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백하다
- 감독
- 알프레드 히치콕
- 제작년도
- 1955
- 출연
- 캐리 그랜트, 그레이스 켈리, 존 윌리암스, 샤를르 바넬, 조젯 애니스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흔히 ‘망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들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말 전설적인 망작이 되어 오래도록 ‘제일 망한 영화’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컬트로 재정의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시에는 망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 ‘망했다’라고 평가되는 지점이 후대에는 묘한 매력이 되어 이를 즐기는 팬들에게 숭앙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할리우드 영화 역사에서 < 인천(오! 인천) >(테렌스 영, 1981, 이하 <오! 인천>)은 전자에 해당하는 영화이다. 천문학적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개봉 이후 비평계와 대중 양쪽 모두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했고, 제3회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작품상을 수상하며 그 명성에 정점을 찍었다(최악의 작품상 외에도 최악의 남우주연상,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각본상 등 4관왕에 올라 모름지기 당해 연도 최악의 영화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렇다고 이 글을 통해 섣불리 <오! 인천>을 컬트로서 재평가하려 하거나, 혹은 그럼에도 영화팬들에게 감히 시간을 들여 한 번 즈음 볼 만하다고 추천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피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피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는 오직 <오! 인천>을 둘러싼 외부적인 기록들, 그리고 여기에 참여했던 한국영화인들의 구술을 통해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영화로 기록된 이 작품이 한국영화계에 몰고 온 변화와 그것이 이후 한국영화들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역대급의 제작 규모 처음 <오! 인천>을 제작한다는 이야기는 1978년 3월 신문기사를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남궁원 , 윤미라 *주 1 등 20여 명의 배우가 출연하고, 미국의 원웨이프로덕션과 일본의 동보영화사가 제작에 참여하며 각본은 <그린베레>(존 웨인, 레이 켈로그, 1968), < 프렌치 커넥션 >(윌리엄 프리드킨, 1971)의 원작자인 로빈 무어와 폴 사베지가, 감독은 < 서부로 가는 길 >(앤드류 V. 맥라글렌, 1967), <철인들>(앤드류 V. 맥라글렌, 1969)과 같은 서부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앤드류 V. 맥라글렌이 담당하기로 했다. 그렇게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간다는 영화는 그러나, 5월이 한참 지나도록 촬영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7월이 되자 이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들려왔다. 기술협조를 하기로 한 일본의 동보영화사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든가, 시나리오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는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촬영 개시를 지연시킨 가장 큰 문제는 시나리오였다. 당시 각색을 담당했던 로빈 무어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 대해 “2시간 안에 담아내기에 너무 방대한 이야기였다. … 등대가 인천상륙작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결국 다른 작가들이 투입되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주2 결국 1978년 5월에 촬영에 들어간다던 영화는 무려 1년을 더 기다려 1979년 5월, 새로 영입한 감독이 한국을 방문하며 다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1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교체된 감독이 무려 테렌스 영이었다. 테렌스 영은 국내에서 ‘007 시리즈’로 명성이 나 있는 감독이었다. 한국에서는 1965년에 < 007 제2탄 - 위기일발 >(테렌스 영, 1963)이 007 시리즈 가운데 가장 먼저 개봉했다. 실제 007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트렌드에 민감한 수입업자들은 서둘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 007 살인번호 >(테렌스 영, 1962)를 수입해 개봉했을 정도였다. 테렌스 영이 감독한 마지막 007 시리즈 < 007 썬더볼작전 >(테렌스 영, 1965)이 국내에 개봉하고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테렌스 영은 여전히 국내에 다수의 팬을 거느리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영화 촬영을 위해 방한한 테렌스 영 감독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6.25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 한국이 공산당에 침략당했다는 것을 세계 모든 나라에 알리게 될 것(《경향신문》 1979.5.5)”이라는 발언을 한 이후, 북한에서 《로동신문》의 논평을 통해 이 영화가 “악랄하게 중상모독, 헐뜯는 반동 내용(《경향신문》 1979.5.16)”이라고 비난하며 제작 중지를 요구해왔다. ‘테렌스 영’이라는 스타 감독의 참여에 더해 친한(親韓)적인 그의 발언,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이르기까지 확실하게 화제성을 확보하면서 <오! 인천>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뒤이어 해외 출연진도 속속 명단이 발표됨과 동시에 배우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물론 제일 관심을 끄는 것은 과연 누가 ‘맥아더 장군’의 역할을 맡을 것이냐였다. 