 다양하고 이질적이며 혼종적인 영화로서 세계영화를 정의한다. 이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인력의 공동 제작과 더불어, 특정 작품이 다른 국가나 문화권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늘어났다. 또 다른 프레임으로서 내가 설명하고 싶은 관점은 ' 글로벌 ' 프레임이다. 이는 세계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 재영토화 ’된 시점에서부터 정치, 사회, 윤리의 패러다임이 변화한 데서 기인한다. 냉전 체제가 해체되면서, 양분되어있던 두 이데올로기적 세계가 1990년대 들어 자본주의에 따른 새 시장질서 속의 민주주의적 세계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포괄되어 일컬어지는 ‘포괄적 체제’가 긍정되며 세계화가 시작됐고, 여기에는 관용과 환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내세운 ‘ 연성 윤리 (soft ethics)’가 시대정신으로서 동반된다. 서로 다른 체제나 이념을 타도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 및 대립의 중요성이 사라졌으며, ‘타자’ 역시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주체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적으로 추구되었던 자유와 평등이 이제는 타자와의 공존 속에서 대두된 ‘윤리’로 자리 잡은 것인데, 이를 가리켜 탈정치적인 윤리적 전환이 발생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탈정치적 세계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윤리적 경향의 이중성을 암시한다. 존중과 관용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연성 윤리는 어떤 경우에도 ‘관용될 수 없는’ 행위 역시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관용될 수 없는 행위’가 연성 윤리의 지지를 받는 포괄적 체제를 해칠 때, 그를 사회에서 제거하기 위한 ‘배제’의 메커니즘이 어쩔 수 없이 작동한다. 배제의 징후가 차별, 혐오, 추방과 같이 폭력적인 양상을 띠더라도 이를 정당화하는 ‘ 경성 윤리 (hard ethics)’가 연성 윤리의 이면으로 노출된다. 배제된 타자들은 이 체제로 다시 통합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재차 폭력으로 맞서면서 두 세력 간의 ‘새로운 적대’ 관계가 형성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통합되었던 세계에 또 다른 장벽을 세운 9.11 테러와 이후에도 줄곧 이어져 온 대테러 전쟁들이 대표적 사례이다. (좌) 베를린 장벽 붕괴 (사진: "The Fall of the Berlin Wall", German-American Heritage Museum ) (우) 세계영화를 바라보는 세 가지 프레임, 그중 '글로벌' 프레임의 '새로운 적대' 관계 에 관한 설명. 글로벌 프레임으로 본 세계화 시대는 정치로부터 벗어났다고 하지만, 윤리적 체제를 둘러싼 이 적대 관계는 오히려 ‘ 생명정치 (biopolitics)’의 영향력을 극대화한다. 인간 생명의 탈취 또는 구제 여부를 결정하는 힘으로서 가장 근원적인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생체권력(biopower)이 정치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가 주권과 안보 수호를 명목으로 자신의 체제를 무한 정의의 편에 세우고 타자를 향해 생명정치를 초법적으로 자행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존재들이 발생한다. 체제에 속하지 못하거나 체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생명정치에 의해 주체(subject)로 살아갈 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비체 (abject)들이다. 글로벌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이 폭력적 메커니즘을 생명정치적 비체화(abjection)라고도 부른다. 글로벌 시네마: 비체의 이중 죽음과 대안 윤리 정치·윤리적 패러다임 변화가 비체화를 일으킨다는 글로벌 프레임을 영화에 적용하여, 오늘날 글로벌 시네마의 주제를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는 정치적 변화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 재난 또는 재앙 영화 ’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난이나 재앙’이 우리 시대 주류 상업영화에 가장 굳건히 자리 잡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극중 위기 극복에 기여할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고 해결책도 던지지 않는 대신, 그 빈자리를 디스토피아적 스펙터클이 불러일으키는 파괴적 즐거움으로 채운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양상이 부정적이라고는 절대 단정할 수는 없으며,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 자체의 반영이라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내러티브의 경향은 대체로 ‘ 이중 죽음 ’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된다. 작품 초반에 발생하는 특정 사건이나 트라우마로 인해 주인공은 온전한 주체로 기능하지 못하고 ‘비체화’되며, 사회적으로 소생하지 못하는 상징적 죽음의 상태에 이른다. 다만 비체화된 주인공은 희생자로만 남아있지 않고,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 에이전시 (agency; 미션 수행을 위해 행동하게 만드는 동인을 의미하는 철학 용어)’를 발휘한다. 그들의 에이전시 발현을 촉진하는 목적으로는 재주체화(잃어버린 세계 또는 자신을 버린 공동체로 돌아가 다시 통합됨), 복수(자신을 비체화한 어떤 존재에 대한 복수), 테러(자신이 비체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을 테러), 자살(어떠한 목적도 선택할 수 없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음) 등이 있다. 에이전시가 발현된 결과 이 목적들이 달성되는지를 결말에 확인할 수 있고, 달성에 실패할 시 주인공의 물리적 죽음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비체들의 에이전시가 꼭 위와 같은 목적에 의해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 잠재적 대안 윤리 ,’ 즉 연성 윤리와 경성 윤리가 충돌하는 글로벌 체제로 환원되지 않고, 오직 비체들 사이에서 서로를 위한 긍정적 잠재성을 실험하며 형성되는 윤리를 제시하는 작품도 있다. 에이전시를 발휘하고 있는 비체들이 공존하다가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실존적 선물이 되어줄 때, 그리고 이렇게 선물이 되어주며 서로 간 네트워킹이 실현될 때, 대안 윤리는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여기서 말한 비체들 간 네트워킹은 유토피아적이지 않은 ‘아토피아적 네트워킹’이다. 그들이 만나고 흩어지면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선물되기 경험은 영원할 수 없고 어느 하나의 이상적 방식으로 고정되어있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그 경험의 소중한 잠재성만은 여전한 채로 과정으로서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작품에서의 주체를 ‘비체적 에이전시’로, 공동체를 ‘선물적 아토피아’로 재해석하여 글로벌 시네마 분석을 이어가고 있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2000년대 이후 활동한 글로벌 시네마 작가의 작업을 관련 사례로 연구해왔다. 2000년대 글로벌 시네마 작가들 에 대한 간략한 매핑 글로벌 (코리안) 시네마: 미완성 근대 국가 프로젝트와 그 변주 그렇다면 이러한 글로벌 시네마의 특징이 한국영화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내가 비평 활동을 시작했던 2003년, 공교롭게도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역작들이 연달아 발표되었다. 작품들 대부분은 ‘포스트-뉴 웨이브’라고 불리는 386 세대가 연출했다. 이 세대 감독들은 시기를 고려할 때 문화적으로는 세계화를 경험했지만 각자 한국 근현대 역사를 목도하며 모종의 정치성을 탑재 했다(대체로 1980년대 불법적 국가 폭력이 남긴 상흔이 모티프가 된다).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속 사적 감옥에서의 감금과 폭행, 공상과학 영화의 외양을 한 <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2003)에서 비체화가 이뤄진 배경, <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이 비춘 당시 사회 및 경찰 수사의 폭력적 측면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감독 각자가 격동의 한국 사회 속에서 확립한 정치적 감각이 비체화 내러티브와 에이전시의 방향성에 징후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한편으로는, 관련 작품들이 거의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유사한 구도, 즉 아버지-어머니-아들로 구성된 가족 삼각형의 구도를 지니고 있다. 부정적인 법이나 권력, 제도 등을 상징하는 ‘아버지’는 ‘아들’을 비체화하고, ‘아들’은 ‘아버지’에 저항하며 복수를 꿈꾸지만 영화에서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삼각 구도는 작품이 암시하는 권력과 욕망에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하려는 관객의 욕구를 자극한다. <올드보이> , <살인의 추억> 중 이후 대중적 인기를 몰며 한국영화계에 등장한 ‘천만 영화’들은 앞에서 세계화 시대 한국영화의 특징이라고 잠시 언급했던 글로컬리티를 짙게 반영한다. 생명정치로 비체화된 작품 속 인물들이 에이전시를 발휘하는 동기에 힌트가 있다. ‘나쁜 아버지(가족, 국가 등)’로서의 전근대적 주권자는 초법적인 생체권력을 동원해 주인공인 ‘아들(백성, 시민 등)’을 비체화한다. 비체들은 역시 에이전시를 발휘하지만 그 결과로 달성하려는 목적이 사적 복수가 아니라 공적 정의 실현 에 가깝다는 점이 한국 천만 영화의 특징이다. 자신들을 비체화한 ‘나쁜 아버지’를 ‘좋은 아버지’로 대체하고자 하는 한국사회의 염원이 담긴 내러티브에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고 호응해왔다. 생명정치로 발생한 비체들이 대안 윤리를 모색하는 글로벌 프레임에 한국사회의 정치적 실패라는 역사적 국지성이 결합한 결과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천만 영화는 이렇게 ‘나쁜 아버지’로 표상되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폭력적인 국가권력을 계속해서 소환하고 그것을 환상적 또는 역사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데, 이를 ‘ 미완성 근대 국가 프로젝트 ’라고 표현하고 싶다. 시민들은 자신들을 비체화한 무능하고 폭력적인 국가가 유토피아적 공동체로서의 민족국가 또는 법치국가가 되기를 욕망하며 연대해 역사 또는 재앙 판타지를 조성한다. 더불어, 이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비체들은 함께 연대하는 와중에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선물의 윤리’를 체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 가족을 형성하기도 한다. 딸을 잃은 주인공이 재앙 도중 구한 아이와 밥을 먹는 < 괴물 >(봉준호, 2006)의 한 장면에서처럼, 가족에 가까운 관계로의 발전을 돕는 과정으로 한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음식 공유’를 통해 ‘식구’가 되는 것이 대표적 방식이다. (예시) 미완성 근대 국가 프로젝트 로서의 천만 영화 그런데 흥미롭게도 2010년대 중반부터, 한국영화에서 비체화를 초래하는 근원이 정치권력에서 점차 경제권력 으로 전환됨을 관찰할 수 있다. 자본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이나 경제인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비체화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양극화 사회의 단면이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 기생충 >(봉준호, 2019)은 그 변화의 결정판이다. 글로벌 IT 자본가와 불안정한 노동 무산계급(precariat) 가족이라는 양극화된 인물 설정, 그리고 경제적 계약 관계에 내재된 이중 윤리도 인상적이다. 극중 동익( 이선균 )과 연교( 조여정 )는 기택( 송강호 ) 가족을 상냥한 태도로 존중하는 동시에 피고용인으로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암묵적으로, 하지만 명확히 전제한다. 