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인생
- 감독
- 조성규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류승수, 이솜, 나윤성, 이윤선, 이영랑, 안지혜, 심경자, 윤성재, 김영천, 박충신, 조성규, 김정남, 이종순, 박이추, 안효정, 강계선, 임강윤, 백원길, 고창석, 이정은, 백현진, 휘황, 백재호, 박해일, 조성규, 조은경, 조은운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강릉 시네필을 위한 명소: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홈플러스, 중앙시장, 월화거리 등이 있는 강릉의 시내 한 가운데 쌍둥이 빌딩인 ‘신영 빌딩’의 우측 건물 4층에 위치하고 있다. 구도심이긴 하지만 강릉 시내 어디에 있건 10분이면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 도착할 수 있다. 위치는 이곳의 이름이 신영극장이었을 때와 동일한데, 1990년 신영극장이 폭설로 무너져서 이듬해 다시 건물을 지을 때 같은 위치에 지었다. 신영극장 시절부터 강릉 사람들은 ‘신영극장 앞에서 보자’라는 약속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극장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 이름이 오랫동안 ‘신영극장’이라서 극장에 한 번도 오지 않은 강릉 사람이 있다고 해도 버스 정류장 이름은 모두 알 정도이다. 강릉역 KTX가 개통되어 강릉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나면서 특히 서울에서 온, 영화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신영극장을 찾는 경우도 많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6)에서 김민희 가 혼자 영화를 보는 극장이 바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인데, 사람들은 강릉 바다를 보러 가거나 커피를 마시러 가기 전에 순례 코스처럼 이곳에 들르곤 한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로비 전경 건물 내부를 살펴보자면, 4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올라갈 수 있어서 장애인 접근성이 좋은 편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라운지가 나오는데, 정면에 필름 영사기가 크게 보인다. 영사기 너머로 테이블과 소파 의자 등이 놓여 있다. 라운지 안에는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대기 공간과 매표소가 있다. 기다리는 동안 자료를 둘러보고 차와 커피, 음료는 물론 팝콘을 구매할 수 있다. 한쪽 벽에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 홍보물들은 물론 이전 상영작들의 포스터들이 붙어 있어서 작은 영화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또, 대여할 수 있는 블루레이와 DVD도 진열되어 있고 음료는 물론 팝콘도 구매할 수 있다. 한쪽 벽에 흰 타일로 재개관 당시 극장의 보증금을 후원한 사람들과 기관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이전 신영극장일 때의 좌석 배치도와 관람자 준수사항이 적힌 오래된 액자도 걸려 있다. 우여곡절의 역사 신영극장은 강릉의 네 번째 극장으로 1965년 11월 1일, 극장주 최종승 씨에 의해 문을 열었다. 당시 810개의 좌석을 가진 극장으로 강릉의 다른 극장보다 규모가 꽤 커서 학교 학예발표회나 지역의 공무원 교육장으로도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1990년 강릉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을 때 쌓인 눈을 이기지 못하고 지붕이 무너졌는데 다음 해인 1991년 9월 6일 최종승 씨는 무너진 신영극장 자리에 새로 쌍둥이 건물을 올린 뒤 신영 1, 2관을 오픈해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2005년 최종승 씨 사망 이후 직원들이 극장 경영을 유지하다 2007년부터 아들인 최상순 대표가 인수해 운영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강릉 지역의 영화관람 가능 인구와 관람객이 감소한데다 멀티플렉스의 위세에 밀려 2007년 7월 2관을 폐관하고, 2009년 2월 4일 마지막 상영을 하며 1관마저 폐관하게 되었다. 상영관 내부 이후, 강릉의 시민모임이자 영화 단체인 ‘강릉씨네마떼끄’가 기금 모금과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 선정으로 구 신영극장의 2관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을 다시 열게 되면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재탄생했다. 강릉씨네마떼끄는 극장 좌석마다 시민들의 후원금을 받아 이름을 새겨주는 ‘나는 주인이다’ 프로젝트로 보증금을 마련해 지역 최초 민간 비영리 극장으로 2012년 5월 18일 문을 열었다. 신영극장 2관에서 ‘독립예술극장 신영’으로 개관한 이후 현재까지 강릉의 유일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극장이자 단관 극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운영은 강릉 지역 유일의 영화단체 ‘강릉씨네마떼끄’가 지속하고 있다. 