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블랙박스-경부고속도로 하행선 택시 욕설남
- 제작년도
- 2010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10,000건 이상의 검열 행정자료들 중 흥미롭고 주목할만한 것들을 선별하여 영화사적 배경이나 상황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글들을 통해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는 기쁨과 아울러, 한국영화사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만희 감독만큼 검열 이슈가 많았던 감독도 드물다. <7인의 여포로> 사건 으로 한국영화 감독 중 최초로 반공법 위반혐의를 받았고 옥고까지 치렀으며, < 휴일 >(1968)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개봉조차 되지 못했다. 이 영화의 필름은 2005년, 거의 40년이 지난 후에야 대중을 만날 수 있었다. < 기적 >(1967)은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 영화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거의 1년을 시달렸다. 심지어 영진공이 직접 제작한 국책영화 <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4)조차, 영화가 충분히 반공의 이념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당국과 갈등을 빚다 마지막 검열을 포기했다는 설까지 있다. 이 글을 통해 살펴볼 < 삼포가는 길 >(1975)은 그런 종류의 검열 이슈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종류”라는 것은 삭제, 제한, 공개 금지 등 네거티브한 규제, 즉 검열에 대해 통상적으로 가지는 인식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권장과 규제의 변증법: <삼포가는 길>의 사례가 보여주는 피검열자의 기예 그렇다면 <삼포가는 길>은 무엇이 다른가? <삼포가는 길>의 검열과 관련한 사건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영상자료원이 2021년 <삼포가는 길> 블루레이 서플먼트로 인터뷰한 동영상에서 주연배우 문숙 님은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사안은 간단하다. 하층민 세 명의 우연한 동행을 담은 이 영화가 검열의 제약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제작사가 감독에게 새마을 운동 홍보가 될 수 있는, 그러니까 당시 한국의 발전상을 담은 장면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이만희 감독은 내켜 하지 않았으나, 제작사의 간곡한 설득에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해대교를 무대로 엔딩 장면을 촬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까지 이 장면을 넣지 않으려 했으나 그가 뜻하지 않게 영화 편집 중 별세하면서, 이후 제작사 쪽에서 이 장면을 넣었다는 내용이다. <삼포가는 길> 블루레이 출시 기념 주연배우 문숙 특별 인터뷰 "마지막 장면은 검열 때문에 들어간 거예요“ (16분 56초,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삼포가는 길>의 사례는 검열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로 우리를 이끈다. 검열하는 주체의 소망은 검열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당연하게도 검열자가 검열을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검열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검열 주체가 보기에) 바람직한 산출물만 나오는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다. 그런 세상을 실현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산출물을 제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직한 산출물을 권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아래 서류들을 살펴보자. 1970년대 검열관들은 특정 영화에 대한 검열을 시행함에 있어 검열기준(영화법 시행규칙 제9조 영화검열기준)과 함께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을 참고해야 했다. 심지어 이들은 단순히 이를 참고할 뿐 아니라 영화가 어떤 항목에 해당하는지를 표시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검열기준이 아니라, 권장방향이다. 완성품을 대상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삭제하거나 제한하는 것만이 검열이라 보는 입장에서는 이를 통상적인 검열 절차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왜 “제작권장방향”이 주어졌던 것일까. 일단 이 서류가 시나리오 검열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향후 제작될 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당대 검열이 단순히 제한과 삭제라는 부작위의 명령에 머무르지 않았음이 반증된다. 즉, 그것은 해당 영화뿐 아니라 영화 일반의 생산 주체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리스트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 리스트는 궁극적으로 검열이 도달해야 할 바를 가리킨다. 1970년대 검열관들이 참고한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 <삼포가는 길>의 제작자가 두려워했던 것은 단순히 하층민의 재현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낙후된 사회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 내내 검열적 금기였다. 