놀랍게도 그 역은 영국의 영화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돌아갔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 햄릿 >(로렌스 올리비에, 1948), < 헨리 5세 >(로렌스 올리비에, 1944), < 리차드 3세 >(로렌스 올리비에, 1955) 등 셰익스피어 작품을 기반으로 한 영화의 주연을 맡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배우이고, 1947년에는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으며(국내 신문기사에서도 로렌스 올리비에를 지칭할 때는 꼭 올리비에 ‘경’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빅터 플레밍, 1939)와 < 애수 >(마빈 르로이, 1940),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엘리아 카잔, 1951) 등의 작품으로 국내 많은 팬을 가지고 있었던 비비안 리의 연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그가 ‘맥아더 장군’의 이미지에 잘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로렌스 올리비에’가 그 역을 맡는다는 것 자체로 이 영화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스케일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촬영이 시작되자, 미국에서 공수해온 장비와 동원된 스태프, 엑스트라의 스케일이 또 한 번 한국 측 스태프들과 언론, 촬영현장을 구경하러 온 시민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당시 촬영 현장의 분위기와 이 영화의 규모는 이를 상세히 설명한 신문 기사와 구술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6.25 당시 피난민들의 행렬을 재현한 촬영 현장(《동아일보》 1979.9.5) 테렌스 영 감독을 비롯해서 로런스 올리비에 경, 재클린 비세트, 벤 가자라 등 세계 정상의 배우들이 우리나라에 몰려와 촬영 중인 영화 <오! 인천>은 스태프 캐스트 못잖게 엄청난 물량 작전으로 계속 화제를 뿌리고 있다. … 현역미군 등 5백명의 엑스트러와 탱크 4대, 장갑차 2대 등이 출연한 서울탈환 장면은 당시 서울 거리와 가장 비슷한 인천 신포동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 지난 6월 28일 촬영을 시작한 영화 <오! 인천>은 용인 민속촌을 비롯하여 경기도 파주군 법원리, 강원도 횡성비행장, 경북 왜관, 인천, 서울 등을 돌며 제작됐다. 이중 6.25 당시 낙동강 철교 폭파를 재현한 촬영에는 피난민 차림의 엑스트러 1천 3백명, F86 등 전투기와 탱크들이 동원돼 13일 동안 6대의 카메라에 담았다. *주3 인천에서도 폐기된 수인간(水仁間) 미니열차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고 영흥도에 3천만원을 들여 등대를 세우기도 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모습은 인천 제2부두에서 촬영됐는데, 군함 12척과 상선 10여척이 동원돼 장관을 이뤘다고. … 이 영화는 당초 1천8백만 달러(90억원)의 제작비가 계상되었으나 제작기간의 지연 등으로 이미 3천5백만 달러(1백75억원)가 투입됐단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물량이 동원된 이 작품에는 6명의 주연급 배우(남궁원 포함)와 테렌스 영 감독이 쓸 캠핑카 8대, 토일렛카, 링컨 컨티넨털 승용차, 지프 2대가 미국에서 운반됐다. 캠핑카는 침대와 화장실, 식당과 에어컨 장치가 돼 있어 촬영현장에서 주연 배우들이 쓸 수 있도록 했다. 또 높이 10m까지 올라가는 크레인 카도 제작자인 이탈리아인 기사가 직접 가져와 운전하기도. 이밖에 진행을 위해 1백30대의 차량이 국내에서 동원되고 영화에 등장할 40년대식 승용차 6대,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에 쓰던 차와 동형의 크라이슬러, 그리고 탱크, 장갑차, 소제(蘇製) 무기 등이 미국에서 옮겨져왔다. 칠순의 로런스 올리비에 경을 비롯해서 재클린 비세트, 벤 가자라, 데이비드 젠슨(TV영화 <도망자> 주연), 리처드 라운트리, 일본의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郞) 등 세계적인 배우를 포함, 한국인 1백명, 미국인 50명, 영국인 30명, 이탈리아인 30명, 일본인 30명 등 스태프가 참가한 이 영화는 인적 구성에서도 국제적인 성격을 짙게 띠고 있다. - “<오! 인천> 로케 한창, 엄청난 물량작전 한국동란 재현(《경향신문》 1979.9.14.) ” 그때 내가 <오! 인천>을 보고, 카메라가 아홉 대가 다 뭐냐하면, 다 파나비전 카메라예요. 아리플렉스가 아니라. 미국에서 원 파나비전 카메라, 제일 좋은 카메라예요! ( 구중모 , 2015, 212쪽) *주4 그때 하얏트 호텔 2층 일체를 썼죠. 그때 뭐 복사하는 데도 있었고, 뭐 신기하게 여겼죠. … 우선, 이 장비가, 장비가 많아, 양이.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없는 현대적인 장비. 특히 낮에 라이트를 킨다는 게, 이건 못 보던 거거든. ( 김호길 , 2016, 116쪽) *주5 그때 150대의 차가, 그러니까 자동차 배차하는 거 있잖아요? 배차요원을 홍콩에서 데려왔어요. 현장에서 차 관리하는 애가 스무 명. 또 뭐 관리하는, 여하튼 식당이 있잖아요? 식당이 두 팀. 얼마나 웃기냐면요,하얏트 호텔에서부터 문산까지 온다고 생각하면, 시내는 500미터, 긴 거리는 1키로마다 깃발을 꽂아놔요. 잊어먹을까봐. 한 팀이라도 늦게 나오면 안되잖아요. … 엄청난 돈이에요. 은행 차가 쫓아, 현장에서 줘. 은행 차가 다녔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럼 스태프들한테 시간 당 현찰로 줘버려요, 엄청난 돈을. ( 박광남 , 2023, 112~113쪽) *주6 경북 칠곡군 왜관면에서 촬영된 다리 폭파 장면의 촬영 현장 (박광남 기증 자료) 중앙청 앞에서 진행된 서울 탈환 장면 촬영 현장 (박광남 기증 자료) 통일교, 그리고 영화에 쏟아진 혹평들 특히, 당시 <오! 인천>에 참여했던 국내 스태프들은 구술에서 공통적으로 외국에서 온 스태프들이 하얏트 호텔의 한 층을 통째로 빌려 사용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 하얏트 호텔은 이 영화가 촬영되기 1년 전인 1978년 7월에 개장한 5성급의 미국 체인 브랜드 호텔이었다. 평소 한국영화 촬영을 다닐 때 “5천원짜리 여관방에서 댓 명이 한 방을 쓰는” *주7 환경에 익숙해져 있던 충무로 스태프들에게 최신식 시설이 갖춰진 호텔을 촬영 기지로 쓴다는 것은 꽤나 인상 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촬영을 끝낸 촬영팀에게 새로운 문제가 되었다. 촬영팀의 출국을 앞두고, 하얏트 호텔의 숙박비 22,327,000원을 지불하지 못해 촬영 기자재 등의 유체동산에 대한 가압류 처분이 내려졌다. 