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 선미와 함께한 마지막 기념파티 영상 공개!
- 제작년도
- 2010
(사진: “ Häxan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반드시, 라고 단언하고 싶은데, 자신을 시네필이라고 자처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일시적으로 이상한 영화를 찾아보느라고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는 재빨리 빠져나오고 다른 누군가는 여기에 머문다. 그 영화들이 ‘불법적인’ 대상이 아니라면 (이를테면 스너프 필름, 아동성애 영화, 기타 등등) 각자의 취향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이 영화들을 ‘이상한 영화’의 수호성인 아모스 보겔은 ‘전복적인 예술영화(subversive art film)’라고 불렀다. 아모스 보겔을 이야기할 자리는 1974년까지 기다려주길 바란다. 여기서 질문은 영화사의 순간들에서 ‘이상한 영화’라고 부르는 영화가 언제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물론 방점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다른 계보를 열거하게 될 것이다. 다른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사회적 위반, 법적 금지의 경계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했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선을 넘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한계를 부수길 원했고, 다른 누군가는 돈을 원했다. 누군가는 예술적인 실험을 하고 싶어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거기서 쾌락을 향유했다. 여러 영화 제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세계영화사의 순간들은 그렇게 가끔 하나의 선처럼 느껴지는 앞과 뒤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옆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내가 ‘이상한 영화’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다가 가장 멀리서 마주친 영화는 벤야민 크리스텐센의 스웨덴 영화 < 헥산 >(1922)이다. “Häxan”은 번역하면 ‘마녀’라는 뜻이다.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19세기인 1879년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배우가 되기를 원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18년부터 ‘흑마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서점을 뒤지던 벤야민은 독일 베를린 서점에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 사본을 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1486년 독일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하인리히 크라메르가 쓴 마녀 처단에 관한 책이다. 주술을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마녀로 규정된 여자의 마법의 악을 ‘끝내기 위해서’ 자백을 끌어내는 고문 기술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이 책이 출간될 무렵에 유럽에서는 마녀로 내몰린 여자들이 산채로 화형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하인리히 크라메르는 마녀의 존재를 신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주장하고, 더 나아가 마녀사냥을 제도화하는 데 기여하고, 심지어 이 책은 마녀재판의 법전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소설에서 사용된 장면들, 마녀들은 악마와 계약을 맺어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들이 여기 실려 있다. 교회 내부에서도 이 책은 논쟁이 되었으며, 오히려 그래서 많은 독자를 얻게 되었다. 1519년에 야콥 스프렝게르가 이 책에 새로운 저자로 나서서 마치 개정 증보판처럼 추가해서 1533년에 출간하였다. 손에 손을 거쳐 이 책은 마녀를 자백시키는 안내서가 되었고, 잔인한 고문 기술자들은 상상으로 쓰인 이 책의 내용을 감옥에서 불행한 여자들에게 실행하였다. 『마녀의 망치』는 일시적으로 판금 되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왕실 궁정에서 공공연하게 읽히는 금서가 되었으며, 16세기 이후에 마녀재판에서 더 잔인한 기술을 정당화시켜 주었다. 