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신][시크릿가든+발리에서 생긴 일]비밀정원에서 생긴 일
- 제작년도
- 2011
이야기는 현실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보고 들었던 엄청나게 많은 기억들 속에서 일부만 골라낸 이야기를 영화라고 한다면, 미처 이야기가 되지 못한 나머지 기억들은 기록영상 컬렉션 곳곳에 심드렁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되는대로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때로는 기록영상의 맥락을 탐구하는 과정이 어떤 종류의 영화를 떠올리게 할 때가 있다. 주인공은 작은 물건이나 단서 하나에 호기심을 느껴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탐문을 시작한다. 이렇게 영화가 시작하고 2시간 가량이 흐를 때까지는 건조하고 반복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연한 계기로 지금까지의 모든 사소한 정보들 뒤에 있던 거대한 맥락이 폭발하듯이 드러난다.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관객의 머릿속은 분주하다. 지금까지의 플롯들이 복기되고 재정의된 이후에야 비로소 영화는 결말을 맞이한다. 순차적으로는 설명되지 않고 작은 부분정보들이 서로를 설명하고 보완하여 전체의 윤곽을 이루는 구조의 이야기는 기록영상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비슷한 주제를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세 개의 미군 기록영상에서 시작한다. #1. 불친절한 세 개의 영상 < 미국 NA II 기록영상컬렉션 (2) >에서 ‘제이드 민사처병원’ 필터를 체크하고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영상이 뜬다. (편의상 앞으로 각 영상을 알파벳 부호로 지칭하겠다) ● <A> , DEDICATION OF X CORPS CIVILIAN HOSPITAL, KOREA; [ETC.] ● <B> , BUILDING OF NEW KOREAN HOSPITAL, HYUN-NI, KOREA; [ETC.] ● <C> , ARMED FORCES ASSISTANCE KOREA, IP SONG NI, SOUTH KOREA 여기에는 건설이라고 하기 민망한, 작은 1층 벽돌 건물의 건설에 관한 미군의 원조 관련 장면이 포함돼 있다. 병원(Hospital)이라기보다는 의원이나 진료소(dispensary)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하다. 영상의 제목, 그리고 해당 장면의 슬레이트 정보와 화면 속 표지판 등 문자 정보를 간추리면 1차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A> , 세 곳의 서로 다른 원조 현장이 촬영됐는데, 그 마지막 순서가 제이드 민사처병원(Jade Civilian Hospital)의 민간 이양식 광경이다. “미 제10군단과 UNCACK(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의 협조로 제4통신대대가 건립했다”라는 내용의 1953년 6월 3일자 준공표지판이 찍혔다. <B> , 1954년 3월 18일에(제목에 따르면) ‘현리에서 새 병원을 건설’하는 현장에서 제4통신대대장 모리스 중령이 한국인 병원장 ‘Dr. Kim’을 인터뷰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영상만으로는 어느 병원인지 알 수 없다. <C> , ‘입송리’의 AFAK(미군대한원조) 프로젝트 후원 현장 세 곳 [1] 을 담았다. 그중 세 번째 시퀀스가 시멘트를 발라 벽돌을 쌓고 있는 제이드 병원 건설 현장의 모습이다.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는 곳을 찍은 두 번째 시퀀스에는 <영상 B> 에서 제이드 병원 시퀀스에 등장했던 모리스 중령이 나온다. 세 영상의 화면과 파편 정보는 서로 같은 듯 달라서 뭔가 개운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촬영 소대는 카메라의 시선을 좁혀 ‘원조라는 행위와 원조의 유형’만을 담았고, 자신들이 공유하고 있는 맥락 속에서 당연한 정보들은 슬레이트에 기록하지 않았다. 이로써 누락된 전체적인 맥락은 이제 단서 수집과 추리의 몫이다. 일단, 순수하게 영상들의 쇼트를 비교하는 것만으로 이 세 영상이 같은 장소의 같은 병원 건물에 관한 것이라는 점은 알 수 있다. <A>와 <C>에서 보이는 ‘준공표지판’과 ‘병원팻말’은 같은 것이다. 그리고 <A>와 <B>에 나오는 건물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이 모두가 담긴 <C>를 통해 <A>가 병원의 앞을, <B>가 병원의 뒤뜰을 촬영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안내팻말 (왼쪽: <A>, 오른쪽: <C>) 준공표지판 (왼쪽: <A>, 오른쪽: <C>) 천막의 위치에 의해 공사 장소가 병원의 뒤쪽임을 알 수 있음 (모두 <C>) 그러니까 1953년 6월 3일, 미 제10군단 민사처는 UNCACK(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과 협조하여 예하 제4통신대대를 통해 이 병원, ‘Jade Civilian Hospital’ 건물을 짓고 민간에 이양했다(<A>). 이듬해 3월, AFAK 프로젝트의 형태로 병원 뒤뜰에 공사 원조가 있었고(<C>), 그 공사 현장을 배경으로 제4통신대대장이 직접 병원장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촬영했다(<B>). 마지막으로, 10군단 민사처가 관리 주체임을 명확히 밝힌 안내표지판(<A>, <C>)에 의해, 이 병원은 ‘민사처병원’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2. 정리됐다는 착각 이제 이 병원이 어디에 있었는지 추리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C>는 제목에서 ‘IPSONG-NI(입석리)’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입석리국민학교 건설 현장에 대한 첫 시퀀스에만 해당하는 무성의한 작명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B>의 제목은 ‘HYUN-NI(현리)의 병원’이라고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라면 전쟁 중후반기 미 제10군단의 영향력 아래 있던 지역인 만큼 신빙성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건도 발견했다. OEC(유엔군사령부 경제조정관실)의 강원도 의료 시설 현황 보고서(이하 「OEC 보고서」라 칭하겠다)에는 ‘인제-제이드 병원(장로교 선교회)’이라는 항목 아래 제이드 병원이 ‘Sang Nam, Maechon, Naepyong and Kirin’에 있었다고 적혀 있다. 이로써 기린면에 있었다 는 증거를 잡았다. 이 이름이 붙은 병원이 여러 군데 있었던 이유는 ‘제이드’의 의미를 파악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제이드 병원을 이양받은 민간 조직이 장로교 선교회였다는 정보도 덤으로 확인된다. 하나 더, <B>의 인터뷰 장면에 등장했던 ‘Dr. Kim’이 누구인지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 육군 통신대 아카이브의 푸티지를 활용하여 제작됐던 미국 TV 시리즈 The Big Picture 의 한 에피소드, Armed Forces Assistance to Korea (미군대한원조)에 이 푸티지가 실린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2] 여기서 장면에 덧씌워진 내레이션에 그의 본명이 나오는데, 미국인의 발음으로 ‘김방모’, ‘김봉모’와 유사하게 들릴 뿐 특정할 수 없다. 그러나 「OEC 보고서」에는 그의 이름이 ‘Dr. Kim Bong Mu, director, grad. from Nippon University, Japan(일본대를 졸업한 병원장 김봉무 박사)’라고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제 확인해야 할 부분은 얼추 정리된 것 같다. (이렇게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3. 