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 감독
- 이신혜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문재경, 김소숙
<미망>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잘 가,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난다면 어떤 춤을 추면서 너와 나는 둥글어질까, 여름의 장례식, 우리는 오래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우리는 오렌지의 영혼을 팔에 안으며 혼자서 둥글어졌다 잘 가, 원점으로 어두워가던 너의 발이여, 오렌지빛의 소풍이여 *주1 - 허수경, 「오렌지」 이렇게 한번 주장해보고 싶어진다. 영화는 군중의 걸음걸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믿어보고 싶다. 영화는 단지 걷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충분히 매혹할 수 있다고. 요약해보자면 < 미망 >(김태양, 2023)은 헤어짐과 장례의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온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나란히 걷는 것을 기록한 영화이다. 이들은 낡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정육면체를 쌓아 올리는, 붕괴와 재건의 행위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서울의 복잡한 풍경 사이를 가로지른다. <미망>을 독해하는 첫 번째 방법(이자 대부분의 감상)은, 영화가 결국 인물들의 관계를 매듭짓지 않음으로써 생성되는 ‘서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분절된 3편의 이야기와, 각 이야기의 틈에 단단하게 박혀있는 ‘단절’과 ‘공백’이라는 영화적・실제적 시간 *주2 이 이 영화의 고유한 시적 리듬감과 정감을 형성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에 넘실대는 서정을 곱씹어보는 동시에, 엔딩 시퀀스에서 화면 밖으로 서둘러 사라지며 종적을 감춘 남자( 하성국 )의 행방을 계속해서 쫓아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김태양 감독에 따르면, 그의 차기작 <서울 이야기>에는 <미망>의 두 주인공 하성국, 이명하 배우가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인용한 시구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난다면’이 어김없이 실행되는 곳, 이야기의 지속을 굳게 믿으면서 인물들이 담담하게 작별하고 외화면으로 탈주하는 곳, 이곳은 김태양 감독의 프레임이자 그가 ‘멋진 도시’ *주3 로 명명한 서울의 영화적 설계도이다. 그렇다면 <미망>을 이해하는 두 번째 방식은 감독이 서울을 매핑하는 방식을 가늠해 보는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은 무엇이며 어디일까. 오류로부터 산출된 서울이라는 픽션 “잘못 내렸어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을지로3가역을 비추는 영화의 첫 숏 안으로 사람들이 마치 쏟아지듯 들어온다. 남자는 아마도 만나기로 약속된 사람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잘못 내렸음을 알린다. 공사 현장과 초록색 잎사귀가 무성하게 달린 나무 앞을 지나며, 남자는 ‘여기가 이렇게 연결되네요’라고 말한다. 그의 발걸음은 어떤 연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다음 숏에서 남자는 과거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이명하)와 맞닥뜨린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대화하면서 영화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즈마 히로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실수로 내리지 말아야 할 곳에 내린 남자는 생경한 장소로 잘못 배송됨으로써 우연성이 내재된 세계로 뛰어든 오배(誤配)의 존재이다. 예정된 곳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어야만 시작되는 이야기. <미망>은 남자의 잘못 내린 행위, 다시 말해 오류로 산출된 행위들로 조합된 서울의 픽션이다. 물론, 우연성에 기대어 영화를 읽는 것은 유별난 발견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상술했던 마지막 시퀀스를 다시 떠올려보자.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창밖으로 뿌옇게 보이는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광화문 광장으로 보이는 곳을 버스가 지나치자 황급히 하차벨을 누르고 프레임의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프레임의 왼쪽으로부터 걸어 들어오며 출현했던 오프닝 숏을 환기하는 이 남자의 몸짓은 여자와 헤어진 후 또다시 잘못 내리기를 결심한 것 같은, 즉 불확실성의 세계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행위에 가까워 보인다. 배역의 이름과 플래시백이 부재하는 이 영화에서, 불릴 이름과 기억이 없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신체로 오류를 기꺼이 실천하는 것이다. 적어도 <미망>에서 남자가 잘못 내린다는 것, 그리고 어딘지 모르겠는 미로 같은 서울의 한복판을 걷는다는 것은 끝을 맺지 못했던 관계의 대상과 다시 조우하는 행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망>은 안타까움의 서정과 서울이라는 복잡한 노선도를 해체하며 재회를 향하는 반복적인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공존하는 영화이다. <미망> 중 남자와 여자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남자의 발걸음이 길 잃은 사람의 것이라면, 여자의 발걸음은 죽음을 겪고 다시 생의 공간으로 걸어 나온 사람의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고백하는 여자는, 그 후 연락처를 바꿨음을 말하며 남자에게 ‘나 변한 것 없어?’라고 물어본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녀는 ‘서울극장’이라는 장소의 죽음을 선언하며,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함께 알던 예전 사람의 넋을 기리는 장례식에서 남자와 재회한 후, 광화문 일대를 다시 걷는다. 여자에게 죽음은 지난 관계를 매듭지으면서 새로운 관계로 연결되는 선험적인 사건이며, 그런 그녀가 걷는 걸음이란 장례의 시간으로부터 나와 생의 공간으로 복귀하여, 살아있는 사람과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빚어낸다. 