한국영화 감독들은 빈민촌을 비롯한 낙후된 사회의 모습을 포착하는 장면에 대한 무자비한 삭제에 대해 빈번이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실제 검열기준에 이와 관련하여 삭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은 시행규칙 2호 “적성국가(대한민국과 분쟁중인 상대방을 포함한다)를 유리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에서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모호한 부작위 명령 규정보다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에서 더 나은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기본방향 중 “1.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약진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부각시킬 수 있는 내용”, 세부방향의 “2. 영화의 소재는 가급적 고속도로, 웅장한 공장, 새로운 주택가 등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배경으로 할 것 / 3. 농촌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가급적 농업의 기계화, 새로운 농지정리 및 지하수 개발 등 밝은 농촌을 배경으로 할 것” 등이다. 이는 단순히 권장방향이 그 자체로 검열기준이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검열이라는, 흔히 생각하는 부작위의 명령에 내재하고 있는 작위의 요소들을 무의식 중에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검열자는 종국적으로 삭제를 전제한 검열기준보다 “제작권장방향”만이 남기를 바란다. 비가시성이 완벽히 가시성 속에서 지양되는 것, 그것이 검열이 최종적인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열의 의지는 현실 속에서 교활한 시장 주체들과 만날 때 교란된다. 피검열자들의 기예는 검열의 본성과 의지를 시험하고, 왜곡하고, 오도한다. 그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가 <삼포가는 길>의 남해대교 씬과 같은, 권장과 제한 사이의 줄타기다. 즉 권장 요소를 포함시켜서, 제한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검열자가 원하는 것을 주면서, 검열자가 원하지 않는 것도 함께 포함하고자 하는 전략인 셈이다. 70년대 내내 검열자들은 “반공을 빙자한 폭력”, “반공을 빙자한 에로” 영화들에 넌더리를 내었다. 많은 제작자가 정책적 목표인 반공을 이용하여 폭력과 에로티시즘을 섞은 반공 아닌 반공영화들을 양산했던 것이다. “반공”이라는 정권의 제1 가치가 상업영화 제작자들로부터 조롱당했던 셈이다. <삼포가는 길> 마지막 장면(남해대교 씬)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테마 1990년대 이후 검열 이론을 전환시켰던 것은 검열이 단순히 부정적 규제가 아니라 생산적인 효과를 가진다는,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테마였다. 명백하게 푸코의 권력이론을 반영한 이 테제는 검열은 네거티브한 규제라는 인식을 전환했고, 보다 복잡한 절차와 효과들을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개념은 아직 어떤 합의된 결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논자마다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논의하곤 한다. 이 제한과 권장의 변증법 역시 검열의 생산성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권장과 제한의 변증법이 정책적으로 완벽하게 합일된 사례가 있다. 1980년, 영화검열을 담당하던 공연윤리위원회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검열위원들이 정부가 관장해 온 우수영화의 선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우수영화란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우수하다고 판단한(그 세부 기준은 해마다 달라졌으나, 관제적인 영화에 미학적 완성도가 가미된 기준이라 볼 수 있다) 영화에 외화수입권을 포상하는 제도였다. 시기마다 다르지만 외화수입권의 이권이 한국영화 한 편의 제작비를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보니 우수영화에 선정되기 위한 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했고, 우수영화 선정 여부는 그해 영화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리고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한국영화 제작사들을 통제했다. 말하자면 우수영화 선정 사업은 당시 한국영화 정책 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중차대한 국가적 진흥 사업의 임무가 검열기관에 주어졌던 것이다. 진흥기관인 영화진흥공사가 별도로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더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물론 그 결정은 영화인 중심으로 구성된 영화진흥공사가 심사를 공정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검열관들이 어차피 영화를 보게 되니 그 과정에서 우수영화를 선정할 수 있으리라는 문공부의 편의주의적 발상의 결과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편의주의적 결정의 이면에는, 어쩌면 검열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꿰뚫은 무의식적 사고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공윤이라는 검열기관이 부정적인 규제뿐 아니라 능동적인 권장 사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처럼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당시 영화검열위원이자 공윤의 부위원장을 역임한 여석기는 “생산적”이라는 단어를 활용하여 이 모순을 해소하고자 시도하려 한다. 