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 감독
- 박수민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권혁풍, 이주승, 이대연, 이화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인한 거리두기는 영화 산업의 존립을 위협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이 매체의 가장 본질적인 체험 행위를 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극장의 위기에 부쳐 내 경우만 고백하자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나는 극장에 채 열 번도 가지 않았다. 2020년은 열두 살 이후의 내 인생에서 가장 극장에 안 간 해가 되었다. 교회에 절대 안 가는 기독교인은 자랑스러운 일면조차 있지만, 극장에 통 안 가는 시네필이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위기가 왔을 때 말이 아니라 육체로 증명할 수 없다면 진실한 사랑이 아니다. 나의 뜨뜻미지근한 사랑은 그 사실을 절대로 들켜선 안 되는 바로 나 자신에게 뽀록났다(‘뽀록나다’는 속된 표현이나, 엄연한 표준어다). 나는 시네필로 자각할 자격을 상실했다. 지난 봄, 방역 상황을 주시하며 시네마테크와 멀티플렉스의 예매와 취소를 반복하던 중, 설마 확진자와 접촉해 감염되는 한이 있더라도 봐야만 하는 영화가 나타났다. 마침내 나를 극장으로 다시 불러들인 영화는 조지 A. 로메로의 < 시체들의 새벽 >(1978)이었다. 40여 년간 국내 개봉한 적이 없었던, 모든 현대 좀비 장르물의 원본이 하필이면 “이 시국에” 극장에 걸렸다. 이 영화에 대한 내 오랜 사랑과 강박(커버에 “안녕하시었어요?”가 적힌, 출시 제목 <이블 헌터>의 비디오로 접한 이후, 인생이 어떻게 망했는지 글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7855 (오독의 라이브러리, 2017-08-03, cine21)을 쓴 적 있다) 때문에,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상한 조바심에 사로잡혔다. 같은 작품의 DVD가 판본별로 있고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뇌내(腦內) 재생할 수도 있지만 꼭 극장이어야 했다. 4월 15일, 나는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 거의 텅 비다시피 한 쇼핑몰의 극장에서 <시체들의 새벽>을 보았다. 극장엔 개봉 취소나 연기된 영화들의 선전물만 덩그러니 놓인 채 관객은 커녕 표를 확인하는 직원조차 보이질 않았다. < 오메가 맨 >(1971)의 찰턴 헤스턴처럼 객석에 홀로 앉아 “이제 이런 영화는 안 만드는 모양이군!” 읊조릴까 했는데,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의 관객이 들어왔다. 좀비 떼를 피해 아무도 없는 쇼핑몰 안에 숨어드는 영화 속 주인공도 딱 네 명이다. 극장이 선전한 리클라이너가 편안했고, 방역이 아니라 방해받지 말라고 만들어놨던 칸막이가 있는 관람은 쾌적했다. 영화가 끝나고, 똥땅거리는 쇼핑몰 음악과 함께 좀비들이 지상에서 뒤뚱거리며 엔드 크레딧이 오르자 깨달았다. 나는 영화를 보러 왔다기보다 영화를 현실에 재현하러 온 관객이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는 말은 옳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 기침 소리가 들리자 나의 나들이는 심리적 자해처럼 느껴졌고, 픽션은 현실의 고민이 되었다. < 우주전쟁 >(2005)의 말미에 허망하게 고꾸라지던 외계인들처럼 인간이라는 종도 겨우 바이러스에 함락되는가. 세상이 망하기 전에 영화부터 사라질까. 그럼 다 같이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 나는 뭘 먹고 사나? 또 언제 극장에 올 수 있을까? 극장이 이렇게 망할 줄이야. 친구의 영화가 결국 극장 개봉 대신 OTT를 택했을 때, 강제 넷플릭스 진출을 축하한다며 주고받은 메시지는 그나마 다행이란 위로에서 어떤 우려로 남았다. 극장이 아니라면 내가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는 영화일까? 극장 밖에서 영화는 진정으로 존재할까? 혹시나 만약에 정말로 극장이 사라지더라도, 물론 영화까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이미 영화는 어디에든 넘칠 정도로 있다. 손아귀의 디바이스, 책상 위 모니터, ‘언택트’ 시대를 맞아 거실에 “거거익선”으로 장만한 4K 디스플레이 속에 극장만큼 충분히 친숙하고 또렷하고 거대하게 존재한다. 거의 극장에 있는 것 같은 환경을 구현해주는 VR 어플까지 있다. 영화는 아날로그(필름)가 아니라 생성될 때부터 디지털(파일)이고, 네트는 광대하며 스트리밍은 빠르다. 그러니 둘 중에 하나만 영영 잃어야 한다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은 극장의 죽음이다. 만국의 시네필들이여 선택하라. 그러나 이렇게 외치고픈 충동이 울컥할 것이다. 아뇨, 극장에서가 아니면 그건 결코 영화가 아니에요. 영화는 오로지 극장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내 망막에 눈부시게 빛으로 쏟아질 때만 영화예요. 이 빛과 어둠의 예술은 극장에서만 기적을 일으킨단 말입니다. 객석에서 모두와 함께 울고 웃으며 다 같이 탄식할 때만! 시네마테크를 향한 내 예전 간증을 지금 다시 적노라니 가슴이 뜨끔하다. 그 믿음은 유효합니까? 6월, 여름 시즌에 내야 할 영화들이 줄줄이 훗날을 기약하고 뒤로 밀리며 눈치만 볼 때 한 영화가 매를 맞아보겠다는 듯 용감히 개봉했다. 극장에 같이 가려 동행을 구했지만 누구도 나서질 않고, 코로나 때문이 아니어도 내가 고립된 인간임을 직시하며 혼자 < #살아있다 >( 조일형 , 2020)를 보러 갔다. 체온을 재고 연락처를 남긴 다음 극장 안으로 들어와, 테이핑으로 간격을 띄워놓은 좌석에 앉으니 이 정도면 극장은 오히려 전에 없이 쾌적한 상태로 지속할 수 있을 걸로 보였다. 