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
- 감독
- 배종대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등호, 리원원, 신미선, 송선훈, 라영현, 임인웅, 박연술, 김용구, 박혜인, 천무혁, 박미정, 송진화, 박종근, 윤은경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소피아 코폴라, 2003)는 소통을 통해 위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도쿄라는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삶의 고독 속에서 표류하는 외로운 두 미국인 남녀의 정서적 교감을 그린다. 중년 배우 밥(빌 머레이)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이질감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오랜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의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연락은 그에게 공허함과 권태로움만을 안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사진작가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 도쿄에 머물고 있지만, 홀로 보내는 나날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두 인물은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단절을 겪으며 심리적 고립에 빠져 있다. 영화는 초반 엘리베이터 장면부터 밥을 외부인으로 설정하는 위트 있는 연출의 묘미를 보여준다. 좁은 공간 안에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 무리 사이 홀로 우뚝 솟은 밥의 대비되는 신체 비율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아무런 대사 없이 그가 완벽하게 ‘이방인’이라는 걸 보여준다. 구도와 비율만으로 메시지를 센스 있게 전달하는 장면이다. 밥이 홀로 머무는 호텔방은 고독과 침묵이 가득하다. 지극히 미니멀하고 한없이 적막함이 느껴지는 온기 없는 방이다. 무기력한 밥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무심하게 정지한 상태로 여백을 많이 둔다. 배우의 체구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밥의 시선으로 보이는 일본 TV 프로그램 속 기이하고 과장된 이미지들은 그의 문화적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샬롯이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창밖 도쿄 도심은 차갑고 건조하다. 넓게 펼쳐진 도심뷰 창문 앞에 홀로 배치된 샬롯의 뒷모습 샷들은 창문 너머 세상에 대한 동경이거나 혹은 철창 같은 호텔방을 벗어나 해방을 갈망하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성 꼭대기에 갇혀 있는 고립된 공주처럼 창밖 배경과 인물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고독감은 증폭된다. 방 안에 흐트러진 옷가지와 정리되지 않은 소품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그녀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하다. 종이꽃으로나마 방 안을 꾸미려는 샬롯의 행위는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샬롯이 우연히 꽃꽂이 수업 공간에 들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꽃 한 가지를 꽂는 장면은 소소하지만 묘한 울림이 있다. 이 장면은 비언어적 교감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3 )", IMDb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샬롯의 시선으로 보이는 혼잡한 도심 풍경을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불안하게 보여준다. 건물의 파사드 광고에 등장하는 공룡들의 이미지는 그녀가 있는 공간을 더더욱 낯설고 모호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홀로 지하철을 타고 찾아가는 신사 또한 서양인에게는 낯설기만 한 공간일 것이다. 영화는 뜻을 알 수 없는 일본어 네온간판들이 가득한 번화한 야경 거리, 파친코 상점, 가라오케 같은, 이들에게 더욱 낯설게 다가올 공간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캐릭터의 감정적 소외를 컬러풀한 조명의 시각적 요소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언어의 청각적인 요소에 대비시킨다. 도시의 혼잡함과 인물의 고요함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그들의 정적인 내면을 부각시킨다. 화려하고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도쿄라는 배경은 영리하면서 감각적인 선택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설정했더라도 이야기는 성립되었겠지만, 의사소통도 감정소통도 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상태의 이방인으로 만들 수 있는 배경을 택한 거다.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낯선 문화 속에서의 혼란과 외로움의 정서가 배경과 어우러져 한층 더 밀도 있게 시너지를 낸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IMDb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단절된 상태였던 이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긴밀하게 느낀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대로 맺어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이제 프레임 속에서 그들은 각자 홀로가 아닌 둘이 함께 존재한다. 이들이 소통해 나가면서 서구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색하고 불편한 낯선 나라의 문화는 다른 시선으로 바뀐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유쾌하게 도시를 경험하며 즐긴다. 홀로 경험하는 도쿄는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둘이 함께 하는 도쿄는 새롭고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지치고 무기력한 눈으로 바라보던 낯선 풍경은 술에 취해 혼미한 시선으로 몽환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맞이하는 해방감과 설레임이 도쿄거리의 흐릿한 불빛들과 함께 자유로이 부유하는 듯 보인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외피를 썼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성 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모호한 플라토닉 우정에 가깝다. 한 침대에 누워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샬롯의 발에 살며시 올려놓은 밥의 손은 묘하게 에로틱하면서도 숭고함마저 깃든다. 무언의 위로와 정서적 교감이 정점으로 느껴지는 최애 장면이다. 마침내 이들은 이렇게 숭고하게 그토록 원하던 깊은 잠에 들며 평온한 밤을 맞이한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이들은 계속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서로가 외롭지도 권태롭지도 않기를 바랄 것이다. 진솔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우수에 찬 마지막 시선은 서로를 보듬어주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이들이 작별하는 엔딩의 도쿄 도심 풍경은 이전에 보여줬던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전의 도심이 화려한 간판 불빛에 눈부시고 정신 없이 번쩍였다면, 엔딩의 도심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감성이다. 동시에 두 인물의 정서적 변화도 느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말을 아낀다. 하지만 우리는 설정된 무드의 공간 안에 배치된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탁월하지만 침묵 속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언어 대신 이미지로 말하는 느낌이다.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인물의 공허한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연출한 영화라는 생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파이크 존즈의 < 그녀(HER) >(2013) 역시 인물의 감정선을 반영한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는데,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그 파동이 강하게 전달된다고 느꼈던 소피아 코폴라의 초기 작품을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공간이 단지 보기 좋은 배경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내러티브와 연계되어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서사의 일부로 작용할 때 미장센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런 미술을 지향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마친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서성경(미술감독) l 이야기에 숨결을 더하는 미장센을 지향합니다. < 사바하 >(장재현, 2018), < 가장 보통의 연애 >(김한결, 2019), < #살아있다 >(조일형, 2020), < 원더랜드 >(김태용, 2024), < 파묘 >(장재현, 2024) 미술감독.