공윤이 맡아서 하는 일은 윤리규제이니까 그 자체로서 오히려 통념대로라면 규제란 뭔가 하지 말라는, 즉, 표현 내용을 자유롭게 허용하기는커녕 제한을 가하는 기능밖에는 없으니까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굳이 「생산적」이란 용어를 쓰는 이유는 윤리규제가 양질의 문화를 생산하는데 간접적 기여를 할 수 있고 어쩌면 그런 역할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화의 창의성을 침해하는데 최소의 작용을 하는 반면에 저질화를 막는데 최대의 노력을 경주할 때 윤리규제는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규제 그 자체는 비평 행위가 될 수 없고 대상이 되는 작품의 값을 따져야 하는 입장에 서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최소한의 「이런 것은 안된다」하는 주의 환기로서 끝나는 것이 그 본래의 기능일 것이다. 그러나 공윤이 우리사회에 뭔가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 능동적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규제가 육성으로 연결되는 점이 아니겠는가. - 여석기, "새시대 공연문화와 윤리", 《공연윤리》 53호, 1981. 1. 15. (강조는 필자) 여석기는 검열이 가지는 수동적 기능 혹은 부정적 규제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검열이 한국사회에 양질의 문화를 전파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기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인용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공윤이 우수영화의 선정과 같은 적극적인 어떤 행위를 작위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굳이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는 “비생산적”인 네거티브한 규제라 할지라도 그 자체에 충실할 때 생산적인 결과가 이어진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문장 속 “규제가 육성으로 연결되는 점”이라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되어야 하는”이 아니라, “되는”이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당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검열 규제가 육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 때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여석기는 시대를 앞질러, 검열의 궁극적 본질을 포착했다고 할 수 있겠다. *** 이 글은 필자가 발표한 두 편의 논문, 「한국영화검열사의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시론적 연구」(『한국극예술연구』 제59권, 2018)와 「〈애마부인〉이 등장하기까지: 영화 풍속 검열의 변동 요인 분석, 1979∼1982」(『영화연구』 제104호, 2025)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영화 속 공간적 배경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 없는 배역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곤 한다. 그 어떤 대사가 주어지지 않지만, 등장인물의 뒤에서 극의 전개를 뒷받침해주면서, 동시에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때로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다. 따라서 영화를 감상할 때, 배경이 되는 공간(도시일 수도 있고, 농촌일 수도, 자연일 수도 있다)에 집중하여 관찰하는 행위 또한 신선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특히 1960-70년대에 걸쳐 총천연색 컬러로 제작된 한국의 영화들은 공간적 배경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자료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1980년 12월의 컬러 텔레비전 방송이 개시되기 이전까지, 대한뉴스를 비롯한 국가 주도의 기록 영화를 제외한다면 당대 한국의 ‘공간’을 총천연색으로 담아낸 매체는 오직 영화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당시에도 컬러 ‘사진’은 존재하였지만, 아무리 사진의 해상도가 뛰어나다 한들, 24프레임으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활동사진’이 주는 생동감에 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영화 필름이라는 프레임 속에 담긴 공간은, 그 화각이 사람의 시선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특성상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경관(landscape)과는 또 다른 ‘의도된 경관’이라 할 수 있다. 