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시아
- 감독
- 샘 페킨파
- 제작년도
- 1974
- 출연
- 워렌 오즈, 이셀라 베가, 기그 영,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고(故) 이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보라>는 제조공장에서 현장보건관리를 받는 과정을 차근차근 기록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은 3개월에 한 번씩 보건관리를 받도록 되어 있다. 영화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관점을 따라가기보다는 다이렉트 시네마 스타일의 <병원>(1970), <내셔널 갤러리>(2014), <시티홀>(2020) 등을 만든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처럼 시스템이 굴러가는 과정을 일정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 인터뷰 장면이 서너 차례 등장하지만 제작진이 직접적으로 사건에 참여하거나 등장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상황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스타일적으로도 거의 모든 장면에서 롱쇼트나 풀쇼트를 유지한다. 시스템에 관계하는 인간과 비인간 요소 모두를 고르게 관찰하려는, 휴머니즘적이지 않은 태도는 역설적으로 노동 시스템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삶의 고통을 지근거리에서 감각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 거리는 피부 위의 보라색 멍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 기법적인 클로즈업은 사용되지 않지만 시스템 내부와 고통의 지속시간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비유적 혹은 사후적 클로즈업을 체험하게 된다. 시스템 관찰은 당연하게도 관리 및 운영 체제를 돌아가게 만드는 다양한 역할과 위치의 사람들을 포함한다. 노동자, 안전보건을 담당하는 회사 관리직과 사원, 산업의학 전문의와 연구자, 산업안전보건감독관, 노조활동가, 관련 부서 행정 공무원 등이 그들이다. 영화는 사이사이에 1980년대 초에 석면을 다루는 공장에서 단 2년 일했을 뿐인데도 그 여파로 평생 폐병을 앓고 있는 나이 든 노동자의 인터뷰와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주관한 한국타이어공장 역학조사 보고회를 삽입한다. 짧은 인터뷰에도 숨 쉬기 어려워하는 석면공장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 사망사례와 공장의 유해환경 간에는 연관성이 없다고 발표하는 보고회의 배치는 인과적이고 논리적인 설명 없이도 산업재해를 증명하고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석면처럼 오래전에는 그 유해성이 대중에게 밝혀지지 않거나 난청이나 근골격계 통증처럼 장기간에 걸쳐 유해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병증의 문제가 있다. 노동은 반복과 지속시간 속에 있는 것이기에 산업보건관리는 제조과정뿐 아니라 그의 일상과 일생을 심도 있게 추적관찰 해야 한다. 술과 담배는 강도 높은 긴 시간의 노동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은 그저 몇 개의 문답으로 끝난다. 보건관리 전문의가 작업현장에서 노동 패턴과 유해환경을 관찰하며 애쓰지만 하루 몇 시간 관찰로 문제를 충분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이강현 감독은 공장 전경을 보여줄 때는 롱쇼트로, 안전보건 감독관과 보건관리 전문의들이 노동자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는 풀쇼트나 미디엄 쇼트로 거리를 두고 다큐멘터리를 진행한다. 심지어 철골이 노출되어 있는 공장은 때로 기하학적으로 아름답게 포착되기도 한다. 거기에 고통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노동자들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 기법적인 클로즈업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청각적인 클로즈업이 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즉흥적으로 붐마이크와 휴대용 녹음기를 들이댔던 전형적인 미국 다이렉트 시네마의 장면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산업현장에서 대화를 나눌 때면 붐마이크가 한 프레임 안에 늘 등장하곤 한다. 등장인물들은 무선 마이크를 차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붐마이크를 사용해 상황의 대화를 포착한다. 그로 인해 어떤 상황에서도 갑자기 대화가 진행되어도 매우 선명하게 들린다. 공장의 소음들과 함께. 대부분의 경우 롱쇼트로 멀리서 포착하기 때문에 붐마이크가 보일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이를 애써 치우거나 지우지 않는다. 노동자들과 산업관리 감독관이 나누는 대화, 관리직원과 보건 전문의가 나누는 대화들은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드는 행위자들이지만 또한 그것에 제약받는 이들임을 알게 해준다. 청각적 클로즈업뿐 아니라 친밀성에 있어서도 영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클로즈업을 시도한다. 그것은 바로 경험에 대한 경험이다. 영화 중반 즈음에 노동자들이 보건관리를 위해 검사받는 자신들의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강당에서 함께 감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노동자들은 관객으로서 영화화된 자신의 신체를 경험한다. 여기서 관객은 이미 앞서 해당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프레임 안의 프레임으로서 반복해서 이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장면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관객으로 경험하는 것을 함께 보게 된다. 따라서 이 장면은 경험에 대한 경험이다. 