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강동원] 전우치의 연인
- 제작년도
- 2010
사진: 창비 박사학위논문 제출 기한이 약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 나는 여전히 명확한 주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였다. 남은 시간을 꾸준히 쓰기만 해도 눈사태처럼 쌓여 있는 백지를 채우기에는 준비해둔 것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마음속엔 무언가 가득했다. 그것은 대학원 시절 내내 또는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누적되었던 불만과 환멸, 분노와 냉소 같은 것이었다. 십여 년 동안 대학원의 골방에 묵으며 쌓인 이런 정념이 내가 가진 유일한,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자원이라고 주문처럼 되뇌면서 대학에 들어온 이래로 보고 겪어온 장면들을 수없이 복기하곤 했다. 나의 대학 시절은 참여정부의 탈권위주의적인 기조와 더불어 월드컵 이후의 희망과 자신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 등 변화에 대한 기대와 전망 속에 펼쳐졌다. 사회 전반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운동 역시 아직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페미니즘, 장애인권, 신자유주의 비판 등 여러 진보적인 담론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유통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열린 사회’의 환상을 깨는 사건도 많았다. 이라크 파병과 노동자들의 죽음, 대학의 기업화, 한미 FTA 등. 주변에는 한나라당만큼이나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명박이 당선되던 날의 그 우울함을 기억한다. 숭례문 화재와 명박산성, 용산참사와 쌍용차, 노무현의 죽음,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의혹 등으로 점철된 5년. 그리고 이어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는 이미 무너진 사회가 물에 잠기는 듯한 절망감이 들었다. 그런 이명박근혜 시대를 기어이 우리 손으로 끝내던 그때 그 광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랜만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품었었는지. 그런데 드넓은 광장에 촛불이 물결처럼 넘실대던 그 ‘스펙터클’ 이후 한국사회는 과연 얼마나 더 좋은 사회가 되었는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냈는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지켜낸 공(功, merit)을 가져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의 자녀는 어떻게 대학에 가고 어떻게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가? 그들은 여성 비서에게 무슨 짓을 하는가? 이토록 ‘민주적인’ 사회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죽어가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구의역 김군과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왜 죽었는가? 왜 동성애는 (심지어 ‘민주’당 대선 후보에 의해서도) 반대되는가? 왜 장애인은 아직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싸워야 하는가?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는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주주의의 ‘민’에 속하는 이들은 누구이고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국 민주주의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가 이대로여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학문의 언어로 던지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가능케 한 것은 하나의 은유였다. 역사는 극(劇, drama)이라는 것. 가깝게는 지난 2024년 12월 하룻밤 사이에 계엄 선포와 해제가 휩쓸고 지나갔을 때도 국내외 언론에서는 K-드라마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지만, 그 이전부터도 한국 현대사에는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그리고 이미 만들어져 관객들로부터 감동을 자아내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영화 같은 역사, 드라마틱한 역사를 겪으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 중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한 편의 드라마라는 이 은유를 단순한 수사로서가 아니라 진지한 발판으로 삼았다. 만일 역사가 극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러하듯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은 좋은 극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이런 극을 보며 감동해도 좋은가? 계속해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자랑스러워해도 되는가? (상) <오! 꿈의 나라>, <명성, 그 6일의 기록> 중 / (하) <꽃잎> 중 / © 이은, 푸른영상,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이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먼저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 혹은 드라마가 어떤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봤다. 