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A남북공동초등학교
- 감독
- 한명구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김지은, 김예리, 남동하, 김미영, 정태영, 박민기, 송민섭, 안병경, 서윤하, 신민희, 박미영, 최경훈, 김윤수, 박효근, 심명휘, 박보근, 이경선, 김재근, 나유란, 나기찬, 민병호, 정인철, 김상순
천만 관객을 돌파한 < 변호인 >(2013)을 시작으로 < 강철비 >(2017)와 < 강철비2; 정상회담 >(이하 <강철비2>, 2020)로 이어지는 양우석 감독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은 이른바 ‘대중영화’라는 이름의 덕목이다. 그는 흔치 않게 선명한 장르에 기대기보다 무엇보다 우리의 ‘현실’, 그중에서도 ‘정치’라는 영역으로부터 소재를 끌어올리는데, 세 작품 모두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물론 우민호 감독의 < 내부자들 >(2015) 이후 한재림 감독의 < 더 킹 >(2017)을 거쳐 ‘검사’가 주된 캐릭터로 등장하는, 굳이 표현을 갖다 붙이자면 ‘정치 스릴러’ 영화들이 한때 적잖이 붐을 이루긴 했으나, 그의 영화들은 이들과도 궤를 달리 한다. 특히 <강철비> 시리즈는 < 공동경비구역 JSA >(2000) 이후 < 웰컴 투 동막골 > < 의형제 > < 간첩 > < 용의자 > < 베를린 > < 공조 > 등으로 역시 붐을 이뤘던 ‘인간적인 얼굴을 한 북한 사람’이 등장하는 남북 소재 영화들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런 캐릭터보다 남북 관계라는 역학 관계에 더 치중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궤를 달리 한다. 그런 점에서 악착같이 자기만의 길을 걸으려 노력하며 동시대 대중영화가 쉽게 품기 힘든 스토리텔링으로 향한다는 뚝심의 감독이라고나 할까. <강철비>가 쿠데타 발생으로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김정은으로 예상되지만 실명을 쓰지는 않는다)가 남한으로 오게 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면, <강철비2>는 2021년을 배경으로 남북미 세 지도자를 한 곳에 모은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대한민국 대통령( 정우성 ),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위원장( 유연석 )과 미국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간의 남북미 정상회담이 북한 원산에서 열린다. 북미 사이에서 좀처럼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핵무기 포기와 평화체제 수립에 반발하는 친중 성향의 북한 호위총국장( 곽도원 )의 쿠데타가 발생하고, 납치된 세 정상은 북한 핵잠수함에 인질로 갇힌다. 그렇게 좁은 함장실 안에서 예기치 못한 진정한 정상회담이 벌어지게 된다. <강철비>의 전략과 마찬가지로 <강철비2>도 가정법의 상상력으로 밀어붙인다.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 속 사건의 발생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강철비>가 보다 현실적이지만 낯설었던 반면, <강철비2>는 오히려 비현실적이지만 왠지 낯설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벌어진 사건과 무관하게 영화 속 남북미 세 지도자가 현실의 그 세 지도자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빨간 넥타이의 미국 대통령은 누가 봐도 트럼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고(식성부터 성격까지 구구절절 유사점을 찾는 것 자체가 피곤할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다), 외모는 상당히 다르지만 북한 위원장 또한 김정은으로 연결짓는 것이 적절하며, 하늘색 넥타이의 대한민국 대통령도 외모나 연령대는 다르지만 ‘빨갱이 북에 가서 돌아오지마라’라는 글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왔다는 설정만 봐도 대략 속한 정당과 투영된 인물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게다가 지금의 우리 관객은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만나고,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난 뒤인 2019년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북측으로 넘어가 기념촬영을 마치고 다시 남측으로 내려와 문재인 대통령과 3국 정상이 얼굴을 맞대는 모습을 연출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처럼 <강철비2>의 픽션은 현실의 논픽션과 어우러져 힘을 발휘한다. 