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OST]스페이스 캠프 (해리 와이너, 1986)
전설적인 마에스트로 존 윌리엄스에게도 시련의 시기는 있었다. 1958년 < Daddy-O >로 데뷔한 이래 일흔을 맞이한 2002년도까지 그는 한해도 빠짐없이 꾸준히 최상의 작품을 써내려 왔던 근면 성실함의 대가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기실 보이지 않는 공백기가 존재했다. 필모를 봐도 거의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틈이긴 하지만, 최전성기의 한가운데인 1985년 존 윌리엄스는 코너에 몰려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그가 1979년 서거한 아서 피들러의 뒤를 이어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내정되면서부터. 작곡과 연주를 병행하던 그에게 불만이 있던 일부 단원들과의 충돌로 인해 그는 1984년 심각하게 사임을 고려했고, 그의 결정을 만류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에 한차례 격통이 불어 닥쳤다. 결국 매니지먼트의 간청과 단원들의 사과로 일단락되었지만(이후 1995년까지 훌륭하게 임기를 이어갔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진행하기로 했던 ‘피터 팬’의 뮤지컬 계획은 10곡이나 만든 상황에서 딜레이 되다 엎어지고 말았고(물론 그 음악들은 91년에 간신히 영화로 되살아난 < 후크 >의 모티브로 사용되며 빛을 볼 수 있었다), < 칼라 퍼플 >에선 제작자이기도 했던 퀸시 존스가 음악도 담당하는 바람에 스필버그와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첫 번째는 스필버그가 단편으로 참여한 < 환상특급 극장판 >). 결국 1985년의 윌리엄스는 모든 영화 스케줄이 빈 상태로 1974년 이후 오랜만에 TV로 귀환한 <어메이징 스토리>의 에피소드 2개만을 달랑 맡은 채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에스트로 존 윌리암스 한편 영화 < 스페이스 캠프 >도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실제 앨라배마 헌츠빌에 소재한 청소년 대상의 우주훈련과정을 배경으로 삼은 이 작품은 < E.T. >와 < 그렘린 >, < 구니스 >같은 틴에이저 모험극을 표방했기에 촬영될 당시만 해도 안전한 기획으로 여겨졌다. 캐스팅에 있어서도 다분히 스필버그 영화들을 의식했는데, 타이틀 롤을 맡은 케이트 캡쇼는 <인디아나 존스>의 여주인공이자 후에 스필버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고, 리 톰슨은 바로 전해 스필버그가 제작한 < 백 투 더 퓨처 >의 여주인공이자 < 죠스 3 >로 데뷔한 인연이 있었다. NASA에 기증될 정도로 완벽하게 재현한 스페이스 셔틀 조종석 세트에 2,0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예산으로 1986년 초에 개봉될 예정이었던 이 영화는, 그러나 챌린저호 폭발이라는 대참사와 마주하며 저주받은 운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다. 스페이스 셔틀이 주요하게 등장하고, 케이트 캡쇼가 맡은 배역이 여자 지도교사라는 점에서 실제 여선생이 탑승했다 희생된 것과 비교되자 결국 개봉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으로 개봉 시기를 옮긴 제작자들의 특단의 조치는 음악이었다. 비극적인 사건을 조금이나마 희석하기 위해 가장 희망적이고 장엄한 분위기를 선사할 이가 필요했다. 이런 스필버그 스타일에 최적화된 작곡가. 영화적 재미와 환상적인 몰입감을 고취할 수 있는 거장. 바로 존 윌리엄스였다. 배급사인 20세기폭스의 오랜 음악감독이자 친구이던 라이오넬 뉴먼을 통해 스케줄이 비어있던 윌리엄스를 설득, 결국 그의 짧지만 의도치 않던 공백을 메꿀 작품으로 <스페이스 캠프>가 선택되었다. 스페이스 캠프 사실 <스페이스 캠프>는 존 윌리엄스 필모에서 조금 도드라져 보인다. 1975년 < 죠스 >서부터 이 영화를 맡기 전인 1984년 <인디아나 존스>까지 그의 경력은 가히 무시무시했다. 데뷔 초 주로 드라마와 코미디, TV 쪽에서 활약하며 재즈 스타일의 소소하고 가벼운 음악을 들려주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그의 작풍은 확 달라져 있었다. 심플하지만 강력하고 드라마틱한 테마에, 유려하면서도 호쾌한 오케스트레이션이 결합돼 고전적인 매력을 심어주는 심포닉 사운드는 60년대 이후 재즈와 록에 밀려 실종되어가던 할리우드 전통의 스코어를 되살려주었다. 이후로도 마찬가지. 1987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휘청이지 않고 거장의 품격을 완성해왔다. 간혹 <하트비프>나 < 배반의 계절 >처럼 편차를 보이는 작품들도 존재하지만 이는 같은 해 작업했던 다른 결과물들의(< 레이더스 >와 < E.T. >같은) 반대급부적인 영향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터. 하지만 <스페이스 캠프>는 달랐다. 1985년과 1986년 그의 영화 스케줄은 완전히 비어있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더 좋은 완성도의 작품들을 고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챌린저호 공중폭발로 좌초될 위기에 놓여있던 이 영화였고, 그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아 열성을 다해 음악을 완성시켰다. 아쉽게도 그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예상대로 참패했다. 제작비의 절반이 채 안 되는 9백만 달러만을 간신히 회수한 채 박스오피스에서 빠르게 종적을 감췄다. 