당시 물가를 생각했을 때, 2천여만 원이라는 금액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몇 백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에서, 외국인 출연자들의 주급을 매주 헬리콥터로 실어나르고, 스태프들의 일당 지급에 은행차까지 동원해가며 그때 그때 현찰로 지급하는 등 제작비를 쓰는 데에 아낌이 없던 영화 제작사가 호텔 숙박비를 내지 못해 가압류에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 자금에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며칠 뒤 제작사와 호텔 측이 합의에 도달하며 가압류 기간이 연기되었다는 짧은 기사로 이 사건은 정리가 되었고, 촬영팀도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오! 인천>를 둘러싼 구설들은 끊이지 않았다. 먼저 한국 체류 당시 테렌스 영의 손목시계와 필름 1,345피트(당시 시가로 350만원 상당)를 도난맞은 사실이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그러나 끝내 범인도 잃어버린 물건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1980년에 이미 모든 촬영을 다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개봉과 관련하여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다가, 1981년 2월에는 이성구 감독이 재편집을 위해 미국으로 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런 소문이 돌고 있는 와중에 5월에는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미국의 상류층 인사들을 모아놓고 <오! 인천>의 비공개 시사회를 개최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런데 시사회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케네디센터 주위에서 통일교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일어나며, 영화에 대한 가타부타 평가는 없이 모든 관심이 ‘통일교’에만 쏠려버렸다. 비슷한 시기 국내에서도 <오! 인천>을 둘러싼 아주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했다. 1981년 8월 4일 용산구 원효로에 살던, 일명 ‘원효로 보살’로도 알려진 70대 노파가 그녀의 양녀⋅가정부와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평소 유명 정치인들의 점을 봐주거나 복을 빌어주며 고위층과 인맥을 형성한 바 있고, 이를 통해 큰 부를 쌓았던 윤 노파가 살해당한 사건과 관련하여 재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윤 노파의 <오! 인천>에 대한 투자 여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주8 이렇게 <오! 인천>에 대한 관심은 작품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자꾸 그 주변부로 옮겨가고 있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 관심이 이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개봉해서 흥행만 잘 된다면 이까짓 구설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대중에 영화가 공개된 것은 프랑스 칸에서였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제작사 측은 칸국제영화제에서 “25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영화 제목이 새겨진 키트 등을 나눠주고 16일 시사회가 끝난 후 호화파티를 열었는데 구매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았다(《조선일보》 1982.5.19)”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신문 기사는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외면당한 원인을 통일교와 연관 짓고 있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인 영화의 완성도 문제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해외 영화시장에서 전혀 판매되지 않았고, 1982년 9월 17일 미국 내 상영만이 힘겹게 성사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혹평 일색이었다. 급기야 통일교 측에서는 영화제작팀 이름으로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 《시카고 트리뷴》, 《LA타임즈》, 《뉴스 월드 인 뉴욕》, 《워싱턴타임즈》 등 6개 일간지 전면광고를 통해 “미국 기자와 평론가들이 <인천> 영화 자체의 가치는 평가하지 않고 이 영화의 특별후원자로서 문선명 목사의 이름만 강조하고 있는 데 대해 서글픔을 느낀다”라며 “영화 <인천>의 예술적 가치를 객관적 입장에서 냉정히 평가해줄 것을 미국 국민들에게 촉구(《동아일보》 1982.10.5)”했다. 그러나 영화 <오! 인천>의 흥행 실패를 통일교와의 연관성에서만 찾는 것은 오히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럼 처음 제작 때부터 그토록 큰 대중적 관심을 끌어모았던 <오! 인천>은 왜 한국에서 상영되지 못했던 것일까? <벤허>보다 (제작비가) 더 많이 들었다고 그랬어, 그 작품이, <오! 인천>. 근데 한국에서 상영 못한 거는 뭐냐 하면 너무 북한을 우상화 시켰다는 거야, 영화를. 그래서 안된 거예요. (구중모, 2015, 216쪽) 영화가 안 되는 이유는 … 정치적인 거예요, 그게. 국방부에서 3일 공연을 했어요, 국방부에서만. 그래 그 시대에 그거야, 이북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공연 못하게 한 거예요. 그거 잘했으면 문선명이 자기 일대기를 하겠다고 그랬다고. … 다 영화제작사에서 잘못한 거야. 일개 장교가 비행기 타고, 한국에 들어올 때 이승만 대통령 등때기 탕탕치고 하는데, 그렇게 푸대접을 하는 것 같은 그런 장면은 사실 아니거든. 한국의 국익이 상하지. 그래서 나라에서 공연 못하게 했는데. 미국에서도 안 됐어. 전혀 안 됐어요. 한 일주일 하고 문 닫았어. (박광남, 2023, 154쪽) <오! 