『마녀의 망치』 표지와 <헥산> 포스터 (사진: “ Häxan ”, IMDb) 벤야민 크리스텐센이 구한 사본 『마녀의 망치』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여러 개의 판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본이 15세기라는 것을 셈에 포함해주길 바란다. 1부에서는 먼저 마녀의 존재와 악행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2부에서는 마녀들이 저지른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범죄와 악마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3부에서 마녀재판의 실제 절차와 고문을 통한 자백 유도 방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마녀의 망치』에 만족하지 않고 벤야민은 1919년부터 거의 2년 동안 마녀사냥과 재판에 관한 상세한 규정들, 사례, 실제로 실행하는 집행과정을 담은 삽화들, 여기에 더해 각종 문건을 모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벤야민은 1920년까지 발표된 마녀들에 관한 소설과 희곡도 모았다. 그런 다음 자료들을 바탕으로 영화제작을 결심하였다. 벤야민이 준비한 것은 단지 마녀에 관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준비한 <헥산>은 유럽 중세로부터 400년에 걸친 마녀사냥과 재판에 관한 백과사전이었다. 벤야민은 제작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구한 도판들을 그 앞에서 전시하다시피 했고,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재판기록과 집행을 낭송하기도 했다. 이 기괴하지만, 분명히 야심적인 프로젝트에 스웨덴 필름 인더스트리가 관심을 보였다. 벤야민과 촬영 감독 요한 안케르스트예르네는 덴마크에 오직 <헥산> 촬영을 위한 영화 스튜디오를 사들였다. 그런 다음 야외는 중세를 재연하였고, 실내는 모두 밀폐시킨 다음 어두운 그림자와 빛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해가 떨어진 다음에만 촬영을 시작해서 새벽이 오면 멈추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헥산>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중세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제단화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가장 비싼 무성영화가 되었다. <헥산>은 1921년 2월에 촬영을 시작해서 그해 10월까지 이어졌다. 빛과 그림자 간 대조가 두드러지는 장면 / 우주를 둘러싼 천사 합창단의 모습 (사진: “Häxan( 1 , 2 )”, IMDb) 영화 <헥산>은 7개의 연대기로 나누어져서 진행된다. 첫 번째 시작은 마치 학술 발표를 위한 도판 설명처럼 이어진다.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주변에 공기와 불이 둘러싸고 별들이 주변을 떠돌면서 천사 합창단이 보인다. 그런 다음 악마와 마녀의 조각상, 목판화, 삽화를 차례로 소개한다. 이 화면자료들이 펼쳐지면 IMAX 스크린으로 벽화처럼 보고 싶을 것이다. 사탄이 나타나서 부부가 잠든 침대에서 아내를 유혹하고, 질식시키고, 살해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랑의 묘약을 구하는 여인, 성에 눈뜨는 여인, 그 여인이 몰래 먹이는 묘약에 흥분하는 승정(僧正), 게걸스러운 폭식, 들린 자들(the possessed)이 사탄의 북소리에 맞춰 한밤중에 불을 피우고 춤을 추는 축제,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이 장면들을 종종 멜리에스 영화에서 본 특수효과를 이용해서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들이 우스꽝스럽기는커녕 오싹해지는 것은 만들고 있는 쪽에서 지금 이걸 진심으로 믿고 있구나, 라는 설득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민담과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들처럼 보였지만 여기에 교회가 개입하면서 고문이 등장한다.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그 과정의 세부를 묘사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여기서 이 영화가 그런 이야기들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에 만들어졌단 생각을 해야 한다. 게다가 신성모독 장면을 재연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래서 <헥산>을 보고 있으면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장면들과 마주치게 된다. (상) 마녀와 악마에 관한 삽화 / (하) 사탄의 북소리에 맞춰 춤추는 들린 자들(the possessed) (사진: “Häxan( 1 , 2 )", IMDb) 벤야민 크리스텐센이 1921년에 이 영화를 만들면서 프로이트의 저술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아직 살아있었고, 『쾌락원칙을 넘어서』를 발표한 직후이다. <헥산>의 마지막 연대기는 동시대에 이른다.