강릉씨네마떼끄는 1996년에 창립된 영화단체로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운영과 함께 매년 8월에 열리는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후 재정적인 이유로 2016년 3월 1일부터 1년여 간 임시휴관을 한 뒤 강릉시의 안정적인 지원 약속을 바탕으로 다음 해인 2017년 3월 24일 재개관했다. 당시 강릉시는 “독립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을 확보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라며 5천만 원 지원을 결정했다. 이는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전국 최초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 직접 지원한 사례이다. 재개관과 동시에 내부를 리뉴얼을 했는데, 기존 200석에서 111석으로 좌석을 변경했다. 이후 2022년 2월 10일에는 전 좌석을 가죽 시트로 변경하고 4K 레이저 영사기를 도입했다. 그러나 2023년 다시 폐관 위기에 놓이는데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지원하는 강릉시와 강원도의 보조금이 2023년 들어 전액 삭감되면서 심각한 운영난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이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극장을 이어가기 위해 2월부터 3월까지 2개월간 후원 캠페인을 벌여 4천만 원의 후원금을 달성하였고 지자체로부터도 추가경정예산을 약속받았다. 로비의 DVD, 블루레이 컬렉션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현재 국내외 다양한 작품을 하루에 5편씩 매일 상영하고 있다. 강릉씨네마떼끄 회원 회비는 월 1만 원 이상으로 회원들에게는 기념 스탬프 발행과 할인 혜택을 주고 있고,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 보유하고 있는 DVD, 블루레이도 무료로 대여 가능하다. 비회원은 DVD 2000원, 블루레이 3000원을 내고 대여한다. 지역민들의 주도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점이 현재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가장 큰 특성이다. 신영은 버스정류장 이름으로 유적처럼 강릉 주민들에게 남기보다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문화예술공간이자 극장으로 살아남기 위해 꾸준한 행보와 더불어 치열한 고민과 모색을 하는 기로에 있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강원 강릉시 경강로 2100 4층 2. 설립일 : 최초 신영극장은 1965년 11월 1일에 개관 2012년 5월 8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 3. 대표자 : 강릉씨네마떼끄 (비영리 민간극장) 4. 규모 : 상영관 크기 (W*D*H) 11.2 * 18.4 * 5, 62.5평, 주차장 없음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 1개관 111석 (일반좌석 107석, 휠체어 4석) 6. 운영시간 : 평일 12시 오픈, 주말/휴일 10시30분 오픈 (하루 작품 5~6편 상영),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정기휴무일 7. 입장료 : 일반 8,000원, 회원(강릉씨네마떼끄/나는주인이다/시네필) 7,000원, 청소년 7,000원, 초등학생 5,000원, 노인/장애인/미취학아동 4,000원, 조조 6,000원 8. 조직 구성 (5인) 대표(권정삼), 사무처장(프로그래머 겸임, 송은지), 사무국장(운영팀, 김슬기), 홍보팀(자원활동가 2인) 9. 공간 구성 상영관 1관, 매점 1개(매표소와 같은 공간), 휴게실 1개(매표소와 같은 공간으로 의자 20석 비치되어 있음) 필자 : 김문경 사진촬영 : 허 성 취재 및 인터뷰 일자 : 2023년 4월 24일
2021년 10월 15일 정연씨에게, 정연씨, 한국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얼마 전 물으셨지요. 평소 그랬듯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싫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싫은 까닭을 설명하려면 밝힐 일이 너무 많아 말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글로 대답을 드리려 하지만, 이것도 매우 어중간한 대답으로 그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싫음과 그 여파가 한국 영화와 제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이 주제의 중대성이 제 기억과 이해력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1) 그렇습니다, 정연씨. 제가 지금 정연씨에게 쓰고 있는 건 편지입니다. 공교롭게도 정연씨에게 처음 편지를 쓴 날이 2015년 10월 15일이더군요. 기억하시나요? 