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 감독
- 이강천
- 제작년도
- 1966
- 출연
- 김혜정, 허장강, 최남현, 옥상미, 전양자, 주향미, 이낙훈, 최명수, 주선태, 김정옥, 박옥초, 석귀녀, 김옥경, 박예숙, 김지영, 조항, 지방열, 이동민, 박순봉, 양일민, 박상익, 강계식, 최성호, 주일몽, 손전, 김신명
이강천 (李康天) 감독은 17년 남짓의 영화 생활을 통해 대표작인 < 피아골 >(1955)을 비롯하여 < 격퇴 >(1956), < 백치 아다다 >(1956), < 아름다운 악녀 >(1958), < 생명 >(1958), < 두고 온 산하 >(1962), < 대좌의 아들 >(1968) 등 모두 28편을 남겼다. 1954년 데뷔작인 < 아리랑 >에서 마지막 작품이 된 < 타인이 된 당신 >(1971)까지 멜로드라마 12편, 분단의 비극과 6·25 전쟁을 소재로 한 반공영화 9편, 시대극 7편이 그것이다. 이를 작품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멜로드라마 < 백치 아다다 >(1956), < 사랑 >(1957), < 아름다운 악녀 >(1958), < 종말 없 는 비극 >(1958), < 생명 >(1958), < 젊은 아내 >(1959), < 청춘 화원 >(1960), < 사랑의 역사 >(1960), < 나그네 >(1961), < 무정 >(1962), < 낙동강 7백리 >(1963), < 타인이 된 당신 >(1971) 2. 반공 영화 < 아리랑 >(1954), < 피아골 >(1955), < 격퇴 >(1956), < 두고 온 산하 >(1962), < 나는 속았다 >(1964), < 남북 천리 >(1966), < 죽은 자와 산 자 >(1966), < 대좌의 아들 >(1968), < 어떤 눈망울 >(1968) 3. 시 대 극 < 팔검객 >(1963), < 수양과 백두건 >(1964), < 미녀와 도적 >(1965), < 살아야 한다 >(1965), < 계룡산 >(1966), < 유성의 검 >(1968), < 공산성(公山城)의 혈 투 >(1968) < 아리랑 >( 허장강 · 김재선 주연)은 무성영화 시대에 제작된 나운규 의 < 아리랑 >(1926)을 원작으로 했으나, 시대 배경을 일제 지배 아래가 아닌 6·25 전쟁 이후 공산치하로 바꿔, 영진의 집 외양간에 숨어든 두 명의 미군을 간호하고 여동생이 희생되는 가운데 쫓아오는 북한군으로부터 탈출시키는 내용을 16밀리 화면에 담았다. 6·25 때 전선에서 낙오하여 공산군에게 고초를 겪었던 딘 소장의 실제 이야기를 주제로 부각시킨 것이다. < 피아골 >( 김진규 · 노경희 주연)은 지리산에 숨어 활약하는 빨치산들이 경찰지서를 습격했다가 빠져 나올 때 부상을 입고 소총을 버린 한 대원이 처단되면서 벌어지는 조직 내부의 반목과 모순된 이념에의 회의, 여대원을 둘러싼 애욕의 갈등 속에 자유를 선택하는 청년(철수)의 모습을 그린 문제작이다. < 격퇴 >( 황남 · 최봉 주연)는 김만술이라는 육군 소령의 6·25 참전을 바탕으로 승공 의욕을 고취시킨 실화물이고, < 나는 속았다 >( 신영균 · 문정숙 주연)는 남로당 재건을 시도하는 거물급 공산주의자를 돕다가 배신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여간첩 김수임의 일대기를 담은 것이며, < 두고 온 산하 >( 김진규 · 모니카 유 주연)는 해방 후 흥남에 주둔하는 소련군 고문관의 딸과 한국 청년간의 국경을 초월한 로맨스를 바탕으로 소련군의 만행과 자유를 갈구하는 북한 동포들의 실상을 묘사한 것이다. < 남북 천리 >( 김지미 · 김진규 주연)는 인민군에게 납북돼 강제 수용소에 갇힌 남한의 애국지사들을 구출하는 한국군 정보 장교의 활약상을 부각한 것이며, < 죽은 자와 산 자 >( 신영균 · 김혜정 주연)는 1·4 후퇴 때 서울에 남아 국군 정보 장교를 도와 첩보 활동을 하다가 죽은 젊은 미망인의 이야기를, < 대좌의 아들 >( 신성일 · 박노식 주연)은 모스크바 유학까지 한 인민군 대좌의 아들이 공산주의에 회의한 나머지 탈출을 꾀하다가 자기 아버지의 총탄에 쓰러지는 비극을, 그리고 < 어떤 눈망울 >( 남궁원 · 박노식 주연)은 북한군의 후방에 잠입하여 싸우다 부상을 입고 은신중인 한 중위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는 위기 속에서 북진해온 국군과 극적으로 재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이강천 감독이 주력한 분단 전쟁의 영화들은 한결같이 게릴라, 첩보, 전투, 전향 등 국군이나 민간인들의 반공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빨치산 조직 내부에 앵글을 맞춰 분란을 겪는 공산주의자들의 인간적인 고뇌의 모습을 그린 < 피아골 >은 단연 이채롭다. 