여자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옛 친구에게 ‘난 죽을까봐 운전 못 하겠어’라고 말한다. 운전하지 않는 그녀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행위이다. 말하자면 <미망>이 그려내고 있는 서울의 거리란 길 잃은 사람과 삶으로 복귀한, (이미지적으로) 환생한 사람이 멈추지 않고 각자의 궤도에 따라 걸으면서 서로의 간격을 좁혀보고자 하는 몸짓들이 조우하는 잠재적인 시공간이다. 영화는 촘촘하게 조립된 서울의 노선도를 해체하고, 출발시간과 도착시간, 환승 방법들이 지겹도록 나열된 정합적인 도시인 서울을 탈영토화시킨다. 세 번째 이야기 중간 즈음, 택시 안에서 이뤄지는 세 사람의 대화 사이에 초월적 시선으로 서울의 저녁 풍경을 담은 익스트림 롱숏이 등장한다. 이 숏은 다시 한 번 나를 부추긴다. 미세혈관처럼 배치된 긴 도로와 그 위를 채우고 있는 차량들, 그리고 그 안에 있을 사람들. 어쩌면 이들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길 잃은 사람들일 뿐이며, 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르는 우연과 잠재성으로 가득 찬 도시, 서울의 이름 없는 시민들은 아닐까. 그러니까 서울은 순수한 강렬함을 가진 미세한 입자들이 끊임없이 탈주하는 선들로 구성된 기관 없는 신체 *주4 인 것은 아닐까. 이 주장을 견고히 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걷던 길 위로, 배우와 카메라 사이를 개의치 않고 침입하여 활보하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영화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한다. 아니,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고 있다고 해야겠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유기체처럼 조직된 노선도를 벗어나 구태여 길을 잃고, 살아있음을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감각하는 곳. 김태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망>은 기관 없는 신체, 서울의 픽션을 발명한다. 20세기의 결말 없는 영화와 이름 없는 이들의 발걸음을 호명하면서 두 번째 이야기.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간 어둠 속 스크린에선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 의 < 미망인 >(1955)이 상영되고 있다. 여자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극장 문을 열고 나서면 1955년과 같은 거리를 걷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가 하면, 여자를 따라나선 남자( 박봉준 )는 피맛골의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서울의 뒷골목에 무수히 쌓여온,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상기시킨다. <미망>은 결말이 유실된 20세기의 영화와, 서울의 길거리를 채웠던 사람들의 무한한 발걸음을 호명하면서, 서울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픽션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걸었던 자리를 다시 걸어보는 신체의 반복적 행위가 역사를 환기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이야기에서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졌던 대낮의 빗방울이, 남자에게는 여자와 헤어진 후 홀로 골목길을 걷던 밤이 되어서야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장면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우던 골목길로 돌아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장면과 대구를 이룬다. 헤어진 존재의 행위를 복각해보면서 지금은 내 옆에 없는 상대방의 마음을 그림자처럼 어렴풋하게나마 추적하는 것. 이것은 <미망>이 서정의 회로를 만드는 방식이자, 신체의 재연을 통해 발현되는 픽션의 역량을 믿어보고 싶게 만든다. <미망> 중 골목의 여자, 그를 따라나선 또 다른 남자 올해 2월 21일부터 3월 1일까지 진행되었던 ⟪ 각각의 영화사 ⟫는 한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맺는 연속적인 관계를 되짚어보기 위해 마련된 기획전이다. <미망>은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1955)과 더불어 강대진 감독의 < 마부 >(1961), 이용민 감독의 < 서울의 휴일 >(1956)과 한데 묶였다. 나는 이 영화들을 하나의 이미지 집적체로 상정하기 위해, <미망>이 사용한 방식, 즉 행위의 반복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을 마치 하나의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둥근 나선의 형상으로 모아보는 것. 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은 영화가 이미 성취한 바 있다. 그 중,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작품 중 <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의 한 시퀀스를 언급하고 싶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식사 장면이 그것이다. 분미와 젠, 통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있을 때 19년 전 죽었던 분미의 아내 후아이의 유령이 나타난다. 늙지 않은 모습 그대로. 이어서, 13년 전 가출했던 아들 분쏭은 원숭이 유령의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이 시퀀스에서 산자와 망자, 인간과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는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재현 불가능성을 초월함으로써 영화의 한계를 극복한 <엉클 분미>는 한자리에 있을 수 없는 존재들과 그들이 머무는 불가능한 시공간을 태국의 숲으로 한 데 불러 모아 하나의 숏 안에 현시한다.