북한의 내부 붕괴라는 시나리오가 1편과 2편을 모두 관통하고 있다면, 2편에서는 미국까지 끌어들여 현실의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로 북측 땅을 밟은 것처럼 ‘(또 하나의) 최초로 해외에서 죽은 미국 대통령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이 끼여든다. 그것이 오히려 소속 정당에 대한 이미지 개선과 동정론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얘기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황당하게 느끼는 관객이라면 ‘만화적 상상력’이란 표현을 떠올리게 되겠지만, <강철비2>는 통역가나 비서관도 없이 남북미 세 정상이 강제적으로 한 방에 갇혀 동고동락하는 설정을 밀어붙이는 모양새가 꽤 쓸모 있는 풍자란 생각이 들게 한다. 방귀를 뀐 누군가를 질타하고, 실내 흡연 문제로 다투는 모습을 보자면 그야말로 ‘애들 싸움’이나 다름없다. 이제껏 보아온 근엄한 ‘정상회담’이란 온데 간데 없다. 사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보통의 북한 병사들이다. 순수하게 ‘공화국 영웅’을 꿈꾸며 마음 한구석에서 평화를 향한 열망이 있는 그들은 폭주하는 호위총국장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이 팽팽한 밀실 스릴러가 보여주는 미덕의 대부분은 바로 거기 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인간적인 얼굴을 한 북한 사람’이 등장하는 남북 소재 영화는 많았으되, 그 영화들의 북한 사람은 하나같이 대한민국 주인공의 시선에서 관찰당하는 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강철비2>는 <강철비>의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보다 더 그 북한 사람들의 시점을 담아낸다. 북한 잠수함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어쩌면 처음으로 북한 그 자체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고 해도, 혹은 북한에 가서 로케이션 촬영을 한 영화라고 적당히 거짓말을 보태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이제껏 보아온 남북 소재 영화들처럼 대한민국으로 온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거기 사는 그들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영화 속에서 북한 사람들이 얘기할 때 그 자막을 넣어준 것이었는데, 그것을 이른바 ‘서울 표준말’로 자막을 넣지 않고 그냥 ‘북한말’을 소리 나는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으나, 가령 한국영화에서 제주도 사투리 장면이 나올 때 서울 표준말 자막을 쓰는 것처럼, 북한영화에서 북한 타 지역 사투리 장면에서 평양 표준말 자막을 쓰는 것이라도 봐도 될 것이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의 영화가 서로의 영화관에서 자유롭게 동시 개봉을 하게 될 때, 평양 사람들이 <강철비2>를 보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들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 < 마더 >(2009)에서 엄마 혜자에게는 남들보다 조금 부족해서 앞가림 못하는 아들 도준이 있다. 아들을 지켜보느라 손가락이 잘려도 아픈 줄 모를 만큼, 도준은 소중한 존재다. 그런 아들이 살인죄로 잡혀가자, 누명을 썼다고 철썩같이 믿고 결백을 밝히려고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결백을 밝힐만한 걸 잘 기억해보라는 혜자에게 아들은 묻는다. “엄마, 그때 왜 나 죽이려고 했어?” 혜자는 잠깐 “얼마나 힘들었으면 같이 죽으려고 했겠어”라고 말하지만 금세 아들 걱정으로 생각이 넘어가고, 그 일이 응어리가 되었을 거라고 면회실 유리벽 너머에 있는 아들에게 응어리가 풀리는 혈자리에 침을 놓아 주고 싶어한다. 혜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은 신경도 쓰지 않지만. 남들은 미친 사람 취급하고 욕해도 내 자식은 무죄라고 외치는 엄마, 문제가 된 아들을 어쩌지 못해 자신의 응어리에 침을 놓고 잊어내려고 춤추는 엄마. 종일 아들만 쳐다보는 혜자의 얼굴에서, 김혜자 배우가 연기한 엄마의 다른 자식이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하루 종일 뭐, 엄마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란 말야?” 윤인호 감독의 영화 < 마요네즈 >(1999)에서 딸 아정이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엄마는 딸에게 전화해 불안하고 힘들다고 불평하고 관심 받고 싶어한다. 늦게 들어와서 내가 힘드니 딸에게 일 그만두라 말하며 응석 부리던 철없는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는 관객에게, 남의 아들에게까지 이입해서 “너 엄마 없니?”