인천> 제작 당시 특수효과 담당 스태프로 참여했던 박광남은 이 영화가 국방부 내에서 시사회가 이루어진 이후, 한국에서의 영화 상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만약 그의 기억이 맞다면 이 영화를 본 국방부 관계자들은 북한에 대한 미화는 둘째 치고, 일부 장면에서는 적군보다 더 나빠 보이는 데다가 *주9 전쟁 장면 내내 인민군 탱크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민중들보다도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한국군의 모습을 더 마음에 들지 않아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영화 속에 드러난 한국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고증 실패를 모두 눈 감아 준다고 하더라도 앞서 이야기했던 구설들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인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하겠다고 나서는 업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무려 4,6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 대작 영화는 조용히 사라졌다(IMDb 기준, 이 영화를 통해 벌어들인 총수익은 52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중 오프닝 수익이 230만 달러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여기서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같은 해 1천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영화 < 이티 >(스티븐 스필버그, 1982)는 미국 내에서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8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한국영화계에 <오! 인천>이 남긴 것들 하나의 작품으로서 <오! 인천>이 가진 수명은 여기에서 끝이 났지만, 한국영화계에서 이 영화는 또 다른 방향으로 계속해서 그 영향력을 이어갔다. 먼저 당시 <오! 인천>에 참여하면서 충무로 스태프들은 소품⋅의상⋅특수효과 등에 쓰일 재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을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오! 인천> 촬영 이후 생긴 촬영 소품과 재료들을 같이 관리할 곳이 필요했다. 그때 <오! 인천>에서 재료를 내가 많이 받았거든. 그걸 그냥 활용했으니까. …<오! 인천>이란 영화, 그거 끝나고 인저 삼우회를 결성해가지고, 의상⋅효과⋅소품 해가지고 뚝섬에 큰 창고 건물을 직접 얻어 가지고 그걸 나눠서 썼는데, 1980년도에 큰 화재가 나면서… (김호길, 2016, 103쪽) 그때 어디냐면 뚝섬. 거기 우리 불났어. (웃음) 완전히 탔어. 의상도 완전히 타버리고. 의상하고 우리하고 창고를 하나로 같이 있었거든. 그때 <오! 인천>에 갖다 놓은 물건도 있었구나. 거기 사다리 같은 거, 그 좋은 것들이 몽창 다 탔어. 무기도 몽창 타고. 화약은 거기 안 뒀거든. (박광남, 2023, 127쪽) 구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많은 촬영 소품과 의상, 효과 재료들이 소실되기는 했지만, 당시 충무로 인력들이 <오! 인천>에 참여하며 배웠던 것들이 함께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이후 한국의 전쟁영화, 근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나 규모가 큰 영화를 촬영할 때 자신이 배웠던 것들을 최대한 살려 활약했다. 이게 촌길에 철조망이 깔려 있으니까 우체부가 자전거 끌고는 못 가는 거야. *주10 “책임지겠습니다. 지나가세요.” 그랬지. 그게 뭐냐 하면은 가짜 철조망이거든. 제가 만든 거예요. 그게 79년도 <오! 인천>이라는 영화 때문에, 거기서 그걸 배운 거야. 이렇게 해서 만드는구나. … <프로페셔날>인가? 전쟁터 나오는 장면에서 라스트가 막 가다가 철조망에 걸려 죽는 게 있어요. ‘야, 저거 되게 아팠겄다. 이렇게 어떻게 했을까’ 했는데, 바로 그런 거야. 그래 인제 79년도 <오! 인천> 영화를 하면서 배운 게 많았고. (김호길, 2016, 133~134쪽) 상륙작전 하는데, 카메라 아홉 대가 필요한 거예요. 거기서 그런데, 헌팅을 가서 어떻게 했냐면, 봐요. 거기서 뭘 배웠냐? 카메라 아홉 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는 거를 하루종일 하는 거야. A카메라 이렇게 부감대로 놓고, B카메라 하나, 둘 막 바꿔놓는데, 한국사람 같으면 그걸 연출을 못해. … 한국에서 만약에 이걸 동시녹음을 하게 되면 한 달은 더 찍어야 돼. 그런데 하루에 딱 끝나는 거야, 그날에. 예행하고 정식촬영할 땐 하루에 다 끝나더라고. 또 중요한 게 뭐냐, 폭탄이 터지는데 걔들은 각도를 다 살려놔요, 터지는 각도. 한국 특수효과들은 그걸 다 배우는 거예요, 거기서. 그러면 거기서 폭탄이 터지는 순간에 여기 카메라가 안 보일 거 아니냐고, 응? *주11 고런 머리를 다 써놨어요. 그러니 아홉 대라는 게 말이 쉽지 이걸 연출자가 계산을 할 정도면. (구중모, 2015, 212~213쪽) < 용가리 > 할 때 몸에 폭탄을 터트려야 하는데, 실제 화약이 안 좋아서 막 불이 붙기도 하고 그랬어요. *주12 <오! 인천> 할 때 보니까 미국사람이 완벽하게 하는 거, 미국사람들이 와서 터득을 했어요. 터득하면서 저는 저 나름대로 그거를 다시 응용을 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많이 습득을 했죠. … <오! 인천>이란 영화, 외국사람 특수작업 같이 했기 때문에 많이 배웠고, 저희도 많이 응용했고. 저 나름대로도 그 사람들 기술 플러스 우리 기술을 어느 정도 포함시켜서 더 좋게 됐지 않았느냐 그렇게 보기도 하거든요. ( 이문걸 , 2006, 40쪽) 그러나 이들의 구술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약 20여 년(구술 시기에 따라 길게는 40년)이 흐른 뒤에도 <오! 인천> 촬영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에야 많은 한국의 영화인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그 안에서 함께 작업을 하거나 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1979년 당시 한국영화계의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오늘날 블록버스터 급이라고 할 수 있는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영화에 참여하며, 할리우드의 기술과 시스템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경력이다. 그리고 이때 참여한 스태프들이 모두 <오! 인천> 이후 더 많은 한국영화 촬영현장에 불려 다니며 1980~1990년대 내내 활동했다는 것이 그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저희가 <오! 인천>에서 영화발전에, 특수효과에 많이 발전시켰다고 자부합니다.(12쪽) … 한국영화계가 <오! 