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2
- 감독
- 크리스 벅, 제니퍼 리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크리스틴 벨, 이디나 멘젤, 조쉬 개드, 조나단 그로프, 스털링 K. 브라운, 제이슨 리터, 에반 레이첼 우드
영화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는 지난 2017년 개봉해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작품이다. 어느 촬영 현장에 나타난 좀비가 스태프들을 뜯어먹는 잔혹한 장면들로 시작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고단함을 보여주며 끝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제목에 영화의 슬픔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배우가 연기를 못하더라도, 스태프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거나 술에 취해 있더라도, 심지어 좀비가 나타나도 카메라는 멈추면 안 된다.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 스태프는 지금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코로나 19 버전’이 제작된다고 보도했다. 이미 지난 2019년 속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할리우드 대작전>이 개봉되기도 했지만, 코로나 19 버전은 그것과도 다른 이야기다. 이번에 제작되는 작품의 제목은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원격 대작전! >(이하 <원격 대작전!>)이다. 코로나 19로 외출 금지와 자가격리를 강요받은 일본의 현재가 영화의 배경이다. 자가격리 중인 영화 프로듀서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온다. "이달 중으로 재연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스태프와 배우들도 모두 자가격리 중인 상태. 결국 프로듀서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원격으로 작품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1편의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영상 통화 화면이나 배우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찍은 화면을 편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우들은 집에 있는 옷으로 의상을 해결할 것이고, 자신의 대사를 하는 장면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에 반응하는 장면까지 스마트폰으로 찍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촬영감독은 역시 자신의 집을 이용해 여러 인서트 샷을 찍어줄 것 같다. 영화적인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시도만으로도 흥미롭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전 세계의 영화산업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했고, 칸 영화제마저 개최 여부가 불확실하다. 전 세계 영화인들은 먼저 영화팬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겨울왕국>의 제작진과 목소리 배우는 각자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목소리를 더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앳 홈 위드 올라프>를 유튜브로 공개했다. <원더우먼>의 갤 가돗과 나탈리 포트먼을 비롯한 22명의 배우들은 존 레넌의 ‘이매진’을 부르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보여준 사실은 영화가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세계에서 영화 산업은 버티고 설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산업 자체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미국의 라이언스게이트는 <라라랜드>와 <헝거게임> 등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하고, 관련 행사에서 성금을 모금해 영화 산업 근로자를 돕는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영화인들도 당장 수입이 없는 스태프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원격 대작전!>의 사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작품은 자가격리 중인 시민들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목적으로만 제작된 게 아니다. 앞선 영화인들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의 바람에 의한 것이었다. 영화에 대한 영화팬들의 관심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 업계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업계를 떠나면 안 된다. 그런데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영화 현장 또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완전 원격 제작으로 만들어지는 이번 작품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창출하는 하나의 팁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일거리가 없는 영화인들에게 생활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일을 만드는 맥락에서 <원격 대작전!