처음 이 영화의 정보를 접하고, 미국 작가가 쓴 시나리오지만 한국판 리메이크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같은 시나리오로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제작되며, 감독의 연고지도 미국 기반이라고 했다. 나는 괜히 영화사들이 이제부터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외국에서 사오고 모국어만으로는 업계에서 버틸 수 없게 되는 상상을 했다. 캐릭터와 플롯만 정확하게 보고, 모호하게 문장력으로 눙치는 시나리오는 솎아지는 날이 오는 거다. 퇴출 확정이군. 아무튼 티저를 보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틱톡 시대에 도래한 SNS 맞춤 좀비 스릴러일까 싶었는데, 시의적절한 아이템이 시국에 맞춤인 결과로 나왔다. 심지어 감독 역시 코로나 때문에 입국을 못하고 미국에서 화상을 통해 원격 편집과 마스터링을 했다니 거의 언택트 시대의 산물 같은 영화다. 좋든 나쁘든 원하건 말건 간에 세상에 의해 현실이 되는 픽션이 있고, 이 영화도 그렇다. 하루아침에 바깥세상이 망해 집 안에 꼼짝없이 갇힌 남자( 유아인 )가 고립 끝에 별 수 없이 나도 망할까, 하다가 맞은편에 사는 여자( 박신혜 )와 소통하고 함께 살아남고자 서로 돕는다. 좀비 떼를 피해 둘이 도망갈 수 있는 세상의 가장 멀고 높은 곳이란 겨우, 아파트 옥상이다. 이 세팅은 지금 현실과 닮았다. 팬데믹으로 집에 갇힌 우리는 마스크를 끼고 밖으로 나서는 일에 종말이 온 듯 호들갑을 떤다. 이 영화 속 캐릭터의 생존 투쟁도 절박하기보다 호들갑 같다. 영화를 보면서 걸리는 개연성은 이제 나 같은 직업병자 아니면 위키에 비판 항목을 적는 사람에게만 문제일 것이다. 관객 눈에 즉각 보이지 않는 맥락과 읽히지 않는 의미부여 대신, 상황에만 집중해서 단순명쾌하게 콘셉트만 끝까지 밀고 가는데 의외로 산뜻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나는 이렇게 공권력을 긍정하는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국가가 해시태그(#)를 검색해 당신이 SNS에 남긴 생존 증명만으로 헬기에 특수부대원을 태워 구하러 온다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타났는데 어째 그다지 촌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이걸 문제 삼고 싶은 내가 촌스러운 것 같았다. 영화는 무리 없이, 딱 아파트 옥상까지만 도달했고, 살아남았다. 나는 무리를 보길 기대했었다. 영화란 만드는 과정도 그 결과물의 내용도 온통 무리하는 것이라 믿어 왔는데, 그 무리한 욕망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게 영화 아닌가? 이제 다들 그런 영화는 안 만드나? 개인적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긍정하기로 했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 깨끗이 잊히게끔 만든, 딱 그 정도의 적당한 야심을 품은 영화가 주는 미덕을 생각했다. 이런 하이 콘셉트 영화를 더 많이 더 잘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언젠가는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분을 선사하는 현실의 우화 같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인 나로선, 다만 그 수준에 도달한 시나리오가 또 어느 미국인이 영어로 쓴 책이 아니도록 애쓰면 될 일이다. <#살아있다>는 코로나 상황의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하여 초여름의 극장가가 잠시나마 지탱할 수 있도록 견인한 공이 있다. 극장이 살아있고 다녀간 관객이 무탈함을 세상에 알려줬던 것이다. 8월 중순 2차 대 확산이 발생하여 다시 극장이 셧다운을 거듭하는 동안에는 넷플릭스에서 월드와이드 영화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산 콘텐츠 중 최초 기록이라니, 팬데믹 상황의 전 세계 구독자들이 꽤 공명한 것 같고, ‘K-좀비’라는 모호한 장르도 존재감을 확인했다. K-좀비라니, < 괴시 >( 강범구 , 1981) 이후 이런 날이 다 왔다. 그러나 나는 한국산 좀비 영화의 경향에 신체를 물어뜯고 내장을 쏟아내고 그것들을 먹는 직접적인 묘사를 여간해선 하지 않는 것에 의구심을 갖는다. 내가 고어(gore)를 요구하는 건 좀비 영화의 윤리 때문이다. 굳이 보여주지 않을 윤리가 있다면, 마땅히 보여야 할 윤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 좀비 영화에 대한 근본주의를 품은 사람의 무리한 요구일 뿐이려나? 뭐 이제 그런 영화는 안 만드는 모양이니까. 암담한 거리두기의 시간을 지나 1단계로 돌아왔지만, 극장의 위기는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기대했던 많은 영화들이 끝내 극장을 포기하고 OTT로 돌아서고 있다. 왜 영화를 마땅히 극장에 걸지 않느냐며, 손해를 감수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 영화는 결국 돈을 벌어야 지속할 수 있고, 극장은 믿음이 굳건한 몇몇 시네필에게만 의존하기엔 지나치게 크고 구태의연한 산업이다. 이 구태의연한 행위가 영화를 경험하기에 가장 옳은 양식(樣式)이기에 나는 OTT의 영화 독식도 극장의 명예로운 죽음도 언택트와 뉴 노멀 어쩌고 하는 대단한 변화도 원하지 않는다. <시체들의 새벽>을 극장에서 보며, 앞으로 인류가 지독히도 재수가 없다면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괜찮네? 나다운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이런 감상적인 호들갑보다 <#살아있다>를 보고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으로 극장은 안전해, 다음에 무슨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는 쪽이 훨씬 나았다. 영화의 구원과 극장의 부활에 대한 소박한 믿음을 요상한 맹신의 종교적 호들갑이 하루아침에 막막하게 만들 줄 그땐 몰랐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오는 건 사양한다. 종말, 멸망, 아포칼립스란 그렇게 떠들썩하지 않고 오히려 조용하고 쓸쓸할 거라 생각한다. 집에 갇힌 채 홀로 훌쩍이는 일이 진짜 종말에 가깝다. 이 상황을 탈출해도 별로 대단한 미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예전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행운을 빈다. 그 행운이 너무 힘들게 멀리 있지 않고, 우리가 갇힌 집에서 아파트 옥상 정도의 거리에 있기를.