계약에 근거해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용인으로서 선의를 베풀지만, 피고용인이 그 이상을 요구하거나 불필요하게 간섭하는 등 그들이 전제한 ‘선’을 넘는다면 이들을 ‘혐오(비체화)’한다. 자신들이 혐오 받고 있음을 지각한 피고용인들의 분노는 결국 테러를 유발한다. 역시나 정치의 개입 없이 부자와 빈자 간 격돌만 존재하는 탈정치적 생명정치 프레임이 적용된다. 다만 비체 간 매개나 연대 없이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을’들 간의 권력 투쟁만 이어진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사회 속 비체의 특성을 반영하는 듯 내러티브가 한층 더 비관적으로 변주되었다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 오징어게임 >(황동혁, 2021)은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설정을 통해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정당화되는 체제를 상정해서 자본주의가 자연화된 세계관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경제권력이 낳는 비체화가 최근 주류 한국영화 및 한국 콘텐츠에서 자주 나타나면서 기존 글로벌 코리안 시네마의 전형에 변형을 가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길항: 수행적 자기 모순 <기생충> 중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하는 현상이 있는데, 바로 글로벌 코리안 시네마의 수행적 자기 모순 이다. 작품들 자체는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비체 간 대안 윤리를 모색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이 비판한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를 살찌우는 방식으로 소비 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거둔 기록적인 성과는 영화에 상품성을 불어넣어 글로벌 체제로 빠르게 흡수되도록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비관적인 사회상을 그리게 되기까지 동시대에는 어떠한 문제가 고질적으로 누적되어왔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노력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중은 화제의 작품을 찬양하고 소모하면서 그 안에 담겨있던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수신하지 않는다. 다양한 해석과 전유의 가능성을 지닌 작품일수록 이를 즐기는 관객을 통해 수입이 증대되지만, 이렇게 화제성을 얻어 글로벌 미디어 현상으로 번진 작품은 시뮬라크라(simulacra)로서의 바이럴 밈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적 네트워크가 ‘바깥’을 지시하는 어떠한 시도도 허용하지 않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자본주의는 체제의 바깥을 상정하는 비판적 텍스트마저도 무섭도록 강력한 포섭력으로 다시 흡수함으로써 태연하게도 비대화된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기조에서 발생한 콘텍스트와 여기에 저항하는 텍스트 간의 이 길항적 공생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내게 숙제로 남아있을 것 같다. 오늘 특강에 찾아와준 여러분들도 함께 고민해주시면 좋겠다. * 질문과 답변 * (질문 1)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유사-할리우드’를 흥행 전략으로 삼았다. < 쉬리 >(강제규, 1999)와 같이 할리우드 스타일이 주를 이루되 한국적 요소를 가미해 대중성을 확보한 것이다. 그런데 <올드보이>가 2004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후부터 ‘한국영화’가 전 세계에 하나의 장르와 같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장르로 거듭나며 국제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이유 는 무엇일까?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 (답변) 오늘 강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2000년대 한국영화가 ‘질적으로 성장’하면서, 한국적 특성을 지닌 작품들이 글로벌 시장에 자리 잡는 과정에 대해 질문 해주신 듯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근본적이고 추상적인 요인을 한국영화에 대한 당시 영화인들의 열정과 애정 에서 찾고 싶다. 1980년대 서울대 얄라셩영화연구회 회원을 중심으로 결성된 ‘서울영화집단’의 선집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2000)에 장선우 감독이 기고한 「새로운 삶. 새로운 영화」나 「열려진 영화를 위하여」와 같은 글들을 보면, 당시 시네필 문화를 견인한 인물들이 서구 영화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와중에도 어떻게 자신들만의 주체성을 담지할 것인지 에 대해 끊임없이 각성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해외 영화의 수준에 근접하고자 하는 욕망의 근저에는 어떻게든 우리만의 영화를 스스로 만들어보려는 열망도 있었고, 이 기세가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일군의 감독들에게도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 같다. 과거 한국사회에 만연했던 폭력의 가해자로서의 정부나 제도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한국사회 자체에 대한 애정은 충만한 것이다. 이는 애국주의나 민족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판적 측면을 영화화하고자 하는 집단적 지성이자 욕망 과 같다고 본다. (좌)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 (우) <괴물> 중. 재난 상황을 해결하려는 인물은 거의 ' 일반 시민 '이다. 한국영화에서의 ‘장르’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저서에서 다룬 ‘재난 영화’는 한국에서 2000년대 들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할리우드 스타일을 복사해 적용했다. 화재, 건물 붕괴, 비행기 추락 등 할리우드 재난 영화가 사용한 도상을 추출해 한국적 맥락에서 토착화하려는 시도만 한 것이다. 그러다가 작품 자체의 질적 완성도를 높임과 동시에 한국적 특성을 더 정교하게 반영함으로써 걸출한 한국형 재난 영화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는데, <괴물>(2006) 정도가 그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는 엘리트 집단으로서의 영웅적 인물이 등장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괴물>에서도 나타나듯이 한국형 재난 영화에서 재난에 대처하는 인물들은 거의 일반 시민이며, 이들은 비체가 되어 고난을 겪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스스로 사건을 해결한다. ‘유사-할리우드’ 전략으로부터의 탈피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변화가 빠르면서도 완성도 높게 이뤄질 수 있었던 데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독창적 한국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영화인들의 각별한 애정이 한몫을 했다고 본다. (질문 2) 강연에서 언급된 것처럼, 한국영화는 유독 한 작품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도록 하려는 욕구를 강하게 내비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향은 인위적인 연출의 느낌을 주거나 메시지의 일관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국내 관객에게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 언젠가부터 해외에서 먼저 이 장르적 혼종성 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한국영화에서 엿보이는 장르 혼종적 특징이 결국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향후에도 이 특징이 작품에 지속적으로 반영될 수 있을지 가 의문이다. (답변) 장르 혼종에 대한 한국영화의 집착이 계속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며,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만 워낙 여러 감독에 의해 반복되다 보니 이후 세대 감독들 역시 의식적으로 유사한 경향을 도입하되 자신만의 방식으로 혼종을 시도해 작품에 개성을 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도 마찬가지로 장르적 혼종의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그와중에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수요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강연에서 이야기한 마인드게임(mind-game) 영화와 같이 병리학적 증상을 보이는 주인공이 자신이 맞닥뜨린 게임 상황을 관객과 함께 헤쳐 나가는 스타일은 할리우드의 여러 작품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중이다. 이처럼 유사한 영화적 스타일이 전 세계에 걸쳐 긍정되는 현상 은, 어떻게 보면 동시대 문화와 미디어 전반에 형성된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영향력 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그 ‘바깥’을 떠올리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안의 세계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영화와 같은 ‘텍스트’에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더라도 이를 둘러싼 삶의 현장으로서의 ‘콘텍스트’ 측면에서는 ‘핵인싸’가 되고 싶어한다. 조금 다른 주제이기는 하지만, 견고한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영화적 경향이나 스타일이 동시다발적으로 긍정되는 현상도 이와 같은 측면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질문 3) 한국 상업영화만의 특징 이라고 일컬어지는 전형적 인물상이나 신파성 등이 해외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답변) 한국영화 전체를 일반화해 답변드리기가 어려워, 하나의 사례를 바탕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 부산행 >(연상호, 2016)의 경우 개봉 당시 국내에서는 신파적 측면이 두드러진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해외에서는 신선한 좀비 영화로 긍정적으로 조명된 바 있다. 서구적 좀비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징이 나타나서 그럴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해외 좀비 영화에서는 인간과 좀비의 구분이 명확해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하더라도 좀비가 되면 즉시 처단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부산행>과 같은 한국의 좀비 영화는 좀비로 변했더라도 그 인물에 대한 다른 인물의 감정적 반응이 지속된다. 한국문화에서 엿보이는 ‘정’이나 ‘유대’의 개념이 투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이러한 경향을 해외 관객들은 색다르다고 느낀 것 같다. (질문 4) 설명해주신 ‘글로벌 시네마’는 역사와 정치, 사회의 흐름을 반영해 주제의식과 내러티브를 설정한다. 반면 이렇게 거대한 프레임으로 동시대 사회를 조망하는 영화적 구도에 피로감을 느낀 창작자들은 개인의 삶이나 감정을 미시적으로 다룬 작품들 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경향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시는지 알고 싶다. (답변) 사실 현재 연구 중인 주제로서 오늘 강연한 ‘글로벌 패러다임’은 동시대를 따라 이미 흘러가고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내가 제시한 글로벌 프레임을 넘어서 다가올 사회를, 그리고 그 속의 개인을 살펴보는 작품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2010년대 이후에는 탈정치적 모순에 따른 이중 윤리 외에도 사회 안에서 여러 복합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각자의 방식으로 반영하는 작품들이 계속 발표되고 연구되리라고 예상하며, 나 역시 새로운 흐름을 지켜보고 싶다. (질문 5) 강연 초반 이창동과 홍상수의 작품에 대한 공간적 키워드로의 분석을 보면서, 두 감독 등장 이전 세대라고 언급하셨던 감독들의 작품 에서는 동일한 의미의 ‘집’과 ‘길’ 이 어떻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을까? 