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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독자시점 포스터 클릭시 확대 클릭시 확대 클릭시 확대 '전지적 독자 시점' 영화에 대한 리뷰는 세 파트 1 로 나누어서 쓰였습니다. 1. 스포일러 2 없는 리뷰 (원작과 상관없는 평가) 2. 스포일러 있는 리뷰 (원작과 상관없는 평가) 3. 스포일러 있는 리뷰 (원작과 상관있는 평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지 참고하려고 이 글을 클릭했다면 아래 1. 부분만 읽으면 됩니다. 2.와 3.은 각자가 목적에 맞추어 필요한 경우에 참고하면 됩니다. 아래 3. 부분에는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에 더하여 웹소설과 영화 매체 자체에 대한 논의가 포함될 예정입니다. 글 시작합니다. 1. 스포일러 없는 리뷰 (원작과 상관없는 평가) 1) 나와 가족은 재미있게 봤나? 재밌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평작 이상이다. 영화 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제 돈 주러 보고 가도 괜찮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할 것이고, 민생지원금이나 요즘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영화관 할인 쿠폰을 쓰면서 보러 갈만 하냐고 물어보면 완전히 추천하고 싶다. 나는 2번 봤다. 곡성 작은영화관에서 개봉 당일 오후 1시에 한 번, 이후 메가박스에서 한 번. 곡성에서 본 건 현금으로 현장결제해서 봐서 따로 모바일 기록이 없다. 곡성에서는 맨 앞자리에서 70대 아빠, 30대 누나와 같이 봤다. 나를 포함해서 셋 다 재미있게 봤다. 아빠는 영화관에서 자주 꾸벅꾸벅 조신다. 아빠가 안 졸았으면 아빠가 재미있게 봤구나 하고 이해하면 된다. 아빠는 최근 쥬라기공원을 보면서 안 졸고 재미있게 보셨다고 말했는데, 이 영화가 쥬라기공원같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누나는 전지적 독자 시점은 물론이고 살면서 읽은 웹소설이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2) 어떤 이야기인가요? [전지적 독자 시점]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현대 판타지 영화다. 예고편에 나와 있는 내용 수준에서 배경을 설명한다. 더럽게 재미없는 웹소설이 있었다. 얼마나 재미없었냐면, 그 웹소설이 3,000회가 넘게 연재됐는데 100회가 넘어가고부터는 그걸 읽은 사람이 1명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일진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소위 "찐따"에, 성인이 되어서도 변변찮은 정규직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 김독자는 그 인기 없는 소설이 자신의 삶을 위로해 주는 것 같다고 느껴서 꾸준히 읽었다. 그는 그 소설을 끝까지 완독한 유일한 독자가 됐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소설이 현실이 되어서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다면 김독자는 그 소설의 주인공으로 빙의한 걸까? 아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그대로 있다. 현실이 된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 소설을 끝까지 읽어서 주인공의 운명을 알고 있는 김독자와 김독자의 주변인물들이 현실에서 그 소설의 이야기를 다시 써가는 게 이 영화의 줄거리다. 김독자는 소설의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게 될까?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설의 이야기를 다시 써갈까? 3) 액션, 그리고 성장을 담은 영화. PS. 나나 멋있어요! 영화의 주인공 김독자와 주변 인물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모난 곳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주요한 이야기로 김독자와 주변 인물들의 성장을 다룬다. 저마다 모난 곳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서로를 성장시킨다. 어떤 캐릭터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캐릭터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펴보는 게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드라마적인 휴먼스토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액션이다. 전독시는 휴먼스토리를 보여주면서도 이를 액션으로 풀어낸다. 지금까지 한국 판타지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블록버스터 액션이 펼쳐지는데, 잘 만들었다. 장소가 바뀌면서 이야기의 진행이 바뀌는 구성인데, 대부분의 장소에서 굵직한 액션 씬이 나온다. 액션의 구성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생각한다. 애프터스쿨/오렌지카라멜 출신인 가수이자 배우 '나나'의 액션씬이 특히 돋보였다. 김독자(안효섭)과 유중혁(이민호)의 액션은 당연히(?) 많이 나오고 또 괜찮게 구성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려니 하고 봤는데, 나나의 액션이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아시아판 존윅 스핀오프를 찍는다면 그 주인공으로 나나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나나는 롱테이크까지는 아니지만 꽤 길게 테이크를 가져가는 액션씬을 보여주는데,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액션 이외의 대사 씬의 연기도 좋았어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4) CG가 어색한가요? 그렇지 않다. 판타지 속 괴물 같은 게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제작비의 한계가 있으니 마블 수준의 CG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영화를 즐기는 데 방해되지 않을 좋은 수준의 CG를 보여준다. 다만, 특정 인물이 공중을 넘어 이동하는 씬에서 어색한 장면이 3번 있는데, 그것 때문에 CG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 그 인물의 얼굴이 훌륭하다 보니 이동 중에 얼굴을 강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 구도를 그렇게 잡은 것 같은데, 배경과 조화되지 않는 면이 있어서 다소 아쉬웠다. 더 자연스러운 카메라 구도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 5) 원작 웹소설이나 웹툰을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인가요? 웹소설을 안 보면 영화의 진행을 이해하기 어렵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 영화는 원작에 나오는 다양한 설정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불만 어린 항의가 있을 만큼 복잡한 설정들을 다 쳐내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구성으로 각색했다. 다만, '힘이나 민첩성, 근력이라는 능력치를 올린다'라는 개념과 시나리오(퀘스트)를 깬다는 것같이 주로 게임에 많이 사용되어온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영화 초반에 저게 무슨 이야기인지 어색해할 수는 있다. 영화에서 다양한 장면들로 그런 게임적인 설정들이 어떤 뜻인지 유추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는 안 된다 생각한다. 이 영화는 설정을 많이 쳐내고 바꾸면서까지 이 영화 한 편이 나름의 기승전결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한다. 영화라면 모름지기 당연히 가져야 할 특징이기도 하지만, 긴 분량의 원작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원작 웹소설이나 웹툰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이 영화 하나만 보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가 짜여졌기 때문에, 원작이 있는 작품을 볼 때 흔히 하는 걱정(가령, 원작을 봐야 하는 건가?)은 하지 않아도 좋다. 6) 아쉬운 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작 이상의 영화 아쉬운 점도 있다. 몇몇 장면들에서 아쉬운 연기가 있었다. 연기의 톤이 다른 인물들과 조화되지 않는 배역이 있었다. 분량이 많지 않어서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CG가 어색했던 장면 3개(어떤 배우의 공중 이동 장면)도 분명 아쉬웠고, 중간중간 보이는 인물들의 성격 변화가 영화에서 충분히 개연성 있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다. 분량 때문에 몇몇 컷이 삭제되면서 생긴 현상으로 추측한다. 크게 거슬리지는 않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도 아니긴 하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걸리는 부분 없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오래 기대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명작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평작이라는 평가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평작이라고 평가한다면 판타지 영화를 도대체 얼마나 잘 만들어야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평작보다는 잘 만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다닌다. 7) 이 영화를 통해 웹소설/웹툰 문화 엿보기 이 외에 '주인공 혼자만 알고 있는 소설이 현실이 되었고, 주인공이 자신이 아는 지식을 활용해서 성장해간다'라는 설정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비슷한 장르의 웹소설이나 웹툰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유치한, 허무맹랑한 설정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그렇기에 이 영화가 그런 익숙하지 않은 설정들에 다가가 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웹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현대 판타지 영화다. 영화의 원작이 되는 [전지적 독자 시점] 웹소설은 캐릭터들의 성장을 가시화해서 보여주는 수단으로 상태창(주로 게임에서 활용되는)을 사용하고, 환생하거나 회귀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소설에 빙의하는 것 같은 설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지금 웹소설/웹툰에서 한창 인기를 끄는 한국의 현대 판타지 장르의 특징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영화 또한 원작에서 보여주는 현대 판타지 장르의 특성을 상당히 많이 가져오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웹소설과 웹툰에서 유행하는 설정이나 개념이 뭔지 엿볼 수 있다. 한국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4년 출판시장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22개 출판 기업의 2024년 단행본(웹소설, 만화, 교육 출판물을 제외한 일반적인 책) 매출액은 약 4,653억 원이고, 같은 기관이 조사한 [2024년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주요 플랫폼 사업체의 웹소설 분야 매출액은 1조 3,129억 원이다. 아주 직관적으로 말해서 이제는 책보다 웹소설에 돈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인데(웹툰까지 더하면 차이가 훨씬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웹소설은 정말 보는 사람만 본다. 내 주위에도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글로 써진 소설이니까 단행본(일반적인 책)과 비슷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르다. 매체의 특성이 너무 다르다. 권 단위의 분량으로 출판되는 소설은 1회 5천 자 내외의 분량으로 매일 혹은 격일로 연재하는 소설은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독자들이 주로 어떤 상황에서 읽는지, 작품의 호흡과 전개 방식 등이 많이 다르다. 웹툰과 출판 만화의 연출법이 상당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양 시장은 많이 분화되어 있다. 서로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종종 비난하기까지 한다. 내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주위에 웹소설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게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힘들다. 나는 웹소설과 웹툰, 단행본을 모두 좋아하는데, 각자가 다른 매력을 가진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는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즐길 거리를 늘릴(?) 때도 되지 않았냐고 되묻고 싶다. 평소 웹툰이나 웹소설이 뭔지 궁금했는데 기회가 없어서 혹은 오그라들어서 보기 힘들었다면, 거부감이 덜한 영화를 보면서 그쪽 세계를 엿보는 경험을 하는 것은 어떨까?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엿보기를 위한(말이 좀 이상하네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스포일러 있는 리뷰 (원작과 상관없는 평가) 1) 목차를 이렇게 나눠놓은 이유 이 부분을 읽는 사람들은 아래의 3. 부분도 읽을 확률이 클 것이기 때문에 왜 원작과 상관있는 평가와 없는 평가로 목차를 나누어 놓았는지 설명하고 넘어간다. 나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라고 한다)의 원작을 읽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원작과 비교하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과의 관계에서 내리는 이 영화에 대한 평가와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작은 원작이고 각색된 작품은 각색된 작품이다. 같은 작품이 아니다. 웹소설과 영화라는 다른 매체로 만들어진 별개의 작품이고, 각 작품은 고유한 의미에서 좋거나 나쁠 수 있다.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한 영화라고 해서 좋은 영화가 되는 게 아니고,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않은 영화라고 해서 좋지 않은 영화가 되는 게 아니다.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했지만 좋지 않은 영화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않았지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내가 영화를 평가할 때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기준을 활용해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한 리뷰를 작성할 것이고, 그 기준에는 원작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되었는지가 포함되지 않는다. 원작의 반영 여부와는 별개로 영화는 훌륭하거나 비루할 수 있으므로 나는 최대한 이 영화를 있는 그대로 평가할 것이고, 원작과의 관계에서 본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아래 3. 목차를 통해 별도로 이야기한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작을 본 사람이고 원작에 대한 애정이 큰 사람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원작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이 이 영화에 대한 평가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반영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나는 무의식적인 영역까지는 온전하게 통제할 수 없으므로 이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영화에 대한 리뷰를 시작한다. 2) 미술 (1)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러니까 멸망한 혹은 멸망하고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좀비영화나 SF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사용된다. 멸망한 세상의 모습을 얼마나 개성 있고 독창적으로 그리는지에 따라 영화의 미술적 표현에 대해 가산점을 줄 수도, 감점을 줄 수도 있다. 영화 전독시는 멸망한 세상을 묘사하면서 개성 있는 표현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직 완전히 멸망한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멸망하고 있는 중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 배경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영화 내에서의 배경(지하철, 동호대교, 금호역, 충무로역)이 멸망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전독시는 현실이 그 상태 그대로 멸망한 게 아니라 일종의 판타지적 세계관이 덧씌워져서 멸망한 세상을 그린다. 그 때문에 거의 유일한 야외 배경이었던 동호대교와 동호대교에서 괴수에게 먹히고 땅으로 올라왔을 때의 장소에서도 폐허나 멸망의 모습을 강조하기보다는 판타지적인 배경을 강조한다. 동호대교에서는 노을빛을 강조하고 대교를 잇는 마법적인 다리를 묘사했고, 땅으로 올라왔을 때 역시 폐허가 된 강변 아파트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바다 쪽으로 카메라를 잡으면서 날아다니면서 빛나는 해파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미술은 이 영화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배경보다는 판타지적인 배경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판타지적인 묘사는 어떠했는가? (2) 판타지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었다. 금호역에서 괴수를 죽이는 미션을 하던 중 이길영의 능력으로 반딧불이를 불러서 지하철을 밝히는 장면은 아름답고 신비롭게 묘사되었는데, 이 지옥 같은 세계관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함을 불러일으킨다. 해당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 어둠 파수꾼 장면과 화룡종을 레이드할 때 시나리오의 난이도가 올라가서 지하철 외부의 공간이 우주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장면은 전독시의 세계관이 게임적인 설정을 가미한 판타지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땅강아쥐 제사장에 진입한 후 공간이 바뀌어 전후좌우상하가 구분되지 않는 360도의 공간이 펼쳐지는데, 게임에서 던전에 진입한 상황 같은 느낌을 잘 보여준다. 제사장에서의 CG에는 어색함이 전혀 없었고, 이전에 다른 영화들에서 본 미술적 장치도 아니었으며, 전독시의 게임적 세계관을 잘 드러내 주는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화룡종 레이드 장면에서 지하철 외부의 공간이 우주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지하철 플랫폼의 외벽이 해체되면서 공간이 우주로 확장된다. 형형색색의 우주를 배경으로 전투가 펼쳐지고, 이 부분의 CG도 어색함 없이 등장인물들과 잘 어우러진다. 전독시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성좌들이 등장하고, 이 내용은 영화 내에서 설명되지만 아래 화룡종 레이드 장면 이전까지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주인공 일행이 화룡종을 공격하기 위해서 우주 공간으로 올라가는 부분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눈알이 등장하는데, 이 세상을 관조하고 있는 외부적이며 신적인 존재(성좌)가 있다는 점을 미술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다. 웹소설/웹툰에 자주 활용되는 성좌물 설정을 처음으로 실사영화에서 표현한 것이었는데,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3) 횡스크롤 액션 몇몇 액션들이 횡스크롤 형식으로 보여지는 것도 색달랐다. 고전영화까지는 잘 모르겠고, 내가 본 영화 중에서는 킬빌을 제외하고는 횡스크롤 형식의 액션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없었다. 횡스크롤 액션이란 공간의 3가지 방향을 다 활용해서 액션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의 Y축과 Z축에서의 위치를 고정한 후 X축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식으로 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횡스크롤은 주로 게임에서 활용되는 디자인이다.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장치의 성능에 제한이 많았던 시절에는 게임 내 공간의 3가지 방향을 다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2D 구조인 횡스크롤 방식으로 이동하면서 액션을 보여주거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이 많았다. 장치의 성능이 많이 올라가서 3차원 공간을 모두 활용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횡스크롤만의 고유한 느낌(이야기 혹은 공간이 진행된다는 감각, 속도감, 횡스크롤에서만 가능한 난이도 조절 등)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게임들이 횡스크롤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전독시에서는 금호역 전투 장면 중 주로 정희원의 액션 장면에서 횡스크롤 방식이 활용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하철역의 공간적인 특성상 여러 방향으로 확장되는 게 아니라 한 쪽 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있기 때문에 횡스크롤이라는 표현방식이 어울리기도 했고, 전독시의 게임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정희원의 액션 시퀀스는 횡스크롤 방식의 액션에서도 그렇고 횡스크롤이 아닌 3차원을 모두 활용하면서 테이크를 늘어뜨리는(롱테이크 까지는 아니지만 꽤 길었다) 장면 모두에서 훌륭했다. (4) 아쉬운 폐허 묘사 다만, 게임적인 세계관을 드러내야 한다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회상이나 상상으로 나오는 폐허 장면들에 대한 표현은 아쉬웠다. 약 3번 정도 온통 배경이 빨간색인, 딱 보면 지옥같이 생긴 공간이 나온다. 유중혁이 혼자 살아남아서 이 이야기의 결말을 봤고, 그 혼자 살아남은 곳은 폐허였다는 점을 드러내 주는 배경이다. 폐허 + 지옥 느낌을 주려고 황폐한 모습을 표현하려고 한 의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표현이 다소 촌스러웠다. 온통 세상이 빨간색이고 아래에 괴수가 쓰러져있고, 주위가 울퉁불퉁하게 묘사된 배경은 지옥을 표현할 때 아주 흔하게 활용되는 미술이다. 세련되지도, 독창적이지도 않았다. 거기에 유중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인데(검은 머리에 검은 착장) 배경은 채도가 높은 빨간색이다 보니 유중혁이 배경에 잘 어우러지기보다는 배경에 얹혀진, CG 같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해당 장면은 전독시만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미술을 드러낼 좋은 기회였는데 다소 아쉽게 활용되었다고 생각한다. 배경에 활용된 빨간색의 채도만 많이 낮췄어도 배경과 사람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덜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5) 화룡종 묘사 더해서, 미술의 문제이기도 하고 연출의 문제이기도 한 부분인데, 영화의 마지막 보스인 화룡종에 대한 묘사도 아쉬웠다. 화룡종이 진화(?)한 모습을 구상하면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스에 나오는 스테판 울프를 많이 참조한 것 같았다. 처음에 등장하는 화룡종은 용이나 고질라와 비슷한 모습을 띄고, 이후에 진화된 모습이 그 스테판 울프가 조금 더 우락부락해지고 지옥물에 몇 번 담가진 것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진화된 모습이 기존의 용/고질라와 같은 묘사에서 인간형에 가까운 묘사로 바뀌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렇게 묘사해서 얻어지는 효과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딱히 더 위압적으로 바뀐 것 같지도 않았다. 더해서, 그 화룡종이 최종 빌런이니까 위압적인 모습, 막막한 모습이 더 잘 느껴지게 그려졌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한 연출이 아쉬웠다. 위압적인 모습이 덜 드러나기 때문에 극적으로 화룡종을 물리쳤을 때 얻어지는 희열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화룡종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아쉬워지면서 초반부에 등장하는 약한(?) 괴수인 땅강아쥐의 묘사가 오히려 인상 깊게 됐다. 땅강아쥐는 초반부터 등장하고 그렇게 강하지 않은 괴수로 설정됨에도 불구하고 되게 무섭고 강하게 생겨서 저거 한 100마리만 있어도 화룡종보다 훨씬 무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강아쥐 뿐만 아니라 땅강아쥐 제사장에 등장하는 어둠 파수꾼에 대한 표현도 좋았다. 사방으로 돌기가 쫘악~ 펼쳐지면서 더럽게 무서운 악마처럼 등장하는데, 나라면 진짜 바로 도망갔을 것 같이 생겼다. 뭔가 비슷한 게 생각이 날 것 같으면서도 생각이 안 나는 괴수 디자인이었다. 다음 영화가 제작된다면 새로운 괴수들이 다양하게 등장할 텐데 어둠 파수꾼의 디자인같이 개성있으면서도 위압적인 디자인이 나와주면 좋겠다. 3) 서사와 연출 (1) 전독시의 특색 전독시는 주인공인 김독자만 읽은 소설이 현실에 펼쳐지면서 김독자가 소설 속 여러 난관들을 겪어가는 이야기다. 여타의 빙의 소재의 작품들과 다른 점은 주인공이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소설이 현실에 펼쳐지며, 주인공이 소설 속 주인공으로 빙의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은 그대로 따로 있으며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로 등장해서 소설의 이야기에 끼어든다는 것에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유중혁이 회귀 능력을 가진 회귀자라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1편에서는 해당 설정이 본격적으로 활용되지 않아서 회귀의 소재를 다룬 영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전독시는 주인공이 동료들과 함께 난관을 겪고 이를 극복한다는 평범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특색을 만들어주는 건 영화의 주인공인 김독자가 미리 난관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점과, 김독자가 소설을 통해 자신과 함께 할 동료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설정을 활용해서 난관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만의 특색이 생긴다. 영화는 이 두 가지 설정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김독자가 미리 이 이야기의 주연이 될 등장인물들에게 접촉해서 동료가 될 계기를 만들고, 김독자가 혼자 혹은 같이 겪는 난관들마다 본인이 미리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한다. 특히 후자의 설정 때문에 주인공과 동료들이 겪는 고난이 다소 심심해 보일 수도 있는데, 영화는 등장인물이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어서 이를 활용해 과거를 바꾸면 그 순간 미래가 바뀌기 때문에 주인공이 모르는 방식으로 난관을 전개시켜서 주인공과 동료들이 겪는 고난이 쉽지 않은 고난처럼 보이게 만든다. 영화 내에서는 '모든 회귀자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이 모르는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는 대사로 이런 내용들이 표현된다. (2) 시나리오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출의 부족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출이 충분히 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면서 이 난관이 쉽지 않은 난관이라는 것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충분히 성공하는지는 모르겠다. 보면서 '그래, 힘들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하면 될 것 같은데'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차피 주인공이 극복해 낼 걸 알아도 스릴있게 연출할 수 있다. 최근 영화 미션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에서의 미션들이 그랬다. 전독시에서는 마지막에 유중혁이 사망해서 세상이 사라지는(마블 엔드게임에서 타노스의 핑거스냅 장면 혹은 드라마 로키 시즌2에서 시간 선이 붕괴하는 장면의 미술을 참조한 것 같다) 장면은 망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괜찮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장면 이후에 김독자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짧게 그려지면서 좋은 장면을 충분히 잘 활용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3) 사람이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는 이야기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작품들은 '인간'의 속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인간의 이기심이나 탐욕을 많이 다룬다. 