>을 기획한 것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약 3천만원의 제작비로 만든 영화학교 워크숍 작품이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영화적인 매력을 구현했던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코로나 19’가 위기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됐을 것이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말처럼 <원격 대작전!>이 이후의 영화산업에 팁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까? <원격 대작전!>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은 상황에서 찾아낸 자구책이지만,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의 세계에서도 ‘원격’과 영화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지난 오스카 시상식에서 서로에 대한 존경을 나누었던 봉준호 감독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각자의 공간에서 촬영한 영상과 대화를 공유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HBO가 제작하는 드라마판 <기생충>의 주인공으로 거론된 마크 러팔로와 송강호가 ZOOM을 이용해 나는 대화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이전에는 쉽게 협업하지 못했던 전 세계 영화인들이 ‘원격’으로 만나고, 그렇게 나온 작품을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HBO MAX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원격’으로 감상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코로나 19’는 세상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불가피하게 시작된 ‘온라인 개학’은 언젠가는 찾아오게 될 ‘원격 교육’의 시험대가 되었고, ‘재택근무’ 또한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최근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디즈니를 앞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안 그래도 변화의 시기에 있던 영화의 세상도 ‘코로나 19’로 인해 더 빨리 변하는 중이다. <원격 대작전!>은 그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을 수 있다는 안심을 주는 사례다. 이 작품은 5월 초까지 완성된 후, 유튜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그야말로 ‘디즈니 세상’이다. 올해 7월까지 한국 극장가 흥행 성적을 들여다보자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십여 년 전부터 전 세계 극장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의 수퍼 히어로 영화 대부분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이름을 달고 전 세계에 배급된다. (디즈니는 2009년 12월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사들였고, 특히 마블의 영화 제작사인 마블 스튜디오는 2015년 8월부터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직속 산하에 두고 있다). 해마다 이 영화들 한두 편이 국내 극장가에서 크게 흥행 몰이를 하는 건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디즈니가 배급한 마블의 수퍼 히어로 영화’ < 캡틴 마블 >(3월 6일 개봉)과 < 어벤져스: 엔드게임 >(4월 24일 개봉)이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서 8월 2일 집계한 결과, 각각 580만 명과 1392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7월 24일까지 집계한 수치에서 올해 흥행 순위 2위와 6위를 차지했다. 올해 디즈니의 맹위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5월 23일 개봉해 53일 만에 ‘천만 영화’에 등극한 <알라딘>과 7월 17일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14일만에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라이온 킹> 역시 디즈니의 이름으로 배급된 ‘디즈니 영화’다. 더욱이 이 두 작품은 2010년대 들어 디즈니가 박차를 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애니메이션의 명가’로 명성을 쌓은 스튜디오답게 디즈니는 < 신데렐라 >(2015) < 정글북 >(2016) < 미녀와 야수 >(2017) <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2018) 등에 이어, 올해 <알라딘>과 <라이온 킹>을 거쳐, 2020년에 <뮬란>, 이후 <인어공주> <피노키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등,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리메이크하는 작품의 제작 계획을 빽빽이 늘어놓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중에서도 올해 개봉한 <덤보>, <알라딘>과 <라이온 킹>이 한국 관객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개봉해 국내 극장가에서 관객 513만 명을 기록한 <미녀와 야수>도 빼놓을 수 없다. <신데렐라>(71만 명) <정글북>(253만 명)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49만 명), <덤보>(34만 명)의 흥행 성적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이 국내 관객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프로젝트가 리메이크하는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은, 디즈니가 1990년대에 발표한 작품이다. ‘디즈니 르네상스’, 그러니까 디즈니가 고전적인 이야기를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 평단의 박수를 받는 동시에 전 세계 극장가에서 높은 흥행 수익을 올렸던 시기 말이다.