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여성은 몽유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녀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서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그 당시 정신병원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셀 푸코의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고문 장면뿐만 아니라 성상 모독, 마녀에 관한 찬양, 중세 교회에 대한 적나라한 재판 장면과 함께 여성의 누드, 신체 훼손, 시체 손상에 이르는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개봉 당시 스웨덴과 덴마크의 검열은 통과했지만, 독일과 프랑스, 특히 미국에서는 검열에서 문제가 되어 개봉을 위해 재편집이 불가피했고 상당 부분이 삭제되어 국가별로 여러 판본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다. (내가 보지 못했지만) 가장 흥미로운 판본은 1968년 메트로 픽쳐스 코퍼레이션이 <헥산; 옛날 옛적부터의 마녀들(Häxan; Witchcrafts through the ages)>이다. 이 판본에서는 『네이키드 런치』의 윌리엄 버로스가 영어 나레이션을 한다(고 한다). 이 무렵 윌리엄 버로스는 마약중독 상태에서 장 주네를 둘러싼 친구들과 친교를 맺던 시기였다.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작 이 판본의 복원 소식은 들리지 않고 1976년부터 1922년 판본을 원본에 가깝게 몇 차례에 걸쳐 복원하고 있다. 물론 원본을 복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윌리엄 버로스의 판본이 궁금하다. 아마 언젠가는 될 것이다. 나는 기다릴 수 있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 놉 >을 처음 봤을 때 선명한 지향점을 지녔음에도 부분적으로 불투명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던 필의 전작인 < 어스 >(2019)처럼 구조의 뼈대가 매우 앙상하여, 숭숭 뚫린 구멍과 같은 알레고리가 여러 의미를 불러들이는 형태가 아닌, ‘영화’와 스펙터클이라는 분명하고 직선적인 길을 따라가다 여러 갈래의 분기점으로 갈라진 후, 분명 가려고 했던 목적지에는 도착했지만, 어느 것이 중심 도로였는지 잃어버리게 되는 영화 말이다. 때문에 갈림길 없이 메시지의 대로를 따라 장르가 지닌 속도와 감응하며 시너지를 내었던 < 겟 아웃 >(2017)과 비교하면 <놉>은 장르적으로도 어느 정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명한 듯 불투명하게 보이는 알레고리와 장르적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놉>에는 분명 기이한 매혹이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선명하게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상황이 매혹을 만든다 말하고 싶다. 똑똑히 눈으로 보았지만 구름과 언덕 사이를 유영하여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UAP(미확인 항공 현상)를, 보았다고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기계장치로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처럼 말이다. 당연히 <놉>을 향한 많은 해석과 이 글 또한 이러한 욕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에메랄드(키키 파머)가 일명 오프라 쇼트라고 언급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두려움을 안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미지를 바라보고 해석하고자 하는 욕망을 따라 <놉>에 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자. 영화를 두 번째 감상했을 때 하나의 의미로 깔끔하게 정리하기 힘든 두 요소가 마치 카메라와 피사체처럼 마주 보며 반복적으로 얽혀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카메라와 피사체라는 비유는 비유일 뿐 아니라 직접적인 소재로 등장하는 만큼 <놉>을 ‘영화’에 관한 영화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면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등장하는 ‘고디가 왔다’ 에피소드를 통해 피사체와 카메라의 권력 관계에 관한 이야기부터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치 관음의 대상이던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스크린과 카메라 뒤편의 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 이창 >(1954)처럼, 카메라 뒤편에 선 제프리(제임스 스튜어드)와 카메라의 피사체가 되는 쏜월드를 완전히 분리시켜 카메라-피사체의 권력 관계를 도식적으로 구조화하는 영화 말이다. <놉>은 당연히 <이창>처럼 딱 떨어지는 구조를 지닌 영화는 아니다. 쏜월드와 달리 진 재킷은 피사체이면서 동시에 카메라이기 때문이다. 진 재킷의 입/눈은 직관적으로 카메라를 유추할 수 있게 시각화되어 있으며 먹이를 먹기 직전에 내는 효과음 또한 셔터의 사운드와 닮았다. 그렇기에 <놉>의 진 재킷과 에메랄드와의 관계는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카메라이자 피사체면서 주프(스티븐 연)의 테마파크처럼 서부 총잡이들 간의 대결 구도와 같다. 