좀비나 SF 배경의 생존 영화에서 그런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많이 그려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배경이 아닌 익숙하지 않으며 극단적인 환경에 인간을 던져놓고 이를 관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인 우리들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인간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타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인간의 속성 탐구에 몰두하지 않는다. 금호역에 있는 민간인들과 천인호를 비추면서 인간의 탐욕이나 이기심, 잔인함에 대해 다루긴 하지만 전독시는 이를 주인공과 동료들이 겪게 되는 난관의 배경과 맥락으로 제시할 뿐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거나 탐구하려 들지 않는다. 전독시는 인간 군상 일반을 다루기보다는 주인공과 주인공 동료들 개개인에 집중한다. 주인공과 동료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주인공인 김독자와 그 동료들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가진 보통의 사람들이다. 영화에서는 그 보통의 사람들이 각종 난관을 겪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서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김독자와 일행인 이현성, 정희원, 이지혜, 이길영, 유상아 중 이길영과 유상아의 상처/트라우마는 영화 내에서 주어지지 않고,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유상아와 이길영의 각성 혹은 성장의 모습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유상아와 이길영은 전독시에서 성장하기보다는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김독자와 이현성, 정희원과 이지혜의 경우 직접적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정희원의 경우 눈앞에서 친구를 잃은 트라우마를 극복해서 악인을 물리치면서 각성한다. 이때 보여주는 액션들이 진국이다. 이현성은 본인이 군 간부이던 시절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훈련병이 수류탄을 놓치는 실수를 했을 때 그 훈련병을 구하지 않고 본인만 살아남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본인은 그 수류탄 소리의 트라우마와 이전 전투에서의 부상 때문에 귀 막으면서 피하고 있는데, 열 살도 안 된 것으로 보이는 어린 이길영이 손으로 자신을 꼭 안아주고, 그 이길영이 코피를 흘려가며 동료들을 구하는 싸움에 참전한다. 이현성은 이길영을 보면서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어린 훈련병을 떠올리고, 이에 이길영을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참전해 화룡종을 막으면서 특성 진화(강화)를 하게 된다. 이지혜는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작중에서 이지혜는 계속해서 "어쩔 수 없었잖아. 어쩔 수 없었다고"라는 말을 한다. 같은 말을 두 번 연속으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지혜는 스스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계속해서 되놰야 하는 마음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때 자신의 모습이 악한 모습이여서는 안되었기에 이지혜는 영화 초중반에 다소 이기적이고 소시오패스적인 모습으로 행동한다.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 이전의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 되지 않으므로 하는 발악으로 보인다. 이후 이지혜는 김독자로부터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혼자 살아남으려다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잖아"라는 말을 듣고, 김독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발 아래에 설치된 그린 존(안전한 공간)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혼자 살아남으려고 친구를 죽였던 것과는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된다. 이지혜의 각성은 이지혜가 김독자의 그린존에 총알을 발사하면서 이를 터뜨리는 것으로 그려진다. 김독자의 각성은 이지혜의 각성 직전에 이루어진다. 김독자는 직전까지 계속 갈팡질팡한다. 일단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김독자가 읽었던 멸살법에서 유중혁 빼고 다 죽은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결말을 쓰고 싶어 한다. 동료들을 돕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김독자만 알고 있는 그린존 위에 서서 나가고 싶지 않아 하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료들이 그린존 밖에서 괴수들과 싸 우는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 반 이타심 반에 그 싸움에 참여하게 된다. 김독자는 동료들을 살리고 환영 감옥에 빠져서 본인도 살아남으려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와중에 동료들이 밤새 괴수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그 와중에 이현성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어린아이인 이길영도 탈진한 모습을 보게 된다. 김독자는 자신의 동료들이 목숨을 바쳐서 자신을 위하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해서 바보같이 죽은 게 아니라 살아남은 모습을 보면서 동료들에게 말한다. "어젯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뭘 해야 할지 알게 됐어요." 이전에도 김독자는 자신이 읽은 소설의 결말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지만, 그 마음이 정확히 뭔지, 소설이 현실로 펼쳐진 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자신이 해야 하는 게 뭔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료들이 사진을 위해서 희생하고, 힘을 합쳐서 살아남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자신이 이 세계에서 원하는 게 뭔지, 해야 하는 게 뭔지 알게 되어서 각성한다. 이후 김독자는 자신이 희생하면서 죽는 전략까지 짜게 되는데, 이는 그린 존 시나리오에서 자신만 아는 그린 존으로 가서 밖으로 나오기 주저하면서 괴로워하던 김독자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김독자가 확실하게 성장하고 각성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김독자와 주변인물들이 성장하거나 각성하고, 그 과정에 주변 동료들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좋았다. 완전 따뜻한 이야기다. 물론 아주 개성 있거나 독창적인 성장 서사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영화와는 다른 전독시만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인간 일반에 대한 일반론을 다루는 게 아니라, 김독자와 동료들이 겪는 모험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 사람을 구원하는 건 사람이고, 사람을 반성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며, 사람을 성장하고 극복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 아니겠나. (4) 액션에서 소외되지 않는 캐릭터들 액션에서 소외되는 캐릭터가 없었다는 것도 장점이다. 주연 캐릭터라면 소비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합당한 역할을 부여받아야 하는데, 전독시는 이야기 진행에서뿐만 아니라 액션에서도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금호역의 화룡종 레이드 장면에서는 유중혁, 김독자, 이지혜, 이현성, 유상아, 이길영 모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전투에 참여한다. 인물들이 많아서 명확한 역할을 끼워 넣어 주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액션의 구성에 많은 고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진화한 화룡종을 잡는 계획에서 '모두가 참여하는 액션'이 잘 드러났는데,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계획에 따르면 유상아가 실로 화룡종을 묶어두고, 김독자가 화룡종의 가슴을 찔러서 껍질을 깨도록 시도하고, 이지혜도 총으로 이걸 돕고, 껍질을 깨면 김독자가 죽을 텐데 그걸 뒤이어서 정희원이 화룡종의 코어를 깨는 게 계획이었다. 아, 계획을 짤 때는 이현성과 이길영이 전투 불능 상태였던 것으로 간주돼서 참여하지 않지만, 실전에서는 둘 다 열심히 참여해서 동료들을 구해낸다. 하여튼, 이런 식으로 모두가 각자의 개성 있는 능력을 활용해서 전투에 참여하는 액션을 구상하려는 시도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5) 캐릭터들이 성장하는 연출에 대한 아쉬움 위에서 길게 이야기했듯이 영화 전독시의 메인 테마는 주인공과 동료들의 상호 성장 서사다. 이 점이 영화에서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길영과 유성아의 성장 서사가 1편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후에 다룰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후의 작품들까지 이길영과 유상아의 이야기가 1편의 다른 주연들 이야기처럼 깊게 다뤄지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평가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아쉬웠던 건 이현성과 이지혜의 성장 부분에서의 연출이었다. 먼저 이현성. 이현성 역을 맡은 배우의 작품을 여럿 봤는데, 표정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현성이 특성 진화를 하는 과정에서의 연기 혹은 연출이 조금 아쉬웠다. 이지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했다. 이지혜의 성장 서사는 매력적이었지만 너무 짧게 등장해서 서둘러 성장의 결론만 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두 배우의 연기 문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분량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 한 편에서 줄거리는 줄거리대로 다 진행하고 설정도 여러 개를 풀면서 동시에 김독자/이지혜/이현성/정희원 네 명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이현성과 이지혜의 이야기가 다소 적은 분량으로, 압축적으로 묘사된 것 같다. 보다 많은 분량이 주어졌으면 충분한 연출이 가능했을 것 같은데, 이 점이 아쉽다. 이 두 배우의 연기 문제였든 아니면 분량의 제약으로 인한 연출의 문제였든 아쉬운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니 지적해 둔다. (6) 그 외 아쉬운 연출 이 외에도 두 부분이 아쉬웠다. 동호대교에서 떨어진 김독자가 해수종에게 먹혀서 위장 안으로 들어가 처음 비형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김독자가 갑자기 능숙해진다. 이 전까지는, 그리고 이후 장면에서도 자주 갈팡질팡하고 확신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위장 안에서는 갑자기 비형을 능숙하게 다루면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을 알고 있으니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어색한 건 아니지만, 직전의 모습과 잘 연결되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이라서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는 혼잣말이라도 넣어줬으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 해수종을 죽이고 탈출하고 곧바로 정희원을 만나서 함께 금호역으로 가게 되는데(정확히 말하면 정희원을 구하면서 간다), 금호역에서 이기적인 사람들을 대면하게 된다. 이 소설 속 세상에 잘 적응한 평범한 사람들인 건데, 문제는 언제 이렇게 적응했냐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김독자가 괴수의 위장 안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있었는지가 제시되지 않는다. 저녁놀이 생길 즈음에 위장으로 들어가서 밖으로 나오니까 밤이 되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 몇 시간 안 지났나? 반나절 정도 지난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나절 정도 지난 것 같은데 금호역에서 만난 민간인들은 이 세상에 너무 잘 적응해서 이기적으로 굴고 있다. 뭔가 어색한 거다. 영화를 같이 본 누나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이런 이상한 판타지 세상이 펼쳐진다면 적어도 며칠은 지난 후에 사람들이 서서히 적응해야 할 것 같은데, 반나절 만에 너무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니 어색하고 이질적이다. 그런데 영화를 잘 보면 사실 반나절이 지난 게 아니라 며칠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호역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생존비를 납부하지 못한 사람은 죽게 된다'라는 설명이 나온 후 철로의 한쪽에서 많은 시체들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이를 태우면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타는 시체들 앞에서 우는 장면이 나온다. 생존비를 납부하지 못한 사람이 죽게 되는데 저렇게 시체가 많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 며칠은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금호역에 있는 사람들이 이 상황에 잘 적응한 맥락, 그러니까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는 맥락을 주면서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문제는,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는 맥락'을 알아채는 유일한 수단이 쌓여있는 시체들을 보고 추론하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 단번에 그 장면을 포착해서 이를 추론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그 장면을 포착했다. 김독자가 괴수의 위장에서 탈출하면서 혼잣말하든 아니면 다른 장치를 보여줘서 며칠이 지났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한 후에 금호역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했다면, 금호역 사람들이 이 세상에 충실하게(?) 적응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줄어들었을 텐데, 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표현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었다. 4) 총평 몇몇 연출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좋았던 점이 훨씬 많았던 영화였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한국형 현대 판타지에 대한 첫 영화화 시도인데, 미술적으로 보나 서사적으로 보나 좋았고, 잘했다.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난관은 각색에 있을 것이다. 위에서 지적했던 연출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을 다듬는 건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다. 전독시의 원작이 워낙 방대하므로 이를 5편으로(5편에 대하여 판권 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 줄이려면 엄청나게 과감한 각색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는 장기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킬수 있는 웹소설과는 다르게 2시간짜리 한 편에 기승전결이 모두 담겨야 한다. 1편은 일단 그것에는 성공했다. 2편도 그렇게 기승전결을 담아서 각색한 후에, 위에서 말했던 미술적으로/연출적으로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완해서 장면 진행이 자연스럽게 구성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3. 스포일러 있는 리뷰 (원작과 상관있는 평가) 1) 결론부터 이해가 되는 각색이었다.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일부 팬들의 아쉬움이 있는데, 이해한다. 이 주변의 많은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2) 저 전지적 독자 시점 원작 웹소설의 팬 맞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 원작도 안 읽은 놈이 혹은 팬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영화를 호평하는 리뷰를 썼다고 오해할까 봐 미리 밝혀둔다. 나는 웹소설 전독시를 3.n회독 했다. 네이버 시리즈로 2회독 했고, 단행본으로 1회독 했으며, 이 외에는 정주행한 게 아니라 중간중간 읽었기 때문에 3.n회독이라고 표현했다. 웹툰도 읽고 있다. 웹소설 외전은 325화까지 읽었다. 구매는 357화까지 해놨는데 조금 더 나오면 몰아볼 예정이다. 물그릇 올려놓고 제발 해피엔딩이기를 기도하면서 이학현 혹은 김독자의 이야기를 읽어가고 있다. 전독시를 1회독 하고 리뷰를 썼고1), 2회독 하고 리뷰를 또 썼다2). 2회독 하고 쓴 리뷰는 22,478자 분량이고, 나름대로 전독시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까지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면 많이 부족해서 외전이 끝난 후에 혹은 그전에라도 다시 리뷰를 쓸 예정이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웹소설이 전독시다. 전독시 이후에도 수많은 웹소설을 읽었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소설은 전독시다. 영업에 성공한 적은 없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도 여러 차례 전독시를 추천해 왔다. 세부적으로 몇몇 순서가 틀릴 수는 있지만, 굵직굵직한 에피소드별로 구분한다면 눈 감고도 진행 순서를 외운다. 나보다 전독시를 더 여러 번, 더 자세하게 읽은 사람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의 사람을 전독시 찐팬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전독시 찐팬 맞다. 그러니까 전독시 원작도 안 읽은 사람이, 찐팬도 아닌 사람이 쓰는 글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3) 웹소설과 영화 매체의 차이 (1) 호흡, 전개 속도, 한 편의 완결성 웹소설과 영화는 다르다. 웹소설은 1회에 5,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연재되는 연작소설이다. 1주일에 많으면 7회, 적으면 3회 정도 연재된다. 당장 이번 편이 재미없으면 다음 편을 보지 않게 되기 때문에 매 회마다 다음 회가 궁금해지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고, 그러니 작품의 호흡이 굉장히 빠르다. 웹툰과도 다르다. 정기적으로 연재되는 작품이고 호흡이 빠르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1주일에 3~7편 정도 볼 수 있는 작품과 1주일에 1편 정도 볼 수 있는 작품의 호흡은 같을 수 없다. 웹소설 1회 분량을 웹툰 1회로 만들면 웹툰은 반드시 어느 시점에는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의 화산귀환 웹툰이 그렇다. 화산귀환 원작 웹소설은 분량 늘리기(?)가 심한 웹소설이다. 지금 1,800화 이상 연재되었는데, 1,800화 기준 일반적인 소설책 약 65권 분량이다. 웹소설 초반부는 전개가 빠른 편이라 각색을 최소화한 채 웹툰에 이식되었어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초반부가 지나자, 웹툰의 전개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웹소설이 웹툰으로 이식될 때는 원작보다 전개가 더 빨라져야 하고, 압축적으로 전개가 일어나야 한다. 각색을 잘했다고 평가받는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나 웹툰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을 보면 원작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압축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생략도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또 다르다. 웹소설이나 웹툰과는 다르게 빠른 기간 안에 연재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한 편 한 편이 온전한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작이 되는 웹소설이나 웹툰의 전체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기승전결이 있는 특정한 에피소드만 다루는 방식을 취하거나, 전체 내용을 다루려면 엄청나게 많은 압축/생략이 담긴 각색이 있어야 한다. 특정한 에피소드만 다루더라도 상당한 생략과 압축, 각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2) 개연성의 요구 정도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는 방식(연재, 개봉 등)뿐만 아니라 글, 이미지, 영상이라는 매체 자체의 차이도 있다. 실사에 가까운 형태의 매체를 접할수록 사람은 전개의 자연스러움 혹은 개연성을 더 크게 요구하게 된다. 실사에 가까울수록 상상의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조금 더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매체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감각의 종류(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가 적을수록 우리는 스스로 나머지 감각을 채워가면서 매체를 감상하고, 감각의 종류가 많을수록 우리는 이미 주어진(전달된) 감각들이 짜임새 있기를 요구한다. 우리가 스스로 채워서 완성도 있게 감상할 여지가 없으니까 주어진 것 자체가 완성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면 자연스럽게 묘사된 부분과 생략된 부분을 스스로 상상하면서 감상한다. 만화 같은 이미지 기반 매체를 즐길 때도 같은 상상이 이루어지지만, 이미 이미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상의 여지가 줄어든다. 우리가 스스로 상상을 통해 완성도를 채울 여지가 줄어든 만큼, 주어진 이미지에서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실사 기반의 영상 매체로 가면 더더욱 그렇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글로 읽을 때보다는 이미지로 볼 때, 이미지로 볼 때보다는 실사 영상으로 볼 때 생략된 부분이 더 적고 개연성 있게 구성되어 있기를 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어야 감상하면서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3) 분량 분량의 차이도 있다. 작품의 공개 방식(연재, 개봉 등)의 차이와 맞물려있는 이야기인데, 글이 분량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자유롭다. 적은 분량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게 일반적으로는 더 훌륭하다고 평가받지만, 많은 분량으로 글을 쓰더라도 완성도가 있으면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화산귀환 웹소설 1,000화 이전까지가 그랬다. 다른 일반적인 웹소설에 비해서 분량 늘이기가 심한 웹소설이었지만, 그만큼 세밀한 감정묘사가 이루어졌기에 이를 장점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니까 글은 분량이 적어도 괜찮고 많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영화는 분량이 많아도 괜찮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 정말 길어야 3시간이다. 크레딧과 광고 시간을 제외하고 2시간 반 이상의 러닝타임을 확보하는 건 제작비와 상영 비용 차원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cg와 편집, 촬영 비용이 늘어나고 영화 개봉을 위해서 상영관에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가 늘어날 수 있다. 상영관 입장에서는 러닝타임이 길수록 하루에 상영할 수 있는 영화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가 웹소설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2시간 반 이상의 영화는, 잘 안 본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짧은 영상에 익숙해지고 긴 영상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가족들과 영화를 보려고 할 때 2시간 반 이상의 영화는 상당히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몇 번이나 느꼈다. 그러니 영화는 2시간 내외의 분량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 분량 안에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글로 전달할 때보다 더 짜임새 있고 개연성 있게 보여야 한다는 제약이 생긴다. (4) 소비자층 소비자층도 다르다. 상업영화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겨냥하고 만들어지지만, 웹소설은 취향 분야가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회/빙/환과 무협, BL과 로맨스, SF 등 장르와 소재가 다변화되어 있고 각 장르/소재마다 인기를 끈 작품들이 있지만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면서 읽는 경우는 많이 없다. 일반적으로 남성 소비자들에게 잘 어필하는 무협 장르는 여성 소비자들이 거의 소비하지 않고, 여성 소비자들에게 잘 어필하는 BL이나 로맨스 장르는 남성 소비자들이 거의 소비하지 않는다. 웹소설 안에서도 취향 분야가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웹소설 소비자들과 영화의 소비자들도 같지 않다. 웹소설 소비자들이 상업영화를 소비하는 경우는 꽤 많지만, 상업영화 소비자들이 웹소설을 소비하는 경우는 그만큼 많지 않다. 전독시도 게임 판타지/빙의나 회귀, 환생 소재의 이야기를 용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작품인데 이러한 소재들은 상업영화에서는 거의 쓰인 적이 없다. 그러니 영화의 관객들은 전독시의 소재를 보고 일단 익숙하지 않은 어색함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5) 소재와 장르 웹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 회/빙/환/게임 판타지는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고 전개해도 이해될 수 있는 소재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도 그렇지는 않다. 주변에 문학적인 소양이 뛰어난 친구가 있는데, 회/빙/환 이라는 소재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매우 힘들어한다. 애초에 각 매체를 소비해 왔던 방식, 각 매체의 주류적인 표현 방식이 다른 것이다. 웹소설에서 회/빙/환은 이유가 제시되지 않아도 받아들여지는 장르적인 소재로 이해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회/빙/환은 이유 없이 제시되면 '개연성 없는 뜬금없는 설정'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본다. 웹소설 재벌집 막내 아들이 드라마화 되었을 때 마지막 화에 환생의 이유가 후회라는 윤리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식으로 환생이라는 소재에 윤리적인 맥락과 이유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반대로 일반적인 드라마 소비층들은 환생이라는 소재에 윤리적인 맥락과 이유가 부과되지 않는 것에 대해 어색함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끝까지 환생의 정당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고 드라마가 끝났다면, '뭐야, 이거 끝난 거야? 그럼 애초에 왜 환생한 건데?'라는 평가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6) 종합 여기까지가 매체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다. 웹소설, 웹툰, 영화의 매체적 차이는 각 매체의 작품이 다른 매체로 이식될 때 따라야 할 각색의 방향을 결정한다. 전독시는 웹소설 원작이 영화로 이식된 경우다. 분량의 제약, 한 편에 기승전결 있는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조건, 몇 년 후에 밝혀질 떡밥이 최소한으로만 제시되어야 하고 영화 한 편에 이야기가 완성도 있게 다 담겨야 한다는 조건, 서사가 더 개연성 있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더해진다. 여기에 전독시 원작 자체의 특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작품들에 비해 훨씬, 훨씬 더 설정이 많은 작품이다. 웹소설을 읽다 보면 분량의 1/3 가까이가 작품의 설정을 설명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 설정들도 일반적인 영화 관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생소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원작처럼 계속해서 혼잣말이나 상상을 통해 설정을 읊어대는 방식으로의 영상화는, 적어도 지금 상업영화의 문법에 있어서는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전략이다. 4) 각색 매체의 차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영화 전독시에서 이루어진 각색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각색된 내용을 전부 다 다룰 수는 없다. 