이 영화가 해방 후 만들어진 < 오발탄 >(1961· 유현목 감독), < 하녀 >(1960· 김기영 감독),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 신상옥 감독) 등과 함께 수작으로 꼽히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피아골>은 인간과 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 7인의 여포로 >(1965· 이만희 감독), < 남부군 >(1990· 정지영 감독), < 공동경비구역 JSA >(2000 · 반찬욱 감독)의 출발점이자 화두라 할 수 있다. 계용묵의 대표작인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 백치 아다다 >( 나애심 · 한림 주연)는 남편의 난봉과 도박으로 인해 겪는 순진한 벙어리 아내의 설움을, 이광수 원작인 < 사랑 >( 김진규 · 김현주 주연)과 < 무정 >( 최은희 · 김승호 주연)은 각기 아내를 잃은 뒤에도 한눈 팔지 않은 병원장을 짝사랑하다 떠나는 간호사의 행로와 반일 혁명가의 딸 박영채의 고귀한 애정을 그렸으며, < 아름다운 악녀 >( 조항 · 최지희 주연)는 모델이 된 창녀가 화가의 사랑을 받게 되자 신분의 한계를 느끼고 물러서는 내용을 담았다. < 종말 없는 비극 >( 박암 · 한미나 주연)은 1·4 후퇴 때 헤어진 남편을 만났으나 병석에 누운 애의 치료를 위해 여급 생활을 한 것이 빌미가 돼 버림받는 아내의 슬픔을, < 생명 >( 최성진 · 문정숙 주연)은 고아로 자라나 사랑하게 된 두 남녀가 헤어지지만 미국 유학길에서 재회, 다시 결합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 청춘 화원 >( 김진규 · 도금봉 주연)은 사기로 재산을 날린 아버지의 건축 공사를 아들이 맡아 일으켜 세운 뒤 도움준 애인과 결혼하는 해피엔드를, 그리고 <사랑의 역사>(최은희·김진규 주연)는 죽은 남편의 제자인 대학생을 몸을 팔아 뒷바라지 하는 미망인의 헌신을 소재로 삼았다. < 낙동강 7백리 >( 최무룡 · 김지미 주연)는 낙동강 상류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는 한 노인의 외동딸이 서울 청년의 유혹에 빠져 임신, 상경한 후에 겪는 비애를 부각시켰고, < 타인이 된 당신 >( 신성일 · 문희 주연)은 시어머니와 맞지 않아 가출한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돼 남자 앞에 나타나지만 재결합을 외면하고 제 길을 걸어가는 자립의 의지를 그렸다. 또한 < 팔검객 >( 김진규 · 이예춘 주연)은 광해군의 학정에 반기를 든 여덟 명의 무사를, < 수양과 백두건 >(김진규· 박노식 주연)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폐비 소생의 세 옹주를 따라 나섰다가 흑두건 일당의 모함으로 살인 누명을 쓰게 된 세조를, < 계룡산 >( 허장강 · 김혜정 주연)은 이조 말엽 계룡산 일대를 중심으로 서식한 사교 교주를, < 유성의 검 >(박노식·김혜정 주연)은 상납금을 호송하다 모사꾼 일당에게 급습당해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됨으로써 복수에 나서는 사나이를, 그리고 < 공산성의 결투 >(박노식·문희 주연)는 정적의 흉계로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패전하고 천신만고 끝에 돌아오는 백제 개로왕의 손자 마모를 각기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전을 겨루게 했다. - 데뷔 전후 이강천 은 1921년 12월 10일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동경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미술계에서 종사하다가 이만흥 감독의 < 끊어진 항로 >(1948)의 미술을 담당한 것을 계기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가 전주문화극장의 경영주인 친구 김영창 (金永菖)의 제안으로 < 아리랑 >을 연출하게 된 것은 미술적인 감각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1952년 가을의 일이다. 먼저 남주인공인 영진 역에 이향 , 여주인공인 그의 여동생 영희 역에 주증녀 를 내정하고 교섭차 서울로 올라간 제작자와 촬영기사( 강영화 )가 그들 대신 허름한 차림의 낯선 사내와 여자를 데리고 전주역에 나타나면서 실망스러웠지만, 촬영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길다란 얼굴에 주먹코, 붕 뜨는 특유의 음성을 가진 이 사나이는 KAS라는 군예대 소속으로 무대 생활을 하던 허장강 이었고, 여자는 극협(劇協) 회원인 김재선(金在仙)이었다. 