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까부다
- 감독
- 고봉수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김충길, 최아람, 임혜인, 정가은, 유수정, 최은비, 고봉수, 김정기, 고성완, 이주예, 주남정, 김선중, 최은애, 구웅서, 최진욱, 김명건, 박상준, 이경훈, 박원진, 신민재, 조준희, 백승환
채플린의 영화는 항상 서글프고 처량 맞았다. 넘어지고 고꾸라지고, 요상한 것 (이를 테면 ‘ 황금광 시대 ’에서의 고무부츠 같은것) 을 우걱우걱 씹어대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그의 이야기는 웃음 뒤로 지긋지긋한 가난과 계급적 불평등을 이고 살았던 노동자와 이민자들의 역사를 드러냈다. 그의 사회적 일침이 더더욱 드라마틱하고 절실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채플린의 영화들이 언어가 아닌 몸으로 이야기하는 무성이었고 화려함과 꾸미가 빠진 흑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진 건 ‘몸’ 뿐인 노동자들의 설움이 슬랩스틱과 피상의 색(色) 이 빠진 현실의 명암(明暗)만으로 시대의 고통을 공유했다. 고봉수 연출의 < 다영씨 >(2018) 역시 비슷한 화법으로 세상의 고달픔을 나눈다. 색과 언어의 소란함없이 노동의 처절함을, 노동계급의 집단적 서러움을 로맨틱 코미디의 형태로 그린 흑백무성영화, <다영씨>는 2000년대에 재등장한 채플린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 영화는 보름달 빵과 바나나 우유를 입에 꾸겨넣고 있는 퀵 서비스기사, ‘민재’의 클로즈 업으로 시작된다. 오토바이 위에 엉거주춤 앉아 빵을 먹고나면 본격적으로 민재의 부역이 시작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빌딩을 등반 하듯 올라갔다 내려오고, 배달 중에 물건을 들고 넘어져 박스 안 상품이 깨지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민재의 일상에선 다반사다. 맨날 먹는 보름달 빵 만큼이나 지겨운 일상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다영씨’에게 온 택배를 배달하는 일이다.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그녀는 밤낮 피곤과 구박에 쩔어있지만 민재가 나타나면 함박미소를 머금는, 그에게는 달콤상큼 귤 같은 존재다. 민재의 착한 동료들은 다영씨 앞으로 온 모든 택배를 민재에게 몰아준다. 그녀에게 택배가 도착할 때 마다 민재는 싱글벙글하며 귤을 챙겨 주머니에 넣는다. 자신의 쑥쓰러운 미소를 들키지 않기위해 헬맷으로 얼굴을 덮고 다영씨 책상에 몰래 귤을 얹어 놓으면 민재의 비밀스러운 임무가 끝난다. 가끔 마법처럼 생겨나는 귤 말고는 다영씨에게도 인생의 낙이 없다. 사무실에는 다영씨를 무시하고 따돌리는 네 명의 찌질한 남자 상사들과 그들을 여왕벌처럼 군림하는 사장의 딸이 있다. 상사들은 시도때도 없이 다영씨에게 커피 심부름과 각종 잡일을 시켜며 그녀의 하루를 지옥으로 만든다. 한편 민재는 다영씨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택배일을 그만두고 그녀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낸다. 민재의 낮은 학력과 경력을 비웃던 상사들은 이력서에 쓰여진 그의 희망 월급 ‘50만원’에 눈을 번쩍 뜨고는 그를 고용한다. 민재가 다영씨의 회사로 출근을 시작하면서 택배기사의 삶으로 보여졌던 고단한 노동자의 촌극은 중소기업으로 공간을 이동한다. 비정규직인 다영씨는 정규직 직원들의 회식에 초대를 받지 못하고, 늘 컵라면으로 때우며 야근을 하지만 회사는 계약기간을 늘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의 ‘웃픈’ 슬랩스틱은 꿋꿋이 이어진다. 코미디의 대부분은 여왕벌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비위를 맞추는 상사들 4인방과 다영씨를 위해 그들을 골탕먹이는 민재의 소소한 복수극으로 채워진다. 궁극적으로 <다영씨>는 노동현장에서 마주하는 비정한 현실을 다루고 있으나 민재의 직업전환으로 인해 대비되는 전반과 중반이후, 즉 노동직과 사무직의 대비를 통해 기업 내에서의 계급구조를 극명히 드러내기도 한다. 가령, 민재의 짝사랑을 위해 택배기사들이 민재를 도와주고 (동등한 위치에서) 연대하는 반면, 회사의 직원들은 대리, 과장, 부장의 서열을 통해 분리되어있을 뿐 아니라, 이를 지배하는 금수저 출신 사장 딸의 존재를 통해 계급적으로도 분리되어 있음을 명시한다. 결국 이 엄청난 서열과 계급의 벽은 다영씨의 수호천사로 회사에 ‘헐값’에 입사했던 민재도 어쩔수 없는 불가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결국 민재는 회사를 나와 퀵서비스 기사로 돌아가고 다영씨는 고난 뿐인 그 언덕에 남는다. <다영씨>에는 코미디영화에 있을법할 유쾌한 엔딩이 없다. 커플의 진한 키스신으로 끝나지도 않고 주인공의 팔자 전복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퀵서비스 기사로 다시금 나타난 민재와 다영씨의 재회는 절절하게 느껴진다. 러닝타임 60여 분에 담긴 노동자의 고단한 삼라만상 끝에 보여지는 이들의 교감은 분명 로맨스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대와 교감의 온기가 넘치는 이 영화의 엔딩은 참으로 귀한 코미디적 엔딩이자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엔딩이기도 하다.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가져간 영화는 이례적으로 두 편이다. 