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서둘러 천천히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다큐멘터리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 호기심은 삶을 성찰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두 가지가 완벽하게 분리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보면 자신의 선택들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주인공을 누구로 할 것인지, 어떤 사건을 다룰 것인지, 무엇을 촬영할 것인지, 어떤 자료를 쓸 것인지, 어떤 컷을 사용할 것인지, 등 끊이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 질문하게 된다. 이 작업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긴 여정이긴 하지만 답을 찾을 때, 그리고 어렵게 찾은 그것을 나누는 순간은 큰 즐거움이다. 이 여정은 관객과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하는 길을 만드는 일이다. 다큐멘터리 < 서둘러 천천히 >는 ‘아나킨 프로젝트’라는 밴드를 통해 덴마크의 자유도시 크리스티아니아를 만나게 한다. ‘아나킨 프로젝트’의 조윤석 , 마승길 , 홍샤인 은 문화활동가, 목수, 바리스타의 직업을 병행하며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감독은 능청스럽게 이들의 음악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사회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며 관객이 무엇을 기대해도 좋은지 속삭인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위치한 자유도시 크리스티아니아에 도착한 ‘아나킨 프로젝트’는 공동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얼핏 보면 음악 다큐멘터리 같지만 처음의 속삭임처럼 ‘아나킨 프로젝트’ 밴드 멤버들을 통해 크리스티아니아의 주민들을 만나고 이야기 들으며 크리스티아니아의 삶을 유영한다. 71년 폐쇄된 해군기지를 점거한 젊은이들은 처음 10년을 집을 짓고 난방시설을 만들고 하수도 처리 시스템을 만드는 데 보냈다. 당시의 젊은이였을 나이 지긋한 주민은 자신의 삶의 절반은 집을 수리하는 데 보냈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웃음이 가볍지 않고 묵직하며 여유롭다. 모든 것을 스스로 짓고 또 지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편안한 모습이다. 전원합의체로 의사결정을 하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회의하며 일궈냈을 모든 것이 크리스티아니아에 녹아 있다. 자전거제작소의 매니저는 크리스티아니아의 전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공동체는 30년 전 아이들과 자연을 위해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를 타면 마을 안의 생활을 더 쉽게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유는 단순히 수사가 아니다. 이곳은 집도 공유한다. 집을 지은 사람이 죽자 마을회의에서 누가 사용할 것인지를 같이 결정한다. 감독은 공동체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또한 ‘아나킨 프로젝트’ 밴드의 ‘준수한’(왜 이런 표현이 쓰였는지 영화를 보시면 확인할 수 있다) 외모와 음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의 방식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40년 동안 만들어 온 그리고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공동체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평등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어쩌면 이러한 공동체가 덴마크라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폭이 있어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영화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3년 전 크리스티아니아 주민의 점거가 불법으로 판결이 났을 때도 정부는 퇴거보다는 싼값에 땅을 사서 합법적 지위를 획득하라고 제안을 했다. 자연을 서슴없이 파괴하고 폭력적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영화 속 공동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리를 서글프게 그러면서도 절박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 서둘러 천천히 >는 3월 26일 시작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많은 관객이 서둘러서 천천히 오시길 바라본다. 그리고 서둘러서 천천히 우리의 삶에 대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