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라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디즈니’의 브랜드 가치를 굳건히 한 때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때는 국내 비디오 시장이 활성화됐던 때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을 극장에서 보지 못했어도 비디오로 몇 번이고 돌려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은 디즈니’라는 공식, 아래 어릴 적부터 이 영화들을 수없이 보고 자란 세대가 지금의 20~30대다. 더군다나 이 세 작품 모두 뮤지컬 형식의 애니메이션이다. 장면장면이 아름다운 노래와, 그와 하나 되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기억되는. 올해 개봉한 실사영화 <알라딘>을 볼 때 깨달았다. 이 영화가 일깨우고 있는 건 ‘세대의 기억’이라는 걸.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첫 노래 ‘아라비안 나이트’가 흘러나오는 순간, 이 영화가 재미있는지 없는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는데도, 내 안의 어떤 기억이 깨어나 영화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 보고 또 봤던 애니메이션의 기억, 그러면서 빠져든 노래와 뮤지컬 장면에 대한 기억,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나면 난 어떤 소원을 빌면 좋을까’ 밤새 고민했던 기억…. 한 세대의 공통된 기억, 그것도 눈과 귀가 함께 기억하는 즐거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만큼 강력한 문화적 경험은 없다. 찬란한 상상력에 빛나는 애니메이션을 감쪽같은 실사 영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술력,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는 재치 넘치는 각색 등, 새로운 <알라딘>의 즐길거리를 더 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알라딘>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이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20~30대 이상 관객들에게 ‘세대의 기억’을 생생히 돌이키고 그걸 새로이 할 장을 마련해 줬다는 데 있다고 확신한다. 진정 놀라운 것은, 19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가 일군 ‘세대의 기억’이 20여 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를 통해 보다 젊은 세대로 계속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관객이 실사 버전의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에 열광하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른 경험은 수십 년 뒤 ‘디즈니 월드’의 또 어떤 자산이 될 것인가. 조금 다른 예로, 십 수 년 뒤 디즈니가, 개봉 당시 세계적인 흥행기록과 함께 수록곡 ‘렛 잇 고’ 열풍을 일으킨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의 실사 버전을 만든다고 상상해 보자. 또 어떤 진풍경이 일어날지 눈에 선하지 않은가. 세대의 기억을 창조하고, 그것을 새 시대에 맞게 새롭게 계승하고, 그 유산을 바탕으로 무너지지 않는 왕국의 영토를 확장해 가는 디즈니의 전략이 이쯤 되면 영리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게 느껴질 정도다. 마블의 슈퍼 히어로 영화가, 히어로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부여하고, 그들을 때로는 개별 시리즈로 헤치고, 때로는 ‘어벤져스’ 시리즈로 한데 모으는 전술로 그 세계를 매력적으로 확장하는 전략 역시 감탄스럽기 그지없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디즈니는, 이 시대의 가장 크고 강력한 영화적 기억을 일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이러한데, 앞으로도 그 자리를 내어놓지 않겠다고 벌써부터 탄탄한 기초 공사를 다지는 치밀함까지. 감탄을 넘어 그 치밀함이 무섭기까지 한 ‘시네마 수퍼 히어로’다. 말 그대로 ‘디즈니 왕국’이다.
흔한 TV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의 단체 스태프 사진. 이들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포부 또한 거대하다. 하지만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애니메이션 만듭니다” “네?” “아.. 만화영화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아~ 그래요? 우리 애들도 만화 좋아하는데”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이건, 아니면 친척들과 오랜만에 만나게 되든, 대화에서 어쩌다 직업을 말하게 되면 백중팔구는 이런 식으로 대화가 끝난다.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만화. 그렇다. 나는 (사실 원고 작성하면서 개인적으로 ‘나는’과 같은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것도 TV 시리즈,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말하자면 현재까지 두 시즌 정도 방영을 하였고, 차기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뭐 그렇다고 한국의 대표하는 유명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소박한(?) 