2019년 사사로운 리스트 5년째 이 일을 하다 보니, 연말이 되면 사사로운 영화리스트를 작성하고, 리스트에 있는 영화 중 한 편을 골라 글을 쓰는 일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최고의 영화를 꼽는 것도 아닌 그저 사사롭게 좋았던 영화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이 해가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유가 뭘까에 대해 매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나의 문제인지, 영화의 문제인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막상 리스트를 완성하고 나면 뭔가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리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편을 선정한 건 각각의 이유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 10편의 영화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 2019년 한 해 동안 이러 저런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 몇 가지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확하게 느낄 수 없었지만, 2019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리고 영화는, 지금, 분명히, 새로운 물결이 한 시대를 밀어내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 흐름은 영화를 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어놓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멀쩡해 보이는 영화에서, 아니 애초부터 멀쩡하지 않았지만 그런 줄 몰랐던 영화 속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이걸 봐 버린 이상 우리는 이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저항이 있지만,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서는 안 될 강을 이미 건너버렸다. 따라서 설사 되돌아갈 방법이 있다 해도,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019년 주요 영화들을 관통하고 있는 난민, 페미니즘, 불평등의 주제는 모두 사회적 약자와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가 강력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의 전면에 나서면, 영화는 순수한 영화적 즐거움과 사회를 바꾸려는 캠페인을 위한 프로파간다의 경계에 서게 된다. 그 경계에서 어떤 쪽으로 얼마나 발을 내딛느냐에 따라 영화의 운명은 달라진다. 2019년 최고의 수작과 큰 영화제의 수상작들은 대부분 이 경계에서 양쪽에 모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영화이거나, 주제를 꽉 쥔 채 영화적 쾌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걸 끝까지 밀어붙인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시도들이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정교하고 세련된 세계를 창조, 확장하고 있는 할리우드와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최고의 창작자들에게 자본으로 영화적 자유를 선물하고 있는 넷플릭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항상 반복되어 이야기되는 독립, 예술영화들의 위기가 이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의 전혀 다른 거대 자본의 틈새에서 시작되고 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넷플릭스는 알폰소 쿠아론, 코엔 형제, 마틴 스콜세즈, 노아 바움백 등 영화의 만신전에 들어갈 위대한 감독들과 손잡고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을 만들고 있다. 넷플릭스와 손잡은 감독들은 간섭하지 않는 자본이 선사해준 창작의 자유를 간증하며 자신의 영화 세계를 담아낸 야심 찬 수작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넷플릭스는 명성이 있는 영화제들을 통해 나오는 주요 예술영화들의 전 세계 배급권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제 자본의 사이즈로는 경쟁이 되지 않는, 중소 규모의 수입 배급사들의 경쟁자이자, 전통적인 예술영화 시장을 위협하는 포식자가 되었다. 디즈니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반대편에는 우리가 알던 독립, 예술영화가 아니라, 주요 독립, 예술영화들의 배급권을 모조리 사들이고 싶어하는 넷플릭스가 서 있는 형국이 되었다. 