<벤허>(1925) 중 (사진: “ Ben-Hur A Tale of the Christ ”, IMDb) 다시 만난 세계: 식민지 조선의 극장문화 이야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간하는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를 바탕으로 역사의 지층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와 행간 속에 숨겨진 욕망들을 재조명합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합하면서 동원한 ‘우승열패(優勝劣敗)’의 논리는 식민지 통치 전략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제국은 힘의 우위를 과시하며 찍어 누르기 위한 ‘무단통치’를 내세웠으며, 이는 ‘강자’가 곧 ‘적자’라는 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무장한 헌병들이 백주에 대로를 활보하고 일반 문관뿐 아니라 교사들까지 칼을 차고 다닐 만큼 살풍경한 분위기 속에서 식민지 조선 사회는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해 왔던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3.1운동’은 예기치 못한 ‘사고’와도 같았다. 고종의 장례식에 맞춰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이 충분히 예상되었던 상황이었고, 실제로 20만 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한꺼번에 상경했지만 치안 당국의 대응은 미온적인 수준에 그칠 따름이었다. 민족 대표들은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자진 체포되었으나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시위 행렬은 수만 명으로 불어났고, 만세운동의 기운은 조선 각지로 퍼져나가며 끈질기게 이어졌다. 여러모로 ‘3.1운동’은 제국의 통치 시나리오에서 완전히 비껴난 장면들을 연출해 냈던 셈이다. ‘3.1운동’을 기점으로 물리적 폭력에 의존한 통치 방식은 뚜렷한 한계에 부딪혔다. 만세운동 진압 과정에서 드러난 잔혹성은 국제적 비난을 불러일으켰고, 부담을 느낀 제국은 ‘문화통치’를 표방하며 유화책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것이 기만적인 술책에 불과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눈에 띄기 쉬운 헌병의 수는 줄었을지언정 실질적인 경찰력은 증대되었으며, 언론의 창간을 허용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했지만 이것 역시 식민지 조선 사회의 동향을 철저히 모니터링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조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화통치의 요체는 감시와 처벌을 짝패로 한 안정적 관리 기술에 있었다. 주목할 것은 극장 이 새로운 식민통치 기술의 주요한 시험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문화통치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는 사회단체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해도, ‘3.1운동’의 전례를 상기할 수밖에 없었던 제국은 집단을 이룬 조선인들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였다. ‘광장’을 둘러싼 정치적 상상력이 봉쇄당한 상황에서 극장은 거의 유일하게 허용되었던 종족의 회집 장소였다. 극장업은 엄연한 합법의 영역 속에 놓여 있었을 뿐 아니라, 제국은 극장이 사회적 압력에 대한 배출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치안 유지에 유용한 기관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극장에 모여든 관객들은 돌발적 사건에 의해 쉽게 자극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치부되었다. 비록 극장에서의 소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 여파에 대한 추정치는 ‘3.1 운동’이라는 역사적 전거를 환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1920년대 들어 검열 규정 들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1922년에 공포된 「흥행장급흥행취체규칙취급심득」은 공연에 대한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는 점과 함께 무단 공연 시의 처벌조항도 적시했다. 이어 1923년에는 경기도 경찰부가 경성에 소재한 극장 경영자들을 불러 모아 개선사항을 주문한 바 있었다. 특히 비밀결사와 음모단이 활동하는 내용의 활극은 유해하므로 피할 것, 변사가 사전 검열 내용과 다른 풍자적 언어를 쓰지 말 것 등의 내용이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1] 1926년부터 시행된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은 일본의 법규를 소급적용한 것이 아닌 식민지 조선에서 별도로 적용된 최초의 법적 근거였다. 또한 이 규칙은 극장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급성장한 영화 를 명백한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필름 상영 전에 검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뿐 아니라, “공안, 풍속 또는 보건상”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검열 기준을 명시하고 있었으며, 상영 시의 임검을 비롯한 현장취체 규정도 명문화되었다. 한편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의 가장 명시적인 표적은 외화 였다고 할 수 있다. 1923년에 < 월하의 맹서 >(윤백남, 1923)가 제작된 이래 조선영화계는 본격적인 생산의 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했지만, 상영된 영화의 절대 다수는 서양에서 수입해 온 외화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국은 어떤 이유로 먼 나라의 이국적 배경에서 펼쳐지는 상이한 풍속의 세계에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식민지기 극장이 형성해 온 무성영화의 상영 관습 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식민지기 극장에서 상영된 무성영화는 자족적인 텍스트라 보기 어려웠다. 무성영화는 항상 변사와 악사를 비롯한 인간매체의 개입을 동반하고 있었기에 상영이라기보다는 연행 에 가까운 형식을 띠고 있었다. 벤야민이 기술복제 시대의 대표적 표징으로 지목했던 영화의 성격이란 적어도 식민지기 극장에서는 유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서양발 수입 무성영화를 관람하던 당대의 관객들은 화면에 나타난 낯선 시각적 코드 와 변사를 통해 중계된 익숙한 구두적 코드 를 결합시켜야 했다. [2]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법한 방식이라 해도 관객들은 극장 경험을 축적해 나가며 이를 자연스러운 관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백문임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무성영화의 관객들은 ‘소리’를 들었다고(혹은 상상했다고) 반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의 관객들 역시 외국 배우의 벙긋거리는 입술에서 모국어 발화를 연상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 볼 법하다. 그리고 변사의 연행은 그러한 상상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극장에서 무성영화의 수용은 매우 혼종적이고 집단적인 실천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국적 배경에서 펼쳐지는 외국인들의 이야기, 즉 서양발 수입 무성영화의 내러티브는 ‘지금, 여기’에서 공유된 코드에 의해 토착화되고 전유 되었으며 더 나아가 종족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계기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3] 또한 변사의 역할은 단순히 간자막의 내용을 ‘번역’하여 전달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변사의 수준이란 관객이 지참해야 할 손수건의 수로 가늠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을 만큼, 그들의 해설은 객석을 선동하여 집단적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때때로 그 과정에서 오독에 가까운 변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제멋대로인 해설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던 관객들도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변사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일종의 창작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관객들의 기대와 욕망을 자극하는 해설을 통해 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유선영은 헐리우드 영화 < 동도(Way Down East) >(데이비드 W. 