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영화 속에서 딸의 엄마는, 아들의 엄마와 다른 존재 같다.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영화에 아들의 엄마가 나오는데 엄마가 아들에게 공감을 호소하는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 열한번째 엄마 >( 김진성 , 2007)처럼 자신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자식으로 보듬는 여자가 있을 뿐이다. < 우리형 >( 안권태 , 2004)과 같은 영화에서처럼 아들이 엄마를 이해하는 순간은 있어도, 깊은 이해와 고통을 나누는 사이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딸의 엄마는 다르다. <마요네즈>처럼 엄마는 딸에게 자신을 이해하길 강요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렸던 영화 < 애자 >( 정기훈 , 2009)처럼 보살핌을 받는 것은 아들이여도 엄마와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사람은 딸이라고 말하는 영화도 있다. 일단 엄마와 딸이 등장하면, 둘 사이를 특별한 관계로 묶는 것은 너무 당연한 듯이 보인다. 스릴러 영화 < 오로라공주 >( 방은진 , 2005)에서 순정이 죽은 딸을 떠올리는 회상 속에서, 순정은 어린 딸에게 노래를 부르게 한다. “아빠 이제는 알아요. 인생은 외로운 거라고.” 어린 딸은 오로라공주를 좋아하고 그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엄마가 시키는 노래를 부른다. 가사는 아빠를 이해한다는 내용이지만, 엄마가 딸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이다. 순정의 표현대로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를 부르는 이 행동은 벌이다. < 비밀은 없다 >( 이경미 , 2015)에서도 노래로 엄마와 딸의 감정을 엮는다. 딸 민진과 친구가 부르는 노래는 아빠가 바람 핀 상대에 대한 분노고, 엄마를 지키기 위해 복수할 계획을 담고 있는 가사다. 오로라공주의 딸이 중학생이라서 자발적인 공감을 형성하기 어려웠다면, <비밀의 없다>에서의 딸은 중학생인 만큼 스스로 엄마에게 공감한다. < 미성년 >( 김윤석 , 2018)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 중학교 2학년인 주리와 윤아는 미성년자이지만 정신은 영화 안의 어른에 비교해 매우 성숙해있다. 그리고 그 성숙한 정신은 엄마에 대한 이해나, 엄마의 부족한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으로 표현된다. 주리는 바람 핀 아빠 때문에 엄마가 상처받을까봐 고민하고, 윤아는 바람 핀 상대의 아이를 꼭 낳겠다는 엄마를 세상의 비난 속에서 지키기 위해 고민한다. 주리의 엄마 영주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윤아는 처음부터 엄마가 겪을 고통을 이해하고 걱정하고 있었고, 윤아의 엄마 미희는 엄마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엄마가 아니라 여자로 이해해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엄마와 딸이 이런 식으로 묘사되는 것에 관해서, 엄마와 딸의 신체적 유사성이나 같은 여성으로 사는 것에 동질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이상의 혐의를 찾을 수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미성년에서 미희가 윤아에게 “엄마는 아들이 생겨서 든든해”라고 말하는 부분 같은 지점이다. 윤아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엄마의 보호자 역할까지 하는 와중에, 엄마는 왜 아직 뱃속에 있는 아들에 대해 든든함을 느끼는 것일까. <마더>에서 혜자는 도준의 혐의를 밝히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고, 형사를 만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 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구실을 할 수 있느냐고 조롱당하는 도준이지만, 반쯤은 남성무리 안에 들어가 있는데 혜자는 이들에게 “도준이와 형제같은” 사람들이라며 도움을 호소한다. 그리고 딱 그 절반만큼 형사는 혜자에게 친절하고, 진태는 돈을 받았지만 혜자를 위해 일을 해 준다. 그 덕분에 혜자는 남자 무리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권력이든 무력이든, 힘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남자무리이고, 혜자가 이 안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아들의 존재다. <비밀은 없다>에서 연홍은 남편을 비롯해, 형사와 같은 권력을 가진 남성집단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단이 없다. 결국 그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받는 존재는 권력과 무력을 가지지 못한 딸의 친구이다. 