독립영화도, 예술영화도 자본이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 독립, 예술영화는 소수의 예술영화 전용관과 영화제 서킷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통해서, 그게 아니면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시네마’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된 건 이런 상황이 지속 또는 확장될 것임을 예측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2019년 리스트에 있는 영화 10편은 그 수많은 영화들 중 ‘시네마 Cinema’ 또는 ‘시네마틱 Cinematic’에 대해 영감을 주었던 영화, 그래서 응원하고 싶은 영화들을 중심으로 ‘사사롭게’ 선택했다. 여기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국내 개봉을 했거나, 국내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영화들이다. 안 본 영화들이 있다면 기억해두었다가 챙겨보길 권하고 싶다. 지금부턴 리스트에 있는 10편의 영화 중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 소녀 안티고네 >(소피 데라스페, 2019)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Antigone>다. 맞다. 고대 그리스의 3대 극작가 중 한 명이었던 소포클레스의 희곡이다, 그가 저술한 4대 비극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그 『안티고네』다, 그래서 한글 제목인 <소녀 안티고네>에서 ‘소녀’라는 단어를 처음 보고 갸우뚱했다. 사람들이 안티고네가 어린 여성인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안티고네가 어린 여성, ‘소녀’라는 사실이 중요했던 걸까? 의도했든 안 했든 ‘소녀’라는 단어가 강인한 인물인 안티고네와 함께 쓰이면서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가 한층 강해진 것 같긴 하다. 대부분의 영화는 원작이 어떤 작품인지 제목과 간략한 내용만 알아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원작과 제목만 같은 게 아니라, 영화 속 인물의 이름이 기원전 441년에 만들어진 원작 속 인물의 이름과 똑같다. 거기에 주요 인물들이 벌이는 논쟁의 지점도 유사하다. 원작의 틀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원작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원작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원작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와 함께 소포클레스의 “테베 3부작” 중 한 편이다. 서사적으론 『오이디푸스 왕』이 다음의 이야기지만, 시기적으론 가장 먼저 쓰였다. 혈육의 도리를 다하려다 국법을 위반한 여주인공 안티고네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헤겔은 “걸작 중의 걸작이며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이와 비견될 작품이 없다”고 했다.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이자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찔러 맹인이 된 후 왕국을 떠난 오이디푸스를 따라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오이디푸스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이디푸스가 테베를 떠난 뒤 그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다가 모두 죽었다. 그런데 이때 테베의 새로운 왕이 된 숙부 크레온은 외국의 군대와 함께 테베를 공격했던 폴리네이케스를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하고 매장을 금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의 칙령을 어기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생매장의 벌을 내리지만 그녀는 벌이 실행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편 안티고네를 사랑했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 하에몬은 아버지로부터 그의 사면을 얻어내지 못하자 그를 따라 자결한다. 『안티고네』가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군주의 폭정과 귀족과 성직자들의 수탈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킨 프랑스인들과 혁명의 동조자들에게 안티고네는 자유, 평등, 박애로 대변되는 혁명 정신에 대한 완벽한 알레고리였기 때문이다. 안티고네가 죽은 오빠에게 보낸 절대적인 사랑은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로 읽혔고, 국가권력에 맞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자살을 선택한 그의 모습은 천부인권설에 담긴 개인의 자유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와 함께 여성으로서 모든 권력을 가졌던 남성과 당당하게 맞섰던 그는, 성평등은 물론이고 모든 사회적 영역에서의 평등과 정치적 참정권의 옹호자로 상징되었다. 그리하여 폭군에 대한 안티고네의 저항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혁명 정신과 겹쳐졌고, 저항의 대가로 받게 된 생매장의 형벌은 바스티유의 지하 감옥을 환기시켰다. 또한 그의 자결은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강력한 자유 의지와 혁명을 위한 숭고한 순교로 받아들여졌다. 논쟁적 사유, 불굴의 의지,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으로 무장한 영웅적 주인공의 이상적 모델로서의 안티고네의 상징성과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1) 특히 『안티고네』가 주목받았던 건 왕의 칙령을 어기고 오빠를 매장한 안티고네와 국가 반역자의 매장을 금지한 크레온의 대립과 둘 사이의 논쟁 때문이었다. 