정확히 7년 만에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7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해 그전과 지금을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없을 정도지만 솔직히 말하면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연씨는 그동안 아기를 낳고 일산으로 이사 갔으며 네 권의 책을 내고 한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백스물두번의 토크 사회를 봤으며 담배를 끊고 살이 쪘지만 여전히 브릿팝을 듣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LP판으로 브릿팝을 듣는다는 사실이겠지요. 정연씨가 휴대용 턴테이블을 문보영 시인에게 선물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연유로 정연씨는 그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걸까요. 문보영씨의 인상적인 에세이 <일기 시대>에는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영씨의 성격 유형은 INFP로 ‘열정적인 중재자’였는데 어느 날 INFJ ‘선의의 옹호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연씨는 INTP ‘논리적인 사색가’이지요. 두 유형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때문에 잘 맞다고 합니다. 특히 비즈니스 파트너로 찰떡궁합이라는군요(참고로 저는 MBTI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만해서일까요, 너무 겁쟁이라서일까요. 어쩌면 이 둘은 같은 거 아닐까요). 아무튼, 정연씨는 턴테이블이 아까우니 LP를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시험 삼아 LP를 샀다지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수십년 간 들어온 브릿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제프 베조스는 정연씨가 주문한 New Order의 네 장의 LP판 중 두 장을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상태로 배송했지요. 그럼에도 당신의 못말리는 구매욕은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자비스 코커와 칠리 곤잘레스의 “ROOM29”를 주문했으니까요. “ROOM29”는 선셋대로의 전설적인 호텔 샤또 마몽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앨범이라고 하더군요. 자비스 코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레코드는 영화가 인간 존재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그 지점에 완전 푹 빠져 있어요. 2) 자비스와 칠리가 2017년에 런던 바비컨 센터에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정연씨, 상우씨와 바비컨 센터를 걷던 2019년의 어느 가을 날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은 점심 대신 칠리 페퍼 아이스크림을 먹었지요. “ROO29”에도 이런 제목의 곡이 있네요. “Ice Cream as Main Course.”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 모든 것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가 말이지요. 사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음악: 브릿팝(25년째) 좋아하는 뮤지션: 뉴오더(25년째) 기록 시스템: 미니컴포넌트 -> CD플레이어 -> 아이팟 -> 스포티파이 -> 턴테이블 본질은 그대론데 실존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턴테이블로까지 브릿팝을 듣는 정연씨가 조금 지긋지긋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영화를 향유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하는 시즌제 드라마가 저에게는 루이 푀이야드 같은 감독의 연속영화(serial film)를 연상시키기도 하니까요. 참고로 정종화 연구원은 연속영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편 극영화가 정착되기 이전인 191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제작되고 유행했다. 주로 활극적인 내용을 2권(롤) 1편으로 구성하고 그 편의 마지막에 위기일발의 장면(cliffhanger)을 넣어, 최종편이 끝나는 12, 13주부터 24, 25주 동안 관객들이 매주 영화관을 다니도록 만드는 형태다.” 3) 어쩐지 욕하면서도 < 오징어게임 > 다음화를 클릭하는 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설명입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정말 다를까요? 뭐가, 얼마나?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일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 시스템의 동적평형 때문이지요. 일본의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의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변화란 어쩌면 이런 것 아닐까요.