스튜디오에서 작은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실제로 몇몇 큰 스튜디오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제작·방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들의 제작사는 모두 작고 소박한 회사들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시장에서 만들어지고 있거나 기획되고 있는 작품들의 내부 과정을 조금씩 정도는 귀동냥으로 듣거나, 실제로 직접 보는 경우가 많다. 재밌는 상황도 있고, 즐거운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많으면서도 제작 중에 생기는 우여곡절, 기획 마케팅 과정에서의 절망과 환희 등도 있다. 많은 작품들이 ‘애’들만 보는 ‘만화’영화 정도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또는 실제로 그렇게 기획되기도 하였지만, 원대한 꿈으로 시작했던 작품들도 많다. 이 글은 한국의 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TV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연작의 첫 번째 시작 글이 될 것 같다. 워낙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이 있어서 이 모든 이야기를 담기엔 지면과 내 의지가 좁고 얕아 한계가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뭐 ‘최선을 다하면 우주가 도와줄 것’이라 믿고, 시작해 보자. 작품의 기획은 가장 즐거운 과정이면서도, 험난한 여정이다. 작품의 얼개를 정하고, 각각의 아트팀에서 (반드시 이렇게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임의로 작품을 직접 만드는 여러 팀을 아트팀으로 하고, 프로듀서, 행정, 마케팅 담당을 임의로 기획팀으로 부르겠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생각을 던지는 그 과정은 정말로 즐거운 과정이다. 하지만 점점 작품의 색이 정해지고 설정의 경계가 명확해질수록 여러 험난한 과정이 시작된다. 보통 기획과정에서는 작품의 콘셉트, 메인 스토리, 캐릭터, 배경 등을 설정하는데, 보통 프로듀서와 총감독, 시나리오 작가, 디자이너가 참여하여 회의를 통해서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다. 뭐 사실 기획의 시작에 대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본격적인 기획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예의 언급한 거의 모든 아트팀들이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TV용 애니메이션의 최초 아이디어는 회사의 대표 또는 사장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지점이 많다. 투자 때문이다. 회사의 규모가 크고 돈이 많은 회사라면 제작비에 대한 걱정 없이 어떻게 해보겠지만, 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투자가 되지 않으면 인건비가 생기지 않으니 작품 제작이 되겠는가? 험난한 기획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국내에서 TV용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는 기관은 일반적으로 국내 방송사, 투자사, 각종 펀드와 관의 지원 사업 등등이 있는데, 거의 모든 제작비가 이러한 투자금들이 모여서 구성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투자사는 결국 투자한 만큼 돌려받든지, 아니면 그 이상의 수익을 발생시켜야 한다는 점인데, 국내에서의 방영만을 통해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영료 산정방식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다시 말해 애니메이션 자체로만 가지고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회사가 별의별 사업 기획을 해서 외주를 주든지, 아니면 직접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캐릭터를 이용한 머천다이징이나(젓가락부터 핸드폰 껍데기까지), 교육용 출판 사업, 봉제 인형, 완구, 심지어는 어린이 뮤지컬 제작, 키즈카페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사업을 무지막지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보통 TV 시리즈용 애니메이션 제작을 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15분 포맷에 26부작 정도로 볼 수 있다. 총 제작비는 보통 적게는 10억부터 많게는 25억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냥 한 15억 정도로만 보고,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3억, 투자사가 7억, 방송사가 5억 정도를 투자했다고 치자. 이때 제작사는 돈이 없으니 국가 지원사업에서 지원을 받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대출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제작사의 경우는 전체 제작비 15억 에서 투자 비율이 20%밖에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품 관련된 전체 수익의 20%만 수익으로 돌려받는다. 그마저도 계약에 따라서는 투자사 선리쿱 이후 제작사 지분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수익을 더욱 내야 하는 상황이고, 투자사도 나름대로 가능성이 있는 성공모델을 갖춘 작품에 투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국내 TV용 애니메이션 시장이 ‘키즈’+‘변신완구’+‘교육’이라는 공식이 구성된 것에는 이러한 수익구조와 투자 방식에서부터 기인한다. 작품의 기획 초기 아트팀의 즐거운 기획이 점점 시간이 갈수록 먹구름이 끼게 되는 것은 “그러면 투자받기 힘들다”라는 애니메이션 제작 내부의 자기 검열부터인 것이다. 