힘이 있는 집단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딸보다 아들의 존재가 필요해 보이는데, 이런 증거는 < 박쥐 >( 박찬욱 , 2009)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매주 수요일, 라여사의 집에서는 마작판이 열린다. 공간은 라여사의 것이지만, 마작판의 구성원은 아들 강우의 지인들이다. 그들은 각자 의사, 형사와 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상 밖에서는 의사의 아내인 이블린과 강우의 아내 태주 쭈그리고 앉아 김밥을 마는 노동을 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명백히 눈에 보이는 계급이 존재한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 < 공동경비구역 JSA >(2000)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하고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계급과 소속에 상관없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교류하는 장면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런 예시까지 들지 않아도, 남자는 밥상에서 밥을 먹고 여자들은 부엌 바닥에서 음식을 장만하던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강우가 죽으면서 이 권력관계는 모호해지고, 부인들은 모두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혜자처럼 죽은 아들을 통해 입성한 권력 있는 남성들에게 도움을 처하면서도, 아들자식이 없는 여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전복하고 테이블 위로 올라오는 것을 제지할 능력은 없다. 이런 의심 속에서, 영화 < 박화영 >( 이환 , 2017)에서 화영은 이런 영화들이 말하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거스르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화영은 마치 아들의 엄마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화영은 엄마를 자처하며 엄마는 맹목적으로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자식이 때리면 때리기 좋은 곳을 내미는 희생정신이 있는 사람이다. 화영이 의도했든 아니든 그룹 안에서 화영은 여자로 여겨지지 않는데, 화영 또한 당연히 엄마를 이해하는 다른 많은 딸들처럼 엄마를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엄마를 찾아가 욕설하고, 인터폰 너머에 있는 엄마에게 침을 뱉는다. 영화 후반부, 자신이 지켜준 가짜 딸이 자신을 희생물로 삼고 도망간 뒤에 또 새로운 딸을 데리고 와, 그들이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얘기를 끊임없이 떠든다. 그 속에서 “너네는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라는 대사는 오히려 반대로 나는 들어줄 딸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맹목적으로 희생하는 엄마가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엄마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토로할 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박화영은 아름답지 않지만,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 그런 특별한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고. 아들이 권력자에게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는 도구로 존재할 수 있다는 짐작이, 엄마의 희생적인 애정이 정말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의심스럽게 느끼게 한다. 엄마와 딸은 정말 특별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 관계를 아름답고 특별한 것이라고 말하는 영화들의 흐름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를 되묻게 한다. 그리고 이 영화들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한국의 딸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정말 이 영화들에서처럼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지, 정말 딸이라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지, 무엇보다 엄마의 사랑이 아들과 딸에게 동등하다고 느끼는지. 혹은 박화영처럼 딸은 가질 수 없는 아들의 엄마를 갈망하고 있는지를.