영화 속 스크린에서 난청이 있는 노동자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의사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올 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의사가 묻자 나이든 노동자는 “으응, 소주 두 병 정도 먹지”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에서 당사자를 비롯해 다른 노동자들은 자지러지게 웃는다. 사실 정보 차원에서 이 장면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장면이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도 당사자에게도 반복이다. 관객은 이미 앞서 본 장면이고, 당사자들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이 행한 것을 스크린 상에서 재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어떤 면에서 모든 영화 상영은 곧 ‘재연(re-enactment)’이며, 더 중요하게는 자신들의 신체가 어떻게 영화의 질료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붐마이크의 지속적 등장이 영화 만들기라는 노동을 각인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여러 영화사의 중요한 운동들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신체와 일상을 영화의 질료로 내어준 오데사, 키이우, 하르키우, 모스크바의 시민들을 영화 생산과정에서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오프닝과 엔딩에 관객과 극장상영 과정 자체를 포함시킨 지가 베르토프의 < 카메라를 든 사나이 >(1929)의 실천 그리고 그러한 마르크스주의적 영화운동을 계승했던 제3 영화운동의 순간들 말이다. 특히 제3 영화 운동이 일어났던 1970년대 쿠바에서 훌리오 가르시아 에스피노자(Julio García Espinosa)는 ‘미완의 영화(imperfect cinema)’를 주장한 바 있다. 1960년대 탈식민적인 정치적 영화를 주장했던 남미의 영화감독과 이론가들은 형식적으로 보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제1 영화로, 미학적으로 혁신적이고 계급의식을 갖고 있지만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무감각했던 유럽 영화를 제2 영화로, 탈식민적인 계급의식을 갖고 미학적 혁신을 꿈꾸는 영화를 제3 영화로 규정한다. 제3 영화의 변증법적인 실천 개념 중 하나로 주장된 ‘미완의 영화’는 텍스트 내적으로 완결되지 않는 영화를 뜻한다. 형식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열려있는 영화는 언제나 상영과 그 이후의 토론을 통해 ‘매번’ 완성된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언제나 과정 중에 있다. 각기 다른 관객들은 동일한 영화를 매번 다르게 감상한다. 재연이 기원을 보존하려 하지만 동시에 반복을 통해 그 기원의 완벽한 보존이 불가능함을 제시하며 반복된 수행의 단독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미완의 영화’ 개념에서 영화 상영은 매순간 반복될 때마다 참여자들이 그 상영의 의미를 결정짓고 따라서 반복된 상영은 단독성을 갖고 개별적 사건으로 의미화 된다. 독립영화 혹은 작은 영화라는 개념으로 범주화되었던 한국의 정치적 다큐멘터리는 제3 영화의 선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제작되었던 정치적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해서 구성되었고, 관객 역시 노동자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었다. 대중을 타겟 관객으로 할 때조차도 일차적으로 영화를 시사하고 그 영화의 가치를 의미화하는 이들은 노동자 당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와 신체를 화면에서 보는 것이 익숙했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대부분 자신을 활동가의 위치에 놓았고, 자신들이 스크린에 옮긴 이미지의 주체를 영화생산자-관객의 위치에서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 윤리적 태도라 믿었다. <보라>에서 약 50초 동안 지속되는 이 롱테이크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이제는 노동 현장을 다룬 많은 다큐멘터리들 역시 노동자 공동체에게만 소구되는 것을 넘어 일반 대중으로 관객층을 확장하고자 한다. 다큐멘터리가 화이트박스라 불리는 미술관 같은 극장 외의 다른 플랫폼에서 상영되면서 새로운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다. 한편, 과거에 영상을 함께 공동제작하고 감상했던 노동자들의 공동체 혹은 노동조합은 예전만큼 공고하지 못하다. 그러한 가운데 삽입된 이 장면은 과거 노동 현장을 다룬 한국의 정치적 다큐멘터리들이 주요하게 상영되던 방식을 재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장면은 한국 노동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쓰기이자 관객층 변화에 대한 논평이 된다. 이 장면은 또한 개인적으로 고전 할리우드 영화인 < 설리반의 여행 >(프레스턴 스터지스, 1941)의 유명한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영화에 대한 영화인 <설리반의 여행>에서 유명한 코미디 영화감독인 존 설리반은 자신의 영화경력을 반성하며 가벼운 코미디보다는 현 시대를 보여주는 사실적인 민중의 모습을 그린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는 떠돌이로 위장해 가난을 체험하려 하지만 줄곧 실패한다. 그러다 신분증을 빼앗기고 싸움에 휘말려 법정에서 6년의 중노동을 구형받는다. 그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하층민이 된다. 설리반은 강제 수용소에서 죄수들을 위한 영화 상영회에 참석하고, 수감자들이 고된 노동 후 디즈니 만화 <장난기 많은 플루토>(1934)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깨달음을 얻은 설리반은 우여곡절 끝에 영화감독의 신분으로 돌아가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코미디를 만들며 꿈의 공장인 고전 할리우드 시스템을 재승인한다. 