인천>이라는 거를 하기 위해서 차량이라든가 기동력이라든지 이런 거를 많이 배웠어요. 어떻게 보면 영화는 상영되지 못해도, 영화 개념적으로 많이, 영화 바뀐 것이, 제작자 바뀐 것이 <오! 인천>이지 않았나.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문걸, 2006, 21쪽) ※ 인용 구술 (인용된 페이지는 각 구술 뒤에 표기) 심혜경, 『2006년도 원로영화인 구술채록 자료집: 이문걸 편[특수효과⋅소품⋅미술]』, 한국영상자료원, 2006. 배수경, 『 2015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합작영화 2 김정란⋅이남기⋅구중모 』, 한국영상자료원, 2015. 이정아, 『 2016년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권 김호길 』, 한국영상자료원, 2016. 남기웅,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권 박광남』, 한국영상자료원, 2023. *** 주1. 윤미라는 후에 출연을 거부했다. 그리고 윤미라가 연기하기로 했던 배역은 리디아 레이(Lydia Lei)에게 돌아갔다. 이 영화에 참여했던 배우 남궁원의 구술에 따르면 당시 한국 측 출연 배우들은 직접 테렌스 영을 만나 오디션 비슷한 것을 봤는데, 이때 배역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들을 제시했다고 한다. 주2. “<Inchon> Trivia”, IMDb, < https://www.imdb.com/title/tt0084132/trivia/?ref_=tt_trv_trv >. 주3. 신문 기사에서 상술한 장면은 경북 왜관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해당 장면은 1950년 6월 28일에 있었던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을 다룬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구술자들 역시 기억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 장면을 ‘한강 다리 폭파’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촬영기사로 참여했던 구중모의 구술에서는 테렌스 영이 원래 이 장면 촬영을 위해 실제 제3한강교를 폭파시키고 싶어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경북 칠곡군 왜관면에 있는 다리를 폭파시킨 뒤 촬영했다고 말했다. (배수경, 『2015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주제사>: 합작영화 2 – 2권 김정란 이남기 구중모 편』, 한국영상자료원, 2015, 215~216쪽.) 주4. 구술자 구중모 는 <빨간 마스크의 여인>(김인수, 1971)을 통해 데뷔하여 <티켓>(임권택, 1986), <결혼이야기>(김의석, 1992) 등의 영화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하였으며, 1986년에는 <씨받이>(임권택)로 대종상 촬영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15년 <합작영화> 주제사를 통해 <오! 인천>에서 한국 측 촬영팀으로 참여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주5. 구술자 김호길 은 1960년대 연출부로 영화계 입문하여, 1968년 임권택 감독의 <몽녀>를 시작으로 한국영화에서 소품 담당 스태프로 일했다. <오! 인천>에서도 소품 스태프로 참여했다. 주6. 구술자 박광남 은 1950년대 후반 영화계에 입문, 1960년대 본격적으로 특수효과 스태프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부터는 CF, TV드라마, 연극,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특수효과 전문가로 활약했다. <오! 인천>에서 특수효과 담당 스태프로 참여했다. 주7. 이정하, 『2016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1권 김호길 편』, 한국영상자료원, 2016, 73쪽. 주8. 사건의 내용이 다소 복잡한데, 당시 재판을 받던 피의자가 경찰에 의한 강압적인 수사와 고문이 있었으며, 자신의 자백은 모두 이 고문으로 인한 것이었다며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에 피의자의 결백에 대한 근거로 피해자의 사망시각이 중요한 쟁점이 되었는데,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이 주장하는 사망시각에 피해자가 <오! 인천>의 한국 제작총괄이었던 박경도와 원웨이프로덕션의 대표 이시이 미츠하리를 만났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피의자 측에서는 윤 노파가 <오! 인천> 제작에 20억의 거액을 투자했고, 이를 통해 한국 측 상영권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원웨이프로덕션 측에서 증인으로 나왔던 박경도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 부정하며, 그들이 윤 노파를 만나고자 했던 것은 단지 ‘영화가 검열을 무사히 통과하고, 흥행이 될 수 있도록 불공을 부탁드리고자’ 했으나, 약속한 날 윤 노파는 나오지 않아 만나지 못한 채 이시이 씨는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증언했다. 주9.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인도교 폭파 장면이다. 미군 장교의 부인이 자신의 차량 안에 한국인 어린이와 소녀들을 가득 태우고 다리를 빠져나가는 도중, 미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군은 다리를 폭파시킨다. 끊어진 다리 끝에 걸린 차량 안에서 모두 무사히 구출되기는 하지만, 이것도 주위 피난민과 미군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주10. 영화 <뽕>(이두용, 1985)을 촬영할 당시 뽕밭에 친 철조망을 보고 마침 촬영장 쪽을 지나가던 우체부가 자전거를 멈추고 섰다는 의미이다. 주11. 어떤 각도에서 폭탄이 터져도 9대의 카메라 중 어느 카메라에도 다른 카메라가 잡히지 않도록 구도를 잘 맞춰놓았다는 의미이다. 주12. 영화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1967) 촬영 당시 사람의 몸에 작은 화약을 넣고 터트려 총에 맞는 듯한 효과를 내야 했는데, 그 기술이 부족해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대괴수 용가리> 촬영 때는 일본의 특수효과 기술자들을 초대해 함께 작업을 했었는데, 본문과 이어지는 구술에서 일본 특수효과 기술자들도 ‘미니어쳐’ 전문가들이라 당시에는 작은 화약을 활용한 특효 기술을 잘 배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구술자 이문걸 은 박광남과 함께 <오! 인천>에서 특수효과 담당 스태프로 참여했다.