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4) 여기 질서/파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2015년 10월, 저는 고다르가 남가주 대학에서 토론 중 한 말을 인용하며 편지의 끝을 맺었습니다. 2015년 10월 31일이 보낸 편지였지요. 그리고 7년이 지난 2021년 10월 30일, 정연씨와 저는 강릉영화제에서 “한국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사람들”을 주제로 토크를 할 예정이지요. 정연씨가 보내온 대본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더군요. 지돈: 그러나 사람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지 않나요? 정연: 그런 점을 바꾸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을 보러 올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 에세이-필름을 보러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뀌어야한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그것은 단지 영화를 만드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돈: 관객을 바꾸려고 한다는 말이에요?! 정연: (관객을 바라보며) 세계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 5) 저는 정연씨의 이 대본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과거에 우리가 나눈 원고-편지에 대한 단순한 패러디인지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희에게는 몇 가지 논쟁점이 더 있지요. 정연씨는 최근 홍상수의 영화에 빠졌고 21세기 한국영화는 홍상수다 , 라고 주장하는 꿈을 종종 꾸기도 합니다. 저로 말할 거 같으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홍상수(또는 김기덕)이며 그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집니다. 제가 한국 영화로 진입한 첫번째 입구였던 봉준호와 박찬욱이 지금까지 든든한 이정표가 되었다면 아마 저는 길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를 보며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대의 사람이 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어떤 별은 너무 환하게 불타 쳐다 볼 수 없을 정도고 어떤 별은 블랙홀에 흡수됐으며 어떤 별은 낙하해서 코앞을 스쳐지나기도 합니다. 길을 알려주기는커녕 우리의 행성을 박살내려는 양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홍상수고 그러므로 저와 정연씨가 10월 말에 강릉에 가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강릉이 어떤 장소인지 기억하시나요? < 강원도의 힘 >이 20세기 영화라는 이유로 우리의 에세이 필름에서 제외하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에도 강릉이 나오니까요. 저는 정연씨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스트리밍 사이트에 있는 모든 홍상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송선미 분이 김민희 분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네요. “꼭 읽을 책을 사. 그래서 그 책을 깊이 만나. 정말 싸우듯이 그렇게 만나야 돼, 책하고.” 알겠죠, 정연씨? 꼭 읽을 책을 사세요. 샀던 책은 그만 사시구요. 2021년 10월 24일 정연씨에게 어제 정연씨와 리들리 스콧의 신작 < 라스트 듀얼 > GV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 걸까요? 지나치게 일찍 찾아온 추위 때문에 온몸이 떨려서 그런 걸까요? 저는 오늘 검색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좋은 작품에 비해 GV는 좀 아쉽더군요. 오른쪽에 계신 작가님이 이야기를 벌여놓으면 왼쪽에 계신 평론가님이 수습하고 정리하는 진행이 다소 매끄럽지 않아 그렇지 전 꽤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 네영카 및 익스트림 무비 자유게시판에서 발췌 보시다시피 정연씨가 또 한번 저를 구원했습니다. 정연씨가 아니었다면 GV는 수렁에 빠졌을 게 분명합니다. 저희가 처음했던 GV 기억하시나요? 빔 벤더스의 영화 <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이었죠. 