너무 많다. 주요한 내용을 위주로 다루고, 마이너한 각색은 짧게 다루고 넘어간다. (1) 지구에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유 ① 원작의 설정이 폐기되었나? 영화 초반부에서 김독자가 읽었던 원작 멸살법을 설명하면서 '신들이 타락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 시나리오가 시작되었다는 언급이 있다. 원작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런 설명은 영화에서 현실에 갑자기 시나리오가 펼쳐진 현상에 대한 맥락을 제시해 준다. 나는 전독시 영화의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1편 초반부에서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유는 신들이 타락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라는 설정이, 지금 김독자가 사는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로 그대로 이식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영화 전독시는 치밀하다. 영화를 잘 보면 멸살법에서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유가 신들이 타락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라고 제시하기는 하지만, 김독자가 사는 세상에서도 같은 이유로 시나리오가 펼쳐졌다고 확언하지 않는다. 영화는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를 영화 초반부에 제시된 멸살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서 개연성 있다고 느끼기를 의도하고 있지만, 이 설명이 향후에 반전을 통해 바뀔 가능성을 막아두지 않고 있다. 영화 내에서 유중혁이 김독자에게 '왜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왜 인간이 벌을 받게 되었을까?'라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제시되지 않는다. 김독자도 중간중간 이기적인 인간들을 보면서 위 대답을 회상하곤 하지만, 역시 명확한 대답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멸살법의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를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신들로부터 벌을 받았다라고 각색했다'라는 문장은 사실이지만, '김독자가 사는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도 같은 식으로 제시되었으므로 한수영이 김독자를 위해 멸살법을 만들었다는 전독시의 주요한 설정은 폐기되었다'라는 문장은 사실이 아니다. ② 이렇게 각색한 이유가 뭘까? 설정이 폐기되지 않았다면, '멸살법의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신들로부터 벌을 받았다' 는 설정을 더하고 이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각색한 이유는 뭘까? 원작에서 멸살법의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유는 본편과 에필로그의 끝에 가서야 설명된다. 멸살법이라는 소설은 김독자의 동료인 미래에서 온 한수영이 김독자가 계속 살아갈 힘을 주기 위해서 작성한 소설이다. 이 내용이 소설에서 엄청난 반전으로 제시된다. 전지적 독자 시점 단행본이 20권 분량이니까, 1편에서 이 세상이 시작된 이유가 20권을 다 읽는 시점에 제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한참 이후에 밝혀질 내용이니 지금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상업영화의 문법에서 용서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설정이면 몰라도 애초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없이 갑자기 생소한 판타지 설정을 제시해 버리면 서사에 이입하지 못할 관객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와는 또 다르다. 드라마는 일단 만들어지면 대부분은 끝날 때까지 제작이 되고, 1편에서 제시되지 않은 내용들이 이후에 풀리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한국 드라마의 문법으로 자리잡혀 있다.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를 보더라도 거의 다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된다. 영화 초반부에 설명되지 않은 내용이 있는 경우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는 건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문법에 해당하지만, 1편 이야기의 전체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수년이 지나고 개봉하는 5편에 와서야 밝혀지는 게 용납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현실에 갑자기 소설이 펼쳐진 현상이 발생한 이유가 1편이 끝날 때까지 제시되지 않는 건 상업영화에서 받아들여지는 문법이 아니다. 영화판은 웹소설이나 웹툰에서와 다르게 회/빙/환이나 시나리오라는 소재가 어떠한 설명도 없이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다면 관객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환생의 이유를 제시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수영이 김독자를 위해 멸살법을 썼다는, 아기 김독자의 상상으로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는 전독시의 핵심적인 설정과 반전이 폐기된 상황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이러한 각색을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고, 괜찮은,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2) tls123의 역할, 안나 크로프트, 김독자 어머니, 김독자와 동료들의 트라우마 ① tls123의 역할변화 tls123의 역할변화도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설명된다. 원작에서 현실에 소설이 펼쳐지는 현상은 갑자기 발생하지만, 영화에서는 tls123이 '김독자에게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면 독자님이 직접 결말을 써보세요'라고 답장을 보내면서 소설이 펼쳐진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멸살법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타락에 신이 벌을 주는 것을 이유로 제시하면서 그게 이 영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tls123의 답장은 이 영화에서 소설이 현실에 펼쳐진 이유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맥락을 제시한다. 영화 초반부 멸살법의 설명과 tls123의 답장을 본 관객들은 아, 이런 배경으로 인해 이제 현실에 소설이 펼쳐지겠구나 예상할 수 있고 앞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 다만, '배경'이 제시된 것은 맞으나 이것이 '소설이 현실에 펼쳐진 이유'에 대한 영화의 명확하고 확정적인 답은 아니다. tls123이, 그러니까 원작에 따르면 미래에서 온 한수영이 저렇게 답장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시나리오가 현실에 펼쳐진 이유에 대한 원작의 설정이 폐기되는 건 아니다.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tls123과 영화 초반부 멸살법에 시나리오가 발생한 이유에 대한 김독자의 나레이션이 모순되지 않는다. 나는 시나리오가 발생한 이유에 대한 원작의 설정과 한수영이 tls123이라는 설정은 각색될 수 있는 성질의 설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후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차차 원작의 위 설정과 최종장에서의 반전이 전개될 것으로 추측한다. 영화 1편에서는 이 추측을 깨뜨릴 만큼 명확한 이야기가 없었다. ② 안나 크로프트 생략 tls123은 원작에서의 안나 크로프트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때 tls123, 그러니까 한수영이 하는 짓은 전독시 외전에서 다른 세계선의 한수영이 이학현의 세계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원작에서는 김독자가 비형을 통해서 자신이 획득한 어룡의 핵과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안나 크로프트와 교환하고 백청강기를 구매해서 완성템 무기를 만든다. 영화에서는 김독자가 비형을 통해 어룡의 핵과 신념의 에테르를 tls123과 교환하고, 어둠 파수꾼 레이드를 통해 획득한 보상으로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얻어서 완성템 무기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부러지지 않는 신념에 뭔가가 더해져서(원작에서는 백청강기, 영화에서는 신념의 에테르) 완성템 무기가 만들어진 것은 같다. 왜 이렇게 각색했을까? 나는 1편에서 '안나 크로프트'를 빼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극초반부에 어룡의 핵을 교환할 때 메세지를 통해서 한 번, 그린 존 시나리오에서 스펙터 영석을 먹고 나서 환상 속에서 한 번 안나 크로프트가 등장한 후 별자리 연회 에피소드인 150화 근처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일종의 떡밥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렇게 긴 미래에 확인될 떡밥을 뿌려놓고 설명도 안 한 후 영화를 끝내는 건 상업영화에서 허용되는 문법이 아니다. 상업영화의 관객들이 '나중에 밝혀질 거니까 설명 안 하고 대충 넘어가서 상관없지. 암.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법이 아니다. 따라서 1편에서 설명될 가능성이 없는 안나 크로프트라는 미지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1편에서 등장시켜서는 안 됐고, 안나 크로프트를 등장시키지 않는다면 김독자가 부러진 신념을 베이스로 한 완성템을 얻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그 이유로 이 방향의 각색이 이뤄졌다고 판단한다. ③ 김독자의 트라우마 새롭게 제시, 김독자 어머니 생략 영화는 안나 크로프트를 빼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김독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빼야 했고, 그래서 김독자의 트라우마를 바꿔서 제시해야 했다. 김독자는 원작 초반부에서는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본인 입으로도 그렇게 말한다. 김독자의 트라우마는 원작의 중반 부분이 되어서야 슬슬 밝혀지기 시작하고, 그 트라우마는 김독자의 엄마와 관련되어 있다. 영화는 김독자와 동료들의 성장을 주된 주제로 하므로 주인공인 김독자에게도 어떤 트라우마를 제시해야 했다. 그런데 원작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가져오게 되면, 1편의 이야기의 흐름과 어울리는 내용으로 김독자에게 그 원작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에 적절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1편에서 설명될 가능성이 없는 김독자의 엄마를 등장시켜서는 안 됐다. 안나 크로프트를 빼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1편이 완결성 있는 영화이기 위해서는 1편에서 제시되는 트라우마는 1편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김독자, 정희원, 이지혜, 이현성의 트라우마는 모두 1편의 이야기 안에서 해결된다. 따라서 김독자의 트라우마에 엄마 이야기를 넣는 순간 1편 영화에 김독자의 엄마라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야 하고, 본래는 한참 뒤에 가서야 역할을 시작할 엄마 이야기를 금호역과 충무로역을 둘러싼 극초반부 시나리오에 끼워 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영화는 김독자와 엄마의 관계가 아닌 김독자의 다른 트라우마를 새롭게 만들어서 영화에서 제시했고, 있을 법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극복의 계기를 만들어줘서 적절하게 각색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에서 이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에 대한 설정이 폐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듯이 나는 김독자와 엄마의 관계에 대한 설정 또한 아직까지 폐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후속편이 나온다면 얼마든지 후속편에서 제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④ 김독자의 트라우마와 멸살법 결말에 대한 김독자의 반감 김독자의 각색된 트라우마는 멸살법의 결말에 대한 김독자의 반감과도 연결된다. 영화에서는 멸살법의 결말을 유중혁 혼자 살아남는 것으로 각색했다. 김독자는 어린 시절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김독자가 봐왔던 멸살법에서 유중혁 또한 동료를 버리는 비슷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김독자는 멸살법을 보고 유중혁이 본인과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서 김독자 자신의 행동(민석이를 죽게 만든 것)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유중혁을 보면서 위로받았다는 취지로 말한다. 그런 김독자에게 멸살법의 결말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결말을 미리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각색된 멸살법의 결말은 유중혁 혼자 황폐화된 폐허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미술적으로도 지옥이 떠오르게 묘사한다. 그 결말을 보고 아름답다,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독자는 그 멸살법을 보면서 자신의 결말 또한 지옥이 아닐까 두려워했을 거다. 그래서 영화에서 김독자는 "저는 이 결말이 너무 무섭습니다"라고 말한다. 김독자에게 새로운 트라우마가 주어지고 멸살법의 결말이 각색되면서 김독자가 멸살법의 결말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게 설명되고, 그러면서 김독자와 작가인 tls123 간의 대화가 설명된다. 1편 영화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내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고민이 엿보인다. ⑤ 이현성과 정희원의 트라우마 이현성과 정희원의 트라우마도 마찬가지다. 이현성은 군대 내에서 적응을 잘하지 못한 눈치 없는(?) 장교였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과거가 제시되지 않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이현성에게 별도의 트라우마를 제시해서 극복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그 트라우마 극복의 계기를 이현성의 특성 진화 계기에 대한 각색과 맞물리게 만들어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이건 원작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길영을 보면서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이현성의 모습은 이현성에게 주어진 트라우마에 대한 말이 되는 극복의 계기로 작동하고, 오히려 이현성이 동료들의 칭찬(?)을 통해서 그룹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맞이하는 특성 진화의 계기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이현성이 원작에서 맞이하는 특성 진화의 계기는 그게 글의 형태로 쓰여 있으니까 적당히 말이 된다고 넘어갈 수 있지, 그게 영상화된다고 했을 때 개연성 있다고, 이해가 된다고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의문이다. ⑥ 정희원과 이지혜의 트라우마 정희원과 이지혜 또한 마찬가지다. 원작에서 이지혜는 이후의 극장 시나리오에 가서 트라우마 극복의 계기를 맞이한다. 이지혜가 원작에서보다 빠르게 트라우마 극복의 계기를 맞이하도록 각성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1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영화는 무리하는 게 보일 만큼 최대한 다양한 주연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 그냥 등장만 시켜 놓고 밍숭맹숭하게 넘어가 버리면 주변 인물들이 소비되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1편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깊게, 잘 다뤄야겠다는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 이유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거나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극장 던전의 이야기가 이후 영화에서 등장할지 의문이다. 전독시 전체의 이야기를 5편으로 줄이려면 엄청나게, 아주 엄청나게 많은 각색과 함께 시나리오를 많이 생략해야 하는데 하는데, '극장 던전' 이야기가 생략되지 않고 남아있는 시나리오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후속편에서 극장 던전 이야기를 하기로 확실하게 마음먹은, 계획이 짜인 상황이 아닌 이상 이지혜에게 별도의 트라우마 극복의 계기를 만들어줘야 했고, 영화는 김독자의 행동에 감화받아서 원작에서보다 일찍 극복의 계기를 맞이하는 것으로 각색했다고 생각한다. 이지혜의 극복에 대한 주요 기여자는 김독자인데, 영화는 이지혜가 특히 김독자에게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김독자는 충무로 시나리오에서 이지혜의 각성을 촉구하며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혼자 살아남으려다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잖아." 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김독자의 말이 특히 이지혜에게 울림이 있는 이유는 김독자 또한 스스로를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은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독자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전 제가 살기 위해 제 친구를 죽인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김독자가 친구인 민석이와 싸워서 민석이를 팬 건 학교에서 일진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했던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민석이는 자살했다. 김독자로서는 자신이 민석이를 죽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지혜가 시나리오1에서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은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서 친구를 죽였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김독자와 이지혜의 트라우마는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김독자는 이지혜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김독자가 이지혜에게 건네는 "전 제가 살기 위해 제 친구를 죽인 적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이지혜에게 더 와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지혜에게 1편에서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계기가 주변 인물들의 과거와 맞물려서 자연스럽게 설명되도록 각색했다. (3) 정희원의 설정 변화 원작에서 정희원은 멸살법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고, 영화에서 정희원은 멸살법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정희원의 설정을 이렇게 각색한 이유는 영화 분량상의 문제가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김독자가 정희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여러 과정을 통해서 김독자가 정희원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마련된다. 영화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었겠지만, 영화는 원작의 주요 인물들을 모두 다루면서 또 그 인물들의 성장의 계기까지 만들어줘야 했기 때문에 정희원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소개하면서 천천히 친해지는 선택을 하기 현실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희원을 뺄 수는 없다. 정희원은 명실상부하게 원작의 주요 인물이고, 에필로그에서까지 계속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한다. 매력 있는 캐릭터고, 원작의 정희원 캐릭터에 대한 팬층도 두텁다. 따라서 정희원을 등장시키면서 정희원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해서 분량을 압축할 방법이 무엇인가 떠올려보면,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정희원 또한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로 각색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정희원에 대한 각색이 문제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희원을 영화처럼 각색할 경우, 원작에서 김독자와 정희원 사이의 몇몇 장면들이 사라진다. 그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나도 김독자와 정희원 사이의 티키타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장면들이 전독시의 핵심적인 내용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만약 원작에서 정희원에 대한 설명이 영화에서와 같았다 하더라도 원작은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곁가지로 조금만 더 이야기해 보면, 원작에서는 정희원은 편의점에서 철두파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람이었다는 설정이었고 영화에서는 편의점에서 자신의 친구가 죽은 사람이었다는 설정이었다. 원작에서 정희원의 분노는 자신을 성폭행하려고 했던 일에 대한 분노였고, 영화에서 정희원의 분노는 친구의 죽음에 대한 복수였다. 자신을 위해 분노하는 것이 친구를 위해 분노하는 것으로 바뀐 건데, 바뀐 분노의 계기도 충분히 멋있었다. (4) 총을 사용하는 유중혁과 이지혜 유중혁과 이지혜의 무기가 조금 바뀌었다. 원작에서는 둘 다 칼을 쓰는데, 영화에서는 유중혁의 경우 칼과 총을 다 쓰고 이지혜의 경우 총만 쓴다. 원작에서 유중혁은 시나리오 중후반부에 가면 메인 무기들(천총운검, 흑천마도 등)이 생기는데, 초반부에 보조적으로 총을 사용하는 것으로 각색한다고 해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도 유중혁은 총을 보조적 무기로만 사용하고, 주요한 피해를 주는 장면에서는 항상 칼을 쓴다. 유중혁과 이지혜에게 칼이 아닌 총을 쥐여준 이유는 다른 주요 등장인물들이 주로 근접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액션의 다채로움을 더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이지혜가 총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다채로움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은데, 설정상 총을 쓰는 게 어색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이지혜의 배후성은 해상전신인 이순신인데, 이순신은 조총 개발을 주도한 사람일 만큼 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1593년 5월 12일 편을 보면 "새로 만든 정철총통을 비변사로 보냈다(新造正鐵銃筒 送于備邊司)"라는 대목이 있고, 자신의 수군 각 진영과 각 고을에서 조총을 만들도록 지시하기도 했다.3) 원작의 설정상 이지혜는 이순신의 친구(전우)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께서 자신의 친구의 후손이 자신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은 무기라고 여겼던 총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분노할 거라고 상상하기는 힘들다. 원작의 이순신 장군을 봐도 그렇게 평가하시지는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액션의 다채로움을 위한 각색이었다고 가정하면, 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각색이었다고 생각한다. (5) 김독자의 '제4의 벽'과 '전지적 독자 시점' 스킬 원작에서 '제4의 벽'과 '전지적 독자 시점'은 김독자의 중요한 스킬이다. 영화에서는 김독자가 금호역 터널 시나리오에서 뭘 그렇게 아는 게 많냐는 동료들의 질문에 '저는 별다른 스킬도 없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조금 알 수 있어요'라는 취지로 대답한다. 영화에서만 보면 '제4의 벽'과 '전지적 독자 시점'의 스킬을 못 쓰는 것 같기는 한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김독자가 '제4의 벽'을 못 쓰면서 발생하는 중요한 효과는 자신의 상태창을 못 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김독자가 자신의 상태창을 볼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 지하철에서 김남운과 싸울 때 자신의 능력에 코인을 투자할 때는 상태창이 올라와서 보여지는데, 금호역에서 방철수 파와 싸울 때 "근력 1,500코인 추가"라고 말을 했을 때는 상태창이 올라오지 않는다. 또한, 지하철에서 김남운과 싸울 때 김남운의 공격 패턴을 미리 마음속으로 예측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이게 원작을 읽어서 아는 건지 아니면 '전지적 독자 시점' 스킬을 써서 알게 된 건지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일단 1편의 전개만 놓고 보면 2편에서 '제4의 벽'과 '전지적 독자 시점'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나중에 발견하거나 아니면 나중에 설명하는 방식) 영화가 전개되어도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두 스킬이 빠진 것으로 각색된 게 아니기를 바란다. 2회독을 하고 쓴 전독시 리뷰에서도 썼는데, 나는 원작의 주요한 테마 중 하나가 김독자의 독자(讀者)로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는 게 김독자가 가진 위의 두 스킬이기 때문에 후속편에서 이 스킬이 명확하게 등장하면 좋겠다. + 책갈피 스킬도 등장하기를. (6) 유중혁이 회귀하면 세상이 사라진다. 암흑성 마왕 에피소드에서 유중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회귀해도 이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죽는다고 해서 세계가 리셋되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소리다.” 원작의 설정은 분명하다. 유중혁이 회귀해도 이 세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다르다. 유중혁이 회귀하면 그 세상은 사라진다. 이렇게 각색한 이유는 김독자에게 행동의 동기를 부여해주면서 영화의 마지막 빌런인 화룡종과의 전투에 더욱 긴박감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유중혁이 죽더라도 세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김독자가 계속 유중혁을 살리려고 노력할 이유가 사라진다. 김독자가 자신이 아는 정보들을 활용해서 유중혁의 역할을 대신하면 되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초반부 김독자는 유중혁이 죽어서 회귀하면 이 세상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유중혁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설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에서 다르게 설정한 이유는 화룡종 에피소드에서 실제로 유중혁이 죽어서 세상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때 느껴지는 절망감, 막막함을 통해 화룡종을 물리쳐서 다시 세상을 복원시키는 에피소드가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더해서 초반부터 명확하게 '이중혁이 죽으면 이 세상이 다 망한다'라고 못 박고 진행할 때 김독자에게 더욱 명확한 동기를 부여해줘서 관객들로 하여금 김독자의 행동이 더 잘 와닿게 만드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 각색은 상당히 과감한 각색이다. 향후 줄거리를, 특히나 최후반부나 에필로그 혹은 외전에서의 이야기를 원작과 다르게 가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설정 변화다. 1편에서 이렇게 각색한 것 자체는 이유 있는, 이해할 수 있는 각색이지만 후속편들에서 바뀔 이야기의 방향이 재미있지 않다면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각색이기도 하다. (7) 기타 각색들 짧게 다루고 넘어간다. 1) 김독자와 유상아의 성격 변화 김독자와 유상아의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 원작에서 초반부의 김독자와 유상아는 다소 딱딱하고 사람 냄새가 덜 나는(?) 캐릭터였는데, 그대로 영상화시켰을 경우 자연스럽지 않게 보일 우려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공통적으로 유상아와 김독자 모두 감정 표현이 더 풍부해졌고, 유상아는 보다 장난기가 많고 김독자는 덜 능숙하게 각색됐다. 금호역 시나리오에서 유중혁 이야기를 하면서 유상아가 정희원을 바라보며 "잘생겼어!"라고 하는 장면은 원작의 유상아라면 하지 않았을 대사가 확실하다. 유상아의 각색된 모습도 충분히 매력 있었다. 