2002년 | 스튜디오박스 감독: 박찬욱 | 각본: 박찬욱 이무영 이재순 이종용 | 제작: 임진규 | 촬영: 김병일 | 미술: 오상만 오재원 최정화 | 음악: 어어부 프로젝트 CAST 동진: 송강호 | 류: 신하균 | 영미: 배두나 | 류 누나: 임지은 | 유선: 한보배 < 복수는 나의 것 >은 촬영 초반부와 후반부, 두 번에 걸쳐 현장 공개를 했습니다. 버티고개역에서 이뤄진 첫 번째 공개 신이 다소 밋밋했다면, 두 번째는 전혀 달랐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대목이었는데요, 바로 동진(송강호)이 류(신하균)를 물 속에서 죽이는 장면입니다. 적잖이 추운 날씨에 차가운 물 속에서 배우들이 큰 고생을 했던 신이었죠.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의 섬진강 부근. < 남부군 >( 정지영 , 1990) < 아름다운 시절 >( 이광모 , 1998)이 촬영되기도 했던 이곳은 <복수는 나의 곳>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입니다. 류와 류의 누나(임지은)의 추억이 깃든 곳이며, 류가 죽은 누나를 묻은 곳이며, 동진의 딸 유선(한보배)이 죽은 곳이며, 결국 류가 동진에게 죽게 되는 곳이죠. 액션의 대부분이 물 속에서 이뤄지는 바람에 그 준비와 진행이 쉽지 않았습니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이 말과 함께 동진은 류의 목숨을 끊습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류를 끌고 물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이후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가 됩니다. 격한 연기 도중 송강호는 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지만, 그대로 촬영을 강행했습니다. 물에서 나온 배우들의 모습입니다. 난방 기구로 체온을 유지하지만, 곧 다시 물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박찬욱 감독이 “쉬었다 갈까, 그냥 갈까?”라고 묻자, 두 사람은 입을 모아 “그냥 가시죠”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었지만, 배두나가 현장을 찾았습니다. 류는 말을 못하고 동진도 거의 대사가 없는 상황에서, <복수는 나의 것>의 대사는 대부분 배두나가 맡아야 했는데요, “연기 가운데 대사에 제일 자신 없다”는 그녀는 “영화의 흐름을 깨지나 않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자신의 촬영이 모두 끝난 상황에서 편한 마음으로 방문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만난 신하균과 배두나는 연인이 되었죠. 당시 두 사람은 충무로에서 가장 촉망 받는 배우들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스크린>과의 인터뷰에서 배두나는 “배우라는 연대 의식이 서로를 가깝게 만들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균 오빠랑 둘이 있을 때 가끔 그런 이야기도 해요. 작년엔 유망주 1위로 꼽혔는데 올해엔 가장 과대 평가 받은 배우 1위로 뽑히면 어쩌냐고. 어쨌든 연기력을 인정 받았고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을 얻어서 기분 좋아요. 호평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고요.” 힘든 촬영이었지만 모니터링을 하는 감독과 배우의 표정은 밝습니다. 하지만 처음 <복수는 나의 것>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당황했어요. 표현이 ‘세다’고 생각했죠. 변칙적이고 냉소적인 가운데 리얼리즘의 확장을 추구한다고 생각했던 박 감독님의 작품 세계가 내 기준치보다 한층 더 세게 올라가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고 더욱 매력적이었죠.” 이날 현장엔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습니다. 게다가 신하균을 응원하는 팬들이 플래카드를 만들어 오기도 했죠. 박찬욱 감독은 “새로운 형식적 시도가 관객들에게 낯설 수 있다”며, “표현이나 감정의 과잉을 억제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강호가 물에 젖어야 하거든, 그러니까 머리까지 잠기게 푹 들어갔다 나와.” 감독의 주문에 배우들은 얼음장 같은 강물을 흠뻑 뒤집어씁니다. 얇은 바지를 입고 손발이 묶인 채 물 속에서 끌려가는 신하균 역시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현장에 배우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집니다. 막바지여서 그런지 한결 여유로워진 현장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류가 수화와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는 신하균은 몸무게가 부쩍 줄어 눈매가 더 깊어졌습니다. 송강호 역시 <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때보다 10킬로그램 몸무게가 줄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누구일까요? 류의 누나와 류의 어린 시절 역을 맡은 아역배우 정나예와 한성진입니다. 이 날은 이 두 아이들의 촬영도 있었습니다만… 영화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어떤 장면들이었을까요?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지는 대목입니다.