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경계
< 경계 >(2007)는 장률 의 세 번째 영화이고, 그의 두 번째 영화 < 망종 >(2005)과는 일종의 2부작의 관계를 맺고 있는 작품이다. 공간적 배경은 베이징 외곽의 쇠락해가는 공업도시에서, 몽골의 변경 지대로 바뀌었다. 인물은 남편이 살인죄로 수감된 후 김치를 팔면서 아들과 살고 있는 조선족 여인에서,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잃은 후 아들과 함께 중국의 거쳐 몽골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을 밟아온 탈북 여성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공간적 배경과 중심인물이 처한 구체적 상황은 바뀌었지만, 두 영화는 가부장이라는 보호막 또는 벽이 없어진 상태에서 살아가야 하는 두 모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강한 공통성과 연속성을 갖고 있다. <경계>는 ‘사막을 소재로 나무를 심는 남자의 이야기를 해보지 않겠냐는 한국 제작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장률은 그 제안을 (이미 <망종>을 통해 했던) ‘순희와 창호라는 두 모자’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반복하고 변주하는 기회로 삼았던 셈이다. 장률에게 이 반복과 변주는 왜 필요했을까? 나는 이것이 장률의 일관된(적어도, <망종>과 <경계>를 관통하는) 영화적 화두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률의 영화적 화두는, 두 가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라는 경계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그러니까 서로 다른 국가체제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가부장적 가족제도 속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질문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장률 영화세계의 특이성일 것이다. <망종>에는 없지만 <경계>에는 있는 것, 그것은 바로 ‘국경’이라는 경계의 물리적 현존이다. 아마도 이것이 장률이 <경계>를 통해 같은 질문의 반복 필요성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 경계 >라는 영화에서 ‘경계’는 다층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히야쯔가르’ 즉 사막과 초원의 점이지대인 그 공간은 동시에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이기도 하다. 전자가 여전히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사이 지대로서의 경계’라면, 후자는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강고하게 차단하고 가로막는 ‘벽으로서의 경계’이다. 이 이중적인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경계 공간에서, 가부장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면서까지 그곳을 삶의 공간으로 지켜내려는 한 남자와, 국가와 남편이라는 이중적인 의미에서의 가부장적 권력으로부터 밀려난(또는, 벗어난) 한 여자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경계>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영화이고, (적어도 현재로서는) 두 남녀의 행복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냉철한 대답으로 끝을 맺는 영화다. < 망종 >의 순희는 서서히 몸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 한 조선족 남자의 배신 때문에 더 이상 아들에게 조선족이 될 것을 강요하지 않게 되는 엄마이자, 아들을 잃고 나서 단호하게 가부장-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여성이다. <경계>의 순희는 새롭고 낯선 공간에서 만난 이민족 남자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끝내 그와 함께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없게 된 여성이다. <경계>의 순희는 왜 그 경계 지대를 삶의 공간으로 바꾸는 데(또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바깥으로 탈출하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영화는 두 가지 이미지로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고 있다. 하나는 끊임없이 굉음을 내며 그 새로운 삶의 공간을 가로막고 있는 탱크라는 이미지이고(영화 속에는 창호, 헝가이, 순희가 이 탱크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세 번 반복해서 등장한다), 또 다른 하나는 순희가 몽골 병사와 정사를 나누는 것을 아들 창호가 보게 되는 장면이다. 전자를 외부의 벽이라 할 수 있다면, 후자는 순희라는 여성의 마음속에 강고하게 남아있는 내부의 벽(가부장적 가족제도가 강요하는 모성신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망종>의 순희는 조선족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아들 창호를 설득하며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려 하지 않지만, <경계>의 순희는 자신과 몸을 나눈 몽골 병사에게 (헝가이가 엄마를 지키라며 창호에게 준) 총을 겨누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그 여성적 욕망을 포기하고 그곳을 떠난다. <경계>가 <망종>보다 여성으로서의 순희의 욕망을 더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있는 영화(아들 창호를 놓아두고 혼자 도망가려는 시도를 하는 순희, 한 밤중에 집을 나가 홀로 나신으로 초원을 자유롭게 걸어보는 순희)라는 점에서, 두 영화의 결말에는 일종의 아이러니가 담겨있다. 국경을 넘어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가부장적 가족제도라는 벽에 대한 질문 또는 저항은, 현재로서는 그러한 아이러니로 밖에 답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망종>과 <경계>라는 2부작에 담겨 있는 ‘재중 조선족 3세라는 경계인’ 장률 의 근본적인 질문이자 전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