결백과 고통, 소외에 대한 세계관에 근거한 이창동의 인본주의적 이야기들은 그를 현대 한국영화의 대표 작가로 추인하였다. 스타일과 주제의 선택은 자연주의에 의해 주도되었던 초기작들을 넘어 작품을 거듭할수록 다의적 메타포로 확장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창동의 영화는 개발과 번영, 선진화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한국 사회가 우리들의 시야 바깥으로 밀어내었던, 보이지 않거나 말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둔 이야기들이다. < 버닝 >(2018)은 사회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분열에 관한 형이상학적 스릴러이다. 지극히 평범한 디테일까지 의례적으로 보여주는 성향 때문에 이 영화에는 정확한 의미와 유효성을 확인할 수 없는 모든 종류의 정보가 흩어져 있다. 이창동은 하나 이상의 해석에 적합하도록 체계적으로 계산된 세부 디자인으로 복잡함을 가장(假將)하는 플롯을 제시한다. 스토리의 정합성을 부정하는 영화는 기만적인 방식으로 주제를 함축한 긴 롱테이크 쇼트로 시작한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한 쇼트의 프레임을 트럭의 문이 3/4 정도 가리고 있다. 단순한 구도를 지속함으로써 관객들에게는 프레임 안의 디테일을 관찰할 시간이 주어지며, 그중 어떤 것이 앞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게 될 것인지를 추측하도록 요구한다. 잠시 후 문의 뒤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곧이어 연기의 기원인 담배를 든 손이 보이고, 마지막으로 한 청년이 얼굴로부터 프레임 안으로 진입한다. 종수(유아인)이다. 의미 맥락을 추정하기 힘든 이 이미지는 하나의 지시이며 플롯을 추진하는 모터이다. 종수가 몰고 다니는 트럭의 문은 프레임을 가려 보이지 않는 영역을 조성하고 이 비(非) 가시성은 최초의 미스터리가 된다. 뒤이어 나타나는 종수는 온전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등을 보이고 서서 트럭 문을 열고 옷더미를 어깨에 올려 인파들이 가득한 거리를 걷는다. 카메라는 여전히 종수의 뒤를 따라가지만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번잡한 거리를 지나 종수는 ‘90% 폐업 세일’을 하는 옷 가게 앞에서 요란한 춤을 추면서 호객을 하는 두 명의 나레이터 모델을 스쳐 안으로 들어간다. 종수의 뒤를 따라 온 카메라가 먼 발치에서부터 그녀들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종수의 시선에 동조된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존재가 들어오지 않는다.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왼쪽에 있는 여자는 종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그가 간 길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카메라는 종수의 뒤를 따르기를 멈추고 안으로 들어간 종수의 동태를 살피는 여자의 전신에 고정된다. 나중에 밝혀지기로 그녀는 종수의 초등학교 동창 해미(전종서)이다. 첫 대면에서 해미는 종수를 알아보지만, 종수는 알아보지 못한다. 즉, 해미는 보지만 종수는 보지 못한다. 해미가 종수를 단번에 알아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구도는 해미를 시선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다룬다. 이 롱테이크는 종수의 움직임을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관객들이 종수의 동조자가 될 수 있도록 부추긴다. 해미가 종수를 보는 행동과 해미를 객관화하는 영화적 계획 사이의 불일치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어긋남이라는 테마와 연결된다. 카메라가 그녀를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사회적 정체성이 결여된 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타자의 존재를 이해하는데 실패하거나 거부하는 신호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2분여에 달하는 오프닝 롱테이크 쇼트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선의 권력과 그 대상, 드러난 것과 잠재된 것 사이의 관계를 서사화하는 플롯의 쟁점을 압축하면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통해 ‘태우다’라는 모티프를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해미와의 몽상적인 재회 이후 종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침대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종수는 영화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보는 대다수 장면은 그의 시점을 통해 걸러진다. 그가 보는 것을 우리도 보고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보지 못한다. 해미의 방에 비치는 햇빛에 종수의 시선이 옮겨갈 때 카메라는 그 빛에 초점을 맞춘다. 불안한 꿈 장면에서 화염의 환영이 종수를 방문했을 때 관객들에게도 위협이 전해진다. 해미와의 에로틱한 만남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고 종수는 그녀의 보이지 않는 고양이 ‘보일’을 돌보기로 한다. 이렇듯 <버닝>은 해미의 고양이에서 종수의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부 사항들이 플롯의 진행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야기이다. 복잡한 스토리텔링 영화들처럼 식별된 주제와 내러티브 구성 요소는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보완하는 관계로 보인다. 