대신 서로 한 방을 맞는 순간 끝이 나는 저격수들의 싸움이다. 촬영되는 순간, 찍히는 순간 죽는 것이다. 그렇기에 <놉>은 ‘영화’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시선의 권력만으로 선명하게 의미화되지 않으며 피사체/카메라라는 이중 정체성으로 마주 보는 복합적 형태를 이룬다. 한쪽에만 카메라가 지닌 권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 서로를 찍으려 하는 대결 구도는 자연스럽게 영화에서 스펙터클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놉>에서 스펙터클을 다룰 때 중요한 지점은 <이창>이 지닌 관음의 구조가 아니라, 볼거리를 볼 수밖에 없는 본능 그 자체에 있다. 물론 주프가 어린 시절 겪었던 1998년 ‘고디가 왔다’ 생일 파티 에피소드는 피사체에 대한 존중 없는 스펙터클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또한, 보면 안 된다(Nope)는 장르적 조건과 영화의 제목은 스펙터클에 맹목적으로 이끌리는 관객과 사회에 대한 비판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사-고디라고 할 수 있는 진 재킷이 UAP가 아니라 동물이자 괴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중반부 이후에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두 명의 사람이 사망한 참사에서 살아남은 주프는 고디-진 재킷으로 은유 되는 스펙터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매혹을 느낀다. 또한, 보면 죽는다는 조건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 두려움에 의한 것이든 시선을 사로잡는 시각적 매혹에 의한 것이든, 진 재킷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보면 잡아먹힌다는 조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수밖에 없다는 스펙터클의 매혹을 강조하는 장치로서 스펙터클을 소비하는 행위에 관한 비판적 은유를 넘어선다. 부분적으로 아이맥스로 촬영된 영화와 진 재킷의 본 모습이 발산하는 거대하고 매혹적 자태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처럼 <놉>은 스펙터클에 대한 경고이면서 찬사이기도 한 모순적 상태를 카메라이자 피사체인 진 재킷과 피사체인 OJ(대니얼 칼루야)와 촬영자인 에메랄드 두 명의 주인공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주요인물인 OJ와 에메랄드가 각각 피사체와 카메라라는 것은 단순히 비유적 과장이 아니다. OJ는 전반부에서 많은 사람 앞에 서서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던 인물이었지만 동생을 구하기 위해 카메라-진 재킷 앞에 서는 것으로 쇼맨(피사체)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에메랄드는 말-진 재킷을 갖지 못했던 과거를 괴물-진 재킷의 사진이라는 이미지 획득하며 촬영자로서의 정체성을 깨달으며 극복한다. 이 중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진정한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촬영자인 에메랄드이다. 이는 스펙터클에 관한 찬사가 비판을 넘어섰다고 말한 것처럼 <놉>에서 나타나는 양가적 구도 중 핵심이 되는 것은 피사체가 아닌 카메라이며,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볼 수밖에 없다는 본능과 스펙터클을 촬영해서 이미지로 소유하고자 하는,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에 있음을 방증한다. 주프 또한 ‘고디가 왔다’의 참사를 겪으면서 자신이 봤다고 믿는 놀라운 광경을 단순히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하여 소유하고 증명하려 한다. 당연히 타인의 죽음과 비극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만드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사무실 속 비밀의 방에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 않아야 하는 전시와 쇼를 알면서 비밀스럽게 행하는 주프처럼, <놉> 역시 할리우드와 쇼 비즈니스, 황색언론 그리고 그것들을 소비하는 인간을 풍자하고 비판하지만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을 이미지로 재현하고, 쇼로 재구성하며, 스펙터클로 만드는 고전적 구조와 장르적 쾌감을 재생산한다. 많은 이들이 주프와 OJ를 비교하며 이미지와 피사체에 관한 존중의 유무를 두고 둘의 차이에 주목하지만, 사실 통제 되지 못한 스펙터클로 발생한 참사라는 점에서 ‘고디가 왔다’의 사건과 진 재킷과의 마지막 결투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고디, 진 재킷과 교감하고 있다고 믿는 주프와 눈을 마주치면 공격한다는 동물의 습성을 파악한 것만으로 진 재킷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OJ는 크게 다르지 않으며, 주프가 진 재킷을 비밀스러운 쇼를 통해 스펙터클로 소비한 것처럼 에메랄드 또한 진 재킷을 오프라 쇼트라는 상업적 이미지로 포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놉>에서 말하려는 스펙터클이란 통제 되지 못했을 때 참사가 발생하는 불안정하고 위험천만한 이미지가 아니라, 반대로 통제되지 않아야 볼거리가 발생하고 갈등과 사건이 증폭되는 큰 그림 안에 놓인 하나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주인공이 해결함으로써 큰 그림의 쇼가 마무리된다. 