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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연재]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천당의 밤과 안개>(정성일, 2018)
1 < 천당의 밤과 안개 >(2018, 정성일 )는 정성일과 왕빙의 영화들이 함께 머무르며 생성되는 터이자 그곳에 세워질 집을 닮았다. 하지만 이 집엔 설계도가 없다. 구획된 면적과 적합한 수치도 없거니와 중요한 재료도 정해지지 않았기에 완성된 집을 가늠할 수 있는 청사진이 존재할 수조차 없는 집이다. 게다가 이 집은 언제 완성될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영화가 짓고자 하는 집은 오랜 시간을 들여도 허름한 형태거나 미완의 상태에 가까울 것 같다. 집의 모양을 고수할 수 있는 굳건한 재료들보다 얽어놓고 간신히 기대놓은 나무들과 부석거리며 바스러지는 흙과 돌덩이의 질감이 드문드문 남아 있을 것이다. 공백과 진공만이 그 영화들에 허용된 재료일지 모른다. 계획이 별 소용없는 상황, 할 수 있는 것들조차 제한적인 상황, 사람의 의지로 이끌어갈 수 없는 상황, 목적지를 찾아가고도 길에서 시간을 버텨내야 되는 상황이 오히려 이 영화의 단호함과 투명함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정할 수 없는 집을 함께 짓기로 결단한 왕빙과 정성일의 단호한 태도 때문에 감동적이고, 좀처럼 나아가지 않은 지체된 순간을 견뎌내는 인내 때문에 특별하다. 이 영화는 땅에 발을 딛고 서서 삶의 가능성과 믿음을 가늠하는 영화이자 흙먼지와 광인들의 뜻 모를 노래와 중얼거리는 말, 농민들이 청하는 술 한 잔, 아이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눈과 안개 속에서 존엄함을 드러내는 영화가 되어간다. 제목에 표기된 천당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한다. 하늘에 있는 낙원 혹은 신의 집을 뜻하는 天堂은 뿌연 먼지로 둘러싸인 남산타워부터 중국의 하늘과 길, 영화의전당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가 스쳐 지나가고 잠시 머무르고 통과하는 모든 곳을 포함한다. 천당은 왕빙을 만나야겠다는 결심과 영화를 찍어가는 여정, 만들어진 영화와 마주하는 극장으로 번져가고 넓어진다. 그뿐 아니다. 중국의 인민들이 살아가는 고산지대와 농촌, 길게 뻗은 길을 따라 높아지는 건물과 공사 현장이 펼쳐지거나 터널을 통과하면 바뀌는 변화무쌍한 햇빛과 나무의 품종, 황갈색으로 변해가는 산세도 천당의 풍광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노동자들의 사뿐한 걸음걸이,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농민의 주름진 얼굴, 타지를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노동자의 볼품없는 살림살이, <세 자매>(2012)를 찍으며 얻은 병으로 몸이 좋지 않은 왕빙이 잠시 누워 밤을 청하는 작은 소파와 정신병원에 갇힌 광인들의 작은 병상도 천당이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온 스크린을 마주하는 또 한 편의 영화(배우 정인선이 연기한 그녀이기도 하다)와 극장도 천당의 모습으로 변주된다. 2 <천당의 밤과 안개>는 왕빙의 리듬을 헤치지 않으면서 조용히 뒤따르기로 결심한 정성일의 카메라 작동 원칙을 끝까지 고수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카메라는 왕빙의 카메라와 그의 스틸 카메라, 정성일의 카메라인데, 카메라들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카메라를 든 자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과 인민들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삶이란 간접적으로 배울 수 없다는 원칙을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때 카메라들은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지만 프레임 안에 담기는 인물들은 카메라 주위로 몰려들어 빤히 쳐다보거나 흘깃거린 후 프레임을 벗어나며 카메라가 있건 말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그곳에 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카메라의 투명성은 영화의 인민들뿐 아니라 왕빙과 정성일의 영화(들)에서도 발견된다. 그들은 왕래하지 않고도, 서로 의논하지 않고도, 전작과 작업 중인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고도 서로를 향해 개방되어 있다. 왕빙은 정성일의 카메라가 작동을 멈춰야 된다고 생각하면 카메라를 꺼줄 것을 요청하고 정성일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전원을 꺼버린다. 캠코더를 들고 가지 않은 왕빙이 정성일의 카메라를 빌려달라고 말한 후에 이어지는 쇼트는 정성일의 카메라로 왕빙이 촬영한 것인지, 정성일이 이어서 촬영한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두 대의 카메라가 함께 활동하는 데 원칙은 단 하나, 그들의 행동과 그들의 영화에 담길 인민들이나 공간, 그들의 카메라가 투명한 시선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촬영 기계를 들고 있는 행위와 뷰파인더로 인민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두 대의 카메라가 기록하고 있는 시.공간이 관통해서 우리들에게까지 도달한다. 프레임에 카메라가 두 대나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기록 장치인 물질은 망각되고 공간을 채우는 인민들의 모습으로 채워진 영화가 되어간다.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카메라를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정신병원은 사각형의 건물이고 중앙에 마당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병원의 정문(정신병원이라는 간판)과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광인들이나 병원을 나서는 왕빙의 뒷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전체 공간을 조망하는 쇼트는 등장하지 않는다. 전체를 찍을 수 없고 보여줄 수 없다는 조건이 이 영화가 방문할 수 있는 장소를 제한했고, <천당의 밤과 안개>는 예측하거나 계획할 수 없기에 카메라가 다가갈 수 없는 곳을 엿보거나 기웃거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복도 이편에 왕빙의 카메라가 있으면 정성일은 건너편에 카메라를 놓아두고 광인들을 촬영하는 왕빙을 바라본다. 왕빙이 자리를 옮기면 정성일도 왕빙(과 광인들)의 동선을 거스르지 않는 위치에 카메라를 놓아둔다. 사각형의 건물을 따라가는 핸드헬드도 예외적으로 등장하고 상황에 따른 기민한 쇼트 전환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는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인물들처럼 애초에 시선의 마주함이 불가능한 현실에 놓여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오즈의 영화에서 180도 가상선을 침범하는 카메라가 오히려 그들의 공간적 맥락을 지워버리는 것처럼 카메라를 든 두 사람과 이 영화는 카메라를 없는 존재로 여기면서도 프레임 가득 광인 개개인의 리듬으로 움직이는 끊임없는 움직임, 스산한 공간에 스며든 웅성거림과 휘갈긴 낙서들을 빼곡하게 기록한다. 3 <천당의 밤과 안개>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왕빙의 원칙과 태도를 탐구하기 위해 그 현장에 동행한 정성일의 요청이 모두 담긴 결과물이다. 두 사람의 협업이 아님에도 이 영화는 왕빙이 찍었던 영화(<세 자매>(2012))와 찍고 있는 영화(<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2013))와 정성일이 찍었던 < 카페 느와르 >(2010)와 찍게 될 영화(< 녹차의 중력 >(2018))가 공존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같은 공간을 찾아가고 같은 인민의 삶을 지켜보면서 규정될 수 없고 쉽게 파악되지 않는 사건과 마주하면서 그들의 카메라 사이를, 그들의 영화들 사이를 지나가는 힘의 작용이 감지되는 것 같다. 정신병동을 예로 들면, 왕빙의 카메라에 담긴 광인들의 현실이 이편에 놓여 있고 다른 편에 광인을 찍고 있는 왕빙의 현실이 존재한다. 두 대의 카메라는 두 종류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천당의 밤과 안개>는 두 종류의 현실을 동일한 성질의 현실로 생각한다. 왕빙의 말처럼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라 감정의 진실”을 탐구하는 과정이 곧 영화이며 카메라 앞에 있는 사람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과정의 실천이 곧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성일의 결단은 일체의 개입이 불필요한 현실의 힘들이 부딪히고 파열하고 사그라지는 삶의 강력함에 대한 항복이라 부를만하기 때문이다. 두 대의 카메라가 동일한 현실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 영화의 힘이다. 왕빙의 카메라 지척에 존재하는 광인들, 그들 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는 왕빙의 카메라, 왕빙의 카메라를 위치삼아 자신의 자리를 조용하게 찾아가는 정성일의 카메라가 거리낌 없이, 불편함 없이, 침범함 없이 그곳에 놓여 있을 뿐이기에 감동적이다. <천당의 밤과 안개>에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불현듯 나타나고 불시에 사라진다. 나는 왕빙과 정성일이 겪은, 지체되는 상황으로 인해 더 오래 볼 수 있었던 얼굴들과 표정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자꾸만 어긋나는 약속, 정체되는 기다림,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몇 날을 달려가야 하는 머나먼 길, 공사가 한창인 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산과 나무들, 수시로 바뀌는 햇살의 강도와 그림자의 길이, 우연히 만난 농민들의 주름진 얼굴과 친절한 미소, 긴 철근을 어깨에 받치고 좁고 험한 길을 걸어가는 노동자의 걸음,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고된 생활을 증명하는 살림살이와 얼룩진 벽, 마당을 한가롭게 돌아다니는 닭과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개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광인들의 눈동자와 천진한 미소, 마침내 이름 모를 마을에 멈춰선 정성일의 끈덕진 응시와 같은 순간들이다.