여행을 마치고 해미와 동행한 부유한 남자 벤(스티븐 연)이 나타난 이후부터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문 뒤에 가려진다. 해미의 실종은 가장 큰 미스터리이며 종수를 미로로 몰아가는 필사적인 탐사 시퀀스에 들어서면서부터 해미 뿐 아니라 고양이와 우물, 두절된 전화 통화, 인적이 끊긴 비닐하우스 따위의 가려진 존재들이 연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벤의 방화는 물질에서 비(非) 물질로, 존재에서 비 존재로 상태를 전환시키는 행위이다. 오프닝 신의 담배처럼 벤의 방화는 존재하지만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사물들을 창조한다. 6분여의 기나긴 롱테이크로 구성된 결말부는 오프닝 쇼트와 공명한다. 여기서 종수는 ‘노는 일’을 한다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개마저도 메타포로 대체하는 벤을 살해하고, 태워버린다. 이 장면에서 성공적으로 재현되는 초현실주의적인 기운은 화염에 그을리는 벤과 포르셰에 대한 단정적인 해석을 유보한다. 사건이 진행되는 공간을 반으로 갈라 벤의 영역과 종수의 영역을 마주 보게 하면서 카메라의 위치를 이동하는 신 안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이음매를 확신시켜줌으로써 이창동은 종수가 벤을 태우는 한계 공간을 만든다. ‘태우기’의 양가적인 의미는 롱테이크를 통해 완성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버닝>은 담배를 태우던 종수가 벤을 태우면서 끝이 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이분법적인 시선, 세계관을 초점으로 한 이 이야기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리얼리티와 메타포, 종수와 벤으로 구체화된 이분법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표면과 심층에 항상 놓여 있다. 따라서 트럭 문 뒤에서 종수가 담배를 태우며 나타나는 것은 사회, 경제, 정치적 장막에 의해 가려진 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중심에 두고자 하는 윤리적인 주제를 암시한다. 플롯의 끝에 종수는 눈에 보이는 허상을 살해하고 태워버림으로써 메타포 뒤에 가려진 현실을 보기로 한다. 과연, 그때부터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버닝>은 스토리텔링의 두 가지 양식, 예술적 형상화 방식의 두 극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종수가 소설을 쓰게 되는 동기와 과정, 결과로 나타난다. 벤을 살해하고 태우는 장면으로 이행하기 전에 이창동은 종수가 해미의 원룸 창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신을 배치한다. 카메라는 창문에서 뒤로 물러나 해미의 방과 서울 도심의 풍경을 프레임의 좌우에 나란히 놓는데, 이는 영화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남산 타워에서 바라본 시점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엔딩 시퀀스는 존재의 확실성에 대한 영화의 질문을 완성하고,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망각하도록 만드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따라서 수많은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일종의 미장 아빔(액자 속 이야기)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여자친구의 얼굴을 치장하는 벤을 보여주는 신은 유일하게 종수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장면이고 벤을 살해하는 마지막 신에서는 오프닝 직후 관객의 눈을 대신해왔던 종수가 벤의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진짜 작가가 되어가는 종수의 글쓰기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탐정으로서의 장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아니, 엄마에 대해 비밀도 오차도 없이 모두 다 알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랑하건 혐오하건 엄마는 엄마다. 그래서 자녀들은 종종 엄마를 철저히 현재형으로 단순화한다. ‘우리 가족’으로 포섭되기 이전의 엄마의 삶이란, 종종 막연한 두려움을 낳는다. 나와 내 아버지만 없었다면 혹시 그녀의 삶이 더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가족의 풍경이 지옥이 될 때, 이 질문은 화살표의 방향을 돌연 바꾸어 놓기도 한다. 부모가 없다면, 가족만 없다면, 내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곧 성년을 앞둔 < 결백 >( 박상현 , 2018)의 주인공 정인( 신혜선 )은 그 나이대에 누구나 그러하듯이, 엄마를 탐구하는 대신 자기 삶의 돌파구를 택한다. 야반도주다. 폭력적인 아버지, 자신보다 언제나 먼저인 남동생, 딸의 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너무도 무력한 엄마. 이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친다. 십여 년 후 그는 서울에서 잘 나가는 대형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로 자리잡는다. 아무도 정인의 과거를 모르고, 알려 들지도 않는데, 그러자 이번엔 고약한 운명이 다시 고개를 든다. “사건 좀 가려 받아요”라고 로펌 대표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는 냉철한 변호사로 하여금, 회의 도중 아무렇게나 틀어놓은 뉴스 화면에서 엄마의 얼굴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늙고 병 든 엄마는 여전히 그대로인 그 고향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뤘고, 심지어는 장례식에서 벌어진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당했다. 