이들을 남녀 주인공으로 기용한 이강천은 그때까지만 해도 허장강이 영화계의 보물로 크게 한몫을 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날씨 속에 소방차를 동원하여 비를 뿌리는 강행에도 허장강은 몸을 움츠릴 뿐 군말이 없었다. 이 작품은 16밀리이기 때문에 촬영 당일에 필름을 현상하여 프린트기 대신 영사기에 구워서 랏슈를 볼 수 있었다. < 아리랑 >의 흥행(1954년 6월 11일·시공관)은 성공적이었다. 정부의 시책으로 이루어진 국산 영화에 대한 면세 조치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아리랑>이 촉진시킨 < 피아골 >은 1954년 해맑은 봄날 예향 전주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강천 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전북 경찰국 공보계에 근무하는 김종환(金宗換)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자 후방에서 선무공작 업무를 수행하던 중 귀순자들이 쓴 좋은 영화 소재감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지리산에는 빨치산이 출몰하고 있었다. 그는 이 소재를 놓고 며칠 동안 생각했다. 내용은 마음에 드는데 스폰서가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좋은 동조자를 얻었다. 백 명의 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지리산 기슭 구례가 고향인 이 사람은 근방의 지리에도 밝았다. 그 동조자인 김병근이 제작에 직접 나섰음은 물론이다. 피아골은 지리산에 깊숙이 자리잡은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학란이 있었던 조선조 말기에는 그 피아골에서 무수한 학살극이 빚어졌고, 6·25 전쟁 때는 은신의 거점으로 삼은 북한 잔류군과 빨치산에 의해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강천 은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해변 마을 변산에 자리를 잡았다. 넓은 평야를 덮어버릴 듯한 노란 채소꽃들이 복숭아꽃과 어울려 초가지붕을 둘러싼 부감의 정경은 차라리 한폭의 동양화였다. 그가 여름을 피해 굳이 가을을 촬영의 시기로 택한 것은 산의 선과 암석의 입체감을 살릴 수 있는 암갈색의 구도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갓 데뷔한 김진규 를 빼고는 노경희 , 이예춘 , 허장강 등 경험있는 배역으로 짜여져 연기의 대결을 벌이도록 유도하였다. 출연자에게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인공적인 분장을 피하고 머리와 수염을 기르게 하였다. 잠자리에 들 때도 극중 의상을 입고 자도록 지시함으로써 연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필름이 모자란다는 점이었다. 속이 탄 것은 감독과 촬영 기사였다.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는 15커트를 세 커트로 줄여서 찍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아차린 김진규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 피아골 >은 이와같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화제와 논란을 파생시켰다. 전북 경찰국과 내무부치안국이 후원한 작품이었지만 빨치산 묘사에 사실과 다른 점이 내포되었다는 이유로 후원을 번의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되었다. 함에도 불구하고 <피아골>은 피상적이고 관념적이기 쉬운 분단영화에 설득력 있는 사실성을 부여하여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1955년 영화인 이금룡 (李錦龍)을 추모하여 처음 시행한 제 1회 금룡 영화상 작품, 감독, 연기( 노경희 ), 녹음상( 이경순 ) 등 주요 부문을 휩쓸게 됨으로써 입증되었다. 이로써 1950년대를 정점으로 그의 전성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강천 은 1993년 9월 2일 일흔 세 살의 나이로 허장강 ( 아리랑 ), 김진규 ( 피아골 ), 최지희 ( 아름다운 악녀 ), 전영선 ( 종말 없는 비극 ·아역)등 당대에 이름을 날린 배우들을 영화계에 배출시키고 세상을 떠났다. 