하지만 설리번은 <플루토>가 코미디라는 것 외에 중요한 것을 놓쳤다. 그 영화가 신체극이었다는 사실이다. 슬랩스틱의 과장된 그리고 때로는 폭력적인 신체 사용은 몸을 쓰는 노동자들이 그들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만든다. 그 영화는 누구에게 말 거는가? 이 질문은 노동 영화에서 늘 중요한 쟁점이었다. <보라>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하는 몸’을 검사받는 장면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장면은 <설리반의 여행>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며 즐거워하는 노동자들의 장면과 어떤 면에선 중첩된다.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충분히 즐거워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지루하고 음울할 것으로만 상정하는 것 역시 편견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과 고통을 담은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역시 편견이다. 노동하는 신체의 전시, ‘보라(고통의 색)’의 스펙터클은 그들 자신의 신체의 고통을 감각하게 하면서도 즐겁게 만든다. ‘보라’는 단순히 트라우마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있어 산업재해와 관련해 성찰하고 고민하고 행동해야할 지점이며 반복된 일상이다. 재연(재상영)을 통해 과거 사건의 당사자이자 목격자가 되는 노동자-관객, 그리고 그 목격자들을 바라보는 스크린 밖의 관객은 ‘보라’를 신체적으로 체험하는 동시에 그 이미지에 대해 성찰한다. 동문서답의 대답이 유발하는 웃음은 소음과 먼지, 유해화학물질 그리고 반복된 팔과 어깨의 사용으로 인한 병증과 고통, 즉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을 경유한다. <보라>는 50인 이상 규모의 공장 노동자들로 시작해, 네트워크 서버 관리자, 딸기 농장의 노동자들, 취미 사진촬영이 전문가 수준에 이른 이들까지 오늘날 자본주의 노동의 양태를 기록한다. 영화는 농부와 제조공장 노동자들의 육체노동을 전시하고 가상 디지털 네트워크 역시 노동자들의 밤샘 노동을 통해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디지털 정보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물질 노동이 비물질 노동을 떠받치고 있음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의 형태는 진화론적이거나 단절적인 방식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주류 산업이 서비스, 금융, 디지털 플랫폼 같은 비물질 노동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서 근대적 형태의 공장 노동, 농장 노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디지털 산업에서도 노동자 없이 컴퓨터와 가상시스템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근대적이고 전근대적인 노동의 형태들은 여전히 포스트포디즘 체제하에서도 공존한다. 그래서 전문적인 사진 취미처럼 놀이와 노동이 구분되지 않는 새로운 생산양식까지 치밀하게 최신의 변화를 포착하면서도, 감독은 여전히 지속되는 노동자들의 고통 받는 몸을 스크린에 가장 중요한 스펙터클로 표현한다. 이러한 강조가 과거의 생산양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오늘날 지워지고 비가시화 되고 있지만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주장함으로써 고유한 노동자의 몸을 역사 속에 기입하려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안간힘이다.”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에 짐을 실어야 하듯, 우리에겐 늘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 결핍이 필요하다 - 쇼펜하우어 SF의 변곡점 SF(Science Fiction) 영화가 ‘공상 과학 영화’로 번역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에스에프’라고 불리는 것 같다. 공상(空想)과 과학은 다른가? ‘공상 과학’의 어감은 과학이 첨예한 정치경제학의 산물임을 은폐하는 듯하다. 마치 ‘괴짜의 상상력’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상상력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자의 위치를 이동시킬 때 다르게 보이는 경험이 주는 자원. 이것이 상상력이다. ‘공상 과학’은 사회적 위치성(포지션)을 공상이라는 관념으로 대체한다. 수많은 SF 영화가 있지만 나는 우주(외계인)와 지구를 대립적으로 다루는 영화가 불편하다(솔직히 말해, ‘분개한다’). 대개의 SF에서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미국인은 외계인과 친하든, 그들을 연구하든, 전쟁을 수행하든 다양한 방식으로 지구를 대표한다. 실제로 미국은 지구를 ‘지킨다(지배한다)’. 그들은 세계의 경찰임을 자칭하면서 대외적 군사 개입을 “경찰 활동(police action)”이라며, ‘국내 치안’으로 생각한다. 한국전쟁 참전도 공식적으로 “경찰 활동”(트루먼 대통령)이었다. 전 세계가 미국의 땅이라는 발상이다. 자기만 ‘지구의 1등 시민’, ‘제1의 성’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9․11 이전까지 국방부가 없었다. 미국 국방부(DOD, Department of Defense)는 우리나라처럼 자국 방위를 위한 부처가 아니라 전 지구를 대상으로 업무를 보는 곳이다. 9․11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자기 땅이 침략당한(?) 사건이었다. 이후 미국은 다른 나라의 ‘진짜 국방부’에 해당하는 국토방위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신설했다. 디스트릭트 9(District 9) 외계인과 싸우는 지구의 대표가 ‘파키스탄인’이거나 ‘에콰도르인’인 영화가 있었던가. 