역사라는 극을 구상하는 작가로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장면을 기억하고 기대하는지, 그리고 극에 참여하여 연기하는 배우로서 우리가 어떤 장면을 상연해왔는지 살펴봤다. 1980년대를 한국 민주주의의 가까운 기원으로 설정하고, 이 시기에 생산되었거나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사진, 소설, 시, 그림, 노래, 수기 등을 되는대로 수집하여 보고 읽고 들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와 5․18기념재단 사진아카이브 를 매일 들락거렸고, 대학 도서관과 국회도서관, 유튜브,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등을 뒤져서 < 오! 꿈의 나라 >(이은, 장동홍, 장윤현, 1989)나 < 꽃잎 >(장선우, 1996), < 명성, 그 6일의 기록 >(김동원, 1997) 등을 보았다. 임철우, 공선옥, 김영현, 공지영, 권여선 등의 소설을 읽었고, 각종 도록과 온라인 갤러리에서 오윤, 신학철, 홍성담, 강요배, 임옥상 등의 민중미술 작품을 찾아서 보았다. 1980년대의 여러 일간지를 교차하여 훑어보고 나무위키까지도 활용하면서 각종 사건을 연도별·월별로 숙지했고, 사건의 장소를 지도와 영상에서 찾아보거나 직접 가보기도 했다. 길을 오갈 때는 꽃다지부터 안치환, 윤선애, 이성지, 그리고 김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온갖 민중가요를 들었다. 인용을 위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2017)나 『소년이 온다』(2014)를 다시 들춰볼 때면 책을 덮지 못하고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일쑤였고 영락없이 눈물을 쏟곤 했다. 낮에는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돌보며 그 생명력에 감격하다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는 광주항쟁 희생자들의 훼손된 주검 사진을 보며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는 일은 연구를 위해 각종 표와 숫자로 이루어진 자료(data) 속에 파묻히는 작업과는 달랐다. 그것은 연구이기 이전에 한국에서 사회학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역사적 교양을 뒤늦게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나보다 앞서 세상을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나 역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또다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문화적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간혹 주변에서 나의 근황을 물을 때면 나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본다면서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볍게 답하곤 했지만, 그것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망(webs of significance)”에 동참한다는, 진지한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이었다. [1]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나아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신념처럼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보았거나 기억하는 장면들, 그리고 내가 본 다양한 자료의 페이지마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마다 등장하는 것은 어떤 몸의 이미지였다. 그것은 때로는 곤봉과 개머리판에 맞아 터지고 덜렁거리는 몸, 벌벌 떨며 밀실의 욕조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몸, 해체되고 허물어진 채 부패해가는 몸이었고, 때로는 뒷사람에 밀려 앞으로 앞으로 넘실대며 나아가는 몸, 주변의 건물을 울림통 삼아 웅장한 구호와 노래를 뿜어내는 인파의 거대한 몸집이었다. 그리고 이런 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이런 몸의 이미지를 보는 나의 몸 역시 차분할 수 없었다. 숨을 고르며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언가 벅차오르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는 온몸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를 계속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드라마이지만,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과연 살만한 것이었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김대중, 2009년 1월 7일 일기)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진: 네이버 영화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박하사탕 >(이창동, 1999) 중 김영호( 설경구 )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몸과 마음에 회복될 수 없는 흔적을 가진 이들이 부지기수이며,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도 허다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찬란한 역사였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 역시 축복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이런 민주주의를 계속할 순 없을 것이다. 