번쩍이는 고급 세단의 문이 열리고 칼주름이 잡힌 바지 정장에 힐을 신은 여자의 발이 내려온다. 낡은 시골집 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축축한 진흙 위에 군데군데 돌이 솟아나 있어 혹여 구두굽이 잘못 걸리지는 않을까 위태롭다. 정인의 귀환을 알리는 첫 이미지는 세월이 흘러 그가 얼마나 고향과 이질적인 인물이 되었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부연하면 정인은 불편한 존재다.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농약 막걸리 살인 사건은 그 자체로 파열음인데다, 사람들을 탐문하고 다니는 서울 변호사는 성마른 불안과 위협으로 다가온다. 정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사실은 영화 장르를 범죄 스릴러이자 법정 드라마로 이끄는 상업영화의 검증된 장치이기도 하겠으나, 앎의 권력에 관한 젠더 이슈와 연계했을 때 생성되는 의미들과 함께 비로소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10대의 정인에게 알콜 중독으로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가장 큰 적대자였다면, 귀환한 변호사 정인에게는 지역의 권력자 추시장( 허준호 )이 나타난다. 그 사이에서 정인의 엄마 화자( 배종옥 )는, 이런 표현을 쓰기 싫지만, 남편과 추시장이 지배하는 세계의 피해자로 붙잡혀 있다가 어느새 미쳐버렸다. 탈출하지 못한 자가 망각(치매)을 택했다는 사실만큼 가슴 아픈 단서가 있을까. <결백>은 정인의 직업과 화자의 병을 장르(스릴러)와 주제(젠더 권력)적 측면에서 모두로 적절히 활용하는 영리함을 보여준다. 엄마의 진술에 의지할 수 없다는 불가항력적 상태가 정인에게 변호사 본연의 책무 이상으로 탐정에 가까운 역할을 요구하고, 정인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간다. 보태자면 용의 선상에 있는 추시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막걸리 농약 사건의 피해 당사자라는 점 또한 정인에게 오히려 더 적극적인 앎의 기회를 준다. 그들 중 일부가 목숨을 잃거나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고 추시장 캐릭터 역시 그의 노쇠함이 얼마간 부각된다. 어떤 시대가 끝나려하고 있고, 정인은 그 어둠이 맥없이 덮히기 전에 밝혀내려는 것이다. <결백> 개봉을 앞두고 박상현 감독을 인터뷰 차 만났을 때, 감독은 영화 속에 등장한 소품을 굿즈로 제작해 내게도 선물로 건넸다. 하나는 영화 속에서 범인을 쫓는 중요한 단서로 쓰이는 노래방 라이터이고, 또 하나는 추시장과 그의 패거리들이 젊은 시절 바닷가에서 물놀이 중에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다. 라이터 디자인에서 베어나오는 지독히도 한국적인 무언가가 재밌었고, 영화 속에서 부패의 무리로 그려지는 남자들이 보내는 즐겁고 빛나는 한 때의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이 두 개의 기호만으로도 정인의 세계가, 정인의 고향 마을이 뜻하는 '구시대'가 어떤 것인지 감지되는 듯 했다. 영화가 추시장 무리의 젊은 한 때를 비추는 이 사진은 비출 때,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안으로 그 어떤 추악한 모의를 꾸미더라도 밖으로는 명명백백 해맑은 소년성을 내보일 수 있는 그들의 자신감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결백>은 그들이 풍미했던 나날을 한마디로 ‘은폐’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농촌개발 정책과 함께 부와 권력의 획득을 꿈꾼 이들은 암암리에 고급 정보를 공유하며 살인 모의도 서슴지 않는다. 화자는 그 과정에서 영문도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정인에게는 출생의 비밀을 남겼다. 문학평론가 오은교는 남편 가족의 제사 풍경을 서늘하게 써내려간 강화길의 소설 <음복>을 해설하며 “가부장이라는 권력이 절대적인 사회에서 앎은 온전히 젠더화되어 있다”(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 44p, 문학동네)고 썼다. <음복>에서는 남자가 가족 내부의 첨예한 긴장 관계에 무지할 권리를 갖고, 여성은 모든 것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 괴로운 감정 노동의 부역자로 자리한다. <결백>은 반대로 부와 권력의 관점에서 오로지 남성들 사이에서만 공유되고 은폐되는 정보들과 그로 인한 범죄를 짚는다. 그 과정에서 배제된 여성, 망각과 사적 복수를 택한 여성, 도망쳤다가 힘을 길러 다시 되돌아온 여성이 차례로 등장한다. 배제와 은폐로 집약되는 구시대의 작동 원리를 끊어내려는 정인은 특이하게도, 자기 출생의 비밀 자체에는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정인과 화자의 눈물겨운 접견 장면에서 신파조의 연출이 개입하기는 하지만, 그 절절함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엄마의 삶에 대한 위로와 연민의 감정이지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통한이 아니다. 오히려 정인은 그동안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놓고 향유할 수 없었던 엄마에게 뒤늦게 서사를 쥐어줌으로써 차라리 후련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연출자의 선택과 집중이라면 그 경제성의 동의하고, 만약 다른 의미가 있다면 정인을 과거의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려는 의도이길 바란다. 대중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천천히 진화해가고 있다는 증거로서 <결백>은 꽤 흥미로운 지표로 간주될 영화다. 구시대의 쇠사슬을 끊기는 했지만 사법적 정의에 의하면 어느 쪽도 결백한 사람이 없다는 마지막 시퀀스의 서늘함도 유효하다. 정인의 시대 또한 분명히 하나의 과도기일 것이라는 물러서기, 그리고 다음 번에는 더 대담하고 자유로운 K-장녀가 등장할 것이란 기대가 <결백>의 크레딧에 미덥게 따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