특히 장선우 감독의 경우 홍상수 감독의 ‘길’과 같은 방식으로 공간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이를 다소 모호하게 재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장 정종화) <경마장 가는 길> , <너에게 나를 보낸다> 중 (답변) 두 감독 이후의 한국영화 감독들이 거의 이창동 감독의 방식 을 따랐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이전 세대 역시 유사 했으리라고 짐작한다. 이창동 감독의 이력을 고려할 때 그의 작품 세계의 바탕에 문학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한국문학계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에 대한 논쟁이 꾸준히 이어지는 와중, 보다 주류에 가깝다고 논의된 사조는 리얼리즘이었다. 또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 감독들의 공간이 지닌 리얼리티 역시 이창동 감독의 방식에 가깝게 구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선우 감독의 < 경마장 가는 길 >(1991)과 < 너에게 나를 보낸다 >(1994)가 원작으로 하고 있는 소설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을 보인다. 다만 장선우 감독의 이력을 참고할 때, 이러한 원작을 영화로 각색하는 작업이 그의 작품 세계가 지녔던 맥락과 조금 어긋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에 이야기한 「열려진 영화를 위하여」와 같은 글에서 나타난 장선우 감독의 의지는, 포스트 모던을 대표하기보다 한국적 공연 및 서사 문화의 감각을 유기적인 체계로 조직하는 데 가까웠기 때문이다. 1995년 정도부터 영화계의 ‘코리안 뉴웨이브’에 대한 주목이 차츰 줄어든 배경에는 이러한 어긋남이 자리했던 것 같기도 하다. *** 주1. 니체가 『비극의 탄생』(1872)에서 비극(예술)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 속 빛의 신 아폴론과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특성을 이용한 방식을 참고했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이 태양과 같은 밝음과 그 밝음 아래서 사물이 드러내는 균형 및 질서 등을 의미하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무질서한 혼돈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생명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고 이야기한다. 주2. 복잡한 내러티브를 통해 관객을 게임으로 초대하는 200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한 경향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 메멘토 >(2000)와 < 인셉션 >(2010) 등이 해당한다. 주3. 영화 작가주의 개념이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때 정치적 운동의 일환으로 소개된 바 있지만, 세상을 향한 21세기 영화 작가들의 태도에서 정치성은 훨씬 더 징후적으로 드러난다고 보고, 이를 다각도로 분석한 필자들의 글을 동료와 함께 취합했다.
사진: "Lichtspiel Opus 1.",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세계영화사를 뒤져나가면서 슬픈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순간? 영화가 가졌던 하나의 가능성이 역사의 폭력 앞에서 어처구니없이 중단되었을 때. 이번에는 세계영화사의 슬픈 순간 중의 하나와 만날 차례이다. 아마 수없이 이런 순간과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발터 루트만(Walter Ruttmann, 1887~1941)은 188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스위스 취리히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그때 취리히는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중립국으로 모인 다다이스트들의 도피처였다. 여기에 한스 리히터, 트리스탕 차라, 에미 헤닝스, 한스 아르프, 하여튼 셀 수 없는 다다이스트들이 있었다. 한때 제임스 조이스도 여기 머물렀고, 이웃 도시에 러시아의 동지들에게 문건을 보내던 블라디미르 레닌도 잠시 체류했었다. 아마 여기서 발터 루트만은 다다이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1909년에 독일로 돌아왔고, 뮌헨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파울 클레, 라이오넬 파이닝어와 교분을 맺었다. 잠시 파울 클레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그때 파울 클레는 닥치는 대로 화가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중에서 누구보다도 바실리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발터 루트만은 그들의 작품을 유심히 보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그의 영화들 속의 이미지를 가져왔겠는가. (좌1) 발터 루트만 (사진: "Walter Ruttmann", IMDb ) (우2) 발터 루트만 연출 <빛의 유희, 작품 2번>(1922), <빛의 유희, 작품 3번>(1924) (사진: "LICHTSPIEL: OPUS II", MUBI / "Opus III", IMDb ) 발터 루트만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벨기에 아르 누보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헨리 반 데 벨데가 바이마르 미술 공예학교와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를 통합하여 바우하우스(Bauhaus)를 세웠다. (하지만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는 바우하우스를 곧 탈퇴하였고, 독일인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초대 교장이 되었다. 여기에는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미술사를 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쳐 가기로 한다.) 이 학교는 예술의 창조와 20세기 테크놀로지의 ‘결합’이 교육 목표이자 학교의 정체성이며 바우하우스의 프로젝트라고 선언(하다시피)했다. 이 학교에 네덜란드에서 《데 스타일(De Stijl)》을 창간한 테오 반 두스뷔르흐가 방문했고, 러시아 구축주의 미술가 엘 리시츠키도 찾았다. 바우하우스의 방향을 결정한 사람은 헝가리 미술가 라슬로 모호이-너지였다. 바우하우스는 산업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좌) 바우하우스 (사진: "Chronology", Bauhaus Dessau ) (우) 1920년대 바우하우스 마스터 하우스에서, 라슬로 모호이-너지 (사진: "Biography", MOHOLY-NAGY FOUNDATION ) 발터 루트만은 화가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표현주의 그림을 그렸지만, 곧 추상주의 양식에 끌렸다. 그런 다음 영화를 끌어들였다. 이때 발터 루트만은 영화를 ‘새로운 예술’이라기보다는 미술을 위한 새로운 테크놀로지, 새로운 매체, 새로운 사이트(site)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예술에서의 보편언어’를 추구하는 테크놀로지와 추상의 형식을 서로 결합하는 미래를 선언하는 《데 스타일》의 ‘기계 미학’에 관한 논의에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발터 루트만이 선택한 길이 아방가르드 영화로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루트만 자신은 미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고 믿었다. 좀 더 간단하게 스크린을 새로운 캔버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새로운 캔버스는 ‘시간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매체’였으며 여기에 “우리 시대의 속도”를 그려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빛의 유희, 작품 1번(Lichtspiel; Opus 1)>(1921)이다. 영화 제목이라기보다는 회화 작품에 어울리는 제목. 상영 시간 11분 44초. 음악 막스 부팅. 검은 바탕 화면에 푸른색과 초록색 원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시작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형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유리 위에 그림을 그린 이 작업은 명백히 칸딘스키의 영향 아래 놓인 것으로 보였다. <빛의 유희, 작품 1번>은 1921년 4월 27일 베를린 마르모르하우스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 극장에서 한 해 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로베르트 비네, 1919)을 공개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비평가 베른하르트 디폴트는 《프랑크푸르터 자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 “루트만은 자신의 스피드를 미래주의자 캔버스의 영화적 돌진으로부터 가져왔다”라고 썼다. 영화와 미술은 표현주의 영화들과 다른 차원에서 다시 한번 친교를 맺었다. <빛의 유희, 작품 1번> 중 하지만 <빛의 유희, 작품 1번>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상품 광고 아이디어를 찾던 쪽이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아방가르드와 비즈니스가 서로 결합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예술은 다시 한번 돈이 되었다. 그들은 이 작품을 산업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였다. 발터 루트만뿐이 아니라 많은 실험 영화 작가들이 새로운 제안을 받았고, 그들은 작업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곳은 바우하우스였다. 산업 디자인의 관점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한 ‘예술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새로운 통합’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영화라는 표현 대신 매체로서 ‘빛의 구성과 조립으로 이루어진 이 종합’에 관해 1922년 《데 스타일》에 ‘생산, 재생산’이라는 글을 썼다. 발터 루트만은 자신의 작업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왁스-커팅기에 관한 허가권을 얻은 다음 1926년에 로테 라이니거의 영화 <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1926) 오프닝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다.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중 일시적으로 영화(와 미술 사이)의 또 다른 가능성에 다리를 놓았던 순간은 1933년 나치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교하면서 갑자기 사라졌다. 발터 루트만은 추상적인 이미지의 ‘빛의 캔버스’를 버리고 산업 디자인 영화에 관심을 돌렸다. 1935년, 발터 루트만은 군중을 대상으로 자신의 ‘캔버스’를 실험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나치당은 그가 1928년에 모스크바 여행을 다녀온 경력을 문제 삼으면서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감독직에서 해고하고 그 자리에 레니 리펜슈탈을 지명했다. 그 영화가 < 의지의 승리 >(1934)이다. 발터 루트만의 경력은 여기서 끝났다. 오스카 피싱거는 나치 독일을 피해서 1936년에 미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월트 디즈니의 < 환타지아 >(제임스 알가 외, 1940) 작업에 참여했다.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1937년에 시카고에 머물렀고, 미국에 개교한 바우하우스의 교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아주 짧았다. 