마냥 자랑스러워하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물론 무대에서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객석을 박차고 나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주역’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대단한 감동을 주는 자랑스러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영화 < 1987 >(장준환, 2017)에서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져요?” 하고 냉소하던 연희( 김태리 )가 선배 이한열( 강동원 )의 죽음을 보고 회심하여 광장으로 달려나가면서 민주주의라는 극의 국면 역시 결정적으로 전환되었음을 현실에서 경험한 이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라는 극에 배우로서 참여하지도 않았고, 객석에서 이러한 극을 보며 감격하지도 않았던, 민주주의의 극장 밖에서 살아온 이들도 있다. 민주주의의 주역들이 민주화된 사회를 향유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낯선 것이었고 남의 것이었다. 이들의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거나 부정하기까지 했던 자들이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의 주인공 아니냐’며 함께 무대로 올라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자고 호소한다면 극장 밖에선 아마 이런 목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1987>, <극장전> 중 / 사진: 네이버 영화 , ㈜영화제작전원사 “영화를 정말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자긴 이제 재미 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 < 극장전 >(홍상수, 2005) 중 영실( 엄지원 ) 모두의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그런 민주주의를 계속해나갈 수도,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의 작가이자 배우로서 우리는 죽음-결집의 레퍼토리와 함께 몸과 마음이 쪼개졌다가 커지기를 반복했다. 스펙터클로 점철된 이러한 영화가 주는 극적 쾌감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우리 삶의 보금자리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덜 자랑스럽고 덜 극적이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희망하며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내란과 탄핵을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수호의 이력을 다시 한 줄 추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이 최근의 역사를 완전무장 하고서 국회로 쳐들어온 계엄군이나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은 시민들이라는 스펙터클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은 소수자와의 연대, 성평등, 노동 있는 민주주의, 평화와 안전, 기억과 애도 등을 외쳤다. [2] 이러한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거기에 힘이 보태진다면, 크고 대단한 장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모두가 아끼는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다른 민주주의를 향한 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 [1] 막스 베버, 「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 김덕영 옮김, 길, 2021, 293쪽; 클리퍼드 기어츠, 『문화의 해석』, 문옥표 옮김, 까치, 1998, 13쪽. [2] 유현미․김이선․김정환․박상은․장진범, 「광장에서 만난 세계: 윤석열 퇴진 집회 시민발언문 분석」, 『경제와 사회』 146.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김정환(사회학자) l 문화사회학, 사회이론을 전공 분야로 삼고 있다. 『연구자의 탄생』(2022, 공저),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2020, 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신자유주의적 상상』(2026, 공역), 『사회론』(2015) 등의 책을 옮겼다. 사회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문화 현상의 해석을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전개와 변화를 탐구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영화산업은 활황의 정점에 있었다. 넘치는 제작자본, 소재와 규모, 스토리텔링, 형식의 실험이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과시하는 르네상스의 시기로 요약된다. 이명세 감독의 < 형사 Duelist >(2005)는 이 무렵에 발표된 문제작 중 한 편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낭만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했다면 슬픈 눈(강동원)과 남순(하지원)의 운명적인 키스 신 정도는 넣었어야 하건만 이명세는 칼날들이 부딪힐 때의 섬광 같은 번쩍임, 펄럭이는 천 조각들, 숨이 넘어갈 듯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땀에 절은 얼굴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스토리의 비약, 감정의 흐름을 등한시하는 태도, 슬픈 눈과 남순이 첫 눈에 반하는 이유, 슬픈 눈이 병조판서(송영창)를 배신하는 이유 등 개연성을 갖춘 플롯이 의당 감당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관객들의 불만을 촉진하였다. 