닐 블롬캠프 감독의 < 디스트릭트 9(District 9 )>(2009년) 가 걸작인 이유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섹스나 감염 문제를 다룰 때 실험 대상은 백인 남성이 아니라 유색 인종이거나 여성임을 날카롭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나오지 않는, 실종된 미국 우주인을 그린 < 그래비티(Gravity) >는 <디스트릭트 9>과 함께 SF의 역사의 한 챕터에 등장할 만하다. 더불어, <그래비티>는 우주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비록 중국이지만’)아시아 국가가 나온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었다. 우울증과 중력 내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첫 영화는 < 이 투 마마(Y Tu Mama Tambien, And Your Mother Too) >(2001)였다. 황홀했다. 나는 한동안 디에고 루나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 서 헤어 나오지 못했으나 친구들과 신나게 영화 감상을 나누지는 못했다(‘미남’ 배우에 대한 자기 검열이 있었다). 이후 두 배우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알폰소 쿠아론의 필모그래피는 말할 것도 없다. 제작자로 참여한 < 비우티풀(Biutiful) >이나 <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 모두 굉장한 세계였고 <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 < 사랑해, 파리(Paris, Je T'Aime) >, <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에 대한 내 의견은 사족이리라. 알폰소 쿠아론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2014년 제86회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탔다. 나는 아직 <로마>(2018년)를 보지 못했고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지만, <그래비티>(2013년)는 그의 대표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내게는 ‘내 인생의 영화’다. 하지만 두 번 볼 용기는 없다. 치유 과정의 고통을 두 번 겪고 싶지는 않다. 직면하기 어려운 영화다. 이 영화를 ‘호러’로 분류하면, 미친 짓인가? 나는 무서웠다. <그래비티>는 물리학과 실존주의를 융합하고 그 두 세계를 모두 넘어서, 제3의 지식을 만들었다. 우울증에 관한 설명이 그것이다. 모든 질병이 그렇지만, 우울증은 묘사하기 매우 어려운 병이다.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질병이다 보니,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인간이 자연을 마구 파괴하다 보니, 이제 자연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물론 우울증은 고대부터 있었다). 대개의 질병은 ‘원인’은 다양하고, 증상은 비슷하다. 그래서 증상을 통해 병명을 진단할 수 있다. 우울증은 반대다. 원인은 ‘하나’인데, 증상은 다양하거나 극단적으로 반대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의사도, 환자도 진단이 어렵다. 불면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내내 자는 사람도 있다. 폭식증이 있는가 하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병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살아 있을 때 몸은 의지로 움직인다. 죽음이란 몸에서 의식이 빠져나간 이후를 말한다. ‘몸’만 남는 것이다(영어의 ‘body’는 본래 시체라는 뜻이다).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울증은 의지-의식-의욕, 이 세 가지 상실이 혼재된 상태인 듯하다. 한마디로 무기력의 연속이다. 그래서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몇 년간 계속되어 욕창으로 사망하는 이도 있고, 우울한 상태에서 극한의 자신과의 투쟁으로 생활을 이어나가는 이도 있으며, 심지어 우울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이나 공부, 글쓰기에 몰두하여 생산력이 높은 ‘고기능 우울증 환자’도 있다(헤밍웨이나 버지니아 울프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마지막의 경우 오래가지는 못한다. 대개 육십 세를 전후하여 자살한다. 더는 그럴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 때문이다. 이 힘은 모든 곳에 있다. 그래서 만유인력(萬有引力, universal gravitation)이라고 부른다. 그래비티, 중력(重力)은 말 그대로 무거운 힘이다. 물체의 무게는 이 힘을 가리킨다. 만유인력과 지구 자전에 따르는 원심력이 더해져, 우리는 지표면에 의지해 살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호소. “지구가 나를 붙잡지 않아요.” 중력의 법칙에서 배제된 이들이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다. 우울증의 고통에 비하면, ‘우울(憂鬱)’이라는 표현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우울증 환자의 삶은 격렬하다. 격렬한 고통이다. 현실의 중력이 너무 강하면 세상살이가 고달프다. 지표에 끌려다니며, 먹고 사느라 세속을 헤매게 된다. 우울증은 반대로, 몸에 중력이 작용하지 않아 지표면에서 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무중력 상태의 삶을 오래 견딜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우울증은 살기 싫은 병이기 때문에, 몸과 땅이 붙지 않고 서로 싸운다. 누가 이기겠는가. 중력이 버린 몸. 자살은 이 증상으로 인한 질병사일 뿐이다. 마흔에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삶을 지속하고 있는 내 친구는 말한다. “난 그때 죽었는데, 왜 살아 있는 거야? 그때 죽었는데, 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듯한 느낌 알아? 