그리피스, 1920)가 식민지 조선에서 변사 해설을 동반하여 상영되는 과정에 관심을 두었으며, 특히 변사 김영환의 강조점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과 다소 비껴나 있다는 점에 주목한 바 있다. <동도>는 남자에게 배신당해 미혼모 신세가 된 젊은 여성이 사회의 냉대 속에서 온갖 고난을 겪지만 자신의 선한 행실을 통해 끝내 행복을 되찾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동도>는 권선징악의 시적 정의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둔 전형적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다. 여주인공 안나는 자신의 진실한 내면을 알아본 데이빗의 구애를 받게 되지만, 과거 그녀를 버렸던 레녹스와 다시 만나 과거사를 폭로 당했고, 데이빗의 아버지인 스콰이어는 부정한 행실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안나를 면전에서 모욕한다. 쫓겨난 안나는 눈보라 속에서 기절하고 강물에 휩쓸려 흘러가다가 폭포로 추락할 위기를 맞이하지만 뒤쫓아온 데이빗은 유빙들을 징검다리 삼아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며 극적으로 안나를 구해내게 된다. 이 장면은 <동도>의 메인 포스터 이미지로 활용될 만큼 스펙터클의 요소가 부각되는 곳이며, 내용 측면에서도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김영환이 가장 ‘통쾌’한 대목으로 회고했던 것은 데이빗이 아버지 스콰이어에 대해 ‘후레질’을 하며 대드는 장면이었다. 특히 데이빗은 ‘종교, 도덕, 법률’이 부재한다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데, 아버지의 ‘종교와 도덕’은 무엇이냐고 되묻는 장면이나, 안나에게는 ‘종교, 도덕, 법률’ 어느 것도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유선영은 이러한 반복이 다분히 변사 김영환의 강조점에 따라 취택되고 덧붙여진 장면에 가깝다고 보았다. 즉, 김영환이 느꼈던, 그리고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통쾌감’은 낡은 구질서와 도덕의 파괴, 자기혁신을 통한 개조, 정의와 인도주의에 대한 절박한 기대감, 식민지민이자 약소민족이라는 자의식이 결합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4] 변사 김영환 / <동도>(1920) 중 (사진: “ Way Down East ”, IMDb) 이처럼 변사의 해설은 서양발 수입 무성영화의 세계를 식민지의 서사로 환치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관객들은 은밀한 해석의 코드를 공유하면서 전유의 독법을 체화해 나갔다. 더군다나 인간매체인 변사는 복제매체와 달리 돌발적 수행성 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해설 대본도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지만, 무대 배우의 애드립처럼 변사 역시 현장 분위기에 맞추어 임의로 발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 필름 검열과 별도로 임석경관을 동반한 현장취체가 필연적으로 요청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 대구 만경관 활동사진 순업단이 지난 팔일 진주에 도착하여 연일 만원의 성황을 이루었는데 십일 밤 영사하는 사진, <암흑의 시(市)>에 설명 변사 김성두 군이 동 영화 중에 나타나는 주인공이 빈한한 사람을 위하야 일하다가 결국 감옥생활을 하게 되고 전기의 판결을 담임한 판사의 아들이 역시 법망에 걸리는 경로를 설명하면서 현대사회 조직이 불합리할 뿐 아니라 법률이 없어도 이상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잇다는 설명 을 마치자 곧 임석경관이 검속을 시키고 다음 사진도 못하게 함 에 오백여 군중이 이유를 설명하라고 고함을 쳐 장내는 대소란을 일으켰는데 활동사진 설명까지 가혹히 취체함은 처음 일이며 진주경찰서의 근래 언론취체는 너무 가혹하다 하여 일반의 비난이 자자하다더라. (진주)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사연구소 편,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6 』, 한국영상자료원, 2014, 177쪽. - 기사, “활동사진 설명 중 – 변사 돌연 검속”, 《조선일보》, 1926. 3. 13. (나) 지난 십육일 밤에 시내 조선극장에서 다수한 격문을 살포한 사건 이 있은 이후 경찰 당국의 극장 경계는 더한층 삼엄하여져서 시내 단성사 , 조선극장 , 우미관 등의 각 극장의 입구는 말할 것도 업고 밑의 층 위층에는 두어 간통만큼씩 십수 명의 정, 사복경관이 벌려서서 철통 같은 경계를 하고 잇는데 그중에도 무대 정면에는 바로 변사 옆에 순사부장 한 사람이 걸상에 걸어 앉아서 활동사진을 영사하는 암흑한 속에서 끊임없이 관중과 눈싸움 을 하고 잇는 등 일찍이 극장에서 볼 수 없던 진기한 광경을 보이고 있다더라.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사연구소 편,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30 』, 한국영상자료원, 2019, 132쪽. - 기사, “각 극장마다 수십 경관 배치 – 변사 옆에 순사가 앉아”, 《조선일보》, 1930. 1. 19. (가)는 임석경관이 변사의 임의적 해설을 문제 삼아 흥행 자체를 중지시킨 사례에 해당한다. 대구 만경관 소속의 활동사진 순업단이 진주에서 영사회를 열었을 때, 변사 김성두는 감옥에 갇힌 주인공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볼온하게 해석될 만한 해설을 덧붙였다. 현대사회의 조직이 불합리하며, 법률이 없어도 충분히 이상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막연한 인도주의적 발상에 기댄 이 해설이 명시적인 불온성을 띤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년도 5월부터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등 국사범들을 처벌하기 위한 ‘치안유지법’이 시행되어 왔음을 고려한다면, 치안 당국은 법률 무용론을 설파한 해설의 저의에 의구심을 품기 충분했을 것이다. 한편, 1929년에 일어난 원산 총파업과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치안 당국을 긴장시켰던 사건이었다. 이 시기 극장은, 동맹휴학 분위기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던 학교와 더불어 경찰의 일급 감시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어두운 공간 속에 다수의 조선인이 모여들었던 극장은 격문을 살포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나)는 조선극장 격문 살포 사건 이후 임석경관의 감시가 매우 노골적으로 표변한 순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임석경관을 위한 자리는 객석의 가장 뒤편, 즉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5] 그런데 격문 살포 사건이 발생하자, 경관들이 촘촘하게 배치되었을 뿐 아니라, 순사부장이 아예 변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관중과 눈싸움”을 벌이는 “진기한 광경”이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치안 당국의 주안점이 변사의 해설 자체보다 그것이 촉발하는 객석의 정동을 감시하고 제어하는 데 있었다는 점을 함의한다. 그러나 가시화된 임석경관의 존재는 외려 극장에 내재한 정치적 상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임석경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제국의 감시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그와 같은 시스템이 인간의 육체를 빌려 현존하고 있었다는 점은 극장에 내재된 불온성을 끊임없이 환기시켰던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극장의 프로그램은 언제나 임석경관에 의해 중지되거나 취소될 수 있었기에, 임석경관은 극장에 모여드는 관객들로 하여금 불안을 내면화하도록 만드는 요인이었다. 