기록문서의 발견, 그리고 힘겨운 재구성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이런 컬렉션에서 최대한 정확한 맥락을 캐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National Archives의 원조사업 관련 문건에서 영상 속의 원조사업 관련 정보를 찾는 것이다. 특히 AFAK 프로젝트는 열람이 가능한 문서만 해도 3개 문서군에 흩어져 있는 수백 건 이상의, 어림잡아 50만 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이다. OCR이 되어 있지 않은 문서 파일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매우 고된 일이었고,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지도 않았으므로 최대한 찾을 수밖에 없었다. [3] 그래도 AFAK 프로젝트 보고서는 UNCACK 관련 문서에 비해 정보가 구체적이다. 그리고 식별된 장소나 건물명으로 찾는 것보다 그나마 조금 나은 경우는 영상에 AFAK 프로젝트 안내지, 그중에서도 프로젝트 번호가 찍힌 경우다. 다행히 <C>에는 프로젝트 번호 ‘9219’가 영상에 찍혔고, 이로부터 시작하여 제이드 민사처병원과 관련한 3건의 AFAK 프로젝트 보고 문건을 찾았다. 그리고 대혼란에 빠졌다. 모두 동일하게 장소가 ‘Chaun-ni’라고 적힌 것이다. AFAK 안내지(<C>)에 프로젝트 번호가 희미하게 적혀 있다. AFAK #9219 보고문서, National Archives RG 338, Entry A-1 255, Box 2197, p.126. AFAK #9221 보고문서, National Archives RG 338, Entry A-1 255, Box 2197, p.123. AFAK #9239 보고문서, National Archives RG 338, Entry A-1 255, Box 2197, p.118. (*이상, 각 보고문서의 첫 쪽 일부 모습임) 아무리 전에 그럴 듯한 결론이 나 있더라도, 이 증거는 반박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슬레이트 어디에도 장소 명이 구체적으로 적힌 곳은 없다. 오히려 National Archives의 관리용 제목이나 「OEC 보고서」에 ‘Inje-Jade’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다른 추정을 해야 할 상황이다. AFAK 문서의 내용은 구체적이고 정확했다. “민간 이양식 때 병실 사진을 찍었으나 보고 시점(8월 13일, 14일)에 사용할 수 없어 추후 제출하겠다”라는 문구가 있어 <A>의 내용을 지칭하고 있다. <B>, <C>의 병원 뒷편에서 하던 공사는 증축 또는 구획변경을 통해 수술실과 의료용품 공간을 추가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료용품 공간에는 침구 보관 및 회의실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었다. 이 병원에는 같은 시기에 다른 소규모 AFAK 프로젝트 두 건이 동시 진행 중이었다. 대략 1954년 2월 중순에 프로젝트 기획안을 제출, 승인받았으며 3월에 착공하여 7월에 완공됐다. 미 제45공병단이 일부 자재를 공급한 시기는 4월. <B>, <C>는 아직 자재도 오지 않은 공사 초기의 장면이다. 보고서의 제출자가 ‘제57통신지원중대’인 이유는4월 29일자로 제4통신대대로부터 이 후원 프로젝트를 이관받았기 때문이고, 이때 재고대장 등이 빠진 불완전한 상태로 서류가 넘어왔다는 메모도 있다. 이제 다시 따져봐야 한다. ‘Chaun-ni’는 어디일까? 강원도 지역에서 미군, 미국인이 이렇게 표기할 만한 곳은 두 군데로 추려졌다. ● 홍천군 내면 자운리 ●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홍천 일대의 기록에 언급되는 군 조직은 보통 미 제9군단이므로 10군단이 설립한 병원의 장소라고 생각하기가 더 어렵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인제군’과의 접점은 없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에 명분을 주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면은 원래 인제군에 속해 있다가 1954년 10월에 제정된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4] 의 부칙에 따라 홍천군으로 편입됐다. 본래 인제군은 강원도에서 가장 넓은 영역을 포괄하는 행정구역이었으므로 미군의 입장에서 그 인근은 대략 ‘인제’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고, 영상과 문서가 생산된 시점은 개편 전이었으므로 실제로도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았다. 내면 자운리가 10군단 관련 지역, 그리고 「OEC 보고서」에서 언급한 제이드 병원들의 분포 지역과 다소 떨어져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말이다. 원래 인제군이 아니었던 두촌면 자은리보다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4. 마지막 반전, 드와이트 멀스배리 선교사의 흔적에 닿다 그런데 ‘제이드’는 무슨 의미로 쓰인 이름이었을까? 혹시 병원을 이양받아 운영했던 장로교 선교회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해서 관련 정보를 찾다가 드디어 ‘드와이트 멀스배리(Dwight R. Malsbary)’, 한국 활동명 ‘마두원’인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가 관심 범위에 들어왔다. 그는 1929년 숭실전문학교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한국 최초의 음악선교사로서 한국에 서양 음악을 보급하고 저명한 제자를 배출하는 등의 족적을 남겼고, 1940년에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했던 인물이다. 해방 후에 다시 한국에 와서 교회, 신학교, 병원 등의 설립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이 정도의 삶을 살았지만 다른 내한 선교사들에 비해 그에 관한 기록은 매우 드물다. 같은 교단 내 교파 갈등으로 인해 주류 학계에서 소외된 것이 원인이라고들 한다. 이것이 그가 강원도 사역에 전념했던 이유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의 선교활동 자체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논문은 거의 없고, 그의 삶을 다룬 서적은 있으나 고증에 충실한 연구서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의미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참고할 수 있는 정보는 2025년 3월에 그를 주제로 열렸던 세미나 [5] 중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종전 교수(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두 분이 앞의 책과 다른 여러 문헌을 종합하고 견해를 더해 발표한 것을 촬영한 영상, 그리고 홍천 출신의 강정식 시인이 《홍천신문》에 기고한 여러 글이 사실상 전부이다. 이 소스들은 앞에 언급한 서적 등 참고 문헌에 오류가 있을 수 있거나, 기억에 의존한 구술에 의한 것이므로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다만, 멀스배리 선교사가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을 중심으로 사역활동을 했으며, ‘미군의 요청으로 제이드 병원 을 운영했다 [6] ’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가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로 내용과 견해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종합하면 이렇다. 6.25 전쟁 이후 멀스배리 선교사는 홍천군 두촌면을 거점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하여 무려 26개에 달하는 교회를 세웠는데, 이 교회들은 44번 국도를 따라 속초까지 [7] 주변의 산골짜기에 분포돼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이 지역의 인구 대부분이 군사적 요충지를 따라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44번 국도와 미 제10군단 및 멀스배리 선교사의 상관관계 (* 내면 자운리는 우하단에 떨어져 있음) 이런 맥락에서 ‘미 제10군단의 요청으로 군단이 운영하던 제이드 병원을 맡아 관리하게 됐다’라는 주장 [8] 도 개연성이 있다. 