그 대신 세상 돌아가는 일과 유리된 듯한 미적 도취, 비현실의 세계를 뛰노는 상상적 판타지,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연극적인 세트, 몽상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스타일로 장인적 세공술을 담금질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이미지를 조각하는 이명세의 연금술은 현실과 꿈을 교차시키는 대담한 오버랩, 아기자기한 세트, 만화 같은 이미지, 비 관습적인 음악과 사운드로 이야기체 영화의 전통이 완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논쟁을 던져왔다. 다수의 뉴웨이브 감독들이 치열한 현실인식과 그에 대한 발언으로서 이야기와 형식을 고민했다면 이명세는 영화는 무엇으로 말하는가를 밝히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시네마 뉴웨이브’의 시네아스트로 자신을 몰아갔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형사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형사 Duelist>의 스토리는 혼돈이다. 때는 18세기, 입담 좋은 대장장이 봉출(윤주상)의 한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셈이다. 봉출은 호기심에 차 눈을 부라리는 남정네들을 앞에서 한밤에 만난 기이한 분위기의 요염한 아낙(김보연)의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춘다. 그때 프레임의 뒤편에서 애꾸눈의 사내가 “이 상놈의 새끼들, 집중이 안 되잖아!”라고 아리송한 타박을 한다. 험상궃은 사내의 기세에 이야기는 갈 길을 잃고 카메라는 슬그머니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의 캉캉에 맞추어 춤을 추는 탈을 쓴 사람들의 군무로 넘어간다.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속도와 리듬을 무시하고 이어지는 붉은색 천 앞에서 칼춤을 추는 백발의 탈바가지, 북적대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장터의 풍경들로 이미지의 연쇄는 숨이 가쁘다. 군중들 사이에 섞인 좌포청 포교 남순(하지원)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을 틈타 시중에 가짜 돈을 유통하는 범인을 잡기 위해 탐문 중이다. 머리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 형사 남순의 파트너는 사려 깊고 경험이 풍부한 안 포교(안성기). 의욕을 앞세우는 남순과 꼼꼼히 전후 사정을 따져 사건에 접근해가는 안 포교는 서로의 장단점을 상쇄시켜줄 만한 최고의 단짝이라 할 만하다. 수상한 사람들이 유독 많아 보이는 그날 돈자루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소란의 와중에 남순은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탈을 쓴 백발의 괴한을 쫓는다. 좁은 시장 골목과 담벼락 길 사이에서 서로의 뒤를 쫓는 추격전을 벌이지만 신출귀몰한 백발 괴한은 두 형사의 추격을 따돌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형사 Duelist>의 장면들은 관객을 추격의 스릴로 몰아 부쳐 아드레날린에 취하게 만든다. 상당한 속도로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도입부는 통상적인 플롯의 전제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단속적으로 진행하는 신들의 연쇄는 극중 애꾸눈 사내의 푸념처럼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가 필요로 하는 차근차근 쌓아나가기 위한 세팅이 아니라 거두절미하고 스토리의 중간으로 잘라 들어가는 둔탁함이 거기에는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의 혼돈과 충돌이 만발하는 이 시퀀스의 내적 논리는 무엇인가? 시퀀스의 주제는 봉합선이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의 연쇄이다. 광란에 가까운 트릭을 구사하는 20분 동안의 시각적 스토리텔링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카메라와 잠재의식을 시각화한 것 같은 편집을 결합한다. 시각적으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정도이다. 그 자신의 스타일적인 시그니처인 스톱모션 이미지와 번쩍이는 순간 다음으로 넘어가는 불분명한 쇼트의 이행, 피사체들의 수평적 움직임, 와이프와 같은 효과를 내는 쇼트의 수평적 전환을 통해 이명세는 시네마틱 무브먼트와 트랜지션을 매개로 한 대담한 실험을 보여준다. 화면 내 요소들과 카메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활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속도와 방향이 모두 중요해 보인다. 전체 시퀀스는 하나의 쇼트가 사라지고 이어지는 쇼트 안으로 끌어 당겨지는 느낌을 준다. 백발의 괴한의 휘두르는 칼의 그래픽적인 움직임, 프레임 안 인물의 이동 따위가 광학적인 기교인 와이프를 대체하기도 한다. 구성적인 차원에서 이 시퀀스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한 장르에서 또 다른 장르로 이행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요상한 공포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캉캉 춤을 추는 무희들의 뮤지컬로, 수직의 길 위에서 맞서는 서부극적인 구도로, 몸과 칼의 안무가 이루어지는 무협영화로 전환된다. 