저희의 GV는 어느 네티즌에 의해 “올해 최악의 GV”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더 이상의 GV 섭외는 없었죠(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영화 관계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저희는 운좋게 GV 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정연씨는 과거의 오욕을 극복하고 이동진-되기를 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흔들림 없는 눈빛과 감미로운 목소리, 아담 드라이버의 잘생김 연기와 리들리 스콧의 의사-페미니즘에 대한 시의적절한 논평… 거리두기로 인해 구 아이맥스 관이었던 용산 CGV 4관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접한 정연씨의 모습은 새로운 평론가의 탄생을 보는 듯했다고, 어느 관객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또 한번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 2015년 10월을 가로질렀던 저희의 편지에 리들리 스콧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오늘과 같은 날인 10월 24일, 제가 정연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말입니다. 저는 < 마션 >을 보고 난 뒤 이렇게 씁니다. <마션>을 보니 리들리 스콧은 하수라는 저의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는 쓸개 빠진 곰처럼 굴더군요. 꼬리를 흔드는 곰이란! 과거란 대체 무엇인가요. 정연씨. GV에서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 속에 울리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일은 언제나 지금도 일어납니다. 그 일치가 너무 놀라워서 손에 쥔 상상 속의 펜을 바닥에 떨어뜨릴 지경입니다. 아무래도 편지 따위를 쓰지 말았어야 했나 봅니다. 자기 자신한테서 벗어나질 못하니 말입니다. 사실 저는 편지를 혐오합니다. 과거의 편지에서도 내내 투덜대더군요. 편지는 21세기 최대의 가식이다, 편지를 쓰느니 돼지를 잡겠다…(이건 앨프레드 테니슨의 말입니다). 그러나 가끔 편지가 위대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령작가 리 이스라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녀는 1967년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를 다룬 에스콰이어지 기사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비타협적이고 시니컬한 브룩클린 출신 유대계 레즈비언이었던 리 이스라엘은 이후 탈룰라 뱅크헤드와 도로시 킬갈렌 같은 여성들의 전기를 쓰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그러나 운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작업한 화장품 업계의 대부 에스티 로더의 책이 처참한 평가를 받게 되거든요. 그녀는 이후 긴 슬럼프와 가난, 정신적인 궁핍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 리 이스라엘을 구한 건 편지였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해도 유명인들의 편지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고서적 같은 물품이었습니다. 뉴욕의 서점들은 낡은 서랍에서 나온 편지를 구매하고 수집가들에게 되팔았지요. 리 이스라엘은 편지를 위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타자기를 사용해 작가나 코미디언, 배우의 문체를 흉내낸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끝에 어설프게 위조한 서명만 하면 작업 끝! 아무도 그녀의 위조 편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죠. “도로시 파커는 역시 너무 유머러스해! 그녀의 성격이 편지에 묻어나네요.” 그러나 결국 리 이스라엘의 사기 행각은 FBI에게 적발됩니다. 리 이스라엘은 죽는 날까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을 썼고 그 이야기는 영화화가 되었지요. 자서전과 영화 모두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히 울립니다. 편지는 내 최고 걸작이고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리 이스라엘의 편지 쓰기를 로지 브라이도티의 “변신: 되기”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리 이스라엘이 도로시 파커나 헤밍웨이, 노엘 카워드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편지가 되었지요. 이른바 편지-되기. 그리고 그녀의 편지는 수신자에게 배달되지 않습니다. 편지 속의 수신자는 처음부터 위조된, 가짜 수신자일 뿐이지요. 진짜 수신자는 익명의 군중이며 이 편지는 시작부터 오배의 가능성 위에서 쓰였습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썼지요. “’유령’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모든 시니피앙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확률적 오배가능성, 오배될 가능성(약속)과 오배되었을지 모르는 가능성의 조합에 다름아니다.” 6) 리 이스라엘이 고스트라이터였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제가 한국영화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과도 관련이 없구요. 그러나 저는 여기서 아주 간명한 하나의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한국 영화의 얼굴과 언어와 불화하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면, “나”를 대체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로지 브라이도티를 인용할 차례입니다. 