한스 리히터는 작업을 중단하고 1940년 뉴욕에서 영화를 가르쳤다. ‘빛의 캔버스’는 그렇게 섬광처럼 빛을 발한 다음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하나의 순간이 덧없이 지나가 버렸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이야기는 현실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보고 들었던 엄청나게 많은 기억들 속에서 일부만 골라낸 이야기를 영화라고 한다면, 미처 이야기가 되지 못한 나머지 기억들은 기록영상 컬렉션 곳곳에 심드렁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되는대로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 Archives Korea 1930-1940 >(이하, <AK>)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이 영상을 남긴 제임스 헨리 모리스(J. H. Morris, 1871~1942)의 생애를 중심으로 지난 글 에서 충분히 소개했다. 조악한 화질의 시각자료와 모호한 문헌으로 흐릿하게 전해지던 당시의 모든 것을 그야말로 송두리째 담은 이 필름 릴들을 보면, 이것이 과연 개인적인 취미의 수준이었는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어쩌면 평생 남몰래 하나의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그에 관한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던 헨리 다거 (Henry Darger, 1892~1973)와 같은 ‘이름 없는 예술적 수행자’의 범주로 그를 이해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리스씨는 좋은 아키비스트는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과 저녁 식사 후에 영사기에 걸고 함께 담소를 나누거나,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커피를 마시며 홀로 감상하는 정도로 필름을 관리하면 됐을 것이다. 모리스 정도 되는 사람이 이따금 필름 앞뒷면이 뒤바뀐 채 스플라이싱(필름 이어붙이기)되는 줄을 설마 몰랐을까? 화면의 좌우가 뒤집혀 영사되는 것 정도가 무슨 큰 대수라고. 한 이벤트에 대한 푸티지들이 여기저기 나뉘어 붙어 있는 것도 다 알고 놔둔 것일 테다. 굳이 푸티지들을 다 자르고 정리하여 다시 이어 놓을 필요까지야 있겠나, 나중에 혹시 재편집할 일 있을 때 제대로 따다 붙이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렇게 설렁설렁 하는 것이 푸티지 재사용이 빈번했던 무성영화필름 시대의 흔한 관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컷들 사이에 적당한 메모가 적힌 리더필름이라도 삽입하든지 간략한 개요들을 따로 정리해서 적어놓기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배부른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는 말이다. 결국, 100년쯤 후에 조선인들의 후예가 이 엄청난 영상자료를 발견하고 기뻐서 흥분할지 답답해서 흥분할지 알 리 없는 이 위대한 은둔의 수행자는 필름 외에 다른 어떠한 단서도 남겨주지 않았다. 그래서 <AK>에는 아직 식별되지 않은 인물, 장소, 건물, 사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를 알아내기 위한 추리와 발품 팔이 과정 자체는 괴롭지만 뜻밖에도 미묘하게 즐거운 중독성이 있다. 나는 이런 행위를 ‘식별놀이(Identification Game)’라 부르고 있다. 늘 대수롭지 않은 정보 하나를 밝혀내려 아등바등하는 것이 이상한 집착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사소한 정보 때문에 장면 전체의 숨겨진 맥락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야기가 입체적인 버전으로 ‘리부트(reboot)’되는 경우가 있다. 식별놀이는 이 맛에 한다. 아는 지식이 많을수록, 아는 문헌이 많을수록 난이도가 쉬워지겠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느긋하게 과정을 즐기면 된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영상 속에서 누가 모리스인가?’에 대한 추론들도 이런 과정의 결과이다. 이 글에서 한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겠다. 식별 미션 : 1930년대 탑골공원에 정말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나? 일제의 공원화 사업이 가지는 이중성에 대해서는 여기서 깊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어쨌든 일제는 「조선시가지계획령」(1934)을 기점으로 각 지역의 「시가지계획공원안」에 의해 근대식 공원녹지계획을 수립, 추진했고 경성부는 이보다 조금 이른 1930년, 「경성도시계획서」에 ‘아동공원’을 별도 분류 항목으로 처음 언급했다. 탑골공원의 경우 1932년 12월에 관리주체가 총독부로부터 경성부로 넘어가면서, 이듬해 하반기 즈음에는 ‘아동유희구’(놀이터 기구들) 설치 등의 개수공사를 통해 아동공원으로 재개장했으리라 추정한다. <AK>에는 정확히 식별할 수 없는 장면들을 포함하여 공원 풍경이 심심찮게 포함돼 있다. 이 중, (당시 탑동공원으로 더 많이 불렸던) 탑골공원으로 추정되는 장면은 흑백 시퀀스 두 군데, 컬러 시퀀스 한 군데가 있는데, 모두 아이들이 미끄럼틀, 회전그네, 정글짐, 시소 등을 타고 노는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장면 1] <AK> 01:01:25 부근 [장면 2] <AK> 01:01:40 부근 [장면 3] <AK> 01:02:01 부근 [장면 4] <AK> 01:02:57 부근 [장면 5] <AK> 03:37:54 부근 [장면 6] <AK> 05:10:30 부근 * [장면 3], [장면 4]는 과거 컬러 규격 중 하나인 코다컬러(Kodacolor lenticular) 방식으로 촬영했으므로 화면 전체에 미세한 세로줄이 보임. 따라서 기본적으로 흑백 프린트지만 이를 전용 영사 시스템으로 영사하여 컬러를 구현했었음. [장면 6]은 코다크롬(Kodachrome) 촬영본임. 대략 그럼직하더라도 기본적인 정보부터 맞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큰 억측의 발단이 된다. 영상의 장소가 1930년대 탑골공원인 것, 그리고 이때 탑골공원에 정말 놀이터 시설이 있었다는 것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증빙할 근거를 모을 필요가 있다. 제일 만만해 보이는 [장면 5]부터 추리를 시작해 보자. [장면 5] <AK> 03:37:54 부근 장면 존재와 위치 검증 [장면 5]에는 담장 너머 ‘公園屋(공원옥)’이라는 곳의 간판에서 ‘釀造場(양조장)’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 업소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공원 담장 놀이터와의 연관성 등은 그 어떤 활자 기록이나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1925년에 태어나 인사동과 종로 3가 인근에서 살았던 아동문학가 어효선 작가(1925~2004)가 1990년 시점에서 1930년대 생활을 회고하여 남겨 놓은 책 한 권이 큰 도움이 됐다. (...) 그 옆이 공원 뒷문인데 동문과 같다. 지금까지 오른쪽 담을 끼고 돈 셈인데, 뒷문을 보고 서서 왼쪽은, 연못이던 것을 메우고 만든 어린이 놀이터였다. 그네, 미끄럼대, 시소, 뺑뺑이, 정글짐, 철봉틀이 있고, 모래밭이 있었다. (...) - 어효선(글), 한영수(사진), “탑골 공원과 뒷문 밖(발췌)”, 『내가 자란 서울 : 1930년대 서울 살림 엿보기』(2판), 대원사, 2003. (...) 공원 담 밑 길에서 인사동 큰길로 나가다가, 오른쪽 끝에 '공원옥'이라는 선술집이 있었다. 자리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술을 먹게 된 간단한 술집이다. 저녁 때 이 집에서 고기, 생선 따위를 굽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서 아이들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 드나드는 문에는 세 폭의 천을 위쪽 3분의 1쯤만 이어 박고, 아래쪽은 갈라진 짤막한 휘장을 걸었다. 이 휘장 한 폭에 한 자씩 '公園屋(공원옥)'이라고 써서, 간판으로도 썼는데,실상은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가린 것이다. 사람이 드나들 적에는 이 휘장을 젖히거나 쳐들게 된다. 이 휘장을 차면이라고 한다. (...) - 같은 책, “선술집과 장전(발췌)” 그러니까 이 분의 회고에 따르면 [장면 5]의 장소가 탑골공원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이 100% 신뢰도의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면, 이것에만 의지하여 식별놀이를 종결지을 수는 없다. 이번에는 시선을 살짝 돌려 이 장면의 오른쪽에 일부만 보이는 벽돌 건물에 주목해 보겠다. 전체 외양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건물이 혹시 북촌 한옥마을 등 조선인을 위한 개량 한옥 단지의 개발자이자 민족사업가였던 ‘건축왕’ 정세권 (1888~1966)이 자비로 건립한 조선물산장려회관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종에 알고보매 그(주: 정세권)는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특히 깊어서 조선물산장려를 몸소 실행할뿐더러 장산사(獎産社) 라는 조선물산을 판매하는 상점을 탑골공원 뒤에 두고 조선산의 의복, 양복을 장려하고 《실생활》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야 조선물산장려를 선전하는 이인 줄을 알았다. - 이광수, “成造記”, 《삼천리》 제8권 제1호, 1936. 1. 1, 242쪽 조선물산장려운동의 재점화를 주도했던 정세권의 활약과 그러한 헌신의 상징인 낙원동 회관 건립에 관한 자료는 2017년 발간된 김경민 서울대 환경계획학과 교수의 저서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위즈덤하우스, 2017)와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칼럼들에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이에 따르면 그 회관은 “ 낙원정 300번지에 위치한 3층짜리(또는 옥탑 층까지 포함하여 4층이라고 말하기도 함) 붉은 벽돌 건물 ”이었고, 당시 신문 보도 내용과도 일치한다. 문제는 이 ‘지번’이었는데, 일제강점기의 지번 체계가 광복 이후 얼마간 유지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지만, 최소한 일제 토지조사사업에 따른 지적원도상의 지번과 현재 지번의 위치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 대략 영상의 건물 위치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의 책에서 추정한 위치와도 일치한다. 그 외에는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지번이 표시된 그 어떤 지도에서도 낙원동 300번지를 찾을 수 없었다. 지면상 지번이 생략돼 있거나 디지털 사본 화질이 떨어져 식별이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낙원동 300번지에 대한 자료 조회 비교 (좌) "지번입서울특별시가지도(地番入서울特別市街地圖)", 대한서림(1958) /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 300번지는 생략되어 있다. (중) “지적원도”, 조선총독부(1917)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제공 : 토지조사사업(1910~1918)으로 확인된 300번지의 위치를 볼 수 있다. (우) 현재(2024) 지적도 등본상의 300번지도 동일한 위치로 추정되며 도로 지목으로 할당돼 있다. 사진과 영상의 비교, 촬영 상황의 재구성 보다 직접적인 근거는 회관 건물의 외양이 포함된 자료일 텐데, ‘이것이 회관 모습이다’라고 밝히는 자료는 사진이 실린 신문기사 1건 과 조선물산장려회 기관지 《장산(獎産)》(1931년 2월호) 표지 정도이다. 문제는 [장면 5]의 벽돌집이 일부만 나온 데다가 건물의 측면이라는 점이다. 외양의 특징적 유사성 정도는 확인할 수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다른 자료가 발견되고, 교차 검증이 되고, 나아가 새로운 정보까지 낚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여전히 이것을 ‘사실’이라 말할 수 없다. 이를테면 1950년대 이후의 사진 및 영상자료들도 교차 검증에 도움이 된다. 특히 공중 촬영 사진을 찾는다면 좋을 텐데 지형지물이 잘 구분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아마도 공중 촬영한 사진 중 이 글의 관심 사항인 공원 북서부를 가장 잘 포착한 것은 연합뉴스의 도광환 기자가 1953년 6월에 촬영한 사진 인 것 같다. ( 오마이뉴스 는 이 소스를 게재를 허가받아 고화질로 공개 중이다.) 