속도는 진정되고 움직이는 카메라가 여전히 거기에 있는 동안 세트 디자인과 조명의 아름다움으로 구축된 골목에서의 결투는 이 시퀀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슬픈 눈이 쓴 탈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이 결투는 애간장을 태우며 끝이 난다. 탱고 춤과 무모한 칼싸움 사이 어딘가에서 백발의 탈과 남순이 화면에서 뛰어내리고 프레임을 분할한 조명에 잠겼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서 선명하게 또는 흐릿하게 포착된다. 장엄한 촬영 기법과 세트 디자인 위에 얹혀진 조성우의 음악은 클래식과 전통 음악을 혼합하여 영화에 깊이를 부여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액션이 없는 곳에서도 여전히 움직임은 장면 연출의 초점이다. 도입 시퀀스를 마무리하는 결투 외에도 몇 차례 반복되는 영화 속 결투에는 고유한 스타일이 있으며 거기에는 인물들의 구애의 단계가 반영되었다. 두 번째 결투 신은 번쩍이는 칼날만이 어둠을 밝히는 그림자 속에서 정교하게 촬영되었다. 탱고 스타일의 테마로 보완된 음악은 한층 무르익은 감정의 깊이를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 결투는 눈 속에서 사무라이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고, 네 번째는 유혹적인 동작들이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에로티시즘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사 Duelist>에는 영화 예술의 본질이 물질적인 움직임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움직임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스며 있다. 보는 사람의 정신에 닿게 하는 영화의 정수는 어떤 것일까? 그런데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감각의 액션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형사 Duelist>는 골치가 아프고 지루한 영화였다.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토리와 대화, 캐릭터, 장르 중 어느 것도 장면이 만들어내는 느낌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이명세는 관객을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움직임을 화면에 묘사하여 정신의 움직임을 시각화하기 위해 진력하였다. 움직임에 대한 이러한 강박은 현대영화가 잃어버린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 사운드의 출현으로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리조차 이미지화되는 감각의 전환을 창조하려는 야심이 이 영화, <형사 Duelist>를 특별하게 만든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1.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연재를 시작한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가 만들 에세이 필름의 제작비는 한푼도 모이지 않았다. 투자자나 제작자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시작할 때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전개에 아연실색한 정연씨는 실망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지돈씨, 어쩌죠. 게다가 연재 조회 수는 매회 마다 정확히 반토막이 났고 이렇게 계속 쪼개진다면 쿼크 입자 수준까지 내려갈 지경이었다. 정연씨, 꼭 돈이 있어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요. 내가 말했다. 로저 코먼이나 로버트 로드리게즈를 떠올려봐요. 나는 로저 코먼이 첫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기시켰다. 로저 코먼은 본인이 제작한 첫 영화 <해저에서 온 괴물>(1954)을 찍기 위해 지인들에게 투자금 개념으로 돈을 받아냈다. 조건은 성공하면 러닝 개런티까지 더해서 돌려주겠다는 거였다. 심지어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에게도 임금을 주기는 커녕 돈을 받았다. 로저 코먼이 와이어트 바니에게 물었다. 바니. 자네 전에 시나리오 팔아서 얼마 받았나? 4천 달러요. 좋아! 그럼 2천 달러만 투자하게. 감독으로 데뷔시켜줄게. 그러니까 영화는 주식 투자와 다를 바 없다. “투기 시대의 피투자자 정치Investee Politics in a Speculative Age”인 거죠. 금정연이 손 따옴표를 그리며 말했다. 지돈씨가 제게 영감을 줬네요. 금정연에 의하면 벨기에의 철학자 미셸 페르Michel Feher는 이렇게 말했다. 금융화된 “에이전시”의 노동자 주체는 신자유주의의 주체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주체가 임금을 받고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라면 동시대의 주체는 자산을 평가받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야한다. 아마존이나 우버 같은 기업을 보라. 지금 당장은 이윤이 낮거나 손해를 봐도 주가는 치솟는다. 핵심은 상품 판매를 통한 이윤이 아니라 낙관적인 미래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의 실행이다. 바로 이게 모든 예술-창작의 원리지요. 특히 영화.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자본주의가 유희 자본주의화 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아……? 이제 우리의 포트폴리오-연재를 관리해야 할 때가 왔네요. 2. 포트폴리오 혹시 잊은 사람들이 있을까봐 말하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은 에세이 필름을 제작하기 위한 시나리오 또는 트리트먼트다. 