되기들은 외부의 다른 타자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면서, 주체를 그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비통일적 실재로서의 유목 주체는 자기 추진적인 동시에 이질적으로 정의되거나 외부를 향한다. 모든 되기는 소수자로, 다시 말해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고전적인 이원론의 ‘타자들’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그 과정에서 이 타자들을 대체하고 재영토화하지만 항상 일시적인 기준으로만 그렇게 한다. 7) 김홍준의 < 나의 한국 영화 >를 보라고 했던 제 말을 기억하시나요? 임재철 평론가는 폴 발레리가 “비평이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식한 사람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와 자기 자신 너머로, 포스트-미Post-Me, 포스트-(내)얼굴… 임재철 평론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오르네요. “금정연은 영화 감독을 해야돼. 근데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려. 너무 착해보이잖아.” 부디 무사히 강릉에서 뵙길 바라며. *** 1) <작가의 편지>(마이클 버드, 올랜도 버드, 황종민 옮길, 예술문화, 2021) 2) "How a mythical Hollywood hotel inspired Jarvis Cocker's and Chilly Gonzales' project about the magic of cinema", <Loud and Quiet> 3) " 연속영화와 연쇄극, 극영화의 등장 ", 정종화, KMDb 4) <생물과 무생물 사이>(후쿠오카 신이치,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8) 5) <고다르 X 고다르>(데이비드 스테릿 엮음, 박시찬 옮김, 이모션북스, 2010) 6) <존재론적 우편적>(아즈마 히로키,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5) 7)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이장호 는 70년대 '영상시대' 활동과 더불어 ‘청년영화의 기수’였으며 ‘최초의 스타감독’이라고 불린 시대적 문화 아이콘이었다. 특히 80년대는 이장호의 전성시대였다. ‘80년의 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 바람 불어 좋은 날 >은 당시 청년 영화인들의 교과서였다. 당대 발표된 ‘80년대 한국영화 베스트 10’에는 그의 영화가 4편이나 선정되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 과부춤 >과 더불어 그 목록에 포함된 영화가 바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다. 85년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이제하의 단편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85년 영화제작 자율화 시행 이후 그가 설립한 판영화에서 제작하였는데, 87년 어렵게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을 했으나 관람 숫자는 미미했다. 당대의 지배적인 한국영화 관람 체험 속에서 이 영화는 낯설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는 편안한 관람 행위를 허하지 않는다. 수려하지만 그 수려함을 세피아톤으로 톤 다운시켜 놓은 강원도 산길을 익스트림 롱 쇼트의 롱테이크로 찍은 화표면은 마치 정지된 스틸의 그것 같다. 화면 왼쪽으로 원경에서부터 쭉 뻗은 길로 남자와 여자가, 그리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러나 화면 앞 가장 가까운 거리에 도달할 때 까지도 그들은 식별되지 않는다. 아울러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다른 내재적 사운드가 소거된 상태에서 마치 보이스오버처럼 원근감 없이 들려오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 소리는, 현재 그들이 나누는 대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미지와 비동조화된 사운드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인과법칙에 기초하지 않은 서사의 진행, 행위에 대한 동기와 설명의 희박함,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지우는 쇼트의 배열, 극적 흐름과 맥락을 단절시키는 몽타주 시퀀스들은 시공간적 통일성과 연속성의 감각을 흩뜨리면서, 샤머니즘적인 운명론적 세계관의 묘사와 맞물려, 종국에는 불가해한 재현의 지점에 다다른다. 영화는 크게 황토 빛 모노크롬과 푸른 빛 모노크롬으로 처리된 두 개의 의미 계열체로 구성되어 있다. 몇 개의 시간적 재배치가 있으며 간헐적으로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허무는 주관적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황토 빛 모노크롬의 세계는 대체로 3박 4일의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적 현재를 재현한다. 