[한국영화사100년]2000 ~ 2004년 - 21세기 한국영화의 장대한 출발
<올드보이>의 시그너처 장면. 장도리를 든 오대수(최민식)는 장엄한 롱테이크 액션 신을 펼친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산업 드디어 한국영화는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100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바라마지않던 영화기업화의 실현을 목전에 둔 것이다. 2000년대 한국영화는 1990년대 후반에 감지된 르네상스의 기운을 주저 없이 밀고 나갔다. 무엇보다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이와 연동해 전체 산업 규모까지 확대되었다. 먼저 지표상의 수치를 확인해보자. 1999년 한국영화 제작 편수는 49편, 평균 제작비가 19억 원이었는데, 2003년부터 제작 편수는 80편을 넘었고 편당 제작비도 40억 원을 넘겼다. 영화산업의 기반인 전국 스크린 수는 1998년 507개, 1999년 588개에서 2003년 1132개, 2004년 1451개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국의 영화관이 속속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전환되며 스크린 숫자가 급증한 것이다. 이에 외국영화를 포함한 전체 관객 수는 1999년 5472만 명에서 2003년 1억 1947만 명, 2004년 1억 3517만 명으로 두 배 이상의 증가세를 보였다. 주목할 부분은 전체 관객 수 중 특히 한국영화 관객이 증가한 것이다. 1999년 2172만 명에서 2003년 6391만 명, 2004년 8019만 명으로 매년 폭증하면서, 제작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99년 <쉬리>(강제규)가 만들어낸 한국영화 붐과 포스트 <쉬리> 효과로 인해 1998년 25.1%에서 1999년 39.7%로 상승했던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1년 50%를 넘어서더니 2004년에는 59.3%에 달하며 60%대를 넘보게 된다(영화진흥위원회 각 연도 ‘한국영화산업결산’ 참조). 비록 스크린 수익에 한정되긴 했지만, 한국영화의 흥행 수익이 제작 비용으로 선순환되는 이상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의 영화산업은 충무로 토착 자본의 약화 그리고 대기업 자본의 지배력 강화로 설명할 수 있다. 새판을 짜기 시작한 대기업의 과감한 행보에 충무로 영화인들이 주도권을 내준 것이다. 사실 1998년 IMF외환위기 여파로 시장에서 한차례 철수했던 대기업들은, 영화산업 규모가 커지고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부가 시장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다시 흥행 게임에 나섰다. 바로 CJ엔터테인먼트(2000년 제일제당에서 독립), 오리온 계열의 쇼박스(2002년 설립) 그리고 롯데엔터테인먼트(2005년 설립)가 대표 주자들이었다. 2002~2003년은 충무로 토착 자본을 상징하는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의 2강 체제가 이루어졌고,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를 위시로 쇼박스가 두각을 나타내며 3강 체제로 재편되었다. 우선 각 회사를 살펴보자. 강우석 프로덕션이 모태인 시네마서비스(1994년 설립)는, 서울극장의 전국 배급망과 투자 배급에 대한 강우석의 뛰어난 감각이 만난 결과였다. CJ엔터테인먼트(현 CJ ENM)는, 1998년 CGV강변11을 위시로 멀티플렉스 극장 사업에 진출하며 배급과 흥행 기반을 닦아온 CJ가 만든 미디어 기업이다. 쇼박스는, 2000년 삼성동 코엑스에 메가박스를 지으며 멀티플렉스 사업에 뛰어든 오리온그룹이 출범시킨 투자배급사였다.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시네마서비스(2002년 플래너스로 사명 변경)는 각각 CGV, 메가박스, 프리머스시네마라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망을 확보하며 제작?투자-배급-상영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2004년 CJ가 시네마서비스의 프리머스를 인수하고 시네마서비스가 다시 프로덕션의 역할로만 물러난 것은, 한국영화산업이 기존의 충무로 질서가 아닌 대기업 자본 체제로 재편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이후 2010년대로 이어지는 CJ의 독주를 예견한 사건이기도 했다. <올드보이> 촬영현장. 왼쪽부터 대수 역의 최민식, 우진역의 유지태 그리고 감독 박찬욱 21세기 한국영화의 핵심 가치 한국 영화산업에서 2000년대 초중반 시기가 중요한 것은, 영화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이 과감히 시도되고 또 이것들이 성과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키워드는 산업의 양적 성장을 대변하는 ‘천만 영화’, 질적 성장을 상징하는 ‘웰메이드 영화’ 그리고 글로벌 영화로 도약을 예견하는 ‘한류’ 등이다. 천만 영화의 기운을 만들어낸 것은 단연코 <쉬리>의 공이 크다. 1999년 ‘단돈’ 28억 원의 제작비로 전국 62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산업의 파이를 확장했다. 이어 한국영화산업은 2001년 810만 관객을 동원한 <친구>(곽경택)의 경험을 디딤돌 삼아, 2004년 두 편의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낸다. 2003년 12월에 개봉한 <실미도>(강우석)와 2004년 2월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가 각각 4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해 1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이다. 이는 분명 그전의 한국영화산업이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두 편이 촉발한 천만 관객 시대가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산업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슈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이때 시작되었다. 영화 한류(韓流) 역시 <쉬리>의 역할이 컸다. 남북 관계를 첩보액션 장르로 밀도 있게 연출한 <쉬리>는 2000년 일본의 전국 150개관에서 동시개봉하며 130만의 관객을 동원한다. 잇달아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2000), <엽기적인 그녀>(곽재용, 2001)가 흥행에 성공했고 <내 머리속의 지우개>(이재한, 2004)가 30억 엔 수익을 올리며 한류 열풍의 정점을 찍었다. 드라마와 공조한 영화 한류는 한국영화 수출의 일등 공신이었고, 이후 2010년대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글로벌 영화를 꿈꾸는 시험 무대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 한류 또한 명암이 존재했는데, 영화의 주요 수출 지역이 아시아 권역, 특히 일본에 집중된 것이 한계였다. 2005년 말부터 일본 시장에서 한국영화 흥행이 참패하자 해외 수출액 자체가 급감한 배경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붐을 일으킨 한류가 글로벌 한국영화를 시도하는 한 축이었다면, 또 다른 축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지역의 관심이었다.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등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가 예술영화 배급 라인을 타고 한국영화의 미학을 알렸다. 전자의 두 감독이 많은 관객을 목표로 하지 않는 순수한 예술영화 진영인 데 비해, 후자의 두 감독은 대중과의 접점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장르영화로 승부를 내며 스타 감독으로 등극했다. 박찬욱, 봉준호는 각각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3년 <살인의 추억>을 내놓으며 ‘대중적 작가주의’라는 새로운 인식 기준을 제시한다. 이는 ‘웰메이드(well-made) 영화’ 논의로 연결된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이다. <살인의 추억>(봉준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올드보이>(박찬욱), <장화, 홍련>(김지운) 네 작품 모두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5위권에 들자, ‘돈 버는 영화’와 ‘공들여 잘 만든 영화’의 간극이 없어진 것을 포착한 영화 저널과 비평가들이 내놓은 용어다. 