그와 관련됐던 병원의 위치에 대해서는 홍천군 홍천읍(지금의 홍천군청 서쪽 ‘명동보육원’ 터),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속초의 세 군데가 언급되고 있으며, 두촌면 자은리의 제이드 병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의사 부족 등의 문제로 먼저 문을 닫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9] 실제로 미 제10군단 본부였던 인제군 관대리, 멀스배리가 관여했다고 알려진 병원들의 위치, 「OEC 보고서」가 언급하는 제이드 병원의 소재지 등을 보면 실제로 44번 국도에 인접하거나 부근에 있는 반면에, 인제군 내면 자운리는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다. 이 정도라면 ‘Chaun-ni’는 ‘두촌면의 자은리’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게 뭐라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 ‘위치 논란’이 드디어 마무리됐다. 더 확실한 자료가 발견되면 좋겠지만, 현재까지의 자료전쟁의 승자는 처음에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두촌면 자은리다. #5. 가장 나중에 밝혀진 ‘Jade’의 의미 그래도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확인하고 싶었던 ‘Jade’라는 명칭의 의미. 혹시라도 이에 따라 또 무슨 반전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이것이 미군의 호출부호를 딴 것이라는 말이 있어서다. [10] 최소한 지금까지 경험한 전문(telegram)에서 그런 종류의 부호를 본 적은 없다. 부대라는 것은 이미 부대명 약어로 충분히 구분되고, 대외비를 송수신한다고 해도 어차피 전문에 적힌 APO(Army Post Office)만으로 각 시기의 부대 정보가 대략 노출된다. 그보다 1950년대라면 필요한 경우에 어떤 기계나 알고리듬 [11] 에 의해 전문 전체를 암호화하여 송신하던 시대 아니었나? 이를테면 그 유명한 독일의 에니그마(Enigma)라든지, 태평양전쟁기에 미군이 일본의 암호체계(또는 기계)에 붙인 코드네임인 퍼플, 레드, 제이드 같은 것들 말이다. (이때의 ‘제이드’는 지금의 맥락과 무관하므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애초에 호출부호라는 것은 항공 관제탑이나 선박 구분에 쓰이는 것 아닌가. 영상 <A>, <B>, <C>를 처음 본 순간부터 기약 없이 밤낮으로 찾아 헤매던 이 물음은 어느 순간에 허무하게 풀렸다. 답은 제이드 병원 원조 건설사업을 진행했던 제4통신대대의 부대사(史)문서 중에서 발견됐다. 이 컬렉션의 거의 모든 영상이 통신대 소속의 사진 및 영화 촬영 소대에 의해 촬영됐다고 해도, 통신대의 본 임무는 통신선로를 설치하여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제4통신대대는 미 제10군단 본부가 전선을 따라 이동할 때마다 해당 지역, 이를테면 함흥-원산, 인천-김포 등의 영역 내에서 본부와 각 부대를 이어 구축했던 통신망의 다이어그램을 문서에 남겨 놓았다. 통신망 다이어그램은 각 노드, 즉 망이 모이고 분산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곳 또는 그곳의 통신장비에 대해 코드네임을 붙여 놓고 노드 사이를 선으로 연결해 놓은 그림이다. 본부가 어디로 옮겨 가든 제4통신대대의 통신망에서 늘 통신선이 집중되는 주 노드에는 ‘JADE’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래서 추정컨대, ‘JADE’는 미 제10군단 본부에 설치되는 통신시설 또는 그 위치를 나타내는 식별부호일 것이다. 즉, ‘JADE’는 다른 노드에서 본부에 연락을 취할 때 호출명으로 사용됐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통신 호출명 ‘제이드’는 그 자체로 군단을 대표하여 지칭하는 이름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제이드 병원’의 정체는 10군단 민사처가 설립, 운영하던 모든 병원이었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통신 노드와의 관련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로 영상 속의 AFAK 안내지를 다시 떠올려보면, 프로젝트 번호 아래 후원 부대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R&M OPN Co. 4th SIG BN CORPS” - 즉, 군단직속 제4통신대대 무선 및 교신(Radio & Message) 작전 중대. 에필로그. 짧은 기록영상 세 개에 이렇게 골몰할 일인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지만, 그 결과로 마치 필름 현상 과정을 거쳐 잠상(latent image)이 드러나듯이 보다 다층적이고 구체적인 정황을 읽을 수 있게 됐다. 1950년대 강원도에서는 두 가지 플롯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한 줄기는 이름도 몰랐던 먼 나라에 와서 사상 처음 경험하는 형태의 전쟁 한복판에 있던 미군, 그리고 그들이 전시 후방 안정화 및 전후 주둔지 스킨십 강화를 위해 여러 가지로 골몰했던 민사 활동들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한쪽에는 스스로를 ‘평양 마씨’라고 일컬을 정도로 사랑한 나라 한국에서 1929년부터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선교를 계속하던 미국인 선교사의 사연이 있다. 미군과 선교사는 44번 국도를 따라 홍천에서 인제를 거쳐 속초까지 전쟁이든 선교든 각자의 일을 했다. 미 10군단은 서서히 본토로 귀환했고, 선교사는 외로운 사역을 계속하다가 1977년에 두촌면에서 홍천읍으로 가던 중 추돌사고로 사망했다. [12] 2025년, 한국의 한 아키비스트는 제이드 병원 영상을 보고 1950년대의 44번 국도 여기저기를 헤매며 오랫동안 가려졌던 사연에 접근한다. 흔한 영화 줄거리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이를 영화화한다면 제목은 <44번 국도에서 만나요> 정도가 좋을 것 같다. 흥행은 어렵겠지만. * <A>, <B>, <C>의 VOD와 각 장면에 대한 설명은 < 미국 NA II 기록영상컬렉션 (2) >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1. 이승구, 「말스베리 선교사와 김홍전 박사」, 초기 내한 선교사들에 대한 세미나7(2025. 3. 21, 한국개혁주의 연구소 주최, (주)유나이티드문화재단 후원) / Youtube 영상 2. 이종전, 「마두원의 해방 이후 사역에 관한 고찰」, 같은 세미나 / Youtube 영상 3. 강정식 시인, ⟪홍천신문⟫의 여러 기고글 4. “20. Kangwon-Do”, Unclassified Subject Files, ca. 1955 - 11/03/1961, RG 469, Entry P 321, Box 34, National Archives. p. 70. / 원문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사료철 코드: AUS014_81_00C0311) 5. “AFAK [Armed Forces Assistance to Korea] Project Completion Reports, FY 55: July 1954”, Project Files, 1954 - 1963, RG 338, Entry A-1 255, Box 2197, National Archives. p. 118, 123, 126. / 원문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사료철 코드: 사료계열AUS004_103) 6. “SGBN-4, History-4th Signal Battalion Corps, Nov. 1950”, Command Reports, 1949 - 1954, RG 407, Entry NM3 429, Box 4745, National Archives. p.13. / 원문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사료철 코드: 사료계열AUS037_01_10C1079) 7. “SGBN-4, History-4th Signal Battalion Corps, Aug. -Sep. 1950”, Command Reports, 1949 - 1954, RG 407, Entry NM3 429, Box 4745, National Archives. p.27. / 원문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사료철 코드: 사료계열AUS037_01_10C1077) *** [1] 두 번째 장소는 최소한의 정보도 식별되지 않는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중 어느 곳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2] 정영신(2021), 「미군의 대한원조 영상 속에서 재건되는 전후 주체: The Big Picture 시리즈의 ‘미군대한원조’와 ‘한국과 당신’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41, pp. 117-159. [3] 타이핑된 문서가 고품질의 OCR을 거치지 않은 상태라면 AI도 그리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자동 OCR 프로세싱의 결과를 토대로 AI가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내놓기는 어렵다. 