감독의 시선, 혹은 그 시선의 기저에 깔려있는 시대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이 이러한 ‘경관’에 의도적으로 녹아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므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의도된 경관’으로 재해석할 때,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영화 해석의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 < 야행 >(김수용, 1977)을 살펴보는 것은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1973년에 촬영이 이뤄졌으나 당국의 검열로 인해 1977년에 개봉된 <야행>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당대 일간지에서의 영화평은 물론이요, 201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관련 비평이 이어져 오고 있는 ‘꼭 봐두어야 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야행>에 담긴 공간적 배경(당대의 ‘의도된 경관’)을 살펴보는 것 또한, 영화 제작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 서울 도심 전경, 삼일고가도로, 광화문 지하보도를 넘나드는 도입부의 시퀀스 <야행>의 약 2분여에 걸친 도입부는 많은 비평에서 이미 언급되었듯이, 한적한 농촌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와 서울 도심의 삼일고가도로, 삼일빌딩의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다.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감상하는 시점과 무관하게 상경의 과정을 나타내는 시퀀스임을 누구나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멋진 구성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퀀스에서 주로 비치는 공간은 고속도로,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고가교, 서울 도심의 삼일고가도로, 그리고 광화문 지하보도라는 ‘입체 공간’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감독이 어디까지 의도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서울이라는 장소의 근대성, 도시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2024년 현재의 갱생보호회관(현 안국빌딩)의 외관 (필자 촬영 및 제공) 주인공 현주( 윤정희 )가 근무하는 은행은, 안국동 로터리에 위치한 갱생보호회관(현 안국빌딩, 김중업 설계)으로, 서울 도심 중에서도 ‘한복판’인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15층의 갱생보호회관은 대폭 리뉴얼을 거친 지금에도 여전히 위용을 뽐내는 건물이니, 반세기 전 서울에서는 더더욱 그 존재감이 돋보였을 것이다. 현충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반포주공아파트로 걸어들어가는 현주의 모습 현주가 거주하는 반포주공아파트는, 영화가 촬영되던 시점에 갓 입주가 이루어진 말 그대로 최첨단의 아파트 단지였다. <야행>에 대한 비평 이외에도, 반포주공아파트의 의의에 대한 논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에서 한강 이남에 지어진 최초의 중산층을 겨냥한 아파트 단지로서, 현재의 강남 아파트 신화의 방아쇠를 당긴 단지에서, 주인공은 겉으로 보기엔 유유자적하나 심리적으로는 항상 결핍된 ‘모던한 삶’을 살아간다. 소월길에서부터 덕수궁까지 배회하는 현주의 시퀀스 영화의 20분-23분경에서, 현주는 정처 없이 서울 도심을 배회한다. 남산 소월길을 걷다가 구매한 마스크를 두르고, 시청 앞 덕수궁에 들러서 동물을 감상하거나, 정관헌에서 차를 마시는 현주의 행동은 50년이 지난 지금, 퇴근 후 직장인들의 모습을 종종 관찰할 수 있는 덕수궁의 풍경과 금세 오버랩된다.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카메라는 그저 현주와 풍경을 비출 뿐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무언가 심적으로 허전해 보이는 현주의 심리 상태를 체감할 수 있는 훌륭한 시퀀스이다. 꺽다리 빌딩 사이에서 조용히, 혹은 외로이 문화유산으로서의 위엄을 지키는 덕수궁, 그리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익명의 도시인들의 모습이 현주라는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대표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주의 고향, 홍성군 홍주읍성의 조양문 영화의 40분 이후, 현주가 잠시 생각의 전환을 위해 귀성한 고향은 충청남도 홍성군이다. 카메라는 장항선의 옛 역사, 홍주읍성의 조양문, 읍내의 도로를 컬러로 비추며, 최첨단을 달리던 대도회지 서울과는 대조적인 경관을 훑는다. 강변1로와 5로(현재의 노들길 동작역 부근), 그리고 갓 준공된 반포주공아파트의 부감 시퀀스 51분경에 등장하는 현주의 주거지, 반포주공아파트를 부감하는 씬은 만약 이 씬만 떼어놓고 본다면 마치 대한주택공사의 홍보 영화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현대적이며, 도시적이다. 특히 씬의 도입부를 1971년에 갓 개통된 동작동 강변1로와 강변5로(현 노들길)의 경계점으로 잡았다는 점에서, 감독은 초고밀도의 서울 도심, 비포장도로 천지인 현주의 고향과는 대비되는 인공적이고 균질하며, 인간성이 결여된(실제로 영화 촬영 시점에서는 입주가 100% 완료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시가지 강남’을 이 씬에 담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한국은행 앞 사거리의 육교 영화의 후반부, 60분과 68분경에는 지금은 사라진 한국은행 앞 육교가 동일한 구도에서 시간대만 낮과 밤으로 달리한 채 등장한다. 재밌게도, 이러한 구도는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한형모, 1966) 등의 타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단골’ 구도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도회지 서울을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구도로서 너나 할 것 없이 이 육교를 꼽았던 것이다. 