신성한 윤리이자, 감정에 호소하는 가족 윤리(자연법)와 공동체의 안녕과 존속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법의 정면 충돌, 각자의 입장에서 정당성을 주장하는 두 개의 거대한 윤리 또는 법 사이의 충돌과 논쟁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안티고네』 서사의 핵심이다. 또한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논쟁은 결국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완벽한 가부장적 사회에선 혁명의 서사가 아니고선 결국 막강한 국가권력과 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이 운명과도 같은 비극의 서사를 활용하여 당대의 사회적 논쟁에 대한 정치적 성찰을 이끌어내고 도덕적 힘들의 충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제시했다. 『안티고네』가 세상에 나온 지 2천 4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새로운 모습을 한 안티고네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에 살고 있다. 그는 이제 왕족이 아니라 알제리에서 온 난민이다. 3살이 되던 해,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 언니 이스메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조국을 떠나 캐나다와 도착했고, 몬트리올에 정착했다. 현재 그의 가족은 아직 시민권을 갖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뿌리가 알제리임을 잊지 않은 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두 오빠는 자기 밥벌이 정도는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역의 갱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성인이 된 이스메네는 미용실에서 보조로 일을 하고 있으며, 안티고네는 장학금을 받아가며 열심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제 안티고네 가족은 풍족하진 않아도 미래를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의 불심 검문을 받던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있던 폴리네이케스는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경찰폭행죄로 알제리로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부모의 죽음을 겪으며 먼 타국에서 간신히 삶의 터전을 잡은 듯했던 한 가족은 이제 합법적 국가권력에 의해 해체될 위기에 놓인다. 이제 안티고네의 시간이 도래했다. 연약하게만 보이던 막내 안티고네는 가족을 위해 수감된 오빠를 감옥에서 빼내기로 마음먹는다. 폴리네이케스는 남은 가족 중 유일한 남자이고, 그의 존재는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은 단순했다. 미성년자인 자신은 어떤 잘못을 하든 쉽게 풀려날 거라 믿었다. 머리를 자르고, 문신을 하고, 남자 옷을 입고, 오빠와 비슷하게 변장하고 면회에 가서 옷을 바꿔입고 오빠를 탈옥시킨다. 원작의 매장은 탈옥으로, 크레온은 국가의 사법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안티고네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모든 용기를 짜내어 법을 지키는 대신 가족의 윤리를 택했다. 완전히 상반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정당한 두 가치를 어떻게 충돌시키냐와 안티고네에게 얼마나 감정이입할 수 있느냐가 이 영화의 관건이다. 가족을 위해 범법자가 되어 법정에 선 그는 두려워하면서도 당당하게 유죄를 인정한다. 그리고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 오빠를 도우라고 제 심장이 제게 말하고 있어요”라고 외친다. 재판 초기 범죄 조직에 가담한 불법 난민의 아이콘이 되어 인터넷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던 안티고네는, 남자친구 하에몬의 노력으로 인해, 가족를 위해 범법자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용맹한 소녀로 회자된다. 대중의 지지가 강해지면서 난민 소녀 안티고네는 가족의 가치를 수호한 영웅이 된다. 그러자 합법의 탈을 쓴 국가폭력의 이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대 그리스에서 목숨을 놓고 벌인 2천여 년 전의 비극적 논쟁은 이렇게 동시대적 감각으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며 부활한다. 이 흥미로운 각색의 중심에는 소피 데라스페 감독이 있다. 그는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안티고네의 서사에 현재 전 세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난민 문제를 성공적으로 이식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주연을 맡은 신인 배우 나에마 리치다. 그는 데뷔작임에도 강렬한 연기력으로 서사를 장악하고 주도한다. 안티고네가 머리를 깎고 언니에게 가족을 위해 일할 것을 강하게 요구할 때, 애써서 탈옥시켰지만 다시 잡혀 와 법정에 선 오빠를 향해 피를 토하듯 절규할 때, 그리고 그 어떤 유혹의 순간에도 망설임 없이 가족의 윤리를 선택할 때 등 서사의 인과관계의 중요한 고비마다 튀니지 출신의 이민자인 그의 연기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며 관객을 설득해낸다. 