매일 내 장례식에 다녀온 기분 알아?” 우울증 환자가 24시간 아픈 것은 아니지만, 불행한 감정 상태에 ‘몰빵’되어 다른 인생을 상상하기 힘들다. 우울증에 걸린 그 순간 이후의 삶은 잉여, 살아 있으되 죽어 있는 시간, 비참하고 무의미한 고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약으로 고통을 완화할 수는 있다). 인생이라는 배가 돌아다니기(움직임) 위해서는, 일단 정박(碇泊)할 곳이 있어야 한다. 정박할 곳이 없으면 이동하지도 못한다. 정박하지 않은 배는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모든 것으로부터 상처받는다. 배는 서서히 부서지고 부식된다. 살려는 의지와 죽음의 욕망(‘충동’이 아니다, 죽을 만큼 아픈 것이다) 사이에서의 투병 생활은 매 순간 ‘선택’의 압력에 시달리는 상태다. 이때, 선택은 자유 의지로 하는 선택이 아니다. 기분이 날뛰며(업앤 다운이 반복) 기진맥진해지는 기분 장애(mood disorder)의 상황이다. 내가 아는 우울증 환자는 이 병으로 인해 그녀가 평생 노력해서 얻은 ‘좋은 직장’을 잃었다. ‘성취’가 끝나자마자 질병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행복한 기억이 없다. 가장 괴로운 시간은 아침이다.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떠날지, 한국을 떠날지, 지구를 떠날지. 지구를 떠난다면 갈 곳은, 단 한 곳 우주이다. 그녀는 매번 ‘선택’에 대해 조언을 구하지만, “조언해 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한없이 응대할 사람은 없다. 그녀가 요구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중력이 없어서 생존 가능한 공간, 우주 우주는 무중력 상태이므로 지구와 달리 우울증 환자가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우주가 배경인 <그래비티>에서 우울증 환자는 지구에서와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중력이지만, 첨단 장비가 끊어진 중력과 자신을 연결해주니 발버둥 치지 않아도 생존 가능하다. 지구에서 이 연결은 사람과 사랑이지만, 구하기 쉽지 않은 끈이다. 우주의 무중력은 지구의 중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출발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울은 같지 않다. 두 가지로 구별해야 하는데, 나누지 않아서 문제다. 인간은 누구나 슬프고 기쁘고 우울하고 들떠 있다. 다양한 기분 상대를 산다. 그리고 누구나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약간 우울한 사회, 고뇌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反사회적 인간의 조증(躁症)이 판치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글의 서두에 인용한 대로, 안정된 삶은 어느 정도의 ‘마음의 짐’을 진 채 사는 것이다. 우울, 걱정, 슬픔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타인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이다. 이런 우울한 상태는 인간의 조건이다. 하지만 질병으로서 우울증은 이와 크게 다르다. 정신 질환(mental disease)과 신체적 질병(physical disease)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사회는 유독 ‘정신병자’와 ‘암’ 환자를 다르게 생각한다. 둘 다, 고통받는 몸(body in pain)인데도 말이다. 정신 질환은 가볍게 취급되거나(“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반대로 통제 불가능한 공포의 대상(“정신병자가 탈출했다!”)이라는 식의 극단적 인식을 오간다.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은 아이를 잃은 전문직 여성이다.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 누가 우울하지 않겠는가. 비통하지 않겠는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애도의 시간은 지극히 정상이다. 반면, 이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면, 의학의 도움이 필요한 질병으로 진전될 수 있다. (일견 해피엔딩으로 보이지만)이 영화에서 그녀가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지구에서는 땅을 디딜 수 없었던 그녀가 땅을 밟을 필요가 없는 우주를 경험함으로써,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여행(journey)하는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우리가 우울할 때 혹은 우울증을 앓는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두 경우 모두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집에서, 침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일이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동과 운동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다른데, 움직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우주, 가장 먼 이동이다. ‘우울과 중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만한 통찰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시리아나(Syriana) 이 영화에서 어떻게 조지 클루니를 빼놓을 수 있을까. < 시리아나(Syriana) >, < 마이클 클레이튼(Michael Clayton) >, < 인 디 에어(Up in the air) >를 보길 권한다. 특히 <시리아나>를 강력히 추천한다. 이 영화들에서 그는 반미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이며, 인생의 바닥을 수십 번 치고도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매력적인 루저이며, 패배를 반복하고도 변화할 줄 아는 인간을 연기한다.