걸음을 서두르는 박대리와 그 뒤에 우뚝 솟은 갱생보호회관의 전경 영화의 막바지, 74분경에 예상외의 행동을 하는 현주에 당황한 박대리( 신성일 )는 안국동 사거리의 육교를 황급히 걸어 내려오며 은행으로 들어가는데, 이 씬에서 당당한 풍채의 갱생보호회관 외관이 잠시나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78분 즈음,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현주가 거주하는 반포주공아파트가 다시 비친다. 비록 영화 전체에 걸쳐서 공간적 배경이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장면은 단 한 컷도 없으나, 현주와 박대리의 상반된 물리적 관계가 유지되는 두 곳의 장소 모두, 결국에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반포주공아파트와 갱생보호회관은 ‘의도된 경관’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2024년 현재 아쉽게도 반포주공아파트와 갱생보호회관 모두 촬영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 전자는 바로 지난해 재건축을 위해 완전히 철거되었으며, 후자는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영화 촬영 당시와는 외관이 상당히 바뀌었다. 예정된 파국을 맞이했던 현주와 박대리 두 사람의 관계처럼, 두 곳의 ‘의도된 경관’ 또한 현실 세계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사실상 자취를 감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영화 <야행>을 온전히 역사의 영역에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얼마 전 작고한 김수용 감독의 < 야행 >은 1974년 제작됐으나 사전검열과 영화법 4차 개정에 따른 제작사의 등록취소 문제로 1977년이 돼서야 개봉했다. <야행>은 김수용 감독의 전작 < 안개 >(1967)와 공통점이 많다. 두 영화 모두 김승옥 원작에 윤정희와 신성일이 주연을 맡았다. 두 영화는 급변하는 20세기 모던한 서울에서 삶의 방향을 잃은 주인공이 고향을 방문했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구조를 갖고 있다.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서울에서 중산층 이상의 계급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예정된 권태로운 삶에 무의미함을 느낀다. 두 주인공의 방황은 자의식적인 내레이션, 플래시백, 꿈과 환상의 장면으로 표현된다. 권태로움을 깨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규범적인 중산층의 삶에서는 꺼내놓을 수 없었던 성적 환상의 실현이 된다. <안개>는 윤기준(신성일)이라는 부잣집 딸과 결혼해 제약회사 전무 자리를 꿰찬 남자의 시점으로, <야행>은 은행에서 일하며 이제 막 신축한 강남 반포 아파트에 살고 있는 현주(윤정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두 영화 모두에서 도시와 농어촌인 고향의 대비, 도시에서의 경쟁적인 삶과 신분상승의 욕망, 중산층 정상성에의 압박,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같은 국가적 트라우마의 영향이 희미한 배경으로 처리된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도시화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이 쟁점들은 그 원인과 효과가 날카롭게 파헤쳐지기 보다는 개인의 방황을 정당화하는 동기 정도로 차용된다. <안개>와 <야행>은 공통점이 많지만 동시에 주인공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도 두드러진다. <안개>에서 윤기준이 무진에서 잠깐 만나는 젊은 음악교사 하인숙(윤정희)을 포함해 아내, 옛 애인, 술집작부 등 여성 인물들은 그의 남성적 수치심, 혼란, 열패감, 권태로움을 반영하거나 보상하는 정형화된 약호들로 기능한다. 무진에서 서울로 가고 싶어했으나 금방 마음이 바뀐 하인숙을 이해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반면 <야행>의 현주(윤정희)의 방황하는 행동은 단순한 변덕이나 모순보다는 도시 신흥 중산층 여성의 내적 풍경으로 이해된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예술 영화를 표방했던 영화와 마찬가지로 <야행>의 현주(윤정희)는 도시 생활의 최첨단에 있다. 그리고 그 최신의 세련됨은 자본주의의 숙성과 관련이 있다. 그는 은행원으로 일하고 강남 개발의 신호탄이 된 반포주공아파트에 산다. 영화는 도시화와 더불어 지루함과 혼란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고속버스 터미널, 서울의 빌딩을 오프닝의 설정 쇼트로 보여준다. 지방에 있는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와 은행에 취직하고 이제는 숙련된 직장인으로 일하는 현주처럼, 서울 역시 어느 정도의 도시화와 근대화가 숙성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설정 쇼트에 이어 영화는 은행의 일상 업무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이제 인프라를 쌓고 직접적인 노동을 통해 성장하는 것에서 돈이 돈을 버는 금융자본이 중요해지고 지대수입을 통해 부를 증식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부의 증식은 계층 격차를 벌어지게 만든다. 영화는 그러한 현상을 강조라도 하듯 현금과 금고를 클로즈업 몽타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정치의 개입이든 경쟁에서의 도태든 탈락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동방상사의 사장이 오래된 부잣집에서 부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과 남자 주인공인 박대리(신성일)가 동방상사를 부도처리하는 장면이 바쁘고 역동적으로 교차편집 되는 와중에 안경을 쓴 현주는 돈다발을 응시한다.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남자들이 몰입해 일을 하는 동안 거리를 두고 약간은 지루하게 응시하는 현주의 모습은 흥미롭다. 