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레즈
다큐멘터리는 질문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또 그 물음들이 다시 내 자신에게 돌아올 때 다큐멘터리는 제 몫을 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선호빈 감독의 <레즈 Reds>는 보는 사람들에게 자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대기업에서 지은 새로 단장한 도서관, 글로벌 대학답게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 그리고 본관 앞에 세워진 천막. 이 교정의 천막 앞을 지날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를 넘기며 학교와 싸우는 동료 학생들을 보며 근심했을까, 그/녀들이 건네는 유인물을 한번쯤은 자세히 읽어봤을까, 아니면 그저 무심히, 무심코 지나쳤을까. 2006년 4월, 고려대로 통합된 고려대 병설 보건대학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 요구 시위 중 학생들이 교수를 감금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출교’라는 강경한 징계를 받은 학생들은 본관 앞에 천막을 세우고 2008년까지 법적, 정치적, 물리적 싸움을 해나간다. 영화제작동아리 ‘쿠벨바그’에서 활동하던 감독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궁금해’ 카메라를 들고 천막을 찾아간다. 출교생들의 투쟁을 따라가면서 감독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결들을 발견한다. 출교라는 강경 징계 뒤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학위수여를 둘러싼 갈등이 숨어있다. 대학은 대기업으로부터 화려한 건물을 보장받고, 총장은 학자이기보다는 글로벌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기부금을 유치하고, 대학을 경영하는 경영자에 가깝다. `세계 100대 대학‘이라는 ‘글로벌 프라이드’를 유지하고 ‘조국의 국제화에 견인차’ 역할을 하기 위해 삼성 등의 대기업과 연계하느라 분주한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교수를 감금하는 학생운동은 시대착오적이라며 학생운동이 왜 살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교수, “고대생들 이제 삼성에 취직은 다 했네” “출교자분들, 학교를 떠나주세요. 창피합니다” 등의 글을 게시판에 올리는 대다수의 학생들. 아름다운 야경,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 외국 학생들로 넘쳐나는 그야말로 글로벌한 교정, 삼성, LG 등 대기업에서 신축하는 건물들, 명문대라는 자부심 뿐 아니라 ‘글로벌 프라이드’를 갖기에 충분한 국제화 지수들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대학생들은 어느새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다. 검은 화면 위 자막으로 등장하는 고려대학생들의 자유게시판에서 ‘퍼 온’ 학생들의 의견은 인터뷰보다 더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그들의 가치관과 생각을 드러낸다. < 레즈 Reds >는 카이스트 대학생들의 잇따른 자살을 비롯 ‘반값 대학 등록금’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지금 한국 사회의 대학, 그리고 그 안에서 신자유주의 혹은 기업의 가치를 내면화한 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좋은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