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안녕하세요 하나님
”기차가 아무리 달려도 달은 자꾸만 ?아오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주 든든한 형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아가씨는 자꾸자꾸 울고만 있습니다.“ 목소리 주인공은 뇌성마비 청년 병태이고 든든한 사나이는 봉두난발의 허풍선이 시인 민우, 눈물을 찍어내는 아가씨는 만삭의 임신부 춘자다. < 안녕하세요 하나님 >은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의 긴 여정을 따라잡는다. 그런데 잡지건 포털 사이트건 국내 매체들이 소개한 이 영화 줄거리는 엉뚱하기 짝이 없다. 액션과 멜로가 의남매를 맺은 듯하다. 아무튼 춘자는 소매치기 출신도 아니거니와 병태에게 시집갈 꿈을 꾼 적도 없고 세 사람은 탄광촌은커녕 번개탄 가게에도 들리지 않는다. 배창호 와 안성기 와 최인호 트리오를 떠올리면 한국영화 재산목록이 묵직해진다. 영화가 지닌 재미와 의미와 가치는 < 고래사냥 > < 깊고 푸른 밤 > < 황진이 >로 확인할 수 있겠다. 그들이 6번째 호흡을 맞췄으며 감독 자신이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작업했다는 영화가 < 안녕하세요 하나님 >이다. ‘촛불처럼 가슴에서 가슴으로 타오르는 재미와 감동의 영상시’라는 그 시절 광고문구가 촌스럽지만 정겹다. 속도와 충격에만 기댄 요즘 스크린을 생각하니 더욱 살갑게 다가온다. 배창호에겐 한국의 스필버그라는 질투어린 호칭이 따랐으나 이 작품을 보면 그는 프랑크 카프라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사랑을 원리로 인간의 선함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로드무비는 호기심을 부풀리지만 문패도 번지수도 못 찾을 경우 관객들의 눈꺼풀은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첨성대에서 보는 밤하늘의 은가루. 병태에게 첨성대는 꿈의 사닥다리이자 세상을 향한 창문이다. 소외되고 버림받고 죄책감에 빠진 처지지만 세 사람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발길을 옮긴다. “저는 불을 밝히는 사람입니다.” 촬영장 조명부 흉내를 내며 은근슬쩍 서울역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민우의 말이다. 곤경에 처할 적마다 그가 읊어대는 풍월은 종류도 다양하다. 예이츠와 프로스트의 시에 앙리 드 몽테를랑의 연애론을 선보이며 때로는 성경구절과 바이런의 낡은 양복까지 펼쳐 보인다. 가볍되 경박하지 않고 슬프되 어둡지 않으며 허기진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진다. 최인호 각본의 힘이다. 남루한 의상 한 벌로 꾸려간 배우들의 연기가 빼어나다. 장면마다 안성기 는 지체부자유한 동작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데, 뜨거운 감자를 벗겨 먹는 과정은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 고양이를 부탁해 >에서 배두나 가 먹는 만두만큼이나 한껏 군침을 돋운다. 김보연 도 < 꼬방동네 사람들 >의 억척 아낙네에 버금가는 성격을 창조한다. 유영길 의 카메라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완성도를 든든하게 받쳐준다. 360도 패닝으로 시간과 상황을 혼합한 버스 정류장을 비롯해 황혼녘의 개울가, 먼지 날리는 시골길, 비오는 처마 풍경은 액자를 끼우고 싶을 정도로 유려하다. 적막과 몽환의 리얼리즘인가. 줌 인과 트랙 아웃을 따라 춘자와 아기를 안은 병태가 나타나고 첨성대가 꿈결처럼 휘감는다. 이어지는 아이들 노래와 불꽃놀이. 머물다 떠나는 우리 나그네 인생에도 이따금 그렇게 폭죽이 터지기를. 온갖 패악과 엽기가 전복과 실험이라는 작두를 타고 난동을 피우는 시대다. 그 현란한 예술적 행패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화면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 안녕하세요 하나님 >을 두고 배창호 식 휴머니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는 평은 과찬이 아니다. 늦은 밤 시골 초등학교 교실. 민우가 부르는 ‘작은 기도’가 합창으로 울려 퍼지면 촛불 속에서 두 남녀가 춤을 춘다. 병태는 건강한 육신을 뽐내고 춘자가 환한 얼굴로 발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니 알겠다, 왜 시인이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끄는가를. “...갈 수 있을까/ 언제는 몸도 마음도 안 아픈 나라로/ 귓속에 복숭아꽃 피고/ 노래가 마을이 되는 나라로/ 갈 수 있을까 / 어지러움이 맑은 물 흐르고/ 흐르는 물 따라/ 불구의 팔다리가 흐르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 (이성복 <다시, 정든 유곽에서>). 투병중인 최인호 선생이 빨리 쾌차하셔서 낭랑한 안부인사를 건네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새 시나리오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