지난 8월 ‘영화와 공간: 홍콩’ 프로그램이 총 9,21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리에 마쳤다. ‘성공’이라는 말을 부연하기 위해 숫자를 동원해보면, 본 프로그램의 경우 317석의 시네마테크KOFA 1관에서 총 33회 상영했으니 평균 좌석점유율은 86.2%라 할 수 있다. 지난 주말(9월 3주)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한 작품은 < 살인자의 기억법 >이며, 주말(금~일) 평균 좌석점유율은 21.8%이다. 두 숫자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 이 글은 이 ‘성공’ 뒤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이자 때로는 가혹하기까지 한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램 담당자에 대한 이야기다. 2015년부터 특정 도시를 다룬 영화를 한데 모은 ‘영화와 공간’ 시리즈를 매 여름 선보이고 있는데, 우디 앨런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뉴욕 시리즈에 이어 올해 홍콩을 다룬 본 프로그램은 시네마테크KOFA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딱 떨어지는 주제에 유명 감독의 대표작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의 기획과 수급이 일견 수월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고전이라 칭하기에는 지나치게 젊고, 신작이라기에는 이제는 나이 들어버린 8, 90년대 작품이 주를 이루는 본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것은 그리 쉬운 편에 속하지 않는다. 하물며 한국영화 산업만큼 부침이 심했던 홍콩영화계는 저작권자를 찾거나 상영본을 수급하는 측면에서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와 공간’을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홍콩은 항상 마음속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도시였지만,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이런 고민 중에, 2016년 여름 한 통의 전화가 운명처럼 걸려왔다. 시작은 이러했다.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홍콩특별행정구는 2017년에 글로벌 문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홍콩영화 세계 순회 상영을 계획하고 있었다. 본 특별 상영회의 실무를 맡은 홍콩국제영화제의 로저 가르시아 집행위원장은 당시 한국의 로컬 파트너를 찾고 있었고, 나는 ‘영화와 공간: 마틴 스콜세지 인 뉴욕’의 준비를 막 끝내고 내년 기획을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이 얼마나 운명적인 만남인가? 어느 PD님의 소개로 부천에서 만난 우리 둘은 서로의 프로그램이 잘 맞아떨어진다며 기뻐하며, 자세한 건 이메일로 연락하자는 인사와 함께 흡족하게 미팅을 마치고 헤어졌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게 웬 행운이냐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이 운명의 이면에 그만큼의 고난이 함께 한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다른 기관과 공동으로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낸다는 것은 같은 작업을 혼자 단독으로 하는 것에 비해 몇 배의 수고스러움과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번 ‘영화와 공간: 홍콩’은 특히 이 사실을 더욱 혹독히 깨닫는 과정이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넋두리하자면 이렇다. <메이드 인 홍콩> DCP 수급으로 다급했던 26일의 흔적 첫째, 하루에도 수십 통씩 주고받는 이메일 폭탄이다. 2016년 겨울로 접어들면서 ‘영화와 공간: 홍콩’의 기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가르시아 집행위원장과 서로 적당한 작품을 추천하며 상영작 선정 작업을 마무리할 때쯤, 그와 내 메일에는 점점 한 명씩 참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프로젝트는 홍콩과 중국 내 4개 도시를 제외하고도 전 세계 10개 도시가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당연히 실무를 맡은 홍콩국제영화제 위원회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감당하기 위해 집행위원장 외 기획은 물론 예산, 홍보, 상영본 운송 등을 담당하는 여러 명의 스태프가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영화와 공간’ 프로그램을 맡은 한국영상자료원의 담당자는 단 한 명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더 자세하게 소개할 일이 있겠지만,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램의 업무 프로세스는 영화제 프로그램팀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영화제가 기획부터 프린트 수급까지 단계별로 세분되어 분업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반면, 이곳은 한 명의 담당자가 하나의 프로그램 전체를 관할하는 개별 책임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A라는 프로그램을 맡은 담당자는 A의 기획부터 상영작 선정은 물론 배급사에 연락해 상영료를 지급하고 상영본을 받는 작업까지 모두 담당한다. 그것뿐이랴. 시놉시스 정리부터 포스터와 리플릿을 어떻게 만들지, 한국어 자막을 대여할지 제작해야 할지를 확인하고, 개막식과 같은 부대 행사라도 진행하게 되면 게스트 섭외부터 심지어 개막식 사회자 대본 작성, 리셉션의 음식 메뉴까지 정해야 하는, 말 그대로 해당 프로그램의 A부터 Z까지 모든 과정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홍콩국제영화제의 Tiffany, Pearl, Lemon, Shing, Nichol 등 몇 명의 담당자가 돌아가며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로 자신의 업무를 전달하고, 확인을 요청하면 우리 쪽은 담당자 혼자 그 모든 것을 결정하고 회신하고, 기안을 올리는 데 허덕여야 했다. 