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앙리-조르주 클루조의 지옥
흔히 ‘미완의 걸작’ 혹은 ‘꿈의 영화’라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영화사의 거장들이 필생의 역작으로 기획을 했으나 각각의 이유로 완성되지 못한 채 영화사에 흔적을 남긴 작품들이다.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이 영화화 하려했던 칼 맑스의 <자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죽기 전에 기획했던 <햄릿>,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각본을 썼던 ‘신곡 3부작’ <천국> <지옥> <연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유언장이 되어 버린 <옛날 옛적 레닌그라드에서> 등이 그러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또 한편. 정치적 진보주의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파시스트’(<공포의 보수>를 함께 했던 이브 몽탕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라 불리기도 했던 앙리-조르주 클루조의 <지옥>이 그 목록에 함께 한다. 1964년 클루조는 강박증과 불안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완성한다. 한적한 휴양지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중년의 남자와 뛰어난 미모를 지닌 젊은 아내. 그러나 남자는 행복하지 않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향한 손님과 젊은 남자들의 시선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질투와 의심, 광기를 자극한다. 클루조는 이 영화를 위해 당대 막 스타로 부상했던 로미 슈나이더를 캐스팅했고, 코스타 가브라스 등이 조연출로 참여하는 스텝진을 꾸려 파일럿 촬영을 시작했다. 당대 프랑스 영화계에서 클루조의 입지는 상당히 높았다. < 공포의 보수 >나 < 디아볼릭 >과 같은 흥행작들은 물론이고 브리짓 바르도를 캐스팅해 < 진실 >을 완성한 이후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제작비와 캐스팅을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프랑스 감독 중 한명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아이러니랄까? < 지옥 >의 파일럿 촬영본을 본 미국의 콜롬비아가 전격적으로 투자에 참여하며, 무제한의 제작비 지원을 선언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의 기묘한 운명은 꼬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자본이 주는 자유는 역으로 클루조를 삼켜버린다) 2009년 칸 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 < 앙리 클루조의 지옥 >은 이 영화의 저주와도 같은 운명 혹은 숙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의 시작 역시 놀라운 우연에서 비롯됐다. 감독은(세르지 브롬버그)은 어느 날 한 빌딩의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된다. 그때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노부인과 그는 긴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가 바로 클루조의 미망인이었다. 그녀로부터 클루조의 <지옥>이 185개의 필름통에 담긴 채로 창고에 쳐박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그는 당시의 스텝들을 하나하나 수소문해 찾아가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러나 클루조는 1977년에 타계했으며,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는 1982년에 자살했다.) 스텝들의 증언과 기억 속에 클루조는 자신의 영화 < 지옥 >에서 강박증과 질투, 증오에 사로잡힌 남자 주인공과 거의 같은 인물이었다. 실제로 클루조는 우울증과 불면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새벽 2-3시에 스텝들을 소집해 회의를 하거나 일을 시작했다. 제작비는 무제한이었으나 영화 촬영의 기한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강박증과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클루조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타인과 대화하지 않으며, 하루 종일 같은 장면을 되풀이해 찍거나 배우들과 스텝들을 기계처럼 혹사시켰다. 그 시기 이미 스텝들과 배우들은 영화가 완성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남자 주연배우였던 세르주 레지아니가 감독과 불화를 겪다 촬영을 거부하고 현장을 떠나버린다. 남자 배우를 새로이 캐스팅해야 했던 클루조는 로미 슈나이더만을 데리고 촬영을 강행하던 중 결국 심장마비를 일으켜 병원에 실려간다. 그날로 <지옥>은 중단되었다. 이 다큐에서 인용하는 < 지옥 >의 몇몇 촬영장면들만 봐도 이 영화는 당대 영화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놀라운 이미지의 수사학을 구사하고 있다. 남자의 광기와 불안을 색채 코드로 구분해 현실을 왜곡하며 보여주는 심리적 장면들은 키네틱 아트의 영화적 버전이었다. 더구나 그는 이 영화에서 단 한치의 즉흥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미지의 모든 것들은 디테일한 스토리보드를 고스란히 구현한 것이었고 심지어 이미지 내 크기의 비율들은 정확히 측정돼 배치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당대 프랑스 영화계를 지배했던 누벨바그에 대한 그의 응답이었다. 즉흥성과 현장성 등을 중시했던 비평계에게 클루조의 작품은 시대적 시류에 맞지 않는 영화였다. 그러나 클루조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에 대해 인터뷰로 응수하기 보다는 스스로 새로운 미학을 성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야심과 완벽주의는 결국 영화를 ‘지옥’으로 끌고 갔다. < 지옥의 묵시록 >으로 역시 비슷한 고난을 경험한 바 있던 프란시스 코폴라는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이제 이 영화 스스로가 운명을 결정지을 것 같다’는 말을 한 적 있다(<지옥의 묵시록>은 예정된 제작비와 시한을 넘기며 좌초될 운명이었다). < 앙리 클루조의 지옥 >을 보면, 영화의 숙명이 창작자의 손을 떠나 오히려 그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미지에 자신이 강박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시대적 흐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젼을 온전히 하나의 작품 속에 완성하려했던 그의 야심은 그렇게 지옥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클리세적 표현을 보태자면 ‘저주받은 걸작’, 그 자체로 말이다. ps. 클루조의 < 지옥 >을 새로이 영화화한 이는 그와 대척점에서 누벨바그를 대표했던 클로드 샤브롤이었다. 그는 1994년 엠마누엘 베아르 등을 캐스팅해 <지옥>을 완성한다. 이 영화에서 샤브롤은 의처증과 불안에 시다리는 남편의 캐릭터에 클루조를 투영한다. 극중 남자는 새벽마다 16mm 영사기를 돌리며 영화적 이미지에 자신의 집착과 광기를 실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