그것이 통제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나쁜 기적(Bad Miracle)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며,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을 이미지로 재현하고, 재구성하여, 스펙터클로 만드는 ‘영화’라는 쇼의 구조이다. <놉>의 진정으로 탁월한 지점은 이와 같은 ‘영화’와 인간의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본질을 직접적이고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라는 외피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했다는 것에 있다. 아니 반대로 ‘영화’라는 은유적 외피를 두르고 벌이는 기이한 장르 영화라는 것 때문에 매혹이 발생한다. 예컨대 진 재킷의 자기장에 의해 디지털 카메라에서 원시적 카메라로 퇴행하는 촬영 방식은 인물들의 목적이 쉽게 성취되지 못하게 하는 장치이자 액션 시퀀스의 긴장감을 만들기 위한 장르적 제한이면서, 일명 오프라 쇼트라 불리는 결정적 이미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촬영 과정의 매혹을 고전적 틀 안에서 직관적으로 담아낸다. 이처럼 쇼트(Shot)가 총을 쏜다는 행위와 카메라로 찍는다는 행위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을 활용했을 때의 비유 자체는 진부하지만, 게걸스럽게 먹이를 찾아 탐닉하는 진 재킷이라는 스펙터클/카메라가 볼거리와 위협을 동시에 만들어 스펙터클-이미지를 소유하고 싶어 하면서 이미지의 대상으로 서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양면적으로 비추며 진부함과 도식성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 본성이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경고를 장르적 즐거움 안에 놓으면서 스펙터클의, 촬영한다는 것의, ‘영화’ 자체의 비윤리적 본질과 매혹을 모순적이고 기묘한 감흥 안에서 감각하게 한다. <놉>의 이러한 기묘한 감각은, 실제 말이든 말을 모사한 모형이든 구분하지 않고 모두 빨아들였다 내뱉는 진 재킷처럼, ‘영화’라는 시각 예술이 움직이는 대상을 이미지화 할 수 있게 된 이후에 획득한 의미망들을 수집광처럼 모아 광범위하게 발산시킨다. 그 과도함이 의미적으로 혹은 장르적으로 영화를 불투명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미지를 완전히 컨트롤하지 못하여 찾아오는 위기가 영화라는 쇼 안에 포함된 하나의 과정인 것처럼, 결말에 이르러 과도하게 펼쳐진 의미망들을, 또 하나의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이미지의 마주 봄으로 탁월하게 ‘영화’의 본질로 수렴시킨다. 그 본질이란 영화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카메라/피사체의 구도와 같이 두 개의 쇼트가 거울처럼 마주하는 엔딩에 있다. <놉>의 마지막 두 쇼트는, 영화 내적으로 카메라로 포착된 실재지만 영화 외적으로는 컴퓨터 그래픽의 환영일 뿐인 진 재킷의 사진과, 영화 내적으로는 에메랄드의 눈으로 포착된 ‘저 너머(OUT YONDER)’라는 죽음과 삶 사이의 환영적 이미지면서 영화 외적으로는 인간이 연기했음이 분명한 실재의 마주 봄이다. 이 엔딩은 오프닝 크레딧 위로 영사 됐던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The Horse in Motion>(1878)처럼 ‘영화’란 실제 운동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재현한 것이며, 완전한 환영도 실재도 아닌 모호한 이미지임을 아이러니를 통해 꿰뚫는다. 그리고 마이브리지의 영상에서의 흑인 기수가 <놉>의 OJ로 재생산된 것처럼,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스펙터클을, 나쁜 기적(Bad Miracle)을, 영화를 필요로 할 것임을 나타낸다. 그것이 아무리 더럽고 위험한 즐거움이라 하더라도 인간과 ‘영화’가 무언가를 본다는 시각적 유사성을 공유하기에 맞이하는 저주이자 축복인 운명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장면과 <놉>은 동양인 주프가 만든 서부극-테마파크에 서부 영웅이 되어 서 있는 흑인 O.J라는 결말처럼, 눈과 카메라, 인간과 ‘영화’의 핵심을 유머와 아이러니로 정확히 명중시키는 조던 필 다운 탁월한 오프라 숏이라 할만하다.