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경탄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안부를 묻는다. <엉클 분미> 중 (사진: " Loong Boonmee raleuk chat ", IMDb) <미망>과 함께 상영된 세 한국 고전을 한 데 묶는 가장 명료한 방법은 사람들과 자동차, 대중교통과 마차가 복잡하게 교차되는 서울의 광장이라는 시공간과 그곳을 누비고 있는 인물들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사건’ 후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세 고전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형상을 포착한다. 그리고 <미망인>, <마부>, <서울의 휴일> 모두 죽음과 죽음이 촉발하는 인물, 그리고 서사의 변화를 그린다는 점에서 <미망>의 여자와 겹쳐지며 네 영화는 성글게 연결된다. <미망인>은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욕망을 대담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마부>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예컨대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의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을 떠올리게 하면서, 한국전쟁 후 한 가족이 겪는 질곡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부>에서 첫째 딸, 옥례( 조미령 )가 죽은 후 수원댁( 황정순 )이 이 가족의 비어있던 어머니 역할을 메우면서 네오리얼리즘에서도 두드러졌던 연대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의 휴일>은 살인 사건에 휘말린 신문기자 송재관( 노능걸 )의 행적을 좇는 동시에 남편의 부재로 계획과 다른 휴일을 보내게 된 의사 남희원( 양미희 )의 하루를 채우는 여러 해프닝을 나열한다. 그녀는 우연히 한 여인의 출산을 돕게 되는데, 그녀는 살인자의 아내라는 점에서 죽음이 생으로 변환되는 지점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세 고전과 <미망> 모두, 여성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간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을 갖는다 할 수 있겠다. (상) <미망인> 중 클로즈업되는 이신자의 발걸음 / (하) <마부>, <서울의 휴일> 중 길 위의 인물들 <미망>의 인물들이 걷던 서울의 길. ⟪각각의 영화사⟫는 이 거리의 형상을 재편한다.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삶을 이어나가려 했던 이신자( 이민자 )의 굳건한 발걸음, 춘삼의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망설임 없이 내어주며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던 수원댁의 온정어린 발걸음, 초조한 마음으로 시험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눈길을 헤쳐 나가던 수업( 신영균 )의 무거운 발걸음. 그리고 유혹에 굴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남희원의 발걸음. ⟪각각의 영화사⟫에서 추출해볼 수 있는 서울이란, <미망>의 인물들이 증언하였듯 사람들의 무수한 발걸음으로 구성된 도시이자 역사이며, 과거와 현재, 서정과 삶의 의지가 역동적으로 진동하는 픽션이다. 비평이라는 퇴행하는 몸짓에 대하여 얼마 전 ⟪씨네21⟫ 편집부로부터 올해 영화평론상 공고문에 들어갈 전년도 수상자의 소감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물론 당선 시점을 생각하면 아직 1년에 한참 모자라지만(그렇게 믿고 싶다), ‘전년도’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원고지 1.6매의 짧은 분량 안에서, 비평을 ‘퇴행하는 몸짓’이라 말했다. 더 겸허한 자세를 취하겠다는 다짐을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건 비평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건 내 탓이 아니라는 새침한 변명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는 왜 ‘비평에 대한 생각’은 끄트머리에 짧게 등장하고, ‘비평’만 가득한 것인지 불만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등단 이후 쓴 글 중 가장 요란한 고통의 몸부림을 치게 한 이 글의 개요를 구상할 때부터 이러한 구조를 생각했다. 마지막에 등장하기. 이건 피날레를 장식하겠다는 야망과 무관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비평가는 ‘몫 없는 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먼저 영화라는 텍스트가 선행되어야 할 테고, 그 이후에 텍스트를 중심으로 생성되는 얕은 사유들이 뒤따른다. 이상적으로는 담론을 형성할 것이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읽히지 않은 채 ‘요즘에 누가 비평을 읽어?’라는 뼈아픈 비판을 견고히 하는 예시로 사용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평을 가까이하려는 누군가가 ‘혹시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나요?’라고 빈곤한 A4용지 너머로 물어봐준다면, 그제야 쑥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사실은 말이에요’라며 나타나는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비평가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용량을 초과한 이 글의 대부분은 <미망>에 대한 비평일 수밖에 없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미망>을 다시, 그리고 치열하게 보게끔 해준 ⟪각각의 영화사⟫에 대한 단평인 것이다. 이 글을 읽다 지쳐 중간에 떠난 사람들은 마지막 문단을 보지 못할 테지만, 선행하는 글들을 흥미롭게 읽은 사람이라면, 전년도 수상자가 말하는 비평에 대한 이 고백을 읽고 있을 것이다.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는 “영화는 흔한 장소인 공공 공간이다. 그것은 기념비가 아니라 토론과 행동의 공간이다. 그것은 하나의 생태계다.” *주5 라고 말한 바 있다. 비평의 영역을 만들어주는 것 같은 이 말은 조금은 희망적이다. 한편, 연극에 대한 두 철학자,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장-뤽 낭시의 논쟁을 다룬 책 『무대』(2020)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혔다. 두 개의 대화가 처음으로 함께 출판되었다. 