김종원 (영화평론가·청주대 겸임 교수) / 2003년 <프로필> 1921년 12월10일 충남 서천 출생 일본 도쿄미술학교 졸업 1954년 < 아리랑 >으로 데뷔 1993. 9. 1 타계 <주요 경력> 한국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위원장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 간사 심의위원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한국공연윤리위원회 영화검열심의위원 <수상 경력> 국방부장관 표창, 문교부 문예상,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표창 문화공보장관 공로상, 영화진흥공사장 공로상,대한민국 문화훈장 <작품 연보> 1954 아리랑 1955 피아골 1956 격퇴 / 백치아다다 1957 사랑 1958 아름다운 악녀 / 종말 없는 비극 / 생명 1959 젊은 아내 1960 청춘화원 / 사랑의 역사 1961 나그네 / 이 순간을 위하여 1962 두고 온 산하 / 무정 1963 팔검객 / 낙동강 칠백리 1964 수양과 백두산 / 나는 속았다 / 미녀와 도적 1965 살아야 한다(일명 배꼽대감) 1966 남북천리 / 계룡산 / 죽은자와 산자 1968 대좌의 아들 / 유성의 검 / 어떤 눈망울 / 공산성의 혈투 1971 타인이 된 당신
배우 전양자 는 영화와 TV드라마, 연극 무대를 두루 누비며 40년 가까이 왕성한 활동을 펼친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다. 스타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해온 친근한 얼굴이다. 요즘도 안방드라마에서 자주 대하는 그가 악극무대에도 선다니 나이를 무색케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중년 팬들은 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 때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한국적인 여인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인형처럼 깜찍한 외모로 풋풋함을 뿜어내던 전양자 의 발랄한 연기는 상쾌한 청량제였다. 전통적인 여인상에서 현대적인 여성상으로 분위기를 일신한 신세대 배우군에서 전양자의 역할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전양자 는 스스로 ''조연배우''라고 말한다. 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나 70년대 TV브라운관에서 주역을 맡아 인기를 모을 때도 없지 않았지만 ''조연''을 자처하는 것은 겸손이기 보다는 생리에 맞기 때문이라고 본다. ''조연''이라는 표현 속에는 그의 연기 패턴과 연기자로서의 길이 응축되어 있다. 반짝하는 스타보다는 달빛처럼 은은히 빛을 발하는 생명력이 긴 연기자이기를 소망한 것이다. 1966년 이강천 감독의 < 계룡산 >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전양자 는 그동안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중 대부분은 60년대와 70년대에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겹치기로 출연한 작품도 적지 않다. 기록에 남아 있는 출연작을 일별해 보면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도 있지만 생소한 제목들도 부지기수다. 66년작으로 < 계룡산 >, < 종점 >을 꼽을 수 있고, 67년의 < 가슴아프게 >, < 돌지 않는 풍차 >, < 빙우 >, < 타인들 > 68년 < 엄마의 일기 >, <여고동창생>, 69년의 < 눈나리는 밤 >, < 어느 지붕 밑에서 >, < 마인 >, < 애수의 언덕 >, < 사랑은 가고 세월만 남아 > 등 60년대 후반에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 70년대에도 < 당신을 알고나서 >, < 칠인의 숙녀 >, < 황금부르스 >(70), < 나를 버리시나이까 >, < 아마도 빗물이겠지 >, < 장군의 딸들 >(71), < 밀녀 >(72), < 혈육애 >(76), < 아무도 모를꺼야 >(77), < 비목 >,< 이 한몸 다바쳐 >(78), < 우요일 >(79) 등 연기 활동이 활발했다. 전양자 의 출연 작품을 보면 영화사의 이정표가 될 만한 ''문제작''은 거의 없다. 