다시 말해, 임석경관으로 대표되는 감시기제의 존재는 관객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응시하면서 극장을 둘러싼 심상지리를 ‘불온한 공간’으로 스케치했으며, 관객들은 그 시선을 의식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구성 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극장 흥행주들은 이러한 불온성을 흥행 코드로 치환 하는 데 은근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특히 민족의 수난 서사와 해방서사를 담아 낸 외화들은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예컨대 1928년에 개봉되었던 <가우초>와 <이스라엘의 달>은 압제에 시달리는 약소민족의 해방서사를 그려 낸 영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가우초>는 남미의 안데스 산맥에 터전을 둔 유목민 ‘가우초’의 영웅담을 조명한 작품으로, 그들의 수령인 주인공은 신전을 지나다가 우연히 만난 신관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후 신전의 보물을 노린 도적들이 쳐들어오고 열세에 처한 주인공은 위기를 맞이하지만, “신출귀몰한 책략”을 발휘하여 끝내 신전을 지켜낸다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6] <십계>의 ‘자매편’이라 소개되었던 <이스라엘의 달>은 성경의 ‘출애굽기’에 나타난 유대 민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아 허구를 가미한 작품이다. 노예로 전락한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로 끌려가 가혹한 노역에 시달려 왔다. 그들을 동정해 왔던 이집트 왕자 세티는 ‘이스라엘의 달’이란 별칭을 가진 메라피와 만나게 된 후, 이스라엘 민족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투쟁에 동참한다. 신문에 게재된 감상평은 동포의 자유를 위해 “어여ᄲᅳᆫ 청춘”을 바친 메라피의 희생을 ‘잔 다르크’에 비견하고 있으며, 신의 저주를 받아 비참하게 죽게 된 이집트 왕의 최후를 “확연한 인과의 결실”이라 규정한 바 있다. [7] <가우초>, <이스라엘의 달> 포스터 이듬해 식민지 조선에서 개봉한 < 벤허 >(프레드 니브로, 1925)는 유대민족의 수난사가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의 현실을 환기하는 계기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극장 운영자와 실무자들은 서양영화를 경유하여 민족의식을 자극하는 것이 ‘관객몰이’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영화가 극장에 내걸리기 위해서는 먼저 필름 검열을 통과해야 했다. 단성사 영업부장으로 재직하며 <벤허> 검열 과정에 참여한 이구영 의 ‘무용담’은 흥행 실무자의 예민한 감각과 더불어 당대 검열행정의 공백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이구영) 영화검열을 이거 통과해나가면, 대본을 보니까 이거 암만해도 위태로워요, 내가. 거기 몇 마디 다이알로그가 이건 아주 불온 천만한 얘기란 말이에요, 저 노예선이..., 거 지중핸가 거기 나가지 않습니까? 거기에 전부 철사로 묶이고 거기에 이제 그..., 이... 저...? (면담자) 북? (이구영) 네, 북을 울리면서 리듬 맞춰가지고 노를 젓지 않습니까? 거기에 소위 선장이라고나 할까? 그게 나왔어. 나와서 채찍으로 갈기는 겝니다. 막! 덜 움직인다고... 그래 반항하는 거야. 이쪽에서. 그 주인공의 이름이 마리오스인가요? 반항하는 거야. 직접 대고. 그 선장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저어서 한 시간씩 늦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빨리 배를 저으란 말이야. 그 때 반항하는 거야. 그래서 대사 하나가 나옵니다. 너의 한 시간은 말이야, 우리 유태 민족의 백 년이단 말이야. 우리 민족의 백년한을 알겠느냔 말이야. 그 대사가 하나 탁 튀어나옵니다. 이것이 하나 유일하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겝니다. 이것이 통과되야만, 되면 이거 아주 히트란 말이에요, 영화는... 그런데 검열관은, 소위 성격을 내가 파악하고 있었어요. 오까라고 하는 검열관한테 이것이 가는 날에는 틀림없이 전부 가위질 다 당해서 아마 한 200피트 이상은 없어질 겝니다. 그 화면 전체를 막 끊고, 그런데 다행히 내가 거기 급사로 있던 사람에게 물었어요. 이 대본이 어떤 사람의 손으로 가는 걸 알아다오. 그래 나중에 전화를 걸으니깐드루 요시다란 사람의 손으로 갔다, 길전(吉田)이한테... 됐단 말이야. 그럼 내가 성격을 아니깐 이거 꼭 내가 방법론을 써야 되겄다. 이제 검열실에 올라갔어요. 영화 돌아가는데..., 그 사람이 소위 하이꾸라고 해서 그 배구(俳句)를 좀 할 줄 압니다. (면담자) 네, 하이꾸? (이구영) 네, 그게 경무 월간지가 있어요. 《경무월보》라고... 그걸 내가 찾아냈어요, 일부러, 그래서 고 문구를 외고..., 그런데 그 사람이 아주 줄담배입니다. 줄담배, 소위 아사히라고 하는 것을 밤낮, 이놈을 입에다 종일 물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눈이 좀, 시력이 이상해서 아주 그냥 안경을 굉장한 걸 썼습니다. 도수가 깊은 것, 그래서 이제 고 화면이 한 5분이면 벌써 나타나기 쉬운 방면까지 왔어요, 벌써. 그래 내가 화면 보면서 대본 읽으면서 얘기하면서 이거 볼 거 아닙니까? 그러면은 그때는 그 배구에 대한 것, “당신 참 배구 참 멋지다 말이지. 이런 문구, 암만 생각해도 이건 정말 걸작인데, 이런 걸 왜 문단에 발표하지 않고 이런 데다 이렇게 내슈?” 막 칭찬하구 말이야. “당신, 자꾸 쓰슈, 자꾸 이런 글을. 이래야지, 우리도 좀 보지. 당신이 나 이런 걸 쓰는지 몰랐단 말이야. 오까~ 같으면 이런 걸 안 쓴단 말이야. 당신이니까 썼지.” 그렇게 하니까 칭찬해서 누가 싫다는 사람 어디 있겠어요? ‘아, 그러냐?구,’ “그래 평판이 대단하단 말이야, 요시다상, 이거 정말 문학에도 이렇게 조예가 있고 검열관으로 있기에는 참 아깝다”고 그런 얘기를 하니까, ‘아! 그렇냐’고 말이야. 그래 그러는데 그 화면이 지나가요. (면담자) 네, 그걸 지키기 위해... (이구영) 내 아주 잊질 않죠, 이제. 그 지나갔어요. 지나가서 얘기 딱 끊고, 뭐 참, 얘기가 너무 길었단 말이야. 그러고 영화 보는 게죠. 그러니까 지나갔죠. 그러니까 이제 노컷으로다가 무제한 도장 콱콱 내줬어요. 내가 춤을 추고 혼자 나오는데,(웃음) - 한국예술연구소 편, 『한국영화사를 위한 증언록 – 김성춘, 복혜숙, 이구영 편』, 소도, 2003, 283~284쪽. <벤허> 중 (사진: “ Ben-Hur A Tale of the Christ ”, IMDb) <벤허>는 유태인들이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하에 놓여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주인공 벤허는 귀족 집안 출신의 자제이며, 체제에 반항하는 동족들을 밀고하라는 로마인 친구의 부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모함을 받아 노예로 전락한 인물이다. 이구영이 주목했던 것은 벤허를 비롯한 유태인들이 노예선 위에서 학대 받는 장면이었다. 채찍질하는 노예선의 선장에게 맞서 “우리 민족의 백년한”을 부르짖었던 대사가 “히트”를 예감케 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구영이 보기에도 반항기가 농후했던 이 대사가 온전히 검열을 통과할 리 만무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구영은 ‘꼼수’를 동원한다. 어떤 검열관이 배정되었는지를 사전에 파악하고, 필름 검열 당시 문제의 장면이 지나갈 때 관심을 돌릴 요량으로 그의 ‘하이쿠(일본 정형시의 일종)’ 실력을 일부러 추켜세웠다는 것이다. 결국 “노컷으로다가 무제한 도장”을 받아 낸 이구영은 희희낙락하며 검열실을 나올 수 있었다. 당연히 <벤허>가 상영되었을 때, 이 대사는 문제를 일으켰고 즉각 임석경관의 중지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벤허>는 필름 검열을 통과한 작품이었던 데다가 변사가 설명대본에 없는 대사를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검열 당국은 당혹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이구영이 회고한 뒷이야기에 따르면 검열관들 사이에 다툼까지 일어날 정도로 큰 난리가 벌어졌지만, 결과적으로 <벤허>는 계속 상영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연장상영까지 진행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검열 역시 사람의 손으로 수행하는 작업인 이상 빈틈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이구영은 그 허점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던 셈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었며, 극장의 핵심 프로그램이 발성영화로 전환된 1930년대 이후부터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요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발성영화는 별도의 소리 연행자를 둘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완결된 텍스트였기에 필름 검열만으로도 불온한 장면들을 걸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발성영화의 사운드와 충돌할 때가 잦았던 변사의 목소리는 영화 감상을 방해하는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재래의 취향’으로 낙인찍히며 점차 주변화되었다. 이는 곧 식민지 조선의 극장에서 돌발적 수행성이 발휘될 여지(餘地)가 급격히 좁아져 간다는 점을 의미했다. *** [1] 기사, “활동사진 개선의 요점 - 비밀결사나 모험뎍 활동사진은 조선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금지”. 《조선일보》, 1923. 4. 11. [2] 유선영, 「초기 영화의 문화적 수용과 관객성 : 근대적 시각문화의 변조와 재배치」, 『언론과 사회』 12, 사단법인 언론과 사회, 2004. [3] 백문임, 「식민지 극장의 무성영화 관람성」, 『한국언어문화』 38, 한국언어문화학회, 2009. [4] 이러한 전유의 구조를 적용해 본다면, 안나는 피억압 약소민족으로 치환되며, 레녹스는 거짓과 위선으로 식민지를 강제 병합한 제국 일본으로, 스콰이어는 종교와 도덕을 말하면서도 침략자인 일본을 지지하거나 방조하는 서구 강대국들로, 데이빗은 약소민족을 대변하기 위해 아버지에 대항하고 더 나아가 약자를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조력자이자 인도와 정의를 구현하는 선인으로 전치될 수 있을 것이다. (유선영, 「식민지의 할리우드 멜로드라마, <동도>의 전복적 전유와 징후적 영화경험」, 『미디어, 젠더 & 문화』 26,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2013.) [5] 광주극장은 1930년대에 건축되어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온 극장이다. 