이렇듯 <소녀 안티고네>는 한 발 더 나간 결말에 대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담겨 있던 사회적 논쟁에 대한 정치적 성찰과 함께 양립하는 두 가치의 충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고스란히 영화에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1)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저, 강태경 역, 홍문각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198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던 장르를 꼽는다면 ‘종교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멸종된 건 아니다. 최근 < 일사각오 >(권혁만, 2016) 같은 영화가 소박한 흥행을 거두었고, 김수환 추기경(< 바보야 >(2011)), 법정 스님(< 법정 스님의 의자 >(2011)), 옥한흠 목사(< 제자, 옥한흠 >(2014) 등 종교인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울지마, 톤즈 >(2010)나 < 소명 >(2009)처럼 오지의 성자들에 대한 작품도 있다. 다른 건 소속된 리그다. 최근 종교 관련 작품들이 다양성 영화의 범주에 속한다면, 1980년대의 종교 영화는 메인 스트림 안에 있었다. 이 영화들은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당시로선 큰 흥행인 ‘서울 관객 10만 명’ 이상을 동원했으며, 사극일 경우 거대 예산이 들어간 대작이었다. 특정 종교의 역사, 인물, 교리 등을 테마로 삼는 종교 영화는 1980년대 상업영화의 한 축이었으며, 비록 그 종교의 신도들을 중심으로 하지만 강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기독교, 가톨릭, 불교는 물론이고 증산도를 다룬 < 화평의 길 >( 강대진 , 1984), 무속을 소재로 한 < 피막 >( 이두용 , 1981) < 무녀의 밤 >( 변장호 , 1982) < 불의 딸 >( 임권택 , 1983) < 태 >( 하명중 , 1986) < 업 >(이두용, 1988) 등이 이어졌고, 수련을 통한 초능력을 다룬 < 단 >( 김행수 , 1986)이나 사이비 종교에 대한 < 백백교 >( 최영철 , 1993) 등도 있었다. 1980년대 이전에도 기독교와 가톨릭을 다룬 종교 영화들은 있었다. 그 영화들은 사극, 전쟁 영화, 반공 영화 등에 걸쳐 실존적 철학과 이념적 갈등과 역사적 사실 등을 다루었다. 유현목 감독의 < 순교자 >(1965) 최하원 감독의 < 새남터의 북소리 >(1972) 이성구 감독의 < 악마의 제자들 >(1974)과 < 쥬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 >(1973) 당대 종교 영화 트렌드의 중심은 기독교였다. 조짐은 1970년대 말부터 있었고 1980년대 초반까지 주요작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기독교 영화의 붐이 일기 시작했던 걸까? 이것은 당시 기독교의 부흥과 깊은 관계가 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5일 동안 열렸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 대회엔 전국 각지의 크리스천이 300만 명 이상 모였다. 이후 1974년엔 김준곤 목사의 엑스플로 대회가 있었고, 1977년엔 민족 복음화 성회, 1980년엔 세계 복음화 성회, 1984년엔 선교 100주년 대성회 그리고 88 세계 복음화 대성회 등이 이어졌다. 이 시기 뉴스에서 여의도 광장을 가득 채운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접하는 건 흔한 일이었고, 1980년대 중반에 오면 ‘1,000만 기독교인’이라는 자체 집계가 발표된다. 이른바 ‘대부흥의 시대’였다. 자고 나면 교회가 생겨나던 시절, 기독교 영화에 대한 잠재적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였다. 이때 < 사랑의 원자탄 >(강대진, 1977)이 포문을 열었고 뒤를 이은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임원식 , 1981)는 서울 관객 20만 명 이상을 동원한 흥행작이었다. 다음 해 < 죽으면 살리라 >(강대진, 1982) < 하늘 가는 밝은 길 >( 김성호 , 1982)이 나왔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신앙을 실천했던 손양원 주기철 안이숙 등이 주인공이었던 이 영화들은 한참 교세를 확장하던 시기 기독교인들에겐 일종의 교재였다. 실화 영화로서 이 작품들이 지닌 이분법적이고 감정적이며 극적인 감수성은 절절한 간증이 되어 신도들의 가슴을 쳤다. 가톨릭도 마찬가지였다. 최하원 감독은 < 초대 받은 사람들 >(1981)과 < 초대 받은 성웅들 >(1984)를 내놓는다. ‘천주교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한 <초대 받은 사람들>은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약 15만 5,000명의 서울 관객을 모은 흥행작. <초대 받은 성웅들>은 ‘천주교 조선 전래 200주년’을 기념하며 서울 대교구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최인현 감독의 < 소명 >(1984)도 200주년 기념작. 이 작품들은 이승훈 김대건 이벽 등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올 시기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그린다. 특히 1984년은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며 가톨릭의 열기가 뜨거웠던 해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까지 만들어진 주요 종교 영화들의 중심 테마는 순교와 박해였다. 