유현목 감독의 < 오발탄 >, 김수용 감독의 < 갯마을 >, 이만희 감독의 < 만추 >, 이장호 감독의 < 별들의 고향 >, 김호선 감독의 < 겨울여자 > 등에 그의 이름이 들어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 전양자의 존재나 평가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그를 제대로 평하기보다는 폄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출연작에서 보듯 전양자 는 주로 청춘영화나 멜로영화, 통속적인 시대극에 치중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성을 제시하는 특이한 스크린에서 빠지게 된다는 것으로 보아 아무리 연기를 잘했다지만 그렇게 뛰어난 연기자라기보다는 무난한 연기자로 알려진 것 같다''고 평하는 것은 전양자의 위상을 과소평가하는 단견이며 주관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연약한 조연급에서 맴돌기만 했다''는 것인데, 이런 평가가 과연 그 시대의 상황이나 영화환경을 고려하고, 그의 작품 전반을 파악한 후 나왔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전양자 의 연기는 60년대와 70년대로 나눠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맹활약한 60년대 후반은 한국영화의 전성기지만 70년대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었던 60년대에 청춘영화나 멜로영화는 대중의 애환을 달래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TV의 대두에 밀려 영화제작 전반이 위축된 70년대 상황에서는 이렇다할 ''문제작''이 나올 여건이 되지 못했다. 예술성이나 흥행면에서 평가할 만한 작품이 1년에 몇 편밖에 나오지 않은 한국영화 풍토에서 ''문제작''에 출연했는가를 기준으로 연기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보다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얼만큼 충실히 소화하고 전체적인 앙상블에 기여했나를 포괄적으로 살피는 것이 정도다. 이런 관점에 비추어 볼 때 전양자 의 역할은 ''조연''의 비중이 컸으며, 조역을 충실히 함으로써 영화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연기의 앙상블을 높인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조역이 잘받쳐주어야 주역이 빛이 나고 영화보는 재미가 쏠쏠해진다. 전양자야말로 자기의 분수를 알고 조역을 소화해 낸 ''만능 조연''이며, 영화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온 ''전문 배우''가 아닐 수 없다. 전양자 가 60년대에 출연한 영화들을 지금 다시 보면 촌스러운 대목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학구적인 자세로 감상한다면 요즘의 기획영화, 짜깁기 영화와는 다른 제작열정과 연기의 앙상블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함께 전양자라는 배우가 60~70년대 한국영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를 살피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우선 전양자 는 배우의 세대교체에 일익을 했음을 평가할 만하다. 60년대 최은희 , 김지미 , 엄앵란 의 아성에 남정임 , 문희 , 윤정희 트로이카가 도전해 전성기를 누릴 때 등장한 전양자는 데뷔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청춘영화 계열에 합류했다. 청춘스타들이 누비던 젊은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깜찍발랄한 여대생이었다. 당시 ''여대생''은 선망의 대상이었는데다 아담한 체구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귀여운 외모는 스크린에 풋풋함을 불어넣었고 팬들은 이런 그의 모습에 신선감을 느꼈다. 그중 인상에 남는 영화로 68년 이형표 감독이 연출한 <여고동창생>을 꼽을 수 있다. 전양자는 윤정희, 문희, 김창숙 등과 공연해 왈달하고 명랑한 여대생 역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조연은 주연보다 연기폭이 넓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아무나 해낼 수 없다. 