광주극장은 ‘임검석’의 위치도 보존해 놓았는데, 객석의 가장 뒤편인 출입구 바로 옆에 임석경관을 위한 자리가 별도로 마련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 기사, “신영화 - 『더글라스』의 가우초”, 《조선일보》, 1928. 2. 15. [7] 기사, “내가 본 이스라엘의 月”(一), 《동아일보》, 1928. 2. 10. 이광욱(극장문화사 연구자) l 읽고 생각하며, 말하고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과거의 기록을 뒤적이고 오늘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미래를 고민한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조교수(동화 한국어문화학과), 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 『드라마, 일상성의 미학』(2024) 공저, 「카프 연극대중화론의 전개와 송영 풍자극의 매체미학」(2018), 「도달한 임계점과 보존된 미래 – 발성영화의 정착과 경성 소재 조선인 극장의 연쇄 반응」(2021), 「표류하는 조선영화 : <임자 업는 나루배>에서 <정춘삼>으로 – 최초의 영화 판권 소송과 식민지 조선영화 시장의 추이」(2022) 집필.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1. 초등학생 때 면접을 보고 들어간 방송반에서 나는 영상 송출 담당이었다. 아나운서 선발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당시 여자애들은 전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방송반에 들어갔다). 영상 송출 담당이란 조회 시간에 타이밍에 맞춰 애국가 제창 화면을 틀고, 교가 비디오를 틀고, 다시 화면을 전환해 강단을 비추는 일이었다. 특별활동 시간에는 방송실 안에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던 기억. 고등학생 때는 영상제작 동아리 활동을 했다. 집에서 안 쓰는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영상을 찍었고 이런저런 공모전에서 나름 성과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에 가서도 영상제작 동아리에 들어갔다. 학내방송국도 아니고 영화동아리도 아닌 영상제작이라는 모호한 분과만을 노렸던 행보에 대해서는 늘 약간의 해명이 필요했다. 영화는 멀고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반면, 영상은 지금 당장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대상처럼 친밀하고 가까웠다. 영화를 의식적으로 챙겨보거나 영화 비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그러니까 영상제작 활동을 했던 시기와 영화를 좋아하게 된 시기가 다르다는 점은 내내 의문이었다. 그 두 가지는 다른 걸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일단 찍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나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 2. 글 쓰는 사람의 손 위에서 시간은, 마감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카운트다운으로 대체된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밀려나는 리듬이 있을 뿐. 이건 마감의 불안으로 또 다른 층위의 불안을 지우는 일. 불안으로 불안을 다시 쓰는 일.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주춤거림 없이 글쓰기가 어렵다. 그건 글쓰기에 가로막힌 사람이 쓰던 원고를 거칠게 구긴 뒤 새 종이를 꺼내면서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있다는 착각을 통해서만 글을 시작할 수 있다고 느끼는 아주 상투적인 장면인 동시에, 대부분의 내 글쓰기가 출발하는 장소다. 눈치 챘겠지만, 글을 시작하기 위해 쓰나 마나한 말을 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자꾸만 미루게 된다. 곤란한 일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만큼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나’여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까지 내가 썼던 모든 글은 불순하다고 말해야 한다. 종종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의 경우, 특히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책상 위가 아니라 책상 아래에서(Under The Table-‘불법적인 일’을 뜻하는 관용 표현) 이루어지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종종 영화 전문 매체에 글을 쓰고, 힘을 북돋아주고 싶은 어떤 영화에 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의 효력을 따질 새도 없이 글이 공적인 경로로 유통된다는 사실은 특권적인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줄곧 이런 불안이 따라붙었다. 왜 정녕 영화여야만 할까?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을 읽으며 이보라 평론가가 쓴 구절에서 멈칫했던 기억도 난다. “글을 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만 할 수 있나?” *주1 비평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비평철학』에서 저자는 기술과 해석이 서로 다른 작업이며 기술은 명백한 요소들에 대한 증언인 반면, 해석은 명백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해석은 결코 최종 진술이 될 수 없는 미완의 작업이다. *주2 어떤 것이 명백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관습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공통의 합의들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에 대한 가장 새로운 이야기조차 사실은 통속적인 것의 배후에 있다는 깨달음이 글쓰기의 날카로운 기쁨이라면, 나는 그 순간을 연장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결코 최종 진술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매혹적인 동시에 끝나지 않는 악몽 같다. 불만족스러운 마감을 했다는 불안이 들 때면 어디에도 없던 평론가 데이비드 매닝 *주3 (일명 ‘데이비드 매닝 사건’)의 유령이 나타난다. 이 자리는 언제 백지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허구가 아닐까. 그 누구로도 대체 가능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어느 날 꿈에서는 내가 데이비드 매닝으로 판명 난다. 그리고 깨어나면, …이 세계는 꿈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간단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4 '데이비드 매닝'의 평을 실은 영화 광고 (사진: " Dave Manning ", The Museum of Hoaxes) 3. 영화를 둘러싼 불안과 수치심, 글쓰기의 곤란함이 맞닿는 장소가 영화 비평이라는 밀실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묘연하다. 미치더라도 이들과 함께 써나가야 하는데,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영화 비평을 수행적인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때 수행성이란 현실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개입이 아니라 ‘일단 가까운 곳으로 돌입하는 것’에 가깝다. 영화는 멀지만 영상은 찍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처럼,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최대한 현실이라고 감지되는 최전선을 향해 두드려보는 무모함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일단 돌입하고 나면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 문제는 다음이 항상 너무 빨리, 그리고 시시각각 찾아온다는 것뿐이다. 비평은 무언가를 걸치고 말하는 작업이기에 제로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 비평은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의 재활용에 그치지 않으며 여전히 창조적인 활동에 가깝다. 두 진술은 양립 가능하다. 나는 비평과 픽션의 일치를 소망하고, 그런 소망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어렴풋한 예감 속에서 쓴다. 오히려 나를 쓰게끔 만드는 것은 그런 오래된 불가능성이다. 2년 전 언파운디드랩의 초대를 받아 비평과 픽션의 상호 침투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다. 