영화는 여성인 현주의 관점에서 근대화, 도시화, 자본주의의 숙성을 다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뒤늦게 밝힌다. 현주 역시 도시 자본주의를 충분히 누리고 있지만 선명하게 정리되지 않는 혼란을 느낀다. 영화는 현주가 결혼을 통해 규범적인 중산층 가족을 이루지 못한 것에 불만을 느끼는 것처럼 묘사한다. 동료와 상사는 ‘노처녀’ 현주가 자기보다 어린 여직원이 결혼을 하는 것에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몰아간다. 실제로 젊은 여직원들은 뒤에서 현주를 욕하고, 남직원들과 남자 상사들은 대놓고 그녀를 동정하며 비웃는다. 아무리 ‘안경만 벗으면 미인인’ 현주라도 나이가 들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그녀를 대한다. 현주도 여기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불만은 훨씬 더 모호하고 복잡하다. 신식 강남 아파트에서 동거를 하고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는 박대리에 대한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현주 역시 그와 정말로 결혼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결혼은 그저 그의 욕망을 찾기 위한 여정을 추진하는 기제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현주는 과거로 돌아간다. 휴가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현주의 회상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선생님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녀의 첫사랑은 베트남전에서 죽고 만다. 그녀의 아파트가 자신의 첫사랑이 묻혀 있는 현충원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최신식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 자본주의적 현대성은 전쟁이라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대가로 사들인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국가가 오염되어 있는 것처럼, 결혼은 이제 중산층이라는 계층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현주의 욕망은 급작스럽게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알레고리가 된다. 그러나 현대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과시하는 김수용 감독답게 영화는 그 알레고리를 끊임없이 개인의 성적인 방황과 모던한 아파트의 스펙터클로 재치환 한다. 1974년 제작된 영화는 1973년 처음 공급된 당시 반포주공아파트의 실내 구조와 창밖 전망을 스펙터클화 한다. 영화 속 아파트는 은밀하게 섹스를 하는 에로틱하고 모던한 공간이자, 창밖으로 대단지 내 다른 아파트만 보이고 허허벌판인 황폐하고 삭막한 신도시 공간으로 묘사된다. 아파트 근처에는 베트남 전쟁 중 죽은 옛 연인이 묻혀있는 국립현충원이 있다. 현주는 현충원의 헌병 앞에서 스타킹을 올리며 유혹하는 제스처를 취하곤 한다. 이 장면은 강남개발과 베트남 참전이 모두 국가 주도의 근대화 프로젝트 영향 하에 있음을 은유하는 동시에, 신흥 중산층에 진입했지만 결혼 같은 규범은 원치 않는 여성의 욕망을 드러낸다. 지난 50년간 강남 중상층 욕망의 상징이 되어온 반포주공아파트는 2023년 재건축 진행으로 사라졌지만, <야행>은 그 욕망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기록하고 기억한다. 박대리는 뒤늦게 현주에게 결혼을 하자고 하지만, 자신을 성적 도구로만 여기는 그에게 현주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현주는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성적 방황의 여정을 시작한다. 근대화, 도시화, 자본주의의 숙성을 통과하는 여성의 혼란스러움은 성적 불만족으로 환원된다. 서울로 돌아온 현주는 은행이 내려다보이는 다방에 앉아 박대리와 나눈 대화를 복기한다. 그리고 박대리가 했던 대사를 돌려준다. 박대리는 “우린 안 해?”라고 묻고 현주는 “시시해, 결혼식 같은 건”라고 답한다. 낯선 남자와 총질하는 환상이 삽입되면서 이제 현주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은유화 한다. 남은 휴가를 보내던 현주는 도심의 육교 위에서 느닷없이 수갑이 채워져 여관방으로 끌려가 강제로 관계를 맺고, 이때 첫사랑과의 첫날밤 장면까지 교차되며 그녀의 환상은 극에 달한다. 이 장면은 여성 시점의 강간 판타지를 위험하게 보여준다. 아파트에 갇혀 사는 중산층 여성의 권태로움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위에 세워진 자본주의 근대화에 대한 불만족을 성적환상으로 대치한 현주는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환상은 환상일 뿐 그녀의 일상은 다시 반복된다. 하지만 박대리와 결혼하는 안일함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주의 눈치를 보는 박대리에게 단호하게 ‘휴가는 끝났다’는 쪽지를 보내고, 자신을 성희롱하는 남자고객을 뒤에서 욕하며 퇴근하는 현주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표명으로 보인다. 특히 나이에 따라 여성들의 가치를 매기는 가부장적 결혼제도로는 걸어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현충원을 지나 양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아파트 사이의 소실점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현주의 뒷모습을 점프컷으로 보여준다. <야행>은 중산층이라는 경제적 기반 위에서 결혼이라는 규범을 거부하는 자본주의 근대 도시 여성의 얼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