이것만으로도 [장면 5]의 벽돌 건물이 회관이 맞다는 것과 화면에 보이는 부분이 건물의 측면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장면 5]는 공원 서문 쪽에 가까운 담장 근처의 미끄럼틀 장면이 분명해졌다. 또 다른 쓸 만한 자료는 김천길 기자(전 AP통신)가 1956년에 촬영했다는 공중사진 이다. 여기서는 북문 쪽에 더 가까운 공간에 그네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때는 회관 옥상에 1층을 더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북문 쪽 공간과 관련해서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 중인 < 조선의 애국일 >(1940) 중 물산장려회관, 공원옥, 공원 내 놀이기구(정글짐)를 동시에 담은 장면이 있다. 팔각정 쪽에서 석탑 뒤의 공원 북서부를 비스듬히 바라보고 찍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총독부 제작, <조선의 애국일>(1940) 4분 22초 부근. 가운데 ‘공원옥’이, 탑 오른쪽에 물산장려회관의 측면 일부가 보인다. ‘공원옥’ 간판은 비스듬히 왼쪽 프레임 밖을 바라보고 있다. 즉, 이 화면은 [장면 5]에서 담을 따라 북문에 더 다가간 곳이다. ‘공원옥’ 앞에 정글짐이 보인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항들을 가지고 <AK>의 ‘탑골공원과 인근으로 추정되는 장면들’을 다시 보면 장면들 사이의 공간 관계를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단, [장면 4]의 장소는 탑골공원 외부인 것 같다. 처음에는 이 부근에 3층 이상 벽돌 건물이 흔치 않을 것으로 보아 여태껏 어느 자료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물산장려회관의 뒷마당이 아닐까 추정했으나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AK> 등 영상 속 촬영 장소와 시점의 추정 배경으로 활용한 자료는 “ 탑동공원 각소 수선지(之)도 ”의 일부이다. 공원 내 배치 상황으로 보아, 조선총독부가 경성부에 공원 관리사업을 이관하기 전인 1910. 8.~1932. 12. 사이에 제작된 지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식별 놀이는 원래 엔딩을 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모은 자료와 식별된 정보를 바탕으로 촬영 시기도 어느 정도 좁힐 수 있다. 위 장면들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촬영됐다고 가정한다면, 조선물산장려회관이 준공된 1931년 9월 이후의 장면이다. 다시, 놀이기구가 보이므로 경성부 관리 이관 후 아동공원으로 재개장한 시기, 즉, 최소한 1933년 하반기는 지난 시점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의 자료들를 찾는 중에 한가지 변수를 발견했다. ‘경성상공협회 회관이 낙원정 300번지 외 1호의 2층 양옥집으로 이전했다’라는 1936년 9월 23일자 기사 가 있다. 물산장려회관의 300번지를 지번분할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물산장려회관과 상공협회관은 거의 붙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기사에는 회관 건립 의연금을 기부한 사람 명단 중에 ‘정세권’이 있다. 결정적으로, 이보다 앞선 6월의 기사에는 상공협회관의 외양을 스케치한 그림이 실려 있는데, 납작한 2층짜리 상공협회관 건물 뒤로 보이는 실루엣은 물산장려회관의 탑층 있는 쪽 모습 과 유사하다. 다시, 아까 소개했던 김천길 기자의 탑골공원 공중사진(1956) 을 보자. 물산장려회관 뒤로 방금 본 상공협회관의 일부와 유사한 2층 건물이 그림자가 드리워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이것이 물산장려회관이 맞고 [장면 6]에서 상공협회관 왼쪽으로 빼꼼하게 보이는 흰 건물이 물산장려회관의 공개되지 않은 뒷 측면 모습이라면? 이 장면의 촬영 시기는 1936년 9월 이후로 늦춰지게 되는 것이다. 이미 충분히 지쳤으므로 이 부분은 앞으로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자. 사실 <AK>에 사용된 필름의 엣지코드(edge code)로부터 필름 제조 연도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실 촬영일과 1~2년 이내의 오차로 시기를 추정할 수 있지만, 아직 모든 장면에 대해 심층 분석을 한 단계는 아니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다만, [장면 6]과 같은 코다크롬 규격은 1935년에 처음 출시됐고 <AK>에서 사용된 제조 연도가 가장 이른 코다크롬 필름은 1936년산이라는 점만 말씀드린다. 식별 정보로 봉인 해제된 영상 다시보기 이제 <AK>의 이 장면들은 더 이상 탑골공원 느낌의 어느 공원에 놀이터가 있고, 조선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놀고 있는 덤덤한 장면일 수만은 없게 됐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탄다. 해가 지면 북촌의 저임금 조선인 노동자들이 담장 너머 선술집에 모여들어 막걸리로 시름을 달랠 것이다. 일제의 견제로 힘을 잃은 지 십 년이 넘은 물산장려운동을 되살려 보겠다고 ‘건축왕’ 정세권이 자비를 털어 만든 물산장려회관이 공원 옆에 우뚝 서 있지만 그 한 사람의 힘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새로 생긴 놀이터는 내선일체 구호만큼이나 공허하다. 아마도 이 모든 맥락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정동에 거주한 지 40여 년 되어가는 한 이방인 사업가는 화려한 남촌의 풍경이 아닌 쇠락한 북촌의 정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오, 주여. 이들을 보호하소서.’ 탑골공원과 인사동 인근은 어쩌다 보니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장소로서 변화무쌍한 이력을 지니게 됐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테지만 문헌에 남지 않았다면 서서히 희미해지다가 사라질 것이다. 영상은 그 최후의 보루이다. ‘식별놀이’는 나뉘어 묻혀 있는 기억들을 채굴하고 원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증명’의 대가로 받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는 가상화폐 같은 것이 아닐까. <덧붙임> 1. 직접 게재하기 어려운 사진 및 기사 자료는 부득이하게 링크로 대신했습니다. 2. 일제강점기 공원 정책과 관련한 내용은 다음 문헌을 참고했습니다. - 조세호, 김영민, "경성부 도시계획서 상의 공원녹지 개념과 현황의 변화 양상", 『한국조경학회지』 vol.47, no.2, 2019, 117~132쪽. 3. 각종 자료를 무료로 공공에 개방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서울역사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국가기록원에 늘 감사드립니다.
태양계 궤도를 도는 에베레스트 크기만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과 박사 과정의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다른 동료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는 가운데 지도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궤도 계산을 하다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6개월 안에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딪치는 순간 종말이 펼쳐질 게 명백한 상황이기에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NASA에 보고하는데 이때 정부 관계자들이 극비리에 개입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SF 재난 블록버스터를 떠올릴 법하지만, < 돈 룩 업 >은 그 쉽고 흔한 길을 걷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혜성 충돌의 고전적인 마스터피스 <세계가 충돌할 때>나 < 지구의 대참사 >도, 할리우드 스케일의 위력을 담은 < 아마겟돈 >이나 < 딥 임팩트 >도, 운명적인 < 너의 이름은 >이나 로맨틱 코미디의 < 세상 끝까지 21일 >도, 그리고 암울한 아트하우스의 < 멜랑콜리아 >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태 풍자에 집중한다. 무능한 정부는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 중간 선거에 이기기 위해 혈안이 돼있고, 언론은 심각한 분위기를 피해 가십으로만 소비하려 한다. 여기에 이익에만 눈이 먼 기업과 전문가들의 경고를 외면하고 기만하는 대중들이 가세하며 환장의 대(大)콜라보를 이룬다. SNL 작가 출신으로 윌 페럴과 함께 많은 코미디를 작업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기후 환경 문제와 막장의 끝을 달린 트럼프 정부 그리고 제작과정 중 실시간으로 터진 코로나 상황을 혜성에 빗대 마치 실제 인류의 대위기 앞에서 벌어질 법해 정말로 무서워(!)지는 블랙 코미디를 완성해냈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 조나 힐, 마크 라일런스, 케이트 블란쳇, 타일러 페리, 티모시 살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쿠디, 히메시 파텔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돈 룩 업>은 넷플릭스에서 성공의 지표로 뽑는 “공개된 지 28일 동안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 레드 노티스 >에 이어 역대 2위를 차지했다. 비판의 대상이 다소 편향적이라는 지적과 반복적이고 단선적인 플롯과 고압적인 자세가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는 등 호불호가 갈렸지만, 2021년 오스카를 비롯해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등 후보에 오르며 완성도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현재 미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극찬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풍자하는데 주력한 작품이지만, 이 극도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재미, 감동을 이끌어내는 건 바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는 니콜라스 브리텔의 명민한 음악 덕분이다. 니콜라스 브리텔 배리 젠킨스의 < 문라이트 >와 <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으로 오스카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을 받은 니콜라스 브리텔은 1980년대생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력을 쌓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뉴욕의 유대 가정에서 자란 브리텔은 피아노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고교 시절 줄리어드 음대의 프리 칼리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나, 왜 인간이 음악에 매료될까에 궁금증을 느껴 하버드 심리학과에 지원할 정도로 괴짜이자 수재였다. 학부 시절 내내 힙합 연주그룹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심취했고, 자신의 하버드 심리학과 동기였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처음 연출한 단편 <EVE>에서 그의 소품 “Forgotten Waltz No.2”가 쓰이며 영화음악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포트만이 참여한 < 뉴욕 아이 러브 유 >의 한 꼭지를 비롯해, 각종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며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브리텔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고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해지펀드 매니저이자 외환 딜러로 활동했는데, 그가 결국 다시 음악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건 < 노예 12년 >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부탁으로 한스 짐머가 <노예 12년>의 스코어를 맡았지만 영화 전반에 삽입될 소스 음악들에 대해선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라 새로 외부 음악가를 수혈했는데, 그게 바로 니콜라스 브리텔이었다. 그는 전혀 녹음된 바 없고, 제대로 전승되지도 못한, 잃어버린 노예들의 음악을 위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실제 유행하던 스타일에 맞춰 철저한 고증 끝에 새롭게 만들어 빌보드 매거진으로부터 “<노예 12년> 음악의 비밀병기”란 극찬을 받았다. 