비평과 픽션을 이어주는 가능한 다리들을 다소 산만하게나마 떠올려보고자 했는데, 당시에는 비평의 픽션을 비평의 형식(적 다양성)으로 구현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나는 비평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무용한 일을 벌이고 매번 실패하지만 형식적인 새로움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은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비평의 새로움이란(물론 매우 드문 확률로 형식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품과 그것이 놓이거나 영향을 미치는 현실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비평가의 수행성은 ‘담론 만들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밍 어드바이저 서동진은 한국단편영화 섹션의 특정 경향을 분류하며 영화들이 특정한 문화적 부족을 형성하고 있음을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고 쓴다. 작품의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나 이미지로 환원할 수 없는 영화 찍기가 갖는 수행적 측면에 주목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이미 만들어진 ‘작품’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 재현된 이야기와 이미지의 언어적 측면이나 미학적 측면을 헤아리려는 것과, 영화를 하나의 수행적 언어, 즉 일종의 ‘하기(doing)’로 간주하고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다른 접근이다. *주5 서동진은 이 글에서 영화를 특정한 주제나 담론으로 분류하기보다는 단편영화 찍기라는 문화적 수행성과 그 활동의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제작된 작품에 연연하지 않고, 감독이라는 텍스트와의 관계를 특권화하는 용어에 불신을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주6 감독이 자신이 만든 영화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고 창조한다는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작품에 대한 논의는 그것의 주제나 의미, 의도 같은 것들에 의해 휩쓸려가기 쉽다. 반면 영화를 활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영화를 이미 제작된 것이라는 한정된 텍스트가 아닌, 감독과 작품 사이에 놓인 관계의 완고함을 슬며시 흔들며 제작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영되고 구성되는지를 조망하게 하는 다층적인 텍스트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한다. 단편영화,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의 수행성이 공동체의 발견과 자기 구성의 쾌락에 있다면 이것은 비평의 수행성에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말이다. 특히나 영화 비평은 하나의 작품에 대해 논할 수도 있지만 그 작품을 둘러싼 믿음이나 애정을 그러모으면서 특정 집단을 호명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물론 영화의 수행성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성립하는 것과 달리 비평은 단순히 ‘나’를 등장시키거나 일상을 전시하는 것만으로 비평적 효용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비평은 영화를 완결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작품과 나’를 연루시킬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영화를 현실을 향해 연장시킬 수 있다. 비평은 담론의 부피를 가지지 않은 것, 지나치게 사소하거나 주변부적인 것, 일상과 비슷한 층위에서 간과되는 것들을 재발견하거나 다시 응시하자고 청할 수 있다. 비평의 수행성은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의 속성을 재규정하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비평적 차원에서 작품을 현실과 매개하는 일은 분명 픽션의 기능을 지닌다. 이는 ‘나’라는 주어를 등장시킬 때만 어떤 활동이 수행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는 선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운용하는 것이 비평의 수행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에 비평가의 일상이 식별 불가능한 상태로 용해되어 있다. 영화의 수행성을 중점에 둔다는 것은 감독의 지위를 특권화하는 관점으로부터 떨어져나왔을 때 더욱 잘 보이게 되는 작품들의 층위가 있다는 말이다. 덜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 조악한 영화, 그럼에도 사로잡는 영화. 카메라를 다루는 치기 어린 몸짓에서 순간적으로 묻어나는 광채가 있다면 그를 이야기해 봄 직한 것으로 부풀리고, 영화의 담론적 영토를 재구성하는 것은 비평가의 수행이 아닐까? 비슷한 관점에서 다시 보기를 청하고 싶은 것은 청소년 제작 영화 들이다.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영화들과 영상 제작 문화를 단지 아마추어적인 것이나 미성숙한 단계로 한정시키는 것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다. 그 시기의 기억이 수치스럽다면, 수치심이라는 바로 앞에 놓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청소년 영화의 한때라는 비가시적인 기억을 담론이라는 공통의 영토로 구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청소년 영화의 스타일을 논해 볼 수도 있을까? <D-?> 중 유소라 의 < D-? >(2003)은 수험생이었던 유소라 감독이 직접 자신과 주변을 기록한 사적 다큐멘터리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인 유소라 감독은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며 본인의 일상을 기록한다. 주변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화면 안에 등장해 가상의 청중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학교생활과 가정에서의 일상, 충분히 사사롭지만 문제적일 정도로 내밀하지는 않은,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고3 수험생의 나날들. 입시제도에 대한 심정이나 수험생활의 고충, 장래에 대한 고민을 친구들에게 묻고 답하는 인터뷰는 짧은 호흡으로 리드미컬하게 쪼개어지고 재조합되면서 특정 무리의 집단적 고백으로 조성된다. 이때 아이들은 카메라를 의식하는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의 동급생을 바라보고 있다. 유소라는 철저하게 카메라에 매개된 존재로 등장한다. ‘셀프 카메라’라는 형식이 충분히 어떤 문법으로 자리잡지 않았던 때에 스스로와 스스로의 일상을 향해 카메라를 드는 것은 분명 어색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떤 형식이 이미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사후적인 자리에서 그것이 최초로서 유효했을 풍경을 생생하게 가늠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당연해지거나 진부해졌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스타일화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일상의 기록이 자연스러워졌지만 2002년에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동급생들의 반응에는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아마도 유소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어서 누구도 특별히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4년 독립영화 기획전의 GV에서 유소라 감독은 학생이었던 당시 이미 영상 제작에 관해 여러 성과가 있었기에 제지를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학교의 지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사실 유소라 감독은 청소년 영화 제작 문화의 붐을 이끌었던 <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 >(이선희 외 9인, 1998)를 제작한 영파여중 방송반의 일원이었다. 제1회 서울 YMCA 청소년영상페스티발(주제: ‘오늘, 우리의 모습: 우리의 자화상’)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던 이 영화는 실제 일진회 무리였던 학생들을 연기자로 섭외하고 그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당사자가 직접 폭력을 재연한다는 측면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그러한 작품의 분류와 계보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실제 비행 청소년들이 등장인물로 분한 장선우 감독의 < 나쁜 영화 >(1997)에 대한 청소년들의 응답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설립자이기도 했던 김종현 선생이 영파여중 방송반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지도하에 함께 제작된 것이기에 어른들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의 형식은 어떤 미학적인 방법론이라기보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제도가 문제적인 것으로 낙인찍거나 방출시키려 하는 대상의 이야기를 주체화함으로써 제도와의 마찰을 일으키기 위한 사건에 가깝다. 