특히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올드보이>(326만 명 동원)가 이듬해 제57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까지 받은 것은 웰메이드 담론의 핵심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덕분에 2000년 흥행 1위를 차지한 박찬욱의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583만 명)는 한국영화의 웰메이드 시대를 연 것으로 재정의되기도 했다. 상업영화라는 한계를 안고서도 감독의 연출력을 최대한 밀어붙여 만든 영화가 작품성도 인정받고 흥행에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영화산업의 가장 건강한 모습일 것이다. 그 중심에는 박찬욱 영화가 자리한다. 그는 21세기 한국영화가 세계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세계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감독이 되었다. 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찬욱은 서강대 철학과 재학 시절 히치콕의 <현기증>(1958)을 본 뒤 영화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영화광으로 살아가던 그는 졸업과 동시에 충무로 현장으로 뛰어든다. 충무로 시절은 그에게 시련을 안겼지만, 단련과 성장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장호 감독의 ‘판영화사’가 제작한 <깜동>(유영진, 1988)의 연출부를 거쳐, 곽재용 감독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1989)에서 각본과 조감독을 맡았다가 중도 하차했다. 그리고 <달은…해가 꾸는 꿈>(1992)으로 비교적 빨리 감독 데뷔를 했지만, 소수 마니아들만의 지지로 그친다. 이후 영화평론가로 살던 그는 다시 <3인조>(1997)를 내놓았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그가 비주류 감독에서 흥행 감독으로 단박에 올라선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다. 충무로에 새로운 바람이 불던 시기, 명필름의 프로듀싱 능력과 장르영화에 대한 그의 감각이 행복하게 조우한 결과였다. 그리고 복수 3부작이 펼쳐진다.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 다시 대중적 화법과 멀어지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올드보이>에서는 대중성과 작가주의 미학의 접점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2005)로 대중의 영화 감각을 끌어올리는 그만의 연출력을 각인한다. 이후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에서 디지털 영화 미학을 실험한 뒤, 2009년 <박쥐>로 다시 칸영화제의 선택(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이후 미국에서 영어 영화 <스토커>(2013)를 내놓았고, <아가씨>(2016)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과 428만의 관객 동원으로 대중적 성공까지 동시에 이뤘다. 영국과 북미에서 크게 성공한 이 영화는 한국영화 최초로 영국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한다. 몬스터의 기억을 지운 오대수는 다시 미도와 만난다 <올드보이>가 개척한 대중미학적 경지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사는 남자, 오대수(최민식)는 영문도 모른 채 사설 감옥에 갇혀 군만두만 먹고 지낸다. 15년 되던 해 겨우 벽을 뚫어 바깥 공기를 쐬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세상에 내보내진다. 우연히 들른 일식집에서 미도(강혜정)를 만난 그에게 이우진(유지태)의 전화가 걸려온다. 왜 갇혔는지 알고 싶으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것이다. 복수의 몬스터가 된 대수는 사설 감옥의 위치를 찾아내 스무 명도 넘는 패거리를 혼자서 상대하며,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신을 펼친다. 수평 트래킹 기법으로 완성된 2분 40초에 달하는 롱테이크는 이제 세계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하지만 감옥방 사장(오달수)은 진정한 복수 상대가 아니었다. 우진이 대수를 찾아와 말한다. 복수하면 즉 자기를 죽이면, 갇혀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없지 않으냐며 5일의 시간을 줄 테니 이유를 알아내라고 한다. 그러면 스스로 죽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우진이 대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설계한 것이었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대수와 미도는 관계를 가지고, 대수는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이우진, 이수아 남매의 관계를 기억해낸다.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 그의 복수가 시작된다. 하지만 우진은 미도가 그의 딸임을 알려주고, 대수는 스스로 혀를 잘라 사죄한다. 결국 대수의 복수는 실패한 것이다. 우진 역시 완전한 복수에는 실패한다. 남매에 관한 소문의 근원인 대수를 단죄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지만, 누나를 죽인 것이, 정확히 말하면 죽도록 방조한 것이 우진이라며 대수가 그의 무의식에 새겨진 죄의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우진은 미도에게 대수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스스로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최면술사의 도움으로 기억을 지운 대수는 미도와 다시 조우한다. 이제 그는 미도가 딸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수는 몬스터의 기억을 완전히 지웠을까? 영화는 스릴러에 액션을 가미한 장르를 취하고 시종일관 관객의 눈을 사로잡으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또 장면 장면에 정교하게 설계된 블랙 유머로, 관객과의 소통에도 성공한다. 특히 대사와 내레이션을 오가는 대수의 문어체 화법과 이에 조응하거나 어긋나는 장면들이 그렇다. 영화는 지극히 폭력적이지만 영리한 연출 덕분에 고어(gore)적 이미지가 직접 제시되는 것은 피해가고, 이 역시 블랙 유머와 결합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대수와 감금방 사장이 등장하는 신들이 인상적인 이유다. 또 이 영화에서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운을 뗀 그의 양식적 미장센이 본격적으로 발화한다. 이제는 박찬욱 사단이 된 미술감독 류성희, 촬영감독 정정훈 등이 합류한 덕분인데, 이후 그의 영화 세계가 공고해지는 결정적인 기반이 된다. 작가주의적 인장이 새겨진 공들인 미장센과 더불어 대중영화 특유의 몰입감까지 만들어내는 한국영화, 바로 <올드보이>가 출발점이었다. 웰메이드 영화의 또 다른 경지 2006년 한국영화는 최고의 호황을 기록하며 산업의 최대치를 보여줬고, 박찬욱이 선취한 대중적 작가주의는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한 봉준호의 <괴물>이 또 다른 수준으로 확장했다. 2000년대 이후 박찬욱, 봉준호가 구축해온 영화 세계는 진지한 관찰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이후 2010년대 한국영화는 산업적으로 더욱 성장했음에도 시스템의 안락함에 매몰돼, 2000년대 한국영화가 개척한 ‘대중적 작가주의’라는 야심만만한 시도를 더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엄밀한 학술 용어는 아니지만, ‘웰메이드’를 2000년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어로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다.