또한 PDF는 의외로 구조적인 포맷이 아니므로 현재 AX(AI 전환) 분야의 큰 화두 중 하나는 AI를 위한 기존 문서의 전처리 및 구조화 기술 수준을 높이는 문제이다. [4] 6.25 전쟁의 결과 경기도와 강원도의 38선 이북 일부 지역이 우리의 영토가 됐는데, 이를 ‘수복지구’라고 한다.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는 전후 수복지구를 감안한 행정구역의 조정 사항이 포함됐다. [5] <초기 내한 선교사들에 대한 세미나7>(2025. 3. 21), 한국개혁주의 연구소 주최, (주)유나이티드문화재단 후원 [6] 선교회가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계속된 미국 내한 선교사들의 ‘트라이앵글 선교’, 즉 선교지역에 기지를 세운 후 이를 거점으로 교회-학교-병원을 함께 키워 연계하는 선교 방법론에 따른 것이다. 멀스배리 선교사도 해방 후에 부산, 강원 등지에서 끊임없이 교회, 학교, 병원을 건립하는 등 철저히 한국 내 전통적인 선교전략에 입각하여 활동을 전개했다. [7] 이종전, 앞의 세미나; (글쓴이 추가) 발표 자료에 해당 교회들의 분포가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44번 국도는 6.25 전쟁 후반기 미군의 거점들을 포함하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보급로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이를 따라 군집한 촌락이 주 선교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맞다. [8] 멀스배리 선교사는 이전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북한군 포로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했던 이력도 있고, 그의 강원도 선교 범위가 홍천과 인제 일대의 미 제10군단 작전 지역을 따라 형성됐으므로 지역 거주민들을 대변하여 미군의 각종 원조사업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 - 이종전 교수(앞의 세미나)의 견해를 중심으로 정리함. [9] 면허 의료진의 부족 및 민간 이양 후의 재정문제로 병원이 사실상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폐쇄됐다는 등의 상황은 「OEC 보고서」에서도 동일하게 언급됐다. 다만, 여기서 언급된 ‘제이드 병원’의 소재지 중에는 위 세미나 및 회고글에서 말하는 병원 중 홍천면 병원이 없고 대신 내평, 상남 등 다른 곳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두촌면 자은리 병원, 범위를 넓히면 속초 병원까지만 제이드 병원이고 다른 곳은 제이드 병원과 무관한 선교사 병원이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10] 이승구, 앞의 세미나; 발표에 참고했던 서적 중 김광섭, 전민수 공저, 『마두원 선교사: 한국음악의 아버지, 강원도 선교의 아버지』(영창서원, 2019)가 출처인 듯하다. [11] 이 의미로 흔히 쓰이는 알고리즘(algorism)은 수학의 계산법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문제 해결의 흐름 및 절차를 뜻하는 경우에는 비록 알고리즘이 통용된다고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알고리듬(algorithm)이 맞는 표현이다. [12] 이승구, 앞의 세미나에서 앞의 책 인용.
2021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인한 확진자와 중증환자의 급증으로 산산이 깨졌다. 작년 연말이 돼서야, 이젠 2020년 2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완전히 다른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눈으로 보이는 세상의 풍경이 그렇게 달라진 건 아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좀 덜 돌아다니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긴 하지만 어딜 가든 조금만 유명한 곳들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극장의 풍경은 다르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신작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잠시 활기를 띨 만하면 방역 조치가 강화되는 악순환이 2년째 반복되면서, 극장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다. 이렇게 적은 관객들로 극장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영화론자’나 ‘영화주의자’들이 극장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극장에서 영화보는 일을 찬미하지만,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극장의 죽음은 이젠 가까운 미래의 일이 되어버렸다. 관객이 사라진 조용하기도 스산하기도 한 극장에 갈 때마다 쓸쓸했다. 이 고요함 속에서 때론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은 늘 낮은 곳부터 고이므로 실질적 피해는 영화산업을 하부에서 받치고 있는 작은 회사들과 독립창작자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극장에 갈 수 없는 관객에게는 OTT가 대안일 수 있겠지만, 산업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도 거대 자본이 만들어낸 OTT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였을 것이다. 올해의 사사로운 리스트에는 가급적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들을 더 많이 포함시키고 싶었다. 올해에는 나의 2021년 사사로운 리스트 10편의 영화 중 클레이 자오의 < 노매드랜드 >에 대해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좋은 평론가들의 훌륭한 글에 더 보탤 말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노매드랜드>가 품고 있는 고통과 아름다움에 대해 몇 마디 더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극장에서 본 영화였고,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린 영화였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노매드’는 누구인가? 영화 <노매드랜드 Nomadland>의 제목은 떠돌이, 뜨내기, 부랑자, 정착하지 못하는 자, 유목민, 유랑자, 방랑자 등등의 뜻을 가진 ‘Nomad’와 땅 또는 지역이라는 뜻의 ‘Land’가 합쳐진 단어인데, 원작도 같은 제목이다. 그런데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쓴 이 원작 논픽션에는 부제가 달려 있다.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 그는 2014년 하퍼스 매거진에 ‘은퇴의 종말: 노동을 그만둔 삶을 감당할 수 없어질 때’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글을 읽고 감동 받은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노매드랜드」를 출간했다. 