실제로 이 영화가 발표된 뒤 방송반 담당이었던 김종현 선생이 학교에서 퇴출당했다는 일화가 설명해 주듯. 그리고 몇 년 뒤 선생은 다시 영파여고로 복직하게 된다. 이는 청소년의 영상 제작이라는 문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며, 동시에 이는 더 이상 ‘포스트 서태지 세대’가 가진 문화적인 정체성의 공유지대를 내보이는 수행성이 갖는 반격이 이전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D-?>는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처럼 문제적인 아이들을 다루지 않는다. 다만 수험생이 학교에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다소 위험한 장면(수업하는 장면이나 체벌하는 영상 등)을 촬영하는 데도(비록 이것이 녹화 중이라는 카메라 신호를 가리고 몰래 찍은 것이라 하더라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영화는 같은 학급 친구들이 교실 컴퓨터에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을 발견하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계속 비슷한 설명을 동어 반복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도 한다. 남자가 너무 궁한 나머지 담임 선생님을 보며 윤계상을 떠올린다는 지극히 소녀적인 차원에서 도발적인 고민들도 담겨있다. 영화는 수능을 두 달 넘게 앞둔 D-70부터 수능 당일을 거쳐 졸업식, 그리고 졸업 이후 대학에 입학한 정황까지 시간을 내림차순으로 충실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유소라 감독이 수험생활 당시 촬영한 푸티지를 편집한 것은 성인이 되고 난 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공개 당시 이토록 사소한 내용이 정녕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의아함과 더불어 영화가 청소년 섹션인지, 성인 섹션인지 판단하기 모호하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이 영화가 졸업 이후의 시점에서 회고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기록을 촬영한 자가 수험생 당사자이며, 자신을 둘러싼 현장을 증언하고 있고, 카메라가 학교라는 제도의 규칙과 규율을 얼마나 침범할 수 있는지 의문에 부치는 식으로 제도의 윤곽을 드러내는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려 이 영화는 성인이 된 시점에서 청소년기의 기억을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과 청소년기를 단순히 입시라는 제도의 전환점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소년기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수능이 끝나고 처음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는 날? 대학 입시 결과 발표를 듣거나 재수를 결정하는 순간에? 졸업식 날 어설프게 화장한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릴 때? 어쩌면 청소년기는 한번도 끝난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시스템 내부에서 그것과의 마찰을 통해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표현하는 <D-?>는 영화의 수행성이 청소년이라는 지위와 범주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 영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제작 주체의 나이가 청소년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 영화가 바탕으로 하는 수행성의 범주에 따라 청소년 영화라는 스타일을 정의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나치게 조악하거나 서툰 화면이 일정 부분 청소년기 특유의 풋풋함과 열기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굳어진 것은 사실상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흥했던 청소년 영화 제작 문화가 끼친 영향이 아니었을까? 디지털이 보편화된 전환기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세대의 갈급함이 맞닿는 지대에서 탄생한 스타일. 특정한 영화적 실천의 계보나 아카데믹한 것을 의식하지 않(못하)고 그저 찍겠다는 충동이 자제할 길도 없이 먼저 앞서나가서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을까? 교육과 창작, 반발심과 순응 사이에서 지글거리는. <D-?> 중 이우정 감독의 < 애드벌룬 >(2011)을 다시 살펴보는 게 하나의 답이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단출하다. 평범한 아파트에서 정신없이 등교 준비를 하는 여고생의 아침으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는 두 여자애의 혼란스러운 친밀함과 한밤의 일탈이라는 비일상적인 소동극으로 향한다. 아파트 옥상의 애드벌룬 안에서 술을 마시던 아이들이 질식사했고, 주인공은 운 좋게 사고를 면한다. 그러나 거기 휘말린 지봉이라 불리는 여자아이의 죽음은 누군가의 청소년기에서 영영 불가해한 추문으로 떠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보다도 이야기가 이미지화되는 방식이다. 2011년에 제작된 <애드벌룬>은 의도적으로 열화된 화질로 촬영되었다. 윤성호 감독은 <애드벌룬>이 ”요새 안 쓰는 베타캠(정식 명칭은 베타캠betacam 비디오 캠코더. sony에서 개발한 방송용 ENG 카메라, 설명은 필자)을 굳이 대여해 특정 시기의 스탠다드(1990년대 교육방송 청소년 드라마와 중고등학교 영상제작반의 의욕적인 과업 사이 어딘가)를 일부러 서툴게 재현한다” *주7 라고 말한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 또한 캠코더로 촬영된 푸티지를 활용한다. 몰래 교실을 촬영한 듯한 영상과 함께 또래 여학생들을 둘러싼 소문을 무심하게 읊조리는 나레이션이 들린다. 이 푸티지는 사실상 영화 전체의 이야기와는 무관하다. 언제 어디서 누가 촬영했는지도 알 수 없으며, 그 사실이 중요하지도 않다. 이유리와 김애숙, 한혜정이 누구인지도. 오히려 영화와 상관 없어 보이는 오프닝을 영화와 접속시키는 것은 출처 미상이라는 이미지의 익명성과 화면의 질감이다. 정제되지 않은 캠코더 화면과 서사를 위해 봉사하지 않는 이미지 자체의 활력, 저화질의 푸티지는 베타캠으로 촬영된 장면과 큰 낙차 없이 어우러진다. <애드벌룬>의 오프닝씬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여자 청소년기라는 특정한 시기의 혼란스러움, 잔인함, 기억과 감각에 대한 인용이다. 영화는 효정이라는 인물과 친구 지봉(지연)을 중심으로 벌어진 하루의 해프닝이라는 특정한 이야기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굳이 영화의 앞과 뒤에 기록 푸티지를 삽입해 드라마를 공적인 기억으로 확장시키려 한다. <애드벌룬> 중 화면과 편집, 대화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 이 영화의 의도적인 서투름은, 윤성호의 말대로 청소년 드라마의 외피를 차용해 그것을 비트는 방식으로 ‘고유한 것’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전략일 수도 있다. 허나 이러한 고유함은 청소년 드라마의 스타일과 영상제작반 과업의 활기를 연상시킨다는 공통의 기억지대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영상제작반의 활동은 묘사되지 않으며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어딘가 미숙한 듯한 연출과 편집, 방송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질감은 분명 아마추어적인 활동을 상기시키고 있다. 어쩌면 뉴진스의 디토(ditto)식으로,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캠코더를 든 여자 청소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영화의 앞뒤로 삽입된 익명의 푸티지를 다시 떠올려보자. 지나치게 밀접하고 실시간적인 이미지는 이것이 촬영되었을 방식의 내밀함을 은연중에 연루시킨다. 영상이 암시하는 것은 손에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관음하는 내부자적 시선의 은밀함이며, 이는 <애드벌룬>을 보는 내내 이상한 불길함으로 달라붙어 있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서브 장르는 공포다. 나레이션이 덤덤하게 들려주는 괴담 같은 소문, 과고에 진학했던 한 여학생이 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겨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는 청소년기 특유의 잔인함과 서늘함을 증폭한다. 