두 대화는 서로 긴 시간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지만, 그 목표는 언제나 두 대화 상대자 사이에서 새롭게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토론은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주6 - 장-뤽 낭시 이 책을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문장들과는 별개로, 둘의 대화를 단절시킨 것이 죽음이었단 사실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죽음 외엔 이 사유를 멈출만한 사건이 없었다는 점에서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 한편에는 비평의 무용함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영화의 죽음을 예견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어정쩡하게 서 있다. 언제까지 두 목소리 사이를 오가며 비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말하기엔 아직 못 본 영화들과,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들이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 한 영화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적어도 비평을 쓰는 동안만은 지구상에서 그 영화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만 한다는 허황된 다짐을 하곤 한다. <미망>을 여러 차례 보면서도, 그런 절박함에 휩싸인 순간들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 잘 가, 원점으로 어두워가던 너의 발이여, 오렌지빛의 소풍이여 *** 주1. 허수경, 「오렌지」의 후반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 지성사, 2016, pp. 42~43. 주2. <미망>은 두 단편 < 달팽이 >(2020)와 < 서울극장 >(2022), 그리고 중편 <소우>(2022)를 한데 모아 배치한 장편이며, 여기에는 4년이라는 시간이 축적되어있다. 영화는 코로나로 인한 단절의 시간을 겪으면서 완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형성된 공백과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체화한 배우들의 변화는 역설적으로 이야기의 지속을 증명한다. 주3. 지난 3월 1일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태양 감독은 차기작의 제목을 <서울 이야기>로 정한 배경에 대해, < 동경 이야기 >(오즈 야스지로, 1953), < 타이페이 스토리 >(에드워드 양, 1985), < 뉴욕 스토리 >(우디 알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1989)는 있지만 <서울 이야기>는 아직 없다며, 이 ‘멋진 도시’를 영화 제목으로 선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4.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 CsO)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가 함께 집필한 『천 개의 고원』(새물결, 2001)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 개념은 잔혹극의 창시자인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주5. George Baker and Pierre Huyghe, An Interview with Pierre Huyghe , The MIT Press, 2004, p. 96. 주6. 필립 라쿠-라바르트, 장-뤽 낭시, 조만수 옮김, 『무대』, 문학과 지성사, 2020. 문주화(영화평론가) l 2024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통해 등단했다. 아직은 비평이라는 퇴행하는 몸짓이 가진 역량을 믿고 있다. 세상이 지겨울 때 영화관을 가고, 좋은 영화를 만나면 세상이 다시 궁금해진다.
서울 소재 극장인 단성사에서 1920~30년대 조선인을 대상으로 발행한 극장 소식지 《단성주보》 (제297호 / 1929. 1. 26.) 다시 만난 세계: 식민지 조선의 극장문화 이야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간하는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를 바탕으로 역사의 지층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와 행간 속에 숨겨진 욕망들을 재조명합니다. 환한 조명이 빛나고, 한껏 치장한 배우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모두에게 주목받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눈부신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우리는 종종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무대와 은막의 ‘스타’들이 내ᄈᆕᆷ던 빛은 정작 객석의 조명이 모두 꺼진 순간, 즉, 광막한 어둠이 그들을 온전히 감싼 후에야 발현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예술가가 늘 ‘꽃길’만 걸을 수 없다는 점이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배우로 사는 일은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일과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영화인이 되려면 먼저 “밥 굶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는 이규환 감독의 자조섞인 고백처럼, 배우들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경제적 곤궁함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처지는 최소한의 예술적 자율성도 허락하지 않았다. 대본과 필름 검열은 물론이고, 현장검열에 나선 임석경관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배우와 변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는데,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불온한 언사로 낙인찍히면 꼼짝없이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던 일도 다반사였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배우의 삶을 동경하여 신문사 질의응답란에 ‘배우 되는 법’을 문의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되돌아온 답변은 대개 헛된 꿈을 깨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식의 충고였다. 그만큼 배우를 둘러싼 전망들은 열악하고 어두컴컴했다. 