단지 “에세이”라거나 칼럼, 아니면 영화에 대한 수다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우리는 21세기 한국 영화가 어쩌면 갈수도 있었을 상상의 경로를 민속지적 관점에서 기억하고 복원하는 오디오-비주얼-에세이 필름을 제작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고 이 영화의 감독은 금정연이 될 예정이다. Lost Korean in Korean cinema 감독 금정연 시나리오 금정연 목소리 금정연 제작 금정연 편집 금정연 … .. Thanks to 정지돈… 이게 내가 (미쉘 페르의 용어로 말하면) 추측하고Speculative 투기하는Speculative 미래다. 문제는 금정연이 영화감독을 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 상업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됐을 때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금정연이 영화감독까지 탄탄대로를 밟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우리랑 연락 끊지 마요, 정연씨, VIP 시사회에서 강동원 옆에 앉혀줘요, 정연씨,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금정연은 고개를 저었다. 지돈씨, 저는 영화 감독이 될 생각이 없어요. 왜요, 왜요. 정연씨가 아니면 누가 감독해요? 누군가 하지 않을까요… 어느 글에서 쓴 적 있지만 금정연은 야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기다리는 유형의 사람이지 쟁취하거나 애쓰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서평가가 됐고 어쩌다보니 편집위원이 됐으며 어쩌다보니 시나리오 작가도… 그렇지만 영화감독은 어쩌다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감독이 되기 위해선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감독의 인성에 대한 걱정 없이 영화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직업으로서의 영화감독은 도달하기 힘들 뿐 아니라 유지하기도 힘들다. 어떤 감독들은 이 과정에서 종종 맛이 가기도 하고(이에 관한 내용은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시그마북스, 2010)를 참고할 것) 맛이 간 상태로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거대한 똥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게 바로 내가 금정연이라는 장외 주식에 내기를 건 이유다. 미셸 페르는 말했다. 투기자본주의 시대에는 노동조합과 다른 종류의 저항이 필요하다. 그것은 투자를 미래를 저당잡히는 행위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피투자자들의 힘을 거대하게 조직해 그들에게 투자하지 않고서는 체제가 유지될 수 없게 만드는 거라고… 다시 말해 <나랏말싸미>가 잘 되기만 하면…… 그러나 영화 개봉과 거의 동시에 우리는 증권거래소의 통보를 받았다. 상장 폐지. 우리 중에 유일하게 주식을 하는 소설가 오한기는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잡주에 투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잡주? 금정…? 참고로 한기씨는 공격적인 주식 투자로 한푼도 벌지 못했고, 요즘은 일론 머스크가 나오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설치류를 닮은 어느 공무원이 도지코인에 투자했다가 전재산을 잃고… 일론 머스크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그가 탄 스페이스X의 민간 우주선에 숨어들었다가 화성에서 온 외계인을 만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3. Secret Lives of Great Filmmakers 금정연 King jung yeon 1981. 9. 2. ~ 국적 대한민국 별자리 처녀자리 대표작 <커피와 담배와 영화>, <아무튼 택시 드라이버> 그외 다수 말말말…. “Saram salryeo yeogi saram itseoyo.” 영화계의 전설에 따르면 금정연이 처음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한 것은 영화평론가 겸 영화감독 정성일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성일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연재 중이던 금정연의 칼럼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을 눈여겨봤다가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추천했다. “금정연에게 맡겨봐. 마감을 칼같이 지켜.” 4. 얼굴들 감독의 얼굴이 아니야. 금정연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을 찍을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말했다. 왜? 봐봐. 친구가 금정연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다. 그리고 한국 영화감독들의 이름을 검색창에 차례로 입력했다. 박XX, 김XX, 이XX …. 차이를 모르겠어? 무슨 차이? 금정연과 한국 영화 감독들의 관상 차이. ……. 나는 금정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정연씨, 정연씨는 영화감독 관상이 아니래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정연씨는 그 말을 듣고 심각해졌다. 그러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어쩌죠? 제 남은 인생은 어떡하구요. 우리 나윤이의 앞날은…? 나 역시 심각해진 건 마찬가지였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금정연의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관상 문제가 터진 것이다. 