김독자의 경우 더 인간미가 느껴지게 각색했다는 장점이 있는데, 김독자의 능숙함은 김독자가 가진 제4의 벽 스킬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후속편에서 관련된 설정을 어떻게 정리할지 주목할 생각이다. 2) 지하철 시나리오의 메뚜기 -> 개미 지하철 시나리오에서 원작의 김독자는 메뚜기를 잡는데 영화의 김독자는 개미를 잡는다. 메뚜기를 개미로 바꾼 건 개미알의 시각효과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김독자가 메뚜기알을 여러 개 터뜨리면서 많은 생명을 죽인 효과를 얻어 코인을 많이 획득하는 기회를 얻는데, 메뚜기알은 메뚜기 배 안에 있기 때문에 김독자가 그걸 터뜨려도 정확히 뭘 했는지가 영상으로 표현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면, 개미알은 밖에 드러나기 때문에 개미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김독자가 뭘 해서 어떤 효과를 얻었는지가 보다 명확하게 영상을 통해 드러날 수 있었다. 다만, 이 각색은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메뚜기알은 매뚜기 배 알에 있으니까 메뚜기 배를 갈라서 그 알을 나눠서 가져서 모두 살아남는 시나리오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개미알은 사람 수대로 나누는 게 어렵지 않게 보이기 때문에 김독자는 그 지하철에서 아주 쉽게 모두를 살릴 방법이 있었음에도, 심지어는 모두를 살린 이후에도 수많은 코인을 얻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하지 않은 다소 싸이코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별생각 없이 넘어가면 넘어갈 수 있는 씬이지만, 되돌아서 생각해 보면 김독자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3) 기타 작은 부분들 초반에 7급 해수종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원작에서 사용된 '망치 해마의 점액' 설정을 없애서 사냥 방식을 간소화했고, 이후 안국역에서 화룡종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얻게 될 청빙환을 7급 해수종 사냥에 따른 보상으로 바꿨다. 이후 독이 퍼진 외부에서 마스크 역할을 할 엘라인 원숭이의 허파를 구매하는 것을 7급 해수종 사냥에 따른 보상으로 바꿨다. 엘라인 숲의 정기 아이템을 사용하는 장면도 뺐다. 원작에서는 그린 존 시나리오 이후 안국역으로 가서 선지자들의 밤에 참석하고 사도들의 계략에 당하는 과정에서 화룡종을 만나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그린 존 시나리오 이후에 충무로역에서 화룡종이 등장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쿠키영상에서 다른 역에서 뭔가 무시무시한 것들이 온다고 암시하는데, 한수영이 등장하지 않을가 추측한다. 이러한 각색들은 모두 '설명이 필요한 설정을 최소화해서 분량을 줄이고 압축적인 전개를 해나가는 방향'으로 설명된다. 이런 각색이 없었다면 화룡종을 잡는 데까지 이야기의 진도를 뺄 수 없었을 것이다. (8) 원작의 팬들께 전하는 말 : 영화는 원작의 핵심을 훼손시켰는가? 이런 주장이 많으니까 하지 않을 수 없는 논의이기는 한데, 가장 하기 싫은 논의이기도 하다. '핵심'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걸 규정한 권한이 누구에게 있을까? 핵심이 뭔지 논증할 방법이 있기는 할까? 이제 막 영화 1편이 개봉했을 뿐이다. 소설로 따지면 이제 막 안국역 에피소드가 끝났다. 소설 60화 정도에 막 도착했을 뿐이다. 전독시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전독시의 핵심 메세지나 철학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있을 텐데, 소설 60화를 읽으면서 벌써 그 결론을 냈었나? 아닐 거다. 완결을 보고 에필로그까지 읽으면서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니 영화에 대해서도 관용을 가져주면 어떨까? 지금 1편의 진행이 당신이 생각하는 전지적 독자 시점의 핵심적인 요소와 맞물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 지켜봐 주는 건 어떨까?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영화 1편은 향후의 진행에 대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러니 이번 재해석이 어떻게 나올지를 지켜봐 주고, 실망하더라도 이 영화 시리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나온 이후에 실망하면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 이 논의에 관심 있는 사람은 전독시 원작의 팬들일 가능성이 크니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김독자나 김독자 컴퍼니의 동료들이 [전지적 독자 시점]이 가진 핵심 철학을 자신들만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까? 아니면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한 오독도 있을 수 있고 엇나간 이해도 있을 수 있고 무리가 있는 해석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읽히고 이야기되고 재해석되기를 바랐을까? 원작에서 김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분명한 전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에필로그에서 가장 오래된 꿈이 된 김독자는 수많은 전독시의 세계선들을 살펴봤을 텐데, 그 세계선들은 시나리오에 대한 각 세계선의 주인공들의 해석이 담겨있다. 그중 많은 세계선들의 시나리오 전개는 가장 오래된 꿈인 김독자가 원하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전개와 달랐을 것이다. 김독자가 그 세계선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전개와 다르다고 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시나리오의 핵심에 어긋난다고 해서 매번 개입하거나 비판하면서, 이 세계선은 진정한 멸살법 세계선이 아니고 전독시 세계선이 아니라고 날서게 비판하면서 그 세계선들을 바라봤을까? 아닐 것 같다. 김독자라면 보는 것만으로 좋았을 것이고, 두근거리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봤을 것 같다. 같은 마음이어주면 좋겠다. (9) 각색과 원작에 대하여 : 각색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잘, 재미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할 때는 반드시 논란이 뒤따른다. 각색을 왜 했냐? 혹은 왜 저렇게 했냐는 논란이다. 원작 팬 중 일부는 각색된 작품이 원작의 어떠한 점도 바뀌지 않고 원작을 그대로 드러내기만을 바라기도 한다. 원작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원작에 대한 마음이 깊으면 원작의 모든 면의 의미를 곱씹고, 있는 그대로의 원작을 좋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원작이 바뀌면 그건 작품의 훼손이자 원작에 대한 모독, 나아가서는 원작 팬에 대한 모독이라고 느낀다. 전독시는 훌륭하지만 다소 덕스러운 소설이기도 하다. 설정이 엄청나게,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의 매회마다 설정을 줄줄 읊는 장면이 있을 정도다. 관점에 따라서는 마이너하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클 수도 있고,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작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남다를 수도 있다. 이런 작품을 각색할 때는 일단은 반드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설정이 바뀌는 것, 어떤 이야기가 생략된 것 자체를 원작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색한 작품이 모두 욕을 먹고 망하는 것으로 끝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원작을 각색해서 어떤 내용을 빼거나 바꾸었다는 점에서 기분이 상한 사람들을 설득할 만큼 독자적인 매력을 보여주면 된다. 좀 더 편하게 말해보면, 엄청나게 재미있게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해도 화를 낼 팬들은 화를 내겠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원작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훌륭한 작품'으로 이해해 주기도 한다. . 매체는 매체의 고유한 표현 방식, 호흡, 작품의 공개 방식, 소비자층 등이 모두 다르므로 원작이 있는 경우 반드시, 반드시 각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주 드물게는 각색을 최소화하고 그대로 충실하게 이식하기만 해도 훌륭한 작품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주아주 작다고 생각한다. 원작이 훌륭한 경우 그 매체의 표현 방식을 잘 활용했기 때문에 훌륭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표현 방식의 매체에 와서도 원작의 표현 방식이 그대로 훌륭한 방식이 될 가능성은 작다. 따라서 각색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고, 각색했다는 것 자체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설정을 빼거나 바꾸었다는 사실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구체적인 각색의 방향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매체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비판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비판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에 인어공주 영화를 리뷰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작 이상이었다. 이걸 평작 이하라고 평가하면 평작인 영화는 거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어공주 영화를 많이 싫어한다. 인어공주에 대한 비판으로 PC주의(정치적 도덕주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영화 리뷰에도 쓴 내용이지만, 나는 그 비판의 내용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이 아주 듬뿍 들어간 영화도 훌륭할 수 있고, 반대로 아주 별로일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이 전혀 없는 영화도 훌륭할 수 있고, 반대로 아주 별로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영화가 훌륭하고 재밌는 건 그 영화가 PC주의를 담고 있냐 담지 않고 있냐와 별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어공주를 비판할 때 PC주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그건 디즈니의 최근 행보와 연관지어서 '디즈니가 PC주의에만 집중하고 작품의 퀄리티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면 의미 있는 맥락이 생기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PC주의 자체는 영화가 못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멋지고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매드맥스를 누가 뭐라고 하는가? 나는 인어공주가 욕먹는 이유는 그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든지 인어공주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이 인어공주를 싫어한 이유가 주인공이 흑인이어서라는 아주 언PC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이 흑인이어서 원작과 다르다는 이유로 반감을 느끼더라도 영화 자체를 아주 재미있게 만들어서 그 사람들의 반감을 안아줄 수 있었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지 않았을까? 일단 싫은 감정이 먼저고 사람들은 그 이후에 그 싫은 감정에 대한 이유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PC주의든 뭐든 보이는 것들을 집어내서 이를 비판하기 시작하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2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그 게임을 싫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는데, 중간중간 이상한 비판들도 많이 끼어있었다. 엘리의 잔근육이 비현실적이라느니 어떤 주인공이 스테로이드를 쓴 것 같다느니 하는 비판들이 있었는데, 그게 게임이 못난 이유가 될 수 있는지 심각하게 의문이었다. 여태껏 다른 게임들을 판단한 기준이 된 적도 없다. 인어공주 때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 사람들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2를 싫어하게 됐고, 일단 싫어하게 되었으니, 이유를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영화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을 안다. 그중 상당수는 합리적인 비판이지만, 나는 그 영화에서 각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두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어떤 설정이 사라졌거나 바뀌었다는 점 자체에 분개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위에서 말했듯이 다른 매체에 작품을 이식할 때 각색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전독시같이 설정이 많은 작품은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각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비판을 위에서 말한 인어공주나 더 라스트 오브 어스2에 대한 설명과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좋아한다. 평작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에도 여럿 추천했다. 다만, 명작이나 수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작과 무관하게 눈에 보이는 아쉬움들이 여럿 있었고, 이 글에서 성의 있게 표현해 놓았다. 미묘하다기보다는 다소 눈에 띄는 아쉬움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고, 흥행하기를 바라고, 후속작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면서도 명작이나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지만, 재미있어서 미치겠다고 느낄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만약 이 영화가 아주 훌륭했다면, 미칠듯이 재미있었다면, 원작/각색과 별개로 눈에 보이는 아쉬움들이 적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일부 원작 팬들의 강한 비판이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다. 나는 위에서 몇몇 각색에 대해 왜 그렇게 각색되었는지, 그래서 괜찮은 각색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뭔지에 대한 내 생각을 적었다. 각색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의미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각색을 비판하는 이유가 정말 각색돼었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해서일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몇몇 설정이 바뀌고 삭제되면서 느껴지는 서운함을 달래줄 정도로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지, 충분히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더 재미있게 만들었으면 없었을 비판이지 않았을까. 원작의 개성이 강한 작품이라면 원작 팬들의 각색작에 대한 기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더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야 했다. 전독시의 흥행도 어느 정도는 원작 팬들의 사랑에 기반한 것 아니겠는가. 어느 자리에서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훌륭한 영화는 취향을 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취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취향은 있겠지만, 다른 취향마저 설득할 수 있는 영화가 진짜 훌륭한 영화라는 것이다. 각색작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영화는 원작을 얼마나 각색했는지와 무관하다'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원작을 많이 각색했다면 원작 팬들은 슬퍼하겠지만, 정말 훌륭한 영화라면 그 슬픔마저 보듬어주고 달래주며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좋아하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주변에 추천도 하고 다닌다. 다만, 각색으로 인해서 슬퍼하는 원작 팬들의 슬픔을 보듬어주고 달래주며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영화인지 묻는다면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힘들다. 4. 김독자의 마음으로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위에서 언급한 아쉬운 점들을 잘 보완해서 완성도 있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전독시 원작의 팬들과 팬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모두 사랑받기를 바란다. 김병우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를 존경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줘서 내가 상상만 하던 세계를 두 눈으로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에필로그에서 김독자는 희생한다. 누군가는 이 세상을 보고 있어야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일부를 나누어서 이 세상을 보는 역할을 한다. 세상을 보는 역할을 하는 김독자는 점점 더 무의식의 영역으로 침잠해 가고 파편화되고 쪼개져서 세상으로 흩어진다. 김독자의 동료들이 김독자를 되찾을 방법은, 흩어진 많은 김독자들이 김독자의 귀환을 바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김독자의 상상은 현실이 되기에 그렇다. 흩어진 김독자들이 [전지적 독자 시점]을 읽고 김독자의 귀환을 상상하면 김독자가 돌아올 수 있다. 나는 흩어져서 김독자의 귀환을 상상하는 김독자의 마음으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보고 있다. 더 많은 김독자들이 전지적 독자 시점을 본다면, 김독자가 다음 영화로 되돌아올 수 있다. 소설에는 김독자 컴퍼니가 '그렇게 해서 돌아온 김독자가 우리가 아는 김독자가 아니면 어쩌지'라며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확신이 없더라도 김독자 컴퍼니는 김독자 되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해서 돌아온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내가 아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고민을 했었는데, 내가 아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단 하나의 [전지적 독자 시점]을 규정할 권한을 가지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보고 듣고 읽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설령 그것이 나의 이해와 다르더라도 누군가가 이해한 [전지적 독자 시점]을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김독자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처]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리뷰 - 영화 추천 여부, 각색 등 이 영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작성자 아라미루 테스트 파일: 개인정보 처리방침 변경(전,후)_260710.pdf 테스트 파일: HWP_테스트.hwp test-lock.hwp 1) 주석 처리 테스트 설명입니다. 2) 두번째 주석 테스트입니다.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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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티대학교와 한국영상자료원 공동 주최해 2025년 5월 16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국제 컨퍼런스 ‘목적지 홍콩: 한국과 중국어권 영화와의 조우 (Destination Hong Kong: South Korean Cinema’s Encounter with Chinese-Language Cinemas)’의 기조연설과 2일차 발표 및 토론 내용 을 요약합니다. 컨퍼런스 개최 개요와 1일차 발표 및 토론 내용은 이전 글( 링크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조연설> 아시아 지역에서의 초국가적인 영화 협업 활동의 사례를 발견하고 그 맥락을 짚는다는 컨퍼런스의 목표에 맞춰,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크리스 베리 교수와 한국영상자료원의 김홍준 원장이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20세기 중후반의 역사적 사건들이 당대 아시아 영화의 제작과 배급, 수용에 미친 영향을 거시적인 차원의 담론과 미시적인 차원의 자전적 경험담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과 중국어권의 영화 연결 역사 속 우연성과 불가해성: 최국인, 신장, 그리고 <용의 해> (킹스 칼리지 런던 영화학과 교수 크리스 베리) 크리스 베리(Chris Berry) 교수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주 활동 무대였던 영화인 최국인과 그가 공동 연출한 <용의 해>(아사날리 아시모프, 최국인, 1981)를 중심으로, 영화를 통한 한국과 중국어권의 연결이 얼마나 우연적이면서도 불가해하게 발생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두 문화권의 영화적 교류가 이외 지역의 개입을 통해 더욱 확장된 프레임으로 논의될 가능성을 보였다. 아시아 내 여러 지역을 옮겨가며 활동한 “마이너 디아스포라”로 규정되기도 하는 최국인은, 1926년 조선에서 태어나 1934년에 부모님을 따라 상하이로 이주하고, 6.25 전쟁 이후 북한에 체류하다가 1950년대 초반에는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브기끄(VGIK)에 다니며 영화인으로서의 이력을 정립했다. 이후에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카자흐필름스튜디오(Kazah Film Studio)를 마지막 근거지로 하여 활동했다. 다큐멘터리 <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김소영, 2017)을 통해 최국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크리스 베리는, 최국인을 ‘냉전’ 개념의 복합성을 깨닫게 해준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 개인 숭배(cult of personality)를 통해 자신을 절대적 지도자로 신격화했던 스탈린의 행태를 비판하며 스탈린 체제로부터 이탈해야 함을 주장한 흐루쇼프의 연설이 있은 후, 당시 소련에서 브지끄의 학생이었던 최국인과 그의 동창들은 이를 모방해 북한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비판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졸업 이후 북한으로 돌아간다면 신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해 소련에 잔류하기로 결정하고, 소련은 이를 허가한다. 흔히 미·소 간 대립을 중심으로만 이해되는 냉전의 이분법적 의미는 대개 서구 사회에 의해 구성되었고, 이외 문화권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 따라 그 서구적 의미 바깥에서 (심지어 사회주의 집단 내부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굴절이 발생하는지 를 알게 해준 일화였다. 게다가 동아시아가 ‘현대’ 사회로 돌입하며 받아들이게 된 이념은 상당 부분 외부로부터 유입되어 동아시아 각지에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는데, 크리스 베리는 이 혼란에 대응하기 위해 영화를 통해 연대하려는 노력 이 최국인과 같은 영화인에게서 엿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는 패권국이 시시각각 대립하며 파장을 낳는 동시대 사회 속 불안정한 일상과 일면 유사하기도 하다.) 관련 활동은 연설의 제목에도 나타나듯이 아시아 곳곳의 영화인들에 의해 ‘우연적’으로 발생했다. <용의 해(Year of the Dragon)> 포스터 / 사진: IMDb 그가 1981년 중 연출에 참여한 <용의 해>는 신장 지구와 위구르족에 대한 청나라의 폭력적인 정복을 다룬다. 작품의 제작과 개봉에 관해서는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당시 소련에서는 어떤 목적으로 이러한 내용의 영화 제작을 허가했고, 왜 최국인을 공동 연출자로 임명했을까? 작품 자체가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적 맥락을 먼저 살펴보자면, 작품은 20세기 중·후반 지속됐던 중·소 분열(Sino-Soviet Split)을 배경으로 기획됐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부터 중국은, 흐루쇼프를 필두로 탈스타린 기조에 접어든 소련과 대립하기 시작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1964년에는 두 국가 간 국경이 과거 불평등 조약에 의해 확정됐다며 중국 측에서 소련을 대상으로 국경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여기에는 중국 서부 국경 지대에 해당하는 신장 지구가 포함된다). 그리고 당시 소련의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신장 지구 내 위구르족의 투쟁이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전개됐다는 입장으로 위구르족을 지지하며, 과거 청나라와 당시의 중국이 견지한 무리한 영토 확장 욕구를 비판하곤 했다. 더불어, 민족성(ethnicity)에 대한 두 국가의 인식 차이도 작품에 드러난다.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연방에 속한 개별 국가들의 자치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중국은 각기 다른 민족이 통합되어 ‘하나의 중국’을 형성함을 주장해왔는데, 크리스 베리는 극중 청나라의 장군과 위구르족의 일원이 위구르족의 중국 융화 필요성, 그리고 민족의 자기 결정권 존속을 두고 논쟁하는 장면이 이러한 인식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짚었다. 과거에 위구르족을 향해서 그랬던 것처럼, 작품이 제작됐던 당시에도 중국은 소련에 대해 ‘하나의 중국’ 기조를 강요한다는 소련의 비판적 입장 이 내포됐다는 분석이다. 연설 중 재생된 <용의 해> 본편 영상 일부 한편, 최국인 개인의 이념이 작품과 연관되어있을 가능성은 쉽사리 파악하기 어렵다. 그의 정치·사회적 이념을 추정해볼 수 있는 자료가 부재할 뿐더러, 그가 활동하던 시기 소련 영화산업의 현실을 고려하면 연결고리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 당시 소련의 영화 제작은 보통 개별 감독에게 국가가 작품을 배당함으로써 진행됐기에 배당을 받지 못한 감독들의 수입은 비교적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최국인이 순전히 물질적인 관점에서 공동 연출 제의를 수락했는지, 그 이면에 개인의 이념적 지지 등이 존재했는지는 연설 제목처럼 여전히 불가해(unknowable)하다. 크리스 베리가 작품과 관련해 지적한 우연적이고 불가해한 또 다른 부분은 작품이 갑작스레 사라졌다는 점이다.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예산을 들여 제작됐고 1982년 제15회 소련 탈린영화제 수상까지 경험했음에도 오늘날 본편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저화질의 유튜브 영상에는 작품 배급이 갑작스레 중단된 데 대해 여러 이용자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원인으로 추정해볼만한 상황을 역사학자 피터 롤버그(Peter Rollberg)의 설명을 참고해 제안했다. 본 작품이 소련에 대한 민족주의적 저항의 알레고리 로, 즉 중국이 아니라 소련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은유로 인식될 여지가 있어 소련 차원에서 배급 중단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영화학적 개념으로 그는 이스턴 장르를 언급한다. 서구 문화권에서 비롯된 웨스턴 장르는 미국 서부 지역을 정복한 유럽인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를 모델로 발전한 이스턴 장르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소련의 정복을 다룬다. 원주민과 카우보이의 구도가 바스마치(소련에 저항한 중앙아시아 세력)와 볼셰비키로 전환되는 것이다. 사막이나 스텝 지대를 배경으로 삼고 석양을 따라 말을 타고 달리는 인물들, 그들의 총격전 등을 보면 자연스레 웨스턴 장르가 연상된다. 극중 몇몇 장면을 컨퍼런스 현장에서 직접 재생한 그는, 중·소 분리와 소련·중앙아시아 간 대립을 동시에 은유할 가능성을 통해 냉전 국면에서 아시아의 영화사적 기록을 되짚을 때 감지되는 우연성과 불가해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황홀한 기억: 홍콩영화와의 조우, 1966년부터 1989년까지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 김홍준 원장은 삶의 궤적을 따라 홍콩영화와 맺어온 관계와 그로부터 받았던 인상, 영감, 깨달음을 개인적 일화들을 바탕으로 공유했다. 그가 영화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재임하기까지 되새길 만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홍콩영화는, 동시대 아카이브가 지닌 고유의 임무를 환기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67년, 11살이 되고 막 사춘기에 접어들던 때 그는 홍콩영화를 처음으로 접했다. 