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괴물녀? 네티즌 "정체가 뭐야?"
- 제작년도
- 2010
괴수와 괴물은 뜻이 아주 약간 다르다. ‘괴물(怪物)’은 ‘괴상하게 생긴 물체’를 이르는 말이다. 딱히 못된 짓을 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기면 대충 괴물의 뜻에는 맞는다. (그렇다고 필자의 얼굴을 가리켜 괴물로 부르면 혼난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이상하게 생기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데 있어 ‘괴수(魁首)’의 속성 역시 충분하다. ‘못된 짓을 하는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를 나타내는 영화로는 우리나라에선 < 대괴수 용가리 >가 있다. 이런저런 괴물, 괴수들이 많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딱히 정통으로 인정받은 경우가 없었기에 아마도 저 옛날 영화를 호출할 수밖엔 없는 것 같다. 영화와 괴상한 것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애초에 뤼미에르 형제가 < 기차의 도착 >으로 영화를 ‘발명’했다면 영화를 ‘발견’한 것은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 아니겠나? 그의 < 달세계 여행 >은 지금 봐도 환상적인 멋진 작품이다. 상상의 현현. 볼 수 있다는 기쁨. 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소름 끼치는 이야기들은 좋은 소재였고 관객들은 열광했다. 영화사 초기의 기차만 보고도 도망갔던 순진한 사람들이 스크린에 비치는 괴물체들에 홀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괴물’도 아니고 ‘괴수’도 아니고 ‘괴인’이라는 어정쩡한 포지션에 자리한 무려 외계인이 등장하는 한국 SF의 고전이다. 어느 것이 용가리고 어느 것이 왕마귀인지 맞혀보시오~ < 우주괴인 왕마귀 >는 1967년 권혁진 감독의 작품이다. 67년은 재미있는 해였다. 한국 영화가 양적, 질적으로 팽창하는 시기였고 그에 따라 다양한 시도들이 많았다. 특히 장르 시도들이 많았는데 <우주괴인 왕마귀>, 김기덕 감독의 < 대괴수 용가리 >가 이해에 제작되었다. 게다가 한국 최초의 만화영화 < 홍길동 >,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 흥부와 놀부 > 역시 같은 해에 제작되었다. 특히 <홍길동>은 대한극장, 세기극장에서 개봉하여 흥행 1위를 했다. 그러나 미개척 장르로서 흥행대박을 기대했던 <대괴수 용가리>와 <우주괴인 왕마귀>의 흥행은 썩 좋지 않았다. 용가리는 국제극장에서 개봉해 그 해 15위를 했고, 왕마귀는 대한에서 10위, 세기에서 8위를 했다. <홍길동>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용가리는 클래식 취급을 받으며 해외 장르 팬들의 은근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왕마귀는 조금 섭섭한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세상일엔 다 이유가 있는 법... 괴물도, 괴수도 아니고 ‘괴인’이 등장하는 < 우주괴인 왕마귀 >는 외계인의 존재가 전면에 드러나는 최초의 한국 영화일 것이다. 우주를 탐험하는 감마성인들은 지구를 발견하고 자신들이 이주하기 가장 좋은 행성임을 알아낸다. 그들은 지구로 왕마귀를 보내 지구인들의 지능지수를 파악하려 하는데, 그 방법이란 지구보다 질량의 밀도가 2만 배 높은 감마성의 생물체가 지구에 가면 500배 커지므로 사람 크기만 한 왕마귀가 지구에서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니, 그것을 지구인들이 막아내면 지능지수가 엄청 높아 정복을 할 수 없으니 퇴각을 하고 왕마귀가 끝까지 남는다면 손쉽게 접수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외계인치고는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이 걸치고 있는 헬멧이나 복장의 귀여움치(Cute level)이 상당 수준에 올라와 있는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구에서도 한반도 남쪽을 선호하는데, 그 이후는 ‘기온이 온화하고 비교적 평지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알기론 기온이 온화하고 평지가 많은 걸로는 캘리포니아가 최고다. 큐트 레벨 상위 랭크 외계인 그렇게 지구에 떨어진 왕마귀는 본분에 충실하여 건물을 부수고, 산을 부수고, 건물을 부수고, 산을 부수고 한다. 