이는 사운드트랙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는데 존 윌리엄스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LP와 카세트테이프로 한차례 발매된 이후 오랜 기간 재발매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만 1,000장 한정으로 소량 발매된 CD가 희귀 아이템으로 올라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되었을 뿐. 결국 2010년, 오랜 기다림 끝에 복각판이 발매되었다. 재밌는 건 이 복각판이 발매되었을 때조차 불운이 발생했다는 것. 제조상의 실수로 12번 트랙에 튐 현상이 발생해 3,000장 전량을 다시 찍어 일일이 교환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사고도 문제도 많은 영화였고, 존 윌리엄스 개인에게도 그 당시 썩 유쾌한 시기가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최전성기에 올라있던 만큼 음악적으론 그의 뛰어난 솜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사운드트랙이다. 영화는 조금은 유치하고 평범한 스필버그 아류의 틴에이저 판타지 모험담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를 만회하는 것도 역시 스필버그의 단짝인 존 윌리엄스의 거룩하고 장엄한 팡파르 덕분이다. < 스타워즈 > 시리즈를 끝낸 이후 3년 만에 다시 우주로 돌아온 그의 영웅적인 스페이스 찬가는 탄성을 지를 만큼 황홀하고 아름답다. 일견 우주 속 스페이스 셔틀에서 발생하는 후반부 에피소드는 < 그래비티 >의 원형을 담아낸 우주 재난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비티>의 음악을 담당한 스티븐 프라이스가 차갑고 단조로운 일렉트릭 사운드 외피 속에 여성 허밍과 현악을 감춰두어 미약하지만 생명력 짙은 휴머니즘을 들려주었다면, 이 지구상 최고의 마에스트로는 고전적인 심포닉 사운드가 갖는 낭만적인 환희와 영웅적인 용기를 브라스와 혼에 실어 강렬하게 대외적으로 표출하며 감성에 절절히 호소하고 있다. 이는 시대의 차이이자 챌린저호의 비극이 갖는 무게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호국적이고 영웅적인 테마를 배치한 노장의 배려일 것이다. 또한 이는 그가 70년대 초 ‘재난의 제왕’ 어윈 알렌과 작업한 일련의 재난물 < 포세이돈 어드벤쳐 >나 < 타워링 >, < 대지진 >의 음악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 글에 언급된 존 윌리암스의 OST 앨범들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이 음반시장에서 득세하던 1980년대 영화답게 삽입곡이 많이 쓰이지 않았음에도 하나같이 주옥같다. 주로 영화의 초반부 선남선녀의 청춘들이 우주훈련이 펼쳐지는 캠프장에 입소하며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할 때 집중적으로 흘러나오는데, 에릭 클랩튼의 블루지하면서도 소울풀한 박력이 넘치는 ‘Forever Man’으로 포문을 연다. 기숙사에서 흘러나오는 건 1985년 영미권을 뒤흔들었던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빅 히트곡 ‘Walk of Life’와 ‘So Far Away’. 그리고 나머지 세 곡은 맑은 미성이 돋보이는 조셉 윌리엄스의 노래들 ‘American Girl’과 ‘Don’t Look Back’, ‘Turn It Up’이 삽입됐다. 알다시피 조셉은 슈퍼밴드 토토의 세 번째 보컬이자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존 윌리엄스의 둘째 아들. <스페이스 캠프>는 아버지와 함께 한 두 번째 영화가 되었다. 이들 곡들과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존 윌리엄스 스코어 중에서는 드물게 신디와 드럼 머신 사용한 팝적인 사운드의 짧은 ‘Training Montage’라는 큐가 작곡되었다. 그의 고전적인 심포닉 사운드에 익숙했던 이들이라면 이 색다른 시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중후반부로 가며 예의 그 익숙한 존 윌리엄스만의 포스가 드러나는데, 영화의 가벼움을 지그시 눌러주는 견실하고 탄탄한 무게추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아쉽게도 트랙리스트는 중구난방으로 배치돼 영화의 감흥을 따라가기 번거로운 편이다. 영화 순서대로 음악을 즐기기 위해선 1-5-2-4-3-6-9-12-10-11-7-13-14-8 순으로 감상해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동명의 타이틀곡이자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SpaceCamp’의 강렬하고 화려한 팡파르가 인상적으로 가슴 속에 새겨진다. 제작자의 바람과 달리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영화를 구원하지 못했다. 그는 영상과 내용을 압도하는 오버스코어링으로 작품과 비교되는 실제의 비극을 충실히 지워내고자 했지만 참사의 잔향은 생각보다 깊이 그리고 오래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시도와 노력만으로도 존 윌리엄스에게 있어 값진 결과였다. 그가 아닌 어떤 누군가가 음악으로 꿈과 희망을 재건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스페이스 캠프>는 역설적으로 실패했지만 존 윌리엄스의 가치와 역량을 만천하에 알린 비장의 OST인 셈이었다. Track List 1. Main title 2. Training montage 3. The shuttle 4. The computer room 5. Friends forever 6. In orbit 7. White Sands 8. SpaceCamp 9. Viewing Daedalus 10. Max breaks loose 11. Andie is stranded 12. Max fins courage 13. Re-entry 14. Home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