그마저도 없으면 투자는 없고, 제작사는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길고 긴 보릿고개가 시작된다. 그래서 보통 국내 TV용 애니메이션의 주된 타깃은 3~5세, 5~7세에 치중된다. 물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국내 완구시장의 메인 고객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완구 판매는 매년 5월과 12월이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완구 시장을 겨냥한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어느 정도 홍보 효과와 노출 시기, 방송 시기를 예를 기준으로 기획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상황과 연결해서, 디자인이 정해질 경우에도 남아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변신 장난감, 경찰차, 공룡이라는 일반적인 완구 공식에 컬러는 블루와 레드가 안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일반적인 큰 틀을 형성하고 있고 이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여아의 경우는 그렇게 다양하진 않지만, 동물을 기본으로 디자인된 봉제인형과 전통적인 바비 스타일의 인형을 기반으로, 컬러는 핑크와 옐로우 등으로 구성된다. 한때 < 겨울왕국 > 때문에 여아 시장에서의 핑크파워가 블루에 다소 밀리는 듯했으나, 최근 다시 전통의 핑크가 유지되는 형세다. 최근에는 유아용 애니메이션과 완구라는 조합에 의해 기획 초기부터 완구회사가 함께 참여하여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보통 완구 시장의 경향과 디자인에 대한 조언들을 함께 주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 제작사와는 접근 방식이 조금씩 달라서 아트팀과의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무래도 완구시장에서는 복잡하고 잘 넘어지는 캐릭터를 지양하며 상품이라는 입장으로 접근하지만, 제작사의 아트팀의 경우는 캐릭터의 성격과 레이아웃 등 디자인과 캐릭터라이징에 더욱 집중하기 때문이다. 흔한 TV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의 기획실 모습. 기획 단계는 작품 전반의 설정과 함께 투자에 대한 준비를 동시에 병행하는 괴로운 작업이다. 스텝들 책상 곳곳에 자양강장제와 영양제 등이 숨어 있다. 이처럼 작품의 기획과정에는 작품 자체에 대한 과정뿐만 아니라, 작품의 마케팅과 투자 등의 과정이 동시에 진행된다. 국내 작품의 경우 제작과정을 보통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로 생각하고 기획에 들어가는데, 작품 기획에 대한 대충의 얼개와 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전 단계 과정이 진행되기 시작하면, 기획팀은 투자 미팅을 준비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다. 투자미팅은 주로 기획서를 가지고 진행되는데, 주로 스튜디오의 대표가 직접 진행한다. 국내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대표들은 주로 아트디렉터 출신이 많아 초반에는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 점점 해를 거듭할수록 아트디렉터에서 비즈니스맨으로 진화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많은 제작사들이 프로듀서를 못 구해서 힘들다는 의견이 많은데, 이는 정말 사실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전공과정에서는 프로듀서 과정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보통 애니메이션 제작 전공자가 프로듀서를 맡게 되면 보통 심적 고민에 휩싸이게 되고 금방 스튜디오를 떠나게 되는데 (프로듀서 일은 아티스트 전공자들이 하기엔 너무나 경직되고 규율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이 때문에 오랜 시간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경력자들이 적다. 그러다 보니 보통 투자 상담은 스튜디오의 대표가 직접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게 된다. 투자사는 작품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투자심사를 하게 되고 이후 투자결정을 하게 된다. 이때 제작사는 콘텐츠 진흥원,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각 지역 정보문화산업진흥원 등에서 진행하는 지원사업, 또는 다양한 R&D 사업 등에 참여하여 제작사가 투자해야할 자금을 모은다. 국내의 경우는 또한 다양한 마켓과 영상 견본시 등이 존재하는데 여기에 참여하여 파트너 사를 모으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제작사는 자신들의 제작비를 모았고, 약간의 투자가 되어서 제작비가 어느 정도 모였다고 생각되면 본격적인 제작과정으로 들어가야 한다. 투자비가 다 안 모였는데 어떻게 제작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제작비가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다 가는 일정을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일단 제작에 들어간다. 전체 투자비가 다 모이는 것은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일단 제작이다. 방송일정도, 방송사도 잡히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자 이제 ②프리프로덕션이다. 시나리오 작가도 필요하고, 캐릭터 디자인도 수정해야 되고, 콘티도 그릴 준비를 하자. 아 그런데 뭐지? 이 불안함은. (다음 편은 ‘한국에서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만들기 ②프리프로덕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