내가 실수를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왕마귀가 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으르릉 그르릉 대며 건물을 부수고 산을 때리고... 그 와중에 그날 결혼하기로 했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하나 포획해 손에 들고 다니는데, 그냥 들고 다닌다. 아마도 < 킹콩 >의 영향이었겠거니 추측은 하지만, 그냥 손에 올려놓기만 하고 뭐 잠시 잊었다가 아 맞다 깜빡했네 하는 식으로 한 번 비추고 그런 식이다. 그 신부의 예비 신랑은 공군 소령 남궁원 인데, 그는 왕마귀의 퇴치를 위해 작전에 투입된다. 영화 시작 15분 정도에 투입된 남궁원은 어디로 갔는지 러닝타임이 1시간 정도 지나서야 나타난다. 정 안되면 핵무기를 써야 합니다!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남궁원. 하지만 왕마귀를 퇴치하는 것은 남궁원이 아니다. 그냥 홀연히 나타나 왕마귀의 몸에 올라탄 거지 소년이 과도(과일 깎는 칼 말이다.)로 계속 괴롭힌다. 그러다 우연히 등에 심어진 무전기가 망가지자 왕마귀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 지구 밖의 외계인들은 당황한다. ‘지구인의 지능 지수는 엄청나군! 우리가 점령할 수 없겠다. 그들의 평화를 빌며 왕마귀를 폭발시키고 떠나자.’ 그렇게 우리의 슬픈 크리쳐 마귀 중의 마귀 왕마귀는 꽈과광하고 사라지고 만다. 참 허망한 이야기다. 외계인의 침공을 했으면 반격을 하든지 아니면 그로 인한 사람들의 수난을 그리는 게 보통일 텐데 제작비의 문제였을까 흥행을 의식해서일까. 어느 쪽도 그다지 본격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나마 서울 시민들의 고난을 묘사하기는 했는데 좀 민망한 수준이고... 세트와 함께 로케이션으로 찍어서 당시의 실제 거리를 보는 재미는 있지만 그마저도 본 내용 언저리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코미디를 보고 있으면 그런 감흥도 금세 휘발되고 만다. (어째 내가 고르는 영화들이 다 이런 식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합죽이 김희갑 선생과 젊은 날의 송해 선생의 만담이 상당히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괴물에게 도망을 가면서 먼저 도망가는 사람이 지는 거야! 라며 집을 걸고 마누라를 건 내기를 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도망가는 와중에 왕마귀가 을지로로 가는지 퇴계로로 가는지 돈다발을 몇 개씩 꺼내며 모양새 안나는 승부를 걸기도. 다른 부분에서는 건물 안에서 신문지를 깔고 대변을 보던 사람이 공격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면서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든가... 남궁원 , 김희갑 , 송해 < 우주괴인 왕마귀 >는 그래도 본격적인 SF의 틀을 가진 최초의 영화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외계인과 우주선이 어쨌든 나오니까.) 제작비의 부족, 연출의 어설픔 등으로 별로 좋은 영화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귀엽다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다들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고민하다 악수를 두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 대괴수 용가리 >가 일본 기술을 가져와 제작한 반면, <우주괴인 왕마귀>는 순수 우리 기술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든다. 변변한 인프라도 없이 보고 들은 것으로 영화를 제작하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왕마귀의 출연씬과 김희갑 , 송해 출연씬의 빈도가 비슷한 것도 이해가 간다. 감독 권혁진 은 63년 데뷔해 총 8편의 작품을 남겼다. < 우주괴인 왕마귀 >까지는 그래도 작품 사이의 간격이 그리 멀지 않았는데 이 작품 이후로 조금씩 길어지더니 3편을 더 연출하고 메가폰을 내려놓은 것 같다. <우주괴인 왕마귀>의 흥행 실패로 이어진 결과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한국 SF 장르의 어르신으로 모실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보니 왕마귀의 위용이 없어서 이미지컷 추가 김혜경 남궁원 김희갑 송해 감독: 권혁진 각본: 변하영 개봉극장: 대한, 세기 관람인원: 50,00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