여기서 ‘노매드’는 ‘노매드 노동자’, 혹은 ‘워캠퍼(workapmer = work+camp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2007년과 2008년 사이 발생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 사회에 새롭게 등장했다. 주로 이 시기에 평생에 걸쳐 쌓아온 경제적 기반을 잃어버린 은퇴자들인데, 전통적인 형태의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담보대출금의 족쇄를 끊어버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밴과 RV, 트레일러를 집 삼아 좋은 날씨를 따라 단기 일자리에서 다른 단기 일자리로 이동하면서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계절에 맞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물론 이들이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만으로 떠밀리듯 이런 삶을 선택한 건 아니다. ‘노매드’로서의 삶은 은퇴 후의 경제적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고, 이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노매드’들끼리 적극적으로 연대하기도 한다. 저자 제시카는 2014년부터 무려 3년 동안 실제 RV에서 살면서 ‘노매드’들을 따라 약 2만 4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이 책을 완성했다. 클레이 자오의 영화와 그의 세계 제시카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원작에는 저자의 취재를 도와 노매드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린다 메이’라는 이름의 이 인물은 영화에도 같은 이름으로 직접 출연하는데, 영화에서도 남편을 잃고 고향을 떠난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을 노매드의 세계로 안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제작자이기도 한 배우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오래된 동료 제작자인 피터 스피어와 함께 이 책의 판권을 구입한 후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영화로 옮겼다면, 그 영화는 아마도 저자인 제시카나 린다 메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노매드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그럼으로써 미국 사회의 또 다른 현실을 들여다보는 정치적이고 시사적이며, 고발적인 영화, 차갑고 딱딱하고 쓸쓸한 톤의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러브콜을 흔쾌히 받아들인 클레이 자오는 뻔하고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클레이 자오는 원작의 세 번째 챕터에 나오는 미국의 오래된 기업의존형 도시인 엠파이어를 고향으로 둔 ‘펀’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만들어냄으로써, 원작이 그려낸 부조리한 미국 사회를, 꿈과 결핍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사회적 약자들이 살고 있는 클레이 자오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장기를 살려, 실제 ‘노매드’들을 영화에 출연시켜 자신의 삶에 대해 발언하게 함으로써, 원작의 르포르타주적인 면을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영화화했다. <노매드랜드>는 마치 실제 ‘노매드랜드’라는 현실 속에 전문배우인 프란시스 맥도먼드와 데이빗 스트라탄을 투입하여 영화를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감독과 훈련된 전문 배우들은 노매드들의 진짜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함께 들어주고, 카메라에 담긴 이들의 이야기는 <노매드랜드>의 서사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이 되는 것이다. 이런 영화만들기 방식은 캐나다 퀘백 지역을 대표하는 드니 코테 감독이 2009년 연출한 다큐멘터리이자 극영화인 <카르카세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에서 드니 코테는 수백 대의 자동차의 무덤에서 살아가는 한 노인의 집 마당에 4명의 다운증후군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투입하여 서사에 긴장을 만들어냄으로써 서사를 진행시켰다. 클레이 자오 감독은 이처럼 자기만의 영화만들기 방식을 통해 다루는 주제와 소재, 인물과 사회적 맥락의 역학 관계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한편, 어떤 영화에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이식하고, 자신만의 인장을 찍어왔다. 그의 경력과 전작을 살펴보면 그는 정말 '이상하고 특별한' 감독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았으면서도 미국적 가치와 정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으며, 그걸 섬세하게 영화에 담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특별한 재능은 <노매드랜드>에서 정점을 찍었다. 1982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15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사립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리고는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기 전 에밀리 디킨스의 모교였던 마운트 홀리오크 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도대체 왜 중국인들은 함께 모여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정치학을 시작했지만 그는 이 시기를 거치면서 미국 사회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장편 데뷔작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2015)와 두 번째 영화 < 로데오 카우보이 >(2017)를 연달아 만들었다. 배경, 인물, 주제, 배우, 연출방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연작이나 다름없는 이 두 영화에는 클레이 자오의 영화 세계를 떠받치는 주요 특징들이 모두 담겨 있다. 장편 데뷔작 <Songs My Brother Taught Me>는 - 국내 포털에 <내 형제가 가르쳐 준 노래>라는 제목으로 올라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Brother’는 ‘형제’가 아니라 ‘오빠’로 번역되는 것이 맞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정식으로 상영된 후에 포털에 제목이 올라갔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아마도 <오빠가 가르쳐준 노래>가 되었을 것이다. -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오빠와 여동생, 남매의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우스 다코타의 파인 릿지 인디언 보존지구에서 살고 있는 10대 소년 조니인데, 그는 졸업 후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떠나 LA에 가서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 여동생이다. 한편, 그로부터 2년 후 같은 지역에서 촬영된 두 번째 영화 <로데오 카우보이>의 주인공은 이제는 한물간 로데오를 사랑하는 브래디다. 