< 나만 없는 집 >의 첫 시놉시스가 나온 것은 영화가 완성되기 3년 전인 2014년이었다. 당시 나는 어떤 이야기가 단편 영화로 적합하고 매력적일 것인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무작정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나만 없는 집>은 그렇게 쌓인 여러 글 중에서 내 어린 시절을 반영한 유일한 작품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 때 늘 구조를 먼저 세워놓고 시작을 하는데, < 나만 없는 집 >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놉시스를 구상하던 2014년에는 작법 입문서로 유명한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를 참고했고,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은 어린 소녀가 가족에 의해서 반대를 겪는다’라는 중심 아이디어를 세 개의 장, 두 개의 구성점(plot point)에 맞춰 구체적인 사건으로 풀었다. 몇 차례 수정 끝에 완성한 시놉시스는 한동안 컴퓨터 폴더에 고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6년, ‘대구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공고가 떴고, 고민 끝에 <나만 없는 집>의 시놉시스를 다시 꺼냈다. 제작지원 사업에 내자고 결심은 한 것은 마감일이 고작 5일밖에 남지 않던 때였다. 어떻게든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했는데, 그 당시 나는 크리스토퍼 보글로의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라는 책으로 좀 더 심화된 이야기 구조법을 공부하고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미 이전에 구조적인 고민을 충분히 했던 터라 초고는 예상보다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다.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후에도 시나리오의 수정 작업은 제1순위였다. 전작인 < 은하 비디오 >와 < 나만 없는 집 >의 프로듀서 및 조연출 역할을 해준 오성호 PD는 나의 첫 영화 현장인 < 소나기 >의 감독이자 영화 스승이기도 했는데, 그는 늘 강박적으로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는 오성호 PD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며(?) 한 씬, 한 씬 꼼꼼히 점검해나갔다. 각 씬의 목표를 정확하게 정의하면서, 목표에 맞지 않는 대사나 지문 등은 삭제하고 좀 더 강조가 필요한 부분은 반복하거나 변주했다.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고 싶은 소녀의 이야기’에 부합하기 위해서, 되도록 봄에 가까운 계절에 찍고 싶었지만, 개인 사정상 바로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결국 8월 중순에 크랭크인을 하기로 하고,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약 7주로 계획했다. 하지만 프로듀서, 촬영감독 외에 스태핑을 완료하지 못한 채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다가오면서 불안감은 커져갔다. 게다가 이전에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든 건 고작 1편에 불과했고, 내 경험과 실력에 비해 < 나만 없는 집 >은 시대극, 아역 배우, 단체 장면 등 촬영 난이도가 무척 높은 편이었다. 로케이션, 미술, 캐스팅, 연기연출, 콘티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촬영 전까지 할 일은 절망적으로 많았고, 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촬영 예정일에 맞추기 위해, 각 업무의 최소한의 마감일만을 정해둔 채, 매일매일 TO-DO 리스트를 만들었다. 나와 오성호 PD는 스태핑 전까지 서로의 손발이 되어 업무를 분담했고, 정말 전투적으로 영화를 준비했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쉴 틈이 거의 없었다. 세영의 집 < 나만 없는 집 > 프리 프로덕션의 시작은 주요 무대가 될 세영의 집을 찾는 것이었다. 하루는 예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갔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어릴 때 살던 연립주택이 그대로 있었고, 특유의 분위기에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있던 내 마음과 달리, 집주인은 수차례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그곳은 추억으로만 남겨둔 채, 대구 전역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다시 조사하러 다녔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현재 살고 있는 집과 매우 가까운, 재개발 예정인 빈 아파트를 섭외하게 되었다. 완전히 비어있던 만큼 미술이 용이한 곳이었지만, 그만큼 할 일이 많았다. 손걸레와 스팀 청소기 등을 동원해 온 집 안을 쓸고 닦았고, 대구 외곽에 있던 이삿짐센터에서 버리는 가구들을 실어 날랐다. 전작인 < 은하 비디오 > 때도 그랬지만, < 나만 없는 집 > 또한 로케이션과 미술이 거의 막노동 수준이었다. 