이 영화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겪었던 참혹한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하드고어에 가까운 표현을 하기도 했다. <사랑의 원자탄>은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해방 후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다. 그는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의 양자로 들였다. (상단 오른쪽) <저 높은 곳을 향하여>는 주기철 목사의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 거부로 결국 옥사한 그의 이야기는 <하늘 가는 밝은 길>과 <일사각오>로도 영화화되었다. (하단) 최하원 감독의 <초대 받은 사람들>과 <초대 받은 성웅들>. 가톨릭이 조선에 들어오던 시기 겪었던 박해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처럼 1980년대 초 기독교와 가톨릭이 이끈 종교 영화의 열풍은 종교적 이벤트와 신도의 양적 성장을 토대로, 억압 받았던 수난의 역사를 환기시키는 영화들의 만남이 빚어낸 결과였다. 이 영화들을 통해 기독교와 가톨릭은, 신분제 사회와 식민지 체제에서 평등 사상과 민족 정신을 주장하고 지켰던 종교로서 일종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 받았다. 흥미로운 건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의 사례다. 원래는 1977년에 제작되어 개봉 예정이었지만, 유신 정권은 이 영화에서 불온한(?) 기운을 감지했다. 일제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신사 참배에 저항하는 주기철 목사(신영균)의 모습을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세력으로 여겼던 모양. 그래서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던 영화는 198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고, 큰 흥행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종교 영화들이 오로지 신앙의 힘으로 전진했던 걸까? 그렇지 않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의 한국영화는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 시기 충무로는 산업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 떠오르던 종교 이슈를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의 큰 흥행은 자극제 역할을 했고(이 영화는 속편이 기획되기도 했다), 무산되긴 했지만 <정의가 나를 부를 때> <빛을 마셔라> <이천석 목사> 등도 제작될 예정이었다. 기독 영화인들의 모임도 큰 역할을 했다. 1970년대에 모이기 시작한 그들은 1976년 ‘새롭게 하소서’라는 공연으로 연예인 선교의 단초를 마련했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는 개런티 없이 참여하기도 했다. 신영균 고은아 를 비롯 최민수 의 어머니인 강효실 , < 예수 천당 >( 홍의봉 , 1991)의 이영후 , 그리고 임동진 문오장 구봉서 곽규석 윤복희 (가수) 송도영 (성우) 등이 대표적 인물. 한편 종교적 테마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감독들도 등장했는데 복음주의적 입장의 강대진 감독은 <사랑의 원자탄>과 <죽으면 살리라>를(그런데 1984년에는 증산도에 대한 <화평의 길>을 연출하기도 했다), 실존주의적 입장의 유현목 감독은 < 사람의 아들 >(1981)과 < 상한 갈대 >(1984)를, 선교적 입장의 홍의봉 감독은 < 휴거 >(1990) < 천국의 비밀 >(1990) < 예수 천당 >을 내놓았다. 여기서 1980년대 종교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이장호 감독과 이동철(본명 이철용) 작가다. 그들은 한국 종교 영화에 본격적으로 ‘민중’의 개념을 가져왔다. 기독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찬송가였다. 이 영화들의 OST는 대부분 찬송가 멜로디의 변주였다.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를 거부했고, 감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다 해방을 맞이해 극적으로 살아난 안이숙의 이야기인 <죽으면 살리라>. 가수인 윤복희가 주인공을 맡아,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들려준다. 이 시기 기독교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는 ‘회개’였다. <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에서 최자실 목사는 빈민촌에서 교회를 세우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킨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무당( 김을동 )이 회개하는 대목이다. 이동철 원작의 < 꼬방동네 사람들 >은 빈민촌의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그 중엔 고물 장수 목사가 있다. 그는 영화의 결말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예수의 메시지를 전한다. < 과부춤 >은 천민 자본주의 시대의 기독교를 이야기한다. 부흥회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당시 교회의 모습이 풍자된다. 그 시작은 < 낮은 데로 임하소서 >(1982)였다. 안요한 목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청준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주인공이 신의 부름을 받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종교적 체험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한 인물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한국 종교 영화가 담지 못했던 풍경을 보여준다. 