먹고 사는 일과 직결된 현실적 문제 못지않게 식민지 조선의 배우들을 괴롭혔던 것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었다. 급격하게 밀려들어온 문명의 산물들을 받아들이며 세상은 빠르게 개화되었지만, 광대를 천시해왔던 해묵은 인습만큼은 쉽게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결심한 이들은 집안의 필사적인 반대에 부딪혀 아예 가출하는 일이 빈번했고, 여배우들은 화류계의 기생과 동일시되기 일쑤였다. 인간이 타자의 시각을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존재라고 할 때, 식민지 조선의 배우들은 자기비하에 가까운 방식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우리 영화 사상 최초의 풍자적 희극영화 < 멍텅구리 >(이필우, 1926) 중 배우 이원규 , 김소진 등 반면, 배우들이 관객들과 만나던 장소인 극장은 새로운 공론장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극장의 공리성에 주목하는 시각은 ‘희대’가 설치되고 그 운영을 관장하던 ‘협률사’가 설립된 1900년대 초반부터 드러난다. *주1 최초의 실내극장이자 상설극장의 출현 이래 재래의 ‘구경꾼’들은 ‘관객’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때 극장을 출입하기 위해 요청되었던 입장료는 구경꾼의 무제한적 접근을 차단하는 요인이었지만 동시에 이것은 일정한 입장료만 지불하면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극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의미했다. *주2 극장은 관객의 문식력에 따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 감각을 총체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 힘입어 메시지의 전달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곳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관객의 학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모여든 관객들은 극장의 파급력을 방증하고 있었고, 극장의 공리적 가치에 주목한 이들은 바람직한 극장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오늘날 ‘ 연극개량론 ’으로 불리는 대한제국기의 극장담론이 바로 그것이다. 즉, 친일적인 관점에서 문명개화를 내세웠던 이들은 일본의 신파극을 조선에 이입하려는 방식으로 ‘연극개량’을 강조했고, 반대로 ‘애국계몽’적 관점을 견지하던 이들은 연극이 저항적 민족성을 형상화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연극개량론’은 극장문화의 가치를 철저하게 사회적 공리성의 틀로 해석하면서 당대의 배우들에게 ‘계몽’과 ‘교화’라는 과도한 책무를 부과해 왔다. 결과적으로 식민지기의 배우들은 자신들을 천시하는 사회적 시선을 감내하면서도 사회를 교육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인식론적 간극은 연극인들에게 괴리감을 안겨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은 하나의 변곡점을 형성할 만한 사건이었다. 비록 미완의 혁명에 그쳤지만, 3.1운동은 조선인의 역량을 한 곳에 집중시킨 대규모 사회운동이었으며, 그 여파는 사회 개조와 변혁의 열망으로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이후 제국은 문화통치를 내세우며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지만, 사실 이는 감시의 고도화를 목표한 기만전술에 불과했다. 광장의 정치가 제약당한 상황에서, 극장은 집단화된 조선인을 합법적으로 모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기에 극장에 대한 공리적 기대는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배우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가로서의 자의식과 인정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신파극단 예성좌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윤혁 의 글 “ 신극배우 제군아 ”는 시대적 변화를 체감했던 이의 소회와 감격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기에 눈길을 끈다. 1902년 정동에 세워진 협률사 (사진: “ 04. 현장 돋보기 2-일제강점기 이후 ”, 우리역사넷) 우리는 일찍이 인자한 부모와 사랑하는 형제를 이별하고 그리운 고향을 떠나 반도극계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였으며 얼마나 고생을 하였느냐. 아니 사회의 동정을 다소간 얻었느냐? 무엇 동정? 동정이 다 무엇이냐? 어림도 없다. 동정은 그만 두고 그네들이 과거 십년 동안 우리를 대한 태도는 어떠하였느냐? 예술이 무엇인지 극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물론 통틀어 놓고 연극하는 배우라고 하면 덮어놓고 '신광대'라고 하고 저급 인물로 인정하여 가까이 대해 주지 않고 경원(敬遠)하는 주의를 가졌었다. -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1~1922 』, 233쪽. 《조선일보》, 1921. 9. 23. , 4면 참으로 무정 세상이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석금 영웅이나 성현이라는 사람들의 역사를 보자. 고통과 고독이 없이 영웅이 된 자가 있는가.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지금으로부터는 낙원의 꿈을 꿀 기회가 돌아왔다. 보아라. 저 굉장한 건축물을-다시 보아라. 소위 유식계급에서 새로 나오는 저 신극단 을 -이렇게 극장이 생기고 고상한 극단이 봉기하는 것은 실로 치하할 만한 일이다.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1~1922』, 234쪽. 《조선일보》, 1921. 9. 23., 4면 우리는 오직 이때에 쿡 찌르는 것 같은 감상으로 고치고 깨달아 분투하고 노력함이 없을진대 과거 십년간 노력과 재래에 우리의 관객은 모두 새로 나오는 신극단 에게 빼앗길 것이요 종래야 극장다운 극장에는 들어가 볼 수도 없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어찌 맹연히 몸을 멈추고 있을소냐. 모쪼록 이를 갈고 어떻게 해서든지 분투 하고 노력 하여 참혹한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제군과 더불어 같이 힘쓰고 더욱 더욱 매진하고자 이렇듯 임리한 붓을 들었으니 *임리한: 흠뻑 젖어 뚝뚝 떨어지는 모양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1~1922』, 235쪽. 《조선일보》, 1921. 9. 