하나는 작년 11월 개봉하여 관객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끌어낸 < 연애담 >이고, 또 하나는 5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는 < 델타 보이즈 >다. <델타 보이즈>라는 제목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영화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영화 초반 주인공들의 대사에서 ‘툭’ 던져진 한 마디가 제목이 되어버린 <델타 보이즈>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의 열병 같은 꿈과 냉정한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찰진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다. < 델타 보이즈 >는 매형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일록의 초등학교 친구, 예건이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예건은 시카고에서 살다가 한국에 일자리를 구하기위해 들어온 터라 개털 신세, 한마디로 일록에게 얹혀살게 된다. 예건은 일록에게 예전 꿈이었던 ‘노래’를 하라고 부추기며 자신이 다 해줄 것처럼 이야기하고, 결국 일록은 남성 4중창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하며 멤버를 모집한다. 첫 멤버는 생선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는 대영.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한 일이 그 무엇보다도 제일 우선인 사람이다. 그런 대영이 결혼해서 아내 지혜와 함께 트럭 도넛 가게를 운영하는 준세를 두 번째 멤버로 데려온다. 준세는 대영에게 흔히 말해 ‘데인’ 상태. 대영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준세와 늘 함께하지만 준세는 삶 그 자체가 고달프다. 아무튼 이렇게 모인 네 남자, 일록, 예건, 대영, 준세가 큰 대회도 아닌 어느 구청에서 주최하는 남성 4중창 대회에 나가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델타 보이즈>의 큰 줄거리다. 네 남자의 첫 공연은 근사한 공연장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그들에겐 꿈의 무대가 된다. 영화에서 답 없는 네 남자는 누군가에 얹혀살고 있다. 일록은 매형에게, 예건은 일록에게 대영은 형에게 준세는 지혜에게. 불완전하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다. 일록이 매형의 공장을 떠나면서 이들의 홀로서기는 시작되고 영화의 방향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대영이 일록에게 찾아왔던 그 순간 영화의 또 다른 방향, ‘꿈’에 대한 감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네 남자에겐 꿈이라는 게 이루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서 두려운 존재이다. 그 자체로 열병을 앓게 하고 생활을 포기하게 한다. 준세가 대영에게 했던 술자리의 대화가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꿈이 있어 두려운 것. 불안과 갈등 그리고 자책. 일록의 자책 씬은 과하게도 느껴지지만, 일록이 왜 저렇게까지 할까 생각해보면 자신 때문에 꿈이라는 열병을 앓게 된 이들을 통해 증폭된, 혹은 스스로 심한 열병을 앓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심정 고백 같은 행위일 것이다. 결국 일록은 자책을 넘어서 당당하게 꿈을 받아드린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영화 < 델타 보이즈 >가 여느 성장영화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델타 보이즈>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꿈이 주는 불안과 자신이 서 있는 위치 혹은 삶에 대한 생생함, 생활이 주는 날 것의 폭력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준세와 지혜의 싸움 장면을 보면 그것이 생생하게 목격된다. 그럼에도 곧 있을 4중창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웃게 된다. 그 웃음은 과장된 코미디가 아니라 냉정한 삶에서 터져 나오는 생활형 웃음이다. 준세와 지혜의 싸움 장면에서, “거참 찰지게 잘 싸우네.” 하면서 너털웃음을 짓게 되는 것처럼. < 델타 보이즈 >는 배우들의 쫀득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는 감독에게 빚지는 바가 많다. 고봉수 감독은 네 남자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이끌어가는 대로 놓아둔다. 일록, 예건, 대영, 준세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일반적인 한국영화의 대화 씬들보다 분명히 길게 연극의 장면처럼 프레임을 만들었다. 관객은 감독이 만들어 놓은 또 다른 한 편의 연극을 보면서 배우의 열연에 빠지게 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게 된다. 바로 그런 점에서 고봉수 감독과 출연 배우들과의 깊은 교감을 볼 수 있다. 감독이 짜 놓은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감독이 서로의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것. 자신과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꿈이 하모니를 이루어가는 것. 대영의 마지막 대사, “음 딱 맞을 때 그 느낌”처럼. <델타 보이즈>를 통해 관객들이 불안한 꿈과 미래에 대한 자신의 모습을 이 영화에서 발견 아니, 하모니(교감)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