그것은 도시 빈민의 모습이다. 안요한(이영호)은 시력을 잃은 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판자촌에 교회를 세우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동철 작가 원작인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인)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에도 등장한다. 영화에는 리어카를 끌며 고물 장사를 하는 목사( 송재호 ) 캐릭터가 있는데, 그는 ‘꼬방동네’(빈민촌) 사람들에게 예수의 메시지를 전한다. 당시 한국 기독교는 대형화와 함께 중산층화를 겪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소외 당한 자들에 대한 시선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민중 교회가 등장했는데, 이런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 매체가 바로 영화였다. 이런 시각은 창녀촌을 배경으로 한 < 밤을 기다리는 해바라기 >( 엄종선 , 1982) 같은 영화에서 간접적으로, 의도하지 않게 드러나기도 했고, 김진홍 목사의 빈민 선교 이야기인 < 새벽을 깨우리로다 >( 이기원 , 1990) 같은 영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김수형 , 1982)은 한국 대형 교회의 상징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최자실 목사(송도영)의 일대기를 통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이장호 감독, 이동철 원작의 <과부춤>(1984)은 본격적인 종교 영화는 아니지만, 당대 한국 기독교를 적나라하게 풍자한 수작이다. 광적인 부흥회, 돈에 눈먼 목사, 교회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는 신도 등 <과부춤>은 ‘천만 기독교인’ 시대의 이면을 들춘다. 이 영화는 단순한 기독교 비판에 그치지 않고, 종교 없인 살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멘털리티를 보여주며, 그 이면엔 ‘가난’이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세상에 대한 당대 기독교 영화의 관심은 불교 영화와도 일맥 상통하는 지점이 있었다. < 만다라 >를 시작으로 1980년대 불교 영화는 끊임없이 속세와 종교적 깨달음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중광 스님의 이야기인 < 허튼 소리 >(김수용, 1986)를 비롯해 < 아제 아제 바라아제 >(임권택, 1989) < 우담바라 >( 김양득 , 1989)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정지영 , 1991) 그리고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배용균 , 1989)까지 이 시기 불교 영화엔 사바 세계에 대한 미련과 번민이 있다. 종종 멜로드라마 장르의 관습에 갇히기도 하지만(유난히 비구니 캐릭터가 많았던 건 그런 이유일까?), 관념적 화두에 머물지 않고 세상과의 관계를 중시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이후 임 감독은 <비구니>를 만들려 했지만, 촬영 도중 중단되어 결국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다. 법난 이후 불교계와 정권은 갈등을 빚었고, 그 와중에 조계종은 이 영화의 제작을 반대하여 결국 중단 사태까지 간 것. 이후 감독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비구니>의 한을 풀었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한국을 넘어, 세계 불교 영화의 대표작이다. 이 영화를 전후로 충무로에 잠깐 불교 영화의 붐이 일었다. 실존주의자 유현목 감독의 <사람의 아들>. 이문열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이 시기 종교 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는 초월적인 기적의 순간을 시각화하는 것이었다. <초대 받은 사람들>에서 정혜(원미경)의 가슴에 십자가 빛이 새겨진다. 1980년대 종교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군사 정권의 군홧발 아래서, 개신교 지도자들은 전두환에게 달려가 조찬 기도회를 열어주었고, 불교계는 10.27법난(1980년)을 겪으며 초토화되었다. 가톨릭은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이 되었다. 기복 신앙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고, ‘종교 과잉’과 ‘사이비’의 시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 카오스 속에서 ‘영적 상품’으로 기획된 종교 영화들은 전반기엔 기독교 영화가, 하반기엔 불교 영화가 중심을 이루며 1980년대를 장식했다. 하지만 1990년대 기획 영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 영화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기업 자본에게 ‘종교’는 매력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이 부활한 건 2010년 전후 즈음. 몇 편의 다큐멘터리가 다시 신앙과 선교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후 주기철 목사에 대한 <일사각오>를 비롯 < 신이 보낸 사람 >( 김진무 , 2014) < 로마서 8:37 >( 신연식 , 2017) < 산상수훈 >(유영의, 2017) 등의 극영화가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