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파수꾼
“청춘이란 절묘한 것이다. 외부로는 붉은빛을 발산하면서도 그 내부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장 폴 사르트르의 청춘론을 빌려 와도 좋을 만큼, < 파수꾼 >은 그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찬란했다 돌이켜보는 10대의 초상을 서늘하고 또 날카롭고 해부한다. 신예 윤성현 감독은 그 시간에 ‘Bleak Night‘이란 영어 제목을 붙였다. 영화는 그렇게 세 친구의 암울하고 스산한 청춘의 한 때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한 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로를 ‘친구’라 불렀던 한 친구는 전학을 간 상태고, 또 다른 친구는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영화는 뒤늦은, 그러나 뼈아픈 질문들에 되돌아오는 과거에 대한 불명확한 대답들, 바로 세 친구가 부서져 가는 순간들을 ‘파수꾼’처럼 지켜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사실상 아버지의 자리는 바로 관객의 자리다. 기태의 죽음 전, 후를 부지런히 오가는 < 파수꾼 >은 세 친구에게 과연 어떤 대단한 사건이 벌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을 심어주며 출발한다. 하지만 그들의 내부는 황폐해져만 갔고, 그들의 내부를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세 친구의 과거는 우정에서 출발해 결핍과 시기, 인정욕구가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용광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운명론적인 혹은 거대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부재한 기태를 비롯해 발랄했던 동윤이나 피해자인 듯 보였던 희준 모두 가벼운 듯하지만 고민도 많고 또 무심한 듯 상처받기도 쉬운 남자아이들뿐이다. 그렇게 촘촘하게 엮인 감정의 결들을 따라가는 사이, 쉽사리 왕따와 권력관계의 꼭짓점에 선 가해자로만 보였던 아들 기태의 자리는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지점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오해와 주저함에서 점차 번져가는 감정의 파국을 통해 <파수꾼>은 자신이 스스로 단순한 청춘, 성장영화가 아닌 소통에 힘겨움에 대한 인간관계의 드라마임을 증명해 낸다. 회상을 넘나드는 꽉 짜인 미스터리 구조와 함께 관객들을 아프게 하는 것은 흔들리는 카메라로 포착한 배우들의 현실감 있는 연기다. 긴 호흡의 신들로 구성된 < 파수꾼 >에서 기태와 동윤, 희준 역의 세 신인배우는 과거는 물론 현재의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남자아이들의 심리와 언어를 성실하게 재현한다. 그렇게 우리는 윤성현 감독이 창조한 프레임들 속에서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관계들의 단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숨이 차오르고 아프지만, 진실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하고 올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력이 헛되지 않은, 걸출한 데뷔작이 출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