25. , 4면 윤혁은 자못 격정적인 어조로 ‘신극배우 제군’을 호명한다. 비록 그가 자신과 동료 배우들을 ‘신극배우’로 칭하기는 했지만 여기서 ‘신극’이란 ‘구극(전통연희)’에 대응되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기에 이 글은 신파극이 성행하던 기성 연극계에 보내는 전언이라 보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윤혁은 동료 배우들에게 ‘분투’와 ‘노력’을 당부하는가? 주목할 것은 그가 “ ᄉᆡ로 나오ᄂᆞᆫ 신극단 (새로 나오는 신극단)”의 활약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글의 발표 시점인 1921년 9월은 동우회순회연극단의 공연이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직후였다. 동경유학생들이 결성한 ‘극예술협회’는 재일본 노동자와 학생들을 돕기 위해 조직된 동우회의 의뢰를 받아 순회연극단을 조직하게 되었고, 방학 기간을 이용해 전 조선을 순회하며 공연을 이어나간 바 있다. 관객들은 기존 연극과 차별화되었던 주제와 형식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으며, 그 반응은 기성 연극인들에게 분명한 위협으로 느껴질 만큼 뜨거웠다. 그리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해 봄의 담론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신파극-신극’ 논쟁이 가로놓여 있었다. 논쟁을 주도한 현철은 신파극을 포함한 조선의 연극 전통을 모두 부정하며, ‘신극’의 요건들을 제시한 바 있는데, 그 실체가 동우회순회연극단의 공연을 통해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동아일보의 전폭적 후원을 받고 있었던 동우회순회연극단 공연의 여파는 저널리즘을 통해 빠르게 확대 재생산될 수 있었다. 토월회 공연 관련 기사 지면 (사진: “ 토월회의연극일막 ”, 《조선일보》, 1923. 7. 6., 3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윤혁에게 분명한 위기의식을 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동우회순회연극단의 사례를 자극제 삼아 동료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파극-신극’ 논쟁 당시 신파극계를 대표하던 이기세가 보여 준 수세적 입장에서 한발 나아간 태도라 할 수 있다. 즉, 윤혁의 초점은 그가 느낀 ‘감격’을 이야기하고 ‘각성’의 의지를 표면화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신광대”라는 표현이 함축하듯 오랜 기간 동안 모멸적 시각을 견뎌야 했던 그에게 있어 새로이 부각된 신극 집단은 배우에 대한 사회 전반의 시각 전환을 예증하는 징표로 인식되었다. 이제 그는 광대에게 베푸는 값싼 동정이 아닌 예술의 담당자에게 응당 부여되어야 할 존중을 욕망하기에 이른다. 다만, 그가 “낙원의 ᄭᅮᆷ”이라 이야기했던 기회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윤혁이 경계했던 것과 같이, 재래의 배우들은 부단한 자기갱신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언제든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인정투쟁의 장에 진입하게 된 배우들은 관객에게,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예술가로 거듭나기 위해 분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피부에 고이던 임리(淋漓)한 어둠을 잉크로 삼아 새로운 연대기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 주1. 조영규는 협률사가 일종의 연희회사였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협률사 자체를 극장으로 보고 ‘최초의 관립극장’이라거나 ‘국립극장’이라 표현했던 기존의 학술적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조영규, 『바로잡는 협률사와 원각사』, 민속원, 2008, 95쪽.) 주2. 박노현, 「극장의 탄생」, 『한국극예술연구』 19, 한국극예술학회, 2004. 이광욱(극장문화사 연구자) l 읽고 생각하며, 말하고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과거의 기록을 뒤적이고 오늘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미래를 고민한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조교수(동화 한국어문화학과), 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 『드라마, 일상성의 미학』(2024) 공저, 「카프 연극대중화론의 전개와 송영 풍자극의 매체미학」(2018), 「도달한 임계점과 보존된 미래 – 발성영화의 정착과 경성 소재 조선인 극장의 연쇄 반응」(2021), 「표류하는 조선영화 : <임자 업는 나루배>에서 <정춘삼>으로 – 최초의 영화 판권 소송과 식민지 조선영화 시장의 추이」(2022) 집필.
한 시절이 끝나고 하나의 챕터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 대나무 줄기처럼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 마디의 끝은 5년, 10년 같은 숫자가 아닐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갈 때 비로소 한 시대가 나뉘는 마디를 느낀다. 2022년에도 많은 영화인들이 떠났다. 국내만 돌아봐도 김보경 배우, 이춘연 대표, 강한섭 영화평론가, 신정원 감독, 강수연 배우 등 각 분야의 영화인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니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세상을 떠났고 장 폴 벨몽도가 영면에 들었다. 장 마크 발레는 별이 되었고 시드니 포이티어는 역사에 새겨졌다. 그리고 마침내 장 뤽 고다르가 영원이 되었다. 장 뤽 고다르의 죽음과 함께 20세기 영화도 막을 내렸다는 탄식은 그저 수사가 아니다. 그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한 세기가, 영화의 한 챕터가 과거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현재는 과거다. 많은 이들이 현재를 산다 착각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대체로 과거, 현재, 미래에 동시적으로 겹쳐 있다. 오늘을 살면서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내일의 일을 걱정하는 식이다. 물리적으로 접근하자면 과거의 흔적들이 축적되어 오늘의 토대가 되고 그렇게 조성된 환경 위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이건 과거에 얽매이는 집착과는 다르다. 