학원물에 등장하는 캠코더 영상이 노스텔지어뿐 아니라 공포를 자아내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가 보여준 적 있다. 무분별한 일상의 순간을 충동적으로 기록하는 캠코더의 조작 방식과 그렇기 때문에 거기 무엇이 찍혀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유령을 불러들이기에 좋은 환경이다. 아는 만큼 알고 모르는 만큼 모르는 청소년들의 직설은 충분히 잔인하다. 정제되지 않음은 실은 매우 사실적인 동시에 장르적인 감각이다. <애드벌룬>은 성인 연출자(청소년들이 제작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가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의 학교라는 시스템 내부의 생태계와 그 혼란을 거의 피부로 맞닿아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이 영화가 진짜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리얼리즘 영화의 수사를 애써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영화라는 수행의 아마추어적인 특징을 전유해 서사로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서사와 무관하지 않은 어떤 불안의 정체를 성공적으로 표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툴고 미숙한 것을 부족함에 그치지 않고, 담론적 부피로 만드는 것. 4. 청소년이 제작 주체가 된 영화들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오세섭 은 청소년들이 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반영된 논픽션을 제작하면서 자기 재현의 효과를 얻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청소년 제작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주8 이들이 묘사하는 내용은 학교폭력과 성적, 진로문제, 가족 관계와 사회에 대한 관심 등이라는 주제의 큰 경향 안에서 반복된다. 1998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청소년 제작 영화에서는 초창기의 관행이 반복되고 있으며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경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9 확실히 청소년들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는 입시 제도에 대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자주 경유할 수밖에 없다. <D-?>과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입시 생활의 부조리함으로부터 출발하는 홍다예 의 < 잠자리 구하기 >(2024) 또한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은 수험생인 감독 자신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추후에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그 시절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예감, 그리고 반쯤은 입시 제도에 대한 반발심으로 촬영된 것들이다. 유소라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홍다예 감독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본다. <잠자리 구하기>가 보여주는 현실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감각은 대상과의 영점조절을 의도적으로 실패함으로써 내가 너를, 우리가 우리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한다.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영화의 경향을 범주화하는 관점의 부작용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충돌이 그 안에서 어떻게 분화하는지,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기입하는지 추상화한 채 단순한 치기 어림으로 노이즈와 아우성을 뭉뚱그려서는 안 될 것이다. 비평이 언제나 상대보다 많이 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일이라는 세간의 오해에 따르면 비평은 항상 성인의 시점을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비평의 청소년성이 가능한지 묻고 그 치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잠자리 구하기>에서 입시에 실패한 감독은 재수를 택한다. 사람들은 이 기간이 유예기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답답함과 분노, 우울감은 입시라는 사건으로부터 멀어진 뒤에도 여전히 그 사건의 후유증과 싸워야 하는 과업으로 남는다. 감독의 나레이션처럼 우리는 “아직 유예기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도 바깥에 놓인 시간이 있을지언정 삶 바깥으로 잠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삶의 일부란 없다. 청소년기와 아직 끝장을 보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기분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잘못된” 사람이 가진 우울의 궤적을 표면화하는 기록들,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편집해야겠다는 충동으로 남아서 영화의 수행성과 접속한다. 그러니까 청소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건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는 식의 낙관이 아니다. 청소년기를 제도적 나이가 아니라 스타일로 확장될 수 있는 특정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정의할 때 종종 불가해한 활력을 띤 영화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지반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야기로 환원되지 않는 소음과 신음, 반발심, 특정 시기가 지나면 부끄러운 것으로 판명 날 어떤 충동들, 미래에 무감한 투신을 마주하는 기쁨이 있고 그 충격이 글을 쓰게 한다면 기어이 그렇게 할 것이다. 왜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나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앞으로도 나는 너무 모르고, 모를 거라는 예감 속에서 쓰겠지만, 모르면서 일단 앞서나가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음을 부정하거나 배신하고 싶지 않다.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이 아는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에 발각될 미래의 수치심을 감수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수치심을 기다리는 일. 부정확함을 견디는 것. 글쓰기는 언제나 불안이라는 뒤축을 밟고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일이니까. 거의 넘어지듯이. <잠자리 구하기> 중 *** 주1. 이보라, 「쓰러진 활자들을 일으키기.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하지 않는가.”」,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2023, 106쪽. 주2. 노엘 캐럴, 이해완 옮김, 『비평철학-On Criticism』, 북코리아, 2015, 159~164쪽. 주3. 2001년,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는 데이비드 매닝이라는 평론가가 작성한 < 기사 윌리엄 >(브라이언 헬거랜드, 2001), < 애니멀 >(루크 그린필드, 2001) 등의 영화에 대한 호평을 인용한다. 코네티컷주의 소규모 신문 릿지필드프레스의 필자라고 알려진 이 데이비드 매닝이라는 평론가는 그러나 가상의 인물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평론가의 이름으로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게재하고 이를 광고에 활용한 것이다. 어디에도 없던 평론가 데이비드 매닝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유령적일뿐 아니라 영화 비평이 산업의 가장자리에서 니콜 브레네즈의 표현대로 ‘부역자들’로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온전한 의미의 비평 활동이 수용될 장소가 희박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주4. 스즈키 이즈미, 최혜수 옮김, 『여자와 여자의 세상』, 문학과 지성사, 2024, 407쪽. 주5. 서동진, 「전주국제영화제가 소집한 19편의 한국 단편 영화」, 《독립영화》 통권9호, 2001, 10쪽. 주6. 같은 책, 7쪽. 주7. 윤성호, “ [초이스]애드벌룬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2012. 3. 6. 주8. 오세섭, 「청소년 제작 영화에 나타난 자기표현으로서의 재현의 의미」, 《씨네포럼》 제35호, 2020, 89쪽. 주9. 같은 책, 94쪽. 김예솔비(영화평론가) l 영화를 중심으로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이따금 영화 비슷한 것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