더군다나 본 프로그램 준비가 한창이던 올해 초는 ‘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를 마감하고,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6년 한국영화’와 ‘로버트 알트만 X 폴 토마스 앤더슨’을 막 시작할 때라 아침에 출근해서 쏟아지는 메일에 회신을 보내고, 수십 개의 기안을 올려 업무를 처리한 후 퇴근해도 다음 날 출근하면 다시 산더미처럼 똑같은 업무가 쌓이는 <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해롤드 래미스, 1993)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라 업무 강도가 평소 몇 배로 높았다. 둘째, 고난의 절정은 프린트 수급이었다. 앞서 말했듯 ‘영화와 공간: 홍콩’은 전 세계 10개 도시 순회 상영회의 일부이다 보니 몇몇 작품의 상영본은 다른 도시에서 상영한 직후 서울로 들어오기도 하고, 서울 상영 후 다음 도시로 바로 출고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말인즉슨 프린트 수급 일정이 매우 빠듯함을 의미한다. 통상 상영본은 최소 2주 전에는 입고되어 검수 과정을 거친 후 상영이 되는데, 이번 프로그램의 경우 상영 바로 며칠 전에 상영본이 입고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기획 초반부터 < 순류역류 >(서극, 2000)의 경우 디지털 복원은커녕 홍콩 내에서도 상영 가능한 필름 프린트를 찾기 어려웠다. 이곳저곳 수소문 끝에 파리의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서 불어 자막본 35mm 프린트를 보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 프린트 대여 협조를 요청하자 프린트 손상을 문제로 두 가지를 조건으로 대여를 허락했다. 하나는 상영을 단 1회로 제한하며, 나머지 하나는 상영 전 프린트 체킹 폼을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실제 프린트 검수를 담당하는 영사실에 이 사실을 알리자 난색을 표했다. 유럽의 경우 프린트 체킹을 사전에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프린트의 스크래치와 손상 정도를 일일이 기록함으로써 상영 전후의 손상 여부를 파악하고, 책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프레임 하나하나를 꼼꼼히 봐야 하는 이 과정은 보통은 몇 시간에서 프린트 손상이 심한 경우 며칠이 걸리는 수도 있는 작업이라 영사실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최소한 상영 일주일 전에는 프린트를 받아야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영사실의 당부에 우리보다 앞서 상영하는 베를린 측에 상영 직후 바로 프린트를 서울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기다리던 중, 7월 20일 페덱스로부터 드디어 연락이 왔다. <순류역류> 35mm 프린트가 인천 세관에 입고되었으며, 통관 심사에 걸려 있으니 필요 서류를 제출하라는 메일이었다. 해외에서 상영본을 수급할 때 인천 세관의 통관 심사에 걸리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다. 이럴 경우 상영 후 원 귀속자에게 재반출됨을 증명하는 서류와 국내 통관을 위한 담보 설정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서류를 모두 준비해 보내자 통관 절차를 시작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의 다른 물건 중 하나의 관세 납부가 완료되지 않았으니 이 부분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페덱스로부터 받았다. 확인해 보니 다른 부서 담당자가 최근 해외에서 수집한 프린트가 있었는데, 아직 관세 납부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이를 넘겼다. 통관은 보통 하루 정도 걸리기에 7월 21일에 통관이 완료되리라 예상하고, 주말인 22일과 23일에 영사실에서 프린트 검수를 할 수 있도록 페덱스에 토요일(22일) 특송을 요청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프린트가 일찍 도착해 다행(상영은 7월 29일이었다)이라고 생각하며 주말을 보낸 뒤 24일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영사실 담당자에게 프린트 상태를 물었다. 그런데 맙소사! 토요일에 프린트가 배송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잔뜩 화가 나서 페덱스에 전화를 걸었다. 왜 특급 배송이 이루어지지 않았냐는 항의에 페덱스의 답변을 듣고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부서의 관세 미납 탓에 <순류역류> 프린트가 아직 세관에 억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해 통관 업무를 처리해 왔지만, 같은 사업자의 경우 한 건의 물건이라도 관세가 미납된 상태라면 나머지 다른 물건 역시 서로 상관관계가 없어도 억류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부랴부랴 해당 담당자에게 24일 중으로 관세를 납부해달라고 다시 한번 요청하고, 페덱스에 사정 설명을 했다. 다행히 25일 화요일 오후에 <순류역류> 프린트가 극적으로 상암동에 도착해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다음 날 더 큰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이드 인 홍콩> 외장하드만 빈 채 도착한 패키지 최대 위기는 ‘영화와 공간: 홍콩’의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26일에 터졌다. 큰 규모의 부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같은 부서는 물론 다른 부서 직원들까지 많은 도움을 주지만, 개막식 당일은 홍보물 데코레이션부터 리셉션 세팅, 개막식 리허설까지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오전부터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오후, 영사실로부터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오전에 도착한 < 메이드 인 홍콩 >(프루트 첸, 1997) DCP 외장 하드 박스를 열었는데, 하드 디스크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또 웬 날벼락인가. 