199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만큼, 그냥 둘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학교의 책걸상을 교체하고, 중고나라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렸고, 옛날 문방구에서 각종 보물들을 찾으러 다녔다. 길을 다니다 버려진 고가구를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갔고, 결국 주워오곤 했다. 걸스카우트 입단식 의상도 문제였다. 현재 걸스카우트 유니폼은 초록색이지만, 1998년도 당시에는 갈색이 주요 색상이었다. 전국에 있는 걸스카우트 연맹에 메일을 보내고 전화도 걸어봤지만, 갈색 유니폼은 단 한 벌도 남아 있지 않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직접 찾아간 대구 연맹에만 두 벌의 옷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대구 연맹 쪽은 꽤 호의적이었고, 옷을 대여해줌과 동시에 음악, 율동 등을 알려주시기도 하셨다. 이후 대여받은 옷과 최대한 유사한 천을 구해, 30벌가량의 걸스카우트 유니폼을 의뢰, 제작했다. 한편, 프리 프로덕션 이전부터 가장 고민해왔던 아역 배우의 캐스팅은, 대구-부산-서울 3개의 도시에서 아역 전문 엔터테인먼트 및 학원에 찾아가, 오디션으로 진행했다. 주로 시나리오 속 인물의 대한 이해와 유사 경험을 묻는 질문을 했고, 즉흥 연기 또한 부탁했다. 단시간에 한 명의 배우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오디션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상처로 남지 않도록, 나를 포함한 스태프 모두가 참여한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캐스팅 과정 끝에, 매우 운이 좋게도 < 나만 없는 집 >을 이끌어 줄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영’ 역의 김민서 ‘세영’ 역의 김민서 양을 캐스팅하면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사투리였다. 서울 토박이인 민서에게 캐스팅 결정을 통보하기 전까지, 시나리오를 표준어로 수정해서 진행할지, 아니면 민서에게 대구 사투리를 가르칠 것인지를 끝까지 고민했었다. 결국 답이 나오지 않아 민서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했고, 어머니께서는 민서가 이전에 전라도 사투리를 암기해서 연기를 해봤다고 말씀해주셨다. 대사를 통으로 암기하면, 현장에서 즉흥적인 연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내면의 갈등이 있었지만, 사실 대구 사투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훨씬 더 컸다. 그 날 나는, 민서에게 캐스팅 결정 통보와 함께, 남은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의 연기연습과 사투리의 중요성을 말하고, 또 말했다. 연기 연습은 약 5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민서와는 사투리 때문에 거의 매일 통화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민서가 어머니와 함께 대구에 내려와 이틀 동안 언니, 엄마, 아빠, 친구 역의 배우들과 번갈아가며 연습을 했다. 연습 방식은 대사 리딩을 시작으로, 실제 촬영 타이밍을 고려한 동선과 동작을 연습하고, 대사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배우들과 함께 상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역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 반드시 그들의 부모와 엮일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운이 좋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주실 때와 뒤에서 기다려주실 때를 정확히 눈치채주셨다. 아이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잘 견디다가도, 눈앞에 자신의 부모가 보이면, 갑자기 그들에게 기대려 하고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약해지곤 한다. 그런데 이번 현장에서는 부모님이 아이들을 강하게 책려하다가 홀연히 사라지셨고, 되레 나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시며 응원과 위로를 보내주셨다.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스태핑과 함께 여러 프리 프로덕션 업무도 완료되어갔고, 마지막으로 숏 구성과 콘티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직 숏 구성에 자신이 없던 내가 믿을만한 것이라곤 레퍼런스뿐이었다. < 나만 없는 집 >의 콘셉트와 유사한 레퍼런스 영화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그를 기반으로 기초적인 숏 구성을 했다. 이후 카메라 렌즈 앱을 이용해서, 실제 로케이션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으며 숏을 구체화시켰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토대로 미술 스태프와 함께 그림으로 콘티를 정리했고, 완성된 콘티는 촬영 직전에 촬영 팀과 마지막 점검 작업에서 유용하게 활용됐다. 