채플린의 방랑자가 스크린에 등장하다
<베니스에서 아이들의 자동차 경주> 위대한 맥 세네트는 자신이 개발한 엎치락뒤치락 코미디를 더 밀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단지 새로운 추적 장면만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대중은 드라마를 원했다. 영화저널에서는 ‘스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화산업은 배우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키스톤 활극코미디는 새로운 등장인물(Character)이 필요했다. 맥 세네트는 키스톤 회사의 감독이자 여배우이며, 시나리오 작가이자 프로듀서이던 메이벨 노만드와 함께 온 사방을 뒤졌다. 그러던 중에 뉴욕 42번가 아메리칸 뮤직홀에 영국에서 순회공연을 온 런던 카노 극단의 <영국 뮤직홀에서의 하룻밤>을 함께 보았다. 무대에 선 24세 청년의 코믹한 연기가 인상 깊었다. 키스톤 회사의 영화감독 애덤 캐슬도 이 배우에게 주목했다. 키스톤 회사는 1913년 9월 25일 이 배우와 주급(週給) 150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그 청년이 찰스 스펜서 채플린(Charles Spencer Chaplin). 사람들이 애칭으로 ‘찰리’ 채플린이라고 부른 이 위대한 예술가가 연극과 작별하고 영화로 온 순간이다. 채플린은 카노 극단과 작별하고 런던을 떠나 LA로 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채플린은 영화의 메커니즘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모든 걸 처음부터 배워야만 했다. 한 가지 사실을 환기해야 할 것이다. 채플린은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첫 상영되는 날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채플린은 (훗날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여러 가지 재능이 있었는데 그중 다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는 학습능력은 마치 “하늘에서 내린 것만 같은” 천재였다고 한다. 채플린이 영화를 찍은 것은 그해 겨울이었다. 맥 세네트는 채플린이 24세의 나이에 비해 너무 어려 보여서 콧수염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콧수염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코밑수염이 아니라 수염 끝이 위로 올라가는 카이젤 수염이었다. 채플린의 첫 번째 영화는 <생계비 벌기 Making a Living>(1914)다. 감독은 헨리 레어만. 상영시간은 13분. 채플린은 이 영화를 “끔찍하다”고 말할 만큼 싫어했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은 그냥 키스톤 영화사의 평범한 악당 중 한 명처럼 보일 뿐이다. 채플린은 무언가 자기만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방랑자(the rramp)' 찰리 채플린> <1916년의 찰리채플린> 채플린이 촬영한 순서로는 세 번째 영화지만 두 번째 영화 <매벨의 이상한 모험 Mabel’s Strange Predicament>(1914)보다 먼저 개봉한 <베니스에서 아이들의 자동차 경주 Kid Auto Races at Venice>(1914)에서 처음으로 작은 모자와 지팡이, 마치 빌려 입은 것만 같은 통이 넓은 바지, 행색에 어울리지도 않는 작은 조끼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 복장은 웃겨 보였지만 동시에 이상한 비애감이 감돌고 있었다.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대중은 이 인물을 ‘떠돌이 방랑자(the tramp)’로 받아들였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인물, 어수룩해서 여기서 아무도 속일 수 없는 인물, 무슨 일에도 끼어들지 못할 게 분명한 인물, 결국에는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다가 여기서 떠나는 인물, 그렇게 언제까지나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인물, 미국 대중은 이 새로운 인물에게 너무 쉽게 감정적으로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으로 이민 온 가난한 노동자 대부분은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플린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베니스에서 아이들의 자동차 경주>는 자동차 경주가 벌어지는 내내 이걸 촬영하려는 카메라 앞에서 계속 알짱거리면서 매번 촬영을 방해하는 방랑자의 에피소드다. 그가 꼭 나쁜 의도로 촬영 팀을 골탕 먹이려는 건 아니다. 그는 심지어 촬영에 방해되지 않게 피해주려다가 촬영을 망치게 만들기조차 한다. 6분 19초의 상영시간인 이 영화는 채플린의 ‘이후’ 영화에 대한 ‘위대한’ 예고편처럼 보인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채플린은 카메라 앞에 자기 얼굴을 잔뜩 들이밀고는 얼굴을 찡그려 보인다. 마치 카메라라는 신기한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싶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다가가서 본다. 채플린은 그렇게 호기심을 안고 위대한 영화를 차례로 만들었다. <베니스에서 아이들의 자동차 경주>는 1914년 2월 7일에 개봉했다.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등장인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보다 위대한 등장인물은 없을 것이다. 단언할 수 있다.
[초이스]공사의 희로애락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작업을 좋아한다.” 이삼 년 전, 어떤 지면에 내 소개로 쓴 문장이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와 비교하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뚜렷한 작품들이 다수인 장르다. 하지만 그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극영화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부한 경험을 선사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실험적인”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붙인 표현이었다. 흥미롭고 신선했다. 짜인 틀을 벗어난 작품들, 실험영화라 불려도 될 작품들, 형식이 곧 주제가 되는 작품들. 그 형식 안에 답이 있는 것만 같았다. 다양한 무빙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영화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길을 탐험하고 제시하는 것 같아 보였다. 장윤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최초의 관심도 이런 방향 위에 놓여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영화를 보면 볼수록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 콘크리트의 불안 >(2017)이라는 작품을 제외하면 형식이 두드러지는 작품은 없었다. 장윤미 는 무심하고 대충 찍은 듯 보이지만 실은 직관적이고 순발력 있는 캐치로 대상을 포착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낸 생생함을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게 관객에게 건넬 줄 아는, 보기 드문 능력을 가진 감독이었다. 이는 실험적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를 다룬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2014)나 할머니를 찍은 < 늙은 연꽃 >(2015)은 별사건이 없는 가족의 일상을 스케치한 작품임에도 보는 이가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게 한다. < 공사의 희로애락 >(2018)은 아버지를 찍은 영화다. 건설 노동자로 평생을 살았고, 지금도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에게 가장 좋았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에 관해 묻는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중 인상 깊은 것은 광주 삼성증권 사옥을 지었을 때의 일화다. 대구에서 자재를 만들고 이를 광주로 실어 날라 건물을 올리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대구와 광주를 백번이 훌쩍 넘게 오간 길을 모두 아버지가 운전했다는 것이었다. 옆 좌석에서 잠을 자는 동료에게 느꼈던 야속함과 2차선이기 때문에 사고가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88고속도로에 대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무런 감정 없이 서 있는 한 건물을 완성하는 인간의 노동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큰 희생과 고단함을 담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영화의 다른 하나의 줄기는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할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할머니의 죽음은 늙은 자신의 얼굴, 육체적 쇠락과 맞물려 아버지의 마음에 황혼의 우울감을 드리운다. 평소 과묵하셨으리라 짐작되는 아버지는 자신을 촬영하는 딸에게 이러한 마음을 곧잘 표현했다. 영화를 본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아버지의 안부를 여쭙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버지의 특별할 것 없는 기억과 황량해진 마음을 가만가만 돌아보던 영화가 예술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리는 것은 영화의 후반부, 할머니 산소 장면에서다. 소주 한 병과 소보로 빵 하나를 가지고 산소에 인사를 올리는데 하얀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촬영한 때가 초여름이었나 보다. 산소를 둘러싼 아카시아나무에서 꽃잎들이 눈처럼 흩날린다. 화면은 차츰 전환되어 연꽃무늬의 커튼으로 바뀌고 상엿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방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할머니의 온기를 품고 있는 그 방에서 장윤미 감독의 카메라는 아버지의 눈길이 머물듯 할머니의 물건들을 고이고이 담아낸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이보다 더 잘 위로할 수가 있을까. 아카시아가 흩날리며 떠오른 관객들의 미소는 할머니의 방과 함께 한 방울의 눈물이 된다.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공사의 희로애락>이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넉넉지 않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사정을 알기에 상 자체보다 상금이 더 축하스럽게 느껴졌는데, 상금 일부는 부모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돌보던 길고양이를 구조하고 편집 장비를 마련하는 데 썼다고 들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전념하면서부터는 일 년에 한 편씩 새 작품을 내놓은 꾸준한 감독이긴 하지만 장비도 마련했으니 새 작품을 더 자주 볼 수 있길 바라는 관객으로서의 욕심을 지면을 빌려 조심스레 전달해 본다.