당시는 박정희 정부가 유신정권에 돌입하기 전, 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시기다. 동시에 반공주의적 의식이 사회 전반에 공유됐는데, 흥미롭게도 007 시리즈가 이러한 이념에 부합하는 영화로 인식되기도 했다. 시리즈에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는 공산주의 세력으로 묘사되었고, 주인공들은 '위험 세력'으로 그려진 이들을 소탕했기 때문이다. 이때 국내 군사 정부는 과거 식민 통치를 자행한 일본의 문화를 배격하던 와중이었기에 일본영화가 수입되지 않았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일본영화가 점했던 영역을, 한국에서만큼은 홍콩의 액션 및 시대극 영화들이 차지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같은 시기, ‘마카로니 웨스턴’ 장르의 등장으로 < 황야의 무법자 >(세르지오 레오네, 1964) 등의 명작이 소개된 직후, <대취협>(호금전, 1966) 을 접했다. 중국어권에서 집필된 무협소설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었던 시절, 김홍준 원장 역시 이 작품을 만나기 전에 대만의 유명 무협소설 작가 와룡생이 쓴 『군협지』를 먼저 접한 상태였으며, 그의 표현처럼 어린 시절 그에게 “무협의 피”는 이미 흐르고 있었다. <대취협>은 홍콩에서 1966년에, 한국에서는 이듬해인 1967년에 개봉했다. 당시 17살이었던 그가 처음으로 본 무협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그가 대만 출신 배우 정패패와 영화 속 쿵푸의 세계를 최초로 알게 되는 계기였다. 이후 중국어권의 여러 무협영화 들이 국내에도 선을 보이면서 10대 관객들은 이들의 무협적 요소에 매료됨과 동시에 장르에 내재된 정서에 힘입어, 사춘기의 반항심이 거세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특히 정패패, 데이비드 치앙, 적룡과 같은 배우나 당대 걸출한 연출자로 꼽혔던 장철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종류의 무협영화들이 정교하게 연출된 액션이 아닌 맨주먹을 이용한 싸움을 소재로 하기 시작했기에, 무협 장르의 본령을 져버렸다고 생각한 그는 이전만큼 홍콩영화에 애정을 갖지 못했다. 이소룡과 성룡이 등장한 이후 20년간 홍콩영화를 그렇게 잠시 잊고 지내다가, 그가 2001년부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이끌게 되면서 인연이 다시 시작됐다. 국내 최초로 호금전 회고전을 기획해 < 협녀 >(1969), < 용문객잔 >(1967), < 산중전기 >(1979) 등의 작품을 상영한 것인데, 놀랍게도 30~50대 관객이 크게 몰렸다. 영화제 관객의 주 연령대인 2030 세대가 아니라 중년 관객층이 호응한 이례적인 사례였다. 2003년에는 복원 또는 재개봉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쇼브라더스 특별전을 개최했고, 영화제를 방문해 자신의 영화 인생 안내자로서의 호금전에 대해 설명하던 정패패를 직접 만나는 기회를 맞기도 했다. <대취협> 중 정패패 /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대학 재학 중이던 1976년으로 돌아가보면, 김홍준 원장은 슈퍼 8mm 필름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제작했고, 이중 < 서울 7000 >의 수상을 계기로 영화 제작 활동을 보다 진지한 취미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군 제대 이후에는 학내 영화 동아리 ‘얄라셩’에 합류해 영화와 관련된 워크숍을 진행하며 관련 활동을 지속했지만, 본래 인류학을 전공했고 학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1987년부터 1989년까지는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영상·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남는 시간에는 캠퍼스나 시네마테크 등을 찾아 계속 영화를 감상했으며, 교내 도서관의 간행물 섹션에서 《사이트 앤 사운드( Sight and Sound )》나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 American Cinematographer )》,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와 같은 영화잡지를 즐겨 읽었다. 이때 토니 레인즈가 작성한 한 기사에서 홍콩영화계의 새로운 세대가 “ 홍콩 뉴웨이브 ”를 구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홍콩영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렇게 학업을 이어가며 영화도 자주 감상하던 어느 날, 미국의 한 극장에서 < 도마단 > (서극, 1986) 을 상영하는 더블 피쳐 프로그램이 열렸고, 영화잡지 외에는 관련 정보를 살펴볼 기회가 드물었기에 그는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관람했지만 홍콩 출신 여자 배우 3인의 우정이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그려지는 순간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물들이 곧 일어날 ‘혁명’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 역시 돋보였다. 1980년대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민주화’를 향한 사회적 외침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기에, 해당 장면 속 대사와 분위기가 암시하는 ‘혁명’은 그로 하여금 단어에 내포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도록 했다. 작품을 연출한 홍콩 출신의 영화인 서극은 감독이자 제작자, 배우로서 여러 역작을 남겼다. 국내에서는 그가 연출 또는 제작한 < 영웅본색 2 >(오우삼, 1987), < 황비홍 >(1991), < 신용문객잔 >(1992) 이 흥행했다. 공교롭게도 김홍준 원장의 연설이 있기 3주 정도 전에, 서극은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 좌 ) <도마단> 중 주인공 3인 / ( 우 ) 혁명 후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인물들 / 사진: IMDb 그리고 몇 년 후, 김홍준 원장은 국내 영화잡지 《로드쇼》에서, 한 작품의 특정 장면을 영화 이론이나 영화사적 개념으로 해설하는 “도시에” 섹션 연재를 맡는다. 섹션 내 첫 원고의 주제로는 대중적 관심도에 비해 주류 평론계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던 홍콩영화를 선택했다. 원고 작성 시 참고할 만한 자료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서 고충은 있었지만, 편집장이었던 정성일 평론가의 말처럼 1990년대 홍콩영화를 진지하게 비평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는 데서 의미를 찾았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본 잡지에 그가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한 이 원고들은 이후 『영화에 대하여 알고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그가 홍콩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키워가도록 한 작품이 한 편 더 있다. 왕가위 감독의 < 열혈남아 >(왕가위, 1989)다. 국내에 수입된 당시 배포됐던 포스터와 한국어 제목이 전형적인 홍콩 누아르의 이미지를 연상시킨 것과는 정반대로. 작품은 완성도 높은 예술영화에 가까웠다. 결투 중심의 홍콩영화로부터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적 동요와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혀 홍콩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감독이 나타났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그는 눈에 띄는 강렬한 몇 장면을 연설 중 공유했으며, 그중 하나는 포장마차에서의 액션 신이다. 얼핏 보면 인공 혈흔과 같은 특수효과가 매우 어색해보이지만, 액션을 비롯해 카메라의 움직임과 편집 기술이 무척 유려하게 적용됐다는 점이 놀랍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유덕화와 장만옥이 만들어낸 명장면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김홍준 원장이 본래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홍콩영화 관련 영상자료들도 다수이지만, 그는 원내수집 담당 부서에서 국내 기증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수집을 진행한 덕에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 1,000여 점에 달하는 홍콩영화 DVD 또는 블루레이가 소장돼 있다고 전했다. 아카이브를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기억의 과정으로서, 작품을 재발견하고 수집한 후 디지털 복원해, 대중에게 그 가치를 전파하면서 작품 자체가 다시 상상(re-imagine)되는 데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밝히기도 했다. 연설을 마무리하며 그가 재생한 <열혈남아> 속 두 배우의 얼굴처럼, 과거의 한 순간에 멈춰 있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해 계속해서 재발견될 영화 속의 무언가를, 필름 아카이브로서 꾸준히 찾아 공유하고 싶다는 소망도 덧붙였다. <패널 3> 장르, 리메이크, 그리고 조우 특정 장르 속에서 한국과 중국어권 영화계가 각자의 스타일과 인력을 교환한 역사를 들여다보고, 그 이면의 지정학적·산업적 영향을 분석했으며, 홍콩대학교 김소혜 교수가 발표자들을 소개했다. 중국 멜로 TV 드라마 속 한국 남성 스타와 한류 남성성의 현지화 (영국 카디프대학교 현대언어학부(중국학) 조교수 일레인 정) (당시 해외 체류 중이었음에 따라 비대면 발표 진행) 일레인 정(Elaine Chung)은 중국 멜로영화나 TV 시리즈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한국 남성 배우들의 배역을 통해, 중국어권이 ‘한국의 남성성(Korean masculinity)’을 현지화하게 된 배경과 사례를 소개했다. 특히 상당수의 한류스타가 중국어권 콘텐츠 산업에 진출한 시기, 즉 그들의 인기가 중국어권에서 부상한 2000년부터 사드무기체계(THAAD) 배치로 인해 양국 교역이 대폭 축소된 2016년까지의 작품들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인 배우들이 연기한 남자 주인공의 특성으로부터 중국어권 사회가 도출한 ‘한국의 남성성’과 이에 대한 인식이 내러티브에 어떻게 반영되어있는지를 분석하기도 했다. 로맨스와 남성성은 한국 드라마는 물론 아시아에서 흥행한 한류 콘텐츠 전반이 중심적으로 다루는 소재다. 정선의 한류 연구(“Pan-East Asian Soft Masculity”, 2001)에서는 두 요소의 결합을 통한 남성 한류스타들의 강력한 팬덤과 한국 멜로 TV 시리즈 흥행이 2000년대 초반 동아시아 한류 열풍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한다. 일레인 역시 한류 콘텐츠 속 한국인 남성 주인공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 부드러운 남성성(Soft masculinity) ’을 언급했다. 신사적이고 예의 바른 태도, 차분한 말투, 그리고 섬세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는 그들은 종종 재벌로 등장하며,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상대역 여성과 함께 신데렐라 내러티브를 완성시킨다(2000년대 초반 당시 한국 멜로 TV 드라마의 전형이다). 그러나 일레인은, 한류 콘텐츠를 통해 이상화된 부드러운 남성성이 중국 TV 시리즈 속 한국인 남성 배우를 거치면서, 중국어권 대중에게는 다르게 인식될 여지가 있다며 TV 시리즈 세 편을 예로 들었다. 부드러운 남성성을 지닌 한국인 남성 주인공의 성격이 또 다른 중국인 남성 배우와 비교 또는 대조되며 내심 부정적으로 평가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백령공우(White Collar Apartment)>(2002)의 안재욱, <100번째 신부(The 100th Bride>(2004)의 지진희, <다이아몬드 러버(Diamond Lover)>(2015)의 정지훈 모두 여성 주인공과 연인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관계를 지켜내는 데 실패한다. 반면 그들과 여성 주인공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이룬 중국인 남성 배우는, 실용적이면서도 강인한 면모를 보이며 마침내 여성 주인공과 연인이 된다. 혹은 한국인 남성 주인공과 달리, 이들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자수성가했으며 여성 주인공에게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독립적이고 성숙한 어른을 표방하면서 더욱 이상적인 방식으로 ‘부드러운 남성성’을 구현한다. <다이아몬드 러버> 주요 인물 / 사진: TV Time 예시가 된 세 작품의 자세한 줄거리를 살펴보면, 시리즈 흥행을 위해 남성 한류스타를 캐스팅하고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면서도 결말은 중국인 남성에게 우호적으로 전개된다. 중국어권 콘텐츠 제작자의 관점에서 강력한 팬덤을 동원한 한류스타의 이미지를 문화적 자본으로 활용 해 상업적 성공을 꾀하면서도, 인물 구도와 내러티브를 중국어권 문화의 맥락에서 지역화한 결과 라고 일레인은 분석한다. 경제 발전 이후 중국사회에서 단정하고 신사적인 외양으로 대표되는 소위 “화이트 칼라 남성성(White-collar masculinity)”이 호응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레인에 따르면, 중국어권에 아직 널리 공유되어있는 통념상 가장 바람직한 남성 이미지는 ‘부단히 노력한 후 사회적 성공을 거둬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에 가깝다. 따라서 부드러운 남성성을 지닌(부유한 집안에서 편안히 자랐지만 가정을 이끄는 독립적 주체로까지는 성장하지 못한) 한국인 남성 배우의 역할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로 지각되어 내러티브에서 소외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일레인은 추측했다. 중국어권 콘텐츠 흥행 수단으로 한류의 대중적 인기를 활용함과 동시에, 인기의 핵심이 되는 남성 이미지는 지역화해서 내러티브에 반영함으로써 한류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한·중 영화 협력의 산업적·정책적 측면: <제3의 사랑>을 중심으로 일본 교토대학 강사 김수현(현 영국 퀸즈대학교 벨파스트 조교수) 김수현 교수는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한국과 중국어권 간 콘텐츠 합작이 시도된 역사를 산업과 정치의 맥락에서 분석했다. 특히 한·중 합작 영화에서 작가로서의 권리와 투자자로서의 권리가 각 스태프에 의해 복합적으로 행사되는 현상 을, 동아시아의 정치와 산업에 관한 담론에 기반해 설명했다. 연구 방법론 중 하나로 참여관찰법을 도입해 합작 영화 < 제3의 사랑 >(이재한, 2014) 제작 현장에서 어시스턴트 프로듀서로 활동한 경험을 녹여낸 점도 인상적이었다. “20세기는 방송(Broadcasting)의 시대”라며 방송이라는 동시다발적 송신의 매체가 대중문화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미셀 힐름스(Michele Hilmes)의 주장을 ‘영화’에도 적용하는 것으로 발표가 시작됐다. 영화도 기술을 바탕으로 초국적으로 전파될 수 있고, 스타나 대중문화에 관한 담론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화된 문화적 양식으로 공유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는 2000년대부터 영화를 매개로 초국가적인 협업이 발생했는데, 그중에서도 중국은 같은 시기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고 정부 당국이 한층 완화된 문화 정책을 펼치면서 ‘합작’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때 한국은 합작 파트너로서 중국어권 제작나와 배우와 협업해 < 비천무 >(김영준, 2000), < 무사 >(김성수, 2000), < 아나키스트 >(유영식, 2000)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김수현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초국가적 합작의 경제적 기반을 조성한 여러 주체들 간의 협상 결과에 따라, 작품의 ‘작가(author)’로서 창작의 방향을 결정하고 통제할 권리가 주어진다. 한·중 합작 영화의 경우 제작 과정 전반에 걸쳐 정부 당국의 검열이 만연한 중국 영화산업의 특성까지 더해져, 작가로서의 권리가 제작 주체들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배분되기가 쉽지 않다 . 그는 <제3의 사랑>의 어시스턴트 프로듀서로서 각색과 제작, 배급 과정에 직접 관여했던 경험을 빌려, 이 과정에서 견제나 갈등, 때로 불공정한 상황까지 야기될 수 있음을 보였다. <제3의 사랑> 포스터, 스틸 / 사진: IMDb( 1 , 2 ) <제3의 사랑>은 동명의 중국 소설을 원작으로 한국인 이재한 감독(John. H. Lee)이 연출하고 중국 제작사 HS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맡은 멜로드라마 장르의 영화다. 원작을 각색한 각본은 본래 이재한 감독이 집필했지만 최종적으로 채택된 각본은 중국 측 프로듀서의 작업 결과물이었다. 특히 영화 제작 및 배급을 담당하는 국영 기업 차이나 필름 그룹(China Film Group Corporation)의 당시 부대표는, 일부 장면이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대면하려는 동기를 약화한다는 이유로 원작 소설에 충실할 것을 지시하는 이메일을 감독에게 직접 보내기도 했다. 차이나 필름 그룹이 중국영화에 관한 대규모 투자 및 배급을 주도하는 국영 기업이라는 점에서, 각색에 참여한 한국 스태프 인력은 합작 영화의 창작을 둘러싼 권력 구조를 개편하지 못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중국 제작사 측의 불공정한 대우는 직업 안정성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이어졌다. 김수현 교수가 인터뷰한 한국 출신 조감독의 경우, 현장 참여를 위해 중국에 체류하던 중 비자가 만료되었음에도 중국 제작사는 이를 연장하는 데 협조하기를 거부했고, 해당 조감독은 촬영 도중 출국해야 했으며, 중국 측 제작사와의 갈등을 이유로 중국 재입국도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중국 제작사는 촬영 종료일까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그의 이름을 작품 크레딧에서 제외하고 만다. 이렇게 중국에서 일시적으로 근무한 한국 출신 스태프들은 체류 목적에 적절히 부합하는 비자를 발급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제작 현장에 기여한 바와 관계없이 스태프로서의 지위까지 위협받는 불안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배급 지역마저도 중국 측 배급사가 단독으로 결정하면서, 대규모 흥행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객으로부터 발생할 잠재적 수요는 무시된 채 작품은 중국 내에서 배급되는 데 그쳤다. 또 다른 한중 합작 영화 < 평안도 >(장윤현, 2014)는 출연한 배우가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정치 성향을 띤다는 등의 이유로 중국 내 상영이 금지됐고, 중국 당국의 압력으로 인해 해외 상영까지도 무산되며 2016년까지 개봉을 하지 못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위와 같은 몇몇 사례를 종합했을 때, 한·중 합작은 중국이 상대 국가와 맺고 있는 여러 종류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며, 그에 따라 합작 결과물의 중국 시장 진출 향방이 정해지는 현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합작’이라는 외형을 지녔지만 제작과 배급 전반이 실질적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게 되는 한계 가 드러나기도 했고, 상대국 제작진이 체감하는 지정학적 불안정성 이 그들의 제작 참여 경험의 질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김수현 교수는 이렇게 영화산업의 논리와 제작 방식이 서로 달라 충돌하는 상황에서, 국제 합작이라는 작업에는 통상 모종의 긴장 관계가 형성됨을 언급했다. 그리고 ‘시장 확장’을 목표로 한다는 본래 특성상 합작 영화 제작 시 감독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여지가 있으며, 위에 언급한 국가 간 이해관계와 지정학적 역학 관계에 따라 창작과 배급을 주도할 권리가 주어지는 현상도 소개했다. 국제 합작은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권 간 타협과 조율, 그리고 힘겨루기의 장이 되며, 합작을 둘러싼 권리는 예술적 아이디어나 행위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영향력이 작용하는 가운데 주장 된다. 다만 산업 환경이 변화하면서 오늘날 동아시아의 국제 합작 경향은 조금씩 달라지는 중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합작에서는 각본이나 캐스팅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며 작품의 ‘창작’을 함께 하려는 기조가 강했다(단, 일본의 경우 < 박하사탕 >에서처럼 제작 투자 위주로 참여했다). 그리고 시장을 효과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동아시아 관객 모두가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의 주제(< 적벽대전 >과 < 묵공 >에서와 같이 대개 역사적 사건)를 바탕으로 한 블록버스터 대작들이 주로 제작됐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 중국을 무대로 한 작품을 중심으로 한중 합작이 주로 이뤄졌고, 중국을 찾는 한국인 제작진들의 규모도 증가했으며, 후반 작업 단계까지도 합작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최근 2020년대에는 분위기가 달라져, 앞서 언급한 캐스팅, 각본 집필 등의 창작 과정을 함께 하지 않고, 장소 섭외와 같은 프로덕션 서비스만을 서로에게 제공하는 새로운 방식의 합작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김수현 원구원은 한·중 합작 사례가 갈수록 드물어지고 있다는 부정적 현실을 전했다. 2016년, 사드무기체게(THAAD) 배치 문제로 한·중 간 지정학적 긴장 관계가 형성되면서 대부분의 합작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해당 분야에 투자되던 예산 역시 삭감되면서 2020년대까지도 한중 합작은 거의 성사되지 않고 있고, 최근 동아시아 내 합작은 주로 일본과 중국, 대만 간 진행된다. 액션! 대만 갱스터 영화의 부활과 한국 영화인·문화와의 연결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 조교수 팅 우 초) 팅 우 초(Ting Wu Cho) 교수는 이전부터 자신이 연구해왔던 ‘대만 펄프 영화(pulp film)’라는 주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대만 갱스터 영화가 한국영화와의 상호작용을 거쳐 2000년대 이후 부흥한 현상을 다뤘다. 이를 위해 1950~60년대 대만 고전영화를 비롯해 대만 내 영화산업의 발전, 지역문화, 그리고 지정학적 관계의 변화에 따른 영향까지 폭넓게 고려했다. 논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개념으로는 냥유연(Long-liu-lian) 을 제안했는데, 중국어 방언의 한 종류인 복건어로 표현된 ‘낭유연’은 목적 없이 방랑하며 시간을 흘려 보내는 행태를 말한다. 그는 제작 자본의 투자와 시장 구조, 장르적 요소의 측면에서 불안정하고 혼종적인 성격을 지닌 대만 갱스터 영화 의 특성이 이 개념과 유사하다고 봤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대만 갱스터 영화 중 다수가, 타국의 영화산업과의 합작을 통해 액션연기를 수입하고 자국 관객의 취향에 맞게 변화시키면서, 작품의 장르와 자본 모두 초국가적이고 혼종적인 방식으로 구성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팅 우 초는 대만 갱스터 영화를 시간 순으로 세 종류로 구분했다. ‘방랑자’의 전형을 타고난 인물에 대한 구원 서사 가 중심이 되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들이 첫 순서다. 대만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범죄 및 갱스터 영화의 관습이 이들에게서부터 처음으로 발견되기 시작했다. 냥유연을 체화한 방랑자로서의 인물과 지역의 청년문화, 그리고 유행가 삽입을 통한 뮤직비디오와도 같은 연출이 눈에 띈다. 장르의 측면에서는 일본의 야쿠자 영화와 홍콩의 액션 영화가 모두 엿보인다. 그리고 제작 자본은 불안정하게 투입된 데다 당시 검열의 강도는 높았기에, 이 시기에 발표된 대만 갱스터 영화들 대다수는 상업적 흥행을 이루지 못했다. 계엄이 해제된 1990년대에는 대만 뉴웨이브 의 영향으로, < 비정성시 >(허우샤오셴, 1989),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에드워드 양, 1991), < 남국재견 >(허우샤오셴, 1996) 등 작가주의적 경향이 짙고 독특한 내러티브를 지닌 작품들이 갱스터 주제의 대만 펄프 영화 중 대다수를 이뤘다. 반면 세 번째 구간이라고 할 수 있는 2000년대 이후에는, 상업적 장르영화의 형식을 갖춘 작품들을 통해 갱스터 장르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 맹갑 >(유승택, 2010)과 같은 “ 대만 뉴 갱스터 필름 ”, 즉 1970~80년대 대만 펄프 영화의 특징에 청년들 간의 낭만주의적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상업성을 띠게 된 2000년대 이후 장르영화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이다. 같은 시기에 아시아 전역에 세계화 트렌드가 나타나기도 하면서, 대만의 최신 가요와 인기 배우 등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가 향상됐고, 타국 영화산업 인력과의 영화 공동 각색 및 합작 역시 활성화될 수 있었다. 대만 갱스터 영화의 지역적 전통과 세계적인 영화 트렌드가 맞물린 지점이다. <맹갑> 포스터 / 사진: IMDb < 하이자오 7번지 >(위덕성, 2008)라는 멜로드라마가 흥행하면서, 대만의 지역적 특성이 대중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킬 잠재력을 지녔음이 재발견되고, 대만 영화산업의 십년 간의 침체가 극복되는 기회가 마련됐다. 이윽고 2010년에 개봉한 <맹갑>은 실제 야외 거리와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갱스터들을 묘사하는 등 초기(1970~80년대) 대만 갱스터 영화의 특징을 여럿 지니고 있다. 하지만 초국가적 협업 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초기의 형태와 차별화된다.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 액션 연출 등의 주요 보직에 외국인 스태프를 많이 기용했다. 그리고 액션 자체도 정교하게 짜인 홍콩 스타일이 아니라 정제되지 않은 본능적 움직임이 돋보이도록 연출됐는데, < 올드보이 >(박찬욱, 2003)의 액션에서 영감을 받아 양길영 무술감독을 섭외한 후 배우들에게 액션 연기를 전수해주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양길영 감독의 지도를 바탕으로 작품에는 1분 28초에 달하는 싱글 테이크 액션신이 삽입될 수 있었고, 이 장면은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신에 대한 오마주이자 동시대 대만 액션 연출의 우수 사례로서 현재까지도 언급되고 있다. <맹갑>에서 양길영 감독이 참여한 사례를 기점으로 대만의 갱스터 영화의 액션 연출은 물론 각색, 투자 등 종합적 측면에서 한국 영화인들의 기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는 대만의 상업영화 제작 기반이 다시금 다져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일례로, 한국영화 < 남자가 사랑할 때 >(한동욱, 2013)를 대만의 문화와 관객 취향에 맞게 리메이크해 흥행한 < 맨 인 러브 >(은진호, 2021)를 들 수 있다. 연출을 맡은 대만 출신 감독 은진호는 이전에 대만 밴드 “EggplantEgg”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해당 뮤직비디오에서 역시 청년 갱스터 문화를 반영하는 서사가 전개되며 음악과 잘 어우러져 “방랑자(Wanderer)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 그는 <남자가 사랑할 때>를 대만의 관점에서 제작된 갱스터 영화로 리메이크하기 위해, 대만의 문화적 혼종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 인구가 집중돼 있거나 일본문화도 일부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을 배경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여기에 대만의 인기 가요까지 삽입하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성공적인 지역화 사례라는 평가를 받으며 본 작품으로 당해 대만 개봉작 중 최고 흥행 성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좌) 국내 원작 <남자가 사랑할 때> / (우) 대만 리메이크작 <맨 인 러브> (사진: ㈜사나이픽처스, IMDb ) 한편, <맹갑> 흥행 이후 해당 작품의 제작자는 대만의 소위 ‘지하세계’ 경험을 모티브로 또 다른 갱스터 영화 <가타오>를 제작했다. 이 작품 역시 인기를 얻자 제작자 장웨이인이 후속편을 제작하면서 시리즈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갔다. 후속편 <가타오 2: 제왕의 부상>(2018)은 대만 뉴웨이브 작품에 자주 등장한 배우 겸 감독이자 과거 조폭집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고 알려져있던 옌정궈가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됐다. 가오제나 콜린 쩌우와 같은 유명 배우가 출연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홍의정 무술감독과도 협업했다. IP 활용 범위도 넓어져, 작품 관련 OTT 스트리밍과 주제가 발표, 라이브 콘서트를 기획하며 ‘가타오 유니버스’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다음 편인 <가타오: 최후의 방랑자>(2021)에서는 한국 투자사와 타이베이 영화 기금 모두로부터 자본을 조달할 수 있었다. <가타오 2: 제왕의 부상> 포스터 / 사진: IMDb 결론적으로, 한국 영화인들의 전문성과 산업 구조 도입에 힘입어 형성된 대만의 뉴 갱스터 장르 는, 상업영화의 공식을 정립하고 이를 대만이라는 지역에 특화 하면서 대만 영화산업에 내재됐던 야심을 실현하는 장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은 또 다른 종류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데, The Pigs, the Snake and the Pigeon (2023)이라는 작품이 대만영화로는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서 대규모 흥행 성적을 거두며, 아시아 국가 간 협업을 통한 갱스터 장르의 색다른 변모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위 작품의 무술감독은 대만의 스턴트맨 출신이지만 <가타오> 시리즈에서 한국인 무술감독과 함께 작업한 이후 무술감독으로 성장했다. 