그는 로데오 경기 중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후 가족을 위해 자신의 간절한 꿈을 포기하는데, 여기에도 핸디캡을 가진 여동생이 등장한다. 이 두 영화는 모두 가족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청년과 여동생으로 상징되는 가족, 그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무나도 미국적인 이 두 편의 영화 속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여동생은 마치 클레이 자오 감독처럼 느껴지는데, 감독은 이런 방식을 통해 그가 품었던 ‘가족주의’에 관한 질문과 그 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화에 담아낸다. 클레이 자오가 담아낸 노매드의 세계 클레이 자오가 <노매드랜드>에서 창조한 ‘펀’이라는 인물 역시 상실감과 결핍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인물이다. 펀은 2편의 전작에서 창조한 두 청년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남편을 잃은 ‘펀’은 마치 이들의 40년 또는 50년 후의 모습 같다. 꿈을 포기하고 가족을 선택한 이 두 청년들은 평생 결핍과 상실감은 숨겨둔 채 살다가, 가족마저 사라지면 그들의 어깨에는 허무함이 하나 더 얹어질 것이고, 결국 그들은 평생을 부유하듯 살게 될 것이다. 뗄 수 없는 결핍과 상실감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 이터널스 >에서도 변함없이 등장한다. 게이, 흑인, 애정 결핍, 치매, 청각 장애 등 너무 정치적이어서 오히려 재미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초능력과 함께 결핍을 부여받은 히어로들, 결국 지구인에 대한 애정으로 창조주를 배신한 그 히어로들은 영원히 상실감을 껴안고 살아갈 것이다. 클레이 자오의 세계에 존재하는 중요 인물들은 이런 상실감과 결핍으로 규정된다. 클레이 자오는 남편이 죽은 후 남편과 함께 살았던 하지만 이제 망해버린 엠파이어를 떠난 펀의 이야기, 그리고 펀이 길 위에서 만난 노매드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 두 개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그리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결핍과 상실감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들의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지는 도구로써, 미국 서부의 눈부시도록 쓸쓸하고 아름다운 실제 풍경을 영화 곳곳에 배치한다. 그는 이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약 5개월간 25명의 스텝과 함께 일곱 개 주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표현법 때문에 너무 낭만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가능한 비판이겠지만, 기억할 것은 아무리 고단한 인생이라도 삶의 숨통을 띄워주는 낭만의 순간들을 에너지원 삼아 한발 한발 전진한다는 것이고, 또한, 항상 슬픈 표정으로 있어야만 피해자가 아니며, 가난하다고 해서 늘 고통받고 힘든 표정으로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피해자에게는 피해자답기를 요구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한 사람답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그들이 진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의도치 않게 사회가 약자와 피해자들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약자성’ 또는 ‘피해자성’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펀의 내면은 이미 황폐할 대로 황폐해졌고, 그는 생계를 유지할 충분한 돈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편하게 정착해 살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고 다시 길 위에 선다. 이제 길 위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따라서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주어진 노동을 하고, 밴을 타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차박’을 한다고 해서 그의 삶이 진실하지 않거나, 그가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서부극으로써의 <노매드랜드> 영화를 보다가 이 영화의 장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건 ‘펀’의 여동생이 던진 말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언니를 방어해주기 위해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노매드들이 하는 일은 개척자들이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난 펀이 미국 전통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 말은 이 영화를 자연스럽게 서부극과 연결시킨다. 이미 클레이 자오는 서부극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두 번째 영화 <로데오 카우보이>가 공개된 후 언론은 이 영화를 ‘웨스턴’ 장르로 이해했고, 인디와이어는 이 영화에 대해 ‘한 중국 이민자 출신의 영화감독이 미국의 가장 오래된 장르(웨스턴)를 혁신적으로 바꾸어냈다’고 평했다. 실제로 클레이 자오 감독은 <노매드랜드>에서도 웨스턴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이터널스> 전까지 자신의 모든 영화를 촬영했던 촬영감독 조슈아 제임스 리처드와 함께 <노매드랜드>를 촬영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펀’이라는 인물은 결국 집을 떠나 황야로 걸어 들어가는 존 웨인의 현대적인 캐릭터이어야 하고, 존 포드의 고전 영화를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쇼트들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이렇게 해야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포획된 한 인물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서부극에 등장하는 서부개척자들 또는 영웅들과 노매드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서부극의 인물들은 도착과 정착을 원하지만, 노매드들은 떠남과 방랑을 원한다. 서부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집과 마을을 지을 장소를 향해 전진한다. 그들은 항상 수평선을 향해 걸어가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노매드랜드>의 노매드들은 정착했던 곳을 떠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은 수평선을 향해 가지만, 그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집은 길이다. ‘펀’이 분명하게 말했던대로 그들은 houseless지만 homeless는 아닌 것이다. 로드무비로써의 <노매드랜드> 그러므로 <노매드랜드>의 인물들은 정착하고 머물던 곳을 떠나 길 위에 선다는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서부극이라기보다 오히려 로드무비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서부극은 마지막에 갈등이 해결되고, 로드무비는 끝날 때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인물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런 면에서 태반의 로드무비는 성장영화와 동의어다. 하지만 <노매드랜드>는 이런 일반적인 로드무비와 다르다. <노매드랜드>의 펀은 길 위에 있지만, 목적이 없다. 