[테마연재]박화영 (이환, 2018)
창작자가 통과한 세상은 독립영화에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경험적 근접성에 기인해서일까. 교복 입은 10대의 이야기는 언제나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가족과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사는 유사한 구조와 전개 속에 있곤 하지만, 작은 사회로서 간단치 않은 문제를 품어 왔다. 가출팸을 소재로 한 영화 역시 그의 연장에 있다. 필자의 좁은 삶의 테두리에선 가출팸 청소년을 근접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한국의 독립영화에서였다. 집인지 수용시설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공간, 대개 청소년이지만 더러 어린아이와 어른이 끼기도 한 무리는, 때로는 여관을 전전하고 때로는 공공화장실에 몸을 의탁하며 불안한 주거를 이어갔다. 빼곡하게 쌓여 있는 신발들, 쓰레기더미 같은 방, 한 줄에 대화에도 섞이는 욕설 그리고 위험한 범죄들... 이상한 호칭만이 패밀리를 환기하는 유일한 끈이었다. 어쩌면 모든 것이 이해 불가였지만, 영화 속에서 자주 상황을 접하다 보니 간혹 이들은 안다고 생각했다. 창작자들이 자극적 소재를 너무 쉽게 차용하는 것 아닌가 의심하며 엄격한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꿈과 환상이라는 영화적 판타지로 우아하게 약자를 감쌌던 < 꿈의 제인 >(2016, 조현훈 )에 이르러선 소재적 절정에 이르렀다 싶었다. 하지만 이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 < 박화영 >(2017, 이환 )은 내가 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친 주인공 박화영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집을 아지트 삼아 가상 패밀리를 구성한다. 친구들에게 그녀의 집은 가출의 근거지이자 일상적 놀이터이다. 박화영은 그들에게 엄마로 불리지만 사실은 권력의 제일 말단에 있다. 진짜 엄마와 악다구니 전쟁을 벌여 돈을 구하고 밥과 빨래에 청소까지 온몸을 다해 패밀리를 부양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매 맞는 아내가 되어 자식의 흠결을 지킨다. 그룹의 우두머리인 ‘아빠(영재)’는 폭력의 화신으로 현현하고, 친구들은 기생충처럼 박화영을 착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화영)’에겐 예쁜 ‘딸(미정)’이 위안이다. 미정은 영악하게 철저히 그것을 이용한다. 패밀리의 관계는 끔찍하고 공허하다. 무리의 모두가 이를 알고 있다. 박화영만이 그것을 애써 모른 척할 뿐이다. 박화영은 왜 그토록 미워했던 엄마가 필사적으로 되고자 했던가? <박화영>에선 가족을 부정하는 이들은 스스로 가족이 되어 서로를 모멸한다. ‘패밀리’라는 퇴행적 놀이를 통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위악의 근거를 조롱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탈선한 10대 무리에겐 사실 세상이 온통 적이다. 예외적으로 등장하는 영화 속 어른들은 하나같이 나약하거나, 추악하거나, 비겁하다. 영화는 커다랗게는 무책임한 사회를 그 배경에 두고 있긴 하나, 이를 직접적으로 영화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특히 이러한 구조를 통해 에둘러 캐릭터를 설명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인물의 진정성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 대체 이들은 인물로서 개연성을 갖고 있는가?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 불량한 청년들의 일상이 저다지도 선정적인 필요가 있을까? 대답컨대 <박화영>의 힘은 무리의 인물들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리얼리티에 있다. 그들은 창조된 허구에 인물이면서 엄연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자들이다. 난무하는 욕설과 폭력에 눈을 흘기기엔, 설득력 없는 센 장면의 연속이라 몰아가기엔, 진짜 현실이 강력한 알리바이로써 영화 저 너머에 버티고 있다. 그것을 현실의 하나로 인정하냐 마냐가 관객의 선택으로서 이 영화를 판단하는 혹은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자 출발이 될 것이다. <박화영>의 영화적 시간은 미정 대신 곤경을 겪은 화영의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거 장면은 4:3의 좁은 화면비율을 택했다. 꽉 막힌 화면 안에서 인물의 난삽한 생활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 속에는 어떠한 여유도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현재의 화면은 상대적으로 넓고 비어 있다. 단 몇 개의 컷으로 짧게 등장하는 현재의 시간엔 극악한 과거의 무질서를 찾을 수는 없지만, 박화영이 겪는 외로움이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더불어 여기서 진짜 엄마가 등장하는데, 엄마는 화영에게 돈을 건네고 방을 구해주나, 화영을 단 한 순간도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는다. 한때 칼부림까지 했던 화영에 대한 넌덜머리 나는 반감으론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현재의 시간에서 등장하는 공간은 인물의 정서를 종종 대변한다. 새롭게 살아갈 텅 빈 방은 화영이 상실감과 고독을, 엄마의 황량한 일터는 생활의 고단함을, 화영과 엄마가 만나는 편의점은 차 한 잔 나눌 여유조차 없는 메마른 관계를 은유한다. 과거의 신이 인물의 퍼포먼스로 극단적인 극을 이어간다면, 현재는 지금 박화영이 처한 상황을 말없이 보여준다. 한편 그녀를 철저하게 이용한 주변인들에게서 잔인한 사회의 우화를 발견한다. 오랜만에 미정과 재회한 후 박화영은 자신의 인생이 미정에겐 그저 불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박화영은 끝까지 각성하지 않는다. 박화영에겐 ‘가족’ 놀이는 벼랑에 놓인 자의 절박한 선택처럼 보인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속에서 그것이 진짜이던 가짜이건 자신이 그리워했던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은 그녀에겐 거의 본능에 가까운 무엇처럼 보인다. 그러하기에 박화영은 또다시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퇴행을 반복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는 더욱더 기이한 슬픔이 동반된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반복은 어쩌면 새로울 수 있다는 기대 또한 걸어본다.