또한 대만에서 가장 큰 규모의 멀티플렉스를 운영하는 비쇼시네마(Vieshow Cinema)의 대주주인 와닌국제비주얼엔터프라이즈(Wanin International Visual Enterprise)는 중국의 영화 제작 및 배급 업체 알리바바픽처스(Alibaba Pictures)와 계약을 맺어, 작품의 IP를 범중국어권에 수출하려는 의도를 내비쳤고, 추후 일본과 한국, 말레이시아와의 합작 가능성도 열어 뒀으며, 리메이크 작품 제작을 맡을 한국 지사까지 설립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차원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한 아시아 국가 간의 영화 합작이 대만 영화계에도 생기를 불어넣을지, 혹은 대만의 갱스터 장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게 되는 현상으로 이어질지를 주의 깊고도 흥미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팅 우 초는 설명했다. 포스트 정동 혹은 새로운 사후세계: <마약전쟁>과 <독전>을 통해 본 홍콩 누아르의 공명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박은지) 박은지 연구원은 특정 시기에 한국을 찾아온 ‘ 홍콩영화 신드롬 ’의 특징을 바탕으로 < 마약전쟁 >(두기봉, 2012)과 이의 한국판 리메이크작 < 독전 >(이해영, 2018)을 비교하며, 한국영화 속 (포스트) 홍콩 누아르의 흔적 을 발견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관객이 홍콩영화에 열렬히 반응한 일련의 현상을 일컫는 홍콩영화 신드롬은 특유의 감성과 에너지를 국내 영화계에 각인시켰으며, ‘문화적 기억’으로 회자될 만큼 영화문화 형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국내 영화인들의 상상력까지 가미되어 여러 차례의 각색과 리메이크, 오마주가 나타나기도 했다. <독전>은 그러한 사례들 중에서도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평단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던 작품이다. 반면, 놀랍게도 <마약전쟁>의 리메이크작이라는 이 작품 본연의 정체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는 홍콩 반환 이후 제작된 영화들의 국내 수입량과 인지도가 크게 감소한 데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국내 수입된 홍콩영화 편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연간 50~80편이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1997년부터 41편으로 급감했고, 2000년대에는 이내 한 자릿수까지 곤두박질치며 반환 이후 급속 냉각되고 있는 홍콩영화 시장의 현실을 드러냈다. 하지만 신드롬이 한창이던 시기, 한국영화는 홍콩영화 특유의 어둡고 강렬한 미학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홍콩 누아르’의 등장에 열광했다.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시리즈에 이어, < 첩혈쌍웅 >(오우삼, 1989)과 < 천장지구 >(진목승, 1990), < 지존무상 >(왕정, 향화승, 1989) 등 범죄 및 갱스터 장르의 홍콩영화가 한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홍콩 누아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홍콩 누아르’라는 용어는 1991년에 『영화에 대하여 알고싶은 두세 가지 것들』에서 김홍준 원장이 처음 사용하며 이후 비평계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홍콩 누아르에 대한 국내 팬들의 열정이 거세졌고, 이전까지 이상적인 목표로 받아들여졌던 할리우드와 유럽영화로부터 벗어난 영역으로서, 한국 영화문화의 매력적인 대안으로 고려되기에 이르렀다. <첩혈쌍웅>, <지존무상> 중 (사진: MUBI , IMDb ) 박은지 연구원은 홍콩의 누아르와 액션을 한국영화만의 방식으로 수용 했다는 데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환이 일어난 1997년 즈음 홍콩에 스며든 우울함을, 민주화를 열망하던 198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재전유(reappropriation) 했다는 분석이다. 홍콩영화를 접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 한국사회는 서울올림픽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계화를 경험하는 한편,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주의의 불완전한 정착에서 비롯된 감각 역시 이상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특히 충심과 형제애 등의 유교적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분위기로서의 “ 정동적 아노미(affective anomie) ”는 홍콩 누아르의 핵심적인 감수성으로 국내 관객에게 지각됐고, 파멸적이고 어두운, 울분의 폭발과 같은 키워드가 이 장르를 추동하는 감정으로 거론됐다. 박은지 연구원은 당시 한국사회의 정치적 불안정성의 영향으로 내면에 모종의 불안이 자리하게 된 국내 관객이, 선과 영웅주의 위주의 표면적 서사 이면에 있는 이러한 누아르적 감수성에 열광했을 가능성을 제안했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잡지 《키노(KINO)》는 오우삼과 왕가위 등을 정전화하며 해당 장르를 작가주의적 관념과 연결해서 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영화 감독들은 홍콩 누아르의 기묘한 매력에 이끌려 200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본 장르의 연장선상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홍콩 원작들에 대한 눈에 띄는 리메이크 시도들 역시 있었지만, 아쉽게도 많은 작품이 무산되거나 흥행에 실패했다. 반환 이후 홍콩에서 직접 제작된 누아르 영화들 자체가 국내 관객에게 소개되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었는데, 홍콩 누아르의 중심 인물인 두기봉 감독이 2000년대 연출한 역작 Breaking News , Election , PTU 등마저도 국내 대중에게 선보일 기회가 없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좌) 홍콩 원작 <마약전쟁> / 사진: IMDb (© 2013 - Variance Films) (우) 국내 리메이크작 <독전> 중 / 사진: ㈜용필름 와중에 <독전>이 흥행에 성공하며 원작 <마약전쟁>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킨 점이 흥미롭다. 두 작품은 줄거리는 같지만 스타일과 톤,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이를 통해 <마약전쟁>은 전형적인 홍콩 누아르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작품으로 국내 관객에게 인식될 수 있었다. 영화는 두기봉 감독이 연출한 첫 홍콩-중국 본토 합작 영화로, 홍콩 마약 카르텔의 브로커 티미(Timmy)가 사형을 면하기 위해 마약 경찰 장(Zhang)과 공조한다는 설정으로 언더커버 범죄 스릴러의 흔한 관습을 따르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티미의 배신이 가져온 범죄 조직의 붕괴로 초점을 옮겨가고, 경찰 조직이 참혹하게 파괴되며 마무리된다. 치밀하게 탈출을 계획하는 티미와 마약 카르텔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장은 각자의 목표를 향한 굳은 결심을 지닌 채 극명하게 대립한다. 반면, <독전>은 경찰 원호( 조진웅 )와 락( 류준열 ) 사이의 정서적 긴장을 강조하고, 두 인물 간 경쟁 관계를 점차 심화시킨다. 그리고 자기 존립과 배신을 원동력으로 움직여 윤리적 측면에서 모호한 위치에 있던 <마약전쟁>의 티미와 달리, 락은 마약 조직 내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로서 경찰의 수사를 도우면서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인물로 상정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인물 설정은 홍콩 누아르의 특징을 공유하는 한국형 범죄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며, ‘ 속죄를 통해 회복된 영웅적 행동 ’의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원작 <마약전쟁>은 국가 간 합작으로 탄생한 동시대 홍콩 누아르에 그치지만, 리메이크작 <독전>에서는 남성 인물들이 차츰 동료애를 형성함과 더불어 서로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주고받는 와중에, 극단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카르텔의 착취 구조를 배경으로 그에 대한 사회적 응징의 아이디어도 제시한다. 원호와 락은 마약 카르텔의 폭력에 어머니를 잃은 락의 사연, 그리고 그 카르텔에 대한 수사에 공조하려는 의지를 매개로 잠시나마 연대하고, 이로써 경찰과 범죄 조직원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이후 경찰 원호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개인의 실행을 중심으로 ‘정의’의 개념을 재구성하고, 락은 무자비한 착취를 기반으로 이익을 창출해온 브라이언의 신체를 훼손해 흔적을 남기며 사적 응징을 완수한다. 두 인물은 이윽고 서로를 총으로 겨눈 채 마지막 장면에서 마주하는데, 한때 감정적으로 결속했지만 극중 사건 이후 멀어진 둘 사이에 모호한 연대와 상호 환멸의 분위기가 감돈다. 박은지 연구원은 <독전>의 이와 같은 차별화된 서사와 감정들이, 홍콩영화 신드롬이 정착시킨 ‘농도 짙은 감정’의 범죄물을 한국 조폭영화의 관점에서 이해한 결과 라고 설명한다. 창작자의 시네필적 면모와 장르의 혼종이 작용하면서, 홍콩 누아르와 한국형 범죄영화의 특징들을 반영함과 동시에 전복하기도 하는 독창적인 리메이크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 토론 * 홍콩 침례대학교 영화과 조교수 도로시 와이 심 라우(Dorothy Wai Sim Lau)가 패널 3 발표자 4인의 연구 내용을 요약하고 아래와 같이 질문했으며, 발표자들이 답했다. Q. 김수현 교수에게 (질문1) 시대별로 한국과 중국이 처해있는 외교적 상황에 따라 합작 양상이 달라진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렇다면 <제3의 사랑> 제작 당시 한·중 간 정치·사회적 관계 는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답변) <제3의 사랑>이 제직됐던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한국 정부는 영화산업에서의 합작에 호의적이었고 관련 절차가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본 작품의 감독과 촬영감독, 음악감독을 비롯한 여러 스태프 역시 작업을 위해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했지만, 발표 중 이야기했듯이 중국 제작진의 개입과 지정학적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충분한 창작 권리를 획득하지 못했다. (질문2) 중국의 제5세대 감독들에게서 나타난 작가주의적 특색과 달리, 블록버스터 < 유랑지구(The Wandering Earth) >와 같은 작품은 국가 권력에 기반한 창작(national authorship)과 국가적 브랜딩이 눈에 띈다고 발표 중에 말씀하셨다. 후자의 ‘ 국가 권력에 기반한 창작 ’이 무엇일지 보다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답변) 물론 장이머우와 천카이거 감독과 같은 이들은 한국의 봉준호 와 박찬욱 감독처럼,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통해 작가주의 감독으로서의 지위를 오랜 기간 인정 받아왔다. 하지만 이들이 속한 제5세대 이후에 등장한 주선율영화(1990년대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이뤄진 후 사회주의와 애국주의 등의 중국사회 주류 이념을 교육 및 선전할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의 종류)와 같은 장르에서는 작가주의에 관한 어떠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는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비전이 관객 선전을 목적으로 하여 주입돼 있다. 따라서 감독이나 스태프 개인의 개성을 중심으로 한 작가주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국가 권력과 이념을 기반으로 ‘중국영화’라고 이름 짓는 행위 자체만이 의미를 갖게 된다 는 점에서 제5세대 감독들의 활동과는 맥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겠다. Q. 팅 우 초 교수에게 (질문) 중국과 홍콩에서 비롯된 액션 스타일과, <맹갑>에 도입된 한국식 액션 스타일의 차이점을 설명해줄 수 있는가? (답변) 홍콩의 액션은 중국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아, 각기 다른 그룹이 터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연출돼 있다. 한국의 영화인들은 이와 같은 홍콩식 액션을 받아들이되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응용 했는데, 카메라 앵글에 맞춘 인위적 동작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움직임을 가미 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Q. 박은지 연구원에게 (질문) 발표에서도 언급해주신 홍콩 누아르의 ‘정동’적 측면이 동아시아 국가의 리메이크작을 통해 표현 될 때 주로 어떤 특징이 나타난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다. (답변) 이번 발표를 위해 진행한 <독전>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말씀드리자면, 먼저 정동적 모티프로부터 영향에 따라 범죄자와 경찰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설정 이 있다. 이는 남성들 간의 연대에 기반한, 매우 불안정하고 양가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 다른 하나는 ‘ 상호반영적 페르소나(mirroring persona) ’의 발견이다. 한국 범죄 스릴러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으로, 두 남성 인물이 서로를 응시하면서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상대의 모습을 자신의 정체성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패널 4> 한·홍 합작의 재해석 특정 영화인이나 작품의 사례를 인용해 한국과 홍콩 간 영화 합작이 일어난 역사를 돌아보고, 눈 여겨 볼 만한 몇 가지 대목을 자세히 살펴봤다. 영화의 안과 밖 모두에서 새로운 시대를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 영화를 통한 두 국가의 협력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제언도 이어졌으며, 패널 발표 전반은 홍콩 침례대 케니 응 교수가 이끌었다. 호금전의 한국 산악영화에 대한 재평가 (영화사가 · 독립 연구자 스테판 테오) 1970년대 한국영화는 홍콩과 대만과의 합작을 여러 번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Destination South Korea”와 같은 현상으로 일컬을 만큼 합작 영화의 주 촬영지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스테판 테오(Stephen Teo)는 그중에서도 < 사문의 승객 >(1979)과 < 산중전기 >(1979)에 집중해, 한·홍 합작의 로케이션으로 한국의 산세가 선택된 맥락과 함께 각 작품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었다. 그는 한국의 산속에 자리한 전통적 양식의 건축물과 사찰, 주변의 절경이 두 작품의 핵심적인 미적 요소로 기능했고, 배경이 되는 전근대 중국(historical china)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어줬다고 말했다. 모든 장면이 인위적인 세트나 스튜디오를 이용하지 않고 실존하는 장소에서 있는 그대로 촬영된 점도 특별하다. 스테판 테오는 ‘문화적 냉전(cultural cold war)’이 이어지던 1970년대 중·후반 중국어권과 한국의 영화 합작이 선호되는 환경이 마련됐고, 두 편의 작품 역시 그 결과물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중국은 문화혁명의 잔재로부터 벗어난 직후였기에 정치와 사회 전반이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무협을 비롯해 귀신, 종교, 미신 등(신이나 요괴,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중국영화의 한 장르로 ‘신괴’로도 일컬어진다)이 개입한 장르나 서사의 유통도 금지돼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영화 촬영지로서, 감독 호금전이 의도한 장르를 시도할 ‘자유’를 선사 했다고 봤다. 한국과 홍콩, 대만이 영화 제작 측면에서 ‘ 자유에 기반한 네트워크(freedom nexus) ’를 구축하며, 중국 본토에서의 정치, 사회, 문화적 제약으로 인해 수용되기 어려운 작품들이 제작되는 환경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지정학적 상황도 변화했기에 위와 같은 맥락은 작품의 가치를 뒷받침하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대신 그는 한국이 ‘문화적 중국’으로 재현됐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합작의 의의와 효과를 설명했다. 유교학자 뚜웨이밍(Tu Wei-ming)이 제안한 개념인 ‘문화적 중국’은 중국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구성된 국제적 공동체를 가리키며, 중국 본토와 홍콩, 대만을 포함해 전 세계의 중국어권 디아스포라 지역도 해당된다. 그중에서도 홍콩은 ‘문화적 중국’의 기조로 기획된 영화를 한국과 합작했고, 호금전의 위 두 작품에서 한국이라는 배경이 ‘문화적 중국’을 재현하는 데 효과적임이 입증됐다고 그는 평가했다. 호금전이 한 인터뷰에서 답변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과 몇몇 자연 경관으로부터 중국과의 문화적 유사성을 발견한 경험을 계기로 두 작품을 한국에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두 국가는 유교와 불교와 연관된 의식이나 생활 양식을 오랜 시간 공유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홍콩의 영화 제작진들 역시 중국과의 교류가 단절된 문화적 냉전 시기, ‘문화적 중국’을 재현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으로 한국을 택해 합작을 시도했다는 주장이다. <산중전기> 중 / 사진: IMDb( 1 , 2 ) 한편, 아시아 문화권에서 공유되어온 동양 철학의 개념이 작품 속 주제의식의 동력이 된 점도 눈에 띈다. 도가적 사상에서 비롯된 장자의 ‘소요유’는 『장자』 제1편에 등장하는 용어로,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노니는 정신적 경지를 뜻한다. 사물과 세상에 구속 받지 않고 광막한 공간에서 누리는 절대적인 자유이자 참된 행복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이는 호금전의 작품의 모티프로 자주 등장한다. <사문의 승객>과 <산중전기>에서도 인물들은 계속 걷는다. 단순히 땅 위를 걷는 것뿐만 아니라 적을 쫓아 뛰고, 몇몇 액션신은 공중에서 펼쳐지며 ‘하늘에서 걷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스테판 테오는 소요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의 감각을 포착한 호금전이, 이를 인물의 다양한 움직임들(걷기, 뛰기, 공중에서 활동하기)로 작품 속에서 실현 하고 있다면서, 배경이 된 한국의 자연경관 역시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관점에서 ‘소요유’ 개념에 기반하고 있는 두 작품은 그 개념의 특성에 따라 존재와 시간의 ‘실존’을 지지하게 된다. 한편 호금전은 일종의 방랑자로서, 당시 중국사회의 제한적 환경에서 벗어나 한국이라는 대안적 공간에서 예술적 자유를 발휘해 창작한 작품으로 소요유 개념을 시각화했다고 덧붙였다. 무사, 스파이, 그리고 쿵푸 마스터: 정창화 감독과 초국가적 영화 제작자의 탄생 (홍콩 시티대학교 창의미디어학부 조교수 이상준) 이상준 교수는 그간 학술적으로 분석된 적이 드문 정창화 감독에 대한 예비적 수준의 연구로서 1960~70년대 한국과 홍콩에서 그가 지나온 연출 여정을 들여다봤다. 감독으로 데뷔한 1953년부터 1977년까지 그는 5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홍콩에서도 합작영화 제작의 주역으로서 크게 활약했다.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회고전을 계기로 그의 연출작이 지닌 영화사적 가치가 국내에서 재발견되기 시작했고, 당시 회고전에서는 쇼브라더스와 골든하베스트와 작업한 한·홍 합작영화 9편이 상영됐다. 여러 국가를 오가며 활동하는 아시아 영화인들은 ‘내셔널 시네마’라는 프레임에 부합하지않는다는 이유로 과거 연구의 대상으로 쉽사리 선정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런 편협한 경향성이 사라지긴 했지만, 정창화 감독이 활동하던 당시만 해도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지녔거나 초국가적 작업에 참여하는 감독과 촬영감독, 배우 등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창화 감독은 활동 초기부터 여러 장르에 걸쳐 왕성화게 활동했다. 1965년부터 3년간 멜로드라마, 청춘, 무협 등의 장르영화 15편(< 황혼의 검객 > 등)을 한국에서 연출했고, 1968년에 쇼브라더스와의 협업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6.25 전쟁 이후로 중국어 문화권의 제작사 두 곳(쇼브라더스, 골든하베스트)과 공식적으로 협업하며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최초의 한국인 감독으로 거듭났다. (물론 그가 쇼브라더스와 초반에 합작한 다섯 편은 제목과 감독의 이름을 사실과는 다르게 명시한 ‘위장 합작(counterfeit coproduction)’에 해당한다.) 그리고 많은 한국인 배우와 촬영감독, 무술감독과 같은 제작 인력이 그의 활동을 계기로 홍콩으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합작에 합류하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제작 파트너가 골든하베스트로 바뀐 뒤에는, 그는 제작사 산하에서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별도의 전속 스튜디오를 설립해 한국은 물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제작사들과도 활발히 합작하기도 했다. 다만 그가 홍콩에서 제작했지만 한국에서 공개한, 앞서 언급된 ‘위장 합작’ 작품들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터라, 홍콩에서의 그의 활동이 학술적으로 면밀히 분석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낳고 말았다. 국내의 많은 영화사 연구자들은 그 작품들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거나, ‘탈국적(denationalized)’ 활동의 결과물 또는 한국영화사의 ‘비공식적 일화’ 정도로만 평가했다. 이는 홍콩영화사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 철인(죽음의 다섯손가락) >(1972)이 ‘컬트적 고전(classic)’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역시 그를 ‘작가’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이상준 교수는 이와 관련해 2008년에 홍콩의 영화 연구자 웡 아인 린(Won Ain-ling)과 대화하며 접한 설명을 인용했다. 웡 아인린에 따르면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홍콩영화’의 정체성 구성이 간절해진 상황에서, 홍콩을 상징하는 무협 장르의 영화에 한국과 일본 출신의 영화인들이 관계되어있다는 사실이 홍콩의 영화인들을 약간은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주자(Emigré)와 망명자(Exiled)와 같은 디아스포라 영화인들은 초국가적 영화사 형성의 핵심 동력이라는 점에서 ‘내셔널 시네마’의 영역에 편입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활동이 망각돼서는 안된다고 이상준 교수는 주장한다. 영화와 사람, 문화적 움직임, 협업, 공간 등이 여러 국가에 걸쳐 조직될 수 있다는 ‘초국가적 관점’ 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창화 감독은 1960~70년대 한국과 중국어권 간의 영화적 교류를 중개한 이로 상정된다. 그는 정치적 상황이 불안하고 정부 개입도 심각했던 당대 한국영화계에 쿵푸영화의 매력을 제시했고, 새로운 합작 파트너로서 동남아시아권의 인력을 소개하는 참신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상준 교수는 관련해 정창화 감독이 한국에서 홍콩으로 제작의 근거지를 옮기고 초반에 발생한, 쇼브라더스와의 합작 사례를 더욱 자세히 설명했다. 그가 < 망향 >(1958)을 통해 홍콩과의 합작을 처음으로 시도한 이후 < 조용한 이별 >(1967)과 < 비련 >(1967)을 제작했지만 홍콩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 첩보 스릴러로 손꼽히는 < 순간은 영원히 >(1966)의 흥행 성적은 비교적 준수했다. 설립자 런런쇼의 관심을 끄는 데도 성공해 1968년, 쇼브라더스와 5년간의 계약을 체결하게 되기도 했다. 정창화 감독은 (당시 기준) 동시대적 설정을 바탕으로 ‘현대 액션 영화’를 구현할 줄 알았기에 자신이 섭외됐을 것 이라고 추정했다. 이때까지 홍콩은 사극 기반의 무협 장르가 액션 영화의 중심이 되어 현대적 액션 연출 경험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쇼브라더스에서는 일본 출신 감독, 촬영감독, 작곡가, 안무가 등이 상당수 활동 중이었으며, 정창화 감독이 입성한 이후 성훈, 임지은, 남석훈 등의 한국 배우들의 합류도 앞두고 있었다. 당대 여느 제작사보다 국제적으로 조직이 구성되었던 업체라고 할 수 있다. 쇼브라더스의 국제 교류 역량에 힘입어 정창화 감독이 해당 제작사 안에서 처음으로 연출한 작품은 < 천면마녀 >(1969)로, 홍콩에서 007 시리즈가 유행하던 중 그와 같은 형식으로 제작된 여성 주연의 액션 영화다. 두 명의 조감독과 배우 한 명(성훈)은 한국인으로, 세 명의 핵심 스태프는 일본인으로 기용하며 동아시아 출신의 인력들이 어우러졌다.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적정 수준의 상업적 이익을 달성하며 유럽 영화계에 진출한 최초의 쇼브라더스 제작 작품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그 사이 호금전의 <대취협>(1966)이 홍콩 박스 오피스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아시아 전반에 무협 장르 붐을 일으키면서 쇼브라더스의 제작 기조도 무협 장르 쪽으로 기울었다. 이후 정창화 감독 역시 시장의 수요를 의식해 한국에서 <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 > 등 ‘국내 무협영화’를 연출한 데 이어 쇼브라더스에서도 중국어권 출신이 아닌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사극 무협 기반의 작품들을 연출했다. 그는 쇼브라더스의 무협 액션 스타일에 반일 감수성을 결합하고, 미국의 웨스턴 장르도 일부 차용했으며, < 강호여협 >(1970)과 < 아랑곡의 혈투 >(1970)와 같은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아랑곡의 혈투>가 긴박하고 현실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연출된 전투 장면들로 볼 때 1960년대 만주리안 웨스턴 장르의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천면마녀>, <아랑곡의 혈투>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다만 이상준 교수에 따르면, 정창화 감독은 무협 장르의 붐에 다소 늦게 반응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쇼브라더스와 계약하고 본격적으로 무협 장르 연출을 시도했던 1970년대 초반은 쇼브라더스의 무협 제작 열기가 식고 홍콩영화가 ‘쿵푸’라는 물결을 마주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보다 현대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노동 계급의 이야기, 그리고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맨손 쿵푸 액션은 홍콩영화의 새로운 흥행 공식으로 자리매김했고, 골든하베스트(Golden Harvest)라는 제작사의 설립 및 운영의 주된 목표가 됐다. 정창화 감독은 이 트렌드를 재빠르게 수용해 1972년에 <철인(죽음의 다섯손가락)>을 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쿵푸영화였지만 한국에서 제작했던 전작들과 유사하게 반일 감정을 모티프로 한 서사가 중심이 됐다. 다만 작품 개봉 직후에는 홍콩 내에서 흥행에 실패한 듯 보였고, 쇼브라더스의 새로운 인력과의 의견 불일치 등의 문제도 겹쳐 정창화 감독은 같은 해에 골든하베스트로 이직한다. 하지만 1973년 작품은 미국 박스 오피스 흥행 1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1970년대 초반 홍콩영화의 국제적 영향력을 입증했다. 골든하베스트는 할리우드와 같이 수직적으로 통합된 구조를 추구하며 유연한 제작 체계역시 갖춘 기업이었다. 정창화 감독은 이곳에서 < 흑야괴객 >(1973), < 흑무사 >(1974), < 황비 >(1974), < 심판자 >(1976)를 연출했고, 다양한 장소를 로케이션으로 삼는 골든하베스트의 방침에 따라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한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들에서 촬영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 작품 < 충열도(파계) >(1977)가 개봉하자, 그는 갑작스럽게 홍콩을 떠났다. (정창화 감독은 당시 “홍콩영화 발전에 기여하신 만큼 한국영화의 발전에도 기여해줬으면 한다”라는 부탁을 문화공보부로부터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 즈음 국내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전두환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어 정치 상황이 매우 불안정했다. 