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미스터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책 여행
3D 애니메이션의 매끈함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적인 영상의 구현과 움직임은 놀라울 따름이지만 그 완벽함이 오히려 상상의 여지를 차단하며 감정 이입을 방해한다는 나름의 핑계를 이유로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 토이 스토리3 >가 가슴 먹먹한 감동을 안겨주며 이 편견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린데 이어 < 미스터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책 여행(the fantastic flying books of Mr. Morris Lessmore) >를 본 후엔 3D 애니메이션과의 이 서먹한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어느 호텔의 발코니에서 책을 쓰고 있던 레스모어씨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회오리 바람에 휘말리면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회오리 바람으로 인해 모든 것은 폐허가 되버리고 사람들은 슬픔과 절망으로 흑백으로 물들게 된다. 레스모어 씨 역시 집필 중인 책의 내용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본래의 색을 잃게 된다. 그러나 유일하게 환한 빛을 내며 하늘을 나는 책들과 여인을 발견하게 되고, 이들 중 하나인 험프티 덤프티의 안내로 책들로 가득한 저택을 발견하게 된다. 책은 절망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주며, 잊고 있던 꿈을 찾아주기도 하고, 꿈을 담아낼 수도 있는 생명력을 지닌 존재. 레스모어는 이들의 영향으로 어느새 원래의 색을 되찾고 즐겁게 춤을 추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책들과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는 아침마다 알파벳 모양의 시리얼로 이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그날 입을 커버를 골라주며, 오래 돼 생명이 위독한 책들의 페이지를 이어 붙이고 읽어서 되살리는 등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진다. 또한 사람들에게 자신에 맞는 책들을 골라주며 그들의 흑백의 세계가 색색의 빛을 찾을 수 있게 돕는 한편 틈틈히 완성하지 못한 책을 쓰는 일에 몰두한다.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레스모어는 드디어 자신의 책을 완성하고, 정든 이 곳을 떠날 때가 됐음을 직감한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이야기는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고 또 다른 이들과 만나게 된다. 2011년 시그래프 컴퓨터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더 베스트 인 쇼(The best in show)선정, 제84회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수상작인 이 15분 길이의 애니메이션은 예전의 무성 영화를 연상시킨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무성 영화 시대를 이끈 희극인이자 감독인 버스터 키튼, 오즈의 마법사, 등의 영향을 받은 작품은 대사 한마디 없지만, 미니어처, 3D, 2D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테크닉과 흑백ㆍ칼라, 음악을 통해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최신 기술을 빌려왔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며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이다. 문봇 스튜디오의 윌리엄 조이스와 브랜던 올던버그가 공동 연출한 작품은 본래 책으로 기획됐지만, 아이패드가 출시되며 인터렉티브 북의 가능성을 발견한 제작사는 영화와 e-book으로 작품을 동시에 선보였다. 과거와 현재의 아름다운 조화야 말로 < 미스터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책 여행 >이 많은 이들을 사로잡는 매력임에 분명하다. 물론 무엇보다도 너무 가까이 있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책이 주는 행복감이야말로 이 작품이 주는 최고의 선물일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