[월간스크린]사랑이… 변한다: <봄날은 간다>(허진호, 2001)
2001년 | 싸이더스 감독: 허진호 | 각본: 류장하 이숙연 신준호 허진호 | 제작: 차승재 진가신 히데시 미야지마 | 촬영: 김형구 | 미술: 박일현 | 음악: 조성우 CAST 상우: 유지태 | 은수: 이영애 | 할머니: 백성희 | 아버지: 박인환 | 고모: 신신애 허진호 감독의 < 봄날은 간다 >(2001)는 그의 데뷔작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과 함께 한국의 멜로, 로맨스 장르를 이야기할 때 영원히 언급될 작품입니다. “사랑이 변하니…” “라면 먹고 갈래요?” 같은 대사들의 일상적 울림과 함께, 이 영화는 ‘연애’라는 관계에 깃들어 있는 씁쓸한 감정들을 리얼하게 드러냅니다. 현장 공개는 2001년 여름에 있었습니다. 상우(유지태)가 은수(이영애)에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하는 바로 그 장면이었죠. 묵호시 삼본아파트 앞, 해안도로와 바다가 함께 하는 그곳. 버스에서 내린 은수는 상우에게 다가가 이별의 말을 전합니다. 현장은 너무나 조용했는데요, 가끔 새 소리나 동네 아낙들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습니다. “우리 헤어지자.” “내가 잘할게.” “헤어져.” “너 나 사랑하니? (침묵) 사랑이 변하니… (침묵) 헤어지자…” 연인이 이별하는 일반적인 장면이지만, 그 감정을 영화에서 제대로 표현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허진호 감독은 ‘숏-리버스 숏’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테이크를 사용합니다. “두 사람의 시간이 실시간으로 한 번에 진행될 때와, 시간을 잘라서 붙여 놓았을 때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에요. 난 전자의 느낌이 더 좋았어요.” 이 영화의 카메라는 김형구 촬영감독(맨 오른쪽)이 잡았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작인데요, 김형구 촬영감독은 유 감독님의 촬영부 출신이었죠. 허진호 감독은 현장에서 스스로를 “헤매는 스타일”이라고 말하는데요, “설명도 안 하고, OK 사인도 잘 안 주고 그러는데, 스태프들이 많이 이해해주었다”고 고마움을 전합니다. 은수는 사랑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어쩌면 사랑을 믿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영애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독님은 물론 배우와 스태프를 통틀어서 아무도 은수에 대해 똑 부러지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뭐라고 한마디로 말하기가 참 어려운 인물이에요. 하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버스 안 현장 모습입니다. 모자를 쓴 허진호 감독 뒤로 류장하 조감독이 보입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는데요, <8월의 크리스마스> 조감독이기도 했죠. 2004년엔 < 꽃피는 봄이 오면 >으로 감독 데뷔했고 < 순정만화 >(2008) < 더 펜션 >(2018)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9년 2월 3일에 5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한번 감독님의 명복을 빕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허진호 감독이 미소 지으며 보고 있네요. 이영애는 자신과 유지태와 허진호 감독의 성격이 비슷했고, 그래서 현장에서 잘 맞았다고 하네요. 한편 허진호 감독은 “과연 사랑은 변할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변하는 것 같아요. 그게 나쁜 것도 아닌 것 같고. 사람 자체가 변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모습을 지키려는 것도 좋지만, 변해가는 것에 대해 집착하고 붙잡으려 한다면 행복해지는 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허진호 감독은 은수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은수도 혼자 있을 때는 힘들어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는 활발하고 자기중심적이 되는 여자예요. 그래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우는 사랑을 처음 해보는 거니까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은수는 사랑이 없어지면 사랑했다는 사실조차 부정해버릴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에요.”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가 자신에게 “일종의 실험”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스럽게’ 채워나가는 느낌의 연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자연스러움’을 경계해야 했고요.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의 감정 연기가 조금은 달랐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진짜 감정을 다루니까요.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다고 정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고 슬퍼하진 않잖아요. 실제로는 직장에 나가 일도 하고 그러죠. 영화 속에서 상우가 은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는 신이 있는데, 속으로는 슬프고 힘들지만 둘 다 겉으로는 슬퍼하지 않아요. 그런 내재된 슬픔이 보는 사람에게 전이될 수 있는 영화가 <봄날은 간다>라고 생각해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영애는 “슬펐다”며, 그래도 좋았던 건 ‘소리’였다고 합니다. “평소 자연의 소리에 민감한 편이었고 관심도 많았기에 소리를 채집하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한편 유지태는 “멜로 영화 같지 않다”는 게 첫인상이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슬픔을 다룬 영화거든요. 누구나 슬픔이 있잖아요. 사랑하고, 헤어지고, 잊혀지는 슬픔.” “이 신에선 상우가 화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은수가 나가니까 좀 이상한데.”(허진호)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닐까요?”(이영애) “그럼 이번엔 제가 나가는 걸로 한 번 해볼게요.”(유지태) 세 사람은 하나의 테이크가 끝나면 마치 오누이들처럼 소곤소곤 모니터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다음 테이크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이별 장면은 쉴 새 없이 변했는데요, 은수가 상우에게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상우가 그 손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대사를 빼기도 하고, 은수와 상우가 번갈아 가며 화면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10번이 넘는 테이크가 이어졌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봄날은 간다>에서 되도록이면 설정하지 않고, 콘티도 만들지 않고, 상황만 던져준 채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각자 포커스를 달리한 두 배우의 투 숏입니다. 허진호 감독은 유지태의 첫인상을 ‘맑다’라는 형용사로 표현하는데요, 촬영 전에 상우는 어떤 사람일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영애는 첫 만남부터 조금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하네요. < 선물 >( 오기환 , 2001) 현장에서 바로 올라왔는데, 공항인가 역 화장실에서 막 세수를 한 맨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허진호 감독은 유지태에서 “물이 안 채워진 유리잔처럼 배우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빈 잔에 물이 조금씩 채워져서 찰랑찰랑 넘칠 때쯤 영화가 개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백지상태에서 함께 조금씩 그림을 그려나가길 바라셨던 거죠.” <봄날은 간다>는 한국의 싸이더스의 홍콩의 어플라우즈 픽쳐스와 일본의 쇼치쿠가 공동 제작한 영화입니다. 제작 발표회에서 각국 제작진과 배우, 감독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맨 오른쪽에 홍콩의 제작자인 진가신 감독이 보이네요. <봄날은 간다>는 “소리를 채집하는 사운드 엔지니어의 이야기”라는 설정에서 발전한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작가들과 영화사 기획실 사람들의 연애담들이 하나둘씩 보태졌고, 그렇게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8월의 크리스마스>에 비하면 <봄날은 간다>는 훨씬 더 거칠고 현실적이며 기복이 큰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한국영화걸작선]수학여행: 3월의 영화 Ⅱ