귀국 후 정창화 감독은 스스로 제작사 화풍흥업을 설립해 1980년대 중에는 국내에서 제작자로 활동했고, 이를 계기로 영화 연출에서 은퇴한 그는 1996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상준 교수는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창화 감독 회고전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조영정을 인용하며, “액션영화의 선구자로서 이 장르를 한국에 소개하고 발전시킨 그가 다채로운 이력에도 불구하고 심도 깊은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라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리고 발표 당시 컨퍼런스에 함께 하며 기조연설을 맡기도 했던 연구자 크리스 베리(Chriss Berry)의 말처럼, “영화를 통한 한국과 중국 간의 연결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민족성(ethnicity)과 유사한 ‘국민국가(nation-state)’ 개념에 기반하지 않고, 개별적인 초국가적 프로젝트들에 의해 더욱 구체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관련된 학술적 논의가 이어지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하나의 냉전에서 또 다른 냉전으로: 한·홍 합작의 과거로 미래를 살펴보기 (홍콩필름아카이브 소속 영화평론가 샘 호) 샘 호(Sam Ho)는 이틀 간의 컨퍼런스를 마무리하는 순서에 걸맞게, 한·홍 합작의 과거를 지나 그로부터 역동적으로 변화한 결과로서의 현재를 개괄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국 간 영화 협업의 미래를 조망했다. 그는 동시대 사회가 유례 없는 새로운 질서 를 마주함과 동시에, 그와는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냉전 상황 역시 목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번 컨퍼런스의 목표가 더욱 뜻깊은데, 두 국가로부터 비롯된 영화적 움직임들이 갈라지면서도 합쳐지는 대목들을 다루고 있어, 모순되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발전하는 오늘날의 역사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지난 150년의 역사만 보더라도, 아시아는 외부의 오랜 침략과 억압으로 인해 깊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만큼 고통으로부터 교훈과 깨달음을 얻어 현재와 미래를 가꾸려는 의지가 돋보인다고 샘 호는 말했다. 따라서 아시아는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는 와중에 지정학적 권력의 중심으로 피할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동시대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그 권력의 중심지를 조정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려면 마주하게 되는 사건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을 짚어야 하는데, 개인이 모든 맥락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여러 연구자가 관점을 공유하는 이번 컨퍼런스와 같은 자리가 자주 마련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그가 한·홍 합작 역사를 읽는 방법으로 추천한 바는 이렇다. < 이국정원 >(전창근, 도광계, 와카스기 미쓰오, 1957)을 기점으로 합작이 시작된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를 그는 홍콩영화의 제1 황금기라고 보는데, 좌익(left-wing)과 우익(right-wing) 진영의 제작사들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홍콩영화 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홍콩영화의 두 진영은 당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으며, 샘 호에 따르면 오히려 긴밀히 연결된 채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냉전 체제에도 불구하고 다극적인(multi-polar) 영화산업을 구축해나갔다. 여러 작품에 걸쳐 홍콩과 합작한 한국인 정창화 감독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관람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 홍콩국제영화제에서 2000년대 초반의 독창적인 한국영화들을 관람하고 완전히 매료된 그는 해당 작품들 이전의 한국영화사가 궁금했고, 홍콩필름아카이브의 지원으로 한국에 방문해 한국고전영화를 연구하는 기회를 얻은 바 있다. 정창화 감독을 비롯해 홍콩과 합작한 여러 한국영화인들의 활동 역시 이러한 연구의 의지를 다지도록 해줬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과 홍콩의 합작이, 동아시아의 문화와 가치를 통합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양국이 공유하게 된 경험 이고, 결과적으로 두 국가의 영화적 전형에서 벗어난 새로운 무언가가 창작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홍콩필름아카이브의 여정을 홍콩영화사와 연결 지어 돌아봤다. 홍콩은 자국 내 영화산업도 활성화된 상태였지만 영화 미학의 측면에서도 기여한 바가 큰 반면, 타국에 비해 필름아카이브를 상당히 늦게 설립했다(1990년대). 그래서 소장자료의 규모 역시 상대적으로 작은 편인데, 그럼에도 아카이브로서 사업을 개척하고 학계와 유기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샘 호는 그 비결이 영화 연구에 미치는 지정학적 영향력을 수용하면서도 아카이브 고유의 임무에 충실한 연구를 병행 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영화 연구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은 아직까지 상당 부분 서구 문화권의 기준을 따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하거나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연구 주제는 여전히 “저명한 지면”, 즉 서구의 주도 아래 발행되는 지면을 통해 공개되기 어렵다. 샘 호는 이를 비판하기보다, 지정학적 영향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 속 불가피한 현실임을 인정한다. 따라서 그는 필름아카이브의 연구 업무를 수행하는 자로서 영화학계의 여론을 지배하는 서구 문화권의 가치관에 근접한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필름아카이브만이 파고들고 매진할 수 있는 주제로 연구하는 이들을 지원 하기도 한다. 아시아 영화인 1인의 필모그래피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저서를 집필하는 등, 주류 학계의 틈새를 메우는 이들의 유의미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샘 호는, 자신을 포함해 과거와 현재를 면밀하고 꾸준하게 연구하려는 의지를 지닌 아카이브의 일원들이 있기에, 홍콩영화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 토론 * 패널 3과 4의 발표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청중이 질문을 던지거나, 발표자들이 서로의 주제와 관련해 궁금했던 점을 문의하고 답변했다. Q. (청중) 이상준 교수에게 (질문) 정창화 감독은 홍콩에서 영화를 제작할 당시, 한국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에 더욱 영향을 받았는지 , 혹은 홍콩 영화산업과 연출 방식에 동화된 상태였을지가 알고 싶다. (답변) 그의 자기 정체성 인식이 작품을 통해 명확히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만 처음 쇼브라더스를 통해 홍콩에 진출했을 당시, 그는 제작사와의 계약에 의해 섭외된 여러 외국인 감독 중 하나였다. 따라서 각본에 개입하지도 않았고, 작품 자체를 통제할 권한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연출 방식(액션 동작과 인물 설정, 반일 감정에 관한 요소 등)만큼은 당대 쇼브라더스에서 제작된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골든하베스트 에서의 필모그래피는 달랐다. 이곳에서는 그가 창작에 관해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더욱 확대 됐고, 한국 출신 인력을 도입할 여건도 형성되어 쇼브라더스에 비해 훨씬 많은 ‘합작’ 작품이 제작될 수 있었다. 그래서 본인은 개인적으로 그가 골든하베스트에서 작업할 당시 연출한 작품들을 선호한다. 물론 작품의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한 것은 전혀 아니며,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말씀드렸다는 점 참고 부탁드린다. Q. 샘 호 평론가 (질문) 일레인 정이 발표한 ‘부드러운 남성성’은, 중국의 유교적 가치관으로부터 파생된 이미지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래 전부터 유래된 유교 사상에 입각해, 중국에서는 학문에 정진하는 ‘학자’로서의 태도 가 남성의 이상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조건이 된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유교적 남성상은 점차 변화를 겪어 ‘신체적 강인함’을 수련하려는 태도도 강조 된 바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학문 수양을 중심으로 한 전자의 ‘부드러운 남성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답변: 김수현 교수) 대부분의 각본을 남성이 집필하는 한국‘영화’ 의 경우, 신체적으로 강인하고 마초적인 남성성을 형상화하는 작품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한국‘드라마’ 작품들은(특히 멜로드라마 장르가) 여성 작가에 의해 주로 집필되곤 한다. 그리고 이들이 그린 남성 인물의 이미지는 작가의 주관이 반영된, 이상적이면서도 무척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집합함으로써 탄생하기에, 한국드라마가 설정한 남성 이미지는 현실 사회에서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리하면, 한국 영상 콘텐츠를 통해 남성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영화와 드라마에 각기 다른 양태로 형성되어있는 젠더 및 섹슈얼리티 구분 현상 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사진: Marry Ellen Mark, “ Apocalypse Now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 지옥의 묵시록 >(1979)은 당시 일본 개봉 제목 ‘地獄の黙示録’을 그대로 활용해 번역되었으나, 원제 ‘Apocalypse Now’는 사실 ‘바로 지금 이곳이 지옥’ 또는 ‘지금 이 순간이 세상의 종말’이라는 처연한 고발, 좌절, 참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개봉한 지 무척 오랜 시간이 흘렀고(감독 확장판(Redux, 2001)을 기점으로 해도) 이후 직접적 영향을 받은 수작들이 여럿 등장했음에도, 여전히 ‘탁월한 전쟁 영화 중 하나’ 정도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지옥의 묵시록>은 걸작이라는 평가를 넘어 문명과 야만, 이성과 광기, 그리고 예술과 역사-현실의 경계를 짓이기는 정교하며 무자비한 실험이다. 이 영화는 내게 전쟁의 잔혹함을 넘어, 소리와 이미지가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고 내면의 심연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는 음악을 비롯한 창작 작업의 범위를 넘어 내 삶 전반에 깊이 스며들었다. 영화는 문명의 야만을 파헤쳤다고 평가받는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1899)을 기반으로 하지만, 식민 시절 콩고에서 베트남 전쟁으로 배경을 치환한 단순한 서술적 흐름에 기대지 않는다. 몽환적인 편집과 공간을 압도하는 사운드 디자인, 그리고 음산하게 폭발하는 음악들이 혼재하며 관객을 전장의 무질서 속으로 밀어 넣는다. 스무 살 무렵 친구의 강권으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영화를 통해 감각적으로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특히 록 밴드 더 도어스(The Doors)의 <The End>(1967)가 흐르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불타는 정글 위를 비행하는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와 주인공 윌라드 대위(마틴 쉰)가 머무는 숙소 천장팬의 움직임이 하나의 악보처럼 맞물릴 때, 나는 영화 속에서 음악이 보조적 역할을 하는 배경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심리적 공간을 창조하는 도구임을 깨달았다. 불타는 정글과 헬리콥터, 천장팬, 그리고 윌라드 대위가 겹쳐지는 영화 초반부 영화 속 서사의 시작점인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은 니체적 의미에서 초인적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전체를 기준으로 무척 적은 분량인 그의 대사는 한 음절 한 음절이 묵직한 무게를 공유하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공포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 그러니 공포와 친하게 지내야 해(Horror has a face... and you must make a friend of horror.)”라는 그의 읊조림은 전쟁터의 참혹한 현실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한계를 암시하며 질문한다. 영화에서 음악은 영상의 보조재가 아니라 핵심으로 자리하며 인물들의 심리, 이념, 광기를 대변한다. 헬리콥터 부대가 민가를 향해 무차별적 공격을 퍼붓는 유명한 장면에서 흐르는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Ride of the Valkyries: Prelude to Act III)>은 단순한 감정 고양의 장치가 아니라, 전쟁 자체를 하나의 장엄한 스펙터클로 완성하며 폭력에 대한 고발과 창작-예술의 경계, 동시에 오락 산업으로서의 영화라는 뒤엉킨 모순적 현실마저 깨진 거울마냥 선연하게 드러낸다. 커츠 대령, <발퀴레의 기행>이 흐르는 전투 장면 (사진: "Apocalypse Now"( 1 , 2 , 3 ), IMDb) 모임 별은 지난 25년간 소속이 없는 독립적인 밴드이자 브랜딩/디자인 스튜디오로 활동해왔다. 우리 팀은 분명 통상적인 영화음악 감독은 아니지만, <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에 참여한 이후 꾸준히 학생 영화, 실험 영화, 저자본 영화 작업들에 참여해 왔다. 가능한 상업적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활동하기 위해 애써온 우리에게,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 과정에서 감독과 출연진, 스태프가 함께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성의 미학과 실험 정신은 여전히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최근 담당한 영화 < 폭설 >(윤수익, 2023)에서는 서퍼들의 몸을 때리는 차디찬 겨울 파도소리와 낡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들에서 뽑아낸 극한적 소음들을, < 힘을 낼 시간 >(남궁선, 2024)에서는 클래식 기타 연주와 랜덤 알고리즘 베이스의 VST 악기 패턴들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작은 실험들을 수행 중이다. 귀를 사로잡는 음률 보다는 반복되는 패턴 속에 미묘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주어, 청자가 음악을 뚜렷이 인식하지 않는 상태로 영화 속 서사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폭설>과 <힘을 낼 시간>의 음악 (이미지 클릭)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업계 표준’에서 벗어난 활동 방식과 작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다양한 예술가들, 기관, 기업들과 함께 예술, 상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진 여러 실무 담당자의 고마운 배려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또한 새로이 작업을 시작하는 독립적인 젊은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에게 작게나마 실질적 도움이 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고, 새삼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짐한다.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을 만들며 마주한 끊임없는 문제와 막대한 혼돈을 고스란히 작품 안에 담아내며 영화를 완성했다. 불확실성과 모순의 한복판에서 탄생한 작품은 단순한 작가의 종속물, 재현물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온전한 실체가 되었다. <지옥의 묵시록>이 없었다면, 내가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혹시라도 아직 영화를 감상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1979년의 최초 개봉 버전, 2001년 공개된 리덕스(Redux), 2019년 파이널 컷(Final Cut) 중 단연 리덕스 를 추천드린다. 조태상(모임 별 작곡가, 디자이너) l 모임 별( Byul.org )은 우연히 만난 친구들의 술자리 시낭송회에서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여전히 친한 친구들의 술모임이며,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며 녹음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 중이다. 김경렴, 서현정, 최원겸, 황소윤, 오태경, 김수빈, 조태상, 장용석, 이선주로 구성되어 있다. 조태상은 모임 별에서 작곡과 디자인을 담당한다. 2012년 정규음반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2017년 <밤도깨비들을 위한 선곡집>, 2019년 <주인 없는 금>, 2024년 <우리 개> 등을 발매했고, <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 < 힘을 낼 시간 >(남궁선, 2024) 등의 영화에 음악 작업으로 참여했다.
<무소주>(2024)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차이밍량은 2012년부터 <행자(行者)> 연작을 찍기 시작했다. 장소만 달려졌을 뿐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리캉성이 붉은색 가사를 입고 약간 고개를 숙인 다음 한 손은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어 불가의 공(空)을 표시하고 다른 한 손은 내린 채 펼친 다음, 혹은 마찬가지로 원을 만들어서, 천천히 걷는다. 맥락과 배경, 그리고 거기에 대한 해설을 달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보는 건 그게 전부이다. 차이밍량은 2013년 < 떠돌이 개 >를 찍은 다음 더 이상 극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언젠가부터 점점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극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들이 희박해져 갔다. 그는 < 안녕, 용문객잔 >(2003)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이미 모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행자> 연작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무대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타이베이 국립극장에서 300석 규모의 무대에서의 공연을 제안받았다. 세 명의 배우를 무대에 불러 각자의 모노드라마를 올릴 계획이었다. 세 명은 양구이메이, 루이징, 그리고 리캉성이었다. 리캉성에게는 일인삼역을 부탁했는데, 리캉성 본인과, 차이밍량의 아버지, 그리고 현장(玄奘)법사였다. 현장법사는 당나라 시대의 승려이다. 불교 교리를 연구하려고 했지만, 그때 중국에는 불교 경전이 없었다. 그래서 경전을 구하기 위해 천축국(지금의 인도)으로 길을 떠났다. 627년의 일이다. 둔황을 거쳐 천축국에서 불경을 얻은 다음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것은 645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그 여정을 명나라 시대에 신괴소설(神怪小說)로 쓴 오승은 작가의 『서유기』이다. 삼장법사와 세 명의 제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그들을 기다리는 온갖 요괴와 난관을 헤쳐 나가는 모험극. 하지만 무대에서 리캉성은 무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사각형으로 된 무대 끝 선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차이밍량은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무대에서 한 번 공연한 다음에 사라져 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워 그걸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옮기겠다. <행자>는 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모래>(2018)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하지만 무대에서 이미 한 것을 카메라 앞에서 반복하지 않았다. 차이밍량은 리캉성에게 붉은 가사(袈裟)를 입히고 길거리로 데려 나갔다. <무색>(2012)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행자>는 2012년 타이베이의 야시장(夜市場)에서 걸었다. 아주 느리게 걸었다. 이 해에 세 편의 <행자>를 더 찍었다. 처음에는 상영시간이 짧았지만, 점점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덟 번째 <행자> 연작인 <모래>(2018)에서 처음으로 1시간 상영시간을 넘어섰다. 아무 사건도 없고, 아무 이야기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대사도 없다. 리캉성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언제나처럼 붉은 가사를 입고 한 손으로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고 다른 손을 내린 채 맨발로 몹시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마치 멈춘 것 같은 속도로 걷는다. 하지만 길거리로 나가자 구체적인 문제와 만나야만 했다. 기후의 가혹한 조건. 환경이 요구하는 한계. 한여름 뜨거운 햇빛으로 달궈지다시피 한 말레이시아 쿠칭의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걸었고(다섯 번째 <행자>인 <물 위 걷기>) 추운 한겨울 밤에도 도쿄의 길거리도 맨발로 걸었다(여섯 번째 <행자>인 < 무무면(無無眠, No No Sleep) >). 그래서 차이밍량은 모든 테이크를 단 한 번만 찍었고, 리캉성은 같은 장소에서 두 번 걷지 않았다. <행자>는 정신적인 여정이지만 육체적인 기록이다. < 곳 >(2022), < 무소주 >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열 번째 <행자>인 < 무소주(無所住, Abiding Nowhere) >(2024)에서 리캉성은 미국 워싱턴 DC를 걷는다. 아홉 번째 <행자>인 <곳(何處, Where)>(2022)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농 홍앙시가 등장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하고 각자의 일을 각자 한다. 부사(副詞)로서의 각자(各自). 서로 따로따로. 어떤 일? 리캉성은 쉬지 않고 걷고, 아농은 외출하고 돌아와서 면을 끓인 다음 먹는다. 그 둘은 무슨 사이일까. 전주에서 만난 차이밍량은 내게 비밀을 알려주었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차이밍량 <행자> 전작 회고전을 했고, 차이밍량은 전주에 방문했다. 이때 긴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언지무(言之無)―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 나는 이를 추구한다”, 《필로》 38호, 2024 May_June.) “<행자> 연작 일부분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 예를 들면 내가 어릴 적에 읽은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 같은 개념들을 몰래 넣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알려줄 수는 있지만, 관객들에게 내 생각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 <행자> 연작을 찍을 때는 어떤 방법을 통해 표현할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파리에서 찍은 <곳> 속의 아농은 거미 요괴를 닮았습니다. 그가 리캉성, 그러니까 행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요괴를 닮았습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차이밍량은 거기까지만 비밀을 알려주었다. <무소주>에서 아농이 요괴인지 그렇다면 어떤 요괴인지, 거기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무소주>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무소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석양이 저물어가는 물가를 리캉성이 걷는다. 그때 해가 저물어가면서 물 위로 반사광이 피어오른다. 구태여 비유를 빌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바세계(娑婆世界)를 건너서 극락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때 노래가 흐른다. ‘了悟心性究竟之上師祈請文’. 문자 그대로 옮기면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스승들의 기도’이다. 이 노래가 들릴 때 리캉성은 마치 긴 여정을 마치는 것만 같다. 차이밍량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이 열 번째 <행자>가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추신 _ 전주영화제에서 차이밍량에게 열한 번째 <행자>를 제안했고, 차이밍량은 다음 <행자>를 전주에서 찍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것이 새로운 <행자> 연작의 첫 번째 영화가 될지, 아니면 열한 번째 <행자>일지, 그도 아니면 번외편이 될지, 또는 에필로그가 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나는 두근거리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사진: " REMEMBERING DAVID BORDWELL "(Rataj-Berard 촬영), NYU Tish School of the Arts 지난 2월 29일에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이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였다. 영화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드웰이라는 이름이 낯설 수는 없다. 이론과 비평 및 영화사를 넘나들며 공저를 포함한 2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으며 한국에도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다. “영화 연구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영화의 내적 구조와 위상을 밝히는 일에 중요한 이론적 거점 노릇을 해왔다. 영화학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럽겠지만, 내게는 좀 더 각별한 편이다. 그의 책을 번역했다는 인연 말고도 여러 면에서 빚을 졌기 때문이다. 현대소설에서 영화로 전공을 바꾸면서 ‘문학적’ 틀이라는 자기 한계와 맞닥뜨려야 했던 내게 그의 책들은 영화형식의 독자성을 알려준 요긴한 길잡이였다. 최고의 영화 교과서라 일컬어지는 『영화예술(Film Art: An Introduction)』(1979)은 영화가 예술로서 갖는 위상에 눈 뜨게 했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규범과 다양한 스토리텔링 패러다임을 논한 『영화의 내레이션(Narration in the Fiction Film)』(1985)은 영화적 서사가 작동하는 내적 논리와 양식들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영화 스타일의 역사(On the History of Film Style)』(1997)는 제작 관행 및 기술과 긴밀한 관련을 맺으며 변화해 온 영화 스타일의 다양한 양상들을 접하게 했으며 『포스트-이론: 영화학의 재구성(Post-Theory: Reconstructing Film Theories)』(1996)을 통해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고 감정을 유도하는 구체적인 과정들을 알려주었다. 그 외에도 할리우드와 유럽, 아시아의 중요 감독들에 관한 그의 저작은 시대와 지역이라는 조건에 따라 다르게 현현하는 영화 스타일의 세계로 안내했다. 데이비드 보드웰의 저서 중 일부(개정판 포함) / 사진: " Books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다루는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그의 작업에서 공유되는 것은 영화의 예술성에 대한 옹호이다. 그에게 있어 영화는 자기만의 형식과 원리를 지닌 예술이며 영화의 예술성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 속에 존재한다. 그는 영화의 세부를 형성하는 규범과 원칙을 밝혀내어 영화가 예술형식으로 자리할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스펙터클을 예술적 표현의 형태로 읽어내었다. 이러한 작업들의 지층에, 영화연구는 텍스트를 통한 사유가 우선되어야 하고 텍스트의 역사를 통해 정신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책을 보면 그것을 쓴 사람이 보인다. 그는 어려운 이론적 용어로 독자를 현혹하거나 현란한 지식을 과시하지 않는다. 거대한 이론적 틀에 의지하여 영화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경향에 매 순간 저항했다. 그의 논의는 텍스트를 직접 분석하여 얻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지식에 의거한다. 스스로 형식주의자이기를 고집하며 고전적 정전을 찾는 일에 전념할 때에도 우선시한 것은 실제 분석이었다. 수많은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검토에 기반하여 영화의 내적 질서를 벼리어내고, 그것과 관계하며 구성되는 지역적이고 역사적인 다양한 나이테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당연히, 다루는 영화들의 방대함에서 보드웰의 저작들은 가히 압도적이다. 더구나 그가 주요 저서를 썼을 때는 지금처럼 손쉽게 영상 자료를 얻을 수 없던 상황이었다. 스캔 기술은 물론이고 홈 비디오도 없던 시절에, 영화의 이미지들을 선명한 상태로 책에 담기 위해 어두운 극장이나 편집실에서 실제 필름을 스틸 카메라로 직접 촬영하고 보정하는 데 쏟았던 엄청난 노고에 관한 목격담도 전해진다. 