금융권 출신답게 브리텔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제작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 영화에 제작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그게 바로 데이미언 셔젤의 < 위플래쉬 >였다!), 후에 이 영화가 장편화되며 음악에서 일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확고히 영화음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건 앞서 언급한 배리 젠킨스와 아담 맥케이와 함께 한 일련의 작품들이 성공한 덕분이 크다. < 빅쇼트 > 때 브리텔의 대본에 적힌 전문적인 금융(음악이 아니라!)업계 용어 메모에 놀라 아담 맥케이가 반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실 그의 음악이 가진 매력은 대단히 놀랍다. 이미 <빅쇼트>와 < 바이스 >를 통해 복잡하고 민감한 경제와 정치 생태계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음악적으로 정리한 바 있는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번 <돈 룩 업>에서도 멸망을 앞둔 경박한 사회적 혼란과 진실이 잘못된 정보 앞에 덮이는 아이러니, 무능한 정부를 비꼬는 다양하고 세련된 스코어들을 들려준다. 신랄한 풍자와 날 선 묘사들로 불쾌해질 수 있는 영화의 공격성을 최대한 무마하고, 널뛰는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는 여러 고민 끝에 혼란이 절정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시기 유행한 업 템포의 빅밴드 사운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메인 테마의 색채로 잡는다. 광기와 혼돈을 묘사하면서 멸망이라는 실존적인 문제 앞의 우울함과 슬픔을 내재해야 하고, 동시에 코미디 음악으로서 희극적인 면모도 갖춰야 하기에 복잡하고 미묘한 톤을 유지해야 하는데, 브리텔은 절규하듯 울부짖는 브라스섹션에서 절묘한 부조리의 묘미를 찾았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필사적으로 혜성 충돌을 경고할 때마다 빅밴드 사운드는 더 처절하게 조증 기조를 발하고, 격렬하고 활력 넘치는 사운드는 이들이 무기력하게 실패할 때마다 공허하게 울려 퍼지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와 스티브 잡스의 ‘애플’,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영화 속 대기업 BASH의 다양한 징글(방송이나 광고, 벨소리에서 쓰이는 짧은 곡)을 배치해 공허한 낙관론과 가짜 희망주의를 조롱하며 음악적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를 위해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핸드폰 벨소리와 기업 프레젠테이션 속 영상, 방송 시그널과 CF 음악들을 일일이 작업했다. 여기에 영웅적인 블록버스터 사운드(물론 이마저도 비웃기 위해 사용되었다!)나 휴머니즘에 입각한 정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까지 활용하며 음악적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장르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악기에서도 베이스, 드럼, 트럼펫 그리고 색소폰 트리오 등의 빅밴드나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는 물론, 밴조와 만돌린, 토이 피아노, 첼레스타, 파르피사 오르간, 차임벨, 힙합 비트를 포함한 각종 일렉트릭 효과까지 특이하고 독특한 종류를 혼합해 유희적이고 절충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 보인다. 일견 스코어만 듣고 있으면 짧은 큐들에, 워낙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두서없이 펼쳐져 응집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영화 내에서 각각 장면마다 강력하게 작용하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또한 영화 내에선 니콜라스 브리텔이 공동으로 참여한 두 곡의 노래도 흘러나오는데, 극중 커플로 나오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가 영화 중반 소행성과 충돌을 경고하기 위해 콘서트장에서 부르는 “Just Look Up”과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게 된 지구인들의 쿠키를 담은 엔드크레딧에 흐르는 “Second Nature”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의 듀엣송으로 전통적인 사랑 노래처럼 시작하는 “Just Look Up”은 후반 2절에 이르러서 무지한 대중들의 계몽을 일깨우는 과격한 가사로 영화의 조롱 강도를 더한다. 아름다운 파워 발라드에 이질적인 가사가 던지는 격차야말로 이 노래의 백미로, 2021년 강력한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였지만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Second Nature”는 브리텔과 인디 밴드 본 이베어의 리더인 저스틴 버논이 함께 만든 곡으로, 혜성 충돌 후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먹먹해진 감성과 풍자로 쓰린 속을 다스리기에 좋은 몽환적인 포크송이다. 권력과 재력으로 새로운 세상에 이주한 이들을 위한 노래가 아닌, 현시점에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선택과 희망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응원가이자 송가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비장의 OST 중 하나였던 <돈 룩 업>으로 자신의 세 번째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지명된 니콜라스 브리텔은 아담 맥케이와 함께 HBO에서 4시즌까지 방영된 드라마 <섹세션>과 디즈니 플러스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 안도르 >를 통해 안방 데뷔에도 성공했으며, 24년 배리 젠킨스와 새롭게 도전하는 라이온 킹의 실사화 속편이자 프리퀄인 <무파사: 더 라이언 킹>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Track List 1. "Just Look Up" by Ariana Grande & Kid Cudi 2. Discovery 3. Ephemeris 4. On Hold 5. The Call 6. C-5 Galaxy 7. Don't Look Up (Main Title Theme) 8. BASH Corporate Ident ("Liif") 9. Hyperobject Approaches 10. My Boyfriend Broke Up With Me 11. The Arrest 12. It's A Strange Glorious World 13. The Launch 14. The BASH Presentation 15. Kate Goes Home 16. FEMA-BASH Commercial 17. Arrival At The Hangar 18. There Is A Comet 19. The Comet Appears 20. The Prayer For Stuff 21. The BASH Launch 22. Twenty-Four Drones Is Enough 23. It All Comes Down To This 24. Thanksgiving (Overture To Logic And Knowledge) 25. The End? 26. Memento Mori 27. Don't Look Up (End Credits Suite) 28. Logic Waltz In B Major (Bonus Track) 29. Don't Look Up (Main Title Suite; Bonus Track) 30. Ode To Science (Bonus Track) 31. "Second Nature" by Bon Iver
옛날 한국영화를 보려고 하는 현대 관객들의 발목을 잡는 것 중 하나는 이런 영화 속 남자주인공들이 대부분 끔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형표의 < 아가씨 참으세요 >가 남자주인공 김민욱을 등장시키는 첫 장면을 보자. 조깅을 하고 있던 민욱은 여자주인공 진리화가 타고 있는 차를 아무 이유도 없이 가로 막는다. 항의하는 리화에게 리화의 폴크스바겐을 달구지라고 놀려대더니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리화의 차 지붕 위로 뛰어오른다. 여기에 어떤 이유가 있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남자주인공에게 이런 짓을 시키면 재미있는 놈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게 겨우 1981년 일이다. 이 ‘재미있는 놈’을 연기한 사람은 당룡이다. 본명이 김태정인, < 사망유희 >에서 이소룡의 대역으로 나왔던 배우다. 당룡의 캐스팅은 ‘홍콩영화’가 되려고 하는 이 영화의 욕망을 반영한다. 당룡의 무술은 이 영화의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렇다고 그게 영화에 엄청난 긴장감을 부여하는 건 아니다. 일단 이 영화는 코미디이고 둘째로 코미디라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악당들이 너무 무능해서 주인공들이 잘못될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예를 들어 진리화와 리화의 친구는 둘 다 영화 초반에 납치되지만 모두 남자주인공의 도움없이 탈출에 성공한다. 리화의 친구는 태권도 유단자로 설정되어 있고 액션신도 많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그냥 남자주인공 없이 가도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진리화라고 하는 홍콩인 교환학생을 여자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홍콩영화’가 되려는 욕망의 또다른 표현이지만, 이 캐릭터를 연기한 사람은 당시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7,80년대 한국 여자배우 3대 트로이카였던 정윤희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정윤희의 ’외국인‘ 연기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그런 것에 신경을 썼던 시대가 아니다. 전문성우가 후시녹음을 하던 시절엔 언어의 사실성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1981년작이니 정윤희의 두 영화 대표작인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와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와 같은 시기에 나왔다. 정윤희는 이 두 편의 영화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연달아 받았으니 배우로서도 절정기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기억나는 정윤희의 연기는 대부분 명연기와 거리가 멀다. 나는 진리화가 친구 앞에서 태권도 도복을 입고 발레, 또는 발레라고 우기는 무언가를 하는 장면을 먼저 뽑을 거 같은데, 이건 어느 각도로 보더라도 그냥 유치원 재롱 잔치다. 정윤희는 그렇게까지 몸을 유연하게 잘 쓰는 배우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걸 코미디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떤 내용인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홍콩 재벌 딸인 진리화를 납치하려는 악당들이 있고 남자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이 리화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이 음모를 격파한다는 이야기다. 아, 그리고 < 애마부인 >으로 뜨기 직전인 안소영이 악당의 여자로 나온다. 아무도 신경 안 쓸 스포일러를 건드리자면 나중에 주인공들을 돕는 착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는 성폭행 회상 장면을 넣는다. 당연하지만 이 이야기는 코미디와 액션을 엮기 위해 간신히 존재하며 얼마든지 다른 무언가로 교체될 수 있다. 대부분 액션은 코미디에 휩쓸리며 코미디의 일부는 여장한 민욱이 악당들을 속이는 장면처럼 종종 보기 고통스럽다. 