영사실로 뛰어 가보니 박스 안에는 하드 디스크 케이스부터 연결 잭까지 모든 것이 다 완벽히 들어 있지만, 정작 하드만 보이지 않았다. <메이드 인 홍콩> 상영은 약 26시간 후인 다음 날 오후 7시였다. 홍콩국제영화제의 필름 트래픽 담당자인 Shing에게 바로 메일을 썼다. 그 역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야 누가 이 황당한 상황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마치 메신저를 하듯 실시간으로 몇 번의 메일이 오가다 안 되겠다 싶어 하드만 쏙 빠져 있는 박스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Shing은 나보다 더 놀란 듯했다. 서울과 홍콩, 그리고 이전 상영 기관이었던 베를린, DCP 원본을 보유하고 있는 우디네 담당자들이 모두 참조된 상태에서 사태 파악하기 위해 서로 메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상황인즉슨 베를린에서 상영을 하기 위해 DCP 하드를 영사기에 삽입해 파일을 복사한 뒤 하드를 빼지 않은 채 박스만 패킹해서 서울로 보낸 것이다. 당시 내가 갖고 있던 백업 상영본으로는 DVD도 아닌 한글 자막 제작을 위해 모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초저화질 파일밖에 없었다. 만약 DCP를 받지 못한다면 다음 날 상영은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Shing은 우디네 측에 DCP 원본 파일을 이메일로 전송해달라고 요청했지만, 200기가가 넘는 용량의 파일이 정상적으로 들어오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마침 개막식 참석을 위해 극장에 도착한 가르시아 집행위원장도 이 황당한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망연자실한 우리 둘과 달리 Shing은 재빨리 또 다른 대안을 제안했다. 홍콩에서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DCP를 오늘 밤 항공 특송으로 발송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같은 아시아권이라지만, 반나절 만에 패키지를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세관에 걸리지 말라는 보장도 없었다. 눈앞은 깜깜했지만, 준비된 행사는 치러야 했기에 7시에 예정대로 개막식을 시작했다. 마치 기품 있는 실내악이 흘러나오는 파티장에서 긴박한 스코어가 중첩되어 흐르는 스릴러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이제 만 하루도 남지 않았다. 개막작 < 매드 월드 >(웡 춘, 2016)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뒷마무리를 하고 파김치가 되어 사무실로 돌아오자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메일을 여니 정말로 이탈리아로부터 200기가짜리 대용량 파일 링크가 도착해 있었다. 우선 전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이것저것 서류 정리를 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파일 전송 상태를 확인해보니 겨우 3%밖에 되지 않았다. 새벽 3시쯤 되었을 때 링크로 파일을 받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날 밤 홍콩에서 출발한 또 다른 DCP가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오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더는 앉아 있을 기력도 없어 컴퓨터를 켜 둔 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퇴근했다.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DHL 운송 내역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홍콩에서 출발한 DCP가 정말로 인천에 도착해 있는 것이 아닌가? 희미하게 희망이 보였다. DHL 통관팀에 연락해 혹시라도 세관 통관에 걸리게 되면 우선 물건부터 받은 후 통관 절차를 신청할 수 있도록 미리 협조를 구한 뒤 출근했다. 출근 후, 회의를 다녀오니 기적처럼 내 책상 위에 “EXPRESS 12:00”라고 크게 쓰여 있는 노란 DHL 패키지가 놓여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그 날 오후 7시, 4K 디지털 복원된 <메이드 인 홍콩>이 시네마테크KOFA에서 무사히 상영되었다. 기적과 감동의 “EXPRESS 12:00” 지금까지 ‘영화와 공간: 홍콩’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시네마테크KOFA의 프로그램 기획부터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기까지의 과정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았다. 이토록 길게 넋두리를 한 이유는 어쩌면 어떤 관객은 스크린 뒤에 보이지 않는 이 과정을 궁금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그램 담당자 역시 남모를 고충이 있으니 조금은 잘 봐달라는 애교 섞인 투정이라고 바라봐주길 바라서이다. 이번 ‘영화와 공간: 홍콩’도 담당자인 나 역시 꼭 보고 싶은 영화도 많았고 더 나은 매체로도 상영하고 싶었지만, 여러 현실적인 여건상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좌절감이 들 때도 있고, 이게 뭐라고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구는 걸까라며 스스로를 힐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 역시 시네마테크KOFA를 찾는 관객처럼 영화를 사랑했기에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인지라 그간 쌓였던 피로와 열패감은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순간 사그라든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앳된 얼굴의 장국영을 마주할 때 극장 안에 흐르던 그리움의 공기와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꽉 찬 객석을 바라볼 때, 그리고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램 덕분에 이번 여름이 행복했다는 관객의 짧은 후기를 확인하는 순간, 그래도 이 일을 선택하길 잘 했다는 보람을 느끼고, 다음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