영화형식의 비밀을 푸는 작업에 그가 기울인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막대한 시간을 투자하여 영화들을 분석하고 그 결과물을 명징한 언어로 전달함으로써, 직접 보고 확인한 것만이 지식으로 쌓일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학자라 할 수 있다. 사진: " A Celestial Cinémathèque? or, Film Archives and Me: A Semi-Personal History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2002년 11월에 지근거리에서 그를 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영화학회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강연을 했던 그는 엄정한 이론가나 날카로운 비평가라기보다는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 찬 시네필에 가까워 보였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엄밀한 분석을 펼쳐내었지만 그러한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들떠 있는 소년마냥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알아차린 ‘놀라운’ 영화형식의 세계를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다는 에너지로 가득한 그의 모습을 보며 느낀 것은, 그의 책들이 보여주는 정확성과 치밀함이 개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간의 작업들이 지적 관심을 넘어서 영화에 바치는 우회적인 방식의 애정 고백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시네필적인 열렬함을 잃지 않으면서 영화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균형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론이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 꽤 예외적인 영화학자로 그는 내게 기억되어 있다. 영화를 향한 그의 사랑의 농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었던 듯하다.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일하던 대학 강단을 떠난 이후에 오히려 블로그나 비디오 에세이, DVD 컬렉션 등으로 반경을 넓히며 더욱 생산적으로 활동했다. 디지털 기술의 고속 성장으로 영화의 존재 방식이 더욱 복잡해지는 상황에서도 보드웰은 영화형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누락시키지 않으면서 영화 매체의 변화 가능성을 꾸준히 탐문해 왔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영화를 논한 학자들은 많다. 그러나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 오랜 기간 영화를 향해 열정과 수고로움을 쏟은 정도와 깊이에 있어서는 보드웰을 능가할 자가 없어 보인다. 눈을 감기 며칠 전에도 자신의 블로그( davidbordwell.net )에 글을 썼을 만큼,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화와 함께 있었다. 영화가 당면했던 사회현실적인 조건과 문화적 위상에 주된 관심을 두게 되면서 한동안 그의 책들을 열어보지 않고 있던 차에 그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처럼 독보적인 ‘영화주의자’를 다시는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허전함을 지울 길 없다. 늦었지만 그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1976년, 전 덴마크영화박물관 본부 앞에서, 데이비드 보드웰. 사진: " A Celestial Cinémathèque? or, Film Archives and Me: A Semi-Personal History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마지막으로, 만약 우리가 현재의 우리를 사로잡는 영화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 호기심은 역사적 사고를 통해 충족될 수 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어제 일어난 일로부터 야기된다. 영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영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Finally, if we have any curiosity about the films that captivate us now, we can start to satisfy it by thinking historically. What happens today springs from what happened yesterday. By trying to understand film history, we better understand the movies of our moment. -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 " Doing Film History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오영숙(성공회대 동아시아 연구소 HK연구교수) l 영화가 공동체의 심리적 현실과 맺는 유의미한 관계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쓰고 있다. 『1950년대, 한국영화와 문화 담론』(2007), 『탈북의 경험과 영화 표상』(2013), 『근현대 한국영화의 마인드스케이프』(2024) 집필. 『진짜 눈물의 공포(The Fright of Real Tears)』(슬라보예 지젝, 2004), 『영화의 내레이션(Narration in the Fiction Film)』(데이비드 보드웰, 2007) 번역.
지난 6월 21일, 로빈 하디의 < 위커맨 >는 개봉 50주년을 기념하는 4K 복원판이 영국에서 첫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다. 이후 미국 전역을 비롯한 각 국가 개봉에 이어 10월에는 현존하는 본편 3개 버전과 방대한 서플먼트 그리고 폴 지오바니와 밴드 마그넷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포함한 5 디스크 DVD 박스세트가 출시되었다. 동시에 <위커맨: 공식 스토리>라는 신간도 함께 출판되면서, <위커맨>은 올해 복원된 고전 중에서 가장 활발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히트작이 되었다. 이미 개봉 40주년을 기념한 디지털 복원판이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상영되었던 전력을 떠올려보면, 새로운 4K 복원판에 대한 식지 않는 관심은 진정한 컬트 고전으로서 <위커맨>이 가진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 셈이다. 요란스러운 상찬과 제사에 불구하고, 컬트의 지위를 가진 대부분의 걸작들이 그러하듯 <위커맨>은 시작부터 개봉까지 쉬웠던 순간이 하나도 없었던 고난의 영화였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말 그대로 복원과 부활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위커맨>은 < 발자국 >(Sleuth, 1972)로 유명한 작가 안소니 샤퍼가 제작사 ‘브리티시 라이언’의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제작자 피터 스넬 그리고 해머의 드라큘라 재생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와 1967년 출간된 데이빗 피너의 소설 ‘의식(Ritual)’의 영화판권을 공동으로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개발에 난항을 겪던 프로젝트는 당시만 해도 ‘듣보'였던 로빈 하디가 의기투합하면서 주말동안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순식간에 하우이 경사를 중심으로 한 제대로 된 시나리오로 전개되었다. 완성된 시나리오에 만족한 스넬은 ‘저예산으로 제작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비로소 <위커맨>은 1972년 가을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촬영은 약 7주 가량 25개 스코틀랜드 지역 곳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정작 로케이션 중에서 진짜 섬은 한곳도 없었다. 로빈 하디는 공간의 통일성을 위해 이곳 저곳에서 찍은 장면들을 패치워크하듯 이어붙이는 작업이 오히려 흥미로웠다는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으나, 가을의 스코틀랜드에서 5월 초여름의 풍경을 담아야 한다는 미션과 더불어 로케이션 중간중간 출몰하는 근대와 문명의 흔적을 피하는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산 부족과 고된 촬영, 추위와 이어지는 과음으로 하우이 역의 에드워드 우드워드는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윌로우 역의 브릿 에클랜드는 촬영 내내 우울증에 시달린 나머지 이후 완성된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에클랜드는 2023년 5월 <위커맨> 50주년 특별행사에 참석하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00분이 넘는 길이로 영화는 완성되었지만 <위커맨>의 개봉은 요원했다. 20세기 초중엽 에드가 월리스, 알렉산더 코다, 캐롤 리드 등 영국영화의 대표주자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던 상황이었는데, <위커맨>이 완성된 시점의 사장인 마이클 딜리는 완성본을 싫어한 나머지 영화의 개봉을 거부했다. 제작자 스넬은 딜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칸 영화제에 완성본을 들고 가 쇼케이스를 진행하는 동시에 호텔 로비에 거대한 위커맨을 세워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이때 <위커맨>을 본 영화 관계자 중에는 로저 코먼도 있었는데, 드라이브 인 상영에 좋겠다고 판단한 코먼은 편집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브리티시 라이언은 영화를 87분으로 대폭 가위질해서 먼저 개봉하여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니콜라스 로에그의 < 쳐다 보지 마라 >(Don’t Look Now, 1973)와 동시상영하는 조건으로 영화의 개봉을 허가했다. 크리스토퍼 리는 안면이 있는 모든 평론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좌석을 빼두는 등 공을 들이기도 했다. 20세기 브리티시 호러의 대표작인 두 편의 영화가 동시상영이라는 비참한 대우를 받았다는 비극인지 아니면 두 편을 동시에 본다는 엄청난 기회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관객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처참한 박스오피스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어떻게든 제작비를 환수하려고 애썼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로저 코먼을 비롯, 미국 배급을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미국 배급권은 워너 브러더스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워너는 개봉 전 테스트 상영을 했지만, 버라이어티를 비롯 지면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상영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위커맨>은 순식간에 시네필 그리고 영화학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볼 수 없는 걸작'이 되면서 컬트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6년 할리웃으로 와 각본작업을 하던 로빈 하디는 <위커맨>의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워너 브러더스는 이미 미국 배급권을 단돈 2만불에 아브락사스라는 소규모 회사에 넘겨버린 상태였고, 하디는 아브락사스를 설득해서 난도질당한 <위커맨>의 부활 작업의 허가를 얻었다. 하디는 바로 피터 스넬, 앤드류 샤퍼 그리고 크리스토퍼 리에게 연락을 취했고, ‘위커맨 4인방'은 가위질 이전의 롱 버전 프린트 사냥에 나섰다. 개봉버전과 로저 코먼에게 견본으로 보냈던 오리지널 프린트를 찾아낸 하디는 결국 1977년 가을 미국에서 첫번째 디렉터스 컷이라고 할 수 있는(현재는 ‘미들 버전’이라 불리는 버전으로 4K 복원 상영본인 ‘파이널 컷’의 원형이 된 판본이다) 92분 버전의 <위커맨>이 상영되었고 결과는 큰 성공이었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위커맨>은 숏 버전과 미들 버전이 번갈아가며 TV와 홈비디오 시장을 통해 배급되었지만, 본격적인 복원은 2001년 영화의 세계배급권을 갖게 된 스튜디오카날에 의해 시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완성된 100분이 넘는 오리지널 프린트는 찾지 못했지만 현존하는 프린트와 텔레시네 버전들을 조합한 99분 버전의 ‘디렉터스 컷’이 DVD로 출시되었다. 스튜디오카날은 <위커맨>의 복원을 위해 프린트 사냥을 멈추지 않았는데, 하버드대 필름보관소에서 92분 버전의 필름 4K 버전을 입수하면서 제대로 된 디지털 복원의 신호탄을 쐈다. 로빈 하디는 페이스북에 올린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영화의 디지털 버전을 복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복원 과정에서 하디는 섬머아일로 가기 전 경찰서 등 하우이의 일상 장면을 포함, 디렉터스 컷에 삽입되었던 장면들을 제외한 92분 버전의 복원에 동의하고 이 버전은 2013년 크리스토퍼 리가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던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버전이 올해 4K 복원판 상영으로 이어진 이른바 ‘파이널 컷'으로, 국내에서는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국내 관객을 처음 만났다. 영생을 믿는다며 부활을 울부짓었던 하우이의 희생 덕분이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불굴의 4인방의 <위커맨>은 부활에 성공하여 영생을 얻은 셈이다.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영화의 부활 서사때문에라도 <위커맨>은 수많은 관련서와 팬매거진을 거느린 컬트 고전이자 아리 에스터 등 현대의 감독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된 걸작이지만, 역경을 딛고도 부활할 수 있었던 영화의 저력은 전무후무한 전복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지난 10여년 간 글로벌 호러의 지배적인 서브장르로 급부상한 포크 호러 열풍과 더불어, <위커맨>은 < 심판 >(Witchfinder General, 1968), < 사탄의 피부 >(The Blood on Satan’s Claw, 1971)과 포크 호러 장르의 ‘불경한 삼위일체'라는 명성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중 <위커맨>은 근대 서구 문명의 이성과 기독교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과 완전한 전복을 스크린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두 편과 궤를 달리한다. 엄격한 교리와 도덕률 그리고 사법제도의 규칙으로 무장한 채 아버지의 법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근대적 남성주체 하우이는 로완 모리슨의 실종을 추적하는 탐정으로서도, 순결한 총각으로서도, 무엇보다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도 성공하지 못한 채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섭리라는 말로 수렴될 수 없는 자연의 동학을 긍정하는 섬머아일에서 섹스와 남근, 수확과 재생산은 하우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질서를 구성한다. 그 안에서 당혹과 충격 그리고 어이없음과 무력함을 넘나들며 심리적 폐소상태에 놓인 하우이의 클로즈업과 영화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메이데이의 현기증나는 의식은, 종교적 이성과 원시적 이단이라고 재단된 양립할 수 없는 두 질서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라고 너스레를 떠는 로빈 하디의 코멘트에 충분히 고개가 끄덕이면서도 왠지 영화의 강열도를 축소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
< 오월의 눈 >(Snow in Midsummer)은 말레이시아 총 킷 옹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지난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섹션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던 단편이자 말레이시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5.13 사건을 다뤘던 <장중한 무덤>(Cemetery of Courtesy)을 장편 프로젝트로 확장하면서 완성한 작품이다. 올해는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성취한 아시아 영화들이 많았던 해로 평가할 수 있는데, 특히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수상한 말레이시아 출신의 아만다 넬 유 감독의 < 호랑이 소녀 >(Tiger Stripes)와 더불어 말레이시아 신인감독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오월의 눈>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중화권 지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만금마장 영화제 두 편의 개막작 중 한 편으로 선정되었으며, 총 9개 부문 후보지명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오월의 눈>은 말레이시아와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가 공동제작으로 협업해 완성한 영화다. 말레이시아 출신이 대만으로 이주해 창작을 이어가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차이밍량 감독과 호 위 딩 감독이 대표적이지만, 그 이후로도 상당수의 말레이시아 젊은 창작자나 감독지망생들이 대만으로 이주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에는 여러 배경이 있겠으나, 아무래도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이주. 정착하면서도 여전히 중국식 문화와 언어, 생활을 유지해온 화교 문화권이라는 공통기반이 있어서 가능한 지점일 것이다. 특히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대만으로 이주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가는 라우 켁 후앗 감독은 1950년대 말레이시아 공산당 운동의 역사를 다룬 <무단 외출>(Absent without Leave)과 <오월의 눈>의 주요 소재인 말레이시아 5.13 사건을 다룬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기억한다>(The Tree Remembers), 그리고 대만인과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이 충돌하자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가 유혈진압을 자행해 3만명 가량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대만 2. 28 사건을 다룬 <야생 토마토의 맛>(Taste of Wild Tomato) 등을 통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잊혀진 역사를 재구성하고 영화적으로 복기하는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가 공동제작한 <오월의 눈>은 최근 몇년간 도드라진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들의 공동협업이라는 뚜렷한 흐름을 보여주는 케이스이기도 하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베트남 출신의 팜 티엔 안 감독의 <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Inside the Yellow Cocoon Shell)은 베트남, 싱가포르, 프랑스, 스페인 등이 공동제작에 이름을 올렸는데, 감독의 전작이자 단편인 < 정신차려 >(Stay Awake, Be Ready)가 2019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단편경쟁에서 주목 받으면서, 싱가포르 젊은 프로듀서와 의기투합해 장편 프로젝트로 개발했고, 이후 유럽에서 주요 펀딩을 받으며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밟았다. 비슷한 예시로,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지만 자국인 말레이시아에서 개봉 당시 일부 장면이 삭제되며 검열논란을 일으켰던 아만다 넬 유 감독의 <호랑이 소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독일 등 무려 8개 국가가 공동제작에 이름을 올렸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여러 프로젝트 마켓을 통해 주목을 모았던 장편 프로젝트들이 대체로 동남아시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공동제작의 형태로 개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몇 년간 이러한 경향이 더욱 도드라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공동제작 프로젝트에 대만 영화기관과 펀딩이 주요 파트너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파트너십과 돌파구가 필요한 한국독립예술영화계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오월의 눈>은 1969년 5월 13일 말레이계와 중국계 이주민(주로 중국남부에서 이동해온 호키엔족)이 충돌해 유혈폭동으로 이어진 5. 13.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그리고 중국계 이주민들로 연결되는 복잡다단한 말레이 반도의 역사를 단박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화교의 숫자가 많았던 싱가포르를 억지로 독립시켰고, 그럼에도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던 중국인과 인도계에 대한 차별과 분리가 이어지던 1960년대의 말레이시아는 민족주의의 발흥과 인종 차별,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인해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폭발 직전의 인종 갈등을 촉발시킨 계기는 1969년 말레이시아 세번째 총선거 이후 3일째가 되던 5월 13일,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중국인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거리에 나서면서 이에 자극 받은 말레이계와 충돌하면서부터다. <오월의 눈>의 제목은 오랫동안 중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고전 희곡인 관한경의 『두아원(竇娥寃)』에서 왔다. 『두아원』은 하늘에 사무치는 두아의 원한, 이라는 뜻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목이 베어지는 참형을 당한 두아(영어로는 Dou E)가 처형 직전, 내가 죄가 없다면 초여름에 눈이 내리고 가뭄이 들 거라고 외치고 처형을 당했는데, 실제 그녀의 예언대로 서리가 내리고 가뭄이 들자, 조정에서 재조사에 나서 그녀를 음해한 사람들을 처형한다는 스토리를 지닌 일종의 잡극. 중국에서는 초등학교 과정에서도 소개되며 모든 연령대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자, 13세기 중국을 배경으로, 당시 지배계층의 착취와 혼란스런 정치로 인해 고통 받던 민중들의 현실과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정치극이었으며,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경우를 당하는 민중에 대한 메타포로 종종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어제목으로는 『The Injustice to You E』 또는 『Snow in June』로 번역되었는데, <유월의 눈>을 차용해 <오월의 눈>으로 제목을 지은 것은 감독의 명확한 의도가 읽혀지는 지점이다. <오월의 눈>은 크게 두 챕터로 나눠진다. 첫 번째 챕터는 1969년 5월 13일, 당시 중국인 집단 거주지역에서 중국오페라 거리극 <유월의 눈> 공연을 준비하는 극단 사람들과 두 아이를 가진 중국인 부부의 하루를 따라가며 그날, 중국인 거주지역의 현장으로 관객을 데리고 간다. 두 번째 챕터는 2018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 14번째 총선거 이후 4일째가 되는 날 시작하는데, 이 총선거를 통해 말레이시아에서는 61년 만에 최초로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1969년 5월 13일 당시, 살아남은 아 엥은 신문기사를 통해 5.13 사건 희생자들의 집단매장지로 추정되는 공동묘지터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50년만에 아빠와 동생이 묻혀있을 수도 있는 매장지를 찾는다. 영화는 크게 두 챕터로 나눠지지만, 두 개의 챕터를 연결하는 역할은 거리극 <유월의 눈>의 주인공인 “두이 Dou E”가 맡는다. 중국인 거주지역에서 거리극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의 주연배우인 두이는 첫 번째 챕터에서는 마제스틱 극장 지붕에서 유혈현장을 바라보며 위무의 노래를 부르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집단매장지에서 죽은 자들과 무명묘를 위해 위무의 노래를 부른다. 첫번째 챕터는 역사서에 기록된 문장에서 시작한다. “말레이 연대기 The Malay Annals”에는 “왕의 한센병은 감히 말라카 술탄에게 탄원서를 보낸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선 술탄의 발을 씻은 물을 마셔야한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기록은 말레이인과 중국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주요한 텍스트로, 그리고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주요한 영화적 상상으로 재연된다.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딸을 데리러 온 엄마는 버스를 타고 아빠 아쿠와 아들이 있는 신사로 향한다. 말을 잘 듣지 않는 아들을 위해 Datuk Gong (말레이와 중국의 신이 혼재된 형태의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행하는 부부. 아빠는 인근 마제스틱 극장 티켓 2장을 구했다며 아들과 극장으로 향하고, 엄마는 딸과 함께 거리극 <유월의 눈>을 관람한다. 당시 마제스틱 극장에는 대만영화 <부심적인 負心的人>(The Jilted)이 상영중이었는데, 상영 전 광고로 보여지는 차기 개봉작은 말레이시아 영화 <송곳니를 가진 왕>(Raja Bersiong, The King with Fangs)인데,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민담을 영화화한 것으로, 우연하게 음식에 들어간 피맛을 본 왕이 그 맛에 취해 더 많은 피를 원하게 되면서 민중들을 학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방화와 살인이 시작되고, 엄마와 딸은 극단원을 따라 무대 뒤 공간으로 숨어들지만, 외부에 소리가 들리지 않아 대피하지 못한 극장 안 사람들은 모두 살육당하고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간다. 영화의 두번째 챕터. 2018년 5월 13일. 당시 엄마와 함께 살아남은 아엥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남편의 구박에도 무기력하고 지쳐보인다. 오랫동안 아빠와 동생의 시신을 찾아 다녔지만, 그동안 엄마는 죽었고, 아무 기록도 흔적도 찾지 못한 채 아 엥은 무력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당시 5. 13 사건의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집단 매장지가 재개발된다는 기사를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쿠알라룸푸르로 향한다. 당시 중국인 집단거주지역이었던 푸두 Pudu는 이제 고층빌딩이 들어선 도심으로 변했지만 마제스틱 극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서 있다. 어려서 다녔던 초등학교 옆 가게에서 차를 마시는 아엥은 옆 자리에 있던 일군의 사람들이 공연에 늦었다며 재촉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들 뒤로 남아 있는 낡은 신사에는 버려진 두리안 껍질들과 쓰러진 작은 불상들이 있다. 택시를 타고 숭가이 불로에 있는 지역 집단 매장지로 향하는 아엥에게 택시기사는 이곳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 있던 곳이라고 설명하고, 도착한 아엥은 그곳에서 아까 가게에서 만났던 무리들이 무덤 주변에 공연을 위한 무대를 설치하려 하지만, 공무원으로 보이는 관리인이 말리자 포기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난 두이가 죽은 자들을 위한 위무의 노래를 부른다. 시대를 구분하여 두 개로 나눠진 영화의 구조는 완전히 다른 양식과 형식미를 보여준다. 학살의 순간, 극장 공간 안과밖에서 운명의 순간을 맞이해야 했던 한 가족의 비극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우아한 움직임과 다다미 쇼트를 연상시키는 낮은 앵글, 그리고 형식미를 강조한 미장센은 일본과 대만의 고전영화로부터 받은 영화적 유산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여러 지점에서 허샤오시엔 감독의 < 비정성시 >를 떠오르게 한다. 특히 거리극의 공연장면을 삽입하고 거리극과 현실 사건의 스토리를 교차하면서 엮어내는 방식과, 코끼리를 탄 말라카 술탄이 등장하는 장면은 기이하고 신비로운 마술적인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는데, 이를 다루는 신인 답지 않은 영화적 야심과 완숙미가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2018년에서 시작하는 두 번째 챕터는 동남아시아 예술영화의 전통과 특징들이 묻어나는데,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아엥의 무료한 일상과 지근거리에 있는 신사의 존재, 그리고 산 사람인지 영혼들인지 불문명한 사람들이 등장해 도시를 지나 집단매장지에 이르는 동안, 카메라는 유령을 쫓듯 계속 흔들리고 유동하듯 움직인다.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실체. 남은 기록이라곤 증언과 기억밖에 없는 그날의 진실을 매년 5월 13일이 되면 집단매장지를 찾아와 제사를 지내는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물과 사건을 창조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빼어난 사운드로 그날의 현장을 영화적으로 복원해낸 감독의 뚝심과 용기에 찬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