해결될 수 없는 과거의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대는 게 집착이라면,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는 건 ‘나’를 나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성찰의 시간에 가깝다. 몇 해 동안 사사로운 베스트 영화를 꼽았지만 올해만큼 유달리 ‘되돌아보는’ 시간이 길어졌던 적도 없었다. 어떤 해는 내가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위주로 골랐고, 언젠가는 온전히 취향을 고백하며 영화를 고른 적도 있다. 완전히 떠나보내기 위해 이별 편지를 쓰듯 영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는 지난 1년 뿐 아니라 영화 보고 글 쓰는 일을 업을 삼은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며 영화를 골랐다. 그리하여 지금 나와 마주보고 있는 영화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 아마겟돈 타임 >이다. 과거라는 이름의 오래된 미래 그러고보니 매년 습관처럼 하는 서두의 말이 있다. <아마겟돈 타임>이 제임스 그레이의 최고작은 아니다. 감독의 최고작은 감독이 세상을 떠난 뒤에나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세상을 떠난 감독들의 지난 작품들을 살펴보니 애시당초 그런 건 불가능하다. 다르게 표현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작품이야말로 나와 가장 깊숙이 접속하여 내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세간의 평가, 작품의 완성도, 지난 작품과의 비교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말한다면 <아마겟돈 타임>은 2022년 본 영화 중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방문을 두드린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보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의문이었다. 왜 굳이 이걸 지금 만들어야 했을까. 모든 영화에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일정 부분 반영되는 게 자연스런 일이지만 제임스 그레이는 그 농도가 꽤 높은 편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다섯 편의 내밀한 드라마를 만들었던 제임스 그레이는 어느 날 갑자기 아마존 정글로 떠나더니(< 잃어버린 도시 Z >) 내친 걸음 아예 우주까지 다녀왔다가(< 애드 아스트라 >) 다시 집으로 귀환했다. 아니 단지 고향인 뉴욕 퀸즈로 돌아온 것을 넘어 가장 내밀하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아마겟돈 타임>의 전반부는 픽션이라기보다는 거의 일기에 가깝다. 제임스 그레이는 유대인 이민자의 자녀였고 아버지는 배관공이었다. 기술직인 아버지는 혹독한 환경에서 치열한 노력 끝에 중산층에 겨우 편입한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그랬듯 교사였고 사친회의 회장이었다. 주말이면 조부모와 대고모,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대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했고 부모님의 성화로 사립학교인 큐 포레스트로 전학을 간다. 제임스 그레이는 전학을 가기 전까지 학교에서 친하게 지낸 흑인 친구를 기억한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던 친구는 양아버지가 보내준 아폴로 미션 패치를 보물처럼 아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흑인 친구와 마리화나를 나눠 피던 걸 걸린 제임스 그레이는 학습부진아로 낙인 찍힌다. 제임스 그레이의 어머니는 이 제안에 분노하며 제임스 그레이를 사립학교로 전학 시킨다. 불행히도 함께 잡혔던 흑인친구에겐 대신 보호해줄 보호자가 없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흑인 친구는 사회복지사들에 의해 보호시설에 들어갈 처지에 놓이고 도망치듯 가출한다. 제임스 그레이는 그 친구가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얼마간 몰래 숨어 있던 나날을 기억한다. 오해하지 마시길. 이건 제임스 그레이의 어린 날이다. 동시에 영화 <아마겟돈 타임>의 전반부 내용이기도 하다. “상상력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기억에 의존”했다는 감독의 고백처럼 거의 다큐멘터리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영화와 실화의 길이 갈라지는 건 6학년 폴(뱅크스 레페타)가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출을 결심하는 지점부터다. 폴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흑인 친구 죠니(제일린 웹)을 설득해 사립학교의 컴퓨터를 훔쳐내기로 한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범죄는 발각되고 두 사람은 함께 경찰서로 끌려간다. 여기서 또 한번, 한층 더 가혹하게 둘의 운명이 갈라진다. 다시 돌아와, 왜 하필 지금인가. 제임스 그레이가 자전적인 체험담을 굳이 지금 이런 방식으로 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70년대로 돌아가 < 리코리쉬 피자 >를 찍었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6년 만의 복귀작 <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를 통해 지난 생을 통째로 반추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중심으로 한 첫 번째 자전적 영화 < 더 파벨만스 >를 선보였다. 스필버그의 첫 번째 자전적 영화라니, 이미 여러 번 꾼 꿈을 다시 목격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가. 중견 감독들이 왜 새삼 지금 자전적 이야기에 몰두하는가. 일련의 유행 아닌 유행이 코로나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활동이 축소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되돌아보는 이야기’가 일종의 시대정신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무엇이든 분명한 건 지금이 잠시 멈춰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대나무 마디 같은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행위는 목적에 따라 도착지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제임스 그레이가 일기에 가까운 자전적 영화를 만든 이유를 한번 상상해보았다.