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애니메이션의 움직임과 미학의 변화
그림 1. <라따뚜이> 엔딩 크레디트 중 “품질보증, 모션 캡쳐가 없는 진짜 100% 애니메이션”. 2008년 제80회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작품상의 < 라따뚜이 >(Ratatouille, 2007)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재미난 문구가 하나 있다. “품질보증, 모션 캡쳐가 없는 진짜 100% 애니메이션”. 장난기 섞인 문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마뜩잖은 구석이 많다. 그러면 모션 캡쳐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작품은 100% 애니메이션 작품이 아니라는 말일 텐데, 2007년 제79회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던 < 해피피트 >의 경우는 모션 캡쳐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작품이었고, 같은 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 베오울프 >(Beowulf, 2007)는 아예 모션 캡쳐보다 한발 더 나아가 퍼포먼스 EOG 캡쳐라는 생소한 기술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이것들은 모두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든 움직임의 기록과 재연/재현(reenactment/representation) 이미지에 대한 것이다.<라따뚜이>의 엔딩 크레디트의 한 문구가 던지는 물음도 역시 움직임의 표현과 이를 위한 여러 기술적, 역사적 조건들에 대한 물음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으로 추측은 가능하다. 사실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미학적 장치 중의 하나는 움직임이다. 이는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한 미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다른 예술 장르와의 차별성의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자는 움직임에 대한 전반적의 논지이며, 후자는 실사영화의 대척점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은 그 어원의 뉘앙스처럼 생명과 운동성이라는 거대한 축 아래에서 이해됨과 동시에 움직임을 기록하는 조건이 아닌 움직임을 창조해야 하는 조건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 조건이 성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은 어쩌면 태생부터 실사영화의 움직임에 경도되었거나, 아니면 그것의 기술적 방식을 차용해 오면서 많은 갈등(?)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초기의 애니메이션의 경우 실사영화의 인물이나, 인물의 손이 먼저 등장하고, 이후 애니메이션 기법의 작품이 등장하게 하면서 실사영화의 물질적 토대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이후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의 합성이라는 시대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시도는 이미 애니메이션과 영화사 초기에 함께 공유되었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림 2. 초기의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공존. < Humorous Phases of Funny Face >(1906)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자면, 움직임을 전적으로 전유하고자 했던 애니메이션도 사실 실사영화의 움직임을 그대로 차용했던 제작방식, 즉 로토스코핑 방식도 존재한다. 1917년 미국의 플라이셔 형제에 의해 특허로 제출된 이 기법은 실사로 촬영한 토대 위에 채색을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이 방식은 움직임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거나, 또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서 효과적인 공정을 구현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물론 이미지가 주는 낯설고, 독특한 지점도 포함해서 말이다. 여기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기법 역시 애니메이션 내부에서 상당히 많은 발전을 거듭하였고,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움직임을 만들어내어야 하는 것이 숙명이었던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떠올려본다면, 로토스코핑은 하나의 구현을 위한 방법으로 볼 수 있으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모션 캡쳐도 구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에 대해 무비판이이거나 무조건적인 수용은 자칫 기술 중심의 이해나 실사영화인 그 어떤 것에 종속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오히려 이러한 양상은 매체의 물질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하는 형식의 변화로 볼 것인가로부터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의해 등장한 미학적 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 라따뚜이 >의 엔딩 크레디트에 등장한 문구는 사실 지금 애니메이션 이론 진영에서 고민되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조금 편하게 예를 들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겠다. 영화 <아바타>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은 디지털기술로 인해 인물의 움직임을 지표기호적 성격으로 캡쳐 받은 마리오네트 이미지이다. 배우가 캐릭터를 조종하고 있는 셈이다. <라따뚜이>의 주인공 쥐는 인간의 머리 위에(?!), 마치 카부토 코지가 마징가 제트에 탑승한 듯 조종하고 있다. 애니메이터는 움직임을 통제하면서 애니메이션 내부의 캐릭터들을 통제 조종하고 있다. <라따뚜이>와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수많은 탑승형 로봇 애니메이션, 그리고 심지어는 컨트롤과 마리오네트(인형)의 정서적이고, 미학적 고민을 일삼았던 오시이 마무로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시대의 애니메이션과 움직임, 그리고 그 내부의 다양한 자장들은 좀 더 다른 의미에서 애니메이션의 미학의 영역에까지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그림 3. < 라따뚜이 >의 한 장면, 마치 디즈니의 < 판타지아 >를 떠오르게 하는 이 장면은 사운드와 이미지의 동시화에 대한 오스카 피싱어의 연구작품들과 유사하다. 이는 애니메이션만이 가능한 비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움직임과 그것의 형식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점이라 볼 수 있다. 당연히 100%(?) 애니메이션이라 자랑하였던 <라따뚜이>에 어울리는 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