눈이 바쁜 영화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모든 관객이 같은 스크린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극장의 스크린은 인간의 신체보다 크고 인간의 눈은 생각보다 작은 이미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 어떤 관객은 스크린 중앙에 등장한 주연 배우의 얼굴을 보겠지만 어떤 관객은 스크린 왼쪽 아래의 풀과 나무가 흔들리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다. 어떤 관객은 전경의 인물에 집중한다면 또 다른 관객은 후경의 건물에 집중할 수도 있다. 100명의 관객이 있다면 100개의 서로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어떤 관객도 옆에 앉은 관객과 같은 영화를 볼 수는 없다. 많은 경우 감독들은 화면의 구도와 배우의 연기, 클로즈업 같은 촬영을 통해 관객이 스크린 상의 특정한 지점을 보도록 유도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선택하는 감독도 있다. 즉 의도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연출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감독들은 스크린에 복수의 피사체를 한꺼번에 보여주거나 여러 가지 사건을 동시에 발생시킴으로써 관객이 어디를 보아야 할지 쉽게 결정 못 하게 만든다. 또는 관객이 자신의 시선을 던질 곳을 자유롭게 결정하게 만든다. 이런 미장센은 때로 기분 좋은 혼란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는 자크 타티의 영화들이나 오즈 야스지로가 연출한 세 사람 이상이 대화하는 장면들을 볼 때 이런 재미를 느낀다. 내 눈은 스크린에 맺힌 이미지를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이런 연출은 오히려 능동적인 감상의 계기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유현목 감독의 < 수학여행 >(1969)도 이런 즐거움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섬마을 초등학생들의 짧은 서울 여행을 그린 이 작품은 필연적으로 많은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구봉서 배우가 선생님으로 나와 서사를 진행시키는 역할을 맡긴 했지만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스크린을 채우는 건 결국 아역 배우들이다. 이 아이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화면을 가득 채운 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관객들의 눈을 피곤하게, 그리고 즐겁게 만들어준다. 이 영화에 출연한 대부분의 아역들은 비전문 배우였다고 한다. 짐작건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거의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대사를 받은 배우가 화면 중앙에서 말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좌, 우, 뒤에 있는 아이들은 자꾸 몸을 움직이고 다채로운 표정을 짓는다. 영화를 보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아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그 자체가 아이들의 지금 마음 상태와 개성을 보여주는, 생동감 넘치는 영화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겨우 숙소를 찾은 아이들이 방에 누워 잠을 자는 장면이다. 낮 동안 열정적으로 뛰어 놀았던 아이들은 하나둘 잠이 들고 마침내 움직임을 멈춘다. 뒤척임과 같은 작은 움직임만 허락된 그 조용하고 정적인 순간의 느낌은 매우 사랑스럽다. 또한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선생님만이 아직 잠에 들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아이들을 걱정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송별회 장면이다. 영화 내내 ‘질서’와는 거리가 멀었던 시골 아이들은 도시의 초등학교를 방문해 처음으로 부동의 자세로 줄을 맞춰 선다. 영화는 이 모습을 롱숏으로 보여주며 질서정연한 미장센을 각인시킨다. 결국 규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몽영화의 역할을 수행하는 건가 싶어 조금 섭섭해질 때쯤, 감독은 다시 한번 아이들의 자유로운 몸짓을 통해 이 딱딱한 구도를 완전히 흐트러트린다. 시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을 향해 뛰어가고, 도시 아이들도 시골 아이들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다시 제 맘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앞서 말한 기분 좋은 혼란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다. 결국 이 씬은 문자 그대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스펙터클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스크린의 어떤 곳을 봐야 할지 결정 못 해 매번 어리둥절하기는 하지만 <수학여행>은 영화 감상의 즐거움 중 하나를 생생히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활기 넘치고 혼란스럽고 자유로운 미장센과 그 분위기를 많은 관객들이 느끼면 좋겠다. <수학여행> VOD 보러 가기
[초이스]리틀보이 12725
< 리틀보이 12725 >(2018, 김지곤 )는 김형률의 고귀한 삶에 논평을 더하거나 업적을 기리기보다는 그의 내밀한 마음과 생각이 무엇이었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더듬어 보려는 시도에 더 가깝다. "삼촌 책상에 앉아서 창문을 봤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사셨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조카의 인터뷰는 영화의 태도와 일치한다. 그 쇼트 이전에 카메라는 어두운 방에서 오랫동안 창을 응시했고 이후엔 김형률이 실제로 봤을 풍경들-창밖에 눈이 오는 휴대폰 동영상,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부둣가 사진-을 본다. 방대한 사료 가운데 그가 쓴 일기와 메모들, 시를 읽는 데에 많은 쇼트들을 할애하게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 일이다. 아파도 치료비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아프고 싶다는 바람, 추운 날씨에 집 안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지만 봄이 되면 훨훨 살아날 것이라는 의지, 배움에 자격은 없다는 열의,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고백. 그와 뜻을 함께한 운동가들이나 관련된 책을 쓴 작가들은 인권운동에 투신한 그의 놀라운 집념을 자주 언급했는데, 이를 추동하는 힘은 그처럼 소박하고 단단한 마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형률의 고통은 원폭 피해자 2세를 만든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오프닝씬은 티니언-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행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다음엔 합천에서 부산으로, 다시 말해 어머니에게서 자식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 슬픔의 경로를 불러다가 역사와 그 영향 아래의 개인에 대해 생각한다. 리틀보이가 히로시마에 도착한 8월 6일은 이제 유등을 띄우고 평화를 기원하며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원폭기념일이 되었다. 나가사키에도 추모객은 밤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1945년의 폭탄 구조물은 아직 티니언에 있다. 리틀보이와 팻맨이 남아있다면 희생자들도 살아있겠죠.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것을 가정하는 내레이션이 물안개 피어나는 합천의 강가에서 한번, 김형률의 방과 어머니의 히로시마 생가 전경에 걸쳐 한 번 반복된다. 이 때 내레이션은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어머니가 피폭되지도, 아들을 그렇게 잃지도 않았을 거라는 말처럼 들린다. 영화는 사람들의 외면이나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역사도 침묵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 안에 과거가 존재한다는 걸 믿고 있다. 원폭을 견딘 건물의 잔해들과 녹음(綠陰), 그 뒤로 현대식 건물들이 보이는 히로시마의 강변 풍경에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영화는 유유히 흐르는 히로시마의 강물을 바라보며 욱일기 아래에서 만세를 부르는 사진,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전함과 잠수함 등을 교차해 바라보며 과거사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묻는다. 김형률이 등산을 좋아했다는 진술에 이어지는 산의 전경엔 삶에 대한 의지 대신 비극의 단초인 핵실험을 새겨 넣기도 한다.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와 함께 기장 앞바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 이어지는 히로시마의 숲 쇼트들, 거기에 교차되는 원폭투하 당시의 무시무시한 먼지와 화염은 도시교향악처럼 보이던 일련의 쇼트들에 이상한 생명력과 섬뜩함을 남긴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매우 조심스럽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김형률이 이룬 성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평가된다. 누군가와 만났을 때는 물론이요 토론회, 기념식, 행사와 시위 등등에 다니며 찍은 기념사진마다 아버지가 곁에 있다시피 하니 그의 노고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도 영화는 그를 비중 있게 다룬 적이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투 쇼트(two shot)에서도 거의 말이 없고, 집에 손님들이 왔어도 배경인 것처럼 뒤에 조용히 앉아있다. 2층 방을 만들어 주게 된 사연의 내레이션, 아들이 자기 나름대로는 살아보려고 등산을 많이 다녔다는 인터뷰, 추모제에서 인사말을 하는 정도가 아버지를 다룬 쇼트의 전부다. 또한 영화는 김형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주변인들에게는 묻지만 그에게는 묻지 않는다. 아들의 못다 이룬 뜻을 이어가는 아버지에겐 무용한 질문인 까닭이다. 어머니의 심정은 금강경에서 드러난다. 12년째 (독송을) 하고 있으니 좋은 데 갔겠지.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그의 독송에는 자꾸만 울음이 섞인다. 가슴에 묻는다는 자식을 어찌 잊을까. 카메라는 어머니의 얼굴을 도무지 볼 수가 없다. 나는 < 할매-서랍 >(2015, 김지곤)로 김지곤 감독을 기억한다. 옷가지며 이불들이 그대로 있는 김형률의 방을 느린 팬으로 살피거나 몇 쇼트에 걸쳐서 조용히 바라볼 때, 혹은 액자의 유리에 비친 사물의 상(相)을 관찰할 때, 티니언과 히로시마, 합천 등지에서 종종 물가나 돌담, 사소한 풍경 앞에 머물러 오래 그것을 살필 때. 그 자리에는 사물들과 장소를 응시하며 본질에 다가가려는 감독 특유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가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주던 디졸브는 이 영화에서 노을 지는 티니언의 바다에 히로시마의 강을 겹쳐내며 아예 동일한 장소처럼 보이는 데 쓰인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묶여있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티니언의 어두운 숲에서 시작한 영화는 김형률의 일기장 마지막 빈 페이지에서 끝난다. 그렇지만 거기에 담긴 고통과 슬픔과 문제 제기는 과거형이 되지 못했다. 어머니는 오늘도 당신의 아들을 위해 금강경을 욀 것이다. 김형률‘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원폭 범죄에 가담해온 우리 사회 내부의 책임을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느냐는 15년 전의 질문은 여전히 묵직하게 가슴을 때린다.