주연은 유명세로 한몫하지만 조연은 약방의 감초처럼 적재적소에서 제 빛깔을 내고 주역을 받쳐주어야 하는 이중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전양자 의 진가가 발휘된다. 엄앵란 , 남정임 을 잇는 청춘배우에서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개성있는 역할을 소화해낸 것이다. < 눈나리는 밤 >에서는 가련한 여인 조미령 의 딸로, 김효천 감독의 69년작 < 팔도사나이 >에서는 일제에 맞서는 의로운 건달 장동휘 의 여동생 역으로 다양한 변신을 해왔다. 전양자 를 ''연약한 조연''이라던가 ''무난한 배우''라는 점도 재조명되어야 할 과제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는 60년대 겹치기 상황에서 주어진 역할 소화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연기력을 발휘할 기회나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이다. 81년 마침내 연기로 승부할 기회를 얻었다. 조세희 의 원작 소설을 이원세 감독이 영화화한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에서 난쟁이 아내 역으로 혼신의 연기를 해낸 것이다. 전양자의 연기는 이 영화를 통해 원숙함을 드러냈다고 할 만하다. 영화에서 신세대 배우로 활약했던 전양자 의 연기는 72~73년 안방의 인기를 독점한 MBC 일일연속극 <새엄마>에서 활짝 핀다. 새엄마가 겪은 일상의 애환을 생활연기로 풀어낸데다 안정감 있는 분위기와 중후한 목소리로 정숙한 여인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평을 얻었다. 드라마 <새엄마>에서는 타이틀 롤이지만 그는 혼자 우뚝 솟기보다는 공연 배우들과의 자연스런 연기 조화로 이웃집 아줌마 같은 푸근함을 자아냈다. 전양자 가 40년 가까이 배우 활동을 해온 장수 비결은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가 나지 않는 연기의 배합과 조화다. 대다수 배우들은 인기를 노려 오버액션을 하거나 튀려고 애쓴다. 그러다보면 일시적인 효과는 거둘지 몰라도 연기자로의 수명은 단축될 수가 있다, 한 작품의 캐릭터가 너무 강하면 다음 작품에서 이미지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전양자는 밖으로 흐트러뜨리는 연기보다는 내적으로 다지는 심도 있는 연기로 인기를 관리해 온 뚝심 있는 배우다, 연이어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도 시청자가 식상하지 않는 배우로 남는 것은 자신을 숨기고 역할에 충실하는 노력과 끊임없는 창의력으로 변신을 거듭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어느 드라마에서 단역에 가까운 노역을 한 적이 있는데, 분장이 어찌나 추하던지 그 맵시 고운 전양자라고는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또 하나는 건강함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대인관계의 유연성이다, 그에게는 세월이 비켜가는 듯 건강미와 의욕이 넘친다. 사람들끼리 부딪히는 연예계에서도 그의 처신은 둥글고 부드럽다. 여기에 연극무대에서 다진 화술과 단단한 기초가 배우 전양자 의 내일을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왕년의 TV연속극 <아씨>의 악극무대에 서는 것도 식지 않는 열정 때문이리라. 우리는 그간 주역만 조명했지 조역에는 너무 무관심했다. 그 결과 자료조차 변변히 없다. 조역을 재조명하는 이번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가. 그것이 한국영화에 큰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하며 전양자 형의 건투를 빈다. 정중헌 (조선일보 논설위원) / 2003년 <프로필> 1942년 2월 20일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졸업 1966년 이강천 감독의 < 계룡산 >으로 영화 데뷔 <주요 경력> 극단 광장 <학마을>, <수전노>, <무녀도> 등 연극 출연 TV 드라마 <새엄마>, <자매들>, <남자의 계절> 등 다수 <수상 경력> 인기상, 연기상, 연극영화상 등 수상 <주요 작품> 백발백중 , 종점 , 비목 , 낙도의 무지개 , 여고동창생, 빙우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