그는 생존을 위해 길을 선택한 자다. 그의 목적은 방랑이다. 그래서 그는 정착을 두려워한다. 그는 영화 속에서 두 번씩이나 정착할 기회를 얻는다. 한번은 여동생에게서, 한번은 남자친구에게서, 그러나 그는 편안한 침대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선다. 모두가 이런 삶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사실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일부러 육체적 불편함을 선택하는 일은 그렇게 낯설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몬티 헬만의 마스터피스 < 자유의 이차선 >의 낭만주의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1968년 파격적인 결말을 담은 전설적인 로드무비 < 이지라이더 >가 세상에 나온 지 3년 만에 나온 이 영화는 건조하고 불친절하지만 도전적인 로드무비이면서 <이지라이더>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결말을 가진 영화다. 몬티 헬만의 최고 걸작이며, 영화사에서도 <분노의 총성>과 함께 종종 언급되는 영화다. 로드 무비의 장르적 컨벤션을 전복시키는 이 영화는 제대로 된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이 왜 차를 집처럼 여기면서,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끊임없이 자동차 경주를 하면서 앞으로만 달리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질주한다. 목적지가 동부인 것 같지만, 왜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다. <자유의 이차선>이 내재하고 있는 주제는 이렇게 <노매드랜드>의 주제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두 영화 모두 어딘가를 향해 달리는 차의 이미지로 끝이 난다. 물론 <자유의 이차선>이 한 발 더 나아가지만, 목적과 목적지 없이, 오직 차로 달리는 것만이 목표인 로드무비는 50년 후에 한 이방인 출신의 미국 감독의 손을 통해 환생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격변의 60년대를 방황하던 <자유의 이차선>의 이름 없는 젊은이들은 50년 후 <노매드랜드>에 이르러 경제적으로 파산한 ‘노매드’의 모습으로 다시 길 위에 선 것이다. “어디에나 틈은 있어. 빛은 그 틈을 통해 들어오지“ 제시카 부르너의 <노매드랜드>의 원작 첫 장에는 레너드 코먼의 문구가 써 있다. "어디에나 틈은 있어. 빛은 그 틈을 통해 들어오지." 클레이 자오의 <노매드랜드>는 원작을 클레오 자오의 방식으로 변주한 영화지만, 원작과 마찬가지로 ‘틈과 빛’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의 틈에 끼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집이 아닌 길을, 정착이 아닌 방랑을 선택한 자들에 관한 영화. 그‘노매드’들이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찾아가는 영화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건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따뜻하게 그려냈다거나, 눈부신 미국 서부의 풍경 때문이 아니다. 살아갈 이유가 사라져버린 희망 없는 인생도 살아낼 수 있는 세계, 동산과 부동산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시스템 밖에서도 가능한 삶이 존재하는 세계, 전통적인 사회적 통념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존재를 정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긍정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답고 쓸쓸한 세계에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돌아오고(오빠가 가르쳐 준 노래), 결국 가족을 위해 꿈을 포기하며(로데오 카우보이), 살기 위해 길 위에서 노동을 하고(노매드랜드), 각자 결핍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사랑 때문에 창조주(부모)의 명령을 거부한다.(이터널스). 이렇게 클레이 자오의 세계 속에는 꿈 같은 거 없이 상실감과 결핍 속에서 허덕이면서도 존엄한 인물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좁은 틈으로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바라보고 있다.
* 본 영화글은 한국영상자료원 강좌 <‘영화+글’ 시리즈 3: 영화 비평 쓰기> 과제 선정작입니다. 1. ‘아빠는 빅가든 하나 만들 거야’ 제이콥(스티븐 연)이 무성히 자란 풀 가운데 서서 그의 딸과 아들에게 선언하듯 외친다. 특히 ‘빅가든’이라는 단어를 뱉는 순간, 그의 유창한 발음 덕분에 이 장면은 오랫동안 관객의 기억에 남는다. 이 장면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 미나리 >에는 그가 유창한 영어 실력을 숨기려다 이내 관객들에게 들키고 마는 장면들이 몇몇 있다. 원어민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한국어는 자연스러운 편이다. 다만 한국어보다 완벽한 영어 발음으로 인해 그의 언어적 정체성이 탄로나는 것이다. 이처럼 <미나리>는 관객들에게 이질감을 발생시킨다.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연히 발생한 이러한 이질감은 <미나리>가 전하는 주제와도 분명히 닿아있다. <미나리>는 한국인 이민자 1세대의 미국 정착기이다. 이들의 서사는 동양인 이민자들이 겪은 설움으로, 또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했던 모든 이민자들의 고통으로 연이어 확장되며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민자들은 낯선 문화를 견디며 끊임없이 섞이는 과정을 겪어왔을 것이다. 언어는 그 중에서도 그들이 가장 먼저 부딪치는 벽이었을 테니, 어쩌면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잠시 마주하는 이질감은 이민자들이 항상 경험했던 당황스러운 순간의 단면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것을 극복해나간다. 화투나 한약처럼 ‘한국적인 것’이 등장하고, 처음에는 제이슨(앨런 김)이 이를 거부한다. 이내 순자(윤여정)의 설득이 이어지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식이다. 정이삭 감독은 이렇게 ‘낯선 땅’과 ‘한국적인 것’을 섞어나간다. <미나리>가 전하는 희망은 이 섞임의 과정 안에 있다. 하지만 이내 물음이 생긴다. 이 섞임의 과정 뒤에 ‘무엇이 소멸되고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이다. 연일 이어지는 해외 영화제 수상 소식은 이 영화가 전하는 희망에 특별한 울림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글은 <미나리>가 전하는 희망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은폐되는 희생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2. 모니카(한예리)가 달리는 차 안에서 운전 중인 남편에게 푸념하듯 말한다. ‘일요일엔 그냥 일하는 게 낫겠어’. 두 사람의 얼굴은 스크린에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제이콥의 운전하는 오른 손과 백미러에 비친 그의 두 눈, 그리고 보조석에 앉은 모니카의 뒷모습이 전부이다. 연이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제이슨과 순자의 모습이 보인다. 함께 동행한 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 장면은 제이슨의 시선임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짧은 장면의 시선과 영화 전체의 시선은 일치한다. <미나리>는 제이슨이 바라 본 그의 가족사(史)인 것이다. 차 안의 시선은 차창 밖으로 향한다. 미나리 가족의 조력자 폴(윌 패튼)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간다. 