하지만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에서 악당들이 튕겨져 나가고 나중에 필름이 거꾸로 돌면서 함께 모두 다시 엘리베이터에 빨려들어가는 장면처럼 초현실적인 개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가씨 참으세요>는 누가 봐도 정윤희의 영화이고 결국 이 배우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영화는 어떻게든 당대 최고 스타였던 주연배우의 외모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데, 당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액션 장면 중에 원피스를 찢어 배우의 엉덩이를 노출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 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토착 에로티시즘 영화들과는 다른 식으로 정윤희의 캐릭터와 몸을 바라보며 여기에는 여러가지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그리고 현대 관객들은 왜 그 가능성들이 적극적으로 이용되지 않았는지, 왜 당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여자 몸에 대한 상상력이 딱 그 정도에서 멈추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는 ‘현장’에서 탄생했다. 얄라셩, 노동자뉴스제작단, 푸른영상, 바리터 등이 제작한 초기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는 민중, 노동, 농촌, 학생, 여성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현장을 촬영하고, 기록하고, 전파했다. 이 흐름은 4대강 사업, 강정해군기지, 세월호 참사, 밀양 송전탑 등의 현장에서도 이어졌다. 한편으로, 90년대 중순 비디오 캠코더의 보급으로 강화된 기동성에 힘입어 보다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가 등장했다. 빌 니콜스의 분류에 따라 ‘수행적 다큐멘터리’ 라 부를 수 있는 최진성, 이마리오, 경순 등의 작품들, 혹은 다큐-픽션이라 명명할 수 있을 윤성호 등의 작품들이 등장했다. 이전의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의 연출자들이 기록자이자 관찰자의 위치를 고수했다면, 이들 작품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주관적으로 풀어낸다. 김응수의 < 초현실 >(2016)과 < 오, 사랑 >(2016), 이원우의 단편 작업들처럼 에세이영화,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 사이에서 활동한 감독들의 작품 또한 이것의 연장선상에 놓을 수 있다. 디지털이, 더 정확히는 인터넷이 우리의 삶 속으로 깊이 침투한 이후의 현장은 새로이 변화하고 있다. 여전히 물리적인 공간을 요구한 운동이 지속되고 있지만, 모종의 결속력과 행동력을 생산하는 것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다. 팬데믹 이후 전개된 메타버스에 관한 논의 대부분은 이미 사회운동은 물론 소통, 유희, 거래, 창작 등 수많은 활동이 온라인에서 전개되고 있었음을 망각한 채 진행되었다.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현장은 알록달록한 스킨의 아바타를 매개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다음 카페, DC인사인드, MMORPG 게임, 유튜브, 틱톡, 스카이프 등의 모습으로 이미 존재해왔다. 이 새로운 현장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을까? 물론 박윤진의 < 내언니전지현과 나 >(2020)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터넷을 접해왔고 그곳에서 공동체를 만들어낸 이들의 이야기. 이 영화는 그것을 흥미롭게 그려낸 사례 중 하나다. 다만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현장을 현실과 등치시키며 엮어내고 있지만, 새로운 현장 자체를 탐구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이 글에서는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현장을 탐구하는 두 명의 작가를 다루고자 한다. 먼저 소개하고자 하는 이는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2019)와 < 들랑날랑 혼삿길 >(2021)의 홍민키다. 퍼포먼스와 영상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미술계에서 활동하던 홍민키 작가의 작품 중 두 작품은 인디포럼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두 작품 모두 전시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었지만, 미술계에서 생산된 여러 작품이 다큐멘터리 혹은 실험영화라는 이름으로 여러 영화제에 유통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영상작업을 여럿 선보여온 홍민키의 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는 서울 도심 위를 날아다니는 가상의 공중 스튜디오에서 벌어지는 토론회다.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망원동이 개발되기 이전부터 살아온 주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홍민키의 얼굴 위에 주민들의 얼굴을 딥페이크 기술로 합성한 뒤 그들의 음성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더불어 SNS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은 망리단길의 지금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의 이미지를 스튜디오에 둥둥 떠다니게 한다. 수해를 입었던 기억부터 조만간 사라질 거품으로 느껴진다는 이야기, 동네에 새로 생겨난 ‘힙한’ 카페에서 중년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는 증언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온라인과 SNS라는, 물질적인 현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한 세계는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가? 장소성을 지니지 못하는 온라인 공간은 존재하는 장소를 어떻게 뒤바꾸어 놓는가?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는 ‘망원동’이라는 장소가 ‘망리단길’(을 비롯해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전국 곳곳의 공간들)이라는 비(非)장소, 즉 “정체성과 관련되지 않고 관계적이지도 않으며 역사적인 것으로 정의될 수 없는 공간” 이 되어가는 현상의 기록이다. 동시에, 이러한 현상에 그 무엇보다 깊게 관여하고 있는 것이 SNS 타임라인이라는 독특한 비장소를 통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것과 유사한 성질을 지닌 가상의 스튜디오, 토론회, 딥페이크로 합성된 얼굴, 아바타로 만들어진 특파원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커밍아웃한 게이인 홍민키 감독이 친형의 결혼이라는 상황을 맞이해, 게이인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관해 가족들에게 직접 질문한다는 내용의 <들랑날랑 혼삿길>은 얼핏 이 주제와 관련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형, 형수, 아버지, 어머니, 시장어른 등 가족과의 인터뷰, 대중교통을 타고 가며 지인과 영상통화 하는 홍민키, 그리고 집에서 애인과 촬영한 영상 등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 이 중 가족들의 인터뷰는 각자의 방에서 줌(ZOON)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한 것만 같다. 하지만 인터뷰의 내용에 따라 통신이 불안정해 화면이 끊긴다거나, 액자가 넘어진다거나 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다. 자세히 보면 이 화면은 실제 공간이 아니라 가상화면이다. 홍민키와 지인의 영상통화는 세일러문과 보라돌이 캐릭터를 각자의 얼굴에 덧씌운 채 진행된다. 전자의 공간은 온전히 ‘집’인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공간이며, 후자의 공간은 완전히 개방된 공공의 공간인 것 같지만 퀴어인 두 사람은 얼굴을 감추어야 한다. 홍민키가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은 어떠한 후가공도 없는, 집에서 애인과 촬영한 영상뿐이다. 세 가지 층위는 한국의 가족제도 내에서 퀴어의 존재가 가지는 지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령 가족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은 그것이 지닌 물리적 거리감을, 가상공간의 디자인은 그럼에도 존재하는 모종의 친밀감을 형상화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원하는 캐릭터의 얼굴을 쓰고 영상통화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온라인 공간은 얼핏 모두에게 자신이 될 수 있는 공간인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는 동일한 화면 위로 살포되는 동성애 혐오적인 온라인 삐라를 보여준다. 온라인이라는 가상은 정체성의 표현을 열어주었으며,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퀴어와 호모포비아 모두 동일하다. <들랑날랑 혼삿길>은 이성애를 전제하는 가족제도 내에서 퀴어의 위치에 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각자의 정체성이 표출되며 복잡한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온라인 공간에 관한 스케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점에서 홍민키의 두 작품은 온라인과 현실이 상호적으로 주고받는 영향의 복잡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홍민키가 온라인 공간의 특징들을 그래픽과 딥페이크 등으로 재현했다면, 정여름의 두 작품은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간다. <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2020)은 증강현실 모바일게임 [포켓몬 고](2016)에서 출발한다. 해방촌에 사는 감독은 게임을 플레이하던 중 용산 미군기지 내의 포켓스탑을 발견한다. 포켓스탑은 아이템을 보급받을 수 있는 게임 내 장소로, 이는 실제 세계의 공공시설, 역사적 장소, 기념비 등을 기반으로 위치 지어지며 다수의 플레이어가 선택한 장소가 지정된다. 게임 내에서 포켓스탑을 터치하면 실제 장소의 사진이 등장한다. 감독은 이를 통해 한국인 대부분이 출입할 수 없는 용산 미군기지 내부를 탐색한다. <그라이아이>는 그렇게 발견한 용산 미군기지 내의 제국주의, 전쟁, 자본주의, 미국과 관련된 기념비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온라인에서 발견한 연관된 푸티지들과 엮어낸다. 이는 [포켓몬 고]라는 게임이 현실의 지리학 위에 게임의 지리학을 세워 놓는 특징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 나아가 이 영화에는 감독이 직접 촬영한 영상이 부재한다. 오로지 게임을 녹화한 화면과 온라인에서 발견한 푸티지들만이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정여름은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설계된, 반대로 내부에서는 그곳이 ‘용산’이 아니라 ‘미국’처럼 보이게끔 설계된 용산 미군기지라는 곳을 탐험한다. 보이지 않게끔 은폐된 가상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용산 미군기지를, 더욱 가상의 공간인 온라인을 통해 그곳을 가리고 있던 유무형의 장막을 걷어내는 작업인 셈이다. 정여름의 두 번째 영화인 <긴 복도>(2021)은 직접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간다. 국내에 반환된 미군기지 중 하나인 원주의 캠프 롱(Camp Long)에서 직접 촬영된 이미지가 이 영화의 절반을 차지한다. 다른 절반은 과거 캠프 롱의 PX에서 일했던 한 인물의 일기와 사진, 그리고 구글맵 이미지 등이다. 흥미롭게도 미군이 철수한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구글맵에 남아 있는 여러 흔적, 이를테면 ATM이나 PX의 위치가 찍혀 있는 지도는 <긴 복도>의 주인공인 탐정을 혼란스럽게 한다. 현실의 공간에는 미군이 철수하고 남은 폐허 상태의 건물만이 남아있지만, 온라인 상의 지도에는 여전히 기지가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오로지 탐정이 온라인 지도를 들여다볼 때에만 존재하는 기지는 그 자체로 탐정 앞에 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지도라는 매체를 통해 유사-현전(pseudo-presence)할 뿐이다. 우리는 온라인 상의 정보들이 우리의 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은 그것은 매체를 통해 현전할 뿐인 정보, 텍스트, 이미지들이다. 즉 멀리 있는 대상이 실제로 가까이에 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매체를 통해 그렇게 느낄 뿐이다. <긴 복도>의 탐정은 유사-현전한 미군기지의 좌표를 통해 과거에 그곳에서 일하던 이들을 추적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대신 그가 찾아낸 것은 마찬가지로 온라인 상의 좌표로써만 현전하는 세계 곳곳의 미군기지들, 미군기지 내의 ATM이나 PX, 은행처럼 자본주의 시스템의 흔적뿐이다.