관상이라니, 21세기 메타버스 시대에 무슨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와 정연씨는 우리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관상의 문제는 얼굴의 문제이며 얼굴은 언어와 함께 영화의 핵심이자 동시에 제거되어야 할 형상,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스펙타클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옵시스! 정연씨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예요? 미메시스!! 그건 또 왜…? 지돈씨,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머의 위버 마리오네트와 로베르 브레송의 모델론을 거쳐 영화의 형상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무슨 말인지?? 인간의 뇌에서 얼굴 인식 매커니즘은 가장 고등한 기능 중 하나예요. 영장류의 뇌 하측두엽에는 얼굴에만 반응하는 영역 여섯 곳이 있습니다. 이를 페이스 패치Face Patch라고 해요. 각 패치들은 부분 기반 관점과 전체론적인 게슈탈트 원리를 결합해서 얼굴을 검출하고 구성하고 식별합니다. 어떤 패치는 얼굴의 방향에 반응하고 어떤 패치는 모양에 반응해요. 더 흥미로운 건 내측두엽에는 사람의 이미지에만 반응하는 신경세포 집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중 한 세포는 유명 인사의 얼굴에만 반응해요!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 중요한 건 영화가 일종의 얼굴 패치라는 사실입니다. 재현이 중심이 된 영화 속의 얼굴은 특정 문화권의 얼굴을 뇌에 업데이트한다는 거죠. 패치를 설치한 것처럼요. 연재 초기에 했던 이야기 기억나세요?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자국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어는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니까, 모든 감독들이 무성 영화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화라는 예술의 핵심처럼 여겨진 얼굴 역시 사실은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예요. 특히 스펙타클로서 재현된 얼굴은 더욱 그렇죠. 제가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그와 브레송을 말한 이유를 이제 알겠죠? 필립 라쿠 라바르트의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연극에서 무대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스펙타클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은 오직 목소리, 낭독만으로 전달할 수 있다. 라쿠 라바르트에게 미메시스란 어떤 장면의 모사 또는 재현이 아니라 현시다.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만드는 것. 이러한 실천을 위해서 형상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현이란 욕망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들로 붐비는 거추장스러운 형상화이다. 즉 그것은 알리바이의 공간이다.” 형상화가 재현이 아닌 즐거움으로서의 욕망이 되기 위해서는 “모방적 구조가 아닌 도표적 구조”로 드러나야 한다. 영화는 그럴 때에 진정 형상적인 것이 된다. 20세기 영국의 배우이자 연극연출가 고든 크레이그는 연극이 사회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창조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천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배우의 움직임은 상징적인 동작만으로 제한되고 2) 얼굴에 가면을 씌우며 3) 종국에는 배우를 인형으로 대체할 것. 로베르 브레송 “모델들. 그들은 겉으로는 기계적이 되었지만, 내적으로는 변한 것 하나 없이 순진무구하다.” 그러므로 비약하면, 정연씨가 말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영원히 지금 여기서 씌어져야 합니다. 기록, 확인, 재현, 묘사의 조작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수행동사라고 부르는 것, 정확히 말해 발화하는 행위 외에 어떤 언표도 가지지 아니하는 그런 진귀한 언술적인 형태. 삶은 영화를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영화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뿐입니다. 이른바 포스트-얼굴Post-Ulgul! 응? 지돈씨 대략 이런 내용으로 이번 연재는 마무리 해주세요. 음… 더 자세히 설명해야 되지 않을까요? 모르겠어요? 알듯말듯… 그럼 제가 다음 연재 때 보충할게요. 정말요? 어쩌면…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김경식 옮김, 2000, 열린책들)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로버트 쉬네이큰버그, 정미우 옮김, 시그마북스, 2010) 『텍스트의 즐거움』(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동문선, 1997) 『무대』(필립 라쿠-라바르트, 장 뤽 낭시, 조만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통찰의 시대』(에릭 캔델, 이한음 옮김, 알에치코리아, 2014) <고든 크레이그의 연극예술론>(정하니, 2018)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로베르 브레송, 오일환, 김경온 옮김, 동문선, 2003) “Movements of Counter-Speculation: A Conversation with Michel Feher”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movements-of-counter-speculation-a-conversation-with-michel-feher/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