원래 프로덕션은 7회 차로 예정되어 있었다. 사실 35분의 러닝타임을 예상한, 20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로는 7회 차는 꽤 적절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분 이상의 롱테이크 숏들이 꽤 포진되어 있는 데다, 평상시 테이크를 많이 간다고 악명 높은(?) 연출 스타일에서 이번엔 얼마나 내 자신과 합의할 수 있을지 나도 짐작할 수 없었다. 촬영은 시작되었고, 난 이번에도 악마가 되어, 양보 없이 배우와 스태프들을 수없이 괴롭히며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최종 회차는 1회 차가 늘어난 총 8회 차로 마무리했다. 자매 유난히 뜨거웠던 8월, 찜통 같은 더위에 배우와 스태프를 몰아놓고, 지치는 몸과 마음을 제대로 달래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촬영을 강행했다. 평소 가장 심한 말이라고 해봤자 ‘바보’ 정도였던 민서와 지후는, 악에 받친 자매를 연기하느라, 마지막엔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말았다. 어머니 역을 해주신 이미정 선배님은 유당불내증이 있었음에도, 촬영에 차질이 생길까봐 끝까지 그 사실을 숨기기까지 하셨다. 김용현 촬영 감독님을 비롯한 촬영 팀은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묵묵히, 가장 먼저 다음 촬영을 준비하며, 부족한 나를 항상 배려해주셨고, 부처 다음으로 인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전상진 동시녹음기사는 무거운 붐대를 들고서 믿음직하게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많은 괴롭힘을 당한 오성호 PD는, 나의 부족함으로 늘 동분서주했고, 건널목 장면을 찍은 날엔 종아리에 햇볕 화상을 입어 한동안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북적거렸던 촬영 현장이 끝나고 나니, 남은 건 그동안 주워 모았던 가구들과 두 장의 외장하드, 밀려드는 공포심이었다. 일단 촬영 현장을 정리하고서, 급하게 서울로 향했다. < 은하 비디오 > 때부터 함께 작업해 온, ‘이음편집실’의 원창재 편집기사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선 나는 기사님과 촬영 소스에 대해 염려되는 부분, 편집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기사님이 콘티와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만들어 주신 1차 가편을 토대로, 약 3개월에 걸쳐 세밀하게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예상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찍어야 했던 걸스카우트 율동 장면과 특별히 정해진 콘티 없이 촬영한 선영과 세영의 싸움 장면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는데, 다행히 기사님이 잘 봉합해주셨다. 그렇게 시나리오에 충실하게 편집을 끝내고 나니, 이야기는 매끄럽게 잘 이어졌지만, 씬과 씬의 리듬감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눈에 볼 수 있게 시나리오를 펼쳐 구성점을 다시 파악했고, 리듬감이 조금 더 빠르거나 느리면 좋을 부분을 확인해 최종적으로 수정, 편집을 마무리했다. ‘대구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마지막 단계는, 그해 지원을 받은 작품을 모아 관객을 초청해 상영하는 것이었다. 상영 시기는 12월로 정해졌고, 나는 그 전까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후반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완성된 편집본을 들고 색보정, 믹싱, 음악 작업을 거의 동시에 진행했다. 형준석 색보정기사님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변덕만 부리는 나를 끝까지 받아주셨다. 믹싱의 경우, 개화만발의 양정우 실장님과 홍랑기 믹싱기사님과 함께 작업했는데, 여름에 어울리는 앰비언스와 드라마가 강조되는 효과음을 적절히 삽입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셨다. 또한, 류재학 음악감독님은 아이들의 정서를 잘 살려주며 울림이 있는 멋진 엔딩곡을 완성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작업을, 동시녹음기사이기도 했던 전상진 군이 훌륭하게 엮어주었다. 길고 치열했던, 영화 제작의 과정에서 정말 많은 분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게다가 여기에 언급된 분보다 언급되지 않은 분들이 더 많다. 비록 이 영화는 ‘자기 치유’라는, 오롯이 사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시작하게 됐지만, 그런 수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 나만 없는 집 >이,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는 영화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