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자전적 상황의 재현 자체가 <아마겟돈 타임>의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되돌아보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영화들은 과거를 그리워한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거나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애상에 잠긴다.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낭만화 하는 필터링, 이른바 노스텔지어의 정서에 흠뻑 젖은 영화들. 그런 의미에서 <아마겟돈 타임>은 되돌아보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아마겟돈 타임>은 건조하고 담담하다. 최소한 그런 위치를 유지하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쓴다. 제임스 그레이가, 아니 소년 폴이 그리워하는 시절은 소년 폴의 시절이 아니라 차라리 아버지 어빙(제레미 스트롱)의 시절, 더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안소니 홉킨스)의 시절이다. 소년이 직면한 상황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그야말로 멸망 직전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아마겟돈 타임>의 ‘지금’은, 1980년은 희망도 낙관도 없는 망해버린 세상의 초입이기 때문이다. 핵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는 불안과 위협의 시대.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해. 아메리칸 드림이 종말을 고한 해. 소년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어른으로서 생존의 시간. 그래서 ‘아마겟돈 타임’이다. 유령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1980년을 이야기의 무대로 택한 건 그 때 자신이 사립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망가진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1980년에 도달한 쪽에 가깝다.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두터운 유리천장과 사라진 사다리, 무엇보다 연대에의 희망이 사그라들고 분리, 차별, 혐오에 잠식당한 미국의 오늘을 어떻게 마주 봐야 할 것인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거슬러 올라가다 발견한 변화의 첫 번째 분기점이 레이건이 당선된 1980년이었게 아닐까. 다시 말해 <아마겟돈 타임>의 자전적 이야기와 회상은 목적이 아닌 도구다. 오늘의 폐허를 환기시키는 거울의 무대라고 해도 좋겠다. 아버지 어빙 역의 제레미 스트롱 배우는 말한다. “1980년 레이건 당선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미리 보여둔것과 같아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아주 사적인 렌즈를 통해 큰 이야기를 만든 거죠.” 사실 제임스 그레이가 그리워하는 시절은 소년 폴의 시절이 아니라 차라리 아버지의 시절, 더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의 시절이다. 할아버지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미국에 정착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시절이 있었고 아버지가 간신히 중산층의 끄트머리에서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시절도 지나가는 중이다. 이제 폴이 바야흐로 맞이해야 하는 시대는 계급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3루에서 태어난 이들이 3루타를 치고 노력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시대다. 2022년의 제임스 그레이는 이미 폐허가 된 세상에 서서 과거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그리움보다는 어떤 결연함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이미 폴의 미래를 알고 있다. 폴이 할아버지처럼 약자를 존중하고 차별을 멀리하고 불의에 분노하며,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조언대로 “남자답게 맞서며” 살 수 있을까. 양심을 가진 사람들도 “인생은 불공평해. 행운이 찾아오면 감사해야 해.”라고 자조하면서 자신을 지키기도 급급한 세상에서 말이다. 조금씩 비겁해진 세상은 이윽고 고개 숙이고 침묵하며 각자도생 하는 지옥이 되었다. 계급의 사다리에서 추락할까 전전긍긍하는 개인의 비겁함과 소심함을 탓하는 게 아니다. 모두가 투사가 될 수 없음을 안다. 다만 침묵에 저항하는 걸 실패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저항할 수 있다. <아마겟돈 타임>은 세상을 바꾸자고 설득하는 영화가 아니다. 망각에 맞서, 최소한의 저항을 시도하는 영화다. 할아버지가 살았고, 믿고, 꿈꿨던 낙원은 이제 없다. 다시 온다해도 그것은 할아버지가 겪었던 낙원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낙원을 부활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지옥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옥에서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 희망을 꿈꿀 수 있다. <아마겟돈 타임>은 내게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읊조린 것처럼 들린다. 영화는 말한다.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네게 주어진 삶을 단지 받아들이는 거야. 뒤돌지 말고.” 이것은 유령의 목소리다. 유령은 사라진 존재가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옆에 있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유령은 지나간 과거가 아닌 축적된 현재의 흔적이다. 마찬가지로 “뒤돌지 말라”는 영화의 속삭임은 타협도 낙담도 포기도 아니다. 내가 나로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언젠가 다음 세대를 이어받을 너의 손을 놓지 않고, 기꺼이 유령이 되어 이 폐허 속을 함께 걷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유령과 함께 오늘까지 생존했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