반면 그 황토 빛 시공간을 절단하고 틈입하는 푸른 빛 모노크롬의 의미 계열체는 인물들의 회상, 주관적 플래시백, 의식의 흐름, 운명적 암시 같은 현재 시제를 벗어나, 충돌하며 운동하는 이미지들의 배열이다. 이장호는 <바보선언>에서 실험했던 즉흥적이고 연상적인 연출법을 재도입하는데, <나그네>에서 그러한 연출 방식은 명확한 좌표 없이 강원도를 떠돌며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직면하는 인물들을 그리는 데에는 더없이 잘 맞아 보인다. 개성이 고향인 사내와 전쟁 통에 고향이 어딘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아내, 휴전선 부근 월산이 고향인 노(老) 회장 모두 전쟁으로 인하여 이산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속초, 원통, 강릉, 경포, 인제에 이르는 영화적 공간에서도 원통, 속초 등은 분단과 그 결과인 휴전선 아래 마을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공간의 지정학적 의미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예컨대 여행 첫날 사내가 아내의 유골을 바닷가에 뿌리려다 군인에게 제지를 당하고 결국 철수하는 것이라든가, 강릉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회를 파는 전주식당의 사장이 "전쟁 통에 나같이 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냐"고 반문하는 것 등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몇몇 장면은 자유연상과 자동기법으로 이러한 역사적인 지정학적 트라우마 의미를 기입한다. 백사장에 놓은 가방 속 아내의 유골을 바라보던 시선이 “고향이 원산은 아니라예”라는 아내의 목소리 사운드와 연결되면, 강릉 앞바다 위로 포화와 피난 행렬을 담은 한국전쟁 당시의 뉴스릴이 오버랩 된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 시선의 주체를 알 수 없는 일련의 국도 이미지의 몽타주 시퀀스 끝에, 우리는 국방 한계선과 상판이 없이 끊어진 다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한 시도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담대하다. 영화 전체에 걸쳐 산포되어 있는 분단의 트라우마가 영화적 주요 배음을 이루고 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샤머니즘적 운명이라는 또 다른 배음이 날 선듯한 감각으로 강화된다. 사내의 주체의 중심 없음 혹은 부유(浮遊)함은 실향(失鄕)과 상처(喪妻)의 중층 결정의 결과물이다. 실향의 감각은 아내의 죽음과 이중 노출되어 있으며, 그와 연합된 상실감과 죄책감은 노정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성매매 여성과 ‘색시’, 그리고 ‘미세스 최’에게 투사된다. (아내, ‘색시’, ‘미세스 최’는 모두 이보희 가 연기한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영화는 최가 몇 해 전 받았던 점괘, 즉 “나이 서른에 물가에서 관을 세 개 짊어진 남자를 반드시 만날 것, 그가 전생의 남편”이라는 운명론적 예언을 향해 가는데, 기실 색시와 최는 모두 아내의 더블들이다. 그와 간밤에 관계를 가졌던 ‘색시’의 죽음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환시(幻視)로 대체된다. 최가 고향을 언급하며 “아우라지강을 아세요”라고 언젠가 죽은 아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사내에게 건넬 때, 최는 정확히 아내의 도플갱어로 확증된다. ‘미세스 최’란 인물은 철저히 대리보충적인데, 그녀는 지난 2년간 중풍환자 회장의 ‘인간 핫 팩’으로서 그가 결여한 혹은 상실한 온기, 활력, 고향의 따스함을 대리보충 해왔다. 그 역할은 사장 아들이 특파한 상무에게 끌려가면서 회장이 손에서 놓아 버린 낡은 사진과 기능적으로 같다. 또한 그녀는 남자에게는 죽은 아내의 대리보충이며, 마지막에는 오구굿 중 신내림을 받음으로써 영혼에게 몸을 주는, 사령(死靈)들의 대리보충 역할이 된다. 결국 남자의 주체성의 위기는 복구되지 않으며 파국을 맞는데, 그것은 죽은 아내의 대리보충으로써는 온전한 애도작업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완수되지 못하는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인 애도작업은 신내림의 형태로 최에게로 전이되며, 민족적 해원의 무게는 그녀의 무속 연행에 맡겨진다. 이장호의 80년대 작품 연보에는 사회적 참여의식이 강한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과 대중추수적인 흥행 영화들, 그리고 작가의식이 녹아든 영화들이 교차했다. ‘황토빛 모노크롬 영화 한편 찍고 싶다’는 로망을 실현하고자 이장호가 직접 제작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처음부터 지방흥행업자들의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연보에서 그리고 한국영화사에서 아주 낯설고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내었다.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고화질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