[월간스크린]스님과 조폭: <달마야 놀자>(박철관, 2001)
2001년 | 씨네월드 감독: 박철관 | 원안: 이명석 | 각본: 박규태 | 제작: 이준익 | 기획: 조철현 | 촬영: 박희주 | 미술: 오상만 | 음악: 박진석 신호섭 CAST 재규: 박신양 | 청명: 정진영 | 불곰: 박상면 | 날치: 강성진 | 왕구라: 김수로 | 막내: 홍경인 | 노스님: 김인문 | 현각: 이원종 | 대봉: 이문식 | 명천: 류승수 2000년대 초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장르는 이른바 ‘조폭 코미디’였습니다. < 조폭 마누라 >(조진규, 2001)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 두사부일체 >(윤제균, 2001) < 가문의 영광 >(정흥순, 2002)이 큰 흥행을 기록하면서 급속히 메인 스트림 안에 자리 잡았죠. 평단 일각에선 욕설과 폭력과 자극이 난무하는 이 장르의 관습이 한국영화를 저질화시킨다는 비난이 있었는데요, 일견 타당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닌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달마야 놀자>가 그런 영화죠. 한쪽에서 보면 조폭 영화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불교 영화인, 도저히 융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요소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심오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2001년 8월의 어느 더운 날, <달마야 놀자>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조폭들이 불당 청소를 하는 장면이었죠. 이때 불상을 닦던 왕구라(김수로)와 막내(홍경인) 사이에서 갑자기 논쟁이 붙죠. 부처는 중국 사람일까, 아니면 인도 사람일까. 불상의 밑바닥을 들춰 본 왕구라는 ‘Made in China’를 확인하는데요, 실수로 불상을 불당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이 사건은 스님과 조폭 사이에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죠. 적에게 쫓겨 고요한 암자에 뛰어든 재규파의 리더 재규 역을 맡은 박신양입니다. 1990년대 말 멜로 주인공으로 이미지를 굳혔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서 성공을 거두죠. 재규파에 맞서 절을 지키는 청명 스님 역의 정진영입니다. 진짜 스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할이 잘 어울립니다. 넘버 2인 불곰(박상면)과 넘버 3인 날치(강성진)입니다. 불곰은 큰 덩치의 해병대 출신인데요, 알고 보니 대봉 스님(이문식)의 해병대 후임이었죠. 한편 날치는 이후 속세를 떠나 출가하게 됩니다. 현각 스님(이원종)은 큰 덩치와 엄청난 힘의 소유자입니다. “칼에는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살리는 칼이 있습니다. 전 그걸 깨닫는 데 15년이나 걸렸습니다.” 출가 전엔 어떤 일을 했을지, 조금은 짐작 가는 대사입니다. 재규파의 넘버 4인 왕구라(김수로)는 엄청나게 말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막내(홍경인)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았는데요, 동자승(권오민)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죠. 암자의 여섯 스님들입니다. 왼쪽부터 노스님(김인문), 동자승, 청명 스님, 현각 스님, 대봉 스님 그리고 청명 스님(류승수)입니다. 청명 스님은 묵언 수행 중인데요, 이 설정이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촬영 장소는 김해 신어산 기슭에 있는 은하사였습니다. 가야국의 수로왕이 세웠다는 사찰이죠. 사실 절에서 촬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요, 다행히 섭외가 되었죠. 개봉 때는 승단에서 단체 관람을 하기도 했는데요, 상당히 만족하며 영화를 봤다는 후문입니다. 왕구라가 불상을 훼손하는 사고를 저지르는 장면을 대웅전에서 촬영한 후엔, 요사채에서 공양 신 리허설을 했습니다. 사찰에서의 공양, 즉 식사 시간은 엄격한 예절 속에서 조용히 이뤄지는데요, 재규파 다섯 명에겐 낯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노스님의 꾸중을 듣게 됩니다. 스님이 아닙니다. 이 영화로 데뷔한 박철관 감독의 모습입니다. 제작사 씨네월드에서 < 간첩 리철진 >(장진, 1999) < 아나키스트 >(유영식, 2000)의 연출부를 거쳤죠. 이후 두 번째 영화 < 미쓰GO >(2012, 박철관)를 연출했습니다. 현장에서 박신양은 쉬는 시간마다 캠코더로 촬영을 했습니다. 불당 안에서 레슬링을 하는 재규파 부하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동자승과 함께 보고 있네요. 정진영은 촬영 기간 동안 아예 은하사에 기거하면서 스님들과 생활했습니다. 그런 이유인지 영화에서 진짜 스님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기죠. 그 모습이 얼마나 리얼했는지, 은하사에 들른 어느 스님에게 혼이 났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데 인사를 하지 않자 정진영 배우를 혼냈던 거죠. 이 영화의 ‘뜬금포’ 같은 존재인 ‘츄리닝맨’ 김영준의 모습입니다. 영화 내내 수맥 탐지용 안테나를 들고 다니죠. 촬영이 끝난 저녁, 불당 아래 공터에선 재규파와 스님들은 족구 게임을 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할 족구 장면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이었지만, 시나리오와 상관없이 실제로 족구 시합을 했습니다. 축구화와 테이프로 동여맨 고무신 등을 신고 열심히 경기를 했는데요, 결국은 재규파가 이겼습니다. ‘불곰’ 박상면의 활약 덕분이었죠. <여인천하> 같은 TV 사극의 아역으로 낯익은 권오민은 <달마야 놀자>에서 동자승 역을 맡았습니다. 첫 영화였지만, 특유의 천진함과 귀여움으로 자칫하면 퍽퍽해질 수 있었던 영화의 정서에 숨통을 틔워 주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