제이콥이 차를 세우고 폴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폴은 ‘십자가’가 자신의 교회라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오랜만에 교회에 다녀오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차 안에서 푸념을 하고 있는 모니카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여기서 또다시 물음이 생긴다. 미나리 가족에게 폴은 어떤 존재일까. 특히(어쩌면 감독의 눈이기도 한) 제이슨에게 폴은 어떤 존재로 비춰질까. 돌아온 주일에 제이콥과 모니카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 앤과 제이슨이 덩그러니 교회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다. 목사의 설교가 이어진다. 그의 뒤에는 십자가가 걸려있다. 앤마저 나가고 제이슨은 지루한 표정으로 혼자 남는다. 이어지는 장면은 폴이 자신의 교회인 십자가를 지고 마을을 지나는 장면이다. 파란색 하늘과 초록색 언덕이 정확히 1:1로 화면을 가르는 이 전경 샷은 유난히 수평적인 구도를 강조하고 있다. 교회버스 차창 너머로 폴을 발견한 제이슨이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내 제이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버스 안의 아이들이 폴을 조롱했기 때문이다. 감독이 폴에게 부여한 정체성은 한마디로 기독교인(Christian)이다. 그는 첫 등장부터 매번 ‘예수의 이름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폴(Paul)의 이름이 성경 속 인물인 바오로(Paul)와 같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주일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고행을 재현하는 그의 모습은 유럽의 끝까지 건너가며 선교에 헌신한 바오로 사도의 삶과 닮았다. 미국은 기독교(Protestant) 정신 위에 세워진 국가이다. 또한 미국은 다민족이 공생하는 다양성 국가이기도 하다. 아칸소 교회는 마을 주류의 공간이며, 동시에 이주민들을 수용하는 공존의 장이다. 모니카는 한인교회에서 상처받은 기억이 있는 듯하다. 병아리 감별소에서 만난 한국인 동료는 그녀에게 ‘여기까지 온 한인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귀띔해준다. 아칸소 교회는 미나리 가족을 열렬히 환영하지만 모니카는 결국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반면 폴은 마을에서 비주류에 속한다. 아이들이 교회버스에서 폴을 조롱하는 장면은 단번에 그가 처한 마을 내 위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은 정작 미나리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교회 아닌 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감독은 그를 통해 진정한 기독교인은 주일에만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변의 이웃에게 끊임없이 건너가는(Cross)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 ‘십자가 아저씨’ 폴은 감독이 내세우는 이상적인 인간상인 것이다. 3. 영화는 폴에 대해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 사는지, 가족은 있는지 관객들은 알 수 없다. 미나리 가족의 조력자로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함에도 그에 대한 소개를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이다. 그는 우연히 영화 안으로 투입되고선, 할 일을 마치고 홀연히 퇴장한다. 아마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폴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니라 영화 안에서 그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인 듯하다. 그는 감독의 말을 전달하는 일종의 영화적 장치인 셈이다. <미나리>에 대한 현지의 반응을 살펴보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영화’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진실을 들춰보면 이민자들의 정착 역사에 폴과 같은 이상적인 조력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종차별로 얼룩진 이방인 혐오의 역사가 현실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영화 안에서 폴은 가장 이질감이 느껴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인위적인 말과 행동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를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영화 초반부의 이질감의 본질이 ‘낯선 땅’과 ‘한국적인 것’ 사이의 마찰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감독은 의도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소멸시킨다. 한국에서 건너 온 친정 엄마 ‘순자’는 ‘한국적인 것’의 원천이다. 하지만 이내 중풍과 같은 병에 걸려 정신이 쇠약해진다. 순자는 천장에서 이상한 것을 본다. 뇌졸중 환자에게 발견되는 흔한 섬망 증상이다. 모니카는 이를 보고 다름 아닌 폴에게 퇴마 의식(Exorcism)을 부탁한다. 이 괴이한 의식은 감독이 폴에게 부여한 최종 임무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감독은 <미나리>를 통해 줄곧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것에 몸을 섞어라.’ 이를 위해 감독은 제이슨의 ‘미국인’ 친구 손에 화투장을 쥐어주고, ‘한인’들을 위해 재배한 제이콥의 채소들을 불태운다. 또 미국인들은 하나같이 미나리 가족에게 친절하지만, 한인들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와 같은 설정의 정점에 있는 존재가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 폴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민자들의 현실 속에 집집마다 헌신적으로 그들을 조력하는 폴과 같은 비주류 백인 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폴’의 존재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또한 이방인들이 낯선 땅에 섞이며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차별과 수모를 고작 ‘한인들 사이의 따돌림’ 정도로 축소시킨다. 감독은 무엇을 위해 이러한 허구적인 존재 ‘폴’을 창조하였을까. 그리고 감독이 설치한 이 영화적 장치는 무엇을 옹호하고 무엇을 배제시키는가. 어쩌면 뇌졸중에 걸린 순자가 천장에서 봤던 ‘헛것’은 감독이 창조한 허상 ‘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나리가 개봉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결국 <미나리>가 전하는 희망의 종착역은 ‘미국 땅에 단단히 뿌리내린 이방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독의 꿈은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영화 시상식에서 현실이 되었다. 영화의 밖에서 영화의 이데아(Idea)가 실현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 미국 내 동양인 혐오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유난히도 미국 땅에서 열렬한 환대를 받은 영화 <미나리>. 이 영화가 전하는 희망은 진정 보편적인가, 아니라면 그것은 시기상 ‘그들’이 간절히 듣고 싶었던 환상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