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이 실제 세계 위에 세워진 은폐된 공간을 온라인으로 탐험하는 작업이었다면, <긴 복도>는 오로지 온라인을 통해서만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추적하는 탐정물이다. 두 가지 작업은 얼핏 각자의 방식으로 미군기지라는 대상을 탐색하는 것만 같지만, 그와 동시에 오로지 온라인이라는 가상적 공간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곳을 가시화하려는 작업이다. 때문에 ‘탐정물’의 형식을 차용하는 <긴 복도> 또한, 현재에 비가시화된 과거인 철수한 미군기지를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적 기능을 수행한다. 홍민키와 정여름의 작업들은 온라인을 새로운 현장으로 인식하고 그곳을 경유한 사유를 풀어낸다.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의 인스타그램 타임라인, <들랑날랑 혼삿길>의 화상회의 프로그램,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의 모바일 게임, <긴 복도>의 온라인 지도는, 얼핏 실재하는 현실과 상관없어 보이는 온라인 공간이 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홍민키의 두 작업은 그것이 현실과 얽혀 주고받는 영향을, 정여름의 두 작업은 오로지 온라인을 통해서만 발견되는 현실의 여러 가지 지표들을 탐구한다. 이러한 다큐멘터리들이 지금 등장한다는 것은 ‘메타버스’를 비롯한 여러 담론이 작품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들은 생의 대부분에서 온라인을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활동 영역으로 여겨온 이들이 온라인을 새로운 현장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 1) 빌 니콜스, 「다큐멘터리 입문」, 이선화 역, 한울아카데미, 2018, p.76 2) 이도훈 평론가는 이러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경향을 각각 "현장-기반의 다큐멘터리"와 "현장-전유의 다큐멘터리"라 명명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도훈, "현장을 전유하는 다큐멘터리: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가 현장과 결합하는 방식", 「현대영화연구」,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44호, 2021, p.125~150. 을 참고하라. 3) 마르크 오제, 「비장소」, 이상길, 이윤영(역), 아카넷, 2017, p.97. 4) 심혜련, "매체적 현전 시대에서의 공간과 지각의 문제에 관하여", 「계간 시청각 4호」, 서울: 시청각랩, 2019, p.24.
< 극장전 >(2005)은 타임라인의 재구성을 혼란에 빠트리는 홍상수 의 평판작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선택적 경로의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서사는 두 개의 분리된 라인을 따르는데 플로팅은 그들을 교차커팅하지 않고 나란히 배열한다. 두 개의 내러티브 가닥은 서로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두 부분의 왜곡된 대칭은 추상적 사고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형식적으로 격정적이고 유머러스한 톤을 가진 이 영화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와 그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하루를 보내는 영화감독의 스토리를 병치시키는데 둘은 영화 속 영화, 내지는 영화에 대한 구조로 엮인다. 전상원(이기우)의 스토리 A와 김동수(김상경)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 B는 명확하게 규정된 대조 또는 편집된 병치 안에서가 아니라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서로를 가리킨다. 서로를 희롱하는 앞과 뒤를 쫓는 두 개의 단락의 잇는 것은 여주인공 최영실(엄지원)이다. 서사적으로 A와 B는 각자 생명이 위중한 영화감독 이형수가 만든 단편영화 스토리와 영화를 보고 나온 그의 후배 동수의 허허로운 여정으로 설정된다. 느슨한 구조는 캐릭터와 플롯에 새로운 차원을 덧붙일 뿐 아니라 두 단락의 절정부에 놓은 죽음의 그림자처럼 장난기가 묻은 거울구조가 작동한다. A에서 B로 이행하면서 인물들은 말과 제스처, 대사 또는 감정의 경련을 반복하거나 부인하면서 행위의 동기와 결정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조금씩 말해준다. ‘극장전’이라는 제목은 극장(영화)에 관한 이야기라는 표층적 의미의 단순함 아래 이 영화가 홍상수의 가장 급진적이고 복합적인, 전환기적 문제작 중 하나라는 사실을 숨긴다. 그의 초기작들과 구별되는 특성으로 거론되었던 줌과 보이스오버가 최초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대다수의 장면 안에서 이 둘은 병합되어 등장한다. 이러한 계시적 형식을 초월하여 각 장면들은 활성화된 카메라 워킹을 구사한다. 한편으로 미장센은 바깥 이야기의 시선이라는 상대적인 외부성으로부터 뻣뻣하고 신속한 좁은 범위의 팬을 통해 신중한 프레임 구성과 분석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는 관계의 체계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반면 빈번하고 폭력적이며 갑작스러운 줌의 확대/축소를 사용함으로써 보이스오버와 운을 맞춘다. 스타일의 변절이라는 의미에서 이러한 장치들을 만나는 것은 후속작들에서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제까지 홍상수 영화의 엄격한 형식미에 비추어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전반부에 보이스오버의 상대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극장전>의 라스트 신은 홍상수 영화에서 첫 번째로 나타난 논-디제틱(Non-Digetic) 보이스오버로 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모든 여정을 마친 후 거리를 걷는 동수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인제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애.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담배도 끊을 수 있어. 생각을 더 해야 돼.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도록.” 이 장면의 재현 방식은 동수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스토리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말해 인물의 실제 생각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하나의 메모로서 읽힌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동수의 보이스오버는 스토리 A에서 빈번하게 나타난 상원의 그것과 구별된다. “돌아다닐 맘이 꽉 차서 처음으로 돈을 막 쓸 생각이었다”거나 “괜히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담배 한 갑을 샀다”는 말, “이러다 우리 사고내겠다”는 상원의 진술은 스토리 세계 안(단편영화)에 속한다. 이렇듯 영화에서 보이스오버란 작중 인물의 내면의 목소리로 개입하여 상황과 심리, 전개에 대한 기술(記述)로 쓰인다. 하지만 라스트 신에서 동수의 보이스오버는 내러티브 기능에 종사하거나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 허다한 디테일들이 축적된 이후에 그것의 중요성은 뚜렷해진다. 영화의 말미에 영실은 병원 앞에서 바로 전날 밤 차가운 섹스를 나눈 동수를 우연히 만난다. 이 장면에서 영실은 동수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것은 관계를 계속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탐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 없는 섹스에 대한 씁쓰레한 기억을 털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을 당혹과 무력, 환멸 속으로 밀어넣음으로써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홍상수는 관객들에 대한 대담한 믿음을 가지고 의미와 구조를 조립하는데 있어서 엄청나게 많은 책임을 그들에게 지운다. 그러나 텍스트의 요구를 만날 수 있는 관객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을 둘러싼 세계, 예술 그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이는 관습적인 영화가 결코 제공할 수 없는 형태의 보상으로 반복의 환영을 조성하는 전략에 의해 뒷받침된다. 위 의제와 관련하여 <극장전>에서 상호 반향하는 거울구조의 기하학적 형상은 음악적 단서에 의해 신호된다. 장엄하게 동수의 이어폰을 울리는 ‘라데츠키 행진곡’, 음주에 곁들인 채 영화의 안과 바깥을 타고 흐르는 노래들은 분리된 두 개의 스토리 주변을 감싼 압력을 형상화한다. 예를 들어보자. 스토리 A에서 영실과 상원이 저녁을 대신하여 호프집에 갔을 때 ‘다시 사랑한다면’이라는 대중가요가 흘러나온다. 공간의 배경을 장악한 반주는 후속하는 노래방 신으로 이어져 영실이 같은 노래를 부르도록 만든다. 스토리 B에서 ‘다시 사랑한다면’은 남산타워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걷는 동수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와 동수의 흥얼거림으로 연결되고 곧바로 지인들의 회합이 열리는 한식당 ’남문정‘의 노래방 기계 앞에서 영실이 부르는 노래로 이어진다. 일련의 노래의 흐름은 평행구조에 대한 홍상수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예시한다. <극장전>은 인간 지각의 본성, 반향효과 및 기타 영화적 전략을 통해 하나의 시청각적 기표가 동일한 방식으로 교호하는 평행주의(Parallelism)의 전통적인 구성을 문제화한다. 그의 내러티브 전략은 병렬성을 실제로 평행한 것으로 인식하여 관객들이 그 안에서 내포적 의미를 찾도록 하는 관습을 대담하게 파괴한다. 전체 구조 안에서 이러한 전개와 종결 방식은 탁월하게 작동한다. 대표적으로 “함께 죽자”는 말의 반복은 서사의 앞부분을 이루는 단편영화의 중심부에서 극중 상원의 대사로 등장한다. 그러나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을 넘어 이 이야기는 영화가 우리들의 정신의 근간이 되는 방식을 보여주려고 한다. 인물들의 불가사의한 열정은 종종 기이하고 기괴한 방식으로 영화와 뒤얽힌다. 이전에 홍상수 영화에서 나타난 적이 없었던 극적 줌인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라는 단편영화의 형식적 스타일은 그와 평행하게 놓인 실재 부분에서 반복된다. 홍상수는 이러한 형식적 장치들이 영화 속 영화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도록 관객들을 현혹하고, 정적인 침묵의 영역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을 때 이 기교들을 반복함으로써 사실과 허구 사이의 선을 흐린다. 여기에는 개별 영화(들) 사이의 반향도 존재한다. 일례로 롱테이크로 찍힌 떠들썩한 음주 장면들과 음주의 결과로서 이어지는 견실하고 정적인, 그러나 김빠진 섹스에 대한 묘사를 들 수 있다. 음주는 굴욕의 미장센을 이끌면서 개별 신 사이의 대결을 위한 촉매를 제공하고, 영화의 안과 바깥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섹스 신은 미세한 차이를 두고 반복되는 카메라 셋업으로 찍혔다. 죽어가는 감독 이형수(김명수)의 영화와 홍상수의 영화를 구별하기 위해 가상과 실재를 거의 동일한 스타일로 촬영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솜씨 좋은 유희는 우리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함께한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영실은 동수에게 “영화를 정말 잘못 보신 것 같아요”라고 일갈한다. 